Business/2008

사기(史記)의 인간 경영법

supremacy 2008. 10. 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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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이 단순치 않듯 인간관계와 그 관계로 구성되는 사회관계 역시 복잡하다. 매 순간 모순과 갈등의 연속이다. 이런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우리 삶의 방향과 질을 결정하는 관건이 된다. 이것을 쉬운 말로 처세(處世)라 한다.

사기(史記)’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약 2,100년 전의 역사책이다. 총 130권에 글자 수는 무려 52만 6,500자나 된다. 다루고 있는 시간은 3,000년 이상으로 중국사 전체의 3/5 이상을 차지한다. ‘사기’는 시간도 길고 공간도 무한히 넓다. 이 정도만으로도 ‘사기’는 결코 읽기 만만치 않을 것 같지 않은가? ‘사기’는 역사책이다. 그런데 옛날이야기 같은 그런 역사책이 아니다. 아주 잘 정제된 체제를 갖춘 고품질의 역사책이다. 게다가 다섯 체제 중 열전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접근조차 힘들 정도로 어렵다. 사실 열전조차도 제대로 읽으려면 결코 녹록지 않다.

그렇다면 이런 어려운 역사책을 꼭 읽어야 할 고전으로 평가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이 불후의 명작을 남긴 사마천에게서 찾아야 한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관이란 관직에 있으면서 역사책을 준비하다가 마흔일곱의 나이에 뜻하지 않은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사형을 선고받는다. 이에 사마천은 미처 끝내지 못한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사형보다 더 끔찍하고 치욕스러운 ‘궁형’을 자청한다. 오직 끝내지 못한 역사책 때문에 말이다. 그때가 마흔아홉이었다.그런데 궁형을 자청하기 전까지 1년 넘게 감옥에 있으면서 사마천은 그때까지 자신이 구상하고 서술하고자 했던 역사책의 내용을 완전히 바꾼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쓰고 있던 역사책의 내용을 전면 수정하기 위해 궁형을 자청했는지도 모른다. 그 사이 사마천은 인간의 본질, 세상의 인심, 권력의 실체, 이 세계를 움직이는 힘 등등 중대한 문제에 대해 새로운 통찰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마천은 자신이 쓰고 있던 ‘사기’의 내용을 전면 수정하여 부조리한 세태와 모순에 가득 찬 권력자를 비판적으로 통찰하려 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사기’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사기’는 사마천의 피를 먹고 완성된 역사책이다.

인재를 중시한 주나라 주공

인간의 삶이 단순치 않듯, 인간관계와 그 관계로 구성되는 사회관계 역시 복잡하다. 매 순간 모순과 갈등의 연속이다. 이런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우리 삶의 방향과 질을 결정하는 관건이 된다. 이것을 쉬운 말로 ‘처세(處世)’라 한다. 처세란 세상과 나와의 관계를 주관적으로 설정하는 고차원적인 삶의 방식이다. 그것은 삶에 대한 통찰과 세상에 대한 영감을 필요로 한다. 이와 관련하여 ‘사기’에 나오는 CEO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주공(周公)의 일화를 한번 보자.포악한 군주인 상(商)나라의 주(紂) 임금을 죽이고 주(周)나라를 건국하는 데 일등 공신이던 주공(周公)은 인재를 아낀 지도자인데, 하루에 인재 70명을 면담했다는 전설 같은 기록을 남겼다. 이와 함께 ‘일반삼토(一飯三吐), 일목삼착(一沐三捉)’이라는 유명한 고사성어도 전한다. 밥 한 끼 먹다가 세 번이나 먹던 것을 뱉어내고 나가 손님을 맞이했고, 목욕하다가 세 번이나 감던 머리카락 움켜쥐고 나가 손님을 맞이했다는 뜻이다. 정말이지 21세기 CEO의 원형을 보는 듯 생생함이 느껴진다.

때를 놓쳐 토사구팽(兎死狗烹)당한 한신

“교활한 토끼가 죽으니 사냥개를 삶는다.” 지금도 널리 인용되는 ‘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고사성어는 훗날 나라를 세우거나 큰일을 성취한 다음 그 일에 큰 공을 세운 공신들을 제거한다는 의미로 정착하게 된다. 서한삼걸(西漢三傑)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가랑이 밑을 기는 치욕’을 견디고 유방이 천하를 재통일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한신(韓信)이 역적으로 몰려 유방에게 붙잡히기 직전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이 성어를 인용했다. 유방은 건국공신인 한신을 차마 죽일 수 없어 회음지방의 제후로 봉하고 회음 땅을 봉지로 주었다. 하지만 한신은 요주의 인물로 분류되어 수도에서 억류당해 감시를 당했기 때문에 자신의 봉지로 부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미 권력의 속성과 본질을 몸소 겪은 한신은 왕후 대열에 들어야 함에도 촌구석 일개 제후에 임명된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실의의 나날로 5년을 보낸 한신은 마침내 반란을 결심하게 되지만, 계획은 새어나가 여태후의 의심을 받고 거짓말로 한신을 입궐하게 해 잡아 죽이고, 3족을 멸하게 된다.

사마천은 역사와 달리 수도에 연금되어 감시받고 있던 한신이 모반을 꾀했을 리 만무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신이 제거된 이유는 모반이 아니라 불손함과 자기과시 때문에 권력자의 눈 밖에 났기 때문이다. 이는 권력 게임의 한 단면을 보여준 사례이지만, 한신 개인의 행적을 놓고 보면 그가 자초한 면이 많다. 그는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권력의 한도를 스스로 설정하지 못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이로 인해 최고 권력자는 그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고, 결국 숙청이라는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현실에서 우리는 수시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때때로 선택을 강요받기도 한다. 정치와 권력에 있어서 기회나 타이밍 문제는 모두 선택과 직결된다. 위기 상황에서의 선택, 승리를 거두고 난 다음의 선택, 부귀공명을 이루고 난 다음의 선택 등 거의 모두가 선택을 둘러싸고 전개된다.‘사기’에 등장하는 숱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넘쳐흐른다. 그래서 ‘사기’는 매력을 넘어 마력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차분히 나 자신이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사기’를 읽으면 삶의 영감과 시대를 읽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글 김영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 Beyond Promise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