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18. 12:38
[Business]
해당 산업을 리드하는 선도기업은 일반적으로 뛰어난 브랜드 인지도, 양질의 제품, 명성 등에 기반하여 매출과 이익을 독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장을 선도하던 기업들 역시 경쟁우위를 잃고 쇠퇴하는 경우가 다반사로 발생한다. 실제 Fortune
America 500으로 1990년도에 선정된 기업 중 2010년까지 500대 기업에 머문 기업은 약 2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선도기업들이 위기에 빠지는 원인을 살펴보면 우선, 리더의 확증 편향을 들 수 있다. 경영자가 자신만의 ‘성공 방정식’을 맹목적으로 중시하고, 다른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려 기업을 위기에 빠트리는 것이다. 자신들이 추구해야 하는 본질적 목표를 망각하고 수익만을 탐하다 경쟁력의 원천인 ‘고객이 인정하는 차별적 가치 창출’을 무시하는 것도 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현재의 성공에 취해 변화의 필요성을 망각하고 현실에 안주함으로써 쇠퇴의 운명을 맞은 기업들도 있다. 과거의 향수가 미래의 도약을 저해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기존 사업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에 집착하고 과거에 얽매임으로써 결국 변화할 때를 놓치는 것이다. 다단계의 계층적 조직구조, 융통성이 없는 과도한 규정과 규칙 등에 조직이 경직화되어 의사결정의 유연성과 스피드가 떨어지는 것도 쇠퇴의 주요 원인이다. 기존 경쟁력을 와해시키는 파괴적 혁신 기술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위기에 직면하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모델은 있지만 이를 실제로 고객이 인정하는 제품·서비스로 구현시킬 수 있는 가치 창출 메커니즘 구축에 실패함으로써 시장에서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기업은 산업, 고객, 경쟁사 등의 변화 움직임과 그 영향력에 대한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둘째, 작은 시도를 통해 경험적 검증을 거친 뒤, 이거다 싶으면 본격적으로 자원을 집중함으로써 주요 혁신 활동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셋째, 설사 잘못된 방향으로 가더라도 이를 신속하게 되돌릴 수 있는 유연성과 복원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결단을 내려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리더들을 지속적으로 육성·확보해 나가야 한다.
Ⅰ. 승자독식의 시대, 그러나 영원한 일등은 없다
지식산업사회에서 기업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게임의 법칙은 ‘승자독식(Winner takes it all)’이다. 일단 해당 산업을 리드하는 선도기업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시간이 갈수록 타 기업과의 격차가 벌어지고 매출과 이익을 선도기업이 독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Canaccord Genuity가 애플, 삼성, LG, 노키아, 모토로라, HTC 등 8개의 세계 주요 휴대폰 제조업체의 영업이익을 분석한 결과, 2012년 기준으로 애플이 전체 영업이익의 약 69%를, 그리고 2013년 1/4분기 기준으로 약 57%를 가져간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NPD 그룹의 조사에 의하면 애플의 iTunes는 2012년 4/4분기 기준으로 미국 디지털 음원 다운로드 시장에서 약 63%의 점유율을 차지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컨설팅 회사인 베인(Bain & Company)이 2,000여 회사를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에 의하면 기업 간 성과 차이 중 약 17%만이 업종의 차이에 의해 설명되고, 그 외는 모두 해당 산업 내 기업의 포지션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다시 말해 저성장 산업에 속한 선도기업이 고성장 산업의 후발업체보다 높은 성과를 낸다는 것이다. 선도기업은 일반적으로 뛰어난 브랜드 인지도, 양질의 제품, 명성 등을 근거로 후발업체에 비해 평균 2.6%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었고, 6% 정도 낮은 비용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소하게 보이는 이러한 차이점이 합쳐져 선도기업은 하위 경쟁사보다 거의 3배나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후발기업은 전략 실행을 위한 자금 확보가 어렵고, 설사 좋은 제품을 출시했다 하더라도 고객들의 선택을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선도기업을 앞지르기가 만만치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선도기업이 지속적으로 시장을 지배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Fortune America 500으로 1990년도에 선정된 기업 중 2010년까지 500대 기업에 머문 기업은 약 24%로 나타났으며(<그림 1> 참조), 1990년 상위 100위권 기업 중 2010년에도 지위를 유지한 기업은 29%에 불과했다. 이는 국내도 유사하여 1990년 국내 100대 기업 중 2010년까지 순위 내에 살아남은 기업은 30%에 지나지 않았다. 시장을 선도하던 기업들 역시 경쟁우위를 잃고 쇠퇴하는 경우가 다반사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Good to Great'를 저술한 짐 콜린스(Jim Collins)가 “가장 강력한 파워가 언제나 정상을 차지한다는 자연의 법칙은 없다. 아무리 위대했다 할지라도 모든 조직들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불확실성이 커지는 현 경영 환경 속에서 이러한 현상은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위대한 기업들이 쇠퇴하는 원인들을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쇠퇴의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하고, 설사 들어섰다 하더라고 이를 초기에 감지하여 운명을 되돌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Ⅱ. 선도기업이 빠지는 함정
선도기업들이 위기에 빠지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고 종종 복합적인 원인들이 작용한다. 주요 원인과 사례들을 살펴보자.
1. 리더의 확증 편향 : “아무리 봐도 내 생각이 맞다”
선도기업의 경영자들은 대부분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성공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성공 방정식’을 만들게 된다. 그러다 보면 이러한 성공 방정식을 맹목적으로 중시하고, 다른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확증 편향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이 경우 리더들은 다수의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분명히 보이는 사실인데도 이를 인정하지 않거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증거만을 받아들이고 다른 생각을 입증하는 자료는 무시해 버리는 경향을 보인다. 때로는 사실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아’,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어’ 등 그것이 미칠 영향을 부정하기도 한다. 선도기업이라 하더라도 리더가 자신만의 성공 방정식에 매몰되면 바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시장, 고객, 직원 등 모든 환경이 바뀌고 그 바뀌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성공을 거둔 CEO에게 이견을 제시하고 반박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 포드 : T모델에 대한 집착
미국 비즈니스 월간지 포트폴리오닷컴은 2009년 미국 역사상 최고 경영자로 생산 표준화와 이동 조립법을 도입한 ‘포드 시스템’으로 경영 합리화와 대량생산방식을 이루어낸 헨리 포드(Henry Ford)를 선정하였다. 1908년 처음 등장한 포드의 T모델은 20년간 총 1,500만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링 자동차였다. 일반 시민이 탈 수 있는 싸고 튼튼한 차를 꾸준히 출시함으로써 당시 서민은 꿈꿀 수 없었던 자동차 대중화의 바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T모델의 보급은 제조업의 혁명을 가져옴과 동시에 포드사에게 자동차 업계의 왕좌 자리를 가져다 주었으며, 사회적 변혁을 일으키는데도 일조하였다.
이렇듯 헨리 포드가 자동차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미국 전역에 자동차를 보편화해서 사람들의 공간적 제약에서 해방시키겠다는 고객 가치 창출에 초점을 맞추어 사업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점차로 그의 관심은 ‘고객 행복 만들기’에서 ‘T모델 만들기’로 바뀌었다. 그런데 192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고객의 취향이 점차적으로 바뀌는 모습이 나타났다. 자동차가 신분의 상징이 되면서, 고객들은 핵심 기능뿐만 아니라 다양한 차종과 색상 등 부가기능을 중시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방식으로 동일한 모양과 색상의 차를 만들어내는 포드사의 시장점유율은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포드사의 경영진들 역시 이러한 현상에 고민하기 시작했고 회사가 뭔가 변화해야 한다고 느꼈다. 경영진 중에 한 명은 포드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우리 경영진들은 시장에서 포드사의 입지가 좁아지고 장악력이 약해지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충만했던 자신감도 잃어가고 있습니다. 경쟁사들이 팔고 있는 모든 신차들을 보면, 그들은 더 강해지고 우리는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경쟁사들은 마치 과거 우리가 최저 비용으로 제품을 생산·판매하면서 시장을 장악했던 것처럼 빠르게 우리의 시장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우리 손에 있던 것들이 하나 둘 없어지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이에 대한 대비책을 하루아침에 만들 수는 없지만, 회사의 중요한 자리에 계신 분이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포드는 움쩍도 하지 않았고, 그는 해고당했다.
“우리는 고객이 원하는 색상의 자동차를 제공할 것이다. 그것이 검은색이라면 말이다.”, “포드 자동차는 계속 같은 방식으로 생산될 것이다. 나는 누가 제시한 숫자에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나의 정보와 관찰에 따를 뿐이다.”
포드는 결국 자동차 업계의 왕좌를 GM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 자리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 파나소닉 : 카리스마 리더십의 폐해
일본 가전산업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인 파나소닉(Panasonic)은 2011, 2012년 연속 7,000억엔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파나소닉의 위기는 주력 사업인 TV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평이다. 2006년 나카무라 구니오 당시 파나소닉 회장은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사업에 회사의 운명을 걸겠다”고 선언하였다. 샤프가 LCD 기술에서 이미 앞서 있어 파나소닉이 기술적으로 성공하려면 PDP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대형 PDP를 출시하면서 축적된 기술에 대한 높은 자부심과 자신감도 그러한 결정에 한 역할을 했다. 당시 파나소닉의 PDP TV 시장점유율은 세계 1위로 30%를 웃돌았다.
파나소닉은 2007년 초 역대 최대 규모인 2,100억엔을 투자하여 아마가사키 제 3공장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2005년경부터 이미 PDP 기술의 패배가 보이기 시작했고, 파나소닉 경영자들 역시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PDP TV의 실패가 명백한데도 아무도 공장 증설을 멈출 수 없었다. 나카무라 회장의 카리스마적 리더십 때문이었다. 2000년대 초반 파나소닉의 턴어라운드를 성공시킨 나카무라는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제왕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강력한 추진력 확보에는 성공했으나 조직 내에서 다양한 목소리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예를 들어, 시장을 전망할 때도 PDP TV의 향후 전망이 어둡다고 말할 수 없었다. 또한 실적이 나빠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CEO보고에는 항상 ‘앞으로 잘할 수 있다, 잘 하겠다’는 내용의 보고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렇지만 TV 시장의 주력 모델이 LCD로 넘어가는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2010년에 완공된 아마가사키 공장은 1년여 간 가동하다 2011년 10월 결국 문을 닫았다. CEO가 자기 독단에 빠져 경영을 좌지우지함으로써, 회사를 위기에 빠트린 것이다.
2. 수익을 탐하다 경영의 본질을 잃다
하버드대 몽고메리(Cynthia A. Montgomery) 교수는 기업의 성과 차이는 기업이 표방하는 목적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 고객의 어떤 충족되지 않은 니즈를 채우려 하는 지가 명확히 설정된 훌륭한 목적은 해당 산업에서 기업이 타 기업과 차별화된 중요한 차이를 만드는 발판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이 생존을 위해 수익을 창출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수익 창출 자체가 기업의 존재 목적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경우 경쟁력의 원천인 ‘고객이 인정하는 차별적 가치 창출’을 잊어버리거나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선도기업들도 자신들이 추구해야 하는 본질적 목표를 망각하고 수익을 탐하다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 GM : 숫자와 데이터로 기업을 망치다
GM은 1928년 포드를 누른 이래 미국 자동차 산업을 리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장점유율이 조금씩 하락하는 위기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1981년 GM의 회장으로 취임한 로저 스미스(Roger Smith)는 소비자 지향의 전략을 접고 수익성을 강조하는 경영방침을 밀고 나갔다. GM의 부회장이었던 밥 루츠(Bob Lutz)은 그의 저서 <빈 카운터스: 숫자와 데이터로 기업을 망치는 사람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GM의 주된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고, 비용을 투입해서 차를 만들면 그걸 팔아서 돈을 벌면 된다고 생각했다. 차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생각이 경영진 사이에 퍼져 있었다. GM은 비용절감과 이윤 극대화에만 신경 썼을 뿐, 고객들이 어떤 상품을 원하는지는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고객에게 맞는 상품을 만들어 내는 일은 경영진이 아닌 하위직 직원들이 담당했고, 이들은 대개 디자인이 어떻다든가 운전자가 운전할 때 어떤 느낌을 받는가 등을 잘 알지 못했다. 나는 최고경영진이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겠다는 열정이 없다면 ‘비용절감’은 가능할지 몰라도 ‘매출 극대화’는 달성하기 어렵다고 믿는다.”
GM의 핵심 전략 중 하나가 바로 ‘고객들이 자동차와 관련된 꿈의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을 실현시켜 준다’는 것이었다. 즉, 운전을 처음 시작한 젊은 고객들에게는 저렴한 차를, 그리고 점차적으로 수입이 늘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그에 걸맞은 차를 구입할 수 있도록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여 제공하는 것이었다. 1920년대에는 각 브랜드별로 가격대가 겹치지 않고 시장 세분화가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사업부별 수익을 강조하다 보니 점차적으로 브랜드별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서로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말았다(<그림 2> 참조). 예를 들어, 1980~90년대에 캐딜락의 매출액을 크게 늘리면서 동시에 최고의 고급 브랜드로 만들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캐딜락 사업부는 매출을 늘리기 위해 출혈 판매를 하기 시작했고, 공급이 늘어나다 보니 당연히 가격이 급락했다. 따라서 일반 노동자들도 캐딜락을 사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명성은 사라졌고 더 부유한 계층에서는 벤츠, BMW, 아우디, 재규어처럼 더 비싸고 질 좋은 그리고 너무 흔하지 않아서 상류층의 상징이 될 수 있는 다른 브랜드를 찾기 시작했다. 수익성의 강조는 단기간에 있어서는 이익을 증가시키는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사업부간 경쟁을 부추기고 장기적 관점에서 GM의 위기를 자초하는 환경을 구축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과의 착시 현상도 발생했다. 본업인 자동차 부문은 2000년대 초반 적자로 돌아섰지만, GM의 자동차금융회사인 GMAC의 고성과로 인해 사업 실적이 정상적인 것처럼 보인 것이다. 특히 GMAC의 자회사인 레지덴셜캐피털(ResCap)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모기지 금융업이 GM의 주요 수입원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레지덴셜캐피털은 엄청난 손해를 발생시켰고, 끝이 보이지 않는 손실의 블랙홀에 GM 전체가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결국 GM은 일어설 수 없을 만큼 큰 타격을 받았고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 패니메이 : 수익을 쫓다 리스크를 간과
짐 콜린스는 'Good to Great'에서 패니메이(Fannie Mae)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며 위대한 기업으로 꼽았다.
“담보대출에 관한 한 어떤 면에서든 자본시장의 선두 주자를 지향한다. 특히, 담보 리스크를 보다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정교한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저소득층에도 집 담보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주택 소유의 꿈을 대중화하였다.”
패니메이는 정부의 보호, 그리고 체계적인 조직 운영 시스템과 위기관리 역량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거두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조직 내부와 월스트리트 투자자들은 회사에 더 높은 성장을 요구하고 있었다. 정부 또한 저소득층 주택 자금 대출을 늘리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활기를 띠자 패니메이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여기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2005년에서 2007년 사이 담보 금액 비율이 10% 미만으로 패니메이가 확보한 저당권 숫자는 세 배나 늘어났다. 그리고 2007년 중반 많은 고위험 대출자들이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패니메이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 임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두들 이전 같으면 거부했을 조건에 대해서도 대출을 허용하고 있고, 또한 너무 적은 담보를 요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원칙은 언제나 상황에 적합한 기준을 유지하고 저소득층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원칙대로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패니메이가 서브프라임 시장에 뛰어든 것은 자신만의 의지가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한 분석가가 “패니메이가 서브프라임 시장에 진출하려고 하는 이유는 기록적인 주가 상승을 이어가 주주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다”고 지적한 것처럼 자신들의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주택 거품이 꺼지자 패니메이는 2007년 25억 달러, 그리고 2008년 594억 달러의 엄청난 적자를 기록했고, 결국 구제금융을 받고 국유화되었다. 하지만 패니메이의 경영진들은 회사가 위험해질 수 있음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 여러 자료에서 드러났다. 만약 패미메이가 자신들의 존재 이유가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거나 금융 기관들의 영업 형태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주택시장에 필요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임을 명심했다면 주택시장 붕괴시 자신들의 역할을 보다 제대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안정유지 편향 : 풍요가 혁신의 열망을 저하
기업의 성과가 높아지고 활용 자원이 풍부해지면 경영진이 태만해질 수 있다. 현재의 성공에 취해 변화의 필요성을 망각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경우가 나타나는 것이다. 풍요가 오히려 혁신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것이다. 이럴 경우 약점을 찾아 과감하게 도전하는 신규 시장 진입자들이 생기는 빌미를 제공하고, 점차적으로 그들에게 업계의 권좌를 물려주는 경우도 발생한다. 건강하게 살아남기 위해 기업은 처해 있는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지속적이고 다양한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그 기업은 언젠가 쇠퇴의 운명을 맞게 될 수밖에 없다.
● 서킷 시티 : 본업의 변화 필요성을 망각하고 기존 패턴에 안주
고가의 전자제품 판매에 있어 ‘5S 모델’(Service, Selection, Savings, Speed, Satisfaction) 구현에 최고가 되겠다는 경영철학을 가지고 사업을 전개한 서킷 시티(Circuit City)에 대한 짐 콜린스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정교한 판매 촉진 및 재고관리 기술의 선구적 활용과 고가 물건 소매업의 ‘맥도널드’가 된다는 개념을 접목시켜 지리적으로 넓게 분산되어 있는 시스템을 매우 일관되고 탁월하게 실행할 수 있다”
서킷 시티가 2009년 도산으로 무너진 원인으로는 경제 상황의 악화, 그에 따른 고객 지출 감소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핵심 이유는 과거 답습형의 관리 체제라고 이야기되고 있다. 서킷 시티는 1980~90년대 매우 성공적으로 사업을 영위하였다. 그러나 그 후 그들은 적극적으로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 많은 분석가들의 지적이다. 즉, 서킷 시티는 경쟁이 치열하고 급속히 진화하는 전자제품 소매 산업에서 현실에 안주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서킷 시티는 2000년도에 주요 매장에서 백색가전 제품을 철수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점차 경쟁이 치열해지고 마진이 떨어지는 백색가전 시장이 매력적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관련 제품의 보관 및 배송 비용을 줄여 다른 곳에 활용하자는 의도가 담긴 전략이었다. 당시 백색가전은 서킷 시티 매출의 14%와 전체 매장 면적의 20%를 차지하고 있었다.
매출 감소분을 만회하기 위해 서킷 시티는 중고차 판매 전문업체인 카맥스(CarMax)와 전용 재생기와 암호 체계를 이용해서 고객이 원하는 기간만큼 DVD를 임대해주는 디빅(DivX)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였다. 물론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실험 및 사업 모색은 필요하다. 문제는 서킷 시티가 기존 핵심 사업인 전자매장 부문에 있어서는 지속적으로 변화와 상상력을 펼쳐가면서 창의적인 개선과 발전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사업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조치들이 난무했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서킷 시티는 2007년 3천 명 이상의 고임금 근로자들과 숙련된 근로자들을 해고하였다. 그러자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서비스에 대한 고객 불만 건수가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또한 효과적인 재고관리도 이루어지지 못해, 팔리지 않는 재고 때문에 신규 모델을 구매하거나 부채를 상환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 경쟁사인 베스트 바이(Best Buy)는 전자매장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1989년에 고객들에게 더 나은 쇼핑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많이 팔거나 이윤을 남긴 직원에게 제공하는 판매수당 제도를 없앴다. 즉, 마진 등을 이유로 직원들이 원하는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필요한 최상의 상품을 추천해 주는 카운셀러의 역할을 강화토록 함으로써 고객과의 신뢰 구축을 도모한 것이다. 반면 서킷 시티는 이러한 커미션 판매 방식을 2003년도에 가서야 폐지하였다.
베스트 바이는 또한 1999년도에 새로운 가전제품들이 넘쳐나는 복잡한 상황에서 고객이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매장 설계를 변화하였다. 2002년도에는 새로운 기술 및 기능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고객들을 위해 ‘Geek Squads’를 만들었다. 이 조직은 매장에서 고객들의 질문에 응대하고, 필요하면 고객의 집까지 직접 방문해 다양한 문제점들을 해소해 주는 서비스 돌격대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고객 방문 시에는 거리가 멀거나, 서비스 시간이 아무리 많이 걸려도 추가 요금을 받지 않았다. 이와 같이 더 저렴한 가격에 보다 신속하게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객만족도를 크게 향상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2004년에는 보다 공격적으로 고객 접근도가 좋은 핵심 지역에 성공적으로 매장을 확보해 나갔다. 하지만 베스트 바이도 최근 온라인 유통업체가 부상되면서 오프라인 매장에서 물건을 살펴보고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쇼루밍(Showrooming) 현상이 확산되는 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서킷 시티도 경쟁사의 움직임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Geek Squad에 대응하여 ‘Firedog’이라는 조직을 신설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하지만 먼저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시도하기 보다는 단순히 경쟁사를 모방하는 전략으로 경쟁에서 승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4. 과거의 향수가 미래의 도약을 저해
현재보다 한 단계 도약하여 새로운 성과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극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기가 있다. 그러나 기존 사업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에 집착하고 실패를 두려워해 변화를 위한 새로운 실행 노력을 게을리 하면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추진 방향이 옳다고 판단하면 때로 자신의 핵심 사업을 과감히 포기하는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하다. 오늘날 시장에서 성공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조직이나 사람은 자기 소유물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높게 평가하는 ‘보유 효과(Endowment Effect)’를 어느 정도 보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효과를 거두었던 것’이 ‘앞으로 효과를 거둘 부분을 모색하는 것’보다 더 강한 힘을 받는다. 하지만 그러한 역학관계를 뒤집어버리지 못하면, 과거에 얽매이게 되고 결국 변화하는 고객을 놓치게 된다.
● 코닥 : 과거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몰락의 단초로 작용
포브스(Forbes)지는 1987년 창간 70주년을 맞아 미국의 주요 기업들이 지난 70년 간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1917년 당시, 100대 기업 중 61개의 기업이 이미 사라졌으며, 39개의 생존 기업들 중 오직 18개 기업만이 100대 기업의 자리를 지킨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70년 동안 시가 총액 평균 성장률이 시장 평균 이상 성과를 거둔 기업은 GE와 코닥(Kodak) 두 기업뿐이었다. 하지만 코닥은 그 후 디지털 시대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현재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코닥은 1976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하였다. 하지만 코닥은 디지털 사진을 지난 수십 년 동안 코닥을 먹여살린 필름과 인화지 사업을 죽이는 사악한 힘으로 간주했다. 기존 사업의 이익이 디지털 세계의 이익보다 훨씬 더 큰 상황에서 서둘러 변화를 택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코닥의 해결책은 되도록 오랫동안 필름 사업을 유지하면서 그것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시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디지털과 필름 기술을 결합한 어드밴틱스 프리뷰 카메라를 출시하는 식이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디지털 카메라를 샀지만 코닥에 롤필름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등 아무런 혜택이 없었다. 코닥은 어드밴틱스를 개발하기 위해 5억 달러가 넘는 돈을 투자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에 주력하였다.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 분야에서 중요한 판매자 중 하나가 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여럿 중 하나’가 된다는 것은 필름 및 화학약품, 현상·인화 부문에서 70~80퍼센트의 높은 시장점유율을 가졌던 때와 엄연한 차이가 있었다. 과거 오랫동안 코닥에게 많은 수익을 안겨주었던 이미지 포착과 디스플레이 기술은 이제 공짜가 되어가고 있었다. 촬영된 이미지를 공유하는 서비스는 인터넷과 휴대폰 서비스의 일환으로 부가비용 없이 코닥 외에 다른 많은 회사가 제공하고 있었다. 게다가 휴대폰에 장착되는 사진기의 성능이 향상되고 보편화되면서 디지털 카메라 성장에 큰 타격을 받았다.
1991년 190억, 1992년 202억 달러에 달했던 코닥의 매출액은 그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과 정체 상태를 면하지 못했다(<그림 3> 참조). 하지만 코닥의 경영진은 이러한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당장 필름 매출이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분석 보고서에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에서 필름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과 수치들이 제시되었다.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제일 먼저 개발한 코닥이지만, 경영진은 과거 영광을 가져다 준 사업을 포기하지 못하고 신기술의 적극적인 활용보다는 기존의 주력 사업인 필름 사업에 집중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만약 코닥의 경영진들이 과감한 자기 파괴를 결정했다면 코닥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
● 모토로라 : 기존 강점을 선뜻 내려놓지 못하다
모토로라는 2차 대전 중 워키토키의 출시, 세계 최초의 삐삐 출시 등 전통적으로 혁신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디지털 휴대폰 대응에 실패함으로써 시장 지위가 급락하게 된다. 버라이즌(Verizon) 등 미국 내 통신 사업자들이 디지털화의 파트너로 모토로라를 지명하고 제품 개발을 요청하였으나 이를 거부한 것이다. 3,400만 아날로그 사용자에 대한 지나친 믿음, 그리고 개발 기술, 생산·품질 관리에 있어 우위를 가지고 있었던 아날로그 휴대폰을 선뜻 버리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모토로라의 휴대폰 시장점유율은 1994년 60%에서 2003년 14.5%로 급락하게 된다.
이러한 모토로라를 위기에서 구한 것은 바로 슬림 트렌드(Slim Trend)를 창출한 레이저(RAZR)였다. 세상에서 가장 얇은 휴대폰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레이저 시리즈는 2004년 출시 이후 4년 동안 1억 3천만대 이상 팔렸다. 그러나 모토로라는 기존 성공 요소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레이저 이후 출시한 모든 제품을 그와 비슷한 ‘Me, too’ 제품으로 만드는 우를 범했다. 즉, 레이저 이후 고객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시장을 이끌 수 있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지 못한 것이다. 결국 모토로라의 모바일 하드웨어사업부문은 2012년 구글에 인수되었다.
5. 대기업병의 침투 : 조직의 복잡성과 융통성 없는 프로세스가 대응 스피드를 저하
선도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결정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결코 미루지 않고 제때 의사결정을 내리고 실행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조직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성이 늘어남에 따라 다단계의 계층적 조직구조, 융통성이 없는 과도한 규정과 규칙 등에 의해 조직 상하좌우간 의사소통의 장벽이 생기고 조직이 경직화되어 의사결정의 유연성과 스피드가 떨어지게 된다. 아무리 잘나가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조직 활력과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스피드가 떨어지면 쇠락의 길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 노키아 : 초기의 활력과 스피드를 잃다
노키아는 1865년 핀란드 노키아에서 조그마한 제재소로 출발하여 목재 및 제지 사업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1960년대 중반 케이블, 타이어, 고무 산업 분야에 진출한다. 노키아의 사업 구조 혁신은 1975년 카이라모(Kari Kairamo)가 CEO가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는 전자산업을 노키아의 중점 사업 분야로 결정하고 매수·합병 등을 통해 신속한 리스트럭쳐링(Restructuring)을 저돌적으로 추진해 나갔다. 그리고 1992년 CEO로 취임한 욜릴라(Jorma Ollila)는 휴대전화 사업 분야에만 집중하기로 결심하고, 회사의 모태인 제지를 비롯해 다른 사업을 모두 정리하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하였다.
노키아가 휴대폰 시장에서 선도기업으로 굳건하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만든 일등공신이 바로 노키아 1100시리즈이다. 노키아 1100은 개발도상국 고객들에게 실질적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빅히트를 치게 된다. 즉, 여러 사람이 하나의 전화기를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전화번호 하나에 여러 사람의 이름을 저장할 수 있도록 하였고, 문맹 사용자를 위해 시각적 기호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전기가 부족한 지역 사정을 감안하여 라디오 기능을 추가하였다. 이와 같이 노키아의 엔지니어들은 개발도상국 고객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그들이 처한 고충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그 고충을 극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제품을 디자인하였다. 노키아 1100은 출시 5년 동안 약 2억 5천 만대의 판매를 달성하였다. 동일한 기간 동안 닌텐도 위가 약 4,500만대, 소니 플레이스테이션2는 약 1억 2천 5백만대, 그리고 애플 아이팟이 약 1억 7,400만대를 판매한 것과 비교해 봐도 노키아 1100의 성과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노키아도 스마트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2007년을 정점으로 쇠락하게 된다(<표 1> 참조). 사실 노키아도 스마트폰이 향후 시장에서 핵심이 되리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노키아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전임 CEO 욜릴라는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예측했었다. 업계보다 5년이나 빨랐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 노키아는 1996년 ‘노키아 커뮤니케이터(Nokia Communicator)’라는 스마트폰으로 스마트폰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노키아 스마트폰은 일반소비자와 이동통신사가 준비도 되기 전에 너무 일찍 출시되었고 시장에서 별다른 반응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리고 2006년 CEO에 취임한 올리페카 칼라스부오(Olli-Pekka Kallasvuo)는 스마트폰과 일반 휴대폰 사업부문을 통합했다. 그 결과 수익성이 더 높은 일반 휴대폰 사업이 스마트폰 사업까지 좌지우지하게 되었고, 결국 조직이 시장과 고객의 요구와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렇다고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 이의 위협을 제대로 인식하여 신속하게 대응한 것도 아니었다. 노키아 엔지니어들이 내놓은 분석보고서는 아이폰의 제조단가가 비싸며 노키아의 3G에 비해 원시적인 2G 네트워크에서만 작동한다는 측면을 강조했다.
사실 기존 노키아의 성공 원동력 중의 하나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실행력이었다. 42세란 젊은 나이에 CEO에 임명된 욜릴라는 통신사업 부문을 중심으로 미래 노키아를 이끌어갈 수 있는 젊고 능력 있는 내부 인재를 발탁하여 경영진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경영진과의 활발한 의견교환 및 토론을 통해 최종 의사결정을 내렸고, 구성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결정된 내용을 과감하고 신속하게 실행하였다. 그러나 조직이 커지고 복잡해 지면서 이러한 초기의 활력과 스피드는 사라져버리게 된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수석디자이너로 근무했던 한 구성원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디자인보다 사내 정치싸움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조직구조가 워낙 복잡했기에 일관적이고 미적인 경험을 완성해 내기가 어려웠다.”
퀄컴(Qualcomm) CEO인 폴 제이콥스(Paul Jacobs)는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2008년 노키아와 처음 협력하면서 놀랐던 점은 노키아가 다른 제조사에 비해 전략 수립에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이었다. 노키아에 큰 기회가 될 만한 새로운 기술을 보여주면 기회를 당장 포착하는 대신 6~9개월을 들여 기회를 평가했다. 그때쯤이면 이미 기회가 지나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노키아는 하드웨어 기기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플랫폼 회사로 과감하고 신속하게 변신을 시도하지 못함으로써 모바일 데이터 혁명의 선두에 서지 못했고, 결국 애플과 구글에게 시장의 문을 열어주고 말았다. 노키아는 전체 휴대폰 산업의 총 연구개발비의 30%에 이르는 약 50억 유로를 매년 연구개발비로 지출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아이폰에 대항할 만한 스마트폰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6. 혁신기업의 딜레마 : 차세대 혁신 기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함
산업 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혁신 기술의 등장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기존 비즈니스 모델의 경쟁력을 와해시키는 파괴적 혁신 기술이 등장할 것으로 예측되거나 등장하면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기존 시장에서 성공한 선도기업이 파괴적 혁신 기술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파괴적 혁신 기술이 처음 등장 시 일반적으로 기존 기술에 비해 성능도 뛰어나지 않고 수익성도 낮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들은 자신의 시장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혁신 기술을 제대로 인식하고 못하고 오히려 기존 고객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원하는 상품 개발을 위해 모든 자원과 노력을 투입하게 된다. 그러다가 파괴적 혁신 기술이 본궤도에 오르면, 위기에 직면하거나 시장에서 사라져버린다. 하버드대 교수인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은 이러한 현상을 ‘혁신기업의 딜레마’라고 칭하고 있다.
● AOL : 새로운 혁신 기술에 대응하지 못해 인터넷 시장의 주도권 상실
1985년 컴퓨터 통신 업체로 출발한 AOL은 1995년 최초로 PC 통신·접속프로그램과 인터넷 브라우저를 통합하여 초보자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당시 선두 업체인 CompuServe를 추월하게 된다. 특히 AOL은 브랜드가 인터넷 서비스를 좌우한다는 판단 아래 CompuServe, Netscape, ICQ 등을 인수하였다. AOL은 당시 적자를 내던 대부분의 인터넷 기업들과는 달리 고정적인 회원 수수료 수입에 힘입어 1990년대 말부터 막대한 이익을 남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 사이에 가격경쟁이 심화되면서 가입자 수 증가에 반해 이익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난관에 직면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9년에 들어서면서 인터넷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사업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늘기 시작했다. AOL이 택한 전략은 플랫폼 기반의 서비스 제공업체에서 컨텐츠 기반의 서비스 업체로의 변신이었다. 이를 위해 타임워너가 보유한 다양한 컨텐츠는 AOL의 부족한 1%를 채워줄 수 있는 솔깃한 대안이었다. 2001년 AOL과 타임워너는 오랜 연륜의 미디어 회사와 새로운 세대에 각광받고 있는 회사가 합병됨으로써 미디어업계를 재편하는 커다란 성과를 올렸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합병을 통해 온라인 유통망에 컨텐츠를 결합한다는 의도는 당시 시장의 여건을 무시한 발상이었다. AOL 회원 대다수가 전화접속(Dial-up)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데이터 용량이 큰 멀티미디어 컨텐츠를 제공하는 데는 애초부터 물리적 한계가 있었다.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기술 및 인프라가 전혀 구비되어 있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개방형 컨텐츠를 원하는 고객 니즈 대응에도 부합하지 않았다. AOL이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기존 전화접속 기술을 버리고 새로운 혁신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로 신속하게 갈아타야 했었다.
AOL은 2009년 말 타임워너와 결별하였다.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신성장 동력을 찾고 있으나 쉽지가 않다. 이미 인터넷 시장의 주도권은 구글, 페이스북 등으로 넘어갔다. AOL의 매출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표 2> 참조). 한가지 긍정적 사실은 2012년 4분기 매출이 8년 만에 처음으로 증가세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직도 전화접속 가입자 서비스 사업에서 대부분의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AOL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기는 매우 어렵다.
7.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수 있는 가치 창출 메커니즘 부재
창의적 아이디어, 탁월한 전략은 기업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핵심 요소이다. 하지만 뜻하는 바를 정확하게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성공 가능성이 낮아진다. 해당 산업에서 차별적 가치 창출이 가능한 경쟁 요인을 파악했다면, 다음으로 반드시 조직 내외부의 개별 요소들을 적절히 결합시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나가도록 작동시키는 가치 창출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모델로 새로운 시장 개척을 주도해나갔던 많은 기업들이 이를 실제로 고객이 인정하는 제품·서비스로 구현시켜 제공하지 못함으로써 시장에서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아이디어와 전략 그리고 실행은 별개의 문제이다.
● 웹밴 :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수 있는 방안 모색 실패
웹밴(Webvan)은 1999년 4월 시간을 쪼개가며 바쁘게 살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식료품 매장을 방문하는 시간마저 아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와 같은 온라인 소매업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맞벌이 부부가 점차 많아지면서 쇼핑에 시간을 소모하는 것이 적잖은 부담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 온라인으로 영업하면 오프라인 매장들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임대료가 비싼 지역에서 벗어나 최첨단 기술로 완전 자동화된 거대 창고만 있으면 부동산 임차료만큼 부를 축적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초기 분석가들은 웹밴을 몇 안 되는 경쟁력을 갖춘 온라인 판매업체라고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웹밴은 10억 달러에 이르는 벤처 투자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넘쳐날 정도로 많은 자금을 확보한 웹밴은 규모의 경제 효과를 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26개 도시에 서둘러 물품 저장 창고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웹밴이 합리적인 접근 방식을 취했다면 저장 창고를 몇 개만 세운 다음 창고의 문제점을 수정하고, 그렇게 해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다음에 창고를 더 늘릴 때 활용해야 했다. 예를 들어 웹밴은 모든 창고마다 공들여서 정육 처리 설비를 설치했지만, 매일 준비된 고기를 배달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창고마다 신선한 과일 및 채소 매장을 별도로 운영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두 매장을 합치는 게 더 나았다. 또한 초현대적 설비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물류 문제도 발생하였다. 예컨대, 제품의 신선도를 유지하려고 온도를 낮추다 보니 컨베이어 벨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일부 야채류는 용기에 딱 들어맞지 않았고, 소프트치즈는 찌그러졌다. 그리고 배송차량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교통체증으로 꼼짝달싹 못했다. 엄청난 주문량을 감당하지 못해 많을 경우 하루 1,700건의 주문이 지연되거나 잘못 처리되어 배달이 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웹밴은 2001년 7월 서비스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7억 달러의 영업 손실을 발생시키고 회사 문을 닫았다. 웹밴은 자신의 사업모델을 제대로 실행시킬 수 있는 가치 창출 메커니즘을 구축하여 운영할 역량이 없었고, 또한 이를 개선해볼 만큼의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함으로써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Ⅲ. 지속적 성장을 위한 고려 요소
불가항력적 외부 환경이 있다 하더라도 수십 년 이상 뛰어난 성과를 이어가는 위대한 기업을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위대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을 나누는 핵심 기준은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꾸준하게 만들어 내는 역량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고려 요소를 살펴보자.
시장을 보는 통찰력과 창의적 아이디어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현재 산업, 고객, 경쟁사 등의 변화 움직임과 그 영향력에 대한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학습이 필요하다. 조직의 리더 및 구성원 모두 변화를 주시하고 지속적으로 필요한 지식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업무와 관련된 광범위하고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새로운 시사점을 찾아 기존 업무와 연계하고 재구조화함으로써 새로운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사업 방식에 대한 모멘텀을 얻기 위해 고객, 공급자, 경쟁자들 행동의 작은 부분까지도 지속적으로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왜 그들이 그처럼 행동하는가?’라는 의문과 관찰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상에 대한 호기심, 끊임없는 의심을 가지고 자신과 타인에게 지속적으로 질문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것을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등의 질문은 창의적 산출물을 만들어 내는 기반이 된다.
구성원들이 제시하는 이질적이거나 독특한 아이디어를 폄하하지 않고, 그 밑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내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세상을 바꾼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처음부터 완벽한 경우는 거의 없다. 비록 초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이더라도 수많은 토론과 실험을 통해 아이디어를 개선해 나가면서 그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변화가 시작되었지만 기존 기업들이 간과하거나 경시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그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경쟁자들이 알아채지 못한 영향력 있는 트렌드를 발굴하여 전략적으로 잘 활용하는 기업만이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여 지속적으로 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실험과 실행, 실패 리스크 관리
지속적 성장을 위해 기업은 현재 사업 영역에서 시장선도 상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하면서,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판을 바꿀 수 있는 건수를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 역량, 자원의 일부를 별도로 떼어내어 미래의 새로운 사업 기회를 확보하기 위한 베팅(Betting)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업들은 대개 효과가 확실한 전략과 이미 시장에서 인정받는 제품에만 자원을 투입하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신규 사업에 대한 투자 기준은 매우 까다롭다. 하지만 새로운 영역에 실험적으로 소규모 투자를 하는 데 너무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작은 시도를 통해 경험적 검증을 거친 뒤, 이거다 싶으면 본격적으로 자원을 집중하여 시도함으로써 주요 혁신 활동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나가야 한다. 가능성 있는 것을 포기하고 확실한 것에만 과도하게 투자하는 경우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불경기가 닥쳐오면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시도와 실험에는 실패가 반드시 수반된다. 이러한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면 기업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항시 리스크 가능성을 열어두고 외부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최대한 리스크를 조기 발견해야 한다. 그렇다고 리스크 발생 시, 맹목적으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빠르게 진행되는 리스크에는 결단력을 가지고 신속하게, 느리게 진행되면 상황을 보아가며 적절히 대응하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전략적 유연성 및 복원력 확보
기업이 아무리 시장의 변화를 눈여겨보고 리더가 뛰어난 통찰력을 가졌다 해도 미래 환경을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복잡성의 증대로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변수를 고려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예기치 못했던 돌발 사태로 경영 환경이 급격히 변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측만을 통한 사전 대응으로 기업 성과를 지속적으로 높여나가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예측이 틀려 잘못된 방향으로 가더라도 이를 신속하게 되돌릴 수 있는 유연성과 복원력을 확보해야 한다. 즉, 돌발적인 환경 변화로 인해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회사의 미래 경영 성과를 기존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특정 시장이나 제품 범주와 분리시켜 생각함으로써 기업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구성원 각자가 자신이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무엇이고, 어떤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야 구성원들 스스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환경의 급속한 변화는 이제까지의 핵심 성공요인과 과거의 성공체험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성과를 견인해 온 사업, 막대한 비용과 노력이 들어간 사업이라도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포기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탁월한 리더의 육성 및 확보
기업의 지속적 성장에 있어 리더 역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하버드대 교수인 바서만(Noam Wasserman) 등은 올바른 CEO의 선택이 산업에 따라 기업 실적에 최대 40%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컨설팅 업체인 Hay Group 조사에 의하면 비즈니스 성과 차이의 약 30%는 리더에 의해 형성된 업무 분위기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적절한 시기에 결단을 내려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리더를 제대로 육성하거나 확보하지 못한다면 선도 기업이라 하더라도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 LG Business Insight 1250호
선도기업들이 위기에 빠지는 원인을 살펴보면 우선, 리더의 확증 편향을 들 수 있다. 경영자가 자신만의 ‘성공 방정식’을 맹목적으로 중시하고, 다른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려 기업을 위기에 빠트리는 것이다. 자신들이 추구해야 하는 본질적 목표를 망각하고 수익만을 탐하다 경쟁력의 원천인 ‘고객이 인정하는 차별적 가치 창출’을 무시하는 것도 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현재의 성공에 취해 변화의 필요성을 망각하고 현실에 안주함으로써 쇠퇴의 운명을 맞은 기업들도 있다. 과거의 향수가 미래의 도약을 저해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기존 사업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에 집착하고 과거에 얽매임으로써 결국 변화할 때를 놓치는 것이다. 다단계의 계층적 조직구조, 융통성이 없는 과도한 규정과 규칙 등에 조직이 경직화되어 의사결정의 유연성과 스피드가 떨어지는 것도 쇠퇴의 주요 원인이다. 기존 경쟁력을 와해시키는 파괴적 혁신 기술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위기에 직면하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모델은 있지만 이를 실제로 고객이 인정하는 제품·서비스로 구현시킬 수 있는 가치 창출 메커니즘 구축에 실패함으로써 시장에서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기업은 산업, 고객, 경쟁사 등의 변화 움직임과 그 영향력에 대한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둘째, 작은 시도를 통해 경험적 검증을 거친 뒤, 이거다 싶으면 본격적으로 자원을 집중함으로써 주요 혁신 활동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셋째, 설사 잘못된 방향으로 가더라도 이를 신속하게 되돌릴 수 있는 유연성과 복원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결단을 내려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리더들을 지속적으로 육성·확보해 나가야 한다.
Ⅰ. 승자독식의 시대, 그러나 영원한 일등은 없다
지식산업사회에서 기업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게임의 법칙은 ‘승자독식(Winner takes it all)’이다. 일단 해당 산업을 리드하는 선도기업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시간이 갈수록 타 기업과의 격차가 벌어지고 매출과 이익을 선도기업이 독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Canaccord Genuity가 애플, 삼성, LG, 노키아, 모토로라, HTC 등 8개의 세계 주요 휴대폰 제조업체의 영업이익을 분석한 결과, 2012년 기준으로 애플이 전체 영업이익의 약 69%를, 그리고 2013년 1/4분기 기준으로 약 57%를 가져간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NPD 그룹의 조사에 의하면 애플의 iTunes는 2012년 4/4분기 기준으로 미국 디지털 음원 다운로드 시장에서 약 63%의 점유율을 차지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컨설팅 회사인 베인(Bain & Company)이 2,000여 회사를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에 의하면 기업 간 성과 차이 중 약 17%만이 업종의 차이에 의해 설명되고, 그 외는 모두 해당 산업 내 기업의 포지션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다시 말해 저성장 산업에 속한 선도기업이 고성장 산업의 후발업체보다 높은 성과를 낸다는 것이다. 선도기업은 일반적으로 뛰어난 브랜드 인지도, 양질의 제품, 명성 등을 근거로 후발업체에 비해 평균 2.6%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었고, 6% 정도 낮은 비용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소하게 보이는 이러한 차이점이 합쳐져 선도기업은 하위 경쟁사보다 거의 3배나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후발기업은 전략 실행을 위한 자금 확보가 어렵고, 설사 좋은 제품을 출시했다 하더라도 고객들의 선택을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선도기업을 앞지르기가 만만치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선도기업이 지속적으로 시장을 지배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Fortune America 500으로 1990년도에 선정된 기업 중 2010년까지 500대 기업에 머문 기업은 약 24%로 나타났으며(<그림 1> 참조), 1990년 상위 100위권 기업 중 2010년에도 지위를 유지한 기업은 29%에 불과했다. 이는 국내도 유사하여 1990년 국내 100대 기업 중 2010년까지 순위 내에 살아남은 기업은 30%에 지나지 않았다. 시장을 선도하던 기업들 역시 경쟁우위를 잃고 쇠퇴하는 경우가 다반사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Good to Great'를 저술한 짐 콜린스(Jim Collins)가 “가장 강력한 파워가 언제나 정상을 차지한다는 자연의 법칙은 없다. 아무리 위대했다 할지라도 모든 조직들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불확실성이 커지는 현 경영 환경 속에서 이러한 현상은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위대한 기업들이 쇠퇴하는 원인들을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쇠퇴의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하고, 설사 들어섰다 하더라고 이를 초기에 감지하여 운명을 되돌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Ⅱ. 선도기업이 빠지는 함정
선도기업들이 위기에 빠지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고 종종 복합적인 원인들이 작용한다. 주요 원인과 사례들을 살펴보자.
1. 리더의 확증 편향 : “아무리 봐도 내 생각이 맞다”
선도기업의 경영자들은 대부분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성공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성공 방정식’을 만들게 된다. 그러다 보면 이러한 성공 방정식을 맹목적으로 중시하고, 다른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확증 편향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이 경우 리더들은 다수의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분명히 보이는 사실인데도 이를 인정하지 않거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증거만을 받아들이고 다른 생각을 입증하는 자료는 무시해 버리는 경향을 보인다. 때로는 사실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아’,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어’ 등 그것이 미칠 영향을 부정하기도 한다. 선도기업이라 하더라도 리더가 자신만의 성공 방정식에 매몰되면 바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시장, 고객, 직원 등 모든 환경이 바뀌고 그 바뀌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성공을 거둔 CEO에게 이견을 제시하고 반박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 포드 : T모델에 대한 집착
미국 비즈니스 월간지 포트폴리오닷컴은 2009년 미국 역사상 최고 경영자로 생산 표준화와 이동 조립법을 도입한 ‘포드 시스템’으로 경영 합리화와 대량생산방식을 이루어낸 헨리 포드(Henry Ford)를 선정하였다. 1908년 처음 등장한 포드의 T모델은 20년간 총 1,500만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링 자동차였다. 일반 시민이 탈 수 있는 싸고 튼튼한 차를 꾸준히 출시함으로써 당시 서민은 꿈꿀 수 없었던 자동차 대중화의 바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T모델의 보급은 제조업의 혁명을 가져옴과 동시에 포드사에게 자동차 업계의 왕좌 자리를 가져다 주었으며, 사회적 변혁을 일으키는데도 일조하였다.
이렇듯 헨리 포드가 자동차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미국 전역에 자동차를 보편화해서 사람들의 공간적 제약에서 해방시키겠다는 고객 가치 창출에 초점을 맞추어 사업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점차로 그의 관심은 ‘고객 행복 만들기’에서 ‘T모델 만들기’로 바뀌었다. 그런데 192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고객의 취향이 점차적으로 바뀌는 모습이 나타났다. 자동차가 신분의 상징이 되면서, 고객들은 핵심 기능뿐만 아니라 다양한 차종과 색상 등 부가기능을 중시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방식으로 동일한 모양과 색상의 차를 만들어내는 포드사의 시장점유율은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포드사의 경영진들 역시 이러한 현상에 고민하기 시작했고 회사가 뭔가 변화해야 한다고 느꼈다. 경영진 중에 한 명은 포드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우리 경영진들은 시장에서 포드사의 입지가 좁아지고 장악력이 약해지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충만했던 자신감도 잃어가고 있습니다. 경쟁사들이 팔고 있는 모든 신차들을 보면, 그들은 더 강해지고 우리는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경쟁사들은 마치 과거 우리가 최저 비용으로 제품을 생산·판매하면서 시장을 장악했던 것처럼 빠르게 우리의 시장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우리 손에 있던 것들이 하나 둘 없어지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이에 대한 대비책을 하루아침에 만들 수는 없지만, 회사의 중요한 자리에 계신 분이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포드는 움쩍도 하지 않았고, 그는 해고당했다.
“우리는 고객이 원하는 색상의 자동차를 제공할 것이다. 그것이 검은색이라면 말이다.”, “포드 자동차는 계속 같은 방식으로 생산될 것이다. 나는 누가 제시한 숫자에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나의 정보와 관찰에 따를 뿐이다.”
포드는 결국 자동차 업계의 왕좌를 GM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 자리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 파나소닉 : 카리스마 리더십의 폐해
일본 가전산업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인 파나소닉(Panasonic)은 2011, 2012년 연속 7,000억엔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파나소닉의 위기는 주력 사업인 TV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평이다. 2006년 나카무라 구니오 당시 파나소닉 회장은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사업에 회사의 운명을 걸겠다”고 선언하였다. 샤프가 LCD 기술에서 이미 앞서 있어 파나소닉이 기술적으로 성공하려면 PDP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대형 PDP를 출시하면서 축적된 기술에 대한 높은 자부심과 자신감도 그러한 결정에 한 역할을 했다. 당시 파나소닉의 PDP TV 시장점유율은 세계 1위로 30%를 웃돌았다.
파나소닉은 2007년 초 역대 최대 규모인 2,100억엔을 투자하여 아마가사키 제 3공장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2005년경부터 이미 PDP 기술의 패배가 보이기 시작했고, 파나소닉 경영자들 역시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PDP TV의 실패가 명백한데도 아무도 공장 증설을 멈출 수 없었다. 나카무라 회장의 카리스마적 리더십 때문이었다. 2000년대 초반 파나소닉의 턴어라운드를 성공시킨 나카무라는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제왕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강력한 추진력 확보에는 성공했으나 조직 내에서 다양한 목소리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예를 들어, 시장을 전망할 때도 PDP TV의 향후 전망이 어둡다고 말할 수 없었다. 또한 실적이 나빠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CEO보고에는 항상 ‘앞으로 잘할 수 있다, 잘 하겠다’는 내용의 보고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렇지만 TV 시장의 주력 모델이 LCD로 넘어가는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2010년에 완공된 아마가사키 공장은 1년여 간 가동하다 2011년 10월 결국 문을 닫았다. CEO가 자기 독단에 빠져 경영을 좌지우지함으로써, 회사를 위기에 빠트린 것이다.
2. 수익을 탐하다 경영의 본질을 잃다
하버드대 몽고메리(Cynthia A. Montgomery) 교수는 기업의 성과 차이는 기업이 표방하는 목적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 고객의 어떤 충족되지 않은 니즈를 채우려 하는 지가 명확히 설정된 훌륭한 목적은 해당 산업에서 기업이 타 기업과 차별화된 중요한 차이를 만드는 발판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이 생존을 위해 수익을 창출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수익 창출 자체가 기업의 존재 목적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경우 경쟁력의 원천인 ‘고객이 인정하는 차별적 가치 창출’을 잊어버리거나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선도기업들도 자신들이 추구해야 하는 본질적 목표를 망각하고 수익을 탐하다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 GM : 숫자와 데이터로 기업을 망치다
GM은 1928년 포드를 누른 이래 미국 자동차 산업을 리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장점유율이 조금씩 하락하는 위기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1981년 GM의 회장으로 취임한 로저 스미스(Roger Smith)는 소비자 지향의 전략을 접고 수익성을 강조하는 경영방침을 밀고 나갔다. GM의 부회장이었던 밥 루츠(Bob Lutz)은 그의 저서 <빈 카운터스: 숫자와 데이터로 기업을 망치는 사람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GM의 주된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고, 비용을 투입해서 차를 만들면 그걸 팔아서 돈을 벌면 된다고 생각했다. 차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생각이 경영진 사이에 퍼져 있었다. GM은 비용절감과 이윤 극대화에만 신경 썼을 뿐, 고객들이 어떤 상품을 원하는지는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고객에게 맞는 상품을 만들어 내는 일은 경영진이 아닌 하위직 직원들이 담당했고, 이들은 대개 디자인이 어떻다든가 운전자가 운전할 때 어떤 느낌을 받는가 등을 잘 알지 못했다. 나는 최고경영진이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겠다는 열정이 없다면 ‘비용절감’은 가능할지 몰라도 ‘매출 극대화’는 달성하기 어렵다고 믿는다.”
GM의 핵심 전략 중 하나가 바로 ‘고객들이 자동차와 관련된 꿈의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을 실현시켜 준다’는 것이었다. 즉, 운전을 처음 시작한 젊은 고객들에게는 저렴한 차를, 그리고 점차적으로 수입이 늘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그에 걸맞은 차를 구입할 수 있도록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여 제공하는 것이었다. 1920년대에는 각 브랜드별로 가격대가 겹치지 않고 시장 세분화가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사업부별 수익을 강조하다 보니 점차적으로 브랜드별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서로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말았다(<그림 2> 참조). 예를 들어, 1980~90년대에 캐딜락의 매출액을 크게 늘리면서 동시에 최고의 고급 브랜드로 만들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캐딜락 사업부는 매출을 늘리기 위해 출혈 판매를 하기 시작했고, 공급이 늘어나다 보니 당연히 가격이 급락했다. 따라서 일반 노동자들도 캐딜락을 사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명성은 사라졌고 더 부유한 계층에서는 벤츠, BMW, 아우디, 재규어처럼 더 비싸고 질 좋은 그리고 너무 흔하지 않아서 상류층의 상징이 될 수 있는 다른 브랜드를 찾기 시작했다. 수익성의 강조는 단기간에 있어서는 이익을 증가시키는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사업부간 경쟁을 부추기고 장기적 관점에서 GM의 위기를 자초하는 환경을 구축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과의 착시 현상도 발생했다. 본업인 자동차 부문은 2000년대 초반 적자로 돌아섰지만, GM의 자동차금융회사인 GMAC의 고성과로 인해 사업 실적이 정상적인 것처럼 보인 것이다. 특히 GMAC의 자회사인 레지덴셜캐피털(ResCap)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모기지 금융업이 GM의 주요 수입원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레지덴셜캐피털은 엄청난 손해를 발생시켰고, 끝이 보이지 않는 손실의 블랙홀에 GM 전체가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결국 GM은 일어설 수 없을 만큼 큰 타격을 받았고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 패니메이 : 수익을 쫓다 리스크를 간과
짐 콜린스는 'Good to Great'에서 패니메이(Fannie Mae)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며 위대한 기업으로 꼽았다.
“담보대출에 관한 한 어떤 면에서든 자본시장의 선두 주자를 지향한다. 특히, 담보 리스크를 보다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정교한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저소득층에도 집 담보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주택 소유의 꿈을 대중화하였다.”
패니메이는 정부의 보호, 그리고 체계적인 조직 운영 시스템과 위기관리 역량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거두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조직 내부와 월스트리트 투자자들은 회사에 더 높은 성장을 요구하고 있었다. 정부 또한 저소득층 주택 자금 대출을 늘리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활기를 띠자 패니메이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여기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2005년에서 2007년 사이 담보 금액 비율이 10% 미만으로 패니메이가 확보한 저당권 숫자는 세 배나 늘어났다. 그리고 2007년 중반 많은 고위험 대출자들이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패니메이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 임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두들 이전 같으면 거부했을 조건에 대해서도 대출을 허용하고 있고, 또한 너무 적은 담보를 요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원칙은 언제나 상황에 적합한 기준을 유지하고 저소득층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원칙대로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패니메이가 서브프라임 시장에 뛰어든 것은 자신만의 의지가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한 분석가가 “패니메이가 서브프라임 시장에 진출하려고 하는 이유는 기록적인 주가 상승을 이어가 주주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다”고 지적한 것처럼 자신들의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주택 거품이 꺼지자 패니메이는 2007년 25억 달러, 그리고 2008년 594억 달러의 엄청난 적자를 기록했고, 결국 구제금융을 받고 국유화되었다. 하지만 패니메이의 경영진들은 회사가 위험해질 수 있음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 여러 자료에서 드러났다. 만약 패미메이가 자신들의 존재 이유가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거나 금융 기관들의 영업 형태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주택시장에 필요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임을 명심했다면 주택시장 붕괴시 자신들의 역할을 보다 제대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안정유지 편향 : 풍요가 혁신의 열망을 저하
기업의 성과가 높아지고 활용 자원이 풍부해지면 경영진이 태만해질 수 있다. 현재의 성공에 취해 변화의 필요성을 망각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경우가 나타나는 것이다. 풍요가 오히려 혁신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것이다. 이럴 경우 약점을 찾아 과감하게 도전하는 신규 시장 진입자들이 생기는 빌미를 제공하고, 점차적으로 그들에게 업계의 권좌를 물려주는 경우도 발생한다. 건강하게 살아남기 위해 기업은 처해 있는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지속적이고 다양한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그 기업은 언젠가 쇠퇴의 운명을 맞게 될 수밖에 없다.
● 서킷 시티 : 본업의 변화 필요성을 망각하고 기존 패턴에 안주
고가의 전자제품 판매에 있어 ‘5S 모델’(Service, Selection, Savings, Speed, Satisfaction) 구현에 최고가 되겠다는 경영철학을 가지고 사업을 전개한 서킷 시티(Circuit City)에 대한 짐 콜린스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정교한 판매 촉진 및 재고관리 기술의 선구적 활용과 고가 물건 소매업의 ‘맥도널드’가 된다는 개념을 접목시켜 지리적으로 넓게 분산되어 있는 시스템을 매우 일관되고 탁월하게 실행할 수 있다”
서킷 시티가 2009년 도산으로 무너진 원인으로는 경제 상황의 악화, 그에 따른 고객 지출 감소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핵심 이유는 과거 답습형의 관리 체제라고 이야기되고 있다. 서킷 시티는 1980~90년대 매우 성공적으로 사업을 영위하였다. 그러나 그 후 그들은 적극적으로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 많은 분석가들의 지적이다. 즉, 서킷 시티는 경쟁이 치열하고 급속히 진화하는 전자제품 소매 산업에서 현실에 안주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서킷 시티는 2000년도에 주요 매장에서 백색가전 제품을 철수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점차 경쟁이 치열해지고 마진이 떨어지는 백색가전 시장이 매력적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관련 제품의 보관 및 배송 비용을 줄여 다른 곳에 활용하자는 의도가 담긴 전략이었다. 당시 백색가전은 서킷 시티 매출의 14%와 전체 매장 면적의 20%를 차지하고 있었다.
매출 감소분을 만회하기 위해 서킷 시티는 중고차 판매 전문업체인 카맥스(CarMax)와 전용 재생기와 암호 체계를 이용해서 고객이 원하는 기간만큼 DVD를 임대해주는 디빅(DivX)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였다. 물론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실험 및 사업 모색은 필요하다. 문제는 서킷 시티가 기존 핵심 사업인 전자매장 부문에 있어서는 지속적으로 변화와 상상력을 펼쳐가면서 창의적인 개선과 발전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사업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조치들이 난무했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서킷 시티는 2007년 3천 명 이상의 고임금 근로자들과 숙련된 근로자들을 해고하였다. 그러자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서비스에 대한 고객 불만 건수가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또한 효과적인 재고관리도 이루어지지 못해, 팔리지 않는 재고 때문에 신규 모델을 구매하거나 부채를 상환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 경쟁사인 베스트 바이(Best Buy)는 전자매장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1989년에 고객들에게 더 나은 쇼핑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많이 팔거나 이윤을 남긴 직원에게 제공하는 판매수당 제도를 없앴다. 즉, 마진 등을 이유로 직원들이 원하는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필요한 최상의 상품을 추천해 주는 카운셀러의 역할을 강화토록 함으로써 고객과의 신뢰 구축을 도모한 것이다. 반면 서킷 시티는 이러한 커미션 판매 방식을 2003년도에 가서야 폐지하였다.
베스트 바이는 또한 1999년도에 새로운 가전제품들이 넘쳐나는 복잡한 상황에서 고객이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매장 설계를 변화하였다. 2002년도에는 새로운 기술 및 기능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고객들을 위해 ‘Geek Squads’를 만들었다. 이 조직은 매장에서 고객들의 질문에 응대하고, 필요하면 고객의 집까지 직접 방문해 다양한 문제점들을 해소해 주는 서비스 돌격대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고객 방문 시에는 거리가 멀거나, 서비스 시간이 아무리 많이 걸려도 추가 요금을 받지 않았다. 이와 같이 더 저렴한 가격에 보다 신속하게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객만족도를 크게 향상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2004년에는 보다 공격적으로 고객 접근도가 좋은 핵심 지역에 성공적으로 매장을 확보해 나갔다. 하지만 베스트 바이도 최근 온라인 유통업체가 부상되면서 오프라인 매장에서 물건을 살펴보고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쇼루밍(Showrooming) 현상이 확산되는 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서킷 시티도 경쟁사의 움직임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Geek Squad에 대응하여 ‘Firedog’이라는 조직을 신설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하지만 먼저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시도하기 보다는 단순히 경쟁사를 모방하는 전략으로 경쟁에서 승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4. 과거의 향수가 미래의 도약을 저해
현재보다 한 단계 도약하여 새로운 성과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극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기가 있다. 그러나 기존 사업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에 집착하고 실패를 두려워해 변화를 위한 새로운 실행 노력을 게을리 하면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추진 방향이 옳다고 판단하면 때로 자신의 핵심 사업을 과감히 포기하는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하다. 오늘날 시장에서 성공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조직이나 사람은 자기 소유물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높게 평가하는 ‘보유 효과(Endowment Effect)’를 어느 정도 보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효과를 거두었던 것’이 ‘앞으로 효과를 거둘 부분을 모색하는 것’보다 더 강한 힘을 받는다. 하지만 그러한 역학관계를 뒤집어버리지 못하면, 과거에 얽매이게 되고 결국 변화하는 고객을 놓치게 된다.
● 코닥 : 과거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몰락의 단초로 작용
포브스(Forbes)지는 1987년 창간 70주년을 맞아 미국의 주요 기업들이 지난 70년 간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1917년 당시, 100대 기업 중 61개의 기업이 이미 사라졌으며, 39개의 생존 기업들 중 오직 18개 기업만이 100대 기업의 자리를 지킨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70년 동안 시가 총액 평균 성장률이 시장 평균 이상 성과를 거둔 기업은 GE와 코닥(Kodak) 두 기업뿐이었다. 하지만 코닥은 그 후 디지털 시대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현재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코닥은 1976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하였다. 하지만 코닥은 디지털 사진을 지난 수십 년 동안 코닥을 먹여살린 필름과 인화지 사업을 죽이는 사악한 힘으로 간주했다. 기존 사업의 이익이 디지털 세계의 이익보다 훨씬 더 큰 상황에서 서둘러 변화를 택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코닥의 해결책은 되도록 오랫동안 필름 사업을 유지하면서 그것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시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디지털과 필름 기술을 결합한 어드밴틱스 프리뷰 카메라를 출시하는 식이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디지털 카메라를 샀지만 코닥에 롤필름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등 아무런 혜택이 없었다. 코닥은 어드밴틱스를 개발하기 위해 5억 달러가 넘는 돈을 투자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에 주력하였다.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 분야에서 중요한 판매자 중 하나가 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여럿 중 하나’가 된다는 것은 필름 및 화학약품, 현상·인화 부문에서 70~80퍼센트의 높은 시장점유율을 가졌던 때와 엄연한 차이가 있었다. 과거 오랫동안 코닥에게 많은 수익을 안겨주었던 이미지 포착과 디스플레이 기술은 이제 공짜가 되어가고 있었다. 촬영된 이미지를 공유하는 서비스는 인터넷과 휴대폰 서비스의 일환으로 부가비용 없이 코닥 외에 다른 많은 회사가 제공하고 있었다. 게다가 휴대폰에 장착되는 사진기의 성능이 향상되고 보편화되면서 디지털 카메라 성장에 큰 타격을 받았다.
1991년 190억, 1992년 202억 달러에 달했던 코닥의 매출액은 그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과 정체 상태를 면하지 못했다(<그림 3> 참조). 하지만 코닥의 경영진은 이러한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당장 필름 매출이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분석 보고서에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에서 필름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과 수치들이 제시되었다.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제일 먼저 개발한 코닥이지만, 경영진은 과거 영광을 가져다 준 사업을 포기하지 못하고 신기술의 적극적인 활용보다는 기존의 주력 사업인 필름 사업에 집중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만약 코닥의 경영진들이 과감한 자기 파괴를 결정했다면 코닥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
● 모토로라 : 기존 강점을 선뜻 내려놓지 못하다
모토로라는 2차 대전 중 워키토키의 출시, 세계 최초의 삐삐 출시 등 전통적으로 혁신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디지털 휴대폰 대응에 실패함으로써 시장 지위가 급락하게 된다. 버라이즌(Verizon) 등 미국 내 통신 사업자들이 디지털화의 파트너로 모토로라를 지명하고 제품 개발을 요청하였으나 이를 거부한 것이다. 3,400만 아날로그 사용자에 대한 지나친 믿음, 그리고 개발 기술, 생산·품질 관리에 있어 우위를 가지고 있었던 아날로그 휴대폰을 선뜻 버리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모토로라의 휴대폰 시장점유율은 1994년 60%에서 2003년 14.5%로 급락하게 된다.
이러한 모토로라를 위기에서 구한 것은 바로 슬림 트렌드(Slim Trend)를 창출한 레이저(RAZR)였다. 세상에서 가장 얇은 휴대폰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레이저 시리즈는 2004년 출시 이후 4년 동안 1억 3천만대 이상 팔렸다. 그러나 모토로라는 기존 성공 요소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레이저 이후 출시한 모든 제품을 그와 비슷한 ‘Me, too’ 제품으로 만드는 우를 범했다. 즉, 레이저 이후 고객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시장을 이끌 수 있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지 못한 것이다. 결국 모토로라의 모바일 하드웨어사업부문은 2012년 구글에 인수되었다.
5. 대기업병의 침투 : 조직의 복잡성과 융통성 없는 프로세스가 대응 스피드를 저하
선도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결정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결코 미루지 않고 제때 의사결정을 내리고 실행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조직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성이 늘어남에 따라 다단계의 계층적 조직구조, 융통성이 없는 과도한 규정과 규칙 등에 의해 조직 상하좌우간 의사소통의 장벽이 생기고 조직이 경직화되어 의사결정의 유연성과 스피드가 떨어지게 된다. 아무리 잘나가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조직 활력과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스피드가 떨어지면 쇠락의 길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 노키아 : 초기의 활력과 스피드를 잃다
노키아는 1865년 핀란드 노키아에서 조그마한 제재소로 출발하여 목재 및 제지 사업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1960년대 중반 케이블, 타이어, 고무 산업 분야에 진출한다. 노키아의 사업 구조 혁신은 1975년 카이라모(Kari Kairamo)가 CEO가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는 전자산업을 노키아의 중점 사업 분야로 결정하고 매수·합병 등을 통해 신속한 리스트럭쳐링(Restructuring)을 저돌적으로 추진해 나갔다. 그리고 1992년 CEO로 취임한 욜릴라(Jorma Ollila)는 휴대전화 사업 분야에만 집중하기로 결심하고, 회사의 모태인 제지를 비롯해 다른 사업을 모두 정리하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하였다.
노키아가 휴대폰 시장에서 선도기업으로 굳건하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만든 일등공신이 바로 노키아 1100시리즈이다. 노키아 1100은 개발도상국 고객들에게 실질적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빅히트를 치게 된다. 즉, 여러 사람이 하나의 전화기를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전화번호 하나에 여러 사람의 이름을 저장할 수 있도록 하였고, 문맹 사용자를 위해 시각적 기호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전기가 부족한 지역 사정을 감안하여 라디오 기능을 추가하였다. 이와 같이 노키아의 엔지니어들은 개발도상국 고객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그들이 처한 고충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그 고충을 극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제품을 디자인하였다. 노키아 1100은 출시 5년 동안 약 2억 5천 만대의 판매를 달성하였다. 동일한 기간 동안 닌텐도 위가 약 4,500만대, 소니 플레이스테이션2는 약 1억 2천 5백만대, 그리고 애플 아이팟이 약 1억 7,400만대를 판매한 것과 비교해 봐도 노키아 1100의 성과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노키아도 스마트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2007년을 정점으로 쇠락하게 된다(<표 1> 참조). 사실 노키아도 스마트폰이 향후 시장에서 핵심이 되리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노키아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전임 CEO 욜릴라는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예측했었다. 업계보다 5년이나 빨랐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 노키아는 1996년 ‘노키아 커뮤니케이터(Nokia Communicator)’라는 스마트폰으로 스마트폰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노키아 스마트폰은 일반소비자와 이동통신사가 준비도 되기 전에 너무 일찍 출시되었고 시장에서 별다른 반응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리고 2006년 CEO에 취임한 올리페카 칼라스부오(Olli-Pekka Kallasvuo)는 스마트폰과 일반 휴대폰 사업부문을 통합했다. 그 결과 수익성이 더 높은 일반 휴대폰 사업이 스마트폰 사업까지 좌지우지하게 되었고, 결국 조직이 시장과 고객의 요구와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렇다고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 이의 위협을 제대로 인식하여 신속하게 대응한 것도 아니었다. 노키아 엔지니어들이 내놓은 분석보고서는 아이폰의 제조단가가 비싸며 노키아의 3G에 비해 원시적인 2G 네트워크에서만 작동한다는 측면을 강조했다.
사실 기존 노키아의 성공 원동력 중의 하나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실행력이었다. 42세란 젊은 나이에 CEO에 임명된 욜릴라는 통신사업 부문을 중심으로 미래 노키아를 이끌어갈 수 있는 젊고 능력 있는 내부 인재를 발탁하여 경영진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경영진과의 활발한 의견교환 및 토론을 통해 최종 의사결정을 내렸고, 구성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결정된 내용을 과감하고 신속하게 실행하였다. 그러나 조직이 커지고 복잡해 지면서 이러한 초기의 활력과 스피드는 사라져버리게 된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수석디자이너로 근무했던 한 구성원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디자인보다 사내 정치싸움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조직구조가 워낙 복잡했기에 일관적이고 미적인 경험을 완성해 내기가 어려웠다.”
퀄컴(Qualcomm) CEO인 폴 제이콥스(Paul Jacobs)는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2008년 노키아와 처음 협력하면서 놀랐던 점은 노키아가 다른 제조사에 비해 전략 수립에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이었다. 노키아에 큰 기회가 될 만한 새로운 기술을 보여주면 기회를 당장 포착하는 대신 6~9개월을 들여 기회를 평가했다. 그때쯤이면 이미 기회가 지나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노키아는 하드웨어 기기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플랫폼 회사로 과감하고 신속하게 변신을 시도하지 못함으로써 모바일 데이터 혁명의 선두에 서지 못했고, 결국 애플과 구글에게 시장의 문을 열어주고 말았다. 노키아는 전체 휴대폰 산업의 총 연구개발비의 30%에 이르는 약 50억 유로를 매년 연구개발비로 지출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아이폰에 대항할 만한 스마트폰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6. 혁신기업의 딜레마 : 차세대 혁신 기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함
산업 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혁신 기술의 등장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기존 비즈니스 모델의 경쟁력을 와해시키는 파괴적 혁신 기술이 등장할 것으로 예측되거나 등장하면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기존 시장에서 성공한 선도기업이 파괴적 혁신 기술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파괴적 혁신 기술이 처음 등장 시 일반적으로 기존 기술에 비해 성능도 뛰어나지 않고 수익성도 낮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들은 자신의 시장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혁신 기술을 제대로 인식하고 못하고 오히려 기존 고객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원하는 상품 개발을 위해 모든 자원과 노력을 투입하게 된다. 그러다가 파괴적 혁신 기술이 본궤도에 오르면, 위기에 직면하거나 시장에서 사라져버린다. 하버드대 교수인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은 이러한 현상을 ‘혁신기업의 딜레마’라고 칭하고 있다.
● AOL : 새로운 혁신 기술에 대응하지 못해 인터넷 시장의 주도권 상실
1985년 컴퓨터 통신 업체로 출발한 AOL은 1995년 최초로 PC 통신·접속프로그램과 인터넷 브라우저를 통합하여 초보자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당시 선두 업체인 CompuServe를 추월하게 된다. 특히 AOL은 브랜드가 인터넷 서비스를 좌우한다는 판단 아래 CompuServe, Netscape, ICQ 등을 인수하였다. AOL은 당시 적자를 내던 대부분의 인터넷 기업들과는 달리 고정적인 회원 수수료 수입에 힘입어 1990년대 말부터 막대한 이익을 남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 사이에 가격경쟁이 심화되면서 가입자 수 증가에 반해 이익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난관에 직면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9년에 들어서면서 인터넷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사업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늘기 시작했다. AOL이 택한 전략은 플랫폼 기반의 서비스 제공업체에서 컨텐츠 기반의 서비스 업체로의 변신이었다. 이를 위해 타임워너가 보유한 다양한 컨텐츠는 AOL의 부족한 1%를 채워줄 수 있는 솔깃한 대안이었다. 2001년 AOL과 타임워너는 오랜 연륜의 미디어 회사와 새로운 세대에 각광받고 있는 회사가 합병됨으로써 미디어업계를 재편하는 커다란 성과를 올렸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합병을 통해 온라인 유통망에 컨텐츠를 결합한다는 의도는 당시 시장의 여건을 무시한 발상이었다. AOL 회원 대다수가 전화접속(Dial-up)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데이터 용량이 큰 멀티미디어 컨텐츠를 제공하는 데는 애초부터 물리적 한계가 있었다.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기술 및 인프라가 전혀 구비되어 있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개방형 컨텐츠를 원하는 고객 니즈 대응에도 부합하지 않았다. AOL이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기존 전화접속 기술을 버리고 새로운 혁신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로 신속하게 갈아타야 했었다.
AOL은 2009년 말 타임워너와 결별하였다.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신성장 동력을 찾고 있으나 쉽지가 않다. 이미 인터넷 시장의 주도권은 구글, 페이스북 등으로 넘어갔다. AOL의 매출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표 2> 참조). 한가지 긍정적 사실은 2012년 4분기 매출이 8년 만에 처음으로 증가세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직도 전화접속 가입자 서비스 사업에서 대부분의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AOL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기는 매우 어렵다.
7.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수 있는 가치 창출 메커니즘 부재
창의적 아이디어, 탁월한 전략은 기업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핵심 요소이다. 하지만 뜻하는 바를 정확하게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성공 가능성이 낮아진다. 해당 산업에서 차별적 가치 창출이 가능한 경쟁 요인을 파악했다면, 다음으로 반드시 조직 내외부의 개별 요소들을 적절히 결합시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나가도록 작동시키는 가치 창출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모델로 새로운 시장 개척을 주도해나갔던 많은 기업들이 이를 실제로 고객이 인정하는 제품·서비스로 구현시켜 제공하지 못함으로써 시장에서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아이디어와 전략 그리고 실행은 별개의 문제이다.
● 웹밴 :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수 있는 방안 모색 실패
웹밴(Webvan)은 1999년 4월 시간을 쪼개가며 바쁘게 살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식료품 매장을 방문하는 시간마저 아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와 같은 온라인 소매업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맞벌이 부부가 점차 많아지면서 쇼핑에 시간을 소모하는 것이 적잖은 부담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 온라인으로 영업하면 오프라인 매장들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임대료가 비싼 지역에서 벗어나 최첨단 기술로 완전 자동화된 거대 창고만 있으면 부동산 임차료만큼 부를 축적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초기 분석가들은 웹밴을 몇 안 되는 경쟁력을 갖춘 온라인 판매업체라고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웹밴은 10억 달러에 이르는 벤처 투자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넘쳐날 정도로 많은 자금을 확보한 웹밴은 규모의 경제 효과를 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26개 도시에 서둘러 물품 저장 창고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웹밴이 합리적인 접근 방식을 취했다면 저장 창고를 몇 개만 세운 다음 창고의 문제점을 수정하고, 그렇게 해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다음에 창고를 더 늘릴 때 활용해야 했다. 예를 들어 웹밴은 모든 창고마다 공들여서 정육 처리 설비를 설치했지만, 매일 준비된 고기를 배달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창고마다 신선한 과일 및 채소 매장을 별도로 운영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두 매장을 합치는 게 더 나았다. 또한 초현대적 설비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물류 문제도 발생하였다. 예컨대, 제품의 신선도를 유지하려고 온도를 낮추다 보니 컨베이어 벨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일부 야채류는 용기에 딱 들어맞지 않았고, 소프트치즈는 찌그러졌다. 그리고 배송차량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교통체증으로 꼼짝달싹 못했다. 엄청난 주문량을 감당하지 못해 많을 경우 하루 1,700건의 주문이 지연되거나 잘못 처리되어 배달이 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웹밴은 2001년 7월 서비스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7억 달러의 영업 손실을 발생시키고 회사 문을 닫았다. 웹밴은 자신의 사업모델을 제대로 실행시킬 수 있는 가치 창출 메커니즘을 구축하여 운영할 역량이 없었고, 또한 이를 개선해볼 만큼의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함으로써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Ⅲ. 지속적 성장을 위한 고려 요소
불가항력적 외부 환경이 있다 하더라도 수십 년 이상 뛰어난 성과를 이어가는 위대한 기업을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위대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을 나누는 핵심 기준은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꾸준하게 만들어 내는 역량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고려 요소를 살펴보자.
시장을 보는 통찰력과 창의적 아이디어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현재 산업, 고객, 경쟁사 등의 변화 움직임과 그 영향력에 대한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학습이 필요하다. 조직의 리더 및 구성원 모두 변화를 주시하고 지속적으로 필요한 지식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업무와 관련된 광범위하고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새로운 시사점을 찾아 기존 업무와 연계하고 재구조화함으로써 새로운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사업 방식에 대한 모멘텀을 얻기 위해 고객, 공급자, 경쟁자들 행동의 작은 부분까지도 지속적으로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왜 그들이 그처럼 행동하는가?’라는 의문과 관찰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상에 대한 호기심, 끊임없는 의심을 가지고 자신과 타인에게 지속적으로 질문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것을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등의 질문은 창의적 산출물을 만들어 내는 기반이 된다.
구성원들이 제시하는 이질적이거나 독특한 아이디어를 폄하하지 않고, 그 밑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내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세상을 바꾼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처음부터 완벽한 경우는 거의 없다. 비록 초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이더라도 수많은 토론과 실험을 통해 아이디어를 개선해 나가면서 그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변화가 시작되었지만 기존 기업들이 간과하거나 경시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그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경쟁자들이 알아채지 못한 영향력 있는 트렌드를 발굴하여 전략적으로 잘 활용하는 기업만이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여 지속적으로 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실험과 실행, 실패 리스크 관리
지속적 성장을 위해 기업은 현재 사업 영역에서 시장선도 상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하면서,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판을 바꿀 수 있는 건수를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 역량, 자원의 일부를 별도로 떼어내어 미래의 새로운 사업 기회를 확보하기 위한 베팅(Betting)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업들은 대개 효과가 확실한 전략과 이미 시장에서 인정받는 제품에만 자원을 투입하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신규 사업에 대한 투자 기준은 매우 까다롭다. 하지만 새로운 영역에 실험적으로 소규모 투자를 하는 데 너무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작은 시도를 통해 경험적 검증을 거친 뒤, 이거다 싶으면 본격적으로 자원을 집중하여 시도함으로써 주요 혁신 활동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나가야 한다. 가능성 있는 것을 포기하고 확실한 것에만 과도하게 투자하는 경우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불경기가 닥쳐오면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시도와 실험에는 실패가 반드시 수반된다. 이러한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면 기업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항시 리스크 가능성을 열어두고 외부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최대한 리스크를 조기 발견해야 한다. 그렇다고 리스크 발생 시, 맹목적으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빠르게 진행되는 리스크에는 결단력을 가지고 신속하게, 느리게 진행되면 상황을 보아가며 적절히 대응하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전략적 유연성 및 복원력 확보
기업이 아무리 시장의 변화를 눈여겨보고 리더가 뛰어난 통찰력을 가졌다 해도 미래 환경을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복잡성의 증대로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변수를 고려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예기치 못했던 돌발 사태로 경영 환경이 급격히 변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측만을 통한 사전 대응으로 기업 성과를 지속적으로 높여나가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예측이 틀려 잘못된 방향으로 가더라도 이를 신속하게 되돌릴 수 있는 유연성과 복원력을 확보해야 한다. 즉, 돌발적인 환경 변화로 인해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회사의 미래 경영 성과를 기존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특정 시장이나 제품 범주와 분리시켜 생각함으로써 기업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구성원 각자가 자신이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무엇이고, 어떤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야 구성원들 스스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환경의 급속한 변화는 이제까지의 핵심 성공요인과 과거의 성공체험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성과를 견인해 온 사업, 막대한 비용과 노력이 들어간 사업이라도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포기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탁월한 리더의 육성 및 확보
기업의 지속적 성장에 있어 리더 역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하버드대 교수인 바서만(Noam Wasserman) 등은 올바른 CEO의 선택이 산업에 따라 기업 실적에 최대 40%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컨설팅 업체인 Hay Group 조사에 의하면 비즈니스 성과 차이의 약 30%는 리더에 의해 형성된 업무 분위기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적절한 시기에 결단을 내려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리더를 제대로 육성하거나 확보하지 못한다면 선도 기업이라 하더라도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 LG Business Insight 12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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