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마, 멋진 디자인으로 승부 알짜 회사로 거듭나
3만달러 넘는 노키아 ‘버르투’ 高價에도 잘 팔려
기술 발전으로 품질 평준화… 디자인이 승패 갈라
잡다한 디자인 내놓는 ‘디자인 만능주의’는 위험
독일의 스포츠용품 업체인 푸마(Puma)는 아디다스(Adidas)를 운영하는 아디 다슬러의 동생 루돌프가 1948년에 설립했다. 푸마는 1980년대까지 축구화 브랜드로서 인식되며, 나름대로 시장에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특색이 없는 이 브랜드는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면서 1993년에는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이 무렵 새로이 영입된 요헨 자이츠 사장은 생산기지를 아시아로 옮기는 등 뼈를 깎는 원가 절감으로 고군분투했지만, 1999년 매출액은 3억7000만 유로로 바닥을 기고 있었다.
자이츠 사장은 과감히 전략을 수정한다. 푸마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디자인 브랜드가 되도록 탈바꿈을 시도한 것이다. 푸마는 네덜란드의 유명 디자이너인 알렉산더 반 슬로브의 영입을 필두로 패션 스포츠 브랜드로의 반전을 꾀했다. 그 결과 7년이 지난 2006년에는 27억5000만 유로의 매출에 2억6000만 유로의 순이익을 남긴 알짜 회사로 거듭났다. 자이츠 사장이 푸마를 회생시킨 비결은 운동화의 기능을 넘어 미적 기능을 첨가한 디자인에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푸마는 신발을 매력적으로 디자인했을 뿐 아니라 의류사업에도 진출해 승승장구하고 있다.
2004년 초 한국의 모토로라는 식스시그마라는 기치 아래 품질경영을 내세우며 안간힘을 썼지만, 내수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삼성과 팬택, LG 등 토종 강자들의 등쌀에 밀려 짐을 싸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 모토로라를 살린 것이 면도날처럼 얇다는 의미의 레이저(Razr)폰이다. 레이저폰이 특별한 성능을 갖춘 것은 아니다. 다만 디지털 감성에 맞춘 뛰어난 디자인이 판세를 뒤집은 것이다. 레이저폰은 2007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1억대 판매를 돌파하며, 단일 모델로는 가장 많은 판매 기록을 세웠다.
■ 기업의 성패(成敗) 좌우하는 디자인
이처럼 기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자동차마다 안전과 신뢰도가 뛰어나다고 주장하지만, 비슷한 가격대의 자동차라면 성능의 차이가 눈에 띄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또 값싼 시계도 시간은 대체로 잘 맞는다. 20세기 후반부터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경쟁 업체 간의 품질 수준이 비슷하게 평준화된 것이다. 품질 차별화가 어려워지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전 세계 기업의 화두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품질을 신뢰할 만하다거나 더 좋은 기능을 추가했다고 팔리던 ‘생산형 시대’가 지나고 ‘창조형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창조적 아이디어를 소비에 반영하여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결국 디자인이다.
소니의 오가 노리오(Ohga Norio) 명예회장은 “우리는 경쟁 제품들이 기술이나 성능면에서는 기본적으로 동일하다고 가정한다”며 “시장에서 제품을 구별하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디자인”이라고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니즈는 잊어라, 원츠의 시대다
흔히들 20세기 마케팅의 키워드가 ‘니즈(needs)’라면 21세기의 키워드는 ‘원츠(wants)’라고 말한다. ‘니즈’에서 ‘원츠’로의 전환에 주목하고, 그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려면 ‘기능적 효용’에 초점을 두어야 하지만, 원츠는 ‘비기능적 욕구’에 뿌리를 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원츠’란 무엇인가. 비근한 예로 사람들이 넥타이를 매는 이유를 살펴보자. 도대체 넥타이의 기능은 뭘까. 실상, 넥타이 자체의 기능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다만 자신을 표현하고 개성을 드러내며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고자 하는 원츠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원츠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수요와 가격의 제한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고전적인 경제학 원리에 따르면 넥타이가 이미 열댓 개 있는 사람이 새로운 넥타이를 선물로 받는 경우,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라 새 넥타이의 효용이 크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 정말 멋진 넥타이를 선물하면, 기존의 넥타이와 상관없이 두 개고 세 개고 또 가지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처럼 원츠의 관점에서 보면 수요에 제한이 없어지기 때문에 시장을 끝없이 넓혀갈 수 있는 블루오션(blue ocean)이 여기에 자리하고 있다. 원츠를 자극하는 데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뿐만 아니라 원츠의 시대에는 가격의 상한선이 어디인지 모를 제품들이 나오고 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장에서 노키아(Nokia)의 고급 휴대폰 브랜드인 버르투(Vertu)가 한 대당 3만2000달러를 호가함에도 인기 상품으로 부상하고 있다. 카메라가 달린 것도 아니고, MP3가 내장돼 있지도 않다. 다만 디자인이 남에게 과시하고 싶을 만큼 뛰어난 것이다.
■ 제품뿐 아니라 사회와 경제도 바꾸는 디자인
디자인의 파워가 제품에 국한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가전제품이나 패션, 가구, 자동차 등 ‘산업 디자인’이든 광고나 CI, 영상, 포장 등 ‘시각 디자인’이든 인테리어나 건축, 조경 등 ‘환경 디자인’이든 우리 생활 전반에 걸쳐 디자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은 부지기수이다. 그 한 예로서 크리스티안 미쿤다(Christian Mikunda)가 말하는 ‘제3의 공간’을 창출한 디자인을 들 수 있다.
제3의 공간이란 집(제1의 공간)이나 일터(제2의 공간)와는 다른 분위기의 편안함을 가질 수 있는 놀이문화 공간을 말한다. 스타벅스(Starbucks)는 커피의 품질만 갖고 히트를 친 게 아니다. 그들은 고객이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편안한 의자와 무료 인터넷, 아름다운 음악을 제공해 안락한 휴식을 취하도록 도와주고,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만나 기분 좋게 대화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이 스타벅스라는 제3의 공간으로 몰려들게 만든 것이다.
일본 도쿄 오모테산도의 비탈진 언덕에는 1927년에 지은 ‘도준카이 아오야마(同潤會靑山)’라는 아파트가 있었다. 그런데 오모테산도가 상업지역이 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에게 의뢰하여 이 아파트를 주상복합 상가로 재건축하게 된다. 사실 이 지역은 언덕길이고 한 면이 250m나 되는 비대칭의 좁은 삼각형 모양인데다, 건물의 높이를 가로수 이하로 해야 한다는 공간 창출에 매우 힘든 제약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천재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가로수 높이인 지상 3층만큼 지하 3층을 만들고 언덕의 완만한 경사대로 나선형의 계단이자 동선을 만듦으로써 느티나무 가로수 길의 차분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미래지향적인 주상복합 상가지역을 탄생시켰다. ‘마이너스 10살의 사고를 가진 어른들’을 타깃으로 2006년에 개장한 ‘오모테산도 힐즈’에는 38동의 아파트와 90여개의 다양한 상점이 들어섰으며, 나이가 들어도 멋쟁이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로 늘 북적이고 있다.
이처럼 디자인은 소비자의 만족을 넘어 행복 수준을 높이고, 생활을 변화시키고,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 섣부른 디자인 경영은 실패를 자초한다
그렇다고 디자인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오히려 잘못 관리된 디자인은 화를 자초할 수 있다. 1999년 3억원의 자본금으로 설립된 MP3 제조업체 레인콤은 경쟁의 구도를 디자인 차별화로 가져감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열게 된다. 아이리버(iriver)라는 독자 브랜드로 미국 최대의 가전업체 매장인 베스트바이(Best Buy)에 입점했고, 한때는 미국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2000년 매출액이 80억원에 불과하던 기업이 2004년에는 4540억원 매출에 651억원의 이익을 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성능도 성능이지만, 프리즘 모델 등 뛰어난 디자인으로 세계시장에 우뚝 선 것이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디자인 경영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저 여러 종류의 디자인을 다산(多産)하는 데 몰두하다 보니 정체성(identity)이 없는 잡다한 제품을 늘어놓게 된 것이다.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고도 냉혹했다. 2005년 4분기에 389억원의 손실을 필두로 연속 4분기 동안 1121억원의 손실을 기록한 것이다. 날개 없는 추락을 계속하던 레인콤은 디자인의 콘셉트를 재정립하고 정체성을 확립함으로써 작년 4분기부터 간신히 흑자로 돌아섰다.
눈을 끄는 디자인에 소비자가 일단은 반응하기 때문에 자칫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에 빠지기 쉽고, 그러다 보면 본질을 망각한 채 겉모양의 디자인에만 신경을 쓰게 된다. 디자인은 소비자를 관찰하여 나온 아이디어나 눈에 보이지 않는 감성을 오감이 감지할 수 있는 색채와 형태, 소리와 맛 등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이다.
MP3 제품을 뒤늦게 만들기 시작하여 아이팟으로 시장을 석권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내가 젊은이들과 어울려 그들의 생각과 생활을 직접 체험해 보고 나서야 그들이 원하는 디자인의 MP3를 만들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결국 디자인이란 신제품의 이노베이션과 창의적 아이디어를 소비자에게 보여주는 것이지 ‘겉모양’만을 일컫지 않는다.
■ 21세기의 먹거리는 디자인
정조가 2년9개월에 걸쳐 축성한 수원화성은 아름다운 성곽 중에서도 으뜸으로 손꼽힌다. 다산 정약용의 실학정신에 근거해 실용적이고 아름답게 축조된 화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축물이기도 하다. 성곽의 실용성뿐만 아니라 외모에까지 심혈을 기울이는 왕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신하들에게 정조는 “어리석은 자들이로다. 아름다움이 바로 힘이니라!”고 말했다.
작금의 화두가 되고 있는 상상력과 창의력, 컨버전스(convergence)와 이노베이션의 핵심은 디자인이다. 소비자가 변화와 혁신을 느끼고 확인하는 통로가 바로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유일한 만국 공통어가 있다면, 그건 오직 디자인이다. 디자인을 핵심 역량으로 삼지 않고는 21세기를 결코 앞서나갈 수 없다. 21세기 우리의 먹거리는 바로 디자인이다.
- 홍성태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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