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속의 수첩, 전설로 되살리다
19세기 파리 공방에서 만들던 검은 표지의 단순한 수첩
고흐ㆍ헤밍웨이ㆍ피카소‐애용했던 예술가들의 이야기로 사장됐던 브랜드 부활시켜
수첩 아닌 '글씨 안 쓰인 책' 창조적 작업의 도구로 각광
이 회사의 성공은 시대를 넘나드는 하나의 이야기다. 마치 할머니가 손녀에게 읽어주는 옛날이야기 책처럼 줄거리는 어디선가 들은 듯하고 구성은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 막상 듣고 나면 작은 탄성을 지르게 되는 그런 이야기. 그러고 보니 수첩과 노트북, 다이어리를 만드는 이 회사의 슬로건 자체가 '전설적인 노트북(The Legendary Notebook)'이다.이 회사의 이름은 몰스킨(Moleskine)이다. 이 브랜드를 처음 듣는 사람은 대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많은 사람들은 "그게 뭐야?"라고 묻고, 이 회사가 만드는 수첩의 가격을 알면 "말도 안 돼"라고 말한다. 200페이지 남짓한, 얼핏 봐서는 특별할 것도 없는 수첩 하나가 보통 1만원대. '뭔가 더 있어 보인다' 싶은 수첩은 2만원대를 훌쩍 넘는다.
언뜻 보면 일반 수첩과 다를 바가 없다. 검은 커버에 미색 속지로 된 지극히 단순한 디자인. 몰스킨이라는 이름은 '두더지 가죽(mole skin)'이란 말과 발음이 같지만, 이름과는 달리 평범한 천에 기름을 먹여(방수포) 커버를 씌운다. 속지를 단단하게 박음질해 페이지를 열면 자연스럽게 펼쳐지고, 수첩을 묶는 고무줄이 겉면에 달린 정도가 약간 특이하다고 할까?
그런데도 이 수첩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열광하면서 산다. 이 회사가 세계 각국에 판매하는 稚맛� 연간 1000만개가 넘는다. 5년 전에 비해 판매량이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케빈 로버츠(Roberts)가 만든 브랜드 커뮤니티 사이트 '러브마크(www.love marks.com)'는 몰스킨을 이른바 '러브마크 브랜드(광적인 사랑과 존경을 함께 받는 브랜드)' 랭킹 5위에 올려놓고 있다.
홍성태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몰스킨의 성공을 "스토리텔링 마케팅, 디자인 마케팅, 온라인 마케팅이 '종합세트'로 어우러진 산물"이라고 평가한다. 몰스킨이라는 브랜드는 케빈 로버츠가 꼽는 러브마크의 대표적인 속성들을 두루 갖고 있다. 무엇보다 브랜드에 얽힌 이야기가 충실하다. 몰스킨의 성공 과정은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는 동화들처럼, 낭만적인 '기·승·전·결'이 있다.
원래 1800년대 이후 프랑스 파리의 문구 공방(工房)들에서 만들던 검고 단순한 수첩의 통칭으로 고흐·헤밍웨이·피카소 같은 문인과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았지만(기), 1980년대 중반 저가품의 공세와 디지털화 때문에 사라졌다(승). 그러던 중 우연히 이탈리아의 두 사업가가 몰스킨을 둘러싼 역사와 이야기들에 주목해 몰스킨 수첩을 부활시키고(전), 전 세계 수첩 시장에 강력한 브랜드를 구축한다(결).
한 웹사이트는 몰스킨의 성공을 두고 '브랜드 고고학(brand archeology)'이라고 이름 붙였다. 수명이 다해버린 브랜드의 역사와 전통을 발굴해 내고 이를 마케팅에 활용함으로써 브랜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브랜드 가치와 신뢰도를 높였다는 것이다. 요컨대 몰스킨은 요즘 전 세계 경영계에 광풍(狂風)처럼 몰아치고 있는 '이야기 마케팅'과 '입소문 마케팅'의 교범과도 같은 회사다.
지난달 25일 이탈리아 밀라노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아리고 베르니(Berni) 사장에게 몰스킨 전설(傳說)의 비결을 물었더니 그는 서가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창조적 계층의 부상(The rise of creative class·2002년)〉이라는 책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지적된 내용이 바로 몰스킨 성공의 첫 번째 비결"이라고 말했다. 즉 창조적 계층이라는 새로운 소비자 그룹의 등장을 예견한 것이다.
"1995년 이탈리아의 두 사업가가 몰스킨의 전신인 모도앤모도(Modo & Modo)를 설립해 사라졌던 몰스킨 수첩을 다시 내놓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사회의 변화 트렌드에 대해 비전이 있었어요. 그들은 당시 세계적으로 급속히 성장하는 한 계층에 주목했습니다. 바로 창조적인 활동에 종사하는 그룹이죠. 지식 노동자라고도 하죠. 사실 그들 스스로 그런 그룹에 속해 있었고, 그 덕분에 그들은 꿰뚫어 볼 수 있었죠. 앞으로 이런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요."
베르니 사장은 몰스킨의 두 번째 성공 비결로 브랜드에 기능적 가치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치를 찾아낸 것을 꼽았다.
"요즘의 소비자들은 사실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물건 이상을 사죠. 바로 '경험(experience)'을 사는 것입니다. 물론 실체가 있는 물건을 사긴 하지만, 그것은 만질 수 있고 물리적인 니즈를 해소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에요. 만질 수 없고, 감정적이고, 지위나 정체성에 연관된 니즈를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매슬로우(Maslow)의 욕구 단계설처럼요. 우리 아이들의 세대에서는 더욱더 그런 방향으로 나갈 것입니다. 1995년에 다시 출시된 몰스킨 수첩은 기능적인 면에서는 검은 표지와 하얀 속지가 있는, 예전과 똑같은 물건이었어요. 하지만 시장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도입됐습니다."
―어떻게요?
"사실 바로 그게 그들의 천재적인 면이었다고 생각해요. 모도앤모도 창업자들은 이 수첩을 보면서 '이건 수첩이 아니야. 아직 글자가 쓰이지 않은 책(unwritten book)이야' 라는 콘셉트를 생각해 냈습니다. 즉 그들은 이 수첩을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플랫폼으로 인식한 겁니다."
"우린 마케팅 하지 않는다‐ 몰스킨답게 행동할 뿐"
베르니 사장은 베네통의 마케팅담당 부사장과 불가리의 미국법인 수석부사장, 테스토니의 CEO 등 쟁쟁한 명품(名品) 기업의 경영을 섭렵했다. 그러나 이 베테랑 CEO는 프로필만 보고 예상했던 권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기자의 손을 잡더니 마치 들뜬 아이처럼 자신의 사무실 구석구석으로 안내하며 자랑했다. 사무실 곳곳에는 파블로 피카소와 세계적 여행 작가 브루스 채트윈 등 몰스킨 마니아 고객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굉장하죠? 저도 몰스킨 수첩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그래서 2006년 CEO 제의를 선뜻 수락했죠." 그는 사진을 가리키며 몰스킨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몰스킨은 원래 특정 회사 제품의 상표는 아니었다. 프랑스 파리의 여러 문구 공방들에서 만들던 검고 단순한 모양의 수첩과 노트북의 통칭이었다. 그러나 수첩시장의 경쟁이 심화되고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몰스킨 수첩은 점차 사라져 갔고, 1985년 이후에는 시장에서 구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1995년 두 이탈리아 사업가(마리오 바루치와 프란체스코 프란체스키)의 열정으로 몰스킨은 다시 빛을 보게 된다. 두 사람은 모도앤모도(Modo & Modo)라는 회사를 설립한 뒤 과거 몰스킨 수첩을 생산했던 공방을 수소문해 제품을 재현해냈다.
모도앤모도는 원래 여행용품을 취급하는 회사였고, 몰스킨 수첩은 여러 여행 상품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러나 1년이 지나자 여행자들이 이 노트북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을 확인했고, 2~3년 뒤부터는 오로지 몰스킨만 취급하게 됐다. 그리고 1997년에는 몰스킨을 상표로 등록했다.
―두 사람이 '아직 글자가 쓰여지지 않은 책(unwritten book)'이라는 콘셉트를 들고 나왔다고 했는데, 그것은 캐치프레이즈나 슬로건이었습니까?
"(목소리를 높이며) 아뇨, 아녜요. 마케팅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좀 더 복잡합니다. 만일 당신이 소비자들에게 가서 다짜고짜 이렇게 말해 보세요. '이건 수첩이 아닙니다. 아직 쓰여지지 않은 책입니다. 멋있죠? 그러니까 이걸 사세요.' 그런다고 소비자들이 사겠어요? '글쎄, 좀 있어 보자.' 이렇게 말하겠죠.
즉 이런 말입니다. 만약 당신이 진짜 브랜드를 만들어내려고 한다면, 그래서 물건의 기능적인 가치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려고 한다면 당신 스스로가 브랜드 콘셉트에 대해 명확한 인식을 갖는 게 커뮤니케이션의 방법보다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보죠. 어떤 수첩은 당신이 메모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약속을 잡을 수 있도록 하고, 이벤트를 기록합니다. 그래서 '플래너'나 '다이어리'라고 이름 붙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판매한다고 합시다. 이런 브랜드는 '성과 기반 브랜드(performance based brand)'입니다. 이런 브랜드는 '이 제품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러 저러한 기능적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입니다'라고 설명합니다. 브랜드가 기능을 중심으로 의미를 담아 포지셔닝하는 겁니다.
하지만 몰스킨은 전혀 포지셔닝이 다릅니다. 몰스킨이라는 브랜드는 '저는 메모를 할 수 있습니다. 스케줄을 기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 주세요'라는 약속을 담고 있지 않아요. 그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몰스킨 수첩은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창조성을 적어내는, 쓰여지지 않은 책이다.' 몰스킨을 되살려낸 두 사업가는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죠. 사람들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플랫폼으로 인식한 겁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건 단순한 수첩이 아닙니다'라고 말로만 떠든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다(behave)'는 것입니다."
■브랜드를 '마케팅'하지 마라. 브랜드로서 '행동'하라.
―'행동'이라…. 그렇다면 '쓰여지지 않은 책'이라는 브랜드 콘셉트를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했나요?
"먼저 어디에서 판매할 것인가에서부터 차별화했어요. 만약 우리가 단순히 메모를 하는 제품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과 사고, 창의성을 표현할 제품을 판매한다면 소비자는 어디서 그 물건을 사려 할까요? 바로 서점이죠. 두 사업가는 그래서 이 제품이 수첩임에도 불구하고 서점에 공급했습니다. 실제로 몰스킨 수첩에는 일반 도서처럼 국제표준도서번호(ISBN)가 부여됩니다. 한국에도 주로 대형 서점을 통해 팔리고 있습니다.
운도 좋았습니다. 그 당시 서점들은 책 매출이 정체돼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서점은 보통의 책과 다른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면 환영이었습니다. 몰스킨은 이어서 디자인숍에도 진출했습니다.
매장 디스플레이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예컨대 몰스킨을 애용했던 유명 인사들, 즉 피카소나 헤밍웨이, 채트윈 같은 지적이고 예술적인 인사들의 사진을 매장에 내걸었습니다. 몰스킨이 오랜 예술적, 지적 전통의 산물임을 알리는 거죠. 다만 요란한 홍보 활동 대신 매장의 설치물로만 커뮤니케이션을 제한했습니다."
―그런 활동만으로 사람들에게 몰스킨의 가치를 느끼도록 만들 수 있었나요?
"그랬어요. 소비자 스스로 브랜드의 가치를 인식해갔습니다. 음, 사실 소비자에게 브랜드 가치를 느끼도록 인위적으로 '마케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브랜드는 사람과 같다는 것이죠. 우리가 사람을 평가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세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나요? 물론 그것도 중요하겠지만, 결국은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게 되죠. (그는 '행동'이란 말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았다.) 따라서 가치를 정말로 사람들에게 느끼게 해주려면 제가 그 브랜드의 성격에 맞게 스스로 '행동'해야 합니다. 사람과 마찬가지죠.
제가 세련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칩시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말합니다. '봐, 내가 얼마나 세련됐는데.'(웃음) 그건 오히려 역효과를 낼 뿐이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진정으로 인정하게 하려면 경쟁자보다 더 나은 브랜드답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우선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도 저희는 세계 곳곳에서 전시회를 엽니다. 실제로 몰스킨이 '쓰여지지 않은 책'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현대의 헤밍웨이나 피카소로 불릴 만한 창조적인 예술가와 사상가들이 실제로 몰스킨 수첩에 적어 넣은 창의적인 글과 그림을 전시하는 거죠. 2006년부터는 '우회(DETOUR)'라는 주제로 전 세계에 순회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런 게 몰스킨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저희는 심미적인 부문에서 몰스킨의 정체성을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예를 들면 몰스킨 수첩은 딱딱한 커버를 쓰는데, 촉감이 아주 독특해요. 이런 세부적인 촉감과 외형을 관리하고 유지하려면 직원 개개인의 역량이 매우 중요합니다. 몰스킨 직원들은 이런 방면의 전문가들이고, 핵심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몰스킨의 소비자 중에는 할리 데이비슨의 '호그족' 못지않게 광(狂) 팬이 많다. 국내에도 번역된 책 <시티즌 마케터>에 따르면 몰스킨을 세계에 알린 주인공 역시 플릭커(flickr.com) 같은 웹 2.0 사이트를 이용하는 온라인상의 자발적인 팬 블로거들이었다. 이들은 지금도 몰스킨의 제품과 매장, 행사를 열성적으로 취재하며 관련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비즈니스스쿨의 번트 슈미트 교수는 그의 책 '빅씽크 전략'에서 "몰스킨은 구매자에게 '당신은 창조적 인간이고, 창조적 공동체의 일부'라는 메시지를 준다"고 말했다.
실제로 몰스킨 수첩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창조적인 일에 종사하는 인물을 묘사하는 소품으로 종종 등장한다. '다빈치 코드'의 고고학자 톰 행크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패션잡지사 편집장 비서 앤 해서웨이, '내셔널 트레져'의 고고학자 니콜라스 케이지가 영화 속에서 꺼내는 수첩이 모두 몰스킨이다.
이야기 마케팅의 성공과 함께 몰스킨은 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지난해 매출은 3970만유로(약 700억원)에 달해 4년 만에 4배 이상으로 늘었다. 원래 4개로 시작한 제품 종류가 지금은 220개에 이른다. 일반 수첩에 이어 다이어리와 시티 노트북(주요 도시별 지도가 담긴 시리즈 수첩)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6년 모도앤모도의 창업자들은 프랑스 금융회사인 소시에테 제네랄에 기업을 매각했다. 매각대금은 6000만 유로(약 1000억원)였다. 이때 회사 이름이 모도앤모도에서 몰스킨SRL로 바뀌었고, 베르니 CEO가 영입됐다.
―디지털시대인데, 앞으로도 종이 수첩으로 고속 성장이 가능할까요?
"저희는 계속 성장할 여지가 많다고 생각해요. 아시겠지만, 계속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창조적인 활동에 종사하는 인구는 점점 늘어날 것이고, 이들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고 싶어합니다. 몰스킨은 그런 사람들의 플랫폼으로서 계속 작용할 겁니다.
참 특이하죠. 요즘 같은 인터넷 세상에 수첩처럼 디지털하지 않은 필기도구를 찾을 수 있나요? 하지만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일수록, 창조적인 인터넷과 디지털 테크놀러지를 매우 많이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이런 기본적인 필기도구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요.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적인 삶을 함께 사는 거죠. 이들에게 두 가지 삶은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진심은 통한다. 스스로 소비자 일부가 되라
―'브랜드로서 행동한다'는 말은 한국의 기업에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한국에도 이야기 마케팅이 유행인데, 조언을 부탁합니다.
"제가 누구에게 조언을 할 처지에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몰스킨에서 하나 배운 것은 진심(truthfulness)이 통한다는 것이에요. 당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스스로 계속 진솔할 수 있다면 단명(短命)하는 브랜드와 차별화하는 큰 포인트가 됩니다.
물론 시장 조사나 전략에 따라 브랜드를 단기적으로 마케팅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런 방법 자체를 무시하지는 않아요. 저도 다국적 기업들에서 근무하며 그런 방법을 익혔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장기적인 성공을 위한 펀더멘털을 제공하지는 못해요. 그 대신에 우리는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제품의 주된 고객인 창조적인 소비자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소비자와 진심을 통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제일 좋은 것은 스스로 그 소비자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모도앤모도의 창업자들 스스로가 '창조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소비자'의 일부였다는 사실이에요. 그들 스스로 꾸준히 여행을 다니고, 글을 썼고, 결국 같은 생각을 가진 소비자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똑똑합니다. 더구나 창조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소비자들은 말이죠. 만약 당신이 돈만 벌기 위해 사업과 마케팅을 벌인다면 그들은 당신이 하는 일이 마케팅 활동이라는 걸 단번에 꿰뚫어 볼 거예요. 그리고 '하하'하고 비웃을 겁니다.
아마도 큰 조직은 이런 게 쉽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회사 스스로의 조직을 바라보고 문화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종업원들이 어떤 가치를 믿고 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해외의 파트너를 찾을 때에도 이런 문화나 열정을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업에서 진정성을 중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노(No)'라고 말해야 하는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 당신의 사업 목적에 맞지 않는 고객이 큰돈을 들고 찾아온다고 생각해보세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못할 리가 없겠지만, 정말 성공을 바란다면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가리나 테스토니 같은 많은 다국적 명품 기업 경영진을 거쳤는데, 비교적 작은 규모의 회사로 옮겼습니다. 이유가 있으신지요?
"저는 브랜드를 경영하는 것을 좋아해요. 저 스스로도 몰스킨을 브랜드로서 매우 좋아했습니다. 이 브랜드는 단순한 상품 브랜드보다 훨씬 많은 것을 품고 있어요. 아주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브랜드는 사람들의 심리적인 수수께끼를 건드려요. 브랜드에 대해 많은 정의가 있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은 '브랜드는 정신적인 대상(mental object)'이라는 겁니다. 자동차라는 제품은 분명 실질적인 대상이죠. 하지만 피아트나 도요타라는 브랜드는 실질적인 대상이 아닙니다. 마음속에만 존재하죠. 그런데도 매우 강력합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제품보다도 강력해요.
또 하나는 제가 사실상의 창업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6년 소시에테 제네랄이 이 회사를 인수한 뒤 창업자들은 곧 회사를 떠났어요. 저 스스로 회사에 팀을 짜고, 회사의 방향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테스토니나 불가리도 좋지만 이렇게 흥분되는 일을 하기는 어렵죠."
―앞으로의 계획은요?
"해외 진출을 계속할 겁니다.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브랜드를 활용해 다른 영역에서 재미있는 제품을 내놓을 수 없을까 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것인가요?
"지금은 말할 수 없어요. 아마도 12~20개월 내에 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몰스킨의 성공비결] 눈에 보이는 것 그 이상을 판다
분실수첩 찾았을 때 사례금, 소비자가 스스로 매기게‐
하자땐 정품 확인후 교환 200년 된 디자인도 '한 몫'
수첩 업체 몰스킨이 감성적으로 팬들과 훌륭하게 소통한 비결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스토리와 브랜드를 절묘하게 엮은 점이 꼽힌다. 하지만 그와 함께 꼽히는 것이 몰스킨의 '보이지 않는' 제품 디자인·기획력이다. 마영범 소갤러리 대표는 "최근 디자인의 영역은 외형에만 머무르지 않고 창조적인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여기는 '보이지 않는 가치'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데, 몰스킨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몰스킨 수첩의 첫 장에는 분실한 수첩을 찾아줄 때 사례금을 직접 주인이 기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자신의 수첩 가치를 스스로 매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몰스킨 수첩은 일반 수첩과 달리 '품질 관리번호'가 부여돼 있어 하자가 있을 때 정품 확인 후 새 제품으로 교환이 가능하다. 이런 감성적인 작은 '배려'가 제품의 가치를 높여준다는 설명이다.
창조적인 소비자를 잡은 또 다른 힘으로는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가 꼽힌다. 단순한 디자인을 지닌 수첩이지만, 퍼스트 무버(first mover)였던 점이 몰스킨에 큰 힘이 됐다는 것이다. 몰스킨 이후 유사한 디자인의 수첩이 많이 나왔지만, 몰스킨이 가진 오리지널리티를 누구도 뛰어넘지 못했다.
김신 월간디자인 편집장은 "사실 몰스킨의 디자인은 이미 유행이 지난 기능주의적이고 모더니즘적인 디자인이지만, 100년이 넘게 같은 디자인이 고수되면서 누구나 몰스킨의 정체성을 인식하게 됐다"며 "샤넬의 단순한 누빔 바느질이 오리지널리티를 획득하면서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니게 된 것과 유사한 사례"라고 말했다.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7/10/20090710017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