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26. 10:35
오늘날 기업 경영의 가장 큰 화두 가운데 하나는 글로벌화(Globalization)이다. 우리 기업들은 대부분 국내에서 축적한 경쟁 우위를 해외에 구현하는 과정에서 글로벌화를 경험한다. 일부 앞선 기업들은 이미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비즈니스의 활동을 하고 있다. 성과의 상당 부분을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창출하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기업들은 외형적 글로벌화에 비해 경영 시스템은 아직 로컬 기업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것이 조직 관리 부문이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공하려면 현지 조직의 현지화 역량과 본사의 글로벌 통합화 역량이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먼저 현지화는 개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진출 지역의 환경, 조직의 역량 수준에 맞는 실행 방식을 찾아 현지화 모델을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통합화는 획일적 표준화가 아니라 글로벌 복잡성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 현지화의 장점을 살리는 로드맵이 필요하다. 그러나 글로벌 리더십에 대한 대비없이 현지 사업이 커지고 조직의 규모와 다양성이 확대되면 어렵게 일군 현지의 사업 성과를 한 순간에 잃을 수도 있다. 조직의 가치관이 단절됨 없이 이어지는 글로벌 리더십의 토대가 마련될 때 조직 관리의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 결국, 조직의 글로벌 경쟁력은 현지화, 통합화, 글로벌 리더십의 3가지 역량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화 흐름이 거세다. 올해 포브스지가 선정한 2,000개 글로벌 기업(Forbes Global 2000) 가운데 우리나라 기업이 61개나 포함되었다. 국가별 기업 수로는 미국, 일본 등에 이어 6번째로 많은 것이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해외자산 규모로 본 세계 100대 비금융 다국적기업에도 LG, 삼성, 현대자동차 등 우리나라의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순위에 올라 있다. 그런가 하면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우리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액은 3배 이상, 해외 M&A 총액은 7배 이상 급증했다고 한다.
이런 외형적인 모습만 본다면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화 수준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런데 기업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글로벌화 수준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인식이 많다.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 600개 회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글로벌화에 대한 국내 기업의 인식’ 조사에 따르면 절반이 넘는 기업에서 전반적인 글로벌화 수준에 대해 아직 초보 단계라고 응답하고 있다.
외형적 글로벌화와 달리 조직 시스템이나 구성원 역량 차원의 글로벌화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화 역사가 오래되지 않아 경험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글로벌 조직 관리의 노하우와 시스템은 장기간 경험과 노력에 의해서 축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시 우리 기업들이 잘못된 글로벌화의 방식에 얽매여 있거나 핵심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영학 교수 프라할라드는 ‘글로벌 경영의 두 축은 현지 대응(Local Responsiveness)과 글로벌 통합(Global Integration)이며 이 둘 사이에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글로벌 조직 관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해외 현지 조직의 현지화 역량과 본사의 글로벌 통합화 역량이 균형을 이룰 때 글로벌 사업을 성공적으로 견인할 수 있다. 여기에 현지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십 파이프라인이 잘 작동될 때 글로벌 조직 관리는 한 단계 수준이 높아질 것이다.
이하에서는 현지화, 통합화, 글로벌 리더라는 3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글로벌 조직 관리의 핵심 이슈들을 생각해 보도록 한다(<그림>참조).
Ⅰ. 조직 글로벌화의 첫 관문, ‘현지화’
조직의 글로벌 확대는 현지화라는 첫 관문을 잘 통과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지화는 진출 지역 또는 국가의 제반 여건에 맞추어 조직을 적응, 변화시키는 과정으로 현지 사업의 성공과 현지 조직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본사 중심으로만 현지 조직을 운영하게 되면 지속적 주재원 파견에 따른 비용도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현지 정보 확보, 인재 활용 등에서도 많은 어려움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기업들은 현지화를 추진함에 있어 적잖이 애를 먹고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현지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현지화를 실행하는 방식이 조직에 맞지 않는 경우일 수가 있다. 이 두 가지 이유는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화에 대한 오해는 조직에 적합한 현지화 방식을 찾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현지화를 추진하는 데 있어 사람과 조직 관점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을 살펴 보자.
현지 인력 구성과 활용
해외 현지 조직은 본사에서 파견된 주재원과 현지에서 채용한 인재(이하 ‘현채인’)로 구성된다. 지역에 따라서는 교포 인력이 현채인의 상당수를 차지하기도 한다. 조직 운영의 중심 축을 어디에 둘 것인지는 이들 자원들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활용해야 하는 지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1) 주재원 중심 vs. 현채인 중심
일반적으로 해외 진출 초기에는 주재원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하지만 현지화 단계가 진행될수록 현채인의 역할 비중이 커지게 된다. 중요한 점은 주재원과 현채인간 역할 비중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일이다. 그리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변화의 속도를 조절하는 일이다.
우리 기업들은 본사에 핵심 경영 기능과 역량이 집중되어 있는 편이다. 이로 인해 글로벌 전략의 일관된 운영은 주재원들의 헌신과 강한 책임감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주재원 중심 조직 운영은 본사 전략의 신속한 전파와 실행, 현지 경영 관리의 일관된 조정, 글로벌 경영자 후보군의 지속적 양성 등에서 장점이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주재원 중심의 조직 운영은 우수한 현지 인력들로 하여금 성장의 한계를 느껴 이탈하게 만들 수 있다. 현지 시장 변화에 대한 감지력 및 조직 대응력을 떨어뜨릴 우려도 있다. 또한 지속적인 주재원 파견에 따른 비용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지나친 현채인 중심 조직 운영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 장벽을 들 수 있다. 국내 한 기업은 글로벌화를 앞당기기 위해 해외 법인장을 포함한 현지 조직의 주요 포스트를 대거 현지인으로 교체하였다가 본사와의 의사소통 혼란 및 갈등으로 적잖이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결국 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현채인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주재원과 현채인 간 인력 운영의 균형 측면에서는 공식적으로 직무를 구분하여 운영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컨대 현지의 고객 정서와 생활 습관을 잘 알아야 하는 영업과 마케팅 직무는 현채인이 담당하고 본사와의 긴밀한 커뮤니케이션과 높은 오너십이 요구되는 직무는 주재원이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2) 현지 교포 vs. 현지 외국인
미국이나 중국과 같이 우리 민족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의 경우에는 현채인 가운데 교포 인력이 상당수를 차지하게 된다. 교포 인력이 지닌 최대 장점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한국적 정서와 언어에 대한 장벽이 낮은 편이라 본사 또는 주재원과의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다. 동시에 현지의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와 관습에 대한 이해 능력이 뛰어나다. 이러한 요건들은 교포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전략적으로 잘 활용해야 할 장점들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기업들은 교포 인력에 대한 전략적 활용이 미흡한 편이다. 정서적 공감대가 있다는 생각만으로 과도한 업무 부담을 준다거나 외국인과 공평하지 못한 인사 관리 및 대우를 하면서도 잘 인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심지어 업무 외적인 부분까지 교포 인력에게 의존하는 경우도 있다.
교포 인력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배려 없이는 그들의 장점을 취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자칫 잘못하게 되면 교포 인력들로 하여금 한국 기업에 근무한다는 자부심보다는 역차별을 당한다는 불만을 가지게 만들 수 있다. 또 외국인 직원들로 하여금 주재원들이 교포 인력들하고만 긴밀하게 교류하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주재원-교포-현채인으로 구분되는 조직 내 장벽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일부 선진국 지역에 거주하는 교포 인력들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준의 학력이나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의 장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현지 채용 외국인과 동등하게 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교포 인력 상당수가 몸에 배어 있는 일하는 방식에서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점을 유념해야 하는 것이다.
현채인 확보
인재 확보 전략은 현지 조직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흔히 현지화를 거론할 때 서구 기업의 사례를 들곤 한다. 그러나 외국계 기업들이 우리가 배워야 할 벤치마킹 대상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서구 기업 중 하나인 GE는 국내에서 운영하는 20여 개의 현지 법인 책임자 모두를 한국인으로 운영한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회사들 상당수도 사장 등 주요 책임자에 한국인을 임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연 이런 사례가 우리 기업들의 현지화 방향에 지시등 역할을 해준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 기업들도 해외에 진출하면 책임자를 현채인으로 교체해야 하는 것일까?
국내에는 외국에서 태어나거나 유학하여 서구 문화와 언어에 익숙한 우수 인재들이 많은 편이다. 또한 대부분의 외국계 기업들은 국내 우수 인재들로부터 높은 입사 선호도를 확보하고 있다. 즉, 외국계 기업들은 한국에서 사업을 성공시키고 직원들을 잘 관리할 수 있는 리더급 인재 확보에 매우 유리한 것이다. 반면, 해외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들은 아무리 국내 경쟁력이 있다 하더라도 현지 우수 인재들로부터 높은 입사선호도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현실을 인정한다면 주재원의 역할 비중을 늘리거나 현채인 육성에 좀 더 관심을 두는 등의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한편, 인종과 국적, 학력에 얽매이지 않고 ‘현지에서 사업을 가장 잘 성공시킬 수 있는 역량’ 관점에서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 미국의 코닝글래스는 해외 시장 개척 초기에 前대사를 채용하여 해외 사업부 책임자로 임명한 적이 있다. 여러 나라 정부 요직 인물들과 인적 네트워크가 뛰어나고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소위 ‘글로벌 인재’의 요건을 두루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코닝글래스와 그 사업에 대해 깊은 지식이 없었던 까닭에 얼마 안가 새로운 책임자로 교체되었다.
현채인 동기부여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과 언어를 가진 종업원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동기부여하기 위해서는 인사 관리에서도 차별적 접근이 필요하다. 동일한 제도가 지역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가 및 보상의 경우, 큰 틀에서는 통합적으로 운영하더라도 세부적으로는 현지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일본에서는 공식적 칭찬과 포상보다 상사의 개인적이고 비공식적인 인정과 격려를 중시하는 반면, 중국에서는 남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포상 받는 것을 선호한다. 중국인들은 특히 성과에 대한 즉각적인 반영 등 금전적 보상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에서는 엄격하고 냉정한 비교 평가에 거부감이 적은 편이다.
직급 체계도 지역에 따라 차별화된 고민이 필요하다. 인도에서는 급여의 상승보다 호칭 변경을 포함한 진급이 개인적, 사회적으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반면, 브라질에서는 너무 많은 직급 단계가 구성원들이 성장 비전을 갖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Ⅱ. 글로벌 조직의 업그레이드, ‘통합화’
글로벌 조직 관리의 성공을 위해서는 현지화 못지 않게 통합적 관리 체계가 중요하다. 조직 전체로 시각을 확대하면 조정과 지휘를 위한 통합적 사고가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통합화 이슈는 자율성 부여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글로벌 조직 연구의 대가인 갈브레이스는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들이 현지 조직에 자율성을 너무 많거나 또는 너무 적게 부여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라고 말한다. 국내에서 확보한 경쟁력을 해외에서도 유지시키고, 글로벌 조직간 시너지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통제력이 요구된다. 반면 본사의 간섭이 지나치게 되면 현지화가 더 멀어질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통합화는 먼저 글로벌 조직의 복잡성 자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지역적 특성에 맞는 차별화된 조직 구조와 이를 잘 관리할 수 있는 역량 증대 방안에 경영의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무리한 표준화 또는 단순화는 현지 국가의 다양한 법적인 규제나 문화적, 관습적 차이 등 복잡한 상황에 대한 조직 대응력을 떨어 뜨릴 수 있다.
현지화에 성공하더라도 글로벌 통합 관리 체계가 없다면 기업의 진정한 글로벌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글로벌 통합적 사고와 관리 체계는 현지화 성공 체험들을 조직 전체의 역량으로 확대시키는 바탕이 된다. 글로벌 통합화에 고려해야 할 주요 이슈로는 다음의 4 가지가 있다.
1. 글로벌 통합화 로드맵 준비
통합화는 현지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진 경향이 있다. 통합의 필요성은 현지화보다 늦게 인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합화 없이 현지화에만 몰입하다 보면 지역마다 조직 체계와 운영 시스템을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나머지 뒤늦게 큰 어려움에 봉착할 수도 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현지화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통합적 관리 로드맵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현지 조직이 해야 할 일과 본사 차원에서 관리해야 할 것들을 미리 분류하고 대비해둠으로써 나중에 발생할 수 있는 중복 투자나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방지하는 것이다. 통합 관리 로드맵에는 채용, 평가, 보상, 직급, 육성 등 인사 및 조직 관리 전반에 걸쳐 통합의 대상과 순서, 주체 및 수준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임원급 이상의 평가 및 보상 체계는 본사에서 통합 관리하는 방식 등이다.
글로벌 조직 관리 경험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해외 조직의 인사관리 체계나 조직 운영 방식을 미리 통합적으로 사고하고 대비하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현지에 진출하면 당장 새롭게 부딪히는 조직 운영 이슈를 하나 둘 해결해 나가는 것이 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외 현지 조직들의 통합적 관리 고민은 현지보다 본사가 감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요한 것은 통합화 노력이 현지화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통합화에만 치중하다 자칫 기존의 로컬 기업과 유사한 자국 중심적 조직이 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통합화의 주체가 되는 본사 기능 부서는 현지와 잦은 접촉을 통해 현지화의 장점을 살리는 통합화를 고민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2. 소통과 교류 채널 다양화
조직간 통합에는 원활한 소통이 열쇠이다. 전 세계적으로 떨어져 있는 조직의 소통을 위해서는 IT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일례로 전 세계 170여 개국 30만 명 이상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IBM의 글로벌 통합 역량은 신속한 의사결정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매일 300만 개 이상 처리하는 정보시스템에 기반하고 있다. 정보 시스템의 효과적인 활용은 글로벌 인재들이 서로 더 많은 접촉 기회와 교류를 통해 유대감과 비전을 공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조직 내 소통과 교류를 정보 시스템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교육, 파견, 연수, 공동 프로젝트 등을 통해 직접 얼굴을 맞대는 인적 교류가 병행되어야 한다. 도요타 터키 공장의 경우 직원들의 일본 연수를 적극 추진하여 3천명의 종업원 중 10퍼센트가 일본어에 어느 정도 능통해지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잘 알려진 GE의 크로톤빌 연수원이나 닛산의 하코네 연수원, 소니나 모토롤라의 사내 대학 등도 글로벌 구성원들이 서로 직접 얼굴을 맞대고 교류하도록 함으로서 학습 효과를 높이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소통과 교류는 지속적이어야 보다 큰 의미가 있다. 맹자는 진심(盡心)편에서 ‘산에 난 조그만 길도 사람의 이용이 증가하면 큰 길로 변한다. 그러나 잠시라도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으면 다시 풀로 가득 덮여 길이 없어지고 만다(山徑之蹊間 介然用之而成路 爲間不用則茅塞之矣)’라고 하는 가르침을 주었다. 거리라는 물리적 한계로 교류가 소홀해지기 쉬운 글로벌 조직에서 한번쯤 귀 기울여야 봄직한 말이 아닐 수 없다.
3. 글로벌 관점의 현지 정보 활용
진정한 글로벌 기업은 본사의 뛰어난 조정 능력이나 해외 조직의 현지화 능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글로벌 학습 능력을 갖추어야만 한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이브 도즈 교수 등은 저서 [From Global to Metanational]에서 “글로벌 지식경제 사회의 도래로 전세계에 산재해 있는 지식과 정보를 획득하고 적절하게 활용하는 기민한 능력이 기업의 경영자들에게 필수 역량이 되고 있다” 고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100개 이상의 기업 M&A를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일렉트로룩스는 기업 인수의 결과로 제품 구성과 마켓 포지션, 경쟁 구도가 매우 다양한 기업 집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90년 대 말에 이르러 글로벌 브랜드 전략이 이슈가 되자 당시 CEO였던 리프 요한슨은 먼저 글로벌 태스크포스팀을 가동하였다. 각 나라와 지역의 마케팅 책임자들과 충분한 대화를 지속적으로 나누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 당초 계획한 로컬 브랜드 포기 전략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정할 수 있었다. 로컬 브랜드 제품들의 기본적인 틀과 부품을 표준화하여 전문화된 지역 공장에서 대량 생산함으로써 효율성도 높이고 브랜트 파워도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통적으로 해외 현지 조직이 갖는 미션은 본사의 글로벌 전략을 최종 실행하는 것이다. 정보와 지식은 본사에서 현지로 흐르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이런 일방향 흐름은 '가르치는' 본사와 '배우는' 현지 조직이라는 역할 고착화를 심화시킬 우려가 크다. 본사에서는 현지 사정에 어둡게 되고 현지에서는 정보를 본사에 전달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현지 시장 정보는 글로벌 전략 수립에 기본 토대이다. 일방향이 아닌 양방향, 나아가 전 세계에 산재한 조직간 거미줄처럼 서로 주고 받는 학습 네트워크가 활발히 가동될 때 보다 실행력 높은 글로벌 전략 수립이 가능하다.
4. 보이지 않는 통합의 끈 확보
영속하는 기업의 위대한 힘은 구성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는 차별화된 경영 철학에 있다. 국적과 인종, 문화가 다양한 글로벌 조직이 진정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 필요하다.
캐논은 90년대 후반부터 10여 년 이상 지속된 일본의 침체기에도 성공적인 글로벌화를 통해 도요타를 능가하는 견실한 재무 구조를 이루어낸 글로벌 기업이다. 캐논 성공에 바탕이 되었던 ‘끈’은 종신고용과 실력주의의 공존으로 대변되는 경영철학이었다. 성과주의와 사업 구조조정 등은 서구 방식을 택하면서도 종신고용과 같은 가족주의적 조직 관리는 일본식 제도를 유지하는 일명 '화혼양재(和魂洋才)' 의 글로벌화 원칙이 확고했던 것이다.
도요타 성공의 이면에도 전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는 조직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도요타 웨이’가 있다. 도요타의 한 해외 공장에는 일본에 가본 적이 없는 현지 사원들이 도요타의 역사와 철학을 이해하도록 ‘Toyota Way Hall’이라는 전시장이 만들어져 있으며, 간부 인력에 대해 일본어를 가르치고 본국에 파견 교육을 보내고 있다. 지역과 국가를 초월한 사상적 통합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Ⅲ. ‘글로벌 리더십’ 파이프라인
한 번의 성공보다는 성공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다. 글로벌 조직 관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본사의 지원과 초기 개척자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현지 조직은 지속 발전이 더 어렵다. 초기 현지 조직을 일군 리더십 및 구성원 역량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글로벌 역량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경영컨설팅사인 왓슨와이어트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의 인사 담당 임원들의 75%가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로 ‘글로벌 인재의 유치와 유지’를 꼽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글로벌 조직을 이끌어갈 수 있는 글로벌 리더가 부족하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기업들 역시 짧은 글로벌화 역사로 인해 글로벌 리더십 수준이 미약하다. 해외 진출 초기에는 현지 조직의 규모가 크지 않고 본사 주도의 사업 및 조직 관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글로벌 리더십의 필요성이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리더십에 대한 대비 없이 현지 사업이 커지고 조직의 규모와 다양성이 확대되면 어렵게 일군 현지의 사업 성과를 한 순간에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지속적 리더십 승계 준비는 한시라도 늦추어서는 안된다.
글로벌 리더십 파이프라인은 본사와 현지 조직간 긴밀한 협력이 있어야 효과적으로 작동된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글로벌 리더십 정의는 현지 정보가 필수적이며 다양한 경험과 잠재력을 갖춘 글로벌 리더 후보들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육성하는 체계는 본사 차원에서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글로벌 리더가 필요한가?
글로벌 리더십에 대해서는 다양한 정의들이 있다. 예를 들면 최소한 2개 이상의 외국어 능통, 다양한 문화적 체험, 수준 높은 글로벌 에티켓, 타문화에 대한 이해 능력, 조직 내 다양성 관리 역량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런 능력을 골고루 갖춘 ‘수퍼맨’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글로벌 조직이 필요로 하는 인재에 대해서는 좀 더 현실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크리스토퍼 바틀렛과 수만트라 고샬은 “보편적인 글로벌 경영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사업 경영자(General Manager), 국가별 경영자(Country Manager), 직능별 경영자(Functional Manager)라는 세 종류의 전문가 집단이 다국적 기업이 원하는 리더 집단이다” 라고 말한다.
우리 기업들 역시 필요한 글로벌 리더의 요건을 좀 더 세분화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예를 들어 해외 현지에서 요구되는 리더는 현지의 중요 정보를 선행적으로 감지하고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현지 인재를 확보하고 리드해 나갈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본사 경영진과 원활히 소통함으로써 글로벌 전략의 수립과 실행에 기여하여야 한다. 본사에서 요구되는 글로벌 리더십은 글로벌 통합적 사고를 바탕으로 사업 전략을 수립하고 조직을 설계 및 운영하는 역량이다. 글로벌 사업의 발굴, 추진 등에 따른 전 세계적인 자원 활용 및 조정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가?
현실적으로 우리 기업들에게 보다 절실하게 요구되는 글로벌 리더는 그리스토퍼 바틀렛이 말하는 국가별경영자(Country Manager)와 같은 유형의 리더이다. 현지 조직을 책임질 리더급 인재 양성이 사업의 글로벌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해외 현지의 사업과 조직을 잘 이끌어갈 수 있는 글로벌 리더의 확보는 외부 영입과 내부 육성의 두 가지 방식을 조직의 여건에 맞추어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1) 현지 조직 주도의 외부 영입
우리 기업들은 단기적으로 볼 때 외부 영입 중심의 리더십 확보가 불가피하다. 조직 내부에 글로벌 경험과 해외 현채인 조직 관리 역량을 겸비한 리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외부 영입의 1차적 책임은 해당 지역 정보에 접근이 용이한 현지 조직에 있다. 따라서 현지 조직에서는 철저한 검증 프로세스를 만들고 인터뷰 스킬을 높여야 한다. 리더급 영입은 실패할 경우 조직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뉴욕 소재 Citi는 전 세계 100여 개 국에 5,000여 개 이상의 지사를 둔 금융기업으로 현지에서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미국 외 지역에서 근무하고 있는 3천 명 정도의 HR 직원들은 현지 조직에 맞는 역량 메트릭스를 정의하는 등 충분한 시간을 두고 맞춤식 글로벌 리더 양성 계획을 수립하여 차근차근 실행한다. 이들을 통해 글로벌 리더를 해당 지역에서 발굴, 양성함으로써 현지에 파견되는 외국인 임직원 수를 줄이고 있다.
(2) 본사 차원의 내부 육성
외부 영입에만 의존하게 되면 조직 운영의 연속성과 일관성이 무너질 우려가 크다. 따라서 글로벌 리더십 파이프라인의 구축을 통해 현지 조직 책임자를 내부에서 양성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리더의 내부 육성은 통합적 관리가 필요하므로 본사가 책임을 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글로벌 리더의 통합 관리는 먼저 현지 조직의 법인장 및 경영진, 그리고 해외 근무 경험이 있는 본사의 주요 인재들을 중심으로 글로벌 리더풀을 확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 다음 이들에 대한 중장기적 경력개발 프로그램을 적용하도록 한다. 동시에 글로벌 핵심 포스트를 정하여 운영하되 철저하게 실력과 태도에 기반한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본사 차원에서 글로벌 리더 후보들의 배치와 이동, 성과, 보상 등을 관리해 나가는 것이다.
네널란드 소재의 로얄 필립스 일렉트로닉스는 향후 글로벌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34~36세의 인재들로 글로벌 리더 후보풀을 구축하고 리더 양성을 위한 경력개발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다. 리더 후보들에게는 최소 5~7년간의 글로벌 리더십 개발 기간이 부여된다. 그 동안 2~3개 국가, 사업부 등을 경험하면서 글로벌 사업 전략과 인재 활용 리더십을 개발하는 것이다.
글로벌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조직의 글로벌화가 필수이다. 우리는 흔히 글로벌화의 수준을 숫자로 인식하곤 한다. 예를 들어 국내 주요 기업들의 외국인 경영진 구성비율이 2000년대 들어서는 2% 내외에서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는 것을 글로벌화의 답보 상태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화를 숫자나 통계로만 이해하게 되면 조직의 글로벌 역량을 오해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글로벌 조직 관리는 현지화와 통합화가 조직 역량과 현지 여건에 맞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핵심 열쇠이다. 현지화는 그 개념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바탕 위에 진출 지역의 환경과 조직 역량 수준에 맞는 추진 방식이 중요하다. 통합화는 현지화 과정에서 미리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특히 본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구체적인 글로벌 통합화의 모습은 조직간 원활한 소통과 교류를 통한 지속적 학습과 경영 철학의 공유로 나타난다. 동시에 본사와 현지 조직간 협력에 기반한 글로벌 리더십 파이프라인이 제대로 작동될 때 글로벌 조직 관리의 지속성과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LG Business Insight 10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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