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는 소인’이라는 말이 있다.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서 현재의 모든
발전은 과거 누군가의 연구와 업적에 기반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작은 소인일지라도 거인의 어깨 위에 오르면 거인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다. 시장을 선도한 혁신적인 아이디어 밑에는 기업이 오랜 시간 쌓아온 knowledge, skills과 다른
아이디어들이 있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거칠고 엉뚱한 상상들이 기업의 knowledge, skills에 바탕을 두고, 수많은 다른
아이디어들과 연결되어 미래를 이끌어 갈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재탄생하였다. 더 멀리 바라 보기 위해서 거인은 더 커져야 하고 소인은
더 높아진 어깨를 딛고 올라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픽사는 구성원 개인의 knowledge, skills을 구성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기업 전체의 자산으로 만들었다. 또한 픽사대학을 두어 다른 분야에서 오는 신선한 자극을 통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풍부해지도록 하고 있다.
혁신적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거인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IDEO는 특별한 브레인스토밍 원칙이 있다. ‘질 대신 양을 추구하라’, ‘아이디어를 평가하지 말고 다른
아이디어로 살을 붙여 나가라’는 원칙은 직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토양이 되고 있다. 시각적으로 구체화될 때
아이디어는 더 풍성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IDEO는 아이디어에 대한 복잡한 보고서 대신 프로토타입을 먼저 만들라고
이야기한다.
창의를 막는 가장 큰 장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실패에 대한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은 성공한 아이디어에 대한 보상보다 강력한 동기부여를 가져오기도 한다. 나이키는 직원들의 무모하고 엉뚱한 아이디어까지 기꺼이
수용한다. 하나의 엉뚱한 상상이 혁신제품으로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아이디어들과 프로토타입들이 만들어지고 실패한다. 이러한 기다림의
바탕에는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존중하고, 실패를 창의로 가는 하나의 과정임을 받아들이는 나이키의 조직문화가 있다.
자신의 어깨를 내어주는 거인과 그 어깨를 딛고 올라가는 용기 있는 소인이 기업의 혁신을 만들어간다. 거인을 키워 나가고 소인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일. 이것이 기업이 놓치지 말아야 할 역할이다.
Ⅰ. 집단 창의는 생각의 연결에서
“Think Small (작게 생각하라)”
폭스바겐(Volkswagen)과 함께 등장한 이 짧은 문구 하나가 고객의 사고와 미국 자동차 소비 시장을 변화시켰다.
1934년 히틀러는 독일의 경제 부흥을 위해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에게 “어른 2명과 어린이 3명을 태우고, 낮은 연비로 시속
100km 이상으로 달릴 수 있는 저렴한 소형차”를 만들 것을 지시했다. 독일에서 성공을 거둔 폭스바겐은 1950년대 미국시장에
진출하게 된다. 자동차는 크면 클수록 좋다는 미국인들의 차에 대한 선호는 폭스바겐이 넘기 힘든 장벽이었다. 이 때 신문 광고지면에
작게 축소된 폭스바겐과 함께 “Think Small”이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이 광고는 미국인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광고와 함께 낮은 연비, 합리적인 유지비 등 소형차를 선택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혜택을 강조하였다. 신선한
충격을 준 광고에 힘입어 폭스바겐은 점차 미국인들의 호응을 얻기 시작했고 이후 미국 시장에서 급성장했다. 고객의 생각을 바꾼
것은 “Think Small”이라는 단 하나의 문구였다. 이처럼 혁신제품이 반드시 새로운 기술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발상의 전환도 큰 혁신을 이룰 수 있다.
‘아르키메데스의 왕관, 뉴턴의 사과’
이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든 사람들이 늘 보아 왔지만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한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아르키메데스,
뉴턴 모두 각 분야의 전문가였다는 공통점도 있다. 물이 가득 찬 목욕탕에 들어가면 물이 넘친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몸의
부피만큼 물이 넘쳐 흐른다는 것을 깨닫고 물체의 부피와 무게의 관계를 밝힌 아르키메데스는 당대 최고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다.
누구나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아 왔지만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사람은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뉴턴이었다.
이처럼 창의라고 하는 것은 늘 우리와 함께 있어 왔지만 보지 못한 것일 수 있다. 다만 창의는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안에 대해 풍부하게 경험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나온다.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테레사 아마빌 교수는
기업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서는 지식과 경험에 기반한 전문성(knowledge), 생각을 전개시키는 과정에 대한
기술(skills),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열정(motivations)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업의 내부 인력만큼 자사
제품, 경쟁사, 관련 기술, 고객가치, 시장 동향에 대해 연구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위한 동기 부여를
해줄 수 있는 프로세스가 뒷받침된다면 내부 인력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이다.
개개인의 창의성을 연결하여 집단 창의성으로
“인류 역사에 등장한 대부분의 탁월한 혁신은 천재 한 명의 머릿속에서 툭 튀어나온 게 아니라 흩어져 있는 여러 아이디어가
교류하고 충돌하고 융합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스티븐 존슨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창의적 인재를 채용했다고 해서 조직이 당연하게
창의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스탠퍼드대학의 샘 서튼 교수도 “지속적인 혁신은 한 명의 천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며
“모든 직원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제안하고 과감하게 실천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 등이 갖추어져 있어야 진정한 창의적
기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집단 창의성은 개인의 창의성이 산술적으로 합산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능력 및 활용할 수 있는 프로세스, 창의성을 위한 조직 환경(Organizational
climate for creativity)에 의해 결정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창의적인 조직을 만드는 것은
개인 각각의 재능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을 하나하나 연결하여 집단 창의성으로 만들 수 있는 프로세스인 것이다. 스티븐 존슨은 집단
창의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협업적 혁신을 강조하였다. 최근 700년 동안 탄생한 200여 개의 뛰어난 혁신을 추적한 결과 여러
아이디어의 연관성을 찾아내 융합하는 협업적 혁신이 위대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협업적 혁신은 아이디어가 엉뚱하다고
해서 무조건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아이디어를 붙여 사슬처럼 연결해나가면서 키워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개개인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프로세스를 통해 사슬처럼 연결되어 커져갈 때 기업의 창의는 극대화된다.
이처럼 집단 창의성을 위해 기업은 개인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개인 하나하나의 아이디어를 사슬처럼 연결해나가는 프로세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Ⅱ. 집단 창의를 통해 혁신을 만드는 기업들
1.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픽사(Pixar)
픽사 직원들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한 픽사 대학의 건물에는 라틴어로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Alienus Non
Diutius)”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개인의 창의성 향상과 협업을 통해 집단 창의성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픽사의 철학이
담겨있다. 컴퓨터의 화소를 의미하는 ‘Pixel’과 예술 ‘Art’의 합성어로 만들어진 픽사는 최초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분야에
뛰어들어 사람들의 상상 하나하나를 영화로 만들어냈다. 3천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그들의 첫 장편영화 ‘토이스토리’는 미국에서
1억9천만 달러, 전 세계적으로 3억6천만 달러의 놀라운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픽사는 창의력 넘치는 탄탄한 스토리와 현실감 있는
CG(Computer Graphics)로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지금까지 꾸준히 흥행작들을 내놓고 있다. 픽사의 주고객은
어린이들이다. <몬스터 주식회사>에서의 “요즘 아이들은 예전처럼 겁먹지를 않아(Kids don’t get scared
like they used to)” 라는 몬스터들의 대사는 픽사의 고민과 열정을 대변하고 있다. 나날이 상상력이 풍부해지는
어린이들을 사로잡기 위해서 픽사는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처럼 창의력이 넘쳐나는 한편의 영화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250명이 팀을 이루어 4∼5년에 걸쳐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토이 스토리>의 명대사이자
우주비행사 버즈 라이트이어가 도약을 준비할 때마다 외치는 “무한을 뛰어넘어, 비상(To infinity and
beyond)!”의 대사처럼 픽사는 창의성의 비상을 추구하고 있다.
창의성에 경험을 더한다, 두뇌위원회(The Brain Trust)
창의의 구성요소인 knowledge, skills은 한 사람의 머리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전체에 흐를 수 있어야
한다. 회사가 knowledge, skills을 자산화하여 구성원 모두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을 때 집단 창의성은 극대화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픽사에는 ‘두뇌위원회’라는 프로세스가 있다. 두뇌위원회는 경험 많은 8명의 감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작팀이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현재의 진행 상황을 보여주며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조언을 구할 수 있다. 위원회에서는
자신들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을 벌인다. 이후 제작팀은 위원회의 조언을 받아들일지 결정한다. 제작팀은
언제라도 편안하게 위원회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지만, 제작팀 스스로가 문제의 해결방식을 결정함으로써 창의성을 보호받는다.
T자형 인재를 위한, 픽사 대학
창의적인 기업들은 한 가지 분야에서 깊이 있는 전문가인 동시에 다방면에 흥미와 지식을 갖고 있는 ‘T자형 인재’를
선호한다. T자형 인재의 경우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knowledge, skills을 충분히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분야에서 오는
신선한 자극을 받아들여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하는데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픽사 대학은 미술, 애니메이션, 영화제작 등과
관련한 수백 종류의 강좌를 제공하는 사내교육 프로그램이다. 모든 직원들을 대상으로 데생, 조각, 컴퓨터 프로그래밍, 연기, 영화
제작 등 모두 110개의 코스가 운영된다. 직원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4시간 교육을 받아야 한다. 전문지식이 풍부한 직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신선한 자극을 늘릴 수 있도록 다른 분야를 교육하는 것이다. 요리사가 되고 싶은 생쥐 이야기를 그린
‘라따뚜이(Ratatouille)’에서 주인공인 래미의 “두 가지 맛을 서로 섞으면 특별한 새 맛이 창조된다(Combine one
flavor with another, and something new is created)”말처럼 픽사의 직원들은 다른 분야의
만남을 통해 꾸준히 창의에 대한 자극을 받는다.
예술과 기술의 만남, 중앙 광장
픽사의 건물은 광장을 기준으로 하여 좌우의 사무실이 마주보고 있다. 이성과 감성을 조절하는 좌뇌와 우뇌와 같이 좌측
사무실은 기술 분야, 우측 사무실은 예술 분야가 위치하고 있다. 좌뇌와 우뇌가 만나는 중앙 광장은 픽사의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곳이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가 1999년 픽사의 본사를 건축할 때 가장 신경을 쓴 것이 중앙 광장이었다. 픽사의 다양한 예술가,
기술자, 과학자 등이 서로 다른 곳에서 일을 하다가도 언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회의실, 카페테리아,
화장실과 같은 주요시설을 모두 중앙 광장에 배치하였다. 때문에 사람들은 방에서 나와서 우연한 만남을 많이 가질 수밖에 없다.
초기에 직원들은 편의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 중앙까지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불편해 하였지만 스티브 잡스의 의도대로 중앙
광장을 통해서 이어진 수많은 인맥과 그들이 주고 받은 대화는 예상하지 못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이
픽사를 세계 최고의 창의적인 집단으로 만들어 주었다.
2. 세계의 이노베이션 공장, IDEO
20년간 350개의 디자인상을 휩쓴 세계 최고의 디자인 컨설팅 회사인 IDEO. IDEO에는 집단 창의성을 위한 프로세스와 문화가 있기 때문에 혁신제품과 새로운 고객 경험이 끊임없이 탄생하고 있다.
‘손으로 생각하기(Thinking with your hands)’
직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아이디어와 관련된 보고서와 프레젠테이션을 요구한다. 이 과정 속에서
“다른 기업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관련 케이스는 있는가?”, “과연 성공할 수 있겠는가?” 등의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경우 일반적으로는 생성 초기에 거칠기도 하고 다소 엉뚱하기도 하다. 다듬어지지 않은 초기의 좋은
아이디어들이 의사결정이라는 명목 아래 비판과 우려 속에서 사장된다. 형식이 혁신을 가로막는 것이다. IDEO CEO인 팀 브라운은
“아이디어가 있을 때 망설이지 말고, 프로토타입부터 만들라(Thinking with your hands)”고 말한다.
IDEO는 프로토타입과 관련하여 ‘대략의(Rough), 신속한(Rapid), 올바르게(Right)’이라는 3R 원칙을 갖고
있다. 프로토타입은 모든 것을 다 완성할 필요 없이 대략적으로(Rough) 의도한 부분만 올바르고(Right)
신속하게(Rapid)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시각적으로 구체화되면 더 많은 아이디어가 생긴다. 프로토타입을 보여주며 내부 직원과
고객의 의견을 듣는다. 신속하고 구체화된 피드백을 받으면서 프로토타입을 수정해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처음에 거칠었던
프로토타입은 고객의 니즈에 가까운 제품으로 수렴해간다. 애플의 최초 컴퓨터 마우스도 IDEO의 프로토타입에서 나왔다. IDEO의 한
디자이너가 방취제 뚜껑을 플라스틱 버터 용기 밑바닥에 붙여본 것이다. 주변에 있는 재료로 만든 이 프로토타입은 오늘날 PC용
마우스의 원형이 되었다.
‘질 대신 양’, IDEO의 특별한 브레인스토밍 원칙
IDEO 경쟁력의 원천은 직원들의 아이디어에 있다. 그 원천의 핵심에는 IDEO만의 특별한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 원칙이 있다. ‘질 대신 양을 추구하라’와 ‘아이디어를 평가하지 말고 다른 아이디어로
살을 붙여 나가라’는 것이다.
질 대신 양을 추구한다고 해서 무조건 회의를 오래 하지는 않는다. 회의시간은 1시간~1시간 반을 기준으로 한다. 회의가
길다고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질보다 양이 중요하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 동안 사람들은 가능한 많은
아이디어를 생각나는대로 말한다. 이 과정에서는 어떠한 의견도 평가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지켜진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처음에는
거칠기 마련이다. 평가하는 대신, 다듬어지지 않은 아이디어에 다른 팀원들이 살을 붙이면서 키워나간다. 쏟아져 나온 아이디어를
팀원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화이트보드에 적거나 포스트잇을 벽에 붙여가며 아이디어의 상호 관계를 표시한다. 단순히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머릿 속에 있던 구성원들의 아이디어들을 그때그때 기록하며 시각화하는 것이다. 프로토타입을 우선적으로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각적으로 구체화 될 때 아이디어는 풍부해진다는 것을 IDEO는 잘 알고 있다.
이러한 프로세스를 통해 참신한 아이디어의 혁신제품들이 탄생하였다. 자전거 정수기 아쿠아덕트 (aquaduct)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물이 부족한 가난한 국가들을 위한 제품이다. 더러운 물을 뒷부분에 있는 트렁크에 싣는다. 페달을 밟아 이동하는
동안 페달의 구동으로 작동하는 펌프를 통해 물이 정수된다. 정수된 깨끗한 물은 앞부분에 있는 물통에 저장된다. 끊임없이 창의성을
추구하는 기업 문화를 통해 IDEO는 제품을 디자인하는데 그치지 않고 쇼핑, 의료, 은행 등 각종 서비스와 소비자 경험까지
디자인하는 회사로 성장하였다. ‘디자인적 사고’로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함께 진행한 ‘잔돈은 됐어요(keep the
change)’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고객 관찰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잔돈을 모아 목돈을 만들고 싶어 하는 욕구와
간편하게 계산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찾아냈다. 그래서 ‘29.12달러짜리 물건을 산 뒤 30달러짜리 수표로 결제하고 나머지는 통장에
자동으로 적립해주는 서비스’를 생각해냈다. 이 서비스를 도입하고 1년도 안되어서 250만 명의 고객을 끌어들였고 결과적으로는
70만개 이상의 당좌예금(checking accounts)과 100만개 이상의 보통예금(savings accounts)을 신규로
유치하였다.
3.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나이키
나이키가 미국 경영 월간지 패스트 컴퍼니 (Fast Company)가 선정한 ‘2013년 50대 글로벌 혁신 기업(The
World’s 50 Most Innovative Companies 2013)’에 1위로 선정되었다. 패스트컴패니는 2012년
성공적으로 진행된 나이키의 혁신적인 실험인 ‘플라이니트 레이서(Flyknit Racer)’와 ‘퓨얼밴드(Fuel Band)’를
1위의 선정 이유라고 밝혔다.
아이디어가 아무리 무모하고 엉뚱할지라도(플라이니트 레이서)
‘좋은 아이디어가 처음에는 나쁜 아이디어로 보이기도 한다. 처음에는 터무니 없게 들리기 때문이다.” (Great ideas
have something incommon with bad ones: early on, they both sound
ridiculous.)
플라이니트 레이서는 플라이니트 라인의 첫 번째 운동화로 한 장의 갑피로 이루어져 양말을 신은 것처럼 느껴지는 러닝화이다.
플라이니트가 특별한 이유는 깃털처럼 가벼운 신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러 개의 천을 덧대어 만든 것이 아니라 실로 직조하여
만들어진, 제조 방식의 혁신에 있다. 제조에 필요한 만큼의 실만 사용하여 신발을 만들어간다. 나이키의 R&D센터인
이노베이션 키친(Innovation kitchen)에서는 이를 두고 ‘모든 불필요한 부분을 없앤 혁신’이라고 발표하였다.
플라이니트의 시작은 ‘고무 밑창을 붙인 양말’의 형태였다. 그러나 이노베이션 키친은 이 무모하고 엉뚱한 제안을 받아들여 '갑피와 밑창이 하나로 이루어진 플랫폼'이라는 혁신 제품을 탄생시켰다.
이노베이션 키친에서 나이키의 혁신이 시작된다. 이곳은 단순하고 엉뚱한 상상들을 창의가 넘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제품들로
만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설립자 빌 보어먼이 아내가 아침에 와플을 굽는 것을 보고 와플 모양의 운동화 밑창을 처음 만들었던 일화는
이노베이션 키친에 전설처럼 전해져 온다. 2000년, 밑창에 독특한 디자인으로 돌풍을 일으킨 나이키 샥스 역시 신발 밑창에
스프링을 달아보겠다는 엉뚱한 상상으로부터 출발했다. 이처럼 나이키의 혁신은 직원들의 무모하고 엉뚱한 아이디어까지 기꺼이 수용하는
창의적인 조직 문화에서 탄생한다.
실패는 혁신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 “Just do it” (퓨얼밴드)
나이키의 혁신을 대변하는 퓨얼밴드는 하루 동안의 활동량을 측정하는 팔찌로서 걷거나 뛰는 모든 움직임이 운동거리 및 시간,
칼로리 소모량 등으로 측정되어 팔찌의 LED 화면에 표시된다. 아이폰과 동기화하면 운동량을 그래프로 볼 수 있고,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다른 이용자와 운동량을 비교할 수도 있다.
나이키는 퓨얼밴드를 통해 단순한 스포츠 용품 회사가 아닌, ‘기술, 데이터, 서비스’ 기반의 디지털 집단으로 나아가고 있다.
퓨얼밴드 역시 하나의 아이디어로, 한 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최초 아이디어였던 ‘테니스용 머리띠’에서 최종적으로
‘팔찌’ 형태의 상품화가 되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어디에 착용할 것인가?’, ‘어떤 색깔, 어떤 재질로 할 것인가?’
등의 고민 속에서 수많은 아이디어들과 프로토타입들이 만들어지고 실패했다. 이러한 기다림의 바탕에는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존중하고,
실패를 창의로 가는 하나의 과정임을 받아들이는 나이키의 조직문화가 있다. 나이키의 디지털 스포츠 부문 스테판 올랜더 부사장은
“진짜 멋진 제품은 제약 없이 테스트하면서 탄생한다.”고 말한다.
하버드대 경영대의 에이미 C. 에드먼슨 교수는 “효율성을 강조하는 과거의 권위적 조직과 혁신에 중점을 둔 학습조직의 결정적
차이는 실패에 대한 태도”라고 말한다. 창의라고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데, 실패가 용인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도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창의를 막는 가장 큰 장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창의를 위해서는 실패는 혁신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는 인식과 이를 구현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실패에 대한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은 성공한
아이디어에 대한 보상보다 강력한 동기부여를 가져오기도 한다.
Ⅲ. 거인의 어깨 위에 서면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멀리 바라 보았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If I have seen
further it is only by standing upon the shoulders of giants).”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이 남긴 말이다. 뉴턴의 이 말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는 소인(nanos
gigantium humeris insidentes)’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서 현대의 모든 발전은 과거 누군가의 연구와
업적에 기반하고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근대 과학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며 수학과 물리학의 주요 이론을 확립한 천재 과학자 뉴턴은
자신을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는 소인’에 비유하며 자신의 업적은 과거의 과학자들의 경험과 연구에 기반한 것이라고
겸손해했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를 선보이던 날, 아이패드에서 전자책을 사볼 수 있는 ‘아이북스’를 소개하며 “아마존은 킨들이라는
훌륭한 전자책 단말기로 전자책 시장을 열었지만 애플은 아마존의 어깨를 딛고 올라서서 그들보다 더 멀리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는 소인’의 표현은 현재의 기업들에게도 적용된다.
멀리 바라 볼 수 있는 소인의 발 밑에 거인이 있듯이, 시장을 선도한 혁신적인 아이디어 밑에는 기업이 오랜 시간 쌓아온
knowledge, skills과 다른 아이디어들이 있었다. 아무리 작은 소인일지라도 거인의 어깨 위에 오르면 거인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다듬어지지 않은 거칠고 엉뚱한 상상들이 기업의 knowledge, skills에 바탕을 두고, 수많은 다른
아이디어들과 연결되어 미래를 이끌어 갈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재탄생하였다.
더 멀리 바라 보기 위해서 거인은 더 커져야 하고 소인은 더 높아진 어깨를 딛고 올라가기 위한 용기가 필요하다. 기업은 더
큰 거인을 위해 기업 전체의 knowledge, skills과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키워야 한다. 구성원 개인의
knowledge, skills이 한 사람 머리 안에 머물면 거인은 생겨나지 않는다. 픽사의 두뇌위원회처럼 개인의
knowledge, skills이 기업 전체에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게 하여 구성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기업 전체의 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혁신적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거인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들이 주변의 아이디어들과 연결되어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되어간다. IDEO가 아이디어 회의에서 비난과 문제점을
지적하는 대신 칭찬과 다른 아이디어로 살을 붙여 가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은 기업 내 아이디어를 풍성하게 하기 위한 노력이다.
거인이 커질수록 높은 어깨를 딛고 올라가야 하는 소인에게는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실패로 인해 받게 될 비난과
이에 따른 책임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두려워한다. 혁신이란 본질적으로 실패의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많은
아이디어들이 실패하는 것은 당연하다. 실패 또한 하나의 배움이라는 나이키와 같은 기업 문화가 있을 때 소인은 거인의 높은 어깨를
딛고 올라가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자신의 어깨를 내어주는 거인과 그 어깨를 딛고 올라가는 용기 있는 소인이 기업의 혁신을 만들어간다. 거인을 키워 나가고 소인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일. 이것이 기업이 놓치지 말아야 할 역할이다.
- LG Business Insight 12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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