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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9. 11. 10:12
이탈리아 남성복 회사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이하 제냐)'는 고급 남성복의 대명사다. 창업자의 이름을 딴 이 회사의 맞춤복은 한 벌에 4000만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 작년 매출은 1조 2000억원에 이른다. 제냐 가문이 소유와 경영을 하고 있는 이 회사가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창업자의 손자인 질도 제냐(Gildo Zegna) 회장은 Weekly BIZ와의 인터뷰에서 제냐의 100년 장수 비결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1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고를 추구하라

창업자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산맥 기슭의 작은 마을 트리베로(Trivero)에서 태어났다. 생태학자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원단 공장을 물려받아 기업가가 됐다. 그는 당대 최고로 치던 영국산을 뛰어넘는 원단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가 처음 시작한 일은 엉뚱하게도 나무를 심는 것이었다.

이 유는 이렇다. 원단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점검하던 에르메네질도는 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네랄이 풍부하면서도 깨끗한 물로 만든 원단은 촉감과 색깔부터 달랐다. 그런 물이 샘솟으려면 좋은 숲이 필요하다. 그런데 당시 트리베로는 무분별한 벌목으로 황무지에 가까웠다. 그는 좋은 원단을 얻기 위해선 숲이 살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10년에 걸쳐 침엽수와 진달래 나무 50만 그루 이상을 심었다. 최고의 품질을 얻기 위해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질도 제냐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남들이 '쓸데없다'고 말하는 곳에 돈을 썼고, 또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하지만 100년을 넘기고 200년이 되면 우리의 쓸데없는 노력은 어엿한 가치(Value)가 된다."

2 얻은 만큼 돌려줘라

숲 을 가꾼 창업자 에르메네질도는 사람이 떠나는 곳에서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없다는 생각으로 트리베로 일대를 '살기좋은 마을'로 가꾸기 시작했다. 마을에 학교와 병원, 식당, 공공수영장 시설을 갖춘 '제냐 센터'를 지어 지역 시민에겐 거의 무료로 개방했다. 1930년대부터 이 일대에 대규모 생태공원을 조성해 관광객을 모았다. 여의도의 12배 가까운 면적에 호텔과 레스토랑, 캠핑장, 자전거 도로, 경마장, 암벽 등반로가 조성돼 있다.
창업자의 막내 손녀이며 이곳 책임자인 라우라 제냐(Laura Zegna)와 함께 산책로를 걸으니 곳곳에서 뻐꾸기와 종달새 우는 소리가 들렸고, 길모퉁이를 돌 때면 다람쥐가 휘리릭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제냐가 추구하는 나눔과 공존의 가치에 공감하게 된다"며 "제냐는 가치를 팔아 브랜드를 창조하는 회사"라고 말했다.

3 다음 세대까지 생각하라

창 업자의 고결한 정신도 한 세대가 지나면 낡은 유산이 되기 쉽다. 트리베로 한복판에 있는 제냐 기념관에 가보면 제냐가 어떻게 자신의 가치를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전수하는지 잘 드러난다.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집을 그대로 보존한 이 기념관은 '기록의 성(城)'이었다. 미국과 처음 계약할 때 주고받았던 서류부터 원단 표본 한장 한장, 옷 치수 확인서, 옷감 만드는 과정을 기록한 수첩, 창업자의 일기까지 모두 보관해 놓았다.

질도 제냐 회장은 "우리는 사소한 것을 소중히 여긴다"고 했다. "정원을 가꿀 수 있는 반나절의 여유, 가족과 함께하는 주말, 개와 함께 들판을 산책하는 즐거움, 이런 모든 사소한 것이 소중합니다. 기념관 역시 바로 이런 작은 것 하나하나가 모여 오롯한 현재를 이룬다는 믿음에서 만든 것이죠. 이를 토대로 우리는 천천히 미래를 향해 걸어갑니다. 성급하게 뛰어가는 대신 숨을 고르며 천천히요."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10/20100910012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