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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9. 7. 08:38

세대교체의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지금은 ‘불연속성의 시대’라고 한다. 세상의 변화가 과거와 단절되어 전혀 예상치 못하던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됨을 지적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 이면의 메커니즘을 들여다보면, 불연속의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면, 세대교체가 존재할 뿐이다.

여러분은 ‘이게 무슨 말인가’ 의아해할 것이다. 예컨대, 노란색의 자동차와 파란색의 자동차가 경주를 하고 있다고 하자. 처음에는 노란색 차가 앞서 달리고 있었는데, 파란색 차가 급가속하더니 어느 순간 파란색 차가 노란색 차를 추월했다. 1등이 바뀐 것이다. 선두 차만을 관찰하던 우리는 이 순간 불연속적 변화를 인식하게 된다. 노란색이 갑자기 파란색으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실은 어떠한가? 노란색 차도, 파란색 차도 모두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고 그들의 속도변화는 여전히 연속적이다. 즉 경기도중에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거나 차선을 이탈하는 현상은 적어도 정상적인 경주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진실은 ‘현상자체는 연속적으로 변화하나, 이를 관찰하는 우리가 선두 바뀜에 주목함으로써 연속적 변화를 불연속적 변화로 인식하는 것’뿐이다.

그러면, 이러한 선두 바뀜 현상 또는 세대 교체 현상이 과거라고 없었던 것이 아닌데 왜 현대에 와서야 이를 인식하기 시작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과거에는 관찰자의 수명에 비해 세대교체의 주기가 길어서 일생 동안 한두 번의 세대교체를 경험한 반면, 지금은 세대교체의 주기가 짧아져서 일생 동안 셀 수도 없이 많은 세대교체를 경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얘기가 이렇게 전개되면, 또 다른 의문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세대교체의 주기는 왜 짧아지고 있는가?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성능이 뛰어난 새로운 자동차가 계속 발명되고 있는 것이고, 둘째는 이 고성능 자동차가 경주에 참여하여 빠른 속도로 선두를 갈아치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불연속적 변화의 핵심은 ‘새로운 고성능 자동차의 출현과 이들의 경주 참여’이며, 이로 인한 빠른 세대교체는 ‘고성능의 새로운 자동차 발명’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빠른 변화의 핵심 메커니즘은 ‘새로운 우수 종자의 탄생과 이들의 생태계 참여’라는 것이다.

작은 ‘변화’가 아니라 정체성을 바꾸는 ‘재탄생’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컨버전스’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디지털 세상의 수많은 세대교체를 목도하고 있다. 애플이 내놓은 아이폰, 아이패드가 그렇고, 이로 인해 촉발된 스마트폰 경쟁이 그러하다. 여기에 질세라, 구글은 구글폰을 내놓더니, 이제는 TV영역에서 구글TV와 애플TV가 LG, 삼성, 소니 등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TV제조의 강자들과 한판 겨루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애플은 폐쇄형 OS를 기반으로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던 회사고, 구글은 웹기술의 발전에 편승해서 가장 강력한 광고 기반, 수익 기반을 구축해낸 회사다. 굳이 종류를 나누어 보면 애플은 컴퓨팅 하드웨어 업체이고, 구글은 네트워크 기반 소프트웨어 또는 콘텐츠 유통업체에 가깝다. 그런데 이들이 전통적인 정보통신 영역이던 이동통신 단말기 시장에 진입을 시도하더니 이제는 TV시장으로의 진입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전통적인 시장지배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분명 컨버전스를 통한 시장 경계의 붕괴를 계기로 이동단말은 물론 가전 영역으로의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외계종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들 외계종은 생긴 모습에서부터 행동양태 그리고 이를 지배하는 사고방식에 이르기까지 종래의 종자와는 전혀 다르다. 바로 ‘이종교배’를 통해 새로운 모습, 새로운 행동 양식, 새로운 사고 체계 및 가치관을 가지고 태어난 잡종이 강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생태계를 전면 교란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한때는 디지털 컨버전스의 강자였다. 2000년대 전반기 디바이스 융합을 추진한 LG전자와 삼성전자가 그랬고, 중후반기로 가면서 서비스 융합을 추진한 LGT, KT, SKT 등 통신사업자들이 그랬다. 그러나 2000년대 첫 10년을 마감하는 지금, 이들이 공세적 위치에서 수세적 위치로 전락한 것은 컨버전스에 대한 열정이 식어서 또는 컨버전스 혁신의 메너리즘에 빠져서라기보다는 그들의 혁신이 지역적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넓은 의미의 산업 간 경계를 무너뜨리는 진정한 환골탈태(換骨奪胎)의 용기를 내지 못해서다.

사실 생태계의 그 어느 유기체도 정체성의 인식을 가지고 있어서, 한번 자신이 누구라고 규정하고 나면, 이를 바꾸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는 순간, 자신은 더 이상 자신이 아니라고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디지털 컨버전스가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은 디지털 컨버전스야말로 디지털 생태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조차 바꾸어버리는 ‘디지털 환골탈태’이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영역에서 우리는 이러한 환골탈태의 사례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제과·제당업계를 대표하던 회사인 오리온과 제일제당이 온미디어와 CJ엔터테인먼트라는 미디어기업으로 변신한 것이나, 펄프회사였던 노키아가 이동단말의 세계적 강자로 부상한 것 그리고 최근 삼성전자가 에너지와 바이오메디칼 산업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한 것 등은 자기부정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고자 한 시도이다.

컨버전스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 어려운 디지털 컨버전스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추구해야 하는가? 답은 바로 생존하기 위해서다. 다른 생각의 수용, 기득권의 포기, 자존심을 버리고 자신을 낮추기, 자신보다 우수한 유전자를 찾아 교배하기를 거듭하지 않으면, 처절한 세대교체경쟁에서 자신의 유전자를 보전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내부혁신을 통해 계속적으로 나 자신을 새롭게 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순간, 나보다 더 생존력이 강하고 우수한 종자가 나타나 나를 대체하고 만다.

1+1=3 정도의 시너지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1+1=10 정도 되는 내부혁신으로는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성장은 차치하고, 지속적인 생존조차 보장할 수 없다. 문제는 절대적 혁신의 양이나 속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혁신의 양과 속도에 있다. 매순간 새로운 개념의 자동차가 나타나 경주에 참여하는 1+1=∞의 게임에서 내차의 시속 200km는 무의미하다. 다른 모든 차가 시속 300km로 달리고 있다면 말이다. 지금 디지털 생태계의 최대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애플이나 구글은 지난 5년 동안 적어도 30~40개의 벤처기업을 인수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어 나갔다. 지속적인 수혈을 통해 자신의 유전자까지 바꾸어나가는 자기부정의 혁신 없이는 다가오는 본격적인 디지털 컨버전스 세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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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장석권│디지털융합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