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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9. 7. 08:37

점점 확장되고 있는 컨버전스의 영역

21세기 사회는 컨버전스 또는 디지털 컨버전스(Digital Convergence)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들 한다. 컨버전스라는 용어는 다의적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컨버전스는 한 점에의 집중, 집중성 내지는 수렴을 뜻한다. 하지만 정보사회에서 디지털이라는 말과 결합된 컨버전스는 정보통신 분야의 단위기술들의 융합 또는 수렴을 통해 등장하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 또는 그런 경향을 일컫는 시대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컨버전스라는 말이 일차적으로 다양한 정보통신기술과 미디어, 상품과 서비스들의 융합, 하드웨어 간 융합, 소프트웨어 간 융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융합, 인간과 기계의 융합, 가상공간과 물리공간의 융합 등으로 이해되지만 그 의미와 파장은 단순히 그것들의 화학적 결합이나 경제적 효용 증대에 머물지 않는다. 복수의 기술과 미디어 또는 문화 요소들이 나름의 발전과 융합과정을 거치면서 이들 사이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결국에는 이들 하나하나를 구분하는 일마저 무의미해지는 상황 그리고 이로 인해 새로운 사회 질서와 문화 현상이 출현하고 우리들의 일상생활 전반이 변모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컨버전스 기술의 파급효과와 새로운 컨버전스 사회의 전조는 이미 경제, 사회, 문화, 정치 등 사회의 전 부문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첨단 과학기술을 건설·토목 분야에 접목한 인텔리전트빌딩과 스마트 하이웨이, 금융과 공학이 만난 금융공학 등은 이미 현실화된 컨버전스의 사례들이다. 과거 기계공학 분야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 역시 실제로는 기계공학, 전자공학, 재료공학과 디자인 분야가 서로 힘을 합친 결과인데, 미래에는 친환경 기술, 인간친화 기술 등이 추가로 합류함으로써 새로운 융합 자동차공학이 부상할 것이다.

동·서양의 음식이 융합되고 재즈와 국악이 서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에서 보듯 컨버전스의 외연은 최근 기술과 기술, 기술과 사회, 기술과 문화를 넘어 사회와 문화 간 융합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각별히 주시할 점은 컨버전스 공학의 발달에 따라 인간 중심의 사회 시스템이 해체되고 기술 시스템과 인간·사회 시스템의 공진화(co-evolution)를 근간으로 한 새로운 디지털 융합사회가 출현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컨버전스 이외에도 하이브리드, 퓨전, 크로스오버 등 융·복합을 의미하는 용어들이 과학기술 영역을 넘어 문화·예술이나 사회과학에서 활발하게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일과 여가, 소통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이러한 변화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한 사람의 생애주기(life cycle)를 통해 단계적이고 점증적이며 단선적으로 이루어지던 학습·노동·여가 활동의 배타적 패턴이 생애의 각 단계에서 그리고 전 과정에 걸쳐 뒤섞이고 혼융(混融)된다는 점이다. 먼저, 디지털사회로 접어들면서 전통적인 여가영역의 경계가 와해되고 여가의 의미와 지향이 변화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트렌드가 여가의 반여가(semi-leisure) 경향이다. 반여가는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여가를 자유의지에 따라 순수 여가 활동에 이용하지 않고 자신의 발전이나 향후의 더 큰 여가를 위해 유보하는 준여가 형태의 여가활동을 말한다. 이러한 반여가 트렌드는 엄격한 의미의 여가와 일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데, 컨버전스의 진전에 따라 이 현상은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 큰 여가생활의 향유를 위한 여가비용 확보 목적의 아르바이트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것과, 만남과 놀이가 결합된 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유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디지털시대의 일 또한 단순히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수준을 넘어 삶의 다양한 목표와 라이프 스타일이 결합되는 방식으로 재분화되고 융합되고 있다. 일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주요 변화를 보면, 장기계약 모델에서 프로젝트 계약 모델, 단순 전문가에서 복합 지식 전문가로 노동의 지식 정보화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물리적 직장의 해체와 일의 네트워크화(virtual company), 일을 위한 여가에서 여가를 위한 일, 직장 단위의 근로 복지후생 체계에서 복지후생의 개인화 또는 사회화, 제도적인 근로 시간의 단축에서 자발적인 근로 시간의 연장으로 일과 직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의 네트워크를 통해 재택근무, 스마트오피스, 모바일 오피스 등과 같은 ‘일자리의 유연화’, ‘일인 기업’, ‘원격생활(tele-living)’, ‘노동력 수급의 세계화’가 촉진되고 있다.

다른 한편, 뒤섞임·일시성·확장성이 특징인 융합적 소통의 증대에 따라 자유롭고 가벼우면서도 느슨한 인간관계가 융성한다. 서로에게 구속을 주는 결혼보다는 독신이나 동거 생활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것과 결혼 후에도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개방 결혼 등이 유행하는 것이 대표적인 징표들이다. 또 단순한 핵가족의 범주를 넘어 딩크족(族)` 1), 한부모 가족, 패치워크(patchwork) 가족 2) 등과 같이 이전에는 잘 용인되지 않던 ‘비표준’ 가족들이 확산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혈연관계가 섞이지 않은 ‘공동체 가족’, 떨어져 살지만 정서적 연대를 유지하는 ‘원(遠)거리 가족’, 가족 구성원 간에 출신 국적이 다른 ‘다문화 가족’, 동성애 커플이나 사이버 세계에서 결혼생활을 하는 ‘사이버 가족’ 등의 컨버전스형 가족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특별히 주목할 것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확산으로 ‘팸’이라는 독특한 커뮤니티가 젊은 누리꾼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패밀리(family)를 줄여 부르는 말인 팸은 사이버 세계에서 만난 사람들이 현실세계의 가족과 같이 서로의 일상사를 꼼꼼히 챙겨주는 사이버 가족 모임을 말하는데, 가족과 놀이가 융합된 컨버전스의 일상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나이 차와 성별에 따라 복잡한 촌수 관계를 정리해 족보를 만들고 사이버 가족끼리는 대화명에 같은 성(姓)을 쓰며 채팅할 때에도 엄마, 아빠, 형 등의 호칭으로 부른다. 때로는 현실 세계에서 가족 관계로 만나기도 한다. 컨버전스 시대의 소통은 기존의 구어 소통과 문자 소통 그리고 영상 소통을 모두 아우르는 복합적이며 혼성화된 소통이다. 이 같은 소통 방식의 다변화와 혼성화에 따라 서로 먼 곳에 떨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의 무리들이 같은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커뮤니티들은 더 이상 혈연이나 지연을 고리로 한 연줄망 공동체가 아니다. 이제 이들은 관심과 취향을 매개로 한 유연하고 즉시적인 연결망 공동체들이다.

예상할 수 없는 컨버전스에 유비무환 자세를 가져야

컨버전스의 동학이 가속화되면 문화의 범세계적 동질화와 자기문화에 대한 재각성, 신민족주의의 대두와 세계시민의식의 성장, 물질주의 지향과 탈물질주의, 보편주의와 특수주의처럼 이상스러운 것, 그럴 것 같지 않은 것, 잘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동시적으로 공존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상호 융합하며 공진화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정 기술 혁신이나 산업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문화, 경제, 과학, 기업 경영 등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서 동시에 목격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화와 지방화의 동시 진행을 의미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대량 생산과 소품종 주문 생산의 동시적 추구를 의미하는 대량 주문 생산(mass customization), 전문화와 전문적인 영역 구분의 파기를 의미하는 유연 전문화(flexible specialization), 모순된 요소들의 동시 추구를 의미하는 패러독스(paradox)와 같이 겉으로 보기에는 상충되는 현상들의 결합을 표현하는 독특한 신조어들이 양산되고 있다.

디지털 컨버전스가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이를 수반하는 기회 요인과 위험 요인은 무엇인지, 디지털 컨버전스 환경 아래에서 우리 행위의 준거와 행동 전략은 어떤 모습을 보일지에 대해 국가, 기업, 개인 모두 유비무환의 자세로 고민하고 성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1) Double Income, No Kids의 약자로,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영위하면서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부부를 일컫는다.
주2) 전 배우자의 자녀와 함께 사는 재혼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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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종길│덕성여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