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13. 11:44
[Business]
비즈니스 세계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모순된 상황이나 상충 관계에
있는 현상이 동시에 존재하는 패러독스 상황이 과거에 비해 빈번해지고 있다.
소비자 취향과 기술의 변화가 빠르고 경쟁이 치열한 전자산업에서 상반된 추세가 공존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전자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런 추세를 ▼개인화·맞춤화 vs. 표준화·규격화, ▼조립식 사업 모델(탈 제조화와 아웃소싱 심화) vs. 제조의 수직통합, ▼컨버전스 vs. 다이버전스, ▼스마트화(기능·성능 향상) vs. UI·폼팩터 혁신 등 4가지 관점으로 정리하고 이들 상반된 트렌드간의 역학관계와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의 발전과정을 살펴 보았다.
이를 토대로 기업들이 직면할 수 있는 패러독스 상황별로 대응 가능한 방안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상반된 2가지 트렌드 또는 상황이 시장 또는 고객별로 각기 독립적인 영역을 형성하는 경우에는 시장·고객별로 각기 다른 트렌드를 적용해 공략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둘째, 시기별로 주류 트렌드가 달라지면서 패러독스 관계에 있는 2가지 트렌드가 계속 반복되는 경향을 보이는 경우에는 시장 흐름을 잘 포착하여 타이밍별로 제품 혁신의 포인트를 달리 가져갈 필요가 있다. 셋째, 어떤 시기, 어떤 사업 영역에서도 근본적인 트레이드-오프 관계가 존재하는 상황인데, 이 경우에는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적극 활용해 2가지 상반된 상황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목 차 >
Ⅰ. 일상화 되어가는 트렌드 패러독스
Ⅱ. 전자산업의 트렌드 패러독스
Ⅲ. 시사점
Ⅰ. 일상화 되어가는 트렌드 패러독스
가족과의 여행을 계획하고 숙박할 호텔이나 콘도를 예약사이트를 통해 알아보니 여유 룸이 없었는데, 해당 호텔이나 콘도에 직접 문의해 보니 룸을 구할 수 있었다. 예약사이트는 가격은 저렴한 편이나 급할 때 방을 구하긴 힘들다. 직장 생활에서 1차 회식 이후 실제로는 모두가 2차를 원하지 않았는데, 기존 관성과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어 2차를 가게 되었다. 인터넷과 SNS 등의 발달로 많은 지식·정보들이 공유되면서 기업간 또는 개인간 지식·정보의 격차가 분명히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오픈된 지식·정보 중 정말 쓸만한 지식·정보는 찾기 힘들고 소위 디지털 디바이드(개인간의 정보 이용도 및 수용도 격차)는 심화되는 느낌이다. 이상과 같이 하루하루 빠르게 변화하는 생활 속에서 소비자들은 2가지 상반된 현상이나 경향을 동시에 목격하거나 체험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모순된 상황 또는 상충관계(Trade-off)에 있는 현상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른바 패러독스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기업 경영에서도 이러한 패러독스 상황이 발생하면서, 한 때 패러독스 경영이 화두에 올랐었다. 기업이 맞닥트리는 전통적인 패러독스 상황으로는 성장 추구냐 수익성 중시냐, 기술·제품 차별화냐 저원가 전략이냐, 규모의 경제 실현이냐 스피드 추구냐, 선발자(First Mover) 전략이냐 빠른 추종자(Fast Follower) 전략이냐 등을 들 수 있다. 패러독스 경영에서는 모순된 상황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 기업들은 전통적인 양자 택일 방식이 아닌 2가지 요소들을 조화시켜 최적의 해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한편 기업들이 기존 제품·서비스를 개선 또는 혁신하거나, 신 기술·제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사업 영역을 발굴·추진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방향성을 제공하는 트렌드에도 이러한 패러독스 상황이 발생한다. ▼글로벌화가 가속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지역화(Localization)가 심화되는 현상, ▼디지털 노마드(Nomad : 유목민) 트렌드 속에서 외부 활동보다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나 홀로 여가를 즐기는 코쿠닝 현상, ▼바쁜 일상 속 스피드를 추구하는 트렌드 속에서 생태·환경·문화·건강 등을 중시하며 여유롭고 편안함을 찾는 다운쉬프트 현상,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기업 활동에 참여하려는 프로슈머 트렌드 속에서 일상의 허드렛 일들을 아웃소싱하는 귀차니즘 트렌드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렇듯 상반된 트렌드가 공존할 때 기업들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인지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물론 지금까지는 주류 트렌드가 아닌 역 트렌드 또는 상반된 현상을 일시적 유행이나 틈새 시장 공략 논리로 생각해 왔던 것이 일반적이었다. 주류 트렌드는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이므로 쫓아가고 세부적인 사항에서 차별화하는 방법을 주로 구사해왔다. 하지만 이렇듯 주류 트렌드만을 추종할 경우, 진정한 차별화에는 실패해 레드오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반면 차별화에만 집착해 주류 트렌드를 도외시한다면 대규모 시장을 놓칠 우려도 발생할 수 있다.
트렌드에 있어 패러독스 상황이 생겨나는 이유로는 첫째, 복잡성의 증대를 들 수 있다. 고객 니즈와 더불어 제품·서비스의 다양화·복잡화 심화 등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계속 까다로워지게 되면서 기존 트렌드 내 제품·서비스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다수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지역간, 시장간, 사업·산업간 경계의 붕괴이다. 기존 가치가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가 형성되거나, 몇 가지 가치들이 혼합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업들은 이러한 패러독스 상황을 앞으로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른다.
Ⅱ. 전자산업의 트렌드 패러독스
소비자, 사업·경쟁, 기술 관점에서 보면 전자산업의 주요 트렌드 중에서 상반된 추세가 공존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전자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트렌드 패러독스를 ▼개인화·맞춤화 vs. 표준화·규격화, ▼조립식 사업 모델(탈 제조화와 아웃소싱 심화) vs. 제조의 수직통합, ▼컨버전스 vs. 다이버전스, ▼스마트화(기능·성능 향상) vs. UI·폼팩터 혁신 등 4가지 관점으로 정리했다. 패러독스 상황들은 전자 산업 고유의 특성이 작용한 산업 내 트렌드 뿐만 아니라 全 산업을 관통하는 메가 트렌드나 패러다임 수준의 변화도 포함되어 있다. 이하 해당 패러독스 상황 간의 역학 관계와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의 발전 과정 등을 살펴봄으로써 기업들이 향후 트렌드의 패러독스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시사점을 찾아본다.
● 개인화·맞춤화 vs. 표준화·규격화
전반적인 소득 수준 향상, 삶의 질 향상 추구, 개인주의 라이프스타일 만연 등으로 최근의 소비 패턴은 소비자 개인의 효용 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모하고 있다. 과거의 소비 패턴이 다분히 가격탄력적인 측면이 강했던 반면, 최근에는 소비자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를 제대로 구현한 제품·서비스에 대해서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자 산업에서도 개인화·맞춤화 트렌드는 이미 지속적인 트렌드로 자리잡아 왔다. 2000년대 들어 전자기기중 가장 개인화된 제품인 휴대폰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확대되어 왔고, 휴대폰 내에서도 통신, AV, 컴퓨팅 기능 간의 융합과 디자인 변화로 개인화·맞춤화된 제품이 지속 창출되고 있다. 최근 경제·사회 전반을 변화시키고 있는 스마트폰의 경우 특히 동일 기기를 가지고도 선호·사용하는 컨텐츠·애플리케이션이 개인별로 다를 수 있다. 즉 개인화·맞춤화 트렌드가 핵심 동인으로 작용하여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TV의 경우 전통적으로 가족간의 공유 특성을 가진 가전 제품이었는데, 최근 개인화 니즈가 작용하면서 세컨드(Second)TV가 많아지고, TV를 통해 개인화·맞춤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마트TV가 등장하고 있다. 향후에도 권력과 가치의 분산과 개인화, 대량 소비 시장의 쇠퇴와 롱테일의 확산 등으로 미래 비즈니스 환경은 다양하고 미세분화된 개인적 가치에 소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기업의 딜레마는 공급자 입장에서 개인화·맞춤화된 제품·서비스 제공을 위해 기획, 개발, 제조 등 비즈니스 전반을 고객에 맞춤화하게 되면, 코스트가 무한정 상승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H/W 제품의 경우 공급자 입장에서는 표준화·규격화를 통해 출시 모델을 단순화하는 것이 규모의 경제 효과를 극대화하고 적기 출시(Time-to-Market)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개인화·맞춤화의 최적 구현과 표준화·규격화 간의 패러독스는 소비자와 공급자 간의 전통적인 이해 관계 차이에서 오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트레이드-오프 관계이다.
이러한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우선 테일러링 모델을 들 수 있다. 이는 공급자들이 사전적인 고객 니즈 분석을 통해 다양한 상품 옵션을 구성해 놓고 소비자들이 이중에서 선택하게 하는 방안이다. 기업은 미리 구성해 놓은 상품 옵션별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 비용 측면의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릴 수 있고, 고객들은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선택할 수 있어 커스터마이징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 델의 온라인 다이렉트 비즈니스 모델, 애플의 MP3 관련한 아이팟/아이튠즈 모델 등이 그 사례이다.
플랫폼 기반을 활용하는 것도 개인화·맞춤화와 표준화·규격화 간의 패러독스를 해결하는 한 방안이다. 여기서 플랫폼이란 여러 개의 파생 제품·서비스를 효과적으로 개발, 제조할 수 있는 공통의 공유 기반을 의미한다. 노키아의 경우 디스플레이, 키패드, 배터리, 칩 등 주요 부품을 공유하는 소수의 기본 모델을 플랫폼화하고, 세분 시장별로 상이한 파생 기능이나 디자인 등을 맞춤 개발함으로써 규모의 경제 및 적기 출시를 실현해 왔다. 일본의 전자부품 회사인 기옌스는 센서, 계측기, 커넥터 등의 개발과 판매에 플랫폼 기반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옌스의 영업인력들은 신제품 개발 이전에 고객들과의 미팅이나 집중 인터뷰 등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부품 사양에 대한 니즈를 선 발굴한다. 이를 바탕으로 어떤 고객이 요구하는 부품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플랫폼 기반을 구축하고, 파생 사양에 대해서는 고객별로 맞춤 개발함으로써 비용 효율적인 맞춤화를 실현하고 있다. 고객이 직접 자신에게 맞는 제품·서비스를 기획·개발, 제조하는 데 참여시키는 프로슈머 모델도 발전된 형태의 개인화·맞춤화 방안이다.
보다 진화된 형태의 맞춤화 방안 등장
그러나 전자산업, 특히 기기 분야는 생산설비라는 물리적 투자가 존재하는 H/W의 특성상 완벽하게 비용효율적인 개인화·맞춤화를 실현하는 데 한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차별화와 맞춤화의 포인트를 H/W 기능이나 디자인 등이 아닌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까운 S/W적 요소, 컨텐츠·애플리케이션으로 가져가는 것이 보다 진화된 형태의 맞춤화 방안이 될 것이다. 애플의 앱스토어 모델을 예로 들어 보자. 애플은 개방과 인센티브 부여(Profit Sharing)를 통해 앱스토어에 방대한 컨텐츠·애플리케이션 공급 Pool을 구축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앱 스토어에 등재된 컨텐츠·애플리케이션 중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자유롭게 선택·이용할 수 있게 하였다. 동일한 기기를 사용하면서도 이용할 수 있는 컨텐츠·애플리케이션은 고객별로 각기 다를 수 있고, 고객들은 자신만의 맞춤화된 아이폰 사용 경험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향후 오감 센싱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 등 UI(User Interface) 혁신이 일어난다면 보다 진화된 형태의 지능형 맞춤화가 구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래의 TV 시청 환경을 예로 들어 보자. TV 앞에 서면 자동적으로 해당 사용자를 인식하고, 학습을 통해 축적된 시청 패턴을 분석하여 그 사람이 선호하는 동영상물이나 컨텐츠·애플리케이션을 추천하고, 평소에 관심이 큰 분야에 대한 인터넷 정보사이트에 자동 접속해 준다. 또한 오감 센싱으로 사람의 체온, 뇌파, 홍체 등을 통해 감정 신호 및 스트레스 정도를 파악하여, 이용자의 감정 상태를 감안하여 적절한 컨텐츠를 추천해 준다. 슬플 때는 코믹 영화를 보여주고, 스트레스가 쌓여 있을 때는 활발한 액션물을 보여 주는 등의 지능형 맞춤화 서비스가 가능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 조립식 사업 모델(탈 제조화와 아웃소싱 심화) vs. 제조의 수직통합
모듈화·플랫폼화의 진전에 따른 제품의 빠른 범용화와 가격 급락, 개인적·틈새적 가치의 부각, 제조 전문 Low Cost Player의 부각 등으로 조립·가공 부문의 부가가치 창출력은 계속 저하되고 있다. 이에 따라 브랜드와 고객관계, R&D와 같은 핵심적인 지적 자본만을 내재화하고, 비즈니스 프로세스 상의 다른 영역들 특히 제조 부문을 아웃소싱하는 조립식 사업 모델이 크게 활성화되고 있다. 이러한 조립식 사업 모델은 브로드밴드의 확산에 따른 이음새 없는 통신 네트워크의 구축, 교통·물류의 발달 등과 전문화를 통한 핵심 역량에의 집중 추세 등에 따라 촉발되었다.
전자산업의 경우 이러한 제조 아웃소싱을 통한 조립식 사업모델이 가장 활발한 분야 중 하나이다. 특히 애플, HP, 델, 모토롤라, 필립스 등을 포함한 다수의 미국·유럽계 전자 기업들은 일찍부터 제조 부문에서 탈출하였다. 이들은 제품 생산은 EMS나 ODM 회사에 위탁하고, R&D와 마케팅과 같은 핵심적인 가치 사슬에 집중하고 있다. 이들의 파트너 역할을 하는 제조 전문 기업들이 코스트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SCM(Supply Chain Management)까지 수행해 주기 때문에 미국·유럽계 기업 자신들이 직접 제조하는 것보다 원가 우위를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재고 부담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생산 설비 투자 부담이 없어 R&D 투자를 강화하여 기술·제품 혁신을 촉발시킬 수 있는 한편,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파트너를 규합하는 데 보다 힘을 쏟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Vizio의 조립식 사업 모델
2005년 시장 진입후 불과 몇 년 만에 TV 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오른 Vizio는 판매·마케팅, 일부 디자인 개발 기능만 담당하고 제조를 포함한 비즈니스 프로세스 상의 나머지 활동은 모두 아웃소싱하고 있다. Vizio의 성공 요인으로는 제조 부문에서 디스플레이 패널 및 세트 기업과의 탄탄한 협업 관계를 형성한 한편, 새로운 유통채널을 발굴하여 이를 시장의 주류로 만들었다는 점을 꼽고 있다. 제조 부문을 보면 Vizio는 디스플레이 패널에서는 시장 선두기업인 LG디스플레이와, TV세트에서는 개발 능력을 갖춘 대만계 ODM 기업인 암트란과 강한 협업 구조를 구축하여 제품 경쟁력을 확보했다. 유통 부문에서는 기존의 주력 유통채널이었던 Best Buy, Curcuit City 등 전자제품 전문점 대신 Costco, Warmart, Sears 등 창고형 할인매장을 집중 공략하여 20% 정도 마진을 절감할 수 있었다. Vizio는 경쟁력 있는 제조 전문기업에의 위탁 생산을 통해 우수한 품질의 TV 제품을 확보한 한편, 고정자본이 많이 드는 설비 투자 부담을 없애고 신 유통채널 발굴을 통한 마진 절감으로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스마트폰 돌풍의 주역인 애플도 혼하이와 같은 ODM 기업들에게 생산 물량을 모두 아웃소싱하고 있는 상황이다.
혼하이의 제조 수직통합모델
반면 이러한 탈제조화 추세 속에서 역으로 제조부분을 전면 수직통합하고 있는 혼하이 같은 기업들도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혼하이는 데스크탑 및 노트북, 라우터 및 스위치, 브로드밴드 및 VoIP 장비 등을 포함하는 네트워킹 장비, 휴대폰, 게임기, MP3 등의 모바일 기기, LCD 디스플레이 및 모니터 등 전자 산업 대부분의 부품 및 세트를 전문 생산하고 있다. 델, HP, 소니, 인텔, 시스코, 노키아, 모토롤라, 애플 등 유수의 선진 브랜드 기업들을 주요 고객으로 하고 있으며, 이들 고객들의 히트 상품들을 상당 부분 위탁 생산하고 있을 만큼 고객들의 신뢰가 대단하다. 이러한 혼하이의 강점 요인중 최우선적으로 꼽히는 것이 부품과 세트의 수직 통합 모델이다. 혼하이는 자사가 생산하는 세트 제품에 탑재되는 전체 부품중 약 1/3 가량을 자체 생산을 통해 조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수직통합 모델은 제품 경쟁력 측면에서 독자적인 핵심 부품 채용을 통해 자사 제품을 블랙박스(Black Box)화할 수 있는 원천을 제공하며, 부품과 세트 간의 협업을 통해 각 공정상의 약점을 상호 보완하고 강점을 배가시킬 수 있다. 코스트 측면에서는 부품과 세트 간의 공동 개발과 Co-location(근접 입지)으로 재료비 및 포장·물류비를 절감하고, 외부 조달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가격 변동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납기 측면에서는 부품과의 클러스터를 구축하여 물리적 이동 거리 축소, 시스템 통합을 통한 개발 기간 단축, 문제 발생시 신속한 공동 대응 등을 통해 스피드를 크게 향상시킨다. LG, 삼성 등 국내 전자기업들도 2008~2009년 글로벌 불황기 때, 디스플레이와 TV 등 세트제품 간의 수직통합 이점으로 일본 기업이나 대만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성과를 올린 바 있다.
동시대 상반된 모델의 공존, 우리나라 기업들은?
현재로서는 조립식 사업 모델의 경쟁력이 과거에 비해 높아지고 있으나, 제품 형태가 보다 진화하고 세분화될 가능성이 있으며, H/W 기술 또한 혁신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그 경쟁 우위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또한 디스플레이나 반도체, 신재생에너지, 전기자동차용 부품·소재 등 부품·소재형 대규모 장치 산업은 생산 공정에서의 노하우와 기술 혁신을 통한 차별화가 가능해 여전히 제조 부문의 부가가치가 높은 상황이다.
조립식 사업모델과 제조 부문 수직통합 간의 패러독스는 동시대에 2가지 완전히 상반되는 모델들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기업이 어느 방향을 선택해야 하느냐의 고민의 문제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조립식 사업모델 진영과 제조 수직통합 진영 간의 관계는 협력·공생하는 측면이 강하다. 즉 조립식 사업모델을 가진 브랜드 기업들이 대만 등의 제조 전문 기업들에게 생산 물량을 위탁함으로써 한쪽의 역량 강화가 다른 한쪽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조립식 사업모델과 제조 수직통합 간의 패러독스 상황의 영향을 받는 진영은 우리나라나 일본 기업들과 같이 브랜드와 제조부문을 병행하고 있는 기업군들이다. 특히 전통적으로 제조 부문을 강점으로 하고 있는 국내 전자기업들은 상당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당분간 제조전문 기업과 서구 브랜드 기업 간의 상호 협력 체제가 유지·강화되면서 우리 기업에게 커다란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기업이 과연 제조전문기업들에 비해 제조 부문에서 낮은 코스트 경쟁력과 스피디한 시장 대응 능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반면 제조 기능을 아웃소싱으로 빠르게 전환할 경우에는 기존 생산 설비가 Sunk-cost화(매몰)될 수 있고, 자사내 부품 기업들이 안정적인 Captive Market(기업내부 시장)을 상실할 수 있으며, 외부 아웃소싱 업체의 효과적인 컨트롤 여부가 불확실하여 우리 특유의 강점인‘스피드’가 훼손될 수도 있다. 따라서 단중기적으로는 탈제조화나 제조의 수직통합 중 어느 한 방향을 전면 추구하기보다는 제품 특성과 타겟 시장 등에 따라 직접 생산과 아웃소싱을 적절히 안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부품 상호 간 또는 부품과 Set 간의 미세한 조절을 통해 성능 차별화가 가능한 제품, ▼소비자들의 제품 교체 주기가 빨라 시장 선도를 통해 지속적 프리미엄 향유가 가능한 제품, ▼자체적으로 핵심 부품을 내재화하고 있는 제품 등은 부품과의 수직통합을 통해 직접 생산하는 것이 유리하다. 반면 ▼표준화/플랫폼화가 보편화되어 여러 회사가 독자 설계한 부품을 한데 모아 조립해도 충분히 작동하는 제품, ▼유행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지고 기능/성능 측면의 개선 속도가 느린 제품, ▼부품 소싱 루트가 다양하고 복잡하여 SCM(부품공급사슬관리)이 중요한 제품 등은 전문 제조 기업에 대한 위탁 생산을 추진해 볼 만하다.
남은 의문점은 과연 국내 전자 기업들이 중장기적으로 제조 부문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지에 모아진다. 극한의 수직통합과 공정·장비 혁신을 통한 超 제조로의 진화를 고려할 수도 있고, 점진적으로 제조 부문을 덜어내면서 비즈니스 모델 혁신 중심으로의 전환을 추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어느 방향이 옳은 것인지를 명확히 진단하기는 힘든 상황이며, 앞으로의 패러다임 진행 과정을 예의주시하면서 기업 스스로 판단해 나가야 할 문제이다.
● 컨버전스 vs. 다이버전스
全 산업을 망라해 현 시대의 가장 큰 조류 중 하나가 컨버전스라는 점에 대해서는 거의 이견이 없을 것이다. IT 제품 내에서 AV, 통신, 컴퓨팅 등의 기능 간 융합으로 시작된 컨버전스는 산업간 컨버전스, 제품과 서비스 간 융합 등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향후 로봇과 같은, 인간과 기기 간 융합으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디지털화를 통해 기술의 복제 및 융합·해체가 자유로운 전자산업에서는 컨버전스가 전자기기의 발전을 규정하는 가장 큰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최근 스마트폰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휴대폰의 경우 완전 컨버전스의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과거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다양한 컨텐츠·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컨버전스와는 반대되는 현상으로 전자기기들이 특정 기술·기능 중심으로 전문화·분화되거나, 복잡·다양한 기능들이 보다 간편화되고 단순화되는 다이버전스 트렌드 또한 강화되고 있다. 디스플레이 화면을 통해 독서, 일정관리 및 메모 등이 가능한 e-book, 최근 급속히 시장이 확대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테블릿PC, 모션 픽처를 강조한 디지털 액자, 위치기반 및 증강현실서비스를 강화한 오토-인포테인먼트(Auto-Infotainment) 기기, 게임 전용폰, 휘트니스폰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컨버전스와 다이버전스, 독립적 시장 형성 가능
컨버전스와 다이버전스 간의 패러독스는 언뜻 보면 상호 양립할 수 없는 조류들로서 기업들이 어느 한쪽 방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컨버전스와 다이버전스 트렌드는 동시에 각기 나름대로의 분야에서 독립적인 시장 영역을 확보해 나갈 수 있다. 과거 기업들은 다이버전스 제품이 기존 컨버전스 제품 시장을 대체하면서 카니발라이제이션(자기시장잠식)할 우려가 있다고 여겼다. 즉 다이버전스 제품은 기존 컨버전스 제품에서 몇 가지 기능들을 제거하여 보다 단순화시킨 유형이 대부분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기보다는 기존 시장의 중저가 영역을 대체·잠식하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선도 기업들의 경우 다이버전스 제품의 사업 가치를 컨버전스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보면서, 다이버전스 제품을 자사의 주력 사업으로 전면적으로 밀기보다는 시기별, 지역별 상황을 감안한 전략적 틈새 제품의 일환으로 활용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이버전스 제품은 ▼넷북과 같이 기존 컨버전스형 제품을 간편화한 유형 뿐만 아니라, ▼게임, 휘트니스, 증권거래, SNS 등 특정 킬러 애플리케이션만을 특화·채용한 완전 다이버전스 형태, ▼새로운 모바일 컴퓨팅기기, 오토-인포테인먼트 기기, 아이패드와 같은 테블릿 PC 등 전문 기능 중심으로 특화하되, 몇 가지 기능들을 복합적으로 추가함으로써 아예 새로운 영역을 창출하는 부분적 컨버전스(Partial Convergence) 형태 등도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다이버전스 제품은 기존 컨버전스 제품의 대체나 틈새시장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시장 영역을 만들어낼 수 있고, 독립적인 주류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컨버전스와 양립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시기별로 컨버전스와 다이버전스 제품에 대한 고객 선호 경향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혁신적 신제품이 출현하게 되면 기존 시장을 대체·잠식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게 된다. 이후 해당 제품이 가지는 기능들의 성능이 향상되는 한편, 컨버전스를 통해 기능 확장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는 고객들이 컨버전스를 통한 다양한 기능 사용에 보다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반면 컨버전스 제품이 성숙기에 이르게 되면 고객들은 복잡하고 다양한 기능보다는, 쉬운 사용 방식과 특정 기능을 지닌 다이버전스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즉 다이버전스 제품은 기존 컨버전스 제품이 성능 향상이나 기능 확장을 통해 계속 성장하는 시기보다는 성숙기에 이른 시점을 포착,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성공 확률이 높다.
● 스마트화(기능·성능 향상) vs. UI·Form Factor 혁신
최근 전자산업 내 가장 큰 화두는 ‘스마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휴대폰의 경우 스마트화를 통해 PC 기능을 융합하면서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기능(컨텐츠·애플리케이션 서비스)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게임이나 영상물 시청 등 엔터테인먼트 기능, 뉴스나 인터넷 검색 등 정보 기능, E-메일 등 간단한 문서 작성 기능, 리모트컨트롤 및 위치기반서비스 등 데이터커뮤니케이션 기능, 앱스토어 이용 등 거의 PC와 유사한 기능들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TV 또한 스마트TV가 개발되면서 동영상 시청과 연계한 정보 탐색, 채팅, 온라인 쇼핑 등의 기능 뿐만 아니라 화상 전화, 게임, 웹브라우징, 앱스토어 이용, N-스크린 서비스 등 다양한 컨텐츠·애플리케이션들이 새로운 기능으로 추가되고 있다.
한편 휴대폰의 경우 스마트화에 따라 향상된 기능·성능을 기기 내에서 최적으로 구현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터치 형태로의 UI 변화와 전면 디스플레이를 채용한 Bar 타입으로의 Form Factor 변화도 일어났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전자산업에서는 기능의 다양화와 폼 팩터의 발전이 병행되어 왔던 면이 있다. 휴대폰의 경우 전통적인 음성통화 기능이 중심이었던 때, 디스플레이 창은 시간이나 전화번호 정도를 표시하는 목적으로 활용되어 크기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통화 기능 외 데이터통신, AV 기능, 컴퓨팅 등 다양한 애플리케이션들이 휴대폰에 채용되면서 디스플레이의 크기는 점점 더 커져 왔다. 그 외형적 Type 또한 다양해진 기능들을 잘 구현하기 위해 Bar형, Flip형, 폴더형, 슬라이드형, 회전형, 터치 스크린형 등으로 계속 변화해 왔다.
이렇듯 언뜻 보면 기능·성능 향상과 UI·Form Factor 혁신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면도 있다. 그러나 양자간의 관계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희생시켜 다른 한쪽의 혁신의 자유도를 떨어뜨리는 패러독스 상황도 발생한다. 즉 스마트화로 인한 기능·성능 향상이 크기·무게 등을 비대하게 만들어 휴대용이성 측면을 저하시키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터치스크린 형태의 Bar 타입 외 다양한 Form Factor와 디자인을 구현하는 데 있어 자유도가 떨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휴대폰은 90년대 후반 디지털로의 전환 이후 패션 액세서리 측면이 강조되면서 감성적인 디자인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제품 개발·출시의 패턴이 변모하였다. 투박한 Bar 타입 중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Form Factor가 선보이게 되었고, 경량화·슬림화를 통한 Form Factor 혁신이 주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반면 2000년대 들어서는 디지털 컨버전스의 최선봉에 서서 카메라, MP3, 캠코더, 전자수첩 등의 기능이 융합되면서 기능 확장과 칩셋 성능 향상 중심으로 주류 트렌드가 변모하였다. 카메라 기능, 대형디스플레이, 음악재생 기능, 대용량 메모리 등을 채용하다 보니, 크기·무게는 커질 수 밖에 없어, 패션성을 강조한 감성적인 디자인 측면이 어느 정도 희생당할 수 밖에 없었다. 2005년 들어 이러한 기능·성능 향상 중심의 트렌드는 수그러들고, 다시 감성적인 Form Factor 혁신이 주류 트렌드로 부각되었다. 이전 시기의 폰들에 비해 획기적으로 슬림화한 레이저폰의 등장이 이를 촉발시킨 것이다. 휴대폰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기능·성능 향상과 UI·Form Factor 혁신은 그 시기별로 주류 트렌드로서의 입지를 반복해 왔다. 이를 감안할 때 기능·성능 향상과 UI·Form Factor 혁신 간의 패러독스 상황에 대한 해법은 시기별로 제품 혁신의 포인트를 달리 가져가는 것이 한 방안이 될 것이다.
UI 혁신으로 패러독스 해결 가능
한편 와해적인(Disruptive) 기술 혁신이 일어난다면 기능·성능 향상과 UI·Form Factor 혁신 간의 패러독스가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휴대폰의 경우 당분간 기능의 컨버전스가 계속 진행되겠지만 전자기기가 갖는 모든 기능들을 적절히 수용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즉 휴대용이라는 측면에서 포켓 사이즈 이상으로 커져서는 곤란한 크기나 무게의 제약 때문에 디스플레이가 4인치대 이상으로 커지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에 따라 동영상 시청 등에 있어서는 보다 큰 디스플레이를 가진 전자기기들에 비해 불편함이 있다. 또한 터치나 쿼티 자판 등의 입력 방식 채용으로 워드, 엑셀 등 원활한 컴퓨팅 작업이 곤란하다는 한계가 있다. 만약 플랙서블(Flexible) 및 폴더블(Fordable) 기술, 고해상도 프로젝터(Location-Free), 홀로그램, 나노 소재를 활용한 접는 디스플레이 등 소재나 물성 혁명을 통한 새로운 디스플레이 기술이 개발된다면 휴대성을 헤치지 않고 디스플레이 크기를 자유롭게 증가시킬 수 있는 휴대폰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입력 기술에서는 버츄얼 키보드(Virtual Keyboard), 인공지능, 자연어 음성 인식 등의 혁신 기술이 개발된다면 휴대 용이성을 유지하면서 완전한 컴퓨팅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Ⅲ. 시사점
이상을 종합해 볼 때 기업들이 직면할 수 있는 패러독스 상황의 유형과 해당 패러독스에 직면할 경우 이를 돌파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을 다음과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상반성이 있는 2가지 트렌드 또는 상황이 시장 또는 고객별로 각기 다른 영역을 형성할 수 있는 경우이다. 컨버전스와 다이버전스 간의 패러독스가 그 예이다. 즉 다이버전스 제품의 경우 특정 기능 중심의 완전 다이버전스 제품, 컨버전스 제품을 간소화하면서 혁신 기능을 추가한 부분적 컨버전스 제품 등이 존재한다는 점을 보았다. 이에 따라 다이버전스 트렌드는 컨버전스형 제품과 대체·경쟁 관계에 있다기보다는 완전히 새로운 시장 영역을 창출해 낼 수 있고, 독립적인 주류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컨버전스와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패러독스에 직면했을 때는 모든 영역에 대해 1가지 트렌드만을 추종하는 전략을 추진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즉 패러독스 상황의 개별 트렌드가 주로 작용할 수 있는 시장·고객 영역을 적절히 포착하여 시장·고객별로 각기 다른 트렌드를 적용해 공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시기별로 주류 트렌드가 달라지면서 패러독스 관계에 있는 2가지 트렌드가 계속 반복되는 경향을 보이는 유형이다. 기능·성능 향상과 UI·Form Factor 혁신 간의 패러독스 상황을 예로 들어 보면, 전자기기들이 일정 기간 동안 기능·성능 향상 중심으로 개발·출시되는 패턴을 보이다가, 이후 UI·Form Factor 혁신 중심으로 변모하는 등 시기별로 주류 트렌드로서의 입지를 반복해 왔다. 컨버전스와 다이버전스 간의 패러독스도 마찬가지이다. 다이버전스 제품은 기존 컨버전스 제품이 성능 향상이나 기능 확장을 통해 계속 성장하는 시기보다는 성숙기에 이른 시기에 활성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패러독스 상황에서는 시장 흐름을 잘 포착하여 타이밍별로 제품 혁신의 포인트를 달리 가져가는 것이 효과적인 방안이라 볼 수 있다.
셋째, 어떤 시기, 어떤 사업 영역에서도 근본적인 트레이드-오프 관계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개인화·맞춤화와 표준화·규격화 간의 패러독스 상황이 그 예로서,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 모델, 플랫폼 기반 활용, 프로슈머 모델, 컨텐츠·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 맞춤화, 지능형 맞춤화 등이 그 해법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 경우에는 2가지 상반된 상황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패러독스 상황의 해결에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특이한 점은 패러독스 상황들이 양립할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반면, 상호보완적인 측면도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즉 패러독스 상황의 어느 한쪽이 심화될수록 오히려 다른 한쪽의 필요성을 촉발시키는 효과를 낳는 경우도 있다. 컨버전스가 고도화될수록 복잡화에 따른 기능 피로 현상의 심화로 오히려 전문화·세분화를 촉진시킨다든지, 대립되는 조립식 사업 진영과 제조 전문 수직통합 진영이 상호 간 협업을 통해 서로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선순환 관계를 유지한다든지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따라서 패러독스 상황을 트레이드-오프 관계로만 인식하기보다는 한 쪽의 트렌드가 거세어질 때 상반된 트렌드에 부합되는 전략 활동을 동시에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기업들은 현재의 게임 룰이나 트렌드와는 반대되는 상황을 항상 염두에 두고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선두에 있는 기업들이 현재의 트렌드나 패러다임에 안주하여 패러독스 상황의 한쪽을 간과했을 때, 혁신의 기회를 놓치거나 경쟁우위를 상실도 우려가 있다. 반대로 후발 기업들의 경우 지금과는 오히려 차별화되고 상반되는 트렌드를 잘 이용한다면 역전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패러독스 상황의 역학관계를 적절히 포착해 이를 근본적인 혁신이나 차별화의 기회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LG Business Insight 1140호
소비자 취향과 기술의 변화가 빠르고 경쟁이 치열한 전자산업에서 상반된 추세가 공존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전자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런 추세를 ▼개인화·맞춤화 vs. 표준화·규격화, ▼조립식 사업 모델(탈 제조화와 아웃소싱 심화) vs. 제조의 수직통합, ▼컨버전스 vs. 다이버전스, ▼스마트화(기능·성능 향상) vs. UI·폼팩터 혁신 등 4가지 관점으로 정리하고 이들 상반된 트렌드간의 역학관계와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의 발전과정을 살펴 보았다.
이를 토대로 기업들이 직면할 수 있는 패러독스 상황별로 대응 가능한 방안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상반된 2가지 트렌드 또는 상황이 시장 또는 고객별로 각기 독립적인 영역을 형성하는 경우에는 시장·고객별로 각기 다른 트렌드를 적용해 공략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둘째, 시기별로 주류 트렌드가 달라지면서 패러독스 관계에 있는 2가지 트렌드가 계속 반복되는 경향을 보이는 경우에는 시장 흐름을 잘 포착하여 타이밍별로 제품 혁신의 포인트를 달리 가져갈 필요가 있다. 셋째, 어떤 시기, 어떤 사업 영역에서도 근본적인 트레이드-오프 관계가 존재하는 상황인데, 이 경우에는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적극 활용해 2가지 상반된 상황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목 차 >
Ⅰ. 일상화 되어가는 트렌드 패러독스
Ⅱ. 전자산업의 트렌드 패러독스
Ⅲ. 시사점
Ⅰ. 일상화 되어가는 트렌드 패러독스
가족과의 여행을 계획하고 숙박할 호텔이나 콘도를 예약사이트를 통해 알아보니 여유 룸이 없었는데, 해당 호텔이나 콘도에 직접 문의해 보니 룸을 구할 수 있었다. 예약사이트는 가격은 저렴한 편이나 급할 때 방을 구하긴 힘들다. 직장 생활에서 1차 회식 이후 실제로는 모두가 2차를 원하지 않았는데, 기존 관성과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어 2차를 가게 되었다. 인터넷과 SNS 등의 발달로 많은 지식·정보들이 공유되면서 기업간 또는 개인간 지식·정보의 격차가 분명히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오픈된 지식·정보 중 정말 쓸만한 지식·정보는 찾기 힘들고 소위 디지털 디바이드(개인간의 정보 이용도 및 수용도 격차)는 심화되는 느낌이다. 이상과 같이 하루하루 빠르게 변화하는 생활 속에서 소비자들은 2가지 상반된 현상이나 경향을 동시에 목격하거나 체험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모순된 상황 또는 상충관계(Trade-off)에 있는 현상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른바 패러독스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기업 경영에서도 이러한 패러독스 상황이 발생하면서, 한 때 패러독스 경영이 화두에 올랐었다. 기업이 맞닥트리는 전통적인 패러독스 상황으로는 성장 추구냐 수익성 중시냐, 기술·제품 차별화냐 저원가 전략이냐, 규모의 경제 실현이냐 스피드 추구냐, 선발자(First Mover) 전략이냐 빠른 추종자(Fast Follower) 전략이냐 등을 들 수 있다. 패러독스 경영에서는 모순된 상황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 기업들은 전통적인 양자 택일 방식이 아닌 2가지 요소들을 조화시켜 최적의 해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한편 기업들이 기존 제품·서비스를 개선 또는 혁신하거나, 신 기술·제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사업 영역을 발굴·추진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방향성을 제공하는 트렌드에도 이러한 패러독스 상황이 발생한다. ▼글로벌화가 가속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지역화(Localization)가 심화되는 현상, ▼디지털 노마드(Nomad : 유목민) 트렌드 속에서 외부 활동보다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나 홀로 여가를 즐기는 코쿠닝 현상, ▼바쁜 일상 속 스피드를 추구하는 트렌드 속에서 생태·환경·문화·건강 등을 중시하며 여유롭고 편안함을 찾는 다운쉬프트 현상,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기업 활동에 참여하려는 프로슈머 트렌드 속에서 일상의 허드렛 일들을 아웃소싱하는 귀차니즘 트렌드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렇듯 상반된 트렌드가 공존할 때 기업들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인지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물론 지금까지는 주류 트렌드가 아닌 역 트렌드 또는 상반된 현상을 일시적 유행이나 틈새 시장 공략 논리로 생각해 왔던 것이 일반적이었다. 주류 트렌드는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이므로 쫓아가고 세부적인 사항에서 차별화하는 방법을 주로 구사해왔다. 하지만 이렇듯 주류 트렌드만을 추종할 경우, 진정한 차별화에는 실패해 레드오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반면 차별화에만 집착해 주류 트렌드를 도외시한다면 대규모 시장을 놓칠 우려도 발생할 수 있다.
트렌드에 있어 패러독스 상황이 생겨나는 이유로는 첫째, 복잡성의 증대를 들 수 있다. 고객 니즈와 더불어 제품·서비스의 다양화·복잡화 심화 등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계속 까다로워지게 되면서 기존 트렌드 내 제품·서비스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다수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지역간, 시장간, 사업·산업간 경계의 붕괴이다. 기존 가치가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가 형성되거나, 몇 가지 가치들이 혼합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업들은 이러한 패러독스 상황을 앞으로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른다.
Ⅱ. 전자산업의 트렌드 패러독스
소비자, 사업·경쟁, 기술 관점에서 보면 전자산업의 주요 트렌드 중에서 상반된 추세가 공존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전자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트렌드 패러독스를 ▼개인화·맞춤화 vs. 표준화·규격화, ▼조립식 사업 모델(탈 제조화와 아웃소싱 심화) vs. 제조의 수직통합, ▼컨버전스 vs. 다이버전스, ▼스마트화(기능·성능 향상) vs. UI·폼팩터 혁신 등 4가지 관점으로 정리했다. 패러독스 상황들은 전자 산업 고유의 특성이 작용한 산업 내 트렌드 뿐만 아니라 全 산업을 관통하는 메가 트렌드나 패러다임 수준의 변화도 포함되어 있다. 이하 해당 패러독스 상황 간의 역학 관계와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의 발전 과정 등을 살펴봄으로써 기업들이 향후 트렌드의 패러독스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시사점을 찾아본다.
● 개인화·맞춤화 vs. 표준화·규격화
전반적인 소득 수준 향상, 삶의 질 향상 추구, 개인주의 라이프스타일 만연 등으로 최근의 소비 패턴은 소비자 개인의 효용 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모하고 있다. 과거의 소비 패턴이 다분히 가격탄력적인 측면이 강했던 반면, 최근에는 소비자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를 제대로 구현한 제품·서비스에 대해서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자 산업에서도 개인화·맞춤화 트렌드는 이미 지속적인 트렌드로 자리잡아 왔다. 2000년대 들어 전자기기중 가장 개인화된 제품인 휴대폰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확대되어 왔고, 휴대폰 내에서도 통신, AV, 컴퓨팅 기능 간의 융합과 디자인 변화로 개인화·맞춤화된 제품이 지속 창출되고 있다. 최근 경제·사회 전반을 변화시키고 있는 스마트폰의 경우 특히 동일 기기를 가지고도 선호·사용하는 컨텐츠·애플리케이션이 개인별로 다를 수 있다. 즉 개인화·맞춤화 트렌드가 핵심 동인으로 작용하여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TV의 경우 전통적으로 가족간의 공유 특성을 가진 가전 제품이었는데, 최근 개인화 니즈가 작용하면서 세컨드(Second)TV가 많아지고, TV를 통해 개인화·맞춤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마트TV가 등장하고 있다. 향후에도 권력과 가치의 분산과 개인화, 대량 소비 시장의 쇠퇴와 롱테일의 확산 등으로 미래 비즈니스 환경은 다양하고 미세분화된 개인적 가치에 소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기업의 딜레마는 공급자 입장에서 개인화·맞춤화된 제품·서비스 제공을 위해 기획, 개발, 제조 등 비즈니스 전반을 고객에 맞춤화하게 되면, 코스트가 무한정 상승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H/W 제품의 경우 공급자 입장에서는 표준화·규격화를 통해 출시 모델을 단순화하는 것이 규모의 경제 효과를 극대화하고 적기 출시(Time-to-Market)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개인화·맞춤화의 최적 구현과 표준화·규격화 간의 패러독스는 소비자와 공급자 간의 전통적인 이해 관계 차이에서 오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트레이드-오프 관계이다.
이러한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우선 테일러링 모델을 들 수 있다. 이는 공급자들이 사전적인 고객 니즈 분석을 통해 다양한 상품 옵션을 구성해 놓고 소비자들이 이중에서 선택하게 하는 방안이다. 기업은 미리 구성해 놓은 상품 옵션별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 비용 측면의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릴 수 있고, 고객들은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선택할 수 있어 커스터마이징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 델의 온라인 다이렉트 비즈니스 모델, 애플의 MP3 관련한 아이팟/아이튠즈 모델 등이 그 사례이다.
플랫폼 기반을 활용하는 것도 개인화·맞춤화와 표준화·규격화 간의 패러독스를 해결하는 한 방안이다. 여기서 플랫폼이란 여러 개의 파생 제품·서비스를 효과적으로 개발, 제조할 수 있는 공통의 공유 기반을 의미한다. 노키아의 경우 디스플레이, 키패드, 배터리, 칩 등 주요 부품을 공유하는 소수의 기본 모델을 플랫폼화하고, 세분 시장별로 상이한 파생 기능이나 디자인 등을 맞춤 개발함으로써 규모의 경제 및 적기 출시를 실현해 왔다. 일본의 전자부품 회사인 기옌스는 센서, 계측기, 커넥터 등의 개발과 판매에 플랫폼 기반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옌스의 영업인력들은 신제품 개발 이전에 고객들과의 미팅이나 집중 인터뷰 등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부품 사양에 대한 니즈를 선 발굴한다. 이를 바탕으로 어떤 고객이 요구하는 부품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플랫폼 기반을 구축하고, 파생 사양에 대해서는 고객별로 맞춤 개발함으로써 비용 효율적인 맞춤화를 실현하고 있다. 고객이 직접 자신에게 맞는 제품·서비스를 기획·개발, 제조하는 데 참여시키는 프로슈머 모델도 발전된 형태의 개인화·맞춤화 방안이다.
보다 진화된 형태의 맞춤화 방안 등장
그러나 전자산업, 특히 기기 분야는 생산설비라는 물리적 투자가 존재하는 H/W의 특성상 완벽하게 비용효율적인 개인화·맞춤화를 실현하는 데 한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차별화와 맞춤화의 포인트를 H/W 기능이나 디자인 등이 아닌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까운 S/W적 요소, 컨텐츠·애플리케이션으로 가져가는 것이 보다 진화된 형태의 맞춤화 방안이 될 것이다. 애플의 앱스토어 모델을 예로 들어 보자. 애플은 개방과 인센티브 부여(Profit Sharing)를 통해 앱스토어에 방대한 컨텐츠·애플리케이션 공급 Pool을 구축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앱 스토어에 등재된 컨텐츠·애플리케이션 중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자유롭게 선택·이용할 수 있게 하였다. 동일한 기기를 사용하면서도 이용할 수 있는 컨텐츠·애플리케이션은 고객별로 각기 다를 수 있고, 고객들은 자신만의 맞춤화된 아이폰 사용 경험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향후 오감 센싱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 등 UI(User Interface) 혁신이 일어난다면 보다 진화된 형태의 지능형 맞춤화가 구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래의 TV 시청 환경을 예로 들어 보자. TV 앞에 서면 자동적으로 해당 사용자를 인식하고, 학습을 통해 축적된 시청 패턴을 분석하여 그 사람이 선호하는 동영상물이나 컨텐츠·애플리케이션을 추천하고, 평소에 관심이 큰 분야에 대한 인터넷 정보사이트에 자동 접속해 준다. 또한 오감 센싱으로 사람의 체온, 뇌파, 홍체 등을 통해 감정 신호 및 스트레스 정도를 파악하여, 이용자의 감정 상태를 감안하여 적절한 컨텐츠를 추천해 준다. 슬플 때는 코믹 영화를 보여주고, 스트레스가 쌓여 있을 때는 활발한 액션물을 보여 주는 등의 지능형 맞춤화 서비스가 가능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 조립식 사업 모델(탈 제조화와 아웃소싱 심화) vs. 제조의 수직통합
모듈화·플랫폼화의 진전에 따른 제품의 빠른 범용화와 가격 급락, 개인적·틈새적 가치의 부각, 제조 전문 Low Cost Player의 부각 등으로 조립·가공 부문의 부가가치 창출력은 계속 저하되고 있다. 이에 따라 브랜드와 고객관계, R&D와 같은 핵심적인 지적 자본만을 내재화하고, 비즈니스 프로세스 상의 다른 영역들 특히 제조 부문을 아웃소싱하는 조립식 사업 모델이 크게 활성화되고 있다. 이러한 조립식 사업 모델은 브로드밴드의 확산에 따른 이음새 없는 통신 네트워크의 구축, 교통·물류의 발달 등과 전문화를 통한 핵심 역량에의 집중 추세 등에 따라 촉발되었다.
전자산업의 경우 이러한 제조 아웃소싱을 통한 조립식 사업모델이 가장 활발한 분야 중 하나이다. 특히 애플, HP, 델, 모토롤라, 필립스 등을 포함한 다수의 미국·유럽계 전자 기업들은 일찍부터 제조 부문에서 탈출하였다. 이들은 제품 생산은 EMS나 ODM 회사에 위탁하고, R&D와 마케팅과 같은 핵심적인 가치 사슬에 집중하고 있다. 이들의 파트너 역할을 하는 제조 전문 기업들이 코스트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SCM(Supply Chain Management)까지 수행해 주기 때문에 미국·유럽계 기업 자신들이 직접 제조하는 것보다 원가 우위를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재고 부담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생산 설비 투자 부담이 없어 R&D 투자를 강화하여 기술·제품 혁신을 촉발시킬 수 있는 한편,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파트너를 규합하는 데 보다 힘을 쏟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Vizio의 조립식 사업 모델
2005년 시장 진입후 불과 몇 년 만에 TV 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오른 Vizio는 판매·마케팅, 일부 디자인 개발 기능만 담당하고 제조를 포함한 비즈니스 프로세스 상의 나머지 활동은 모두 아웃소싱하고 있다. Vizio의 성공 요인으로는 제조 부문에서 디스플레이 패널 및 세트 기업과의 탄탄한 협업 관계를 형성한 한편, 새로운 유통채널을 발굴하여 이를 시장의 주류로 만들었다는 점을 꼽고 있다. 제조 부문을 보면 Vizio는 디스플레이 패널에서는 시장 선두기업인 LG디스플레이와, TV세트에서는 개발 능력을 갖춘 대만계 ODM 기업인 암트란과 강한 협업 구조를 구축하여 제품 경쟁력을 확보했다. 유통 부문에서는 기존의 주력 유통채널이었던 Best Buy, Curcuit City 등 전자제품 전문점 대신 Costco, Warmart, Sears 등 창고형 할인매장을 집중 공략하여 20% 정도 마진을 절감할 수 있었다. Vizio는 경쟁력 있는 제조 전문기업에의 위탁 생산을 통해 우수한 품질의 TV 제품을 확보한 한편, 고정자본이 많이 드는 설비 투자 부담을 없애고 신 유통채널 발굴을 통한 마진 절감으로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스마트폰 돌풍의 주역인 애플도 혼하이와 같은 ODM 기업들에게 생산 물량을 모두 아웃소싱하고 있는 상황이다.
혼하이의 제조 수직통합모델
반면 이러한 탈제조화 추세 속에서 역으로 제조부분을 전면 수직통합하고 있는 혼하이 같은 기업들도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혼하이는 데스크탑 및 노트북, 라우터 및 스위치, 브로드밴드 및 VoIP 장비 등을 포함하는 네트워킹 장비, 휴대폰, 게임기, MP3 등의 모바일 기기, LCD 디스플레이 및 모니터 등 전자 산업 대부분의 부품 및 세트를 전문 생산하고 있다. 델, HP, 소니, 인텔, 시스코, 노키아, 모토롤라, 애플 등 유수의 선진 브랜드 기업들을 주요 고객으로 하고 있으며, 이들 고객들의 히트 상품들을 상당 부분 위탁 생산하고 있을 만큼 고객들의 신뢰가 대단하다. 이러한 혼하이의 강점 요인중 최우선적으로 꼽히는 것이 부품과 세트의 수직 통합 모델이다. 혼하이는 자사가 생산하는 세트 제품에 탑재되는 전체 부품중 약 1/3 가량을 자체 생산을 통해 조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수직통합 모델은 제품 경쟁력 측면에서 독자적인 핵심 부품 채용을 통해 자사 제품을 블랙박스(Black Box)화할 수 있는 원천을 제공하며, 부품과 세트 간의 협업을 통해 각 공정상의 약점을 상호 보완하고 강점을 배가시킬 수 있다. 코스트 측면에서는 부품과 세트 간의 공동 개발과 Co-location(근접 입지)으로 재료비 및 포장·물류비를 절감하고, 외부 조달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가격 변동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납기 측면에서는 부품과의 클러스터를 구축하여 물리적 이동 거리 축소, 시스템 통합을 통한 개발 기간 단축, 문제 발생시 신속한 공동 대응 등을 통해 스피드를 크게 향상시킨다. LG, 삼성 등 국내 전자기업들도 2008~2009년 글로벌 불황기 때, 디스플레이와 TV 등 세트제품 간의 수직통합 이점으로 일본 기업이나 대만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성과를 올린 바 있다.
동시대 상반된 모델의 공존, 우리나라 기업들은?
현재로서는 조립식 사업 모델의 경쟁력이 과거에 비해 높아지고 있으나, 제품 형태가 보다 진화하고 세분화될 가능성이 있으며, H/W 기술 또한 혁신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그 경쟁 우위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또한 디스플레이나 반도체, 신재생에너지, 전기자동차용 부품·소재 등 부품·소재형 대규모 장치 산업은 생산 공정에서의 노하우와 기술 혁신을 통한 차별화가 가능해 여전히 제조 부문의 부가가치가 높은 상황이다.
조립식 사업모델과 제조 부문 수직통합 간의 패러독스는 동시대에 2가지 완전히 상반되는 모델들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기업이 어느 방향을 선택해야 하느냐의 고민의 문제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조립식 사업모델 진영과 제조 수직통합 진영 간의 관계는 협력·공생하는 측면이 강하다. 즉 조립식 사업모델을 가진 브랜드 기업들이 대만 등의 제조 전문 기업들에게 생산 물량을 위탁함으로써 한쪽의 역량 강화가 다른 한쪽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조립식 사업모델과 제조 수직통합 간의 패러독스 상황의 영향을 받는 진영은 우리나라나 일본 기업들과 같이 브랜드와 제조부문을 병행하고 있는 기업군들이다. 특히 전통적으로 제조 부문을 강점으로 하고 있는 국내 전자기업들은 상당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당분간 제조전문 기업과 서구 브랜드 기업 간의 상호 협력 체제가 유지·강화되면서 우리 기업에게 커다란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기업이 과연 제조전문기업들에 비해 제조 부문에서 낮은 코스트 경쟁력과 스피디한 시장 대응 능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반면 제조 기능을 아웃소싱으로 빠르게 전환할 경우에는 기존 생산 설비가 Sunk-cost화(매몰)될 수 있고, 자사내 부품 기업들이 안정적인 Captive Market(기업내부 시장)을 상실할 수 있으며, 외부 아웃소싱 업체의 효과적인 컨트롤 여부가 불확실하여 우리 특유의 강점인‘스피드’가 훼손될 수도 있다. 따라서 단중기적으로는 탈제조화나 제조의 수직통합 중 어느 한 방향을 전면 추구하기보다는 제품 특성과 타겟 시장 등에 따라 직접 생산과 아웃소싱을 적절히 안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부품 상호 간 또는 부품과 Set 간의 미세한 조절을 통해 성능 차별화가 가능한 제품, ▼소비자들의 제품 교체 주기가 빨라 시장 선도를 통해 지속적 프리미엄 향유가 가능한 제품, ▼자체적으로 핵심 부품을 내재화하고 있는 제품 등은 부품과의 수직통합을 통해 직접 생산하는 것이 유리하다. 반면 ▼표준화/플랫폼화가 보편화되어 여러 회사가 독자 설계한 부품을 한데 모아 조립해도 충분히 작동하는 제품, ▼유행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지고 기능/성능 측면의 개선 속도가 느린 제품, ▼부품 소싱 루트가 다양하고 복잡하여 SCM(부품공급사슬관리)이 중요한 제품 등은 전문 제조 기업에 대한 위탁 생산을 추진해 볼 만하다.
남은 의문점은 과연 국내 전자 기업들이 중장기적으로 제조 부문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지에 모아진다. 극한의 수직통합과 공정·장비 혁신을 통한 超 제조로의 진화를 고려할 수도 있고, 점진적으로 제조 부문을 덜어내면서 비즈니스 모델 혁신 중심으로의 전환을 추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어느 방향이 옳은 것인지를 명확히 진단하기는 힘든 상황이며, 앞으로의 패러다임 진행 과정을 예의주시하면서 기업 스스로 판단해 나가야 할 문제이다.
● 컨버전스 vs. 다이버전스
全 산업을 망라해 현 시대의 가장 큰 조류 중 하나가 컨버전스라는 점에 대해서는 거의 이견이 없을 것이다. IT 제품 내에서 AV, 통신, 컴퓨팅 등의 기능 간 융합으로 시작된 컨버전스는 산업간 컨버전스, 제품과 서비스 간 융합 등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향후 로봇과 같은, 인간과 기기 간 융합으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디지털화를 통해 기술의 복제 및 융합·해체가 자유로운 전자산업에서는 컨버전스가 전자기기의 발전을 규정하는 가장 큰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최근 스마트폰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휴대폰의 경우 완전 컨버전스의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과거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다양한 컨텐츠·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컨버전스와는 반대되는 현상으로 전자기기들이 특정 기술·기능 중심으로 전문화·분화되거나, 복잡·다양한 기능들이 보다 간편화되고 단순화되는 다이버전스 트렌드 또한 강화되고 있다. 디스플레이 화면을 통해 독서, 일정관리 및 메모 등이 가능한 e-book, 최근 급속히 시장이 확대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테블릿PC, 모션 픽처를 강조한 디지털 액자, 위치기반 및 증강현실서비스를 강화한 오토-인포테인먼트(Auto-Infotainment) 기기, 게임 전용폰, 휘트니스폰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컨버전스와 다이버전스, 독립적 시장 형성 가능
컨버전스와 다이버전스 간의 패러독스는 언뜻 보면 상호 양립할 수 없는 조류들로서 기업들이 어느 한쪽 방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컨버전스와 다이버전스 트렌드는 동시에 각기 나름대로의 분야에서 독립적인 시장 영역을 확보해 나갈 수 있다. 과거 기업들은 다이버전스 제품이 기존 컨버전스 제품 시장을 대체하면서 카니발라이제이션(자기시장잠식)할 우려가 있다고 여겼다. 즉 다이버전스 제품은 기존 컨버전스 제품에서 몇 가지 기능들을 제거하여 보다 단순화시킨 유형이 대부분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기보다는 기존 시장의 중저가 영역을 대체·잠식하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선도 기업들의 경우 다이버전스 제품의 사업 가치를 컨버전스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보면서, 다이버전스 제품을 자사의 주력 사업으로 전면적으로 밀기보다는 시기별, 지역별 상황을 감안한 전략적 틈새 제품의 일환으로 활용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이버전스 제품은 ▼넷북과 같이 기존 컨버전스형 제품을 간편화한 유형 뿐만 아니라, ▼게임, 휘트니스, 증권거래, SNS 등 특정 킬러 애플리케이션만을 특화·채용한 완전 다이버전스 형태, ▼새로운 모바일 컴퓨팅기기, 오토-인포테인먼트 기기, 아이패드와 같은 테블릿 PC 등 전문 기능 중심으로 특화하되, 몇 가지 기능들을 복합적으로 추가함으로써 아예 새로운 영역을 창출하는 부분적 컨버전스(Partial Convergence) 형태 등도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다이버전스 제품은 기존 컨버전스 제품의 대체나 틈새시장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시장 영역을 만들어낼 수 있고, 독립적인 주류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컨버전스와 양립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시기별로 컨버전스와 다이버전스 제품에 대한 고객 선호 경향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혁신적 신제품이 출현하게 되면 기존 시장을 대체·잠식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게 된다. 이후 해당 제품이 가지는 기능들의 성능이 향상되는 한편, 컨버전스를 통해 기능 확장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는 고객들이 컨버전스를 통한 다양한 기능 사용에 보다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반면 컨버전스 제품이 성숙기에 이르게 되면 고객들은 복잡하고 다양한 기능보다는, 쉬운 사용 방식과 특정 기능을 지닌 다이버전스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즉 다이버전스 제품은 기존 컨버전스 제품이 성능 향상이나 기능 확장을 통해 계속 성장하는 시기보다는 성숙기에 이른 시점을 포착,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성공 확률이 높다.
● 스마트화(기능·성능 향상) vs. UI·Form Factor 혁신
최근 전자산업 내 가장 큰 화두는 ‘스마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휴대폰의 경우 스마트화를 통해 PC 기능을 융합하면서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기능(컨텐츠·애플리케이션 서비스)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게임이나 영상물 시청 등 엔터테인먼트 기능, 뉴스나 인터넷 검색 등 정보 기능, E-메일 등 간단한 문서 작성 기능, 리모트컨트롤 및 위치기반서비스 등 데이터커뮤니케이션 기능, 앱스토어 이용 등 거의 PC와 유사한 기능들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TV 또한 스마트TV가 개발되면서 동영상 시청과 연계한 정보 탐색, 채팅, 온라인 쇼핑 등의 기능 뿐만 아니라 화상 전화, 게임, 웹브라우징, 앱스토어 이용, N-스크린 서비스 등 다양한 컨텐츠·애플리케이션들이 새로운 기능으로 추가되고 있다.
한편 휴대폰의 경우 스마트화에 따라 향상된 기능·성능을 기기 내에서 최적으로 구현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터치 형태로의 UI 변화와 전면 디스플레이를 채용한 Bar 타입으로의 Form Factor 변화도 일어났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전자산업에서는 기능의 다양화와 폼 팩터의 발전이 병행되어 왔던 면이 있다. 휴대폰의 경우 전통적인 음성통화 기능이 중심이었던 때, 디스플레이 창은 시간이나 전화번호 정도를 표시하는 목적으로 활용되어 크기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통화 기능 외 데이터통신, AV 기능, 컴퓨팅 등 다양한 애플리케이션들이 휴대폰에 채용되면서 디스플레이의 크기는 점점 더 커져 왔다. 그 외형적 Type 또한 다양해진 기능들을 잘 구현하기 위해 Bar형, Flip형, 폴더형, 슬라이드형, 회전형, 터치 스크린형 등으로 계속 변화해 왔다.
이렇듯 언뜻 보면 기능·성능 향상과 UI·Form Factor 혁신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면도 있다. 그러나 양자간의 관계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희생시켜 다른 한쪽의 혁신의 자유도를 떨어뜨리는 패러독스 상황도 발생한다. 즉 스마트화로 인한 기능·성능 향상이 크기·무게 등을 비대하게 만들어 휴대용이성 측면을 저하시키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터치스크린 형태의 Bar 타입 외 다양한 Form Factor와 디자인을 구현하는 데 있어 자유도가 떨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휴대폰은 90년대 후반 디지털로의 전환 이후 패션 액세서리 측면이 강조되면서 감성적인 디자인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제품 개발·출시의 패턴이 변모하였다. 투박한 Bar 타입 중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Form Factor가 선보이게 되었고, 경량화·슬림화를 통한 Form Factor 혁신이 주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반면 2000년대 들어서는 디지털 컨버전스의 최선봉에 서서 카메라, MP3, 캠코더, 전자수첩 등의 기능이 융합되면서 기능 확장과 칩셋 성능 향상 중심으로 주류 트렌드가 변모하였다. 카메라 기능, 대형디스플레이, 음악재생 기능, 대용량 메모리 등을 채용하다 보니, 크기·무게는 커질 수 밖에 없어, 패션성을 강조한 감성적인 디자인 측면이 어느 정도 희생당할 수 밖에 없었다. 2005년 들어 이러한 기능·성능 향상 중심의 트렌드는 수그러들고, 다시 감성적인 Form Factor 혁신이 주류 트렌드로 부각되었다. 이전 시기의 폰들에 비해 획기적으로 슬림화한 레이저폰의 등장이 이를 촉발시킨 것이다. 휴대폰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기능·성능 향상과 UI·Form Factor 혁신은 그 시기별로 주류 트렌드로서의 입지를 반복해 왔다. 이를 감안할 때 기능·성능 향상과 UI·Form Factor 혁신 간의 패러독스 상황에 대한 해법은 시기별로 제품 혁신의 포인트를 달리 가져가는 것이 한 방안이 될 것이다.
UI 혁신으로 패러독스 해결 가능
한편 와해적인(Disruptive) 기술 혁신이 일어난다면 기능·성능 향상과 UI·Form Factor 혁신 간의 패러독스가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휴대폰의 경우 당분간 기능의 컨버전스가 계속 진행되겠지만 전자기기가 갖는 모든 기능들을 적절히 수용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즉 휴대용이라는 측면에서 포켓 사이즈 이상으로 커져서는 곤란한 크기나 무게의 제약 때문에 디스플레이가 4인치대 이상으로 커지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에 따라 동영상 시청 등에 있어서는 보다 큰 디스플레이를 가진 전자기기들에 비해 불편함이 있다. 또한 터치나 쿼티 자판 등의 입력 방식 채용으로 워드, 엑셀 등 원활한 컴퓨팅 작업이 곤란하다는 한계가 있다. 만약 플랙서블(Flexible) 및 폴더블(Fordable) 기술, 고해상도 프로젝터(Location-Free), 홀로그램, 나노 소재를 활용한 접는 디스플레이 등 소재나 물성 혁명을 통한 새로운 디스플레이 기술이 개발된다면 휴대성을 헤치지 않고 디스플레이 크기를 자유롭게 증가시킬 수 있는 휴대폰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입력 기술에서는 버츄얼 키보드(Virtual Keyboard), 인공지능, 자연어 음성 인식 등의 혁신 기술이 개발된다면 휴대 용이성을 유지하면서 완전한 컴퓨팅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Ⅲ. 시사점
이상을 종합해 볼 때 기업들이 직면할 수 있는 패러독스 상황의 유형과 해당 패러독스에 직면할 경우 이를 돌파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을 다음과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상반성이 있는 2가지 트렌드 또는 상황이 시장 또는 고객별로 각기 다른 영역을 형성할 수 있는 경우이다. 컨버전스와 다이버전스 간의 패러독스가 그 예이다. 즉 다이버전스 제품의 경우 특정 기능 중심의 완전 다이버전스 제품, 컨버전스 제품을 간소화하면서 혁신 기능을 추가한 부분적 컨버전스 제품 등이 존재한다는 점을 보았다. 이에 따라 다이버전스 트렌드는 컨버전스형 제품과 대체·경쟁 관계에 있다기보다는 완전히 새로운 시장 영역을 창출해 낼 수 있고, 독립적인 주류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컨버전스와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패러독스에 직면했을 때는 모든 영역에 대해 1가지 트렌드만을 추종하는 전략을 추진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즉 패러독스 상황의 개별 트렌드가 주로 작용할 수 있는 시장·고객 영역을 적절히 포착하여 시장·고객별로 각기 다른 트렌드를 적용해 공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시기별로 주류 트렌드가 달라지면서 패러독스 관계에 있는 2가지 트렌드가 계속 반복되는 경향을 보이는 유형이다. 기능·성능 향상과 UI·Form Factor 혁신 간의 패러독스 상황을 예로 들어 보면, 전자기기들이 일정 기간 동안 기능·성능 향상 중심으로 개발·출시되는 패턴을 보이다가, 이후 UI·Form Factor 혁신 중심으로 변모하는 등 시기별로 주류 트렌드로서의 입지를 반복해 왔다. 컨버전스와 다이버전스 간의 패러독스도 마찬가지이다. 다이버전스 제품은 기존 컨버전스 제품이 성능 향상이나 기능 확장을 통해 계속 성장하는 시기보다는 성숙기에 이른 시기에 활성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패러독스 상황에서는 시장 흐름을 잘 포착하여 타이밍별로 제품 혁신의 포인트를 달리 가져가는 것이 효과적인 방안이라 볼 수 있다.
셋째, 어떤 시기, 어떤 사업 영역에서도 근본적인 트레이드-오프 관계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개인화·맞춤화와 표준화·규격화 간의 패러독스 상황이 그 예로서,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 모델, 플랫폼 기반 활용, 프로슈머 모델, 컨텐츠·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 맞춤화, 지능형 맞춤화 등이 그 해법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 경우에는 2가지 상반된 상황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패러독스 상황의 해결에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특이한 점은 패러독스 상황들이 양립할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반면, 상호보완적인 측면도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즉 패러독스 상황의 어느 한쪽이 심화될수록 오히려 다른 한쪽의 필요성을 촉발시키는 효과를 낳는 경우도 있다. 컨버전스가 고도화될수록 복잡화에 따른 기능 피로 현상의 심화로 오히려 전문화·세분화를 촉진시킨다든지, 대립되는 조립식 사업 진영과 제조 전문 수직통합 진영이 상호 간 협업을 통해 서로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선순환 관계를 유지한다든지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따라서 패러독스 상황을 트레이드-오프 관계로만 인식하기보다는 한 쪽의 트렌드가 거세어질 때 상반된 트렌드에 부합되는 전략 활동을 동시에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기업들은 현재의 게임 룰이나 트렌드와는 반대되는 상황을 항상 염두에 두고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선두에 있는 기업들이 현재의 트렌드나 패러다임에 안주하여 패러독스 상황의 한쪽을 간과했을 때, 혁신의 기회를 놓치거나 경쟁우위를 상실도 우려가 있다. 반대로 후발 기업들의 경우 지금과는 오히려 차별화되고 상반되는 트렌드를 잘 이용한다면 역전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패러독스 상황의 역학관계를 적절히 포착해 이를 근본적인 혁신이나 차별화의 기회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LG Business Insight 11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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