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6. 14:47
[Business]
‘독한 리더십’의 대표는 얼마 전 타계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다.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조직을 이끌었고 때론 거만하고 고집불통이었다. 괴팍하고 직설적인 성격으로 직원들을 혹독하게 다루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독한
리더십을 외형적 스타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그가 보여준 최고의 완벽주의 추구, 신념과 원칙에 대한 단호함, 목표에 대한
집요함, 더 중요한 것에 대한 집중과 몰입, 한 발 전진과 발전이 주는 가치 중시와 같은 내면적 독함이야 말로 그의 외형적
독함마저 빛나게 하는 요소다. 더불어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 개인의 이익보다 조직, 고객, 사회, 인류를 바라보는 한 차원
높은 시야는 그의 독한 리더십이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이었다.
잭 웰치, 앤드루 그로브, 제프 베조스, 나가모리 시게노부 등 강한 개성과 깐깐한 성격의 리더들에게서도 ‘독한 리더십’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리더의 무서운 성격과 태도가 독한 리더십을 만들어낸다고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빌 게이츠, 윌리엄 고어,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등과 같은 리더들은 부드럽고 다정한 스타일을 지녔지만, 자신의 신념과 원칙에 기반하여 조직과 사업을 이끌어가는 데에는 누구보다도 독한 리더들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독한 리더십은 외형적 태도나 스타일의 문제가 아닌 리더가 지닌 내면의 속성에 대한 것이다. 리더가 개인을 뛰어 넘어 조직, 고객, 사회, 인류를 생각할 때, 올바른 생각과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구성원으로부터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사익을 좇지 않는 확고한 신념과, 원칙에 관한 단호하며 일관된 행동의 리더라면 스타일이나 태도가 아무리 미워도 사람들은 속으로부터 존경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만약 리더가 독선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독재자요, 괴짜이며 변덕스러운 통제광이고 남의 말은 전혀 듣지 않는 고집불통이라면 과연 그 조직은 성공할 수 있을까? 요즘처럼 창의와 자율이 강조되는 시대에 필시 얼마 안가 망할 것만 같다. 그런데 위의 언급들은 바로 얼마 전 타계한 최고의 혁신 기업 애플의 스티브 잡스에 대한 얘기다. 그리고 GE의 잭 웰치, 인텔의 앤드루 그로브,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시게노부 등 가장 성공적인 CEO로 인정받는 리더들 역시 이 범주에 해당된다. 이 뿐만 아니다. 3D 영화의 신기원을 이룩한 영화감독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세계 최고의 축구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축구감독 알렉스 퍼거슨과 같은 최고의 리더에게도 위의 표현들은 그대로 적용된다.
이들의 리더십은 많은 리더십 연구자들이 부르짖는 배려와 이해, 감성과 소통의 소위 ‘인간적이고 좋은 리더십’에 역행한다. 『Good to Great』의 짐 콜린스가 가장 이상적이라 주장한 겸손의 ‘레벨 5 리더십’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감정 표현에 매우 직설적이다. 또 독선적이고 구성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려 하며 변덕이 죽 끓듯 하고, 때론 거만할 정도로 고집스러워 남의 말을 거의 듣지 않는다. 도대체 이런 말도 안되 보이는 리더십으로 어떻게 조직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을까?
Ⅰ. 스티브 잡스의 ‘독한 리더십’
최근 미국에서 실시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들은 스티브 잡스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신가 중 두 번째(토마스 에디슨에 이어)로 꼽고 있다. 21세기의 에디슨으로 불리는 혁신의 아이콘 잡스였지만, 리더십에서는 그다지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는 독단적 성격으로 인해 수시로 동료들과 갈등을 빚었다. 그의 폭언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상처를 입고 회사를 떠난 사람도 적지 않다.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협상도 주저 없이 깨뜨렸고, 사소한 것으로 직원들을 달달 볶아댔다. 그럼에도 가장 혁신적인 조직을 만들고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성과를 창출했기에 그의 리더십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잡스가 있는 애플에는 언제나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잡스 주변에 인재가 넘쳐나게 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괴팍한 잡스 자신이었다. 수 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잡스는 뭔가 해낼 것 같은 믿음을 주었다. 애플에 근무했던 사람들은 “그와 일할 때면 마치 그가 세계의 중심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고 입을 모은다. 이쯤 되면 잡스의 리더십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는 자신의 신념과 목표를 향해 ‘독하게’ 정진했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한치의 양보나 타협이 없었고, 놀라울 정도로 대범하였으며, 자기 확신은 지나치리만큼 강했다. 목표는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강한 집념으로 스스로 동기부여 되었고, 집요하고도 지치지 않는 추진력을 보여주었다. 확고한 신념으로 한번 내린 결정에는 단호하고 일관된 행동을 보여주었다. 그가 지닌 독함은 조직 전체에 영감을 불어 넣었다. 그가 보여준 열정은 조직 전체를 공명시켰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작용했다. 직원들은 힘들어도 그를 따라야 한다고 믿게 되었으며 그 믿음의 결과에 열광했다. 자신들이 이룩한 성과에 보람과 자부심을 가졌고, 역량의 성장에 감격했으며, 잡스를 찬양했다.
잡스는 후계자 육성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곤 했다. 그의 병가 소식만으로도 휘청거렸던 주가는 마지막까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후계 구도에 불안감을 느끼게 했고, 비판론자들의 목소리를 키웠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잡스만큼 애플의 미래를 걱정하지는 못했다. 후계자 승계계획(Succession Plan)에 집착하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잡스는 애플의 다음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다. 두 번째 병가를 떠나기 직전, 잡스는 이미 예일 대학 경영학 교수이자 저명한 경영 구루인 조엘 포돌니를 HR 부사장으로 영입하여 애플의 미래를 대비하는 프로젝트를 맡긴다. 포돌니는 하버드 대학 경영학과 출신 교수 등으로 이루어진 팀을 이끌며 애플의 사업적 결정들을 분석하고 꼼꼼한 매뉴얼과 지침서, 참고 사례로 이루어진 애플만의 참고서를 만들고 있다. 앞으로도 철저히 대외 비밀에 부쳐질 그 책에는 조직의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도 독했던 잡스의 고민이 담겨 있을 것임에 틀림 없다.
Ⅱ. ‘독한 리더십’에 대한 오해
독한 리더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외형적 태도만으로 독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독한 리더’ 하면 괴팍한 성격에 고함을 치는 리더를 연상하기 때문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밀어 부치고, 주변 여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뜻을 관철시키려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는 카리스마 강한 리더가 떠오르기도 한다. 잡스를 비롯하여 잭 웰치, 앤드루 그로브 등 독한 리더로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이런 스타일에 가까운 게 사실이다. 독한 리더십은 강한 개성에 깐깐한 성격의 소유자에게나 어울리는 것일까?
엄밀히 말하면 기업을 성공시킨 사람은 독한 리더다. 치열한 약육강식의 비즈니스 무대에서 리더가 독하지 않다면 결코 조직과 사업을 성공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독한 리더의 예도 얼마든지 있다.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잡스의 영원한 라이벌이면서 독하기로는 절대 뒤지지 않았지만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정반대였다. 그는 엔지니어를 극진히 대접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회사를 살리는 것은 소프트웨어 경쟁력이며 이는 엔지니어들로부터 나온다는 신념이 워낙 확고했다. 그가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면서 남긴 소위 ‘게이츠식 리더십(The Gates Way)’의 4가지 항목 중 하나로 “엔지니어가 회사를 지배하도록 하라!”는 문구를 명시해 놓을 정도였다(<그림 1> 참조).
대학원 같은 회사 구글을 이끌고 있는 두 명의 천재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도 잡스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독한 리더들이다. 이들이 이룩한 회사 구글에서는 논쟁이 자유롭다. 회의 중에는 지위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CEO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전략 하달이 아니라 다양한 대화를 주의 깊게 듣는 것이다. 캠퍼스라 불리는 회사에선 구성원의 창의성과 자발성이 최대한 존중되다 보니 일하는 것 자체가 활력이 된다. 이처럼 기존에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새로운 유형의 회사를 구현해 낸 두 명의 젊은 리더는 비록 성격이 부드럽고 다정하지만 진정 독한 리더라 할 수 있다.
유사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갖춘 고어사의 창업자 윌리엄 고어 역시 조직 운영 철학에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는 독한 리더지만, 누구보다 기업과 조직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한다. 미국 텍사스주에 본사를 둔 자연주의 식품 체인 기업 홀푸드, 직원들이 근무 시간과 급여 수준을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샘코, 직원들을 평가하거나 업무 지시가 전혀 없는 일본의 미라이 공업사 같은 회사도 마찬가지다. 이들 기업의 CEO들은 구성원 스스로를 주인공이라 여기게 만드는 경영 철학과 사람의 가치에 대한 신념에서 조금도 물러섬이 없는 독한 리더들이다.
Ⅲ. ‘독한 리더십’의 실체
앞서 살펴본 대로 독한 리더십의 실체는 외형적 태도가 아니라 목표 달성을 위한 열정과 의지와 같은 내면적 속성이다. 리더가 진정한 ‘독함’을 가진다면 리더십 스타일과 상관 없이 비즈니스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독함이 리더의 결점을 상쇄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1. 완벽주의 : ‘최고의 완벽’을 추구한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편집증적인 완벽을 기하는 것은 독한 리더의 대표적인 특성이다. 스티브 잡스는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한 나머지 집에 가구를 들여놓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었을 정도였다. 그는 항상 “혼을 빼놓을 만큼 뛰어난(insanely great)” 제품을 주창한다. 자신이 관심을 쏟고 있는 제품과 관련된 개발자의 이메일 주소나 전화번호는 전부 암기하고 있었고,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면 한 밤중이라도 수시로 전화하곤 했다. 제품 출시 프리젠테이션에서는 홀의 색조, 조명 밝기 등 사소해 보이는 것까지 맘에 들 때까지 수십 번이나 반복해서 고쳤다. 자신의 어투나 발걸음도 며칠 전부터 수십 번 연습했으며, 문구 하나를 고치는 데에도 며칠을 소비했다. 완벽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일례로 매킨토시 회로기판 내부에는 개발팀 45명의 서명이 새겨져 있다. 아무도 보지 않을 터였지만 매킨토시 개발팀원들에게 예술 작품을 완성한 것과 같은 자긍심을 갖도록 한 것이다. 심지어 케이스를 일반적인 드라이버로는 열리지 않게 만들 정도로 잡스는 제품의 완벽함에 큰 자부심을 표시했다.
잡스 사후 대표적인 혁신 아이콘으로 부상한 아마존닷컴의 제프 베조스도 완벽 추구에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리더이다. 그가 처음 온라인 서점에 대한 최초의 사업 계획을 세웠을 때 최소 1백만 달러의 투자자금이 필요했는데, 당시는 신경제 거품이 꺼지지 않아 벤처기업가들은 노련한 투자가들로 단돈 5만 달러를 구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베조스는 인터넷 사용에 관한 방대한 자료에 대한 치밀하고도 완벽한 분석으로 믿을만한 수치 근거를 확보했다. 결국 그는 완벽한 계획서와 프리젠테이션으로 예상을 뒤엎고 5만 달러의 투자가 20명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아마존닷컴이 세계 최대의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이 된 것도, 킨들에서 보여지는 전자 책의 탁월한 질감과 색조도 완벽함을 향한 베조스의 집념이 낳은 산물이다.
독하기로 소문난 제임스 카메론 감독도 최고의 완벽 추구에는 다르지 않다. 타이타닉을 뛰어넘어 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영화 아바타는 1995년에 이미 80페이지짜리 각본으로 완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당시 컴퓨터 그래픽 기술력으로는 원하는 수준의 영화제작이 불가능하자 카메론 감독은 제작을 포기했다. 2006년에야 영화 제작이 시작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감독의 완벽주의였던 것이다.
부드럽고 친근한 성격의 빌 게이츠 역시 완벽함을 추구하는 독한 리더다. 게이츠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리스크 관리였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남긴 4가지 덕목(<그림 1> 참조) 중 첫 번째로 강조할 정도로 게이츠는 리스크 대비에 완벽하고자 했다. 창업 초기, 스티브 발머가 회사 성장 전망과 위협 요소를 면밀히 계산하여 최소한 17명의 영입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게이츠는 이 제안에, “열 일곱 명이라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요. 난 결코 회사가 재정적 어려움에 놓이지 않게 할 것입니다. 앞으로 단 한 푼의 매출 없이도 1년은 버틸 수 있도록 현금을 확보하도록 해 나갈 겁니다”라고 답했을 정도다.
2. 집요함 :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짐 콜린스에 따르면 성공한 기업의 리더들은 탁월한 비전 제시나 리스크 테이킹에 능한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아주 실증적이며 어떤 환경에도 요동함 없이 자기 길을 묵묵히 가는 절제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과 두뇌를 가졌어도 소위 한 탕을 노리거나 감에만 의존해서는 조직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기 어렵다. 독한 리더의 모습도 꾸준하고 진득하다. 한 번 정한 목표는 달성할 때까지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요행을 바라거나 도중에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는다. 직원들이 독한 리더를 따르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런 집요함과 끈질김이다.
작은 납품회사에서 출발, 소형모터 업계에서는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된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시게노부 사장은 성공 비결을 ‘배(倍)의 법칙’과 ‘절반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간단히 말해 남보다 앞서려면 무조건 두 배 오래 일하고, 절반의 기간 내에 목표를 달성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정신 노동이든 육체 노동이든 남들보다 시간과 노력을 두 배 들이면 누구든 이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창업 당시 시게노부 사장과 동료들은 일반적 근로시간의 두 배인 하루 16시간 일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다. 하루는 대기업연구소에서 모터 크기를 3개월 안에 절반으로 줄이면 거래를 하겠다는 제안을 받고, 모든 직원이 밤낮으로 씨름하였지만 납기 15일을 남겨 놓은 시점에서 겨우 15% 정도 줄이는 데 그치고 만다. 경과 보고를 하러 간 시게노부 사장은 같은 주문을 받은 예닐곱 군데의 대기업들이 너무 어려워 다 포기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는 돌아와 밤을 새워 더 노력하였다. 결국 18% 정도 줄이는 데 그쳐 시게노부 사장 일행은 의기소침해졌지만, 최종 제품을 받아본 연구소에서는 3개월 만에 18%나 줄인 것 자체가 기적이라며 그 즉시 발주를 하였다.
아마존닷컴의 베조스는 2001년 경쟁업체 보더스가 백기를 들고 브랜드 공유 협력을 제안할 때, “이 승리는 더 뛰어난 고객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시장의 메시지입니다”라고 말하며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같은 해, 99달러 이상 주문 시 무료배송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일주일 만에 강력한 경쟁자 반스앤노블닷컴과 출혈 경쟁에 내몰린 적이 있다. 월가에선 아마존닷컴이 위기에 봉착할 것이란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당기 순이익이 곤두박질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지만 베조스는 2002년 6월에 49달러 이상 주문으로, 2002년 8월에는 다시 25달러 이상까지로 무료 배송을 확대하였다. 그가 집요하게 매달린 것은 경쟁사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아마존이 경쟁사보다 고객을 위해 끊임없이 가격을 내리고자 노력한다는 인식의 확산이었다. “지금의 뼈를 깎는 노력은 길게 보면 우리를 더욱 강하고 가치 있는 기업으로 거듭나게 할 것입니다”라고 외친 확신에 찬 베조스의 말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3. 단호함 : 신념과 원칙에 한치의 양보 없다
독한 리더들은 신념과 원칙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포춘』에 실린 애플의 기업 문화 분석 기사에는 잡스의 단호함이 잘 드러나는 일화가 있다. 잡스는 2001년부터 PC가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기기들의 디지털 허브 역할을 하는 비전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잡스에게 2008년 여름 출시된 제품 ‘모바일미’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 마디로 엉망이었다.” 기기들간 호환에 큰 문제를 드러낸 이 제품에 대해 월스트리트 저널 등 언론들은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최고에 대한 신념이 매우 강했던 잡스는 자신이 쌓아 올린 제품력 이미지가 손상되는 것을 참지 못하였다. 그는 모바일미 팀 전원을 본사 강당에 불러 30분이 넘게 질책하고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팀의 책임자를 물러나게 하였다.
디자인에서도 ‘단순함’에 대한 잡스의 신념과 원칙은 너무나도 확고했다. 1977년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그림의 회사 로고를 처음 만들어 애플II 팸플릿에 인쇄할 때, 잡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한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Simp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라는 문구를 그 옆에 잘 보이게 찍어 넣을 정도였다. 잡스에게 단순함이란 복잡함의 무시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상당한 노력이었다.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홈 버튼 하나만 있는 디자인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은 이를 잘 보여준다. 잡스에게 고객 가치 기준은 자기 스스로의 확신이었다. 매킨토시를 선보인 날 한 기자가 어떤 방식으로 시장 조사를 했는지 물었을 때도 그는 코웃음치며 되물었다. “알렉산더 그레엄 벨이 시장조사 같은 걸 하고 전화를 발명했나요?”
제프 베조스도 2002년 온라인 사업에서 입소문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자 베조스는 그 즉시 모든 텔레비전 광고에서 철수를 지시했다. 자신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선전하는 텔레비전 광고보다는 고객과의 약속을 어김없이 지켜나가면서 얻어가는 신뢰가 브랜드가치를 더 키워줄 것이라는 신념에서다. 이후로도 텔레비전 광고 효과에 대한 주장이 아무리 거세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월마트의 샘 월튼은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다는 신념이 특히 강했다. ‘다양한 물건을 누구보다 더 싸게’라는 원칙은 물론 K마트와 같은 경쟁업체에 비수를 꽂은 가격 전략도 여기서 나왔다. 잭 웰치는 인재 육성이 리더의 가장 중요한 의무라는 신념이 특히 강했다. 그래서 젊은 인재라면 일찍 발탁하여 책임과 권한을 주고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밀어 주었으며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에는 가차없이 탈락시키는 원칙을 보였다. 수 천명을 해고하던 잭 웰치가 크로톤빌 연수원 예산 청구서에 ‘무한대’라는 글씨를 휘갈겨 쓴 것도 그의 신념을 보여준 상징적 행동이었다.
구글을 이끌고 있는 다정다감한 성격의 두 젊은 리더 브린과 페이지도 가치와 신념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이들은 “바르지 않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Don’t Be Evil)”라는 다소 평범해 보이는 가치를 기업 경영에서 변함 없이 실천하는 독한 리더다. 많은 포탈 업체들이 상업적인 동기를 가지고 검색결과를 편집하여 구성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절대로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검색순위를 편집 혹은 조작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얼마나 독한 것인지 알 수 있다.
4. 집중과 몰입 : ‘더 중요한 것’ 위해 ‘중요한 것’은 포기한다
제프 베조스는 아마존닷컴을 창업하면서 오프라인 서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었다. 직원과의 상호 작용이 거의 없는, 그러면서도 고객에게 가장 완벽한 도서 구매 경험을 선사하는 온라인 서점이 그것이다.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직원들의 자율과 창의, 배려가 아니라, 데이터관리 시스템과 물류 창고였다. ‘더 중요한’ 고객 대응을 위해 인건비가 높은 석사 학위 소지자들을 상담직에 채용한 것은 당연했지만, 몇 번을 수리하여 사용하는 직원들의 낡은 나무 책상에 베조스의 관심이 갈리 없었다. 직원들의 관리도 그냥 ‘중요한 것’ 중 하나였다 베조스는 직원들이 상시적으로 당하는 모니터링, 분당 이메일과 전화 대응 건수에 따라 평가 받는 데 대한 불만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한 직원은 퇴사하면서 시애틀 신문에 ‘아마존 집단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아마존닷컴에서는 인간적인 교류를 필요악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다”라고 고백하였다. 베조스의 전기라고 볼 수 있는 『One Click』을 쓴 리차드 브랜트는 베조스야말로 사업에 모든 우선 순위를 두는 리더의 전형이라고 지적한다. 베조스에게 ‘구성원들로부터 존경 받는 것’은 애당초 중요하지 않았다.
잡스도 자신이 남들에게 어떻게 비쳐지는지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아이디어를 성과로 연결시키는 것 만이 그에게 유일한 ‘더 중요한’ 것이었다. 따라서 맘에 들지 않는 프리젠테이션쯤은 언제든 중단시켰고,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었다며 화를 내곤 했다. 이런 잡스의 태도는 ‘반지름 10미터 밖의 사람들에겐 열정과 희망을 주었지만 반지름 5미터 이내에 들어온 직원들에게는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고 묘사되기도 했다. 기대 수준에 맞는 ‘깨달은 사람’ 아니면 ‘멍청한 놈’으로 이분화된 직원들은 잡스로부터 ‘최고’라고 인정받거나 아니면 완전히 ‘쓰레기’취급을 당하는 둘 중의 하나였다. 이런 분류는 완전히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잡스는 어떤 아이디어에 대해 쓰레기 같다는 모욕을 주고 나서도 나중에 자기가 생각해낸 것처럼 오히려 상대를 설득하기도 했다. 이런 뻔뻔한 태도에 대해 그의 전기를 집필한 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잡스의 두뇌 회로에는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충동적인 생각들의 극단적 증가를 완화시켜주는 장치가 결여되어 있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감지한 1994년, 빌 게이츠는 일년에 한 번 갖는 자신의 ‘생각 주간’에 온통 인터넷에 몰입한다. 그리고 회사의 핵심 브레인들로 이루어진 팀을 구성하여 다가올 위협을 분석했다. 한달 이상 지속된 토론과 분석 끝에 인터넷은 사업 환경의 근간을 흔드는 변화이며 기회이고 위협이므로 마이크로소프트는 변화의 물결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어 게이츠는 잘 알려진 인터넷 익스플로러 개발을 위한 5백명의 프로그래머 조직을 구성하여 회사의 역량을 여기에 집중시킨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순항할 수 있었던 것도, 1994년 당시 리더가 집중적인 고민과 토론 끝에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거함의 방향을 단번에 180도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5. 꾸준함 : 여정 자체가 주는 가치를 중시한다
독한 리더들은 일시적인 어려움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미래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장기 계획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했던 제프 베조스는 당장의 실적부진을 전혀 감추려 하지 않았다. 1997년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실적 부진을 거론하자, “네, 우리는 지금 이익을 못 내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과 같은 초기 단계에 이익을 내기 위한 사업적 결정을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지요”라며 자신감을 피력하였다. 2000년 인터넷 사업의 거품이 꺼지면서 아마존닷컴의 주가는 주당 100달러에서 6달러로 수직 추락했다. 한때 100억달러에 육박하던 그의 재산도 2002년에는 15억달러로 줄었다. 하지만 베조스는 여전히 “단기간의 주가 변동에는 관심 없다. 고객에게 집중하자”고 직원들 독려했다.
1991년 업계 최강으로 자리를 굳히던 시기에 빌 게이츠가 작성한 ‘Nightmare memo’라는 문서가 지역 신문인 산호세 머큐리 뉴스에 보도되면서 주가가 11%나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회사가 잘 나가는 시기였지만 이 메모에는 오히려 경쟁사, 기술, 지적 재산권, 특허, 고객 불만 등 다가올 온갖 위협과 걱정 거리가 다 들어 있었다. “우리의 우려는… 이제 현실입니다”라는 말로 마무리된 이 메모는 게이츠의 리스크 문제에 관한 편집광적인 독함을 잘 보여준다. 지속성을 중시하는 독한 리더들은 ‘큰 것 한 방’보다는 꾸준히 전진하는 과정의 가치를 중시한다. 경영 환경이 안 좋을 때나 좋을 때나 더하거나 덜하지 않고 최종 목적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눈 앞의 성과에 현혹되지 않고 멀리 내다 보며 내실을 다지는 절제는 보통 독한 리더가 아니고서는 갖기 어렵다.
잡스 역시 결코 경쟁에서 이기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 애플의 매킨토시 개발팀에서 일했던 허츠펠드는 “잡스는 가능한 한 가장 위대한 일을 하는 것, 혹은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이 목표였다”고 회고한다. 자신과 팀원들은 그런 잡스에 매료되었다고 털어놓는다. 하루는 매킨토시 개발팀을 찾은 잡스에게 부팅 시간 지연 문제에 대해 한 엔지니어가 변명을 하려 했다. 그러자 잡스는 그 말을 끊고, “500만 명의 맥 사용자가 매일 컴퓨터 부팅 시간을 10초 덜 사용한다면 연간 3억 분이 절약되며 이는 100명의 사람들의 일생에 해당한다”고 일갈하였다. 결국 그 엔지니어는 몇 주 후에 부팅 시간을 28초나 줄여 놓았다. 이런 성취감은 자발적으로 확보된 것은 아니었음에도 애플의 엔지니어들에게 커다란 내재적 보상이 되었다. 애플 엔지니어들의 퇴사율이 업계 최저 수준이고 그들이 말하는 애플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런 기적이 일어나는 세상의 중심 애플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6. 통찰력 : 이면에 감추어진 본질을 꿰뚫어 본다
애플이 제록스의 팰러앨토 연구센터(PARC)의 그래픽 인터페이스와 비트맵 기술을 가져다 쓴 것은 IT업계 역사상 가장 의미심장한 도둑질로 간주되곤 한다. 1979년 PARC를 방문한 잡스는 그림으로 이루어진 명령체계와 메뉴판을 마우스라는 입력기로 조작하는 알토(Alto)라는 컴퓨터를 보게 된다. 그 순간 잡스는 그 가능성을 알아차리고 발을 동동 굴렀다. 잡스에게 새로운 기술을 소개하였던 제록스의 엔지니어 테슬러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잡스는 흥분해서 가만있질 못하고 이쪽 저쪽을 왔다 갔다 했어요. 내 설명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궁금했지만 그는 계속 질문을 쏟아냈으며 화면이 바뀔 때마다 감탄을 내지르더군요. 그리고는 마침내 ‘당신들은 돈방석 위에 앉아 있는 데 대체 왜 이런 걸 활용하지 않느냐 말이요!’ 라며 소리질렀죠.” 사실 잡스는 훗날 이 방문에 대해 컴퓨터의 미래가 갑자기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 설레임은 최고의 PC 매킨토시로 탄생되었고 잡스는 스스로 ‘도둑질’을 자랑스럽게 인정했다. 자신은 역사에 등장한 최고의 아이디어를 찾아냈으며 애플은 이를 잘 활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피카소의 말을 인용,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며 훌륭한 아이디어를 훔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잡스는 제록스가 보지 못한 기술의 본질을 한 눈에 꿰뚫어 보았다. 또 훔쳐서라도 최고의 제품을 개발하고픈 열망을 이기지 못했다. 역사는 최고의 기술을 손에 쥐고도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지 몰랐던 제록스보다 ‘도둑’ 잡스에 더 많은 지지를 보낸다. 잡스가 언제나 어디서나 음악을 다운받고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사업 열망을 가지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애플이 아이맥을 출시한 후 소니의 고급 스테레오에 장착된 슬롯 드라이브에 매료된 잡스는 개발책임자의 반대를 꺾고 아이맥의 CD트레이를 슬롯드라이브로 바꾸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파나소닉에서 읽고 쓰는 CD드라이브가 출시되자 개발책임자의 예견대로 애플은 문제에 봉착한다. 듣고 싶은 음악을 편하게 구워 사용하고 싶어진 고객들에 애플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잡스는 문제의 본질이 기술에 있지 않고 소비자들의 음악에 대한 욕구 변화에 있음을 간파했고 결국 아이포드와 아이튠즈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제프 베조스가 100만 달러 연봉을 받던 직장을 뛰쳐나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창업을 고집했던 이유도, 잭 웰치가 다른 비용은 줄이고 깎으면서도 인재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은 것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잡스가 죽는 날까지 강조한 ‘혼을 빼놓을 만큼 뛰어난(insanely great)’ 제품과 서비스 역시 기술 자체의 탁월함이라기 보다 숨겨진 시장의 본질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에 관한 주문이었다.
Ⅳ. ‘독한 리더십’으로 성공하는 조직이 되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의 문제를 풀 차례다. 안타깝게도 이 문제는 수학과 달리 정답이 없다. 하지만, 독한 리더십을 가진 리더와 기업들의 사례에서 몇 가지 중요한 힌트를 얻어볼 수 있다. 다만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은 독한 리더십은 신념과 가치에 대한 확신, 열정과 같은 내면적 속성이지 겉으로 드러난 외형적 태도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 리더 스스로 신뢰 축적이 핵심
리더가 조직과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려면 무엇보다 구성원으로부터 가슴에서 나오는 신뢰를 얻어야 한다. 조직을 성공시킬 거라는 믿음을 주려면 리더로서 어떤 점이 중요한 지 살펴보자.
올바르고 일관된 판단과 결정
개인을 뛰어 넘어 조직, 고객, 사회, 인류를 생각하는 판단과 결정은 신뢰를 얻는다. 리더가 사익을 좇지 않을 때 스타일이나 태도가 아무리 미워도 사람들은 속으로부터 존경심을 가진다. 스티브 잡스, 앤드루 그로브, 빌 게이츠가 내린 결정은 자신보다는 조직, 그리고 고객, 사회, 인류를 위한 쪽이었다. 돈을 벌기보다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싶어했고,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했을 때에는 시장에서 히트를 치지 못해도 그 자체로 기뻐했다. 아마존닷컴의 제프 베조스는 직원들의 낡은 나무책상도 바꿔주지 않는 ‘짠돌이’ CEO지만 80세 넘은 할머니 고객의 “포장을 뜯기 어렵다”는 목소리에 비용과 상관 없이 곧바로 포장재와 디자인을 바꾸는 결정을 한다. 이런 고객 관점의 올바른 판단에 직원들은 조직의 미래를 신뢰한다. ‘실패하면 바다에 빠져 죽자’고 까지 외친 포스코의 박태준 명예회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독한 리더’이다. 그가 사람들의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일을 해낸 성과 때문만은 아니다. 개인 명의의 재산을 단 한 푼도 남기지 않았고, 포스코 주식 단 1주도 보유하지 않을 정도로 회사와 국가를 먼저 생각한 숭고한 비전과 실천에 사람들은 더 큰 존경심을 품는다. 단기 실적에 일희일비하거나 사익을 챙기기 위해 윤리적으로 어긋난 결정을 내리는 리더는 아무리 독해도 신뢰를 잃게 되고 결국 성공하기 어렵다.
독한 리더일수록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성향이 강하기에 현명한 사업적 판단이 더욱 중요해진다. 최근 파나소닉의 사례는 독한 리더의 잘못된 판단이 얼마나 조직을 어렵게 하는지 잘 보여준다. 파나소닉의 나카무라 쿠니오 회장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경영의 신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부활이라고 언론에서 일컬어질 정도로 신뢰를 얻은 독한 리더였다. 그런데 나카무라 회장은 이미 2005년에 전문가들에 의해 액정(LCD)와 플라즈마(PDP)의 대결은 결론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판단을 지나치게 확신하여 “플라즈마 TV에 사운을 걸겠다”고 외치며 투자를 확대했다. 2007년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라는 소리를 들은 플라즈마 공장을 아마가사키에 건설하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나카무라 회장의 뒤를 이은 오오츠보 후미오 사장 역시 점점 목소리를 높이는 현장의 신중론에 대해 “투자 경쟁에서 지면 코스트 경쟁력, 시장 점유율에서도 지게 된다”며 일갈하기도 했다. 결국 거액의 투자는 실패했고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해질 지경에 이르렀다.
완전한 조직일체감
조직의 성패를 자신과 완전히 동일시하는 일체감을 가진다면 리더의 독함은 더 큰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2004년 1월 미국 NBR(Nightly Business Report)방송이 와튼 스쿨과 공동으로 ‘지난 25년 간 가장 뛰어난 비즈니스 리더 25인’을 기획, 설문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그림 4> 참조). 최고의 리더로 선정된 인텔의 앤드루 그로브는 ‘왜 인텔을 떠나 다른 도전을 찾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내 생에 인텔 말고 그 어디에서 일한다는 건 꿈도 못 꾸었다”고 답한다. 배수진(背水陣)을 친 사람은 독함의 정도가 다른 법이다. 독한 리더로 조직을 성공시킨 사람들은 단 한번도 자신의 조직을 ‘언젠가 떠날 조직’쯤으로 여기지 않았다. 앤드루 그로브도 조직과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함으로써 독한 리더십을 빛낼 수 있었다. 조직의 성패에 인생을 거는 각오야말로 독한 리더로 뜻을 이루기 위한 기본 전제다. 창업자가 아니라서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면 “큰 기업의 리더가 해야 할 가장 큰 역할은 그 안에 작은 기업이라는 나무를 심는 것이다”라고 했던 잭 웰치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외부에서 영입된 리더라면 조직의 DNA를 완벽하게 체화시키는 것이 선결과제다. 태도만으로는 실력의 부족을 메울 수 없는 것처럼 독함만으로 사업 성과를 보장받지 못한다. 사업 성과는 조직의 역량을 얼마나 잘 끌어내느냐가 핵심이다. 따라서 구성원들에 관심을 가지고 조직의 특성과 역량, 문화를 완전하게 체득할 때 목표 달성을 위한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일본 제조업의 자존심이었던 소니의 최근 부진을 조직 DNA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리더에서 찾는 분석이 적지 않다. 요미우리 신문 등 적지 않은 일본 언론들은 소니 몰락의 근본 원인을 전 CEO였던 최근 하워드 스트링거의 리더십 부재에서 찾고 있다. 2005년 외부 인사로는 최초로 CEO에 임명한 스트링거는 위기극복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지만, 급변하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비전과 모든 구성원들이 합심하여 수행해야 할 분명한 전략도 제시하지 못했고 소니 부활의 믿음을 주는데도 실패했다. 한국 기업에 추월당한 TV 시장에서 스트링거는 더 나은 제품 개발을 채찍질하는 대신 아웃소싱을 확대하여 가격을 낮추는 저가 전략을 썼다. 그 결과 베스트바이나 딕슨과 같은 유통 채널에서는 조잡하고 거친 베젤의 TV가 어울리지 않는 소니 라벨을 달고 한국 기업 제품의 반값에 팔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방식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이라는 소니의 자부심에 상처를 입혔으며 직원들의 의욕을 잃게 만들었다.
구성원과 소통되는 리더의 진심
독한 리더의 스타일이 강하고 깐깐할수록 구성원들에게 오해를 사는 경우가 많다. 독할수록 리더의 진심이 잘못 전달되면 역효과만 커진다.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모든 불만의 화살이 리더십 스타일에 몰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더의 진심을 조직 전체가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사장은 아끼는 직원일수록 호되게 나무라는 스타일의 독한 리더다. 그는 혼내는 것을 아주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리더가 진심으로 직원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나무라거나 질책할 일이 더 많이 생긴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리더의 진심이 직원들에게 제대로 전파되지 못한다면 호통 소리가 커질수록 반발과 불만도 커질 것이다. 그런데 일본전산의 직원들은 사장의 노발대발하는 꾸지람을 듣고 나면, 오히려 ‘사장님이 내 일에 대해 관심이 있구나’ 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보고를 해도 질책이 없으면 오히려 의기소침해진다. 나가모리 사장은 일년에 한번씩 직원들의 아내와 부모에게 리더로서 고마움과 칭찬을 전하는 편지를 쓴다. 그에게 칭찬 한번 들어본 적이 없고 호통도 눈물이 찔금 날 정도로 많이 당하지만 사장의 신념과 원칙을 아는 직원들은 불만이 없다. 독한 리더 곁의 참모는 리더의 진심이 직원들에게 잘 전파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색이 바래지 않도록 독함 유지
독한 리더십은 조금이라도 변질되거나 색이 바랠 때 특히 위험하다.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거나 단기적 이익에 어두워 원칙과 신념에 훼손이 가는 결정을 하게 될 때 그 동안 쌓아 올린 신뢰의 탑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오는 4월 CEO직에서 물러나기로 발표된 존슨앤존슨의 윌리엄 웰든 회장은 품질 문제에 소홀히 대응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2002년부터 역임해온 웰든에게는 2010년부터 잇따라 발생한 리콜 사태에서 품질관리와 제품결함이 발견되었음에도 대응에서 철저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30년 전 아주 작은 문제에도 미 전역의 모든 제품을 수거했던 타이레놀 사태에서 정직하고 철저한 대응으로 쌓아 올린 신뢰에 커다란 금이 가고 있다.
독한 리더십은 리더의 위치에 따라 발현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CEO라면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는 신념과 원칙에서 누구보다 독해야 한다.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단계에 있는 중간 리더라면 실행 방법이나 과정에서 적당주의가 없도록 독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스티브 잡스 곁에는 디자인의 조나단 아이브, 오퍼레이션의 팀 쿡 등 실질적으로 애플을 이끈 각 영역의 책임자 여덟 명이 있었다. 이들 역시 독한 리더들이기는 마찬가지지만 중간 리더로서 잡스의 철학과 원칙이 현장에서 잘 실행되도록 독하게 챙기는 것에 가장 큰 우선 순위를 두었다. 애플이라는 거대한 조직이 하나의 신념, 하나의 원칙으로 똘똘 뭉쳐 변하지 않는 독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잡스 혼자만의 공로는 아니었다.
2. ‘독한 리더’의 발굴과 육성
조직에 맞는 독한 리더십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능력도 뛰어나야 하지만 조직의 비전과 가치가 몸에 배야 하기 때문이다. 창업자의 독한 리더십이 돋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직 독한 리더가 없다면 좀 더 멀리 내다보는 안목에서 채용부터 육성까지 현재의 방식을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한번 해보겠다는 사람부터 뽑는다
자신의 일에 독하게 매진할 수 있는 사람을 잘 뽑는 것이 첫걸음이다. 좋은 스펙이 미래의 독한 리더십을 보장하진 않는다. 일본전산에서는 채용 시 ‘왜 내가 이 회사를 선택하였는지가 얼마나 분명한가’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 나가모리 사장이 항상 ‘할 수 없다고 분석하는 일류보다 한번 해보겠다고 나서는 삼류가 낫다’ 고 말하며 똑똑한 순서가 아니라 회사에서 자신이 할 일에 대해 애착이 강한 순서대로 선발하는 기준을 바꾸지 않는다. 일본 건설업계의 주목 받는 기업 헤이세이 건설의 아키모토 히사오 사장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점차 사라져 가는 전통 목수의 가치를 살려내려는 신념으로 건설회사를 창업한 인물이다. 일본 전통 주택의 명맥을 이어야 할 목수가 하청업체의 계약직으로 점차 사라져가는 데 안타까움을 느끼고 히사오 사장은 업계 최초로 대졸 정규직 출신을 뽑아 목수로 육성한다. 부침이 심한 건설업계에서 전국에서 우수 대졸 사원들이 헤이세이 건설로 몰려들고 있다. 목수로 성공하고자 하는 신념이 강한 사람들을 채용에서부터 선별하고 이들을 강도 높게 조련하여 주택 건설의 총 지휘관으로 키우는 것이다.
꼭 성공해내겠다는 독함을 고취한다
독함을 지닌 직원이라면 업무 하나하나에 깊이 파고 들어 뭔가 끝을 보겠다는 성향이 강하다. 이런 독함이 잘 관리되어 축적되면 독한 리더십의 토대가 된다. 일본 전산의 직원들이 직접 쓴 『도전의 길』이라는 책자에는 뜨거운 열정으로 거래처를 개척하던 3년차 직원 핫토리 세이치가 나온다. 1980년 그가 개척한 핸드마사지 제조회사가 부도를 내는 바람에 회사가 위기에 내몰리게 된다. 무시무시한 호통의 대명사 나가모리 사장은 자책감에 사로잡힌 핫토리에게 오히려 “이번 일로 자네 공부 많이 했지?” 라는 한마디로 상황을 종료시킨다. 실패의 이유를 깨닫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이었다. 나가모리 사장은 당연한 일을 실수하거나 작은 것에 소홀히 하는 직원에는 큰 호통을 친다. 그러나 열심히 하다 실패한 직원에겐 어깨를 두드려 준다. 핫토리가 이후 얼마나 독하게 업무에 매진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질책하고 모욕을 주어야만 독기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게노부 사장은 잘 알고 있다.
목표와 방향 외에는 전적으로 맡긴다
스티브 잡스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과외 클럽에서 전자신호 펄스를 초 단위로 측정하는 주파수 계수기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HP에서 만드는 부품 몇 개가 필요해지자 그는 전화번호부에서 빌 휴렛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HP의 CEO와 20분간이나 통화를 한 후 잡스는 부품은 물론 여름 방학 동안 HP에서 인턴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만약 이 때 선생님이나 아버지가 나서서 기회를 만들어주었거나, 그건 무례한 짓이라고 나서서 막았더라면 오늘날의 잡스도 애플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GE가 추구하는 사업가 육성 방식에서도 책임과 권한을 주고 기다리는, ‘믿고 맡기는’ 방식이 핵심이다. GE의 현 CEO 제프리 이멜트는 사업가 육성 과정의 일환으로 전 CEO였던 잭 웰치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전 사업부를 회생시키라는 목표를 부여 받게 되었다. 가전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던 이멜트는 처음부터 하나씩 밑바닥에서부터 배워나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이멜트의 사업가 기질과 잠재력을 믿고 전적으로 맡겼던 잭 웰치는 가전 사업부의 턴어라운드는 물론 듬직한 미래의 후계자도 얻게 된 것이다.
Ⅴ. 맺는 말
독한 리더십은 경쟁에서 이기려는 조직이 갖추어야 할 필수 요건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내면의 ‘독함’이다. 사례로 살펴 본 스티브 잡스, 제프 베조스, 잭 웰치, 나가모리 시게노부와 같은 리더들은 어쩌면 외형적인 스타일에서 결함이 있는 리더일 수 있다. 만약 이들이 독한 리더십을 좀더 지혜롭게 발휘하여 인격적으로도 완벽한 리더였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그러나 설령 그렇지 못했다고 해서 이들이 보여준 독한 리더십의 빛이 바래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들이 지닌 내면적 독함은 외형적인 독함마저 남다른 강점으로 보여지게 만든다.
뱅가드 그룹의 창업자인 존 보글 전 회장은 2000년 미국 와튼 스쿨에서 행한 리더십 주제 강연에서 “리더십은 매뉴얼과 같은 어떤 순서를 성실히 따라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뛰어난 리더는 자기에 맞는 리더십의 길을 자기 의지로 선택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교과서에 나오는 바람직한 리더상을 강요한다고 해서 좋은 리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경영 환경은 독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쳐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기에 ‘독한 리더십’의 가치가 더욱 올라간다. 조직이 강해지려면 구성원들이 독해져야 하고, 구성원을 더 독하게 만드는 힘은 리더에게서 나온다. 결국 독하고 강한 조직은 독한 리더만이 빚어낼 수 있는 작품이다. 겉으로는 시대에 맞는 세련미와 인격적인 성숙함을 지녔으되, 내면에는 누구보다도 ‘독함’을 간직하고 있는, 진정한 ‘독한 리더십’을 주변에서 더 자주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LG Business Insight 1187호
잭 웰치, 앤드루 그로브, 제프 베조스, 나가모리 시게노부 등 강한 개성과 깐깐한 성격의 리더들에게서도 ‘독한 리더십’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리더의 무서운 성격과 태도가 독한 리더십을 만들어낸다고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빌 게이츠, 윌리엄 고어,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등과 같은 리더들은 부드럽고 다정한 스타일을 지녔지만, 자신의 신념과 원칙에 기반하여 조직과 사업을 이끌어가는 데에는 누구보다도 독한 리더들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독한 리더십은 외형적 태도나 스타일의 문제가 아닌 리더가 지닌 내면의 속성에 대한 것이다. 리더가 개인을 뛰어 넘어 조직, 고객, 사회, 인류를 생각할 때, 올바른 생각과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구성원으로부터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사익을 좇지 않는 확고한 신념과, 원칙에 관한 단호하며 일관된 행동의 리더라면 스타일이나 태도가 아무리 미워도 사람들은 속으로부터 존경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만약 리더가 독선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독재자요, 괴짜이며 변덕스러운 통제광이고 남의 말은 전혀 듣지 않는 고집불통이라면 과연 그 조직은 성공할 수 있을까? 요즘처럼 창의와 자율이 강조되는 시대에 필시 얼마 안가 망할 것만 같다. 그런데 위의 언급들은 바로 얼마 전 타계한 최고의 혁신 기업 애플의 스티브 잡스에 대한 얘기다. 그리고 GE의 잭 웰치, 인텔의 앤드루 그로브,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시게노부 등 가장 성공적인 CEO로 인정받는 리더들 역시 이 범주에 해당된다. 이 뿐만 아니다. 3D 영화의 신기원을 이룩한 영화감독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세계 최고의 축구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축구감독 알렉스 퍼거슨과 같은 최고의 리더에게도 위의 표현들은 그대로 적용된다.
이들의 리더십은 많은 리더십 연구자들이 부르짖는 배려와 이해, 감성과 소통의 소위 ‘인간적이고 좋은 리더십’에 역행한다. 『Good to Great』의 짐 콜린스가 가장 이상적이라 주장한 겸손의 ‘레벨 5 리더십’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감정 표현에 매우 직설적이다. 또 독선적이고 구성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려 하며 변덕이 죽 끓듯 하고, 때론 거만할 정도로 고집스러워 남의 말을 거의 듣지 않는다. 도대체 이런 말도 안되 보이는 리더십으로 어떻게 조직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을까?
Ⅰ. 스티브 잡스의 ‘독한 리더십’
최근 미국에서 실시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들은 스티브 잡스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신가 중 두 번째(토마스 에디슨에 이어)로 꼽고 있다. 21세기의 에디슨으로 불리는 혁신의 아이콘 잡스였지만, 리더십에서는 그다지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는 독단적 성격으로 인해 수시로 동료들과 갈등을 빚었다. 그의 폭언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상처를 입고 회사를 떠난 사람도 적지 않다.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협상도 주저 없이 깨뜨렸고, 사소한 것으로 직원들을 달달 볶아댔다. 그럼에도 가장 혁신적인 조직을 만들고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성과를 창출했기에 그의 리더십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잡스가 있는 애플에는 언제나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잡스 주변에 인재가 넘쳐나게 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괴팍한 잡스 자신이었다. 수 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잡스는 뭔가 해낼 것 같은 믿음을 주었다. 애플에 근무했던 사람들은 “그와 일할 때면 마치 그가 세계의 중심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고 입을 모은다. 이쯤 되면 잡스의 리더십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는 자신의 신념과 목표를 향해 ‘독하게’ 정진했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한치의 양보나 타협이 없었고, 놀라울 정도로 대범하였으며, 자기 확신은 지나치리만큼 강했다. 목표는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강한 집념으로 스스로 동기부여 되었고, 집요하고도 지치지 않는 추진력을 보여주었다. 확고한 신념으로 한번 내린 결정에는 단호하고 일관된 행동을 보여주었다. 그가 지닌 독함은 조직 전체에 영감을 불어 넣었다. 그가 보여준 열정은 조직 전체를 공명시켰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작용했다. 직원들은 힘들어도 그를 따라야 한다고 믿게 되었으며 그 믿음의 결과에 열광했다. 자신들이 이룩한 성과에 보람과 자부심을 가졌고, 역량의 성장에 감격했으며, 잡스를 찬양했다.
잡스는 후계자 육성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곤 했다. 그의 병가 소식만으로도 휘청거렸던 주가는 마지막까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후계 구도에 불안감을 느끼게 했고, 비판론자들의 목소리를 키웠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잡스만큼 애플의 미래를 걱정하지는 못했다. 후계자 승계계획(Succession Plan)에 집착하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잡스는 애플의 다음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다. 두 번째 병가를 떠나기 직전, 잡스는 이미 예일 대학 경영학 교수이자 저명한 경영 구루인 조엘 포돌니를 HR 부사장으로 영입하여 애플의 미래를 대비하는 프로젝트를 맡긴다. 포돌니는 하버드 대학 경영학과 출신 교수 등으로 이루어진 팀을 이끌며 애플의 사업적 결정들을 분석하고 꼼꼼한 매뉴얼과 지침서, 참고 사례로 이루어진 애플만의 참고서를 만들고 있다. 앞으로도 철저히 대외 비밀에 부쳐질 그 책에는 조직의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도 독했던 잡스의 고민이 담겨 있을 것임에 틀림 없다.
Ⅱ. ‘독한 리더십’에 대한 오해
독한 리더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외형적 태도만으로 독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독한 리더’ 하면 괴팍한 성격에 고함을 치는 리더를 연상하기 때문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밀어 부치고, 주변 여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뜻을 관철시키려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는 카리스마 강한 리더가 떠오르기도 한다. 잡스를 비롯하여 잭 웰치, 앤드루 그로브 등 독한 리더로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이런 스타일에 가까운 게 사실이다. 독한 리더십은 강한 개성에 깐깐한 성격의 소유자에게나 어울리는 것일까?
엄밀히 말하면 기업을 성공시킨 사람은 독한 리더다. 치열한 약육강식의 비즈니스 무대에서 리더가 독하지 않다면 결코 조직과 사업을 성공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독한 리더의 예도 얼마든지 있다.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잡스의 영원한 라이벌이면서 독하기로는 절대 뒤지지 않았지만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정반대였다. 그는 엔지니어를 극진히 대접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회사를 살리는 것은 소프트웨어 경쟁력이며 이는 엔지니어들로부터 나온다는 신념이 워낙 확고했다. 그가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면서 남긴 소위 ‘게이츠식 리더십(The Gates Way)’의 4가지 항목 중 하나로 “엔지니어가 회사를 지배하도록 하라!”는 문구를 명시해 놓을 정도였다(<그림 1> 참조).
대학원 같은 회사 구글을 이끌고 있는 두 명의 천재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도 잡스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독한 리더들이다. 이들이 이룩한 회사 구글에서는 논쟁이 자유롭다. 회의 중에는 지위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CEO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전략 하달이 아니라 다양한 대화를 주의 깊게 듣는 것이다. 캠퍼스라 불리는 회사에선 구성원의 창의성과 자발성이 최대한 존중되다 보니 일하는 것 자체가 활력이 된다. 이처럼 기존에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새로운 유형의 회사를 구현해 낸 두 명의 젊은 리더는 비록 성격이 부드럽고 다정하지만 진정 독한 리더라 할 수 있다.
유사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갖춘 고어사의 창업자 윌리엄 고어 역시 조직 운영 철학에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는 독한 리더지만, 누구보다 기업과 조직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한다. 미국 텍사스주에 본사를 둔 자연주의 식품 체인 기업 홀푸드, 직원들이 근무 시간과 급여 수준을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샘코, 직원들을 평가하거나 업무 지시가 전혀 없는 일본의 미라이 공업사 같은 회사도 마찬가지다. 이들 기업의 CEO들은 구성원 스스로를 주인공이라 여기게 만드는 경영 철학과 사람의 가치에 대한 신념에서 조금도 물러섬이 없는 독한 리더들이다.
Ⅲ. ‘독한 리더십’의 실체
앞서 살펴본 대로 독한 리더십의 실체는 외형적 태도가 아니라 목표 달성을 위한 열정과 의지와 같은 내면적 속성이다. 리더가 진정한 ‘독함’을 가진다면 리더십 스타일과 상관 없이 비즈니스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독함이 리더의 결점을 상쇄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1. 완벽주의 : ‘최고의 완벽’을 추구한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편집증적인 완벽을 기하는 것은 독한 리더의 대표적인 특성이다. 스티브 잡스는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한 나머지 집에 가구를 들여놓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었을 정도였다. 그는 항상 “혼을 빼놓을 만큼 뛰어난(insanely great)” 제품을 주창한다. 자신이 관심을 쏟고 있는 제품과 관련된 개발자의 이메일 주소나 전화번호는 전부 암기하고 있었고,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면 한 밤중이라도 수시로 전화하곤 했다. 제품 출시 프리젠테이션에서는 홀의 색조, 조명 밝기 등 사소해 보이는 것까지 맘에 들 때까지 수십 번이나 반복해서 고쳤다. 자신의 어투나 발걸음도 며칠 전부터 수십 번 연습했으며, 문구 하나를 고치는 데에도 며칠을 소비했다. 완벽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일례로 매킨토시 회로기판 내부에는 개발팀 45명의 서명이 새겨져 있다. 아무도 보지 않을 터였지만 매킨토시 개발팀원들에게 예술 작품을 완성한 것과 같은 자긍심을 갖도록 한 것이다. 심지어 케이스를 일반적인 드라이버로는 열리지 않게 만들 정도로 잡스는 제품의 완벽함에 큰 자부심을 표시했다.
잡스 사후 대표적인 혁신 아이콘으로 부상한 아마존닷컴의 제프 베조스도 완벽 추구에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리더이다. 그가 처음 온라인 서점에 대한 최초의 사업 계획을 세웠을 때 최소 1백만 달러의 투자자금이 필요했는데, 당시는 신경제 거품이 꺼지지 않아 벤처기업가들은 노련한 투자가들로 단돈 5만 달러를 구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베조스는 인터넷 사용에 관한 방대한 자료에 대한 치밀하고도 완벽한 분석으로 믿을만한 수치 근거를 확보했다. 결국 그는 완벽한 계획서와 프리젠테이션으로 예상을 뒤엎고 5만 달러의 투자가 20명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아마존닷컴이 세계 최대의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이 된 것도, 킨들에서 보여지는 전자 책의 탁월한 질감과 색조도 완벽함을 향한 베조스의 집념이 낳은 산물이다.
독하기로 소문난 제임스 카메론 감독도 최고의 완벽 추구에는 다르지 않다. 타이타닉을 뛰어넘어 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영화 아바타는 1995년에 이미 80페이지짜리 각본으로 완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당시 컴퓨터 그래픽 기술력으로는 원하는 수준의 영화제작이 불가능하자 카메론 감독은 제작을 포기했다. 2006년에야 영화 제작이 시작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감독의 완벽주의였던 것이다.
부드럽고 친근한 성격의 빌 게이츠 역시 완벽함을 추구하는 독한 리더다. 게이츠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리스크 관리였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남긴 4가지 덕목(<그림 1> 참조) 중 첫 번째로 강조할 정도로 게이츠는 리스크 대비에 완벽하고자 했다. 창업 초기, 스티브 발머가 회사 성장 전망과 위협 요소를 면밀히 계산하여 최소한 17명의 영입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게이츠는 이 제안에, “열 일곱 명이라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요. 난 결코 회사가 재정적 어려움에 놓이지 않게 할 것입니다. 앞으로 단 한 푼의 매출 없이도 1년은 버틸 수 있도록 현금을 확보하도록 해 나갈 겁니다”라고 답했을 정도다.
2. 집요함 :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짐 콜린스에 따르면 성공한 기업의 리더들은 탁월한 비전 제시나 리스크 테이킹에 능한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아주 실증적이며 어떤 환경에도 요동함 없이 자기 길을 묵묵히 가는 절제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과 두뇌를 가졌어도 소위 한 탕을 노리거나 감에만 의존해서는 조직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기 어렵다. 독한 리더의 모습도 꾸준하고 진득하다. 한 번 정한 목표는 달성할 때까지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요행을 바라거나 도중에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는다. 직원들이 독한 리더를 따르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런 집요함과 끈질김이다.
작은 납품회사에서 출발, 소형모터 업계에서는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된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시게노부 사장은 성공 비결을 ‘배(倍)의 법칙’과 ‘절반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간단히 말해 남보다 앞서려면 무조건 두 배 오래 일하고, 절반의 기간 내에 목표를 달성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정신 노동이든 육체 노동이든 남들보다 시간과 노력을 두 배 들이면 누구든 이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창업 당시 시게노부 사장과 동료들은 일반적 근로시간의 두 배인 하루 16시간 일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다. 하루는 대기업연구소에서 모터 크기를 3개월 안에 절반으로 줄이면 거래를 하겠다는 제안을 받고, 모든 직원이 밤낮으로 씨름하였지만 납기 15일을 남겨 놓은 시점에서 겨우 15% 정도 줄이는 데 그치고 만다. 경과 보고를 하러 간 시게노부 사장은 같은 주문을 받은 예닐곱 군데의 대기업들이 너무 어려워 다 포기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는 돌아와 밤을 새워 더 노력하였다. 결국 18% 정도 줄이는 데 그쳐 시게노부 사장 일행은 의기소침해졌지만, 최종 제품을 받아본 연구소에서는 3개월 만에 18%나 줄인 것 자체가 기적이라며 그 즉시 발주를 하였다.
아마존닷컴의 베조스는 2001년 경쟁업체 보더스가 백기를 들고 브랜드 공유 협력을 제안할 때, “이 승리는 더 뛰어난 고객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시장의 메시지입니다”라고 말하며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같은 해, 99달러 이상 주문 시 무료배송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일주일 만에 강력한 경쟁자 반스앤노블닷컴과 출혈 경쟁에 내몰린 적이 있다. 월가에선 아마존닷컴이 위기에 봉착할 것이란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당기 순이익이 곤두박질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지만 베조스는 2002년 6월에 49달러 이상 주문으로, 2002년 8월에는 다시 25달러 이상까지로 무료 배송을 확대하였다. 그가 집요하게 매달린 것은 경쟁사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아마존이 경쟁사보다 고객을 위해 끊임없이 가격을 내리고자 노력한다는 인식의 확산이었다. “지금의 뼈를 깎는 노력은 길게 보면 우리를 더욱 강하고 가치 있는 기업으로 거듭나게 할 것입니다”라고 외친 확신에 찬 베조스의 말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3. 단호함 : 신념과 원칙에 한치의 양보 없다
독한 리더들은 신념과 원칙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포춘』에 실린 애플의 기업 문화 분석 기사에는 잡스의 단호함이 잘 드러나는 일화가 있다. 잡스는 2001년부터 PC가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기기들의 디지털 허브 역할을 하는 비전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잡스에게 2008년 여름 출시된 제품 ‘모바일미’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 마디로 엉망이었다.” 기기들간 호환에 큰 문제를 드러낸 이 제품에 대해 월스트리트 저널 등 언론들은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최고에 대한 신념이 매우 강했던 잡스는 자신이 쌓아 올린 제품력 이미지가 손상되는 것을 참지 못하였다. 그는 모바일미 팀 전원을 본사 강당에 불러 30분이 넘게 질책하고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팀의 책임자를 물러나게 하였다.
디자인에서도 ‘단순함’에 대한 잡스의 신념과 원칙은 너무나도 확고했다. 1977년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그림의 회사 로고를 처음 만들어 애플II 팸플릿에 인쇄할 때, 잡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한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Simp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라는 문구를 그 옆에 잘 보이게 찍어 넣을 정도였다. 잡스에게 단순함이란 복잡함의 무시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상당한 노력이었다.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홈 버튼 하나만 있는 디자인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은 이를 잘 보여준다. 잡스에게 고객 가치 기준은 자기 스스로의 확신이었다. 매킨토시를 선보인 날 한 기자가 어떤 방식으로 시장 조사를 했는지 물었을 때도 그는 코웃음치며 되물었다. “알렉산더 그레엄 벨이 시장조사 같은 걸 하고 전화를 발명했나요?”
제프 베조스도 2002년 온라인 사업에서 입소문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자 베조스는 그 즉시 모든 텔레비전 광고에서 철수를 지시했다. 자신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선전하는 텔레비전 광고보다는 고객과의 약속을 어김없이 지켜나가면서 얻어가는 신뢰가 브랜드가치를 더 키워줄 것이라는 신념에서다. 이후로도 텔레비전 광고 효과에 대한 주장이 아무리 거세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월마트의 샘 월튼은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다는 신념이 특히 강했다. ‘다양한 물건을 누구보다 더 싸게’라는 원칙은 물론 K마트와 같은 경쟁업체에 비수를 꽂은 가격 전략도 여기서 나왔다. 잭 웰치는 인재 육성이 리더의 가장 중요한 의무라는 신념이 특히 강했다. 그래서 젊은 인재라면 일찍 발탁하여 책임과 권한을 주고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밀어 주었으며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에는 가차없이 탈락시키는 원칙을 보였다. 수 천명을 해고하던 잭 웰치가 크로톤빌 연수원 예산 청구서에 ‘무한대’라는 글씨를 휘갈겨 쓴 것도 그의 신념을 보여준 상징적 행동이었다.
구글을 이끌고 있는 다정다감한 성격의 두 젊은 리더 브린과 페이지도 가치와 신념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이들은 “바르지 않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Don’t Be Evil)”라는 다소 평범해 보이는 가치를 기업 경영에서 변함 없이 실천하는 독한 리더다. 많은 포탈 업체들이 상업적인 동기를 가지고 검색결과를 편집하여 구성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절대로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검색순위를 편집 혹은 조작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얼마나 독한 것인지 알 수 있다.
4. 집중과 몰입 : ‘더 중요한 것’ 위해 ‘중요한 것’은 포기한다
제프 베조스는 아마존닷컴을 창업하면서 오프라인 서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었다. 직원과의 상호 작용이 거의 없는, 그러면서도 고객에게 가장 완벽한 도서 구매 경험을 선사하는 온라인 서점이 그것이다.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직원들의 자율과 창의, 배려가 아니라, 데이터관리 시스템과 물류 창고였다. ‘더 중요한’ 고객 대응을 위해 인건비가 높은 석사 학위 소지자들을 상담직에 채용한 것은 당연했지만, 몇 번을 수리하여 사용하는 직원들의 낡은 나무 책상에 베조스의 관심이 갈리 없었다. 직원들의 관리도 그냥 ‘중요한 것’ 중 하나였다 베조스는 직원들이 상시적으로 당하는 모니터링, 분당 이메일과 전화 대응 건수에 따라 평가 받는 데 대한 불만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한 직원은 퇴사하면서 시애틀 신문에 ‘아마존 집단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아마존닷컴에서는 인간적인 교류를 필요악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다”라고 고백하였다. 베조스의 전기라고 볼 수 있는 『One Click』을 쓴 리차드 브랜트는 베조스야말로 사업에 모든 우선 순위를 두는 리더의 전형이라고 지적한다. 베조스에게 ‘구성원들로부터 존경 받는 것’은 애당초 중요하지 않았다.
잡스도 자신이 남들에게 어떻게 비쳐지는지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아이디어를 성과로 연결시키는 것 만이 그에게 유일한 ‘더 중요한’ 것이었다. 따라서 맘에 들지 않는 프리젠테이션쯤은 언제든 중단시켰고,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었다며 화를 내곤 했다. 이런 잡스의 태도는 ‘반지름 10미터 밖의 사람들에겐 열정과 희망을 주었지만 반지름 5미터 이내에 들어온 직원들에게는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고 묘사되기도 했다. 기대 수준에 맞는 ‘깨달은 사람’ 아니면 ‘멍청한 놈’으로 이분화된 직원들은 잡스로부터 ‘최고’라고 인정받거나 아니면 완전히 ‘쓰레기’취급을 당하는 둘 중의 하나였다. 이런 분류는 완전히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잡스는 어떤 아이디어에 대해 쓰레기 같다는 모욕을 주고 나서도 나중에 자기가 생각해낸 것처럼 오히려 상대를 설득하기도 했다. 이런 뻔뻔한 태도에 대해 그의 전기를 집필한 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잡스의 두뇌 회로에는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충동적인 생각들의 극단적 증가를 완화시켜주는 장치가 결여되어 있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감지한 1994년, 빌 게이츠는 일년에 한 번 갖는 자신의 ‘생각 주간’에 온통 인터넷에 몰입한다. 그리고 회사의 핵심 브레인들로 이루어진 팀을 구성하여 다가올 위협을 분석했다. 한달 이상 지속된 토론과 분석 끝에 인터넷은 사업 환경의 근간을 흔드는 변화이며 기회이고 위협이므로 마이크로소프트는 변화의 물결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어 게이츠는 잘 알려진 인터넷 익스플로러 개발을 위한 5백명의 프로그래머 조직을 구성하여 회사의 역량을 여기에 집중시킨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순항할 수 있었던 것도, 1994년 당시 리더가 집중적인 고민과 토론 끝에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거함의 방향을 단번에 180도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5. 꾸준함 : 여정 자체가 주는 가치를 중시한다
독한 리더들은 일시적인 어려움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미래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장기 계획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했던 제프 베조스는 당장의 실적부진을 전혀 감추려 하지 않았다. 1997년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실적 부진을 거론하자, “네, 우리는 지금 이익을 못 내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과 같은 초기 단계에 이익을 내기 위한 사업적 결정을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지요”라며 자신감을 피력하였다. 2000년 인터넷 사업의 거품이 꺼지면서 아마존닷컴의 주가는 주당 100달러에서 6달러로 수직 추락했다. 한때 100억달러에 육박하던 그의 재산도 2002년에는 15억달러로 줄었다. 하지만 베조스는 여전히 “단기간의 주가 변동에는 관심 없다. 고객에게 집중하자”고 직원들 독려했다.
1991년 업계 최강으로 자리를 굳히던 시기에 빌 게이츠가 작성한 ‘Nightmare memo’라는 문서가 지역 신문인 산호세 머큐리 뉴스에 보도되면서 주가가 11%나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회사가 잘 나가는 시기였지만 이 메모에는 오히려 경쟁사, 기술, 지적 재산권, 특허, 고객 불만 등 다가올 온갖 위협과 걱정 거리가 다 들어 있었다. “우리의 우려는… 이제 현실입니다”라는 말로 마무리된 이 메모는 게이츠의 리스크 문제에 관한 편집광적인 독함을 잘 보여준다. 지속성을 중시하는 독한 리더들은 ‘큰 것 한 방’보다는 꾸준히 전진하는 과정의 가치를 중시한다. 경영 환경이 안 좋을 때나 좋을 때나 더하거나 덜하지 않고 최종 목적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눈 앞의 성과에 현혹되지 않고 멀리 내다 보며 내실을 다지는 절제는 보통 독한 리더가 아니고서는 갖기 어렵다.
잡스 역시 결코 경쟁에서 이기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 애플의 매킨토시 개발팀에서 일했던 허츠펠드는 “잡스는 가능한 한 가장 위대한 일을 하는 것, 혹은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이 목표였다”고 회고한다. 자신과 팀원들은 그런 잡스에 매료되었다고 털어놓는다. 하루는 매킨토시 개발팀을 찾은 잡스에게 부팅 시간 지연 문제에 대해 한 엔지니어가 변명을 하려 했다. 그러자 잡스는 그 말을 끊고, “500만 명의 맥 사용자가 매일 컴퓨터 부팅 시간을 10초 덜 사용한다면 연간 3억 분이 절약되며 이는 100명의 사람들의 일생에 해당한다”고 일갈하였다. 결국 그 엔지니어는 몇 주 후에 부팅 시간을 28초나 줄여 놓았다. 이런 성취감은 자발적으로 확보된 것은 아니었음에도 애플의 엔지니어들에게 커다란 내재적 보상이 되었다. 애플 엔지니어들의 퇴사율이 업계 최저 수준이고 그들이 말하는 애플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런 기적이 일어나는 세상의 중심 애플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6. 통찰력 : 이면에 감추어진 본질을 꿰뚫어 본다
애플이 제록스의 팰러앨토 연구센터(PARC)의 그래픽 인터페이스와 비트맵 기술을 가져다 쓴 것은 IT업계 역사상 가장 의미심장한 도둑질로 간주되곤 한다. 1979년 PARC를 방문한 잡스는 그림으로 이루어진 명령체계와 메뉴판을 마우스라는 입력기로 조작하는 알토(Alto)라는 컴퓨터를 보게 된다. 그 순간 잡스는 그 가능성을 알아차리고 발을 동동 굴렀다. 잡스에게 새로운 기술을 소개하였던 제록스의 엔지니어 테슬러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잡스는 흥분해서 가만있질 못하고 이쪽 저쪽을 왔다 갔다 했어요. 내 설명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궁금했지만 그는 계속 질문을 쏟아냈으며 화면이 바뀔 때마다 감탄을 내지르더군요. 그리고는 마침내 ‘당신들은 돈방석 위에 앉아 있는 데 대체 왜 이런 걸 활용하지 않느냐 말이요!’ 라며 소리질렀죠.” 사실 잡스는 훗날 이 방문에 대해 컴퓨터의 미래가 갑자기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 설레임은 최고의 PC 매킨토시로 탄생되었고 잡스는 스스로 ‘도둑질’을 자랑스럽게 인정했다. 자신은 역사에 등장한 최고의 아이디어를 찾아냈으며 애플은 이를 잘 활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피카소의 말을 인용,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며 훌륭한 아이디어를 훔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잡스는 제록스가 보지 못한 기술의 본질을 한 눈에 꿰뚫어 보았다. 또 훔쳐서라도 최고의 제품을 개발하고픈 열망을 이기지 못했다. 역사는 최고의 기술을 손에 쥐고도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지 몰랐던 제록스보다 ‘도둑’ 잡스에 더 많은 지지를 보낸다. 잡스가 언제나 어디서나 음악을 다운받고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사업 열망을 가지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애플이 아이맥을 출시한 후 소니의 고급 스테레오에 장착된 슬롯 드라이브에 매료된 잡스는 개발책임자의 반대를 꺾고 아이맥의 CD트레이를 슬롯드라이브로 바꾸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파나소닉에서 읽고 쓰는 CD드라이브가 출시되자 개발책임자의 예견대로 애플은 문제에 봉착한다. 듣고 싶은 음악을 편하게 구워 사용하고 싶어진 고객들에 애플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잡스는 문제의 본질이 기술에 있지 않고 소비자들의 음악에 대한 욕구 변화에 있음을 간파했고 결국 아이포드와 아이튠즈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제프 베조스가 100만 달러 연봉을 받던 직장을 뛰쳐나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창업을 고집했던 이유도, 잭 웰치가 다른 비용은 줄이고 깎으면서도 인재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은 것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잡스가 죽는 날까지 강조한 ‘혼을 빼놓을 만큼 뛰어난(insanely great)’ 제품과 서비스 역시 기술 자체의 탁월함이라기 보다 숨겨진 시장의 본질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에 관한 주문이었다.
Ⅳ. ‘독한 리더십’으로 성공하는 조직이 되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의 문제를 풀 차례다. 안타깝게도 이 문제는 수학과 달리 정답이 없다. 하지만, 독한 리더십을 가진 리더와 기업들의 사례에서 몇 가지 중요한 힌트를 얻어볼 수 있다. 다만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은 독한 리더십은 신념과 가치에 대한 확신, 열정과 같은 내면적 속성이지 겉으로 드러난 외형적 태도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 리더 스스로 신뢰 축적이 핵심
리더가 조직과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려면 무엇보다 구성원으로부터 가슴에서 나오는 신뢰를 얻어야 한다. 조직을 성공시킬 거라는 믿음을 주려면 리더로서 어떤 점이 중요한 지 살펴보자.
올바르고 일관된 판단과 결정
개인을 뛰어 넘어 조직, 고객, 사회, 인류를 생각하는 판단과 결정은 신뢰를 얻는다. 리더가 사익을 좇지 않을 때 스타일이나 태도가 아무리 미워도 사람들은 속으로부터 존경심을 가진다. 스티브 잡스, 앤드루 그로브, 빌 게이츠가 내린 결정은 자신보다는 조직, 그리고 고객, 사회, 인류를 위한 쪽이었다. 돈을 벌기보다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싶어했고,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했을 때에는 시장에서 히트를 치지 못해도 그 자체로 기뻐했다. 아마존닷컴의 제프 베조스는 직원들의 낡은 나무책상도 바꿔주지 않는 ‘짠돌이’ CEO지만 80세 넘은 할머니 고객의 “포장을 뜯기 어렵다”는 목소리에 비용과 상관 없이 곧바로 포장재와 디자인을 바꾸는 결정을 한다. 이런 고객 관점의 올바른 판단에 직원들은 조직의 미래를 신뢰한다. ‘실패하면 바다에 빠져 죽자’고 까지 외친 포스코의 박태준 명예회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독한 리더’이다. 그가 사람들의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일을 해낸 성과 때문만은 아니다. 개인 명의의 재산을 단 한 푼도 남기지 않았고, 포스코 주식 단 1주도 보유하지 않을 정도로 회사와 국가를 먼저 생각한 숭고한 비전과 실천에 사람들은 더 큰 존경심을 품는다. 단기 실적에 일희일비하거나 사익을 챙기기 위해 윤리적으로 어긋난 결정을 내리는 리더는 아무리 독해도 신뢰를 잃게 되고 결국 성공하기 어렵다.
독한 리더일수록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성향이 강하기에 현명한 사업적 판단이 더욱 중요해진다. 최근 파나소닉의 사례는 독한 리더의 잘못된 판단이 얼마나 조직을 어렵게 하는지 잘 보여준다. 파나소닉의 나카무라 쿠니오 회장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경영의 신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부활이라고 언론에서 일컬어질 정도로 신뢰를 얻은 독한 리더였다. 그런데 나카무라 회장은 이미 2005년에 전문가들에 의해 액정(LCD)와 플라즈마(PDP)의 대결은 결론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판단을 지나치게 확신하여 “플라즈마 TV에 사운을 걸겠다”고 외치며 투자를 확대했다. 2007년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라는 소리를 들은 플라즈마 공장을 아마가사키에 건설하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나카무라 회장의 뒤를 이은 오오츠보 후미오 사장 역시 점점 목소리를 높이는 현장의 신중론에 대해 “투자 경쟁에서 지면 코스트 경쟁력, 시장 점유율에서도 지게 된다”며 일갈하기도 했다. 결국 거액의 투자는 실패했고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해질 지경에 이르렀다.
완전한 조직일체감
조직의 성패를 자신과 완전히 동일시하는 일체감을 가진다면 리더의 독함은 더 큰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2004년 1월 미국 NBR(Nightly Business Report)방송이 와튼 스쿨과 공동으로 ‘지난 25년 간 가장 뛰어난 비즈니스 리더 25인’을 기획, 설문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그림 4> 참조). 최고의 리더로 선정된 인텔의 앤드루 그로브는 ‘왜 인텔을 떠나 다른 도전을 찾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내 생에 인텔 말고 그 어디에서 일한다는 건 꿈도 못 꾸었다”고 답한다. 배수진(背水陣)을 친 사람은 독함의 정도가 다른 법이다. 독한 리더로 조직을 성공시킨 사람들은 단 한번도 자신의 조직을 ‘언젠가 떠날 조직’쯤으로 여기지 않았다. 앤드루 그로브도 조직과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함으로써 독한 리더십을 빛낼 수 있었다. 조직의 성패에 인생을 거는 각오야말로 독한 리더로 뜻을 이루기 위한 기본 전제다. 창업자가 아니라서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면 “큰 기업의 리더가 해야 할 가장 큰 역할은 그 안에 작은 기업이라는 나무를 심는 것이다”라고 했던 잭 웰치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외부에서 영입된 리더라면 조직의 DNA를 완벽하게 체화시키는 것이 선결과제다. 태도만으로는 실력의 부족을 메울 수 없는 것처럼 독함만으로 사업 성과를 보장받지 못한다. 사업 성과는 조직의 역량을 얼마나 잘 끌어내느냐가 핵심이다. 따라서 구성원들에 관심을 가지고 조직의 특성과 역량, 문화를 완전하게 체득할 때 목표 달성을 위한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일본 제조업의 자존심이었던 소니의 최근 부진을 조직 DNA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리더에서 찾는 분석이 적지 않다. 요미우리 신문 등 적지 않은 일본 언론들은 소니 몰락의 근본 원인을 전 CEO였던 최근 하워드 스트링거의 리더십 부재에서 찾고 있다. 2005년 외부 인사로는 최초로 CEO에 임명한 스트링거는 위기극복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지만, 급변하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비전과 모든 구성원들이 합심하여 수행해야 할 분명한 전략도 제시하지 못했고 소니 부활의 믿음을 주는데도 실패했다. 한국 기업에 추월당한 TV 시장에서 스트링거는 더 나은 제품 개발을 채찍질하는 대신 아웃소싱을 확대하여 가격을 낮추는 저가 전략을 썼다. 그 결과 베스트바이나 딕슨과 같은 유통 채널에서는 조잡하고 거친 베젤의 TV가 어울리지 않는 소니 라벨을 달고 한국 기업 제품의 반값에 팔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방식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이라는 소니의 자부심에 상처를 입혔으며 직원들의 의욕을 잃게 만들었다.
구성원과 소통되는 리더의 진심
독한 리더의 스타일이 강하고 깐깐할수록 구성원들에게 오해를 사는 경우가 많다. 독할수록 리더의 진심이 잘못 전달되면 역효과만 커진다.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모든 불만의 화살이 리더십 스타일에 몰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더의 진심을 조직 전체가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사장은 아끼는 직원일수록 호되게 나무라는 스타일의 독한 리더다. 그는 혼내는 것을 아주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리더가 진심으로 직원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나무라거나 질책할 일이 더 많이 생긴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리더의 진심이 직원들에게 제대로 전파되지 못한다면 호통 소리가 커질수록 반발과 불만도 커질 것이다. 그런데 일본전산의 직원들은 사장의 노발대발하는 꾸지람을 듣고 나면, 오히려 ‘사장님이 내 일에 대해 관심이 있구나’ 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보고를 해도 질책이 없으면 오히려 의기소침해진다. 나가모리 사장은 일년에 한번씩 직원들의 아내와 부모에게 리더로서 고마움과 칭찬을 전하는 편지를 쓴다. 그에게 칭찬 한번 들어본 적이 없고 호통도 눈물이 찔금 날 정도로 많이 당하지만 사장의 신념과 원칙을 아는 직원들은 불만이 없다. 독한 리더 곁의 참모는 리더의 진심이 직원들에게 잘 전파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색이 바래지 않도록 독함 유지
독한 리더십은 조금이라도 변질되거나 색이 바랠 때 특히 위험하다.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거나 단기적 이익에 어두워 원칙과 신념에 훼손이 가는 결정을 하게 될 때 그 동안 쌓아 올린 신뢰의 탑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오는 4월 CEO직에서 물러나기로 발표된 존슨앤존슨의 윌리엄 웰든 회장은 품질 문제에 소홀히 대응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2002년부터 역임해온 웰든에게는 2010년부터 잇따라 발생한 리콜 사태에서 품질관리와 제품결함이 발견되었음에도 대응에서 철저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30년 전 아주 작은 문제에도 미 전역의 모든 제품을 수거했던 타이레놀 사태에서 정직하고 철저한 대응으로 쌓아 올린 신뢰에 커다란 금이 가고 있다.
독한 리더십은 리더의 위치에 따라 발현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CEO라면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는 신념과 원칙에서 누구보다 독해야 한다.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단계에 있는 중간 리더라면 실행 방법이나 과정에서 적당주의가 없도록 독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스티브 잡스 곁에는 디자인의 조나단 아이브, 오퍼레이션의 팀 쿡 등 실질적으로 애플을 이끈 각 영역의 책임자 여덟 명이 있었다. 이들 역시 독한 리더들이기는 마찬가지지만 중간 리더로서 잡스의 철학과 원칙이 현장에서 잘 실행되도록 독하게 챙기는 것에 가장 큰 우선 순위를 두었다. 애플이라는 거대한 조직이 하나의 신념, 하나의 원칙으로 똘똘 뭉쳐 변하지 않는 독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잡스 혼자만의 공로는 아니었다.
2. ‘독한 리더’의 발굴과 육성
조직에 맞는 독한 리더십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능력도 뛰어나야 하지만 조직의 비전과 가치가 몸에 배야 하기 때문이다. 창업자의 독한 리더십이 돋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직 독한 리더가 없다면 좀 더 멀리 내다보는 안목에서 채용부터 육성까지 현재의 방식을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한번 해보겠다는 사람부터 뽑는다
자신의 일에 독하게 매진할 수 있는 사람을 잘 뽑는 것이 첫걸음이다. 좋은 스펙이 미래의 독한 리더십을 보장하진 않는다. 일본전산에서는 채용 시 ‘왜 내가 이 회사를 선택하였는지가 얼마나 분명한가’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 나가모리 사장이 항상 ‘할 수 없다고 분석하는 일류보다 한번 해보겠다고 나서는 삼류가 낫다’ 고 말하며 똑똑한 순서가 아니라 회사에서 자신이 할 일에 대해 애착이 강한 순서대로 선발하는 기준을 바꾸지 않는다. 일본 건설업계의 주목 받는 기업 헤이세이 건설의 아키모토 히사오 사장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점차 사라져 가는 전통 목수의 가치를 살려내려는 신념으로 건설회사를 창업한 인물이다. 일본 전통 주택의 명맥을 이어야 할 목수가 하청업체의 계약직으로 점차 사라져가는 데 안타까움을 느끼고 히사오 사장은 업계 최초로 대졸 정규직 출신을 뽑아 목수로 육성한다. 부침이 심한 건설업계에서 전국에서 우수 대졸 사원들이 헤이세이 건설로 몰려들고 있다. 목수로 성공하고자 하는 신념이 강한 사람들을 채용에서부터 선별하고 이들을 강도 높게 조련하여 주택 건설의 총 지휘관으로 키우는 것이다.
꼭 성공해내겠다는 독함을 고취한다
독함을 지닌 직원이라면 업무 하나하나에 깊이 파고 들어 뭔가 끝을 보겠다는 성향이 강하다. 이런 독함이 잘 관리되어 축적되면 독한 리더십의 토대가 된다. 일본 전산의 직원들이 직접 쓴 『도전의 길』이라는 책자에는 뜨거운 열정으로 거래처를 개척하던 3년차 직원 핫토리 세이치가 나온다. 1980년 그가 개척한 핸드마사지 제조회사가 부도를 내는 바람에 회사가 위기에 내몰리게 된다. 무시무시한 호통의 대명사 나가모리 사장은 자책감에 사로잡힌 핫토리에게 오히려 “이번 일로 자네 공부 많이 했지?” 라는 한마디로 상황을 종료시킨다. 실패의 이유를 깨닫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이었다. 나가모리 사장은 당연한 일을 실수하거나 작은 것에 소홀히 하는 직원에는 큰 호통을 친다. 그러나 열심히 하다 실패한 직원에겐 어깨를 두드려 준다. 핫토리가 이후 얼마나 독하게 업무에 매진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질책하고 모욕을 주어야만 독기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게노부 사장은 잘 알고 있다.
목표와 방향 외에는 전적으로 맡긴다
스티브 잡스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과외 클럽에서 전자신호 펄스를 초 단위로 측정하는 주파수 계수기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HP에서 만드는 부품 몇 개가 필요해지자 그는 전화번호부에서 빌 휴렛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HP의 CEO와 20분간이나 통화를 한 후 잡스는 부품은 물론 여름 방학 동안 HP에서 인턴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만약 이 때 선생님이나 아버지가 나서서 기회를 만들어주었거나, 그건 무례한 짓이라고 나서서 막았더라면 오늘날의 잡스도 애플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GE가 추구하는 사업가 육성 방식에서도 책임과 권한을 주고 기다리는, ‘믿고 맡기는’ 방식이 핵심이다. GE의 현 CEO 제프리 이멜트는 사업가 육성 과정의 일환으로 전 CEO였던 잭 웰치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전 사업부를 회생시키라는 목표를 부여 받게 되었다. 가전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던 이멜트는 처음부터 하나씩 밑바닥에서부터 배워나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이멜트의 사업가 기질과 잠재력을 믿고 전적으로 맡겼던 잭 웰치는 가전 사업부의 턴어라운드는 물론 듬직한 미래의 후계자도 얻게 된 것이다.
Ⅴ. 맺는 말
독한 리더십은 경쟁에서 이기려는 조직이 갖추어야 할 필수 요건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내면의 ‘독함’이다. 사례로 살펴 본 스티브 잡스, 제프 베조스, 잭 웰치, 나가모리 시게노부와 같은 리더들은 어쩌면 외형적인 스타일에서 결함이 있는 리더일 수 있다. 만약 이들이 독한 리더십을 좀더 지혜롭게 발휘하여 인격적으로도 완벽한 리더였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그러나 설령 그렇지 못했다고 해서 이들이 보여준 독한 리더십의 빛이 바래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들이 지닌 내면적 독함은 외형적인 독함마저 남다른 강점으로 보여지게 만든다.
뱅가드 그룹의 창업자인 존 보글 전 회장은 2000년 미국 와튼 스쿨에서 행한 리더십 주제 강연에서 “리더십은 매뉴얼과 같은 어떤 순서를 성실히 따라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뛰어난 리더는 자기에 맞는 리더십의 길을 자기 의지로 선택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교과서에 나오는 바람직한 리더상을 강요한다고 해서 좋은 리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경영 환경은 독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쳐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기에 ‘독한 리더십’의 가치가 더욱 올라간다. 조직이 강해지려면 구성원들이 독해져야 하고, 구성원을 더 독하게 만드는 힘은 리더에게서 나온다. 결국 독하고 강한 조직은 독한 리더만이 빚어낼 수 있는 작품이다. 겉으로는 시대에 맞는 세련미와 인격적인 성숙함을 지녔으되, 내면에는 누구보다도 ‘독함’을 간직하고 있는, 진정한 ‘독한 리더십’을 주변에서 더 자주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LG Business Insight 11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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