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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13. 10:24
지난해 국내 식음료업계를 중심으로 시장의 경쟁 구도를 흔들만한 후발주자들의 반란이 목격되었다. 여지껏 수많은 후발주자들이 선두업체를 따라잡으려는 치열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실패를 거듭해온 것과 대비되는 사례다. 이들 기업처럼 지금까지의 경쟁 방식과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넘버원 따라하기’가 아니라 ‘넘버원 따돌리기’를 목표로 삼아 차별화에 성공한 기업들이 있다. 

자기만의 강점을 프레임으로 하는 다양한 시도로 넘버원을 무색케한 이들의 차별화 유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경쟁 요소의 차별화이다. 부수적인 가치들을 제거하고 자신만의 강점 가치에 집중하는 유형이다. 둘째, 경쟁 방향의 차별화이다. 주류가 전달해온 메시지, 가치 창출 방식 등과는 철저히 역방향을 선택해 공략함으로써 나만의 가치 색깔을 분명히 제시하는 유형이다. 셋째,  경쟁 영역의 차별화이다. 카테고리 경계를 넘나드는 제품·서비스로 기존 카테고리 내 넘버원의 제공 가치를 무력화시키는 유형이다. 마지막으로, 경쟁 시기의 차별화이다. 예측 가능한 가치라도 한발 앞서 올인하여 제공 가치의 선점 효과를 극대화하는 유형이다. 이러한 도전적인 시도들이 의미있는 차별화로 성공하려면 소비자의 인식과 행동에 변화를 주면서 동시에 단발성에 머무르지 않고 넘버원을 진퇴양난으로 만들 수 있는 수준으로 지속되어야 한다. 
  

  
Ⅰ. 후발주자들의 반란 
  

“아직도 살 수 없나요? 도대체 언제쯤 물건이 들어 오나요?”
“저희도 구하기가 어렵네요. 찾는 이는 많은데, 공급이 턱없이 모자라서요.” 

지난해 ‘꼬꼬면’이 나온 뒤로 동네 마트나 슈퍼마켓에서 몇 달간 반복되던 풍경이었다. 하얀 색의 칼칼하고 담백한 닭고기 육수로 기존 빨간 국물의 매운맛 라면에 도전장을 던진 결과다. ‘꼴찌의 반란’이라 불릴만한 이 제품의 대히트로 20년 이상 흔들리지 않던 국내 라면 시장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새로운 라면 트렌드를 선도하게 된 꼬꼬면은 판매량에서 단숨에 ‘신라면’에 이은 2위에 올랐고, 1위 기업인 농심마저도 하얀 국물 라면을 뒤따라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커피믹스 시장에서도 후발주자가 돌풍을 일으켰다. 원두의 맛과 향만을 강조해오던 주류업체들과 달리, 남양유업이 커피 크림(일명 ‘프림’)에 승부수를 띄우면서부터다. 지난해 초 무지방 우유를 넣은 ‘프렌치카페 카페믹스’를 내세워 기존 업체들의 카제인나트륨 성분을 이슈화했다. 유제품 관련 노하우를 쌓아온 자사의 강점을 최대로 부각시키면서 소비자의 인식과 선택 기준을 바꿔놓았다. 제품 하나로 커피믹스 사업 진출 1년 만에 2위 자리에 올라섰다.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해 온 동서식품도 시장점유율이 조금씩 내리막을 타자, 같은 컨셉트의 제품을 내놓으며 대응에 나서는 형국이다. 

지금껏 왜 후발주자들은 넘버원 기업을 이기지 못했을까 

이 사례들은 공통적으로 절대 강자들이 오랜 기간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해오던 레드오션 시장에서 한참 열위이거나 이제 막 시장에 진출한 후발주자가 혁신적인 신제품으로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이들 사례는 해당 업계의 관점에서 성공 포인트를 분석하여 벤치마킹으로 삼는데 그칠 수도 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일회적 성공비결을 넘어 전략적으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는 현상이다. 다시 말해, ‘한참 열위인 후발업체가 넘버원 기업의 아성을 어떻게 흔들 수 있었을까, 그리고 지금까지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수많은 후발주자들이 넘버원 기업을 이기지 못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게 한다. 한번 승리로 당장 넘버원 기업이 될 수는 없었겠지만, 저마다 1등이 되겠다고 외쳐대며 길게는 수십 년 이상 열심히 노력해왔는데 번번이 실패만 거듭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최근 달라진 현상이 목격되는데, 소비자들의 관심과 선택이 어떻게 변화한 것일까? 넘버원 기업이 알고도 신속히 대응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소비자들의 달라진 소비 행태의 특징과 이것이 기업간 경쟁 구도에 미치고 있는 영향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보고 이를 통해 후발주자들이 선두 기업과 효과적으로 경쟁하기 위해 지향해야 할 전략적 방향성을 모색해본다. 
  

Ⅱ. 영원한 넘버원도, 만년 꼴찌도 없다 
  

후발주자들이 선전하고 있는 현상의 반대편은 넘버원 기업들의 아성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한국야쿠르트의 꼬꼬면 돌풍에 신라면의 시장점유율이 떨어지고 ‘라면 왕국’ 농심은 신제품마저 조기에 철수시켜야 했다. 산업의 특성 및 시장의 경쟁 강도에 따라 넘버원 기업의 지속성에 다소간 차이는 나겠지만, 영원한 1등 기업도 없고 만년 꼴찌 기업도 없기 마련이다. 한때 넘버원의 영예를 누려왔던 GM, 야후, 노키아의 위상을 도요타, 구글, 애플 같은 기업들이 대신하고 있듯이 후발 주자가 넘버원을 흔들고 넘버원의 빛이 쇠하는 것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기존에 쌓아놓은 브랜드나 성공방정식으로 넘버원을 유지하기가 과거보다 훨씬 더 어려워진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까다롭고 변덕스러운 소비자 

우선, 소비에 있어서 과잉 선택권 및 스마트화로 소비자의 인식과 구매 행태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마트에 가서 요구르트를 구입하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특정 브랜드의 제품만을 고집하기보다 그때그때 행사하는 제품에 손이 가기 쉽다. 과거에 비해 가짓수가 크게 늘어나 요구르트 카테고리 내 수십 개의 제품들이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린다. 저마다 특별한 함유 성분과 기능성을 강조한 신제품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레드오션 시장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겐 그저 하나의 요구르트로 보일 뿐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기업들이 열심히 차별화했다고 외쳐대도 소비자들에겐 도토리 키재기로 비춰지는 선택권 과잉의 시대다. 제품 경쟁이 심화될수록, 역설적으로 브랜드 차별화는 의미를 잃어가고 소비자는 카테고리 전체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아졌다. 그만큼 소비자의 니즈는 다양해지는데 반해 이를 만족시키기가 어려워졌다는 말이다. 

제품관여도가 좀 더 높은 카테고리에서도 소비자들이 까다롭고 변덕스럽긴 마찬가지다. 서로 연결된 소비자들이 제품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면서 ‘똑똑한 소비자’로 변모했다. 소셜미디어 서비스 이용의 확대로 소비자들은 제품의 성능, 가격, 만족도 등 사용 경험을 공유하면서 과거처럼 기업이 제공하던 가치를 더 이상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때문에 반드시 기존 넘버원 브랜드 제품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휴대폰이 스마트폰으로 진화하면서 수많은 전세계 소비자들이 아이폰에 열광하며 노키아에서 애플로 이동했다. 하지만 스마트폰 카테고리 내 제품들이 어느 정도 엇비슷해지면서 이전만큼 아이폰만을 고집하진 않는다. 최근 닌텐도의 적자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될 수 있다. 비디오 게임업체의 선두 주자였지만 스마트폰 저변이 넓어지면서 시장 판도 변화로 큰 타격을 받은 것이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휴대용 게임기만을 게임 카테고리로 보지 않고 스마트폰, 태플릿PC 등 다른 카테고리 영역으로 확대해서 제공 가치를 비교한다. 별도의 게임기 없이도 소셜게임 등 다양한 게임을 저렴하게 바로 내려받아 즐길 수 있는 스마트폰으로 옮겨가는데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 기업들의 차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실제로 카테고리 내 차별화를 인식하기 어렵고 오히려 능동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찾아 카테고리에 얽매이지 않고 브랜드마저 쉽게 옮기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패션, 액세서리 등 유행에 민감한 특정 카테고리를 제외하고는 브랜드 충성도 구축이 점차 힘들어지면서 소비자들은 넘버원 기업에게도 언제든 등을 돌릴 태세다. 

딜레마에 빠진 넘버원 기업 

이런 와중에 넘버원 기업은 기존 시장 및 강점의 수성과 그 외 영역으로의 혁신 사이에서 주저할 수 있다. 바로 조직 이론 분야의 대가인 제임스 마치(James March) 교수가 말한 ‘성공의 함정(Success Trap)’때문이다. 소비자 니즈나 외부 환경이 급변했는데도 이전까지의 성공방정식과 핵심 역량에만 선택과 집중을 하다가 위기를 맞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최초로 개발해놓고도 단기적 이윤을 위해 주력인 필름사업에 집착하다가 결국 후발 기업에 밀려 시장지배력을 상실한 전형적인 케이스다. 

1위 자리를 내준 것은 아니지만, 농심도 이전까지의 강점인 빨간 국물과 소고기 육수를 지키다가 결국 꼬꼬면에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딜레마에 빠진 사례다. 신라면 출시 후 25년 동안 한국 라면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오던 농심은 자사의 라면 맛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의 입맛이 바뀌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 대신 웰빙 트렌드에 맞춰 라면도 빨간 소고기 육수를 계속 유지한 영양이 풍부한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신라면 블랙’을 내놓게 된다. 하지만 꼬꼬면의 하얀 국물 열풍이 쉽게 잦아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라면 카테고리는 여전히 서민용 먹거리지, 영양식이 아니었다. 단지 다양한 색깔과 맛을 지닌 새로운 라면을 원했을 뿐이다. 

소비자 측면의 니즈, 인식, 행동의 변화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는 기업들은 경쟁에서 밀리게 마련이다. 더구나 넘버원 기업은 스스로 이러한 변화를 무시하거나 알고도 발빠른 대응에 주저하는 경향이 있어서 더 큰 위기를 자초하거나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Ⅲ. ‘차별화’를 다시 생각한다 
  

지금까지 넘버원이 유지된 데는 후발 주자들이 넘버원을 따라하기에 급급했던 것도 큰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라면의 경우, 매운 맛과 적절한 면발굵기를 가진 신라면에 최대한 유사하게 만들어내는 게 업계의 공통적인 목표였을 정도다. 아무리 잘한들 신라면 아류작이 될 수밖에 없다. 1등 기업이 처음 개척한 길을 벤처마킹이란 미명하에 열심히 노력해봐야 초기 시행착오를 줄여주며 모방과 개선의 효과는 달성할지 몰라도 1등을 넘어서기에는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다. 후발기업들이 너도나도 대세를 추종하면 경쟁이 급격히 증가하고, 결국 질적 경쟁보다는 생산성이나 효율성 중심의 양적 경쟁으로 치환되어 자원이나 브랜드 면에서 상대적 우위에 있는 넘버원 기업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지금껏 후발주자들은 단기적 성과와 생존을 위해 넘버원에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해 온 것이다. 

더구나 이제는 1등 기업도 위기를 자초할 수 있기 때문에 맹목적인 추종은 후발주자들의 생존마저 어렵게 할 수 있다. 수많은 제품들이 넘쳐나는 과잉 공급 시대에 또 하나의 유사 제품을 뒤따라내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후발주자들은 지금까지의 경쟁 방식과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전략의 본질은 ‘다름’ 추구 

전략경영의 석학인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교수는 ‘전략은 다름에 관한 것(Competitive strategy is about being different)’임을 강조한 바 있다.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독특한 가치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하며, 의도적으로 남과 다른 활동을 선택하는 게 전략의 본질이라는 얘기다. 이에 따르면 후발주자들의 경쟁 방식도 넘버원과의 유사성보다는 다름을 지향해야 한다. 다름을 추구하는 차별화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것이다.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인 ‘에어 멀티플라이어’를 처음 접했을 때 소비자들의 반응은 ‘와우! 세상에 이런 것도 있네!’라는 감탄사였다. 놀라운 반응에 이어 소비자의 구매 행동이나 더 나아가 라이프스타일까지도 바뀌었다면 넘버원을 뒤흔들 수 있는 진정한 차별화가 이뤄진 셈이다. 아이폰이 처음 세상에 나오기 전후를 비교해보면 의미 있는 차별화가 어떤 것인지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넘버원에 도전하는 진정한 차별화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까? 물론, 차별화의 길은 무궁무진할 수 있다. 시대 변화에 대응하는 혁신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혁신을 통해 남과 달라지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자기만의 강점을 프레임으로 하는 차별적인 시도로, ‘넘버원 따라하기’가 아니라 ‘넘버원 따돌리기’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경쟁 요소, 경쟁 방향, 경쟁 영역, 경쟁 시기에 있어서 넘버원과는 철저히 다르게 가져가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그림> 참조). 자신만이 제공할 수 있는 핵심적 가치를 극대화시킴으로써 소비자의 인식과 행동에 변화를 주면서 동시에 넘버원 기업은 ‘성공의 함정’ 때문에 진퇴양난으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차별화의 성공 사례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다다익선'만이 정답은 아니다 

첫째, 경쟁 요소의 차별화이다. 이때,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전략적으로 결정하는 게 성공의 관건이다. 흔히 기존 가치에 약간 더하거나 개선하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차별화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넘버원과 비교하여 자신의 약점 요소들을 보완하여 다양한 가치들을 각각 평균적 수준으로 제공하려고 애쓴다. 그나마 있던 강점도 밋밋해지고 평준화된 여러 가치들의 집합으로 차별화는 거꾸로 빛을 잃어갈 뿐이다. 이제는 경쟁 요소들에 대한 다른 셈법이 필요하다. 꼭 더하고 많이 주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오히려 부수적인 가치들의 제거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강점 가치에 집중하여 극대화함으로써 넘버원과의 차별화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미국에서 가장 맛있는 햄버거 체인점으로 뽑힌 인앤아웃 버거(In-N-Out Burger)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맥도날드를 제치고 컨슈머리포트가 선정한 2년 연속 패스트푸드 체인점 소비자 만족도 1위를 차지했다. 맥도날드가 빠르고 간편하게 한끼 식사를 해결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인앤아웃 버거는 ‘신선한 맛’을 최우선으로 유지하는 게 차별화 성공의 비결이다. 그 대신에 신선도 유지를 위해 필요없거나 포기하는 것들이 많다. 매장에는 얼린 재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냉동고나 전자레인지도 없다. 직영 육가공 공장과 식자재 배급소를 운영하면서 식재료의 품질을 직접 관리한다. 직영 배급소 반경 8백Km 내에만 매장 오픈을 허락하다 보니, 1948년 1호점 개점 이후 지금도 미국 서부 4개 주에 300개가 채 되지 않는다. 세계 최대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맥도날드가 전세계적으로 3만 개 이상의 매장을 갖고 사업 확장에 열을 올려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질적 경쟁을 고수하다 보니 메뉴판도 단순하다. 햄버거 세 종류에, 프렌치프라이, 밀크쉐이크, 소다 음료가 전부인 메뉴는 창업이래 변함이 없다. 주문과 동시에 요리에 들어가기 때문에 햄버거를 먹기 위해선 평균 12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빠르지 않은 패스트푸드점이지만, 질 좋고 맛 좋은 햄버거에 열광하는 충성도 높은 고객들의 입소문에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비공개 기업으로 2010년 연간 매출은 맥도날드의 1%에 불과하지만, 순이익률은 2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2. 주류와 역방향으로 맞서기 

둘째, 경쟁 방향의 차별화이다. 주류가 전달해온 메시지, 가치 창출 방식 등과는 철저히 반대 방향을 선택해 공략함으로써 나만의 가치 색깔을 분명히 제시하는 것이다. 주류들이 전달해온 가치의 맹점을 지적하고 대안적 가치 제안을 통해 제공 가치간 차이를 극대화함으로써 소비자의 인식과 구매 행동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주류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접근으로 성공한 도브(Dove)를 보자. 세계 1위 화장품 메이커인 로레알을 비롯한 미용 카테고리에 속한 기업들은 한결같이 화려한 모델들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자사 제품들이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강조해왔다. 반면 도브는 2004년부터 ‘리얼 뷰티(Real Beauty)’라는 캠페인을 통해 인공적 아름다움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평범한 일반 여성들이 실현할 수 있는 차원에서 미의 개념을 재정의했다. 기존 광고에 등장하는 아름답고 날씬한 모델 대신 나이, 신체 치수, 인종을 아우르는 진짜 소비자들을 광고에 내세워 이들이야말로 자연미인임을 강조했다. 그 결과 전년까지 28만 개 밖에 팔리지 않던 ‘도브 퍼밍(Dove Firming)’ 제품이 2004년 상반기에만 230만 개 판매고를 기록하는 성과를 거뒀다. 캠페인의 연장선에서 2006년 10월 유투브에 올려진 ‘Evolution’이라는 동영상은 지금껏 화제가 되고 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여성 모델이 맨 얼굴에서 엄청난 화장과 포토샵 작업을 거쳐 옥외 광고판 속의 완벽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눈부신 아름다움이 기술적인 산물임을 고발하고 있다. 

메시지뿐만 아니라 실제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에서도 주류와는 다른 방식으로 성공한 사례가 있다. 바로 나이키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뉴발란스이다. 운동화업계의 넘버원인 나이키가 유명 운동 선수들의 광고를 통해 승리, 극한의 노력, 대중의 환호 등에 초점을 맞춘 데 반해, 뉴발란스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광고에 등장시켜 개인적 성취, 균형 잡힌 노력, 내면의 자아 성장 등에 많은 관심을 갖는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주류업체들의 스타성에 대비되는 대중성과 다양성을 추구함으로써 뉴발란스는 1990년 미국 운동화 업계 12위에서 2004년 2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여기에는 연간 50여 개의 스타일을 선보이며 닮은 듯 다른 느낌으로 차별화해 온 ‘574 시리즈’가 선봉장 역할을 해왔다. 1980년대 첫 출시 이후 전세계 최다 판매 2위에, 한국에서도 연간 60만 켤레 이상이 판매된 히트작이다. 비결은 기능성을 강조한 기존 브랜드와 다른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획일화된 유행을 지양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드러내길 원하는 젊은 층을 겨냥해 세계 각국에서 손꼽히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들과의 협업으로 독창적인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또한 비용 절감을 위해 개도국 생산기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나이키, 아디다스와 달리, 미국과 영국의 생산공장을 고수하는 생산방식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의 높은 생산성과 소매점과의 유대 관계 덕분에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3. 카테고리 경계 허물기 

셋째, 경쟁 영역의 차별화이다. 카테고리 경계를 넘나드는 제품이나 서비스로 기존 카테고리 내 경쟁에서 우위에 있던 넘버원의 제공 가치를 무력화하는 방식이다. 아래에 보여지듯이, 초현실주의 화가인 에셔의 ‘그리는 손(Drawing Hands, 1948년)’은 친숙한 일상의 소재를 다루면서도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착각을 불러일으키도록 연출한 작품이다. 마찬가지로 지금껏 익숙했던 카테고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고정된 인식을 타파한다면 기존 프레임 속에서의 가치 평가나 판단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후발주자들은 카테고리 개념이나 범위의 재정의를 통해 넘버원 기업과는 차원이 다른 경쟁 영역에서 승부를 가려야 한다. 이를 위해 카테고리 내 잠재된 가치를 선택해 집중하거나 여러 카테고리간 가치 조합으로 차별적 우위를 달성할 수 있다. 

프로스펙스의 ‘워킹화’는 카테고리 내 숨겨진 가치를 살려 신시장을 개척한 대표적인 사례다. 한때 잊혀진 국산 브랜드였던 프로스펙스는 스포츠 운동화 시장 전체에서 정면 승부를 펼쳤다면 유명 해외 브랜드에 밀려났겠지만, 워킹화 W시리즈로 스포츠워킹화라는 세분화된 카테고리를 창출하고 토종 브랜드만이 제공할 수 있는 차별적 가치로 시장을 리드할 수 있었다. 2009년 당시 워킹 열풍 속에 글로벌 넘버원 기업의 러닝화도 한국인의 걷기 운동에는 적합하지 않음을 간파하고, 오랜 시간 국산 브랜드로 쌓아온 내공을 한국인의 발에 최적화된 제품 생산 노하우와 기능성으로 연결시킨 결과다. 

기존 카테고리를 뛰어넘어 카테고리간 가치 조합으로 차별화에 성공한 사례로는 이탈리아 주방용품 기업인 알레시(ALESSI)를 꼽을 수 있다. 이 기업의 대표적 제품 중에 레몬즙 짜개인 ‘주시 살리프(juicy salif, 1990년)’와 ‘안나 G(1994년)’라는 와인 따개가 있다. 먼저 주시 살리프는 얼핏 봐서는 기능을 짐작할 수 없는 마치 문어 모양을 한 우주선 같은 익살스런 생김새를 하고 있다. 안나 G는 동화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갸름한 얼굴에 단발머리와 긴 목을 지녔고 예쁜 드레스를 입은 듯한 발레리나의 모습을 띠고 있다. 2003년에는 그의 남자 친구격인 ‘알레산드로 M’도 선보였는데, 현재 이 커플은 전세계적으로 1분에 한 개 꼴로 판매될 정도로 와인 애호가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이들 제품들을 사용하기 위해 구입할까 아니면 소장용으로 두고 보기 위해 살까? 바로 여기에 차별화에 성공한 비결이 숨어 있다. 뒤늦게 주방용품에 뛰어든 알레시는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원천으로서의 ‘예술’과 기능성을 추구하는 ‘주방용품’의 카테고리간 경계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렸다. 디자인과 기능이 만나는 이 혁신적인 카테고리 안에서 주방용품들은 예술과 실용성을 겸비한 제품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기능성을 중심으로 경쟁하는 주방용품 카테고리가 아닌, 주방용품과 예술이 넘나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카테고리에서 소장할 수 있는 예술적 생활용품을 제공하면서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4. 넘버원에 앞서 올인하기 

마지막으로, 경쟁 시기의 차별화이다. 상상 이상의 완전히 새로운 가치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사한 가치 제공자들이 늘어나면서 차별화 효과가 점점 빛을 바래기 마련이다. 반면 예측 가능한 가치라도 한발 앞서 뛰어든다면 누구든지 제공 가치의 선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넘버원은 자신이 우위에 있는 기존 시장의 투자비 회수에 집착해 차세대 시장에 곧바로 뛰어드는데 주저하게 마련이다. 이때 후발주자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먼저 올인한다면 시간 차별화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선도하는데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더구나 상대적으로 가용 자원이 제약된 후발주자들에게 시간차를 활용한 선제 공략은 전혀 새로운 가치만을 추구하는 것 못지않게 현실적인 차별화의 대안이 될 수 있다. 

LG유플러스가 LTE서비스로 지난해 이동통신 시장에서 일으킨 돌풍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국내 통신시장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의 빅3 체제로 재편된 이후로는 대략 5:3:2의 시장점유율에 거의 변화가 없었다. 이동전화 보급률이 99%에 달해 제로섬 게임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서 LG유플러스는 기존 고객 지키기에도 바쁜 상황이었다. 하지만 3G에서 4G로 넘어가는 시기를 반전의 기회로 놓치지 않았다. 이른바 ‘LTE 올인’ 전략에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반면 2G, 3G 서비스에도 이미 상당히 많은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는 경쟁사들은 차세대 서비스에 대한 투자 못지않게 기존 시장에도 적지 않은 신경을 써야 할 판이었다. 이를 틈타 LG유플러스는 열위 분야인 3G보다는 4G에 전사적으로 거의 모든 자원을 결집시켰다. 전국 84개 도시에 LTE망 구축을 가장 빠르게 완료해 서비스 조기 활성화에 앞장 섰다. LTE 커버리지 우위 선점은 다시 주요 단말기 확보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이끌어냈다. 약점보다는 새로이 강점화할 수 있는 차세대 분야에 과감히 선투자하는 식의 도전적 행보가 고객들로부터 차별화된 존재감을 인정받게 한 것이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LG유플러스의 LTE서비스 가입자는 55만 7천여 명으로 SK텔레콤의 63만 4천여 명을 크게 뒤지지 않아 기존 시장 판도를 뒤흔드는데 성공했다. 
  

Ⅳ. 가지 않은 길 
  

“두 갈래 길이 숲 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가 지은 유명한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의 마지막 구절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었음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마찬가지로 기업도 성장 과정 속에 끊임없는 선택으로 서로 다른 위상을 갖게 된다. 선두기업이 이미 개척해 놓은 익숙한 경쟁 방식에 이끌려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면서 생존에 무게중심을 가져갈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후발기업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반면에 리스크를 무릅쓰더라도 기존의 경쟁사나 1등 기업마저도 생각하지 못한 참신한 시도들을 통해 자신만의 길에 도전하여 새롭게 떠오른 기업들도 있다. 전자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생명을 연장하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넘버원 따라잡기만을 열심히 지속하다가는 결국 자신의 존재감을 잃기 쉽다. 후자의 경우, 당장은 넘버원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지라도, 넘버원의 한계가 될 수 있는 자신의 강점을 중심으로 한 차별화된 시도를 거듭하다 보면 앞선 성공사례처럼 넘버원도 따돌릴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후발기업들이 넘버원 기업과 효과적으로 경쟁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차별화의 길에 나설 수 있는 도전적인(Risk-taking) 의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후발기업이 의미 있는 차별화로 넘버원을 따돌렸다고 해서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다. 급변하는 경영환경만큼이나 성공한 후발주자의 차별적 가치 또한 급격히 줄어들고 또 다른 차별화의 압력에 내몰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차별화는 한번 성공했다고 완성되는 것도 아니며, 한차례의 차별화 성공으로 쉽게 넘버원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꼬꼬면이 올해 들어 판매량이 지난해 같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너도나도 하얀 국물 라면에 뛰어드는 바람에 이제는 소비자들에게 하얀 국물이 익숙해져 차별적 가치가 급감한 결과다. 물론 해당 산업의 특성에 따라 트렌드 변화 속도나 소비자 행동 변화에 다소간 차이는 나겠지만, 자신만의 차별적 강점이 희석되어 시장에서 보편화된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면 또 다른 차별화의 길을 떠나야 할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이렇듯 진정한 차별화의 길은 안주하지 않고 끝없이 내디뎌야 하는 외로운 길임에 틀림없다.

-LG Business Insight 11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