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4. 20:58
시장에서 앞서 나가려면 현재의 주류 트렌드 대신 미래 트렌드를 선견(先見)해 활용해야 한다. 미래 트렌드의 씨앗인 이머징 이슈를 찾아내고 평가하는 방법에 대해 살펴본다.
주류 트렌드 추종에는 함정이 존재
1990년대 이후 글로벌화, 정보화, 시장 니즈 변화, 경쟁 심화, 산업 경계 붕괴 등이 가속되면서 세계는 유례없이 빠르고 크게 변하고 있다. 전 FRB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이 ‘격동의 시대(Age of turbulence)’라고 표현할 만큼 다양하고 거대한 변화들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향후 변화의 흐름과 방향을 가늠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덜고자 트렌드와 미래 예측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전례없이 변동성이 커진 사업 환경 속에서 사업의 미래 지향점을 분명히 하고, 경쟁사보다 한 발 앞서 나가기 위해 미래 트렌드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상황이다.
매년 수많은 트렌드 관련 서적이 인기를 얻고, 연초마다 올해의 주목할 트렌드가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매스 미디어나 대중 서적을 통해 널리 알려진 트렌드는 이미 주류 트렌드이거나 곧 주류가 될 트렌드이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는데 3가지 문제점이 존재한다. 첫째, 이를 통해 선발자 이득을 얻기가 쉽지 않다. 이미 해당 트렌드를 선점한 선도자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를 통해 차별화하기 어렵다. 이미 시장에 정보가 상당 부분 알려져, 나 이외의 경쟁자들도 곧 대응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계속 후발자로 남게 될 위험성이 있다. 현재 이미 주류 트렌드라면, 이는 곧 보편화 단계를 지나 쇠퇴하거나 다른 트렌드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뒤늦게 주류 트렌드를 쫓다 보면 새로운 대체 트렌드를 제대로 준비할 수 없어 후발자 지위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의 판도 변화는 이처럼 주류 트렌드를 뒤쫓는 경우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2005년 도요타의 프리우스 모델이 크게 성공한 이래,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새로운 대세가 되었다. 한국 기업들도 즉각 관련 기술 개발을 강화하여 2009년 하반기에 제품을 양산할 계획이지만, 이미 시장의 주도권은 도요타나 혼다 같은 일본 기업들에게 넘어간 상태이다. 게다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100% 전기 자동차 같은 차세대 제품들이 2010년경이면 출시될 전망이다. 미국과 일본의 후발 기업들이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현세대 기술 대신 차세대 기술 개발에 매진한 결과이다. 그러나 새로운 트렌드 변화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대비는 아직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이머징 이슈 안에 미래 트렌드 있다
이처럼 현재의 주류 트렌드를 뒤쫓아서는 시장에서 앞서 나갈 수 없다. 따라서 시장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미래 트렌드를 탐색하는데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미래 트렌드를 찾는데 중요한 실마리가 되는 것이 바로 이머징 이슈(Emerging Issue)이다. 이머징 이슈는 쉽게 말하자면 미래 트렌드의 씨앗이다. 향후 주류 트렌드로 ‘뜰’ 잠재력은 있지만, 아직 잘 드러나지 않고 불확실성이 많은 이슈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머징 이슈는 경영학의 경쟁정보시스템론에서 논의되는 약한 신호(Weak Signal)나 조기경보 신호(Early Warning Signal) 개념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이머징 이슈의 예를 최근 거시 경제 차원에서 찾아보자면, 포스트 올림픽 이후 중국의 제조업 구조조정 가능성, 자원 문제와 결부된 신냉전 시대의 도래 이슈, GMO 확산에 따른 농작물 종자 독점 문제 등을 들 수 있겠다.
이머징 이슈와 트렌드, 주류 트렌드의 관계는 <그림 1>에 잘 나타나 있다. 사회의 다양한 현상들은 발생-성장-성숙의 S자형 경로를 따라 발전한다. 이머징 이슈는 S자 곡선의 좌측 하단으로, 감지가 쉽지 않고 향후 발전 과정에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초기 발생 단계의 현상이다. 이머징 이슈는 시간이 흐르면서 대중에게 더 많이 감지되고 성장 모멘텀을 갖게 되면서 하나의 ‘트렌드’로 발전한다. 트렌드가 보다 강해지면 궁극적으로 전 사회를 관통하는 ‘주류 트렌드’로 발전하게 된다.
물론, 모든 이머징 이슈가 트렌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머징 이슈 중 대다수는 잠깐 알려졌다가 묻혀지는 경우가 많다. 이슈 자체의 생명력이 없거나, 외부 환경이 비호의적이거나, 추진 주체의 의지와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 2000년대 초반의 성층권 비행선 통신 기술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SPOT 손목 시계를 지금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일부 이머징 이슈는 패드(Fad), 즉 일시적 유행이 되어 짧은 시간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가 주류 트렌드로 발전하지 못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일례로 1990년대 후반 호출기와 휴대폰 중간에 나타났다 사라진 씨티폰이나 IMF 시절 ‘콜라 독립’을 내세우며 나섰던 815 콜라는 역사의 유물이 되어 버렸다.
이머징 이슈와 트렌드, 주류 트렌드를 구분해야 하는 이유는 분석 방법과 분석 목표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주류 트렌드의 분석과 전망에는 일반적으로 정량적 기법이 이용된다. 추세가 확연하고 많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류 트렌드 분석의 목표는 쇠퇴 또는 대체되는 지점과 패턴의 파악에 있다. 주류 트렌드가 신규 트렌드로 대체될 때 새로운 기회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반 트렌드는 정량적 분석도 가능하지만, 보통 정성적 기법이 많이 이용된다. 일반 트렌드의 분석 목표는 방향성, 속도, 안정성, 주기성 등을 파악해, 궁극적으로 트렌드의 발전 전망 및 변곡점을 파악하는 것이다. 한편 이머징 이슈는 일반 트렌드와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정형적인 트렌드 분석 방법과는 약간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분석 목표에서도 옥석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패드로 사라지지 않고 트렌드로 발전할 중요한 이슈를 감별해내고, 그 함의와 파급 효과를 선견해내야 하는 것이다.
이머징 이슈의 4가지 특징
이머징 이슈는 그 특성이 일반적인 트렌드와 다르다. 이머징 이슈의 특징은 비상식성, 돌발적 파괴력, 전문가 오판, 데이터 부족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머징 이슈는 비상식적이거나 이단적인 경우가 많다. 기존의 상식, 가정, 패턴에 위배되고, 전통적 이론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종종 다른 산업의 논리로는 쉽게 이해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한 회사가 냉장고를 무료로 나누어 준다고 생각해 보자.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칠 것이다. 그러나 금년 7월 실제로 유럽의 백색가전 기업인 Bosch-Siemens는 브라질의 전력회사와 제휴해 빈민들에게 고효율 냉장고를 공짜로 나눠준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비밀은 청정개발체제(CDM)에 숨어있다. 청정개발체제란 선진국 기업이 개도국에서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실시하고 그 활동 결과를 탄소배출권으로 인정받아 수익을 보전하는 사업 형태이다. <그림 2>처럼, Bosch-Siemens는 최신 냉장고를 공짜로 주고 대신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 구형 냉장고를 수거한다. 이후 냉장고의 전력 사용량 감소분과 구형 냉장고의 HFC 냉매 처리분을 CDM 실적으로 인정받아 비용을 보전한다는 것이다.
이머징 이슈의 두번째 특징은 돌발적 파괴력에 있다. 현재는 소수 케이스에 불과하지만, 제대로 발전한다면 향후 산업 전반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Bosch-Siemens 사례는 다른 각도에서 보면 ‘공짜경제(Freeconomics = ‘Free’ + ‘Economics’)’라는 이머징 이슈와 연결된다. 공짜 경제는 과거 유료였던 제품이나 서비스를 무료 또는 사실상 공짜로 제공하는 대신 대중의 관심과 명성, 그리고 사용자 기반을 확보해 관련 영역에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 방식이다. 이러한 사업 모델은 이미 인터넷, 컨텐츠 산업에서는 상당 부분 진척되어 있다. 구글이나 네이버는 검색 서비스 이용자로부터 사용료를 받지 않는다. 대신 공짜 경제를 통해 확보된 사용자 기반을 바탕으로 인터넷 광고주로부터 수익을 얻는다. 주목할 만한 점은 최근 공짜 경제 사업모델이 디지털 산업을 넘어 오프라인 산업까지 확산되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휴대폰은 통신 사업자 보조금을 통해 매우 저렴하게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한 보쉬-지멘스(Bosch-Siemens) 사례는 백색가전에서도 공짜경제 사업모델이 성립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머징 이슈의 세번째 특징은 전문가 오판에 있다. 이머징 이슈는 현재 산업의 일반적인 통념, 전제, 가정과는 배치되며, 향후 현실화되었을 때 사고의 전환과 전략적 의사결정의 변화를 요구한다. 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노련한 트렌드 분석가들일수록 중요한 이머징 이슈를 알고도 놓칠 가능성이 크다. 기존의 상식, 패턴 또는 주류 트렌드와 다르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은 일로 치부하고 그냥 흘려버리고 마는 것이다. 초저가 폰을 예로 살펴 보자. 30달러 내외의 초저가 폰은 2005년 초반만 해도 이머징 이슈였다. 당시 업계의 지배적인 통념은 ‘컨버전스 휴대폰을 통한 중고가 시장 공략’이 최선의 전략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많은 업계 전문가들은 초저가 폰을 기술력이 부족한 해외 경쟁사들의 자충수로 해석하고 무시했다. 그러나 이후 1~2년 만에 인도, 남미, 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초저가 폰은 시장의 주요 세그먼트로 빠르게 자리잡았다.
마지막으로 이머징 이슈는 사례도 소수이고 데이터가 부족해 논리적 설명이 쉽지 않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이머징 이슈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다양한 데이터, 사례가 확보된다. 다시 공짜 경제 사업모델을 보자. 최근에는 자동차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포착되고 있다. 벤처 기업 Better Place는 이스라엘에서 무료 전기 자동차 보급 사업을 추진 중이다. 마치 휴대폰은 공짜로 주고, 분당 사용량에 따라 이동통신 요금을 받아 수익을 내는 것처럼, 전기 자동차를 무료 또는 저가에 소비자에게 주고, 주행거리에 따라 사용료를 받는다는 계획이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가능하다. 그리고 의외로 수지맞는 장사일 수도 있다. 비밀은 유가와 전기료의 큰 차이에 있다. 최근 휘발유 가격은 미국이 1갤런 당 4$, 유럽이 8$ 수준이다. 1갤런(약 3.8리터)당 20마일(=32km)을 간다면, 1마일당 미국은 0.2$, 유럽은 0.4$가 드는 셈이다. 반면 전기자동차는 전기료가 1마일당 0.02$ 정도로 휘발유의 1/10~1/20 수준이다. 전기자동차의 예상 가격이 2.5만$ 정도이고, 주행거리당 요금으로 유럽의 휘발유 가격 수준인 0.4$만 받는다고 해도, 6.6만 마일(=2.5만$ ÷(0.4$ - 0.02$))만 가동되면 손해는 안 본다. 평균 주행 거리가 연간 1.5만 마일임을 감안할 때, 4년 반이면 원금은 회수하는 셈이다. 또한 자동차 수명이 다 할 때까지 보통 10만 마일을 달린다고 생각하면, 자동차 1대당 1.3만$는 남는 장사일 수 있다.
4단계 접근으로 이머징 이슈를 발굴·선별
많은 경우 트렌드 분석가나 기업들은 이슈가 충분히 감지되고 트렌드로 발전한 단계에서 정성적/정량적 분석을 수행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슈가 아직 트렌드로 발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요한 이슈를 감별해내고, 그 함의와 파급 효과를 선견해내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이머징 이슈의 4가지 특징을 감안할 때, 중요한 이머징 이슈를 발굴하려면 4단계로 나누어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 Scanning : 환경 개관을 통한 이슈 후보 탐색
첫째, 이머징 이슈 후보를 탐색하기 위해 환경 개관(environment scanning)이 필요하다. 이때 중요한 것이 열린 마음을 갖고 다양한 정보 소스를 살펴봐야 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상식에 어긋나는 사건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중요한 이머징 이슈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컴퓨터가 사람보다 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AT&T나 뉘앙스 소프트에서 나오는 음성합성엔진(TTS)의 최신 버전을 사용해보면, 왠만한 한국인들보다 더 좋은 발음에 놀라게 된다. 심지어 독일식, 멕시코식, 인도식 영어발음까지 되는 걸 보면 기가 막힐 정도이다. 이는 최근 미국에서 인도로 아웃소싱되는 콜센터 등의 업무가 궁극적으로 컴퓨터로 대체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나아가 국내의 주류 언론 뿐만 아니라 비주류 언론이나 해외 언론 등 다양한 정보원을 살펴야 한다. 미래학자 Inayasullah에 따르면, 이머징 이슈는 <그림 4>처럼 발전 단계에 따라 노출되는 문헌이 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트렌드는 주로 주류 대중매체에서 소개되는 반면, 이머징 이슈는 아이디어 창출 단계와 선각자 인식 단계의 비주류 전문 매체에 많이 나타난다. 또한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해외 언론 또한 면밀히 살펴야 한다. 타국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이슈라 할지라도, 국내에서는 관심이 다르기 때문에 작게 소개되거나 아예 언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산업이나 기업 단위의 뉴스는 더욱 그러하다.
● Interpreting : 역발상의 이슈 해석과 연쇄적 파급 효과 추론
둘째, 이머징 이슈를 해석하고 파급력을 추론해 보아야 한다. 이때는 역발상과 연쇄적 사고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역발상을 통해 논리를 뒤집어 보거나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야 이머징 이슈의 비합리성 속에서 합리성을 발견할 수 있다. 보쉬-지멘스의 공짜 냉장고 프로젝트를 청정개발체제나 공짜경제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해당 이슈가 산업이나 자사에 어떤 기회나 위협을 미칠 것인지 파악하려면, 직접적 파급 효과뿐만 아니라 2차, 3차 효과까지 연쇄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고유가는 우유 값을 올리는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고유가의 여파로 바이오 연료 생산이 늘고, 원료인 옥수수 가격이 뛰면서 사료값이 비싸진다. 게다가 목장의 트랙터, 화물차에 이용되는 경유 값이 뛰면서 운반비도 늘어나, 결국 우유값도 오르게 된다. 이미 미국에서는 작년에, 국내에서는 올해 일어난 일이다.
● Communicating : 외부와 의견 교환, 특히 반대 의견에 귀기울여야
셋째, 전문가나 실무자들과 의견 교환이 필요하다. 실제 어느 정도 알려진 이슈인지, 이에 대한 시각은 어떠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때 해당 이슈에 부정적인 전문가의 의견도 경청해야 한다. 이머징 이슈와 관련된 산업의 통념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머징 이슈의 평가는 본질적으로 필터링 과정으로, 열에 아홉은 걸러져야 한다. 산업의 통념이 합리적이라면 이를 받아들여 이머징 이슈를 기각하면 된다. 그러나 산업의 통념이 이미 낡았거나 전문가가 해당 이슈를 의식적으로 무시, 폄하, 반발한다면, 그 전문가가 간과하거나 잘못 판단한 것은 없는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핀란드 미래학 연구소의 Hiltunen은 중요한 이머징 이슈를 테스트하는 기준으로 5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동료들이 듣고 웃는다. 둘째, 동료들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대한다. 셋째, 일반인들이 듣고 의아해 한다. 넷째, 아무도 이전에 들어보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인다. 다섯째, 조직 차원에서 터부시되어 더 이상 언급되지 않기를 바란다. 진정한 이머징 이슈일수록 그 도발적인 특성상 처음에는 반발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06년 하반기부터 미국 LCD TV 시장에서는 Vizio, Syntax, Polaroid, Westinghouse 등 신진 TV 기업들이 저가 공세로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업계 전문가나 국내 기업 실무자들은 이를 일시적인 이상 현상으로 치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평판 TV는 고가의 첨단 제품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당연히 소니, 샤프, 필립스, LG, 삼성 등 대형 브랜드를 더 선호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신진 저가 경쟁자들은 파죽지세로 시장을 점령해 들어갔다. 쓸만한 품질, 저렴한 가격에 시장이 환호했기 때문이다. 2007년 3분기에는 Vizio가 미국 시장 2위(점유율 12.5%)로 삼성(점유율 13.2%)을 코밑까지 위협했다. 또한 신진 4개사의 시장점유율은 총 30%에 육박할 정도로 크게 확대되었다.
● Ripening : 성장 변수들의 지속적 관찰
넷째, 숙성이 필요하다. 이머징 이슈는 향후 주류 트렌드로 발전할 수도 있지만, 일시적 유행인 패드가 될 수도 있어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경험적으로 볼 때, 중요한 이머징 이슈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관련 특허 출원, 언론 노출 빈도, 포털 검색 횟수 등이 점점 늘어난다. 또한 트렌드는 예상보다 느리게 발전하며, 패드는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했다가 빨리 식는 경향을 보인다. 트렌드는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수용과 검증을 거치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 모멘텀이 강화되는 것이다. 반면 패드는 특정 시장에서 단기간에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만 다른 영역으로 확산되지 못하기 때문에 얼마 안 가 열기가 급속도로 식는다.
보다 구체적으로 트렌드로 발전할지, 패드로 끝날지 판단하려면 이슈 성장과 관련된 3가지 요소인 자체 생명력, 외부 환경의 호의성, 관련 주체의 의지와 노력을 살펴 보아야 한다. 트렌드로 발전하는 이머징 이슈는 무엇보다 생명력이 있다. 대중의 시선을 끄는 차별성이나, 초기 매니아층을 확보하는 니치 장악력, 이후 주류 시장의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기 위한 변신과 적응 능력 등이 그것이다. 2000년대 들어 현모양처 공주 스타일의 바비 인형을 제치고, 만화 같은 섹시함으로 미국 여자아이들을 사로잡은 브라츠(Bratz) 인형은 이러한 생명력을 잘 보여준다.
외부 환경의 호의성도 중요하다. 생명력이 있다 해도 외부 환경이 비호의적이라면 주류 트렌드가 될 수 없다. 이는 특히 해외에서 이식된 이슈들에서 중요하다. 2000년대 들어 고령화로 인해 실버 산업이 뜬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금융과 의료 외에 활성화된 부문은 많지 않아 보인다. 이는 부의 축적 과정이 미국이나 일본과 달라, 부유한 노인층이 그리 많지 않고, 자산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경우가 많으며, 자녀 지원이나 상속 문제로 실제 가용한 여유자금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처럼 개호보험이 정착되어 있지 않고 유럽처럼 고령연금이 활성화되지 않은 이유도 있다.
마지막으로 관련 주체의 의지/노력도 이슈의 성장 경로에 큰 영향을 미친다. 1990년대 환경 보호 이슈는 2000년대 들어 글로벌 환경 규제 시대의 도래라는 트렌드로 발전하고 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유럽의 기업들과 정부가 강력한 실천 의지를 갖고 지속적으로 흐름을 선도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강력한 온실가스 절감 목표 수립, 탄소배출권 거래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온실가스 규제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유해물질사용제한지침(RoHS),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 등 다양한 정책안을 선보이며 규제 수준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의 주장은 세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반대하기 힘든 대의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이러한 흐름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각국이 유럽식 규제를 자국에 도입하면서 촘촘한 환경 규제의 그물이 글로벌 차원에서 형성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시대 패러다임이 변하면서 기업의 시각 확장 필요
이머징 이슈의 탐색은 미래 트렌드의 대응과 선점이라는 측면에서 기업에 특히 중요하다. <표>처럼 이머징 이슈의 선견과 활용은 주류 트렌드의 맹목적 추종보다 기업에게 큰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문제는 환경 변화를 바라보는 기업의 시각이 앞만 보고 달리는 말처럼 협소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경영학자 George Day는 『Peripheral Vision (2006)』에서 기업의 눈이 인간의 눈과 다르다고 설명한다. 사람의 눈은 진화 과정상 생존과 수렵을 위해 주변부를 넓게 보는 주변시(peripheral vision) 기능을 강화했는데, 기업의 눈은 성과를 중시하는 특성상 조직 목표와 관련된 것만 보는 방향으로 시각을 집중화시켜 왔다는 것이다.
물론 안정적인 시대에는 집중적 시각 능력이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세계 경제는 새로운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의 트렌드들이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고 새로운 트렌드로 대체되는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이미 고성장 저물가의 골디락스(Goldirocks) 트렌드는 저성장 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 트렌드로 대체되고 있다. 또한 글로벌화 대신 선진국의 보호주의, 후진국의 자원민족주의, 고유가에 따른 니어쇼어링(Near-shoring) 전환 등으로 반글로벌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이외에도 신냉전시대, 곡물 전쟁, 온실가스 규제, 공짜 경제 등 다양한 이머징 이슈들이 나타나는 추세이다.
이처럼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가 나타나는 격동의 시대에는 George Day의 조언처럼 주변시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시각을 보다 넓고 멀리 확장시켜 이머징 이슈를 먼저 인식하고, 미래의 기회와 위협 요인을 능동적으로 파악하여 그 대응 방안을 미리 마련해야 하는 때이다.
- LG Business Insight 1004호
주류 트렌드 추종에는 함정이 존재
1990년대 이후 글로벌화, 정보화, 시장 니즈 변화, 경쟁 심화, 산업 경계 붕괴 등이 가속되면서 세계는 유례없이 빠르고 크게 변하고 있다. 전 FRB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이 ‘격동의 시대(Age of turbulence)’라고 표현할 만큼 다양하고 거대한 변화들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향후 변화의 흐름과 방향을 가늠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덜고자 트렌드와 미래 예측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전례없이 변동성이 커진 사업 환경 속에서 사업의 미래 지향점을 분명히 하고, 경쟁사보다 한 발 앞서 나가기 위해 미래 트렌드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상황이다.
매년 수많은 트렌드 관련 서적이 인기를 얻고, 연초마다 올해의 주목할 트렌드가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매스 미디어나 대중 서적을 통해 널리 알려진 트렌드는 이미 주류 트렌드이거나 곧 주류가 될 트렌드이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는데 3가지 문제점이 존재한다. 첫째, 이를 통해 선발자 이득을 얻기가 쉽지 않다. 이미 해당 트렌드를 선점한 선도자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를 통해 차별화하기 어렵다. 이미 시장에 정보가 상당 부분 알려져, 나 이외의 경쟁자들도 곧 대응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계속 후발자로 남게 될 위험성이 있다. 현재 이미 주류 트렌드라면, 이는 곧 보편화 단계를 지나 쇠퇴하거나 다른 트렌드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뒤늦게 주류 트렌드를 쫓다 보면 새로운 대체 트렌드를 제대로 준비할 수 없어 후발자 지위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의 판도 변화는 이처럼 주류 트렌드를 뒤쫓는 경우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2005년 도요타의 프리우스 모델이 크게 성공한 이래,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새로운 대세가 되었다. 한국 기업들도 즉각 관련 기술 개발을 강화하여 2009년 하반기에 제품을 양산할 계획이지만, 이미 시장의 주도권은 도요타나 혼다 같은 일본 기업들에게 넘어간 상태이다. 게다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100% 전기 자동차 같은 차세대 제품들이 2010년경이면 출시될 전망이다. 미국과 일본의 후발 기업들이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현세대 기술 대신 차세대 기술 개발에 매진한 결과이다. 그러나 새로운 트렌드 변화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대비는 아직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이머징 이슈 안에 미래 트렌드 있다
이처럼 현재의 주류 트렌드를 뒤쫓아서는 시장에서 앞서 나갈 수 없다. 따라서 시장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미래 트렌드를 탐색하는데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미래 트렌드를 찾는데 중요한 실마리가 되는 것이 바로 이머징 이슈(Emerging Issue)이다. 이머징 이슈는 쉽게 말하자면 미래 트렌드의 씨앗이다. 향후 주류 트렌드로 ‘뜰’ 잠재력은 있지만, 아직 잘 드러나지 않고 불확실성이 많은 이슈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머징 이슈는 경영학의 경쟁정보시스템론에서 논의되는 약한 신호(Weak Signal)나 조기경보 신호(Early Warning Signal) 개념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이머징 이슈의 예를 최근 거시 경제 차원에서 찾아보자면, 포스트 올림픽 이후 중국의 제조업 구조조정 가능성, 자원 문제와 결부된 신냉전 시대의 도래 이슈, GMO 확산에 따른 농작물 종자 독점 문제 등을 들 수 있겠다.
이머징 이슈와 트렌드, 주류 트렌드의 관계는 <그림 1>에 잘 나타나 있다. 사회의 다양한 현상들은 발생-성장-성숙의 S자형 경로를 따라 발전한다. 이머징 이슈는 S자 곡선의 좌측 하단으로, 감지가 쉽지 않고 향후 발전 과정에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초기 발생 단계의 현상이다. 이머징 이슈는 시간이 흐르면서 대중에게 더 많이 감지되고 성장 모멘텀을 갖게 되면서 하나의 ‘트렌드’로 발전한다. 트렌드가 보다 강해지면 궁극적으로 전 사회를 관통하는 ‘주류 트렌드’로 발전하게 된다.
물론, 모든 이머징 이슈가 트렌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머징 이슈 중 대다수는 잠깐 알려졌다가 묻혀지는 경우가 많다. 이슈 자체의 생명력이 없거나, 외부 환경이 비호의적이거나, 추진 주체의 의지와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 2000년대 초반의 성층권 비행선 통신 기술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SPOT 손목 시계를 지금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일부 이머징 이슈는 패드(Fad), 즉 일시적 유행이 되어 짧은 시간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가 주류 트렌드로 발전하지 못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일례로 1990년대 후반 호출기와 휴대폰 중간에 나타났다 사라진 씨티폰이나 IMF 시절 ‘콜라 독립’을 내세우며 나섰던 815 콜라는 역사의 유물이 되어 버렸다.
이머징 이슈와 트렌드, 주류 트렌드를 구분해야 하는 이유는 분석 방법과 분석 목표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주류 트렌드의 분석과 전망에는 일반적으로 정량적 기법이 이용된다. 추세가 확연하고 많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류 트렌드 분석의 목표는 쇠퇴 또는 대체되는 지점과 패턴의 파악에 있다. 주류 트렌드가 신규 트렌드로 대체될 때 새로운 기회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반 트렌드는 정량적 분석도 가능하지만, 보통 정성적 기법이 많이 이용된다. 일반 트렌드의 분석 목표는 방향성, 속도, 안정성, 주기성 등을 파악해, 궁극적으로 트렌드의 발전 전망 및 변곡점을 파악하는 것이다. 한편 이머징 이슈는 일반 트렌드와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정형적인 트렌드 분석 방법과는 약간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분석 목표에서도 옥석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패드로 사라지지 않고 트렌드로 발전할 중요한 이슈를 감별해내고, 그 함의와 파급 효과를 선견해내야 하는 것이다.
이머징 이슈의 4가지 특징
이머징 이슈는 그 특성이 일반적인 트렌드와 다르다. 이머징 이슈의 특징은 비상식성, 돌발적 파괴력, 전문가 오판, 데이터 부족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머징 이슈는 비상식적이거나 이단적인 경우가 많다. 기존의 상식, 가정, 패턴에 위배되고, 전통적 이론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종종 다른 산업의 논리로는 쉽게 이해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한 회사가 냉장고를 무료로 나누어 준다고 생각해 보자.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칠 것이다. 그러나 금년 7월 실제로 유럽의 백색가전 기업인 Bosch-Siemens는 브라질의 전력회사와 제휴해 빈민들에게 고효율 냉장고를 공짜로 나눠준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비밀은 청정개발체제(CDM)에 숨어있다. 청정개발체제란 선진국 기업이 개도국에서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실시하고 그 활동 결과를 탄소배출권으로 인정받아 수익을 보전하는 사업 형태이다. <그림 2>처럼, Bosch-Siemens는 최신 냉장고를 공짜로 주고 대신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 구형 냉장고를 수거한다. 이후 냉장고의 전력 사용량 감소분과 구형 냉장고의 HFC 냉매 처리분을 CDM 실적으로 인정받아 비용을 보전한다는 것이다.
이머징 이슈의 두번째 특징은 돌발적 파괴력에 있다. 현재는 소수 케이스에 불과하지만, 제대로 발전한다면 향후 산업 전반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Bosch-Siemens 사례는 다른 각도에서 보면 ‘공짜경제(Freeconomics = ‘Free’ + ‘Economics’)’라는 이머징 이슈와 연결된다. 공짜 경제는 과거 유료였던 제품이나 서비스를 무료 또는 사실상 공짜로 제공하는 대신 대중의 관심과 명성, 그리고 사용자 기반을 확보해 관련 영역에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 방식이다. 이러한 사업 모델은 이미 인터넷, 컨텐츠 산업에서는 상당 부분 진척되어 있다. 구글이나 네이버는 검색 서비스 이용자로부터 사용료를 받지 않는다. 대신 공짜 경제를 통해 확보된 사용자 기반을 바탕으로 인터넷 광고주로부터 수익을 얻는다. 주목할 만한 점은 최근 공짜 경제 사업모델이 디지털 산업을 넘어 오프라인 산업까지 확산되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휴대폰은 통신 사업자 보조금을 통해 매우 저렴하게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한 보쉬-지멘스(Bosch-Siemens) 사례는 백색가전에서도 공짜경제 사업모델이 성립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머징 이슈의 세번째 특징은 전문가 오판에 있다. 이머징 이슈는 현재 산업의 일반적인 통념, 전제, 가정과는 배치되며, 향후 현실화되었을 때 사고의 전환과 전략적 의사결정의 변화를 요구한다. 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노련한 트렌드 분석가들일수록 중요한 이머징 이슈를 알고도 놓칠 가능성이 크다. 기존의 상식, 패턴 또는 주류 트렌드와 다르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은 일로 치부하고 그냥 흘려버리고 마는 것이다. 초저가 폰을 예로 살펴 보자. 30달러 내외의 초저가 폰은 2005년 초반만 해도 이머징 이슈였다. 당시 업계의 지배적인 통념은 ‘컨버전스 휴대폰을 통한 중고가 시장 공략’이 최선의 전략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많은 업계 전문가들은 초저가 폰을 기술력이 부족한 해외 경쟁사들의 자충수로 해석하고 무시했다. 그러나 이후 1~2년 만에 인도, 남미, 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초저가 폰은 시장의 주요 세그먼트로 빠르게 자리잡았다.
마지막으로 이머징 이슈는 사례도 소수이고 데이터가 부족해 논리적 설명이 쉽지 않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이머징 이슈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다양한 데이터, 사례가 확보된다. 다시 공짜 경제 사업모델을 보자. 최근에는 자동차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포착되고 있다. 벤처 기업 Better Place는 이스라엘에서 무료 전기 자동차 보급 사업을 추진 중이다. 마치 휴대폰은 공짜로 주고, 분당 사용량에 따라 이동통신 요금을 받아 수익을 내는 것처럼, 전기 자동차를 무료 또는 저가에 소비자에게 주고, 주행거리에 따라 사용료를 받는다는 계획이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가능하다. 그리고 의외로 수지맞는 장사일 수도 있다. 비밀은 유가와 전기료의 큰 차이에 있다. 최근 휘발유 가격은 미국이 1갤런 당 4$, 유럽이 8$ 수준이다. 1갤런(약 3.8리터)당 20마일(=32km)을 간다면, 1마일당 미국은 0.2$, 유럽은 0.4$가 드는 셈이다. 반면 전기자동차는 전기료가 1마일당 0.02$ 정도로 휘발유의 1/10~1/20 수준이다. 전기자동차의 예상 가격이 2.5만$ 정도이고, 주행거리당 요금으로 유럽의 휘발유 가격 수준인 0.4$만 받는다고 해도, 6.6만 마일(=2.5만$ ÷(0.4$ - 0.02$))만 가동되면 손해는 안 본다. 평균 주행 거리가 연간 1.5만 마일임을 감안할 때, 4년 반이면 원금은 회수하는 셈이다. 또한 자동차 수명이 다 할 때까지 보통 10만 마일을 달린다고 생각하면, 자동차 1대당 1.3만$는 남는 장사일 수 있다.
4단계 접근으로 이머징 이슈를 발굴·선별
많은 경우 트렌드 분석가나 기업들은 이슈가 충분히 감지되고 트렌드로 발전한 단계에서 정성적/정량적 분석을 수행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슈가 아직 트렌드로 발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요한 이슈를 감별해내고, 그 함의와 파급 효과를 선견해내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이머징 이슈의 4가지 특징을 감안할 때, 중요한 이머징 이슈를 발굴하려면 4단계로 나누어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 Scanning : 환경 개관을 통한 이슈 후보 탐색
첫째, 이머징 이슈 후보를 탐색하기 위해 환경 개관(environment scanning)이 필요하다. 이때 중요한 것이 열린 마음을 갖고 다양한 정보 소스를 살펴봐야 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상식에 어긋나는 사건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중요한 이머징 이슈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컴퓨터가 사람보다 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AT&T나 뉘앙스 소프트에서 나오는 음성합성엔진(TTS)의 최신 버전을 사용해보면, 왠만한 한국인들보다 더 좋은 발음에 놀라게 된다. 심지어 독일식, 멕시코식, 인도식 영어발음까지 되는 걸 보면 기가 막힐 정도이다. 이는 최근 미국에서 인도로 아웃소싱되는 콜센터 등의 업무가 궁극적으로 컴퓨터로 대체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나아가 국내의 주류 언론 뿐만 아니라 비주류 언론이나 해외 언론 등 다양한 정보원을 살펴야 한다. 미래학자 Inayasullah에 따르면, 이머징 이슈는 <그림 4>처럼 발전 단계에 따라 노출되는 문헌이 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트렌드는 주로 주류 대중매체에서 소개되는 반면, 이머징 이슈는 아이디어 창출 단계와 선각자 인식 단계의 비주류 전문 매체에 많이 나타난다. 또한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해외 언론 또한 면밀히 살펴야 한다. 타국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이슈라 할지라도, 국내에서는 관심이 다르기 때문에 작게 소개되거나 아예 언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산업이나 기업 단위의 뉴스는 더욱 그러하다.
● Interpreting : 역발상의 이슈 해석과 연쇄적 파급 효과 추론
둘째, 이머징 이슈를 해석하고 파급력을 추론해 보아야 한다. 이때는 역발상과 연쇄적 사고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역발상을 통해 논리를 뒤집어 보거나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야 이머징 이슈의 비합리성 속에서 합리성을 발견할 수 있다. 보쉬-지멘스의 공짜 냉장고 프로젝트를 청정개발체제나 공짜경제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해당 이슈가 산업이나 자사에 어떤 기회나 위협을 미칠 것인지 파악하려면, 직접적 파급 효과뿐만 아니라 2차, 3차 효과까지 연쇄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고유가는 우유 값을 올리는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고유가의 여파로 바이오 연료 생산이 늘고, 원료인 옥수수 가격이 뛰면서 사료값이 비싸진다. 게다가 목장의 트랙터, 화물차에 이용되는 경유 값이 뛰면서 운반비도 늘어나, 결국 우유값도 오르게 된다. 이미 미국에서는 작년에, 국내에서는 올해 일어난 일이다.
● Communicating : 외부와 의견 교환, 특히 반대 의견에 귀기울여야
셋째, 전문가나 실무자들과 의견 교환이 필요하다. 실제 어느 정도 알려진 이슈인지, 이에 대한 시각은 어떠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때 해당 이슈에 부정적인 전문가의 의견도 경청해야 한다. 이머징 이슈와 관련된 산업의 통념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머징 이슈의 평가는 본질적으로 필터링 과정으로, 열에 아홉은 걸러져야 한다. 산업의 통념이 합리적이라면 이를 받아들여 이머징 이슈를 기각하면 된다. 그러나 산업의 통념이 이미 낡았거나 전문가가 해당 이슈를 의식적으로 무시, 폄하, 반발한다면, 그 전문가가 간과하거나 잘못 판단한 것은 없는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핀란드 미래학 연구소의 Hiltunen은 중요한 이머징 이슈를 테스트하는 기준으로 5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동료들이 듣고 웃는다. 둘째, 동료들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대한다. 셋째, 일반인들이 듣고 의아해 한다. 넷째, 아무도 이전에 들어보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인다. 다섯째, 조직 차원에서 터부시되어 더 이상 언급되지 않기를 바란다. 진정한 이머징 이슈일수록 그 도발적인 특성상 처음에는 반발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06년 하반기부터 미국 LCD TV 시장에서는 Vizio, Syntax, Polaroid, Westinghouse 등 신진 TV 기업들이 저가 공세로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업계 전문가나 국내 기업 실무자들은 이를 일시적인 이상 현상으로 치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평판 TV는 고가의 첨단 제품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당연히 소니, 샤프, 필립스, LG, 삼성 등 대형 브랜드를 더 선호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신진 저가 경쟁자들은 파죽지세로 시장을 점령해 들어갔다. 쓸만한 품질, 저렴한 가격에 시장이 환호했기 때문이다. 2007년 3분기에는 Vizio가 미국 시장 2위(점유율 12.5%)로 삼성(점유율 13.2%)을 코밑까지 위협했다. 또한 신진 4개사의 시장점유율은 총 30%에 육박할 정도로 크게 확대되었다.
● Ripening : 성장 변수들의 지속적 관찰
넷째, 숙성이 필요하다. 이머징 이슈는 향후 주류 트렌드로 발전할 수도 있지만, 일시적 유행인 패드가 될 수도 있어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경험적으로 볼 때, 중요한 이머징 이슈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관련 특허 출원, 언론 노출 빈도, 포털 검색 횟수 등이 점점 늘어난다. 또한 트렌드는 예상보다 느리게 발전하며, 패드는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했다가 빨리 식는 경향을 보인다. 트렌드는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수용과 검증을 거치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 모멘텀이 강화되는 것이다. 반면 패드는 특정 시장에서 단기간에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만 다른 영역으로 확산되지 못하기 때문에 얼마 안 가 열기가 급속도로 식는다.
보다 구체적으로 트렌드로 발전할지, 패드로 끝날지 판단하려면 이슈 성장과 관련된 3가지 요소인 자체 생명력, 외부 환경의 호의성, 관련 주체의 의지와 노력을 살펴 보아야 한다. 트렌드로 발전하는 이머징 이슈는 무엇보다 생명력이 있다. 대중의 시선을 끄는 차별성이나, 초기 매니아층을 확보하는 니치 장악력, 이후 주류 시장의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기 위한 변신과 적응 능력 등이 그것이다. 2000년대 들어 현모양처 공주 스타일의 바비 인형을 제치고, 만화 같은 섹시함으로 미국 여자아이들을 사로잡은 브라츠(Bratz) 인형은 이러한 생명력을 잘 보여준다.
외부 환경의 호의성도 중요하다. 생명력이 있다 해도 외부 환경이 비호의적이라면 주류 트렌드가 될 수 없다. 이는 특히 해외에서 이식된 이슈들에서 중요하다. 2000년대 들어 고령화로 인해 실버 산업이 뜬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금융과 의료 외에 활성화된 부문은 많지 않아 보인다. 이는 부의 축적 과정이 미국이나 일본과 달라, 부유한 노인층이 그리 많지 않고, 자산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경우가 많으며, 자녀 지원이나 상속 문제로 실제 가용한 여유자금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처럼 개호보험이 정착되어 있지 않고 유럽처럼 고령연금이 활성화되지 않은 이유도 있다.
마지막으로 관련 주체의 의지/노력도 이슈의 성장 경로에 큰 영향을 미친다. 1990년대 환경 보호 이슈는 2000년대 들어 글로벌 환경 규제 시대의 도래라는 트렌드로 발전하고 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유럽의 기업들과 정부가 강력한 실천 의지를 갖고 지속적으로 흐름을 선도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강력한 온실가스 절감 목표 수립, 탄소배출권 거래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온실가스 규제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유해물질사용제한지침(RoHS),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 등 다양한 정책안을 선보이며 규제 수준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의 주장은 세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반대하기 힘든 대의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이러한 흐름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각국이 유럽식 규제를 자국에 도입하면서 촘촘한 환경 규제의 그물이 글로벌 차원에서 형성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시대 패러다임이 변하면서 기업의 시각 확장 필요
이머징 이슈의 탐색은 미래 트렌드의 대응과 선점이라는 측면에서 기업에 특히 중요하다. <표>처럼 이머징 이슈의 선견과 활용은 주류 트렌드의 맹목적 추종보다 기업에게 큰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문제는 환경 변화를 바라보는 기업의 시각이 앞만 보고 달리는 말처럼 협소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경영학자 George Day는 『Peripheral Vision (2006)』에서 기업의 눈이 인간의 눈과 다르다고 설명한다. 사람의 눈은 진화 과정상 생존과 수렵을 위해 주변부를 넓게 보는 주변시(peripheral vision) 기능을 강화했는데, 기업의 눈은 성과를 중시하는 특성상 조직 목표와 관련된 것만 보는 방향으로 시각을 집중화시켜 왔다는 것이다.
물론 안정적인 시대에는 집중적 시각 능력이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세계 경제는 새로운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의 트렌드들이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고 새로운 트렌드로 대체되는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이미 고성장 저물가의 골디락스(Goldirocks) 트렌드는 저성장 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 트렌드로 대체되고 있다. 또한 글로벌화 대신 선진국의 보호주의, 후진국의 자원민족주의, 고유가에 따른 니어쇼어링(Near-shoring) 전환 등으로 반글로벌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이외에도 신냉전시대, 곡물 전쟁, 온실가스 규제, 공짜 경제 등 다양한 이머징 이슈들이 나타나는 추세이다.
이처럼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가 나타나는 격동의 시대에는 George Day의 조언처럼 주변시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시각을 보다 넓고 멀리 확장시켜 이머징 이슈를 먼저 인식하고, 미래의 기회와 위협 요인을 능동적으로 파악하여 그 대응 방안을 미리 마련해야 하는 때이다.
- LG Business Insight 10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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