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9. 15:21
국내 휴대폰 업체들의 실적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러나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노키아의 벽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노키아의 경쟁력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과연 노키아는 난공불락의 성인가?
자원과 역량의 열세를 딛고 국내 업체들이 노키아를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휴대폰 업계의 2008년 2사분기 실적 발표에서는 희비교차가 뚜렷했다. LG와 삼성은 2분기 연속으로 두 자리 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등 실적 호조가 두드러진 반면, 모토로라와 소니에릭슨은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분사를 결정한 모토로라는 당분간 성장보다는 내실화 작업을 우선할 것으로 보이며, 소니에릭슨은 텃밭인 유럽 시장의 경기 침체와 신제품 실적 부진, 고정비 부담 증가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고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업체들이 모두 글로벌 3위 안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아직 기뻐하기엔 이른 것 같다. 글로벌 톱 노키아의 벽이 점점 더 높아가고만 있기 때문이다. 노키아의 시장 점유율은 이미 40%를 넘어 2위인 삼성(15%)의 2배가 훨씬 넘는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그림 1> 참조).
당분간 40~43%의 시장 점유율 유지할 듯
노키아의 향후 전망은 밝다. 빠른 성장이 기대되는 인도, 중동,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이 특히 높기 때문이다(<그림 2> 참조). 소니에릭슨과 모토로라의 실적 악화도 노키아에게 기회다. 업계 최고의 채널 장악력을 기반으로 양사에서 이탈되는 수요를 빠르게 흡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토로라와 소니에릭슨의 시장 점유율이 비교적 높은 북미와 중남미, 유럽 지역에서는 추가적인 시장 점유율 제고도 가능해 보인다. 실제로 모토로라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가장 많은 이득을 본 것은 노키아였다. 이처럼 노키아 강세 지역의 시장 성장률과 모토로라와 소니에릭슨에 대한 공략 가능성을 감안한다면 노키아의 시장 점유율은 1~3%p의 상승 여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경기 침체도 노키아에는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경기 위축의 영향으로 소비 성향이 보수안정화하면 1위 브랜드인 노키아로 구매가 쏠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탁월한 제조 역량(Operational Excellence)
노키아의 경쟁력을 말할 때 가장 먼저 이야기되는 것이 아마 ‘규모의 경제’일 것이다. 노키아와 소니에릭슨의 제조원가율은 시기에 따라 적게는 7%p, 많게는 13%p까지 차이가 벌어진다 (<그림 3> 참조).
소니에릭슨의 경우 다수의 원천기술과 자체 칩 솔루션을 확보하고 있고 외주 생산 비중이 높다. 따라서 로열티나 가공비 부담은 노키아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양사의 제조원가 차이는 대부분 재료비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키아의 평균 판가가 소니 에릭슨의 65%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에 주목하자. 평균 판가가 낮을 수록 재료비 부담이 높은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노키아에게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가공할 규모의 경제 효과 덕분이다. 게다가 노키아는 구매하는 부품을 철저하게 표준화함으로써 규모의 경제 효과를 극대화한다.
탄탄한 협력업체 네트워크도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노키아는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구현 가능한 제품이라 하더라도 안정된 부품 조달이 불가능하면 제품을 출시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공급사 관리(SCM)를 중시한다. 까다롭게 협력업체를 고르지만 일단 선택된 업체들에게는 장기협력을 보장한다. 이러한 협력 관계 덕분에 노키아의 SCM은 안정적인 동시에 유연하다. 거래하던 단말 제조사가 부품 수급 차질로 납기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 통신사업자들은 제일 먼저 노키아로 달려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빨리 제품을 만들어 공급할 수 있는 업체가 노키아라는 인식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미래 준비로 진일보한 플랫폼 전략
그러나 이런 노키아도 위기를 경험한 적이 있다. 2000년부터 노키아의 실적 추이를 살펴보면 2003년 4사분기부터 2004년 2사분기까지 시장 점유율과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하락했음을 볼 수 있다(<그림 4> 참조).
2001년부터 2002년 사이, 유럽과 미국 시장은 IT 버블 붕괴에 뒤이은 단기 불황에 시달렸다. 특히 유럽 시장의 경우 휴대전화 시장이 포화되면서 수요가 위축되었는데 이 시기에 노키아는 가격 경쟁력이 높은 제품으로 시장 점유율을 크게 끌어올렸다. 하지만 불황이 끝난 후 소비심리는 살아났고 때마침 삼성과 모토로라가 고급 사양의 제품을 쏟아내면서 노키아는 곤경에 처했다. 저가 제품에 안주한 나머지 고급 사양의 멀티미디어 제품 플랫폼을 준비하지 못했던 것이다. 시장은 폴더형 폼팩터, 컬러 LCD, 카메라폰, 뮤직폰 등의 멀티미디어 제품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지만 당시 노키아의 제품 중 고급 사양 제품은 턱없이 부족했다(<표 1> 참조). ‘제품 개발 기간이 너무 길다’, ‘플랫폼 전략의 실패다’, ‘저가의 덫에 걸렸다’는 등 노키아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는 노키아의 플랫폼 전략을 보완하는 계기가 되었다. 플랫폼은 한 번 개발되면 제품의 하부 스펙을 부분수정하여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지만, 핵심 칩셋이 지원하지 않는 완전히 다른 사양의 기능에는 대응할 수 없다. 더구나 플랫폼의 핵인 칩셋 개발에는 2년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 동안에는 기존의 플랫폼을 고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플랫폼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미래 예측 없이는 플랫폼 전략 자체가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노키아는 이 때의 위기를 통해 절감한다.
이때부터 노키아는 미래 준비에 많은 노력을 쏟기 시작했다. 노키아는 ‘가장 능력이 뛰어난 엔지니어를 구매 부서에 배치한다’고 하는데, 이는 노키아의 미래 예측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노키아의 구매 담당자는 ‘협력업체의 협력업체까지 만난다’고 할 정도로 업계 사정과 기술 동향에 환하다. 이것은 노키아 플랫폼 설계의 기본 토대가 된다. 2~3년 안에 구현 가능한 기술을 철저히 파악한 후 그것을 휴대 단말 안에서 구현할 수 있는 칩셋을 설계한다. 관련된 핵심 부품을 조달하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작업이 뒤따른다.
일단 플랫폼이 완성되면 이것을 주류 트렌드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진행된다. 유럽에서 큰 인기를 모은 N95는 출시한 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업계 최고의 사양과 높은 판매고를 자랑한다. 그런데 이 제품이 하루 아침에 개발된 게 아니다. ‘모바일 컴퓨터’라는 컨셉은 1년 앞서 출시된 N93에 먼저 적용되었지만 시장에서 커다란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 폼팩터에 대한 불만, 카메라 화질상 문제점 등 다양한 결점이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만 사항을 개선할 결과가 한데 모여 N95가 완성된 것이다.
가장 먼저 기술을 상용화하고 소비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업체가 노키아이기 때문에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와 같은 칩셋 업체들에게 노키아의 제품 전략은 가장 중요한 벤치마크가 된다. 당연히 다른 휴대 단말 업체도 노키아의 제품을 벤치마킹하게 될 것이다. 결국 노키아가 제시하는 사양과 미래 전망이 핵심 부품과 경쟁사들의 제품 라인업으로 이어지니 노키아 스스로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를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패권까지 노려
노키아의 야심은 ‘휴대 단말의 제왕’에서 끝나지 않는다. 노키아는 LG나 삼성과 같은 단말 제조사가 아니라 컴퓨터 운영 체제(OS) 제조사인 마이크로소프트를 경쟁사로 본다. 노키아의 직원 중 마이크로소프트로 이직하는 사람은 퇴사 전 2주 간의 업무 인수 인계 기간(two-week notice)을 채우지 못하고 바로 짐을 싸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전략과 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컨텐츠와 심비안 OS 사업에 노키아가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노키아의 컨텐츠 포탈 오비(OVI)와 심비안 OS는 막강한 시너지를 낸다. OVI에 기반한 모바일 서비스를 휴대 단말 사용 환경에 최적화한 서비스 어플리케이션과 그것을 매끄럽게 구현해내는 단말 운영체제(OS)는 최상의 조합을 형성한다. 80년대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OS와 그 기반위에서 구동되는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으로 애플의 맥을 누르고 컴퓨터 시장을 독점한 것과 같은 비즈니스 드라마를 노키아는 모바일에서 재현하려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최근 휴대단말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단말과 PC의 호환성’이다. PC와 호환이 잘 되는 단말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역(逆)은 어떨까? 사용자와 가장 가까운 기기가 PC가 아니라 휴대폰이라면? 휴대전화로 늘 네트워크에 접속해 있는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소비자들은 ‘PC에 잘 호환되는 휴대전화’가 아니라 ‘휴대전화에 잘 호환되는 PC’를 원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노키아의 심비안 OS는 모바일을 넘어 PC를 향해 나아갈 수도 있다. 실제로 노키아는 ERP와 같이 PC 연동이 필수적인 비즈니스 솔루션 개발과 그를 탑재한 단말인 E 시리즈의 시장 개척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MS 윈도우에 길들여진 선진 국가 소비자들에게는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PC 사용 경험이 없는 신흥 시장에서는 어떨까? 이 시장의 소비자들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보다 노키아의 심비안에 더 익숙하다. 노키아가 마이크로소프트를 그토록 신경 쓰는 것은 컴퓨팅 시장 전체에 대한 야심때문인지도 모른다.
‘철옹성 노키아’, 어떻게 공략할까
노키아는 그야말로 ‘막강하다’. 시장 점유율 40%에 이르는 업계 톱의 지위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섣불리 공격하는 것조차 겁나는 대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2004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키아가 사용한 방법은 대대적인 가격 인하였다. 노키아의 시장 점유율은 상승세를 회복했으며, 대신 경쟁사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삼성, LG는 시장 점유율이 하락했으며, 지멘스와 같은 회사는 영업 적자로 사업을 철수해야 했다.
그러나 ‘적을 공격하지 않는 것은 자살하는 것과 같다’고 나폴레옹은 말하지 않았던가. 현재의 경쟁 구도에 안주하는 것은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노키아의 벽은 끝없이 높아질 것이고 역량의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된다. 같은 제품 시장에서 경쟁하는 이상, 노키아는 지금 당장 넘지 못하더라도 계속해서 도전해야 할 산임에는 틀림없다.
큰 둑에 큰 구멍을 내는 사람은 그 물길에 자신이 먼저 당하는 법이다. 섣부른 공격보다는 변방에서부터 차근차근 입지를 다져나가는 전략이 바람직하다.
대리전 통해 역량 손실 유도해야
적의 적은 아군이라 했던가. 노키아와 경쟁 관계에 있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하여 노키아와의 대리전을 유도하는 것은 국내 업체들이 생각해 볼 만한 전략이다.
우선 노키아의 신사업 전략에서 역량 손실을 유도해야 한다. 노키아의 컨텐츠 포털인 OVI는 음악과 게임, LBS를 핵심 서비스로 내세우고 있는데 이를 위해 노키아는 최근 들어 몇 조원에 달하는 대형 M&A를 계속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자체 서비스와 컨텐츠 판매 수익을 올리려 했던 노키아의 생각과 달리 최근의 모바일 서비스 환경은 점점 개방화, 무료화 추세로 변화하고 있다. 구글이 오픈형 비즈니스 모델을 선언하고, 애플이 여기에 동조하면서부터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유선 인터넷에서 성공한 업체들이 모바일로 진입하는 사례가 늘면 늘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노키아는 심비안 OS를 개방하는 등 개방화 추세를 따르고는 있지만, 단말 OS, 뮤직 서비스, LBS(Location-based Service) 등 신규 수익원으로 기대했던 사업과 서비스 분야의 개방, 무료화 추세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서비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소요된 M&A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후발 주자인 국내 업체에게 있어 이러한 개방화 추세는 대단히 좋은 기회다. 구글과 같이 개방형 서비스를 지향하는 업체의 서비스를 지원하고, 나아가 단말 사용자끼리 자유롭게 컨텐츠를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 어플리케이션과 인터페이스를 제품에 구현한다면 적은 비용으로 더 높은 고객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노키아의 신사업 전략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신흥시장에서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과의 협력은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선진 시장에서는 압도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지만 신흥시장의 시장 기반은 비교적 취약하므로 이 시장을 대상으로 한 협력은 이들 업체의 입장에서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신흥시장이 중요할까?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컴퓨터를 경험해 보지 못한 신흥시장의 소비자들은 노키아가 제공하는 모바일 서비스가 최초의 컴퓨팅 경험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이 지역 소비자들이 노키아의 서비스와 어플리케이션, 단말에 고착된다면 국내 업체는 물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미래에 가장 중요한 시장을 잃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신흥시장을 대상으로 노키아 경쟁사들과의 협력은 가능한 빨리 서둘러야 한다. 신흥 시장에 특화된 서비스를 공동개발하거나 이들 OS를 탑재한 제품을 만들어 함께 마케팅 한다면 마케팅 자원의 규모 열세를 극복하는 데도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만약 아시아와 중아 지역에서 노키아의 시장 점유율을 시장 평균 수준인 40%로 끌어내릴 수 있다면 노키아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36%로 4%p나 하락하게 된다.
플랫폼 전략의 허점을 공격
노키아의 플랫폼 전략에도 허점은 있다. 상상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100% 완벽한 미래 예측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지 루카스는 몇 광년을 여행하는 비행선과 광선검을 상상했지만 유전자 복제를 상상하지는 못했다. 그랬다면 다스베이더는 진공관과 조악한 기계 장치를 달지 않고도 부활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는 IT 분야에서 이러한 실수는 비일비재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게임기가 모든 가전제품을 통제할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으며, 모토로라는 디지털 휴대전화 대신 위성전화 이리듐에 사운을 건 적이 있다. 비록 노키아 플랫폼 전략의 완결성은 높아졌지만, 그들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은 기술과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있다.
LG와 삼성, 그리고 애플까지 모두 터치 스크린 제품으로 돌풍을 일으켰지만 노키아는 아직도 터치 스크린 제품을 출시하지 않고 있다. 올해 말에나 첫 번째 제품이 나올 것이라 한다. 이렇게 늦어진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판에 비해 고객 편의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터치 스크린이 주류가 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고, 안정적인 부품 공급처를 찾는데 시간이 소요되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느리고 무겁다는 증거이다. 2~3년 단위로 제품을 개발하는 노키아에 비해 국내 업체는 훨씬 빠르게 고객의 니즈를 정조준한 제품으로 노키아를 공략할 수 있다.
더구나 노키아의 제품은 신기술과 다양한 스펙 변경을 염두에 두고 플랫폼을 준비하는 만큼 크고 무겁다. 유비쿼터스 컴퓨팅에 대한 야심이 큰 만큼 소비자가 휴대 단말을 통해 모든 업무와 엔터테인먼트를 다 할 것이라는 기대에 사로잡힐 가능성도 있다. 휴대폰의 과도한 기능과 서비스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 소비자들은 국내 업체의 든든한 원군이다. 예컨대 노키아가 시도하지 않았던 대형 LCD를 채용하되,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의 기능과 서비스만을 탑재하고 훨씬 슬림하고 가벼운 단말로 소비자의 호응을 얻는다면 이 역시 노키아 플랫폼 전략을 흔들 수 있는 좋은 전략이다. 신흥 시장에 노키아가 시도하지 않았던 스펙과 폼팩터를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국내 업체가 부품을 공동구매하여 유사한 컨셉의 제품을 동시에 공격적으로 마케팅 한다면 파급효과가 클 것이다.
정부 지원도 필요
원천기술, 구매, 채널 등 노키아에 비해 근본적으로 부족한 역량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개별기업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국내 업체들의 경우 칩셋 로열티로 인해 최소한 3~5%의 영업 이익 감소 요인이 있으며, 부품 구매 규모에서도 노키아와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신흥시장에서 유통 경쟁력도 열세이다. ’07년 기준으로 인도 시장에서 타 단말 업체들의 채널 확보율은 노키아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LTE(Long Term Evolution), 4G와 같은 차세대 네트워크에서는 국내업체가 원천기술을 확보하거나 크로스라이센싱을 통해 로열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부품 개발이나 구매에서 국내업체들 간의 협력을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국내 업체들 간의 협력은 LCD 업계에서 거론된 바 있지만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경쟁 업체 간의 협력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지만, 노키아라는 큰 산을 넘기 위해 국내에서 시너지를 낼 부분이 있다면 굳이 불가능한 대안으로 제쳐둘 일만은 아니다.
신흥시장의 채널 확대도 마찬가지이다.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국가의 경우 노키아의 시장 점유율이 80%에 달하는 국가도 많다. 이런 시장에서는 노키아가 제품을 공급하지 않을까봐 경쟁사의 제품을 취급하지 않는 유통 채널도 많다고 한다. 이런 시장에서 공정한 유통 환경이 조성되도록 정부간 차원의 외교채널을 가동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작은 물줄기가 큰 둑을 허물 듯
노키아는 강한 기업이다. 하지만 경쟁자들의 기민한 움직임과 시장 환경의 변화는 노키아의 미래 전략에 차질과 노선 변경을 유도할 수 있다. 또한 미래 전략에 대한 노키아의 야심이 소비자를 보는 눈을 흐리게 할 수도 있다. 물론 기본 체질과 경쟁력이 강한 만큼, 이런 변수들 하나하나가 작은 충격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물줄기가 새기 시작하면 마침내 큰 둑도 무너질 수 있다. 시장과 소비자를 정확하게 보고, 부족한 역량을 보완하기 위한 투자와 협력을 아끼지 말고, 한 발 빠르게 움직인다면 국내 업체들이 노키아의 아성을 꺾는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 LG Business Insight 1005호
여전히 높기만 하다. 노키아의 경쟁력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과연 노키아는 난공불락의 성인가?
자원과 역량의 열세를 딛고 국내 업체들이 노키아를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휴대폰 업계의 2008년 2사분기 실적 발표에서는 희비교차가 뚜렷했다. LG와 삼성은 2분기 연속으로 두 자리 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등 실적 호조가 두드러진 반면, 모토로라와 소니에릭슨은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분사를 결정한 모토로라는 당분간 성장보다는 내실화 작업을 우선할 것으로 보이며, 소니에릭슨은 텃밭인 유럽 시장의 경기 침체와 신제품 실적 부진, 고정비 부담 증가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고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업체들이 모두 글로벌 3위 안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아직 기뻐하기엔 이른 것 같다. 글로벌 톱 노키아의 벽이 점점 더 높아가고만 있기 때문이다. 노키아의 시장 점유율은 이미 40%를 넘어 2위인 삼성(15%)의 2배가 훨씬 넘는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그림 1> 참조).
당분간 40~43%의 시장 점유율 유지할 듯
노키아의 향후 전망은 밝다. 빠른 성장이 기대되는 인도, 중동,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이 특히 높기 때문이다(<그림 2> 참조). 소니에릭슨과 모토로라의 실적 악화도 노키아에게 기회다. 업계 최고의 채널 장악력을 기반으로 양사에서 이탈되는 수요를 빠르게 흡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토로라와 소니에릭슨의 시장 점유율이 비교적 높은 북미와 중남미, 유럽 지역에서는 추가적인 시장 점유율 제고도 가능해 보인다. 실제로 모토로라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가장 많은 이득을 본 것은 노키아였다. 이처럼 노키아 강세 지역의 시장 성장률과 모토로라와 소니에릭슨에 대한 공략 가능성을 감안한다면 노키아의 시장 점유율은 1~3%p의 상승 여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경기 침체도 노키아에는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경기 위축의 영향으로 소비 성향이 보수안정화하면 1위 브랜드인 노키아로 구매가 쏠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탁월한 제조 역량(Operational Excellence)
노키아의 경쟁력을 말할 때 가장 먼저 이야기되는 것이 아마 ‘규모의 경제’일 것이다. 노키아와 소니에릭슨의 제조원가율은 시기에 따라 적게는 7%p, 많게는 13%p까지 차이가 벌어진다 (<그림 3> 참조).
소니에릭슨의 경우 다수의 원천기술과 자체 칩 솔루션을 확보하고 있고 외주 생산 비중이 높다. 따라서 로열티나 가공비 부담은 노키아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양사의 제조원가 차이는 대부분 재료비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키아의 평균 판가가 소니 에릭슨의 65%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에 주목하자. 평균 판가가 낮을 수록 재료비 부담이 높은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노키아에게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가공할 규모의 경제 효과 덕분이다. 게다가 노키아는 구매하는 부품을 철저하게 표준화함으로써 규모의 경제 효과를 극대화한다.
탄탄한 협력업체 네트워크도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노키아는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구현 가능한 제품이라 하더라도 안정된 부품 조달이 불가능하면 제품을 출시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공급사 관리(SCM)를 중시한다. 까다롭게 협력업체를 고르지만 일단 선택된 업체들에게는 장기협력을 보장한다. 이러한 협력 관계 덕분에 노키아의 SCM은 안정적인 동시에 유연하다. 거래하던 단말 제조사가 부품 수급 차질로 납기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 통신사업자들은 제일 먼저 노키아로 달려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빨리 제품을 만들어 공급할 수 있는 업체가 노키아라는 인식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미래 준비로 진일보한 플랫폼 전략
그러나 이런 노키아도 위기를 경험한 적이 있다. 2000년부터 노키아의 실적 추이를 살펴보면 2003년 4사분기부터 2004년 2사분기까지 시장 점유율과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하락했음을 볼 수 있다(<그림 4> 참조).
2001년부터 2002년 사이, 유럽과 미국 시장은 IT 버블 붕괴에 뒤이은 단기 불황에 시달렸다. 특히 유럽 시장의 경우 휴대전화 시장이 포화되면서 수요가 위축되었는데 이 시기에 노키아는 가격 경쟁력이 높은 제품으로 시장 점유율을 크게 끌어올렸다. 하지만 불황이 끝난 후 소비심리는 살아났고 때마침 삼성과 모토로라가 고급 사양의 제품을 쏟아내면서 노키아는 곤경에 처했다. 저가 제품에 안주한 나머지 고급 사양의 멀티미디어 제품 플랫폼을 준비하지 못했던 것이다. 시장은 폴더형 폼팩터, 컬러 LCD, 카메라폰, 뮤직폰 등의 멀티미디어 제품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지만 당시 노키아의 제품 중 고급 사양 제품은 턱없이 부족했다(<표 1> 참조). ‘제품 개발 기간이 너무 길다’, ‘플랫폼 전략의 실패다’, ‘저가의 덫에 걸렸다’는 등 노키아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는 노키아의 플랫폼 전략을 보완하는 계기가 되었다. 플랫폼은 한 번 개발되면 제품의 하부 스펙을 부분수정하여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지만, 핵심 칩셋이 지원하지 않는 완전히 다른 사양의 기능에는 대응할 수 없다. 더구나 플랫폼의 핵인 칩셋 개발에는 2년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 동안에는 기존의 플랫폼을 고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플랫폼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미래 예측 없이는 플랫폼 전략 자체가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노키아는 이 때의 위기를 통해 절감한다.
이때부터 노키아는 미래 준비에 많은 노력을 쏟기 시작했다. 노키아는 ‘가장 능력이 뛰어난 엔지니어를 구매 부서에 배치한다’고 하는데, 이는 노키아의 미래 예측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노키아의 구매 담당자는 ‘협력업체의 협력업체까지 만난다’고 할 정도로 업계 사정과 기술 동향에 환하다. 이것은 노키아 플랫폼 설계의 기본 토대가 된다. 2~3년 안에 구현 가능한 기술을 철저히 파악한 후 그것을 휴대 단말 안에서 구현할 수 있는 칩셋을 설계한다. 관련된 핵심 부품을 조달하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작업이 뒤따른다.
일단 플랫폼이 완성되면 이것을 주류 트렌드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진행된다. 유럽에서 큰 인기를 모은 N95는 출시한 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업계 최고의 사양과 높은 판매고를 자랑한다. 그런데 이 제품이 하루 아침에 개발된 게 아니다. ‘모바일 컴퓨터’라는 컨셉은 1년 앞서 출시된 N93에 먼저 적용되었지만 시장에서 커다란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 폼팩터에 대한 불만, 카메라 화질상 문제점 등 다양한 결점이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만 사항을 개선할 결과가 한데 모여 N95가 완성된 것이다.
가장 먼저 기술을 상용화하고 소비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업체가 노키아이기 때문에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와 같은 칩셋 업체들에게 노키아의 제품 전략은 가장 중요한 벤치마크가 된다. 당연히 다른 휴대 단말 업체도 노키아의 제품을 벤치마킹하게 될 것이다. 결국 노키아가 제시하는 사양과 미래 전망이 핵심 부품과 경쟁사들의 제품 라인업으로 이어지니 노키아 스스로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를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패권까지 노려
노키아의 야심은 ‘휴대 단말의 제왕’에서 끝나지 않는다. 노키아는 LG나 삼성과 같은 단말 제조사가 아니라 컴퓨터 운영 체제(OS) 제조사인 마이크로소프트를 경쟁사로 본다. 노키아의 직원 중 마이크로소프트로 이직하는 사람은 퇴사 전 2주 간의 업무 인수 인계 기간(two-week notice)을 채우지 못하고 바로 짐을 싸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전략과 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컨텐츠와 심비안 OS 사업에 노키아가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노키아의 컨텐츠 포탈 오비(OVI)와 심비안 OS는 막강한 시너지를 낸다. OVI에 기반한 모바일 서비스를 휴대 단말 사용 환경에 최적화한 서비스 어플리케이션과 그것을 매끄럽게 구현해내는 단말 운영체제(OS)는 최상의 조합을 형성한다. 80년대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OS와 그 기반위에서 구동되는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으로 애플의 맥을 누르고 컴퓨터 시장을 독점한 것과 같은 비즈니스 드라마를 노키아는 모바일에서 재현하려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최근 휴대단말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단말과 PC의 호환성’이다. PC와 호환이 잘 되는 단말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역(逆)은 어떨까? 사용자와 가장 가까운 기기가 PC가 아니라 휴대폰이라면? 휴대전화로 늘 네트워크에 접속해 있는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소비자들은 ‘PC에 잘 호환되는 휴대전화’가 아니라 ‘휴대전화에 잘 호환되는 PC’를 원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노키아의 심비안 OS는 모바일을 넘어 PC를 향해 나아갈 수도 있다. 실제로 노키아는 ERP와 같이 PC 연동이 필수적인 비즈니스 솔루션 개발과 그를 탑재한 단말인 E 시리즈의 시장 개척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MS 윈도우에 길들여진 선진 국가 소비자들에게는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PC 사용 경험이 없는 신흥 시장에서는 어떨까? 이 시장의 소비자들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보다 노키아의 심비안에 더 익숙하다. 노키아가 마이크로소프트를 그토록 신경 쓰는 것은 컴퓨팅 시장 전체에 대한 야심때문인지도 모른다.
‘철옹성 노키아’, 어떻게 공략할까
노키아는 그야말로 ‘막강하다’. 시장 점유율 40%에 이르는 업계 톱의 지위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섣불리 공격하는 것조차 겁나는 대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2004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키아가 사용한 방법은 대대적인 가격 인하였다. 노키아의 시장 점유율은 상승세를 회복했으며, 대신 경쟁사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삼성, LG는 시장 점유율이 하락했으며, 지멘스와 같은 회사는 영업 적자로 사업을 철수해야 했다.
그러나 ‘적을 공격하지 않는 것은 자살하는 것과 같다’고 나폴레옹은 말하지 않았던가. 현재의 경쟁 구도에 안주하는 것은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노키아의 벽은 끝없이 높아질 것이고 역량의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된다. 같은 제품 시장에서 경쟁하는 이상, 노키아는 지금 당장 넘지 못하더라도 계속해서 도전해야 할 산임에는 틀림없다.
큰 둑에 큰 구멍을 내는 사람은 그 물길에 자신이 먼저 당하는 법이다. 섣부른 공격보다는 변방에서부터 차근차근 입지를 다져나가는 전략이 바람직하다.
대리전 통해 역량 손실 유도해야
적의 적은 아군이라 했던가. 노키아와 경쟁 관계에 있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하여 노키아와의 대리전을 유도하는 것은 국내 업체들이 생각해 볼 만한 전략이다.
우선 노키아의 신사업 전략에서 역량 손실을 유도해야 한다. 노키아의 컨텐츠 포털인 OVI는 음악과 게임, LBS를 핵심 서비스로 내세우고 있는데 이를 위해 노키아는 최근 들어 몇 조원에 달하는 대형 M&A를 계속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자체 서비스와 컨텐츠 판매 수익을 올리려 했던 노키아의 생각과 달리 최근의 모바일 서비스 환경은 점점 개방화, 무료화 추세로 변화하고 있다. 구글이 오픈형 비즈니스 모델을 선언하고, 애플이 여기에 동조하면서부터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유선 인터넷에서 성공한 업체들이 모바일로 진입하는 사례가 늘면 늘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노키아는 심비안 OS를 개방하는 등 개방화 추세를 따르고는 있지만, 단말 OS, 뮤직 서비스, LBS(Location-based Service) 등 신규 수익원으로 기대했던 사업과 서비스 분야의 개방, 무료화 추세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서비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소요된 M&A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후발 주자인 국내 업체에게 있어 이러한 개방화 추세는 대단히 좋은 기회다. 구글과 같이 개방형 서비스를 지향하는 업체의 서비스를 지원하고, 나아가 단말 사용자끼리 자유롭게 컨텐츠를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 어플리케이션과 인터페이스를 제품에 구현한다면 적은 비용으로 더 높은 고객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노키아의 신사업 전략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신흥시장에서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과의 협력은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선진 시장에서는 압도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지만 신흥시장의 시장 기반은 비교적 취약하므로 이 시장을 대상으로 한 협력은 이들 업체의 입장에서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신흥시장이 중요할까?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컴퓨터를 경험해 보지 못한 신흥시장의 소비자들은 노키아가 제공하는 모바일 서비스가 최초의 컴퓨팅 경험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이 지역 소비자들이 노키아의 서비스와 어플리케이션, 단말에 고착된다면 국내 업체는 물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미래에 가장 중요한 시장을 잃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신흥시장을 대상으로 노키아 경쟁사들과의 협력은 가능한 빨리 서둘러야 한다. 신흥 시장에 특화된 서비스를 공동개발하거나 이들 OS를 탑재한 제품을 만들어 함께 마케팅 한다면 마케팅 자원의 규모 열세를 극복하는 데도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만약 아시아와 중아 지역에서 노키아의 시장 점유율을 시장 평균 수준인 40%로 끌어내릴 수 있다면 노키아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36%로 4%p나 하락하게 된다.
플랫폼 전략의 허점을 공격
노키아의 플랫폼 전략에도 허점은 있다. 상상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100% 완벽한 미래 예측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지 루카스는 몇 광년을 여행하는 비행선과 광선검을 상상했지만 유전자 복제를 상상하지는 못했다. 그랬다면 다스베이더는 진공관과 조악한 기계 장치를 달지 않고도 부활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는 IT 분야에서 이러한 실수는 비일비재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게임기가 모든 가전제품을 통제할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으며, 모토로라는 디지털 휴대전화 대신 위성전화 이리듐에 사운을 건 적이 있다. 비록 노키아 플랫폼 전략의 완결성은 높아졌지만, 그들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은 기술과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있다.
LG와 삼성, 그리고 애플까지 모두 터치 스크린 제품으로 돌풍을 일으켰지만 노키아는 아직도 터치 스크린 제품을 출시하지 않고 있다. 올해 말에나 첫 번째 제품이 나올 것이라 한다. 이렇게 늦어진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판에 비해 고객 편의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터치 스크린이 주류가 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고, 안정적인 부품 공급처를 찾는데 시간이 소요되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느리고 무겁다는 증거이다. 2~3년 단위로 제품을 개발하는 노키아에 비해 국내 업체는 훨씬 빠르게 고객의 니즈를 정조준한 제품으로 노키아를 공략할 수 있다.
더구나 노키아의 제품은 신기술과 다양한 스펙 변경을 염두에 두고 플랫폼을 준비하는 만큼 크고 무겁다. 유비쿼터스 컴퓨팅에 대한 야심이 큰 만큼 소비자가 휴대 단말을 통해 모든 업무와 엔터테인먼트를 다 할 것이라는 기대에 사로잡힐 가능성도 있다. 휴대폰의 과도한 기능과 서비스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 소비자들은 국내 업체의 든든한 원군이다. 예컨대 노키아가 시도하지 않았던 대형 LCD를 채용하되,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의 기능과 서비스만을 탑재하고 훨씬 슬림하고 가벼운 단말로 소비자의 호응을 얻는다면 이 역시 노키아 플랫폼 전략을 흔들 수 있는 좋은 전략이다. 신흥 시장에 노키아가 시도하지 않았던 스펙과 폼팩터를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국내 업체가 부품을 공동구매하여 유사한 컨셉의 제품을 동시에 공격적으로 마케팅 한다면 파급효과가 클 것이다.
정부 지원도 필요
원천기술, 구매, 채널 등 노키아에 비해 근본적으로 부족한 역량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개별기업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국내 업체들의 경우 칩셋 로열티로 인해 최소한 3~5%의 영업 이익 감소 요인이 있으며, 부품 구매 규모에서도 노키아와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신흥시장에서 유통 경쟁력도 열세이다. ’07년 기준으로 인도 시장에서 타 단말 업체들의 채널 확보율은 노키아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LTE(Long Term Evolution), 4G와 같은 차세대 네트워크에서는 국내업체가 원천기술을 확보하거나 크로스라이센싱을 통해 로열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부품 개발이나 구매에서 국내업체들 간의 협력을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국내 업체들 간의 협력은 LCD 업계에서 거론된 바 있지만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경쟁 업체 간의 협력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지만, 노키아라는 큰 산을 넘기 위해 국내에서 시너지를 낼 부분이 있다면 굳이 불가능한 대안으로 제쳐둘 일만은 아니다.
신흥시장의 채널 확대도 마찬가지이다.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국가의 경우 노키아의 시장 점유율이 80%에 달하는 국가도 많다. 이런 시장에서는 노키아가 제품을 공급하지 않을까봐 경쟁사의 제품을 취급하지 않는 유통 채널도 많다고 한다. 이런 시장에서 공정한 유통 환경이 조성되도록 정부간 차원의 외교채널을 가동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작은 물줄기가 큰 둑을 허물 듯
노키아는 강한 기업이다. 하지만 경쟁자들의 기민한 움직임과 시장 환경의 변화는 노키아의 미래 전략에 차질과 노선 변경을 유도할 수 있다. 또한 미래 전략에 대한 노키아의 야심이 소비자를 보는 눈을 흐리게 할 수도 있다. 물론 기본 체질과 경쟁력이 강한 만큼, 이런 변수들 하나하나가 작은 충격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물줄기가 새기 시작하면 마침내 큰 둑도 무너질 수 있다. 시장과 소비자를 정확하게 보고, 부족한 역량을 보완하기 위한 투자와 협력을 아끼지 말고, 한 발 빠르게 움직인다면 국내 업체들이 노키아의 아성을 꺾는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 LG Business Insight 10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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