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불확실성이다. 인간은 안정을 추구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균형이 깨지는 것에 대해 위기감을 느낀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당면한 불확실한 상황을 얼마나 빠르게 제거해 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리더의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지고 있다. 대부분은 불확실성, 무질서를 위협요인으로 여긴다.
이에 반해 1977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였던 일리야 프리고진은 불확실성과 무질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즉, 불확실성과 무질서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현상이며, 제거해야 할 것이 아니라 한층 고차원적인 질서가 만들어지는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프리고진에 따르면 불확실성이 발생하는 원인은 근본적으로 시장이 개방됐기 때문이다. 폐쇄된 사회에서 획일화된 체제에 맞춰 살아가던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은 정보와 자본이 국경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있다. 또 소비자의 욕구(needs)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으며, 경쟁자들은 끊임없는 혁신과 M&A(인수합병)를 통해 경쟁력 싸움을 하고 있다. 시장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 지진이 빈발하는 땅 위에는 아무리 견고한 건물을 짓더라도 소용이 없듯이, 움직이는 시장에서 최적의 안정을 보장해주는 경영전략과 조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차라리 불확실성과 무질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기업의 조직과 전략을 변화에 맞춰 적응시킬 때 새롭고 더 나은 해법이 나올 것이다.
1970년대 美 유통업계 군림하던 시어즈 그룹 시대 변화 못읽어 월마트 등에 무참히 무너져
코카콜라에 첨가물 납품하던 하청기업 몬산토 화학·생명공학기업으로 끊임없이 변신하여 성공
■ 확실성과 불균형에 대응 못한 시어즈
세계 최고층(最高層)을 자랑하던 시어즈타워(Sears tower·1974년 미국 시카고에 완공된 110층 빌딩)가 상징하듯, 시어즈는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미국 유통업계의 맹주로 군림해왔다. 카탈로그에 의한 통신판매와 중산층 대상 쇼핑몰 사업을 통해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었다. 또 미국 전역에 퍼져있는 거대한 유통망을 관리하는 물류 조직 구조는 성공적인 모델로서 많은 연구 대상이 됐다.
시어즈는 사업모델의 안정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어즈가 놓치고 있던 게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미국 경제에 일고 있는 작은 변화였다. 1970년대 미국은 경기가 둔화되고 신흥 공업국들이 부상함에 따라 국민의 소득 수준이 양극화되기 시작했다. 한편 중소도시 저소득층의 소비 욕구는 쌓여가고 있었다. 월마트(Walmart)는 이러한 변화를 깨닫고 지방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저가(低價) 할인매장을 확대해 갔다. 홈데포(Home Depot)도 특화되는 소비자 욕구에 맞게 가정용품 전문매장에 집중하면서 세력을 계속 확장했다.
그러나 시어즈는 1980년대가 지날 때까지 부분적인 다운사이징, 매장관리 개선 등의 작은 노력만 했을 뿐 근본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시어즈가 상황이 변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는 이미 경쟁 유통업체들이 시장의 상당부분을 잠식한 뒤였다. 변화하는 소비자의 성향에 맞추기보다는 그 동안 자신이 이루었던 성공모델을 고수한 것이 문제였다.
결국 이러한 자세는 1990년대 찾아온 만회의 기회마저 놓치게 만들었다. 정보통신 기술이 태동하면서 시어즈가 100년 동안 이어온 통신판매 사업은 인터넷 쇼핑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시어즈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말았다. 만회의 기회를 포착하지 못한 데 그친 게 아니라 급기야는 1996년에 카탈로그 통신판매에서 철수하는 결정을 내리고 만 것이다. 기존의 조직과 유통망, 그리고 통신판매 노하우를 잘 활용했다면 현재의 아마존닷컴(Amazon. com)을 능가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이다.
시어즈의 사례는 불확실성과 불균형에 대한 대응력이 없을 때 어떤 행보를 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불균형은 변화의 잠재력이 가득한 상태이다. 이를 잘 활용한다면 새로운 성장의 활로를 찾을 수 있게 된다. 끊임없는 변신을 추구한 몬산토(Monsanto)가 이를 잘 보여준다.
몬산토는 코카콜라에 사카린과 식품첨가물을 납품하던 하청기업으로 1901년 출발했다. 몬산토의 강점은 불안정한 시기를 이용해 새로운 위치로 도약하는데 발군의 실력을 보인다는 것. 몬산토는 거대업체에 원료를 공급하고 있는 만큼 거래처 관리만 잘 해도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몬산토의 무게중심은 안주가 아닌 변화에 있었다. 몬산토는 식품첨가물 제조로 얻은 화학공업 기술을 바탕으로 아스피린 제조에 뛰어들었는가 하면, 석유산업시대가 열리자 플라스틱 등 석유화학공업으로 확장해 미국 4위의 거대 종합 화학기업으로 도약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95년 CEO(최고경영자)에 취임한 로버트 샤피로는 석유시장의 점증하는 위기를 내다보고 생명공학 기업으로의 변신을 모색했다. 몬산토는 화학 분야의 연구개발능력을 바탕으로 무려 80억 달러를 생명공학 분야에 쏟아 부으며 기아와 환경 문제를 해결할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석유 시장의 불안정, 무질서적 환경을 타고 넘을 수 있는 조직을 미리 만들었던 것이다.
그 결과 몬산토는 예기치 않은 결실을 맺게 된다. 유전자 변형 작물, 즉 GMO를 개발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낸 것이다. 몬산토는 현재 기존의 석유화학 사업부문을 모두 매각하고 현재 탄탄한 세계 3대 첨단 생명공학 기업으로 완벽하게 변신해 있다.
■ 불확실성, 무질서를 받아들여라
불확실성과 불균형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변화의 흐름을 정확히 감지해야 한다. 이것은 또한 머뭇거림 없이 빠르고 과감한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반도체 업계의 선두주자인 TI(텍사스인스트루먼트·Texas Instrument) 역시 불확실한 상황에서 변화를 주도해 나간 기업으로 변화에 대한 재빠른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TI는 1930년경 유전 탐사사업으로 시작한 회사였다. 그러나 세계 제2차대전 이후 전자산업의 발전 가능성을 간파하여 유전탐사사업을 과감히 접고 전자회사로 변신했다. 이후 1952년 다가올 반도체 시대를 미리 예측했고 트랜지스터의 라이선스를 매입, 세계 최초로 휴대용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선보였다.
1958년에는 IC(집적회로·integrated circuit)를 최초로 발명해 본격적인 반도체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반도체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던 TI는 예상 밖의 큰 시련에 부딪혔다. 많은 경쟁업체들의 등장과 심화된 가격경쟁으로 인해 시장 점유율이 걷잡을 수 없이 하락한 것이다. TI는 가격경쟁이 가장 심화된 전자시계와 컴퓨터 사업을 과감히 매각하고 반도체 디램(DRAM)사업에 주력한다. 결국 1983년 히타치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급격한 성장을 이루게 된다.
1990년대 초 TI는 막강한 생산효율과 발 빠른 기술 대처능력을 가진 한국, 일본 업체들이 몰려올 것을 예측,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DRAM 사업부문을 타 기업에 매각하고, 비(非)메모리 반도체와 아날로그 칩으로 주력사업 방향을 전환했다. TI는 현재 휴대폰 반도체 부문에서 업계 1위로 우뚝 솟아 있다.
생태계를 보면 불확실성, 무질서를 앞서 받아들인 생물만이 오래 생존한다. 비즈니스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불확실성과 무질서에 대응하는 태도에 따라 기업의 운명은 바뀔 것이다.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불확실성에 익숙해져야 한다. 역설적으로 안정, 균형, 질서, 확실성 등은 오히려 위기의 전조가 될 수 있다.
돌궐제국의 명장 톤유쿠크는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했다. 주변의 안정과 균형 속에서는 시야가 흐려진다. ‘신(神)이 누군가를 멸하려 할 때에는 먼저 그의 눈을 멀게 한다’는 서양 격언의 의미를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 serice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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