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10. 09:10
[Business]
전례 없는 그린 러시(Green Rush)를 경험하고 있지만 우리는
‘친환경’의 의미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소비와 생산 활동이 자연에 미칠 영향을 이해하는 통찰력, ‘에코 지능’은 녹색 성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가는 열쇠가 될 것이다.
지난해 말 전 세계를 강타했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는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행성을 찾아 다니는 인간과 그 행성의 토착민인 나비족 사이의 대립을 그리고 있다. 인간과 외계인의 대립이라면 당연히 인간의 승리를 응원하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통상적인 선과 악의 구조를 뒤집어 보는 이들에게 자기 반성을 요구한다. 인간은 환경을 지배하고 파괴하는 것도 모자라 또 다른 행성의 파괴를 계획하는 존재로, 나비족은 지구 환경과 교감하며 후손의 미래를 생각하는 존재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모든 에너지는 잠시 빌린 것이야. 언젠가는 돌려줘야 해.” 나비족 여주인공이 전하는 가르침은 건축가 윌리엄 맥도너의 ‘요람에서 요람으로’식 사고와 유사하다. ‘요람에서 요람으로’는 생산에 사용된 모든 요소가 폐기 단계에 이르렀을 때 자연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성분으로 생분해 되거나 재활용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의 산업 프로세스를 의미한다. 생태계의 균형에 귀 기울여 대응하고 자연의 일부분으로 생존할 줄 아는 나비족의 모습은 녹색 성장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었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생존 철학과 닮아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지 못한 녹색 열풍
지금 우리는 환경 파괴적 인간과 환경 친화적인 나비족 사이에서 어디쯤 존재할까? 2009년 IBM이 전 세계 224명의 경영자들을 대상으로한 조사에 따르면 최고 경영자들의 3분의 2가 지속가능성을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으며 그 중 절반은 친환경이 차별적 경쟁 우위가 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녹색 성장이라는 패러다임은 아직 우리의 현실과 거리가 있는 듯 하다. 미국 썬더버드 대학 그레고리 안루 교수와 리처드 이텐슨 교수는 하버드 비즈니스 비즈니스 리뷰(2010.6)에 기고한 글에서, ‘2007년에서 2009년 사이 친환경 제품의 출시가 500% 이상 증가하며 전례 없는 그린 러시(Green Rush)를 맞고 있지만 무엇이 친환경인지에 대한 기준은 여전히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환경 마케팅 회사인 테라초이스(Terrachoice)도 최근 보고에서 지난해와 올해 사이 미국 소비자들이 접할 수 있는 친환경 제품의 규모는 73%나 증가했으나 그 가운데 그린워시(Green Wash)의 혐의에서 자유로운 제품은 단 5%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친환경이라고는 했지만 사실은 플라스틱 손잡이를 나무 손잡이로 바꾼 것과 같은 미온적 변화가 대부분이기도 하다. 이렇게 친환경에 대한 적극적인 변화는 물론이고 명확한 정의 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많은 기업들은 ‘친환경’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도 기업활동의 전면에 내세우기는 부담스러워한다. 그래서 친환경 활동은 사업 전략보다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소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친환경’ 이라는 것이 디자인처럼 차별화를 위한 콘셉 중 하나로 사용되고는 있지만, 아직 원료 조달, 생산 활동 등 사업 활동 전반에서 핵심적으로 고려되는 원칙, 즉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친환경 전략의 딜레마
무엇이 이토록 변화를 어렵게 만드는가? 친환경 전략에 대한 기업들의 태도는 게임 이론을 설명하는 ‘죄수의 딜레마’와 유사하다. 전체적으로 보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대안이 있는데 개개인이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다 결국 최선의 결론을 저버리는 선택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동일한 상황을 반복하다 보면 죄수들도 학습효과로 결국 모두가 행복해지는 행위를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환경 문제의 경우, 보상은 즉각적이지 않은데 눈 앞에 지불해야 할 비용은 높기 때문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의 선택이 더욱 어렵다.
우선 소비자들은 생각보다 느리게 변하고 있다. 기업들은 친환경 구매를 하겠다는 소비자들의 ‘말’이 실제 소비 ‘행동’으로 잘 연결되지 않고 있음을 알고 있다. 미 경제정책연구소의 제러드 번스타인은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상반된 심리 상태를 WITT, YOYO라는 말로 묘사했다. 환경문제는, “우리는 한 배를 탔다(We’re in This Together, WITT)”라는 상황을 인식하면서도 “당신은 당신대로(You’re On Your Own, YOYO)”라는 개인주의와의 충돌이 심한 영역이다. 무엇이 친환경적인 소비인지 알지 못하는 소비자도 많다. 글로벌 마케팅회사 랜도어소시에이트가 2006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6%는 기업이 보다 더 환경 친화적이 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며 고객이 친환경적이라고 인식하는 브랜드와 실제로 친환경적인 것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한다. 친환경 소비에 대한 소비자들의 변화가 더디기 때문에 기업들도 즉각적으로 변화할 필요성을 덜 느끼는 것인지 모른다.
친환경이라는 대안을 선택하는 데 따르는 비용도 높다. 오늘날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제품 포트폴리오와 비즈니스 프로세스는 대부분 환경이 그다지 중요한 고려 요소가 아닐 때부터 만들어져 온 것들이다. 이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는 생각 이상으로 많은 비용이 수반된다. 게다가 비즈니스 프로세스는 분업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옷 하나를 만들 때 사용된 원단, 단추, 지퍼는 모두 각각의 전문 생산업체로부터 흘러 들어온다. 환경친화적인 방식으로 옷을 생산한다는 것은 내가 만들지는 않았어도 누군가로부터 ‘구입한’ 모든 투입 요소들까지도 환경적으로 무해해야만 가능하다. 심지어 많은 브랜드들은 제조조차 하지 않는다. 디자인과 브랜드만 관리할 뿐 실제 제품의 생산은 글로벌 전문 생산업체가 담당한다. 아디다스, 나이키, 리복의 제품이 한 업체를 통해 만들어 질 수도 있다. 이처럼 글로벌 전문 생산업체들이 상당부분을 외주화한 오늘날의 생산 체계에서 한 기업의 노력만으로 변화를 이끌어내기란 어렵다.
시장에 합의된 표준이 없는 것도 기업들의 결단을 어렵게 만든다. 친환경이라는 넓은 스펙트럼에 모두 대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그 가운데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도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흔히 ‘환경 친화적이다’, ‘지속가능하다’라고 말할 때 사실 그 말이 포함하고 있는 내용은 매우 다양하다. 재생 가능한 원료를 쓰는지, 인체에 무해한지, 에너지 소비가 적은지 등 각기 다른 차원의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또 어느 한 기업이 독자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조건인 경우도 많다. 어떤 기업의 친환경성을 평가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고 가정해 보자. “에너지 소비가 적고, 유해 물질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폐기처리 시설이 잘 확립되어 있고, 노동착취나 아동노동과 관련이 없으며,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으면서 운송 과정에서의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는 곳에서 원재료를 구입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기업이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 미지수다. 친환경성에 대한 현실 가능한 목표나 정의가 모호한 것도 소비자나 기업의 행동 변화를 더디게 하는 요인이다.
당장 시도 가능한 일부 기능만이라도 친환경으로 바꿔보았다가 깐깐한 환경주의자들에게 오히려 ‘거짓말쟁이’로 낙인 찍힐지도 모른다. 친환경 전략은 차별화 도구인 동시에 환경이라는 시험대 위에 스스로를 올려 놓아 소비자가 몰랐던 환경적 약점까지 공개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기업들은 친환경적인 노력을 하면서도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리바이스의 경우 연간 목화 구매량의 2%가 유기농 목화이고 서서히 그 비중을 증가시킬 계획을 하고 있지만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그 효과에 대해 확신하기 전에 화제가 되어 환경감시단의 평가대 위에 오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가 일반적이라면 어떤 기업이 환경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 해도 그것이 경쟁 기업에 자극이 되고 일반적인 게임의 룰로 자리잡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에코 지능, 녹색 패러다임을 향한 변화의 동력
결국 친환경 전략의 딜레마는 ‘무엇이 친환경적인가’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고객은 그것이 왜 필요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변화하지 않고, 기업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변화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따라서 ‘무엇이 친환경적인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변화를 촉진시키고 스스로의 친환경 정책을 정의해 나가면서 녹색 시장을 선점할 전략을 준비할 수 있다.
정보가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사례는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FDA가 가공식품에 트랜스 지방 함량을 표시하는 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을 때도 처음에는 많은 기업이 반대했다. 하지만 트랜스 지방의 유해성에 대한 보고가 잇달아 쏟아지고 소비자도 이에 대해 인식하게 되자 변화가 시작되었다.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트랜스 지방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대체 물질 개발을 시작한 것이다. 완전한 정보 공개가 시장에서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문제는 실제로 환경에 대한 이슈에 부딪치면, 어떤 것이 허용 가능하고 어떤 것이 치명적인지에 대한 구분이 모호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얼마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낙지 파동도 결국 불분명한 기준과 커뮤니케이션이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감성지능(EQ, Emotional Quotient)으로 유명한 하버드대학의 심리학자 대니얼 골만은 에코지능(Ecological Intelligence)이라는 개념으로 환경이라는 최대 과제를 풀어가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설명한다. 에코 지능이란 인간과 자연의 상호 영향을 이해하는 인식 능력, 즉 자신의 소비와 생산 활동이 지구 환경에 미칠 영향 전반을 파악할 줄 아는, 예민하고 현명한 통찰력을 말한다. <아바타>의 나비족은 비록 생명을 보호한다는 목적이었더라도 자기 손으로 파괴된 생명을 보며 침통해한다. 극단적으로는 환경의 영향에 대한 이러한 ‘공감’ 능력, 그래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역량이 에코 지능이다.
기업에 있어 에코 지능이란 생산 과정에서 환경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뿐 아니라 좀 더 넓은 맥락에서 자사의 경영 활동이 환경에 간접적으로 미치는 영향도 고려할 줄 아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최종 생산품의 원료 획득 과정부터 시작해 생산, 유통, 소비자에게 사용되는 방식, 폐기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요소와 과정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전 과정 평가(Life Cycle Assessment)의 이해와 유사하다.
에코 지능의 차이는 전략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일례로 포드는 미국 리버 루즈의 공장을 환경 친화적으로 설계 변경하여 생산 과정에서의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는데 주력했다. 반면에 도요타는 전 가치 사슬에 걸쳐 자사의 사업이 환경에 가장 크게 미치는 영향은 최종 생산품인 자동차의 내연기관이 소모하는 연료와 이를 통해 배출되는 배기가스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하이브리드 기술에 적극 투자했다. 덕분에 도요타의 프리우스는 지금 친환경 자동차 시장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대명사격이 되었다. 양자 모두 의미있는 선택이기는 하지만 파급력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녹색 패러다임을 위한 준비
기업들은 에코지능을 활용해 시장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선발 주자로서의 위치를 다질 수 있다. 지금 시장에서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변화 사례들은 기업과 소비자들이 에코 지능을 높이고 전략적으로 활용하는데 필요한 과제들을 제시해 줄 것이다.
● 규칙 준수자(Rule Follower)가 아니라 규칙 제정자(Rule Setter)가 되자
BCG가 2008년 18-65세 성인 9천명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그린 컨슈머 조사에 따르면 제품 및 지역별로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친환경 이슈들에 차이가 있었다(<그림> 참고). 예를 들어 이탈리아 소비자들에게는 동물 실험 여부가 중요한 친환경 이슈로 받아들여졌으나 일본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재활용 가능한 재료를 사용했느냐는 독일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민감한 이슈다.
이처럼 친환경에 대한 스펙트럼, 개개인의 기준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기업의 친환경 전략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아직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전체 비즈니스 프로세스에서 환경에 가장 긍정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어떤 부분이 해당 제품군 및 산업 부문 내에서 경쟁의 핵심이 될 것인지 정의해 나감으로써 스스로의 친환경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노력이 업계에서도 모방되고 소비자들에게 받아들여진다면 경쟁사가 미리 정해 놓은 기준에 맞추는 것보다 선점자의 우위를 누릴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월마트, 테스코 등 유통 기업들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월마트는 최근 독립적인 학술 컨소시엄과 협력하여 제품 수명 주기 분석 데이터를 활용해 월마트 매장에서 판매하는 모든 제품을 평가하는 ‘지속가능성지수’ 개발에 착수했다. 월마트에 물건을 납품하는 10만 개 이상의 업체들이 동일한 기준으로 환경 투명성과 영향성을 평가 받게 한다는 계획이다. 영국의 테스코는 자사에서 판매하는 상품에 ‘탄소 발자국’이란 라벨을 부착하고 있다. 탄소 발자국에는 상품을 생산하기까지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양이 표시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물 소비량을 50% 줄이고 포장재도 덜 쓰는 농축 세탁 세제가 시장에 나왔을 때, 처음에는 시장의 반응이 시큰둥했지만 2007년 월마트가 이 농축 세탁 세제만 판매하겠다고 나선 이후 점유율이 급등했다고 한다. 이처럼 거대 유통 기업이 시장에 끼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이들의 시도를 단순한 사업 전략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정해놓은 친환경 기준’을 통해 시장 지배적인 위치를 강화하려는 전략적 의도와 더불어 결국 소비자의 생각과 라이프스타일, 더 나아가서는 문화를 바꾸는 도전이 될 것이다. 친환경이라는 소비자 코드에 월마트가 주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녹색 패러다임의 도래가 생각보다 멀지 않았을지 모른다.
● 친환경 시장 저변을 확대하자
기업들이 현실에서 친환경 관련 활동에서 가장 주저하는 부분은 ‘친환경 시장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확신 부족이다. 아직까지 그린 소비자라고 분류되는 소비자들의 상당수는 친환경 소비 활동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적극적으로 그린 소비를 주도할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집단이다. 가장 큰 한계는 정보 및 인식의 부족이다. 비단 환경 문제가 아니더라도 역사적으로 볼 때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는 언제나 정보 비대칭성이 존재해 왔다. 하지만 블로그, 트위터,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소셜 미디어는 개인 간 대화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공적 대화를 촉진시키며 소비자 주도의 시장 변화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업은 소비자들의 에코 지능을 높일 수 있는 활동들을 통해 친환경 소비 시장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소비자들이 접촉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영향력 있는 친환경 정보들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글로벌 PR회사인 에델만이 2006년 말 발표한 ‘블로고스피어(Blogosphere)상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따르면, 지속가능 경영에 대한 관심은 아직 정치나 종교 등 다른 사회 이슈들 대비해서 낮은 수준이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활동이 주요 언론이 보도한 특정 기업의 바람직하지 못한 활동들에 대한 의견 게재나 이를 제제하기 위한 여론 형성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을 유도할만한 정보제공 및 교환과 같이 에코 지능을 높일 수 있는 활동들은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사실 소셜 미디어가 갖는 본질적인 한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IT산업 등에서는 프로슈머 같은 생산자적 소비자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정책 분야에서도 다양하고 창의적 의견들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기업과 NGO와 같은 전문 집단이 보다 정확하고 영향력 있는 정보들을 많이 제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당장의 수익으로는 연결되지 않지만 소비자의 환경 의식 수준을 높이기 위한 기업의 CSR 활동도 이러한 관점에서는 장기적 투자다.
굿가이드닷컴(GoodGuide.com)은 등록 제품이 환경, 건강,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 평가하는 아이폰 전용 응용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한다. 현재 6만종 이상 제품에 대한 환경 영향 평가가 가능하다. 유럽에서는 ‘지속 가능한 위키피디아(Sustainable Wikipedia)’를 개발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오픈소스 기반의 위키피디아에 환경적 특성에 대한 정보를 추가한 것이다. 이런 기술의 확산은 점차 많은 기업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울 것이고 소비자들에게는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친환경적으로 올바른지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공해 줄 것이다. 이러한 정보 제공 채널이 확대될수록 친환경 시장에 대한 저변도 확대될 수 있다.
● 변화를 함께 할 파트너를 만들자
기업이 그린 경제로의 전환에 주도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기업들이 펼치는 노력들은 종종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월마트의 경우 오래 전부터 지속가능성을 중요한 기업 가치로 정하고 관련 활동들을 전개해 왔다. 그런데 정작 소비자가 느끼는 월마트 브랜드 이미지는 극과 극이다. 미국 마케팅 컨설팅 회사인 BBMG가 미국 내 소비자 2,000명에게 사회적, 환경적 책임을 다하는 회사가 어딘지 물었더니, 월마트가 최악과 최고의 기업으로 동시에 선정됐다는 것이다. ‘월마트 패러독스’라고 불리는 이 일화는 기업이 인류와 지구 환경에 기여한다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기업들은 소비자들이 신뢰할만한 정부 및 NGO와 함께 움직이거나 최소한 다른 기업들과 함께 손을 잡는 것이 유리하다.
나이키, 파타고니아, 팀버랜드 같은 유명기업들이 회원으로 속해 있는 아웃도어산업협회(Outdoor Industry Association)는 아웃도어 용품 업계가 환경 영향을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협회 내 60여개 업체가 소속되어 있는 에코워킹그룹(EWG)은 친환경 시장 및 제품에 대한 브레인스토밍 모임을 통해 제품별로 최대한 친환경 요소를 살리는 한편, 친환경시장 전체를 확대시켜 공공의 이익을 거둘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환경과 같은 문제는 친환경 제품 개발 못지않게 소비자 의식 개선과 친환경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동시에 수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객이 입던 낡은 옷을 수거해 단추 등의 부속품을 제거하고 다시 재활용하거나 풀뿌리 환경보호 활동과 같은 업계 공동의 기금 모음 활동을 전개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아웃도어산업 공통의 환경지수(Ecoindex)를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사실 지수화와 같은 친환경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의 존재는 참여자들에게 확실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건축물의 경우 LEED라는 인증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몇 년 동안 그린 빌딩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다. 산업계가 협력하여 건축물에 있어서의 ‘친환경’을 정의함으로써 이 분야에서의 녹색 패러다임을 앞당긴 셈이다.
또 오늘날의 분업화된 경제 체제에서는 어느 한 기업의 친환경 노력만으로 진정한 친환경을 달성하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어떤 제조사가 친환경적인 생산 설비를 구축해 제품을 생산한다 해도 그 원료가 되는 성분이 환경 파괴적인 방식으로 생산된다면 전체 공급사슬을 놓고 볼 때 완전히 친환경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어스스터(Earthster)라는 웹 기반의 오픈소스 시스템은 제품의 공급 사슬을 분석하여 부정적인 환경 영향이 수반되는 부분을 진단한다. 참여 기업들은 각자의 전 과정 환경성 평가 정보를 공개하고 공급 사슬의 어느 지점을 환경적으로 개선해야 제품의 평가 등급을 높일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혼자서는 파악하기 힘든 환경에 대한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함으로써 기업들의 에코 지능이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친환경 제품을 넘어 에코지능이 높은 기업으로
사실 환경이라는 시험대에서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효율이 높은 제품의 발견은 종종 더 많은 소비를 촉진시켜 결과적으로 전체 에너지 소비는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아바타>의 나비족과 같은 삶이 아니고서야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 속에서 자연에 빌린 것을 그대로 되돌려 주는 것은 지극히 이상적인 개념이다. 엄격한 잣대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친환경은 존재하기 어려울 지 모른다. 따라서 친환경 제품이나 전략을 내걸 때도 완성의 개념이 아니라 기업 역시 해답을 찾는 과정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IQ가 좋다는 것은 지식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우월함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녹색 패러다임 시대의 기업 경쟁력인 에코지능도 환경에 대한 지식, 친환경 제품의 가짓수가 아니라 소비자의 생활 방식과 기업의 생산 활동을 보다 환경 친화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평가될 수 있다. 물론 그에 앞서 친환경 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기본이 된다. 라벨링, 지수화 등 완벽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친환경에 대한 정의를 시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직은 고객에게나 기업 모두에게 무엇이 친환경인가에 대한 개념부터가 모호하다. 따라서 친환경이라는 가치를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기업은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잘 만드는’ 차원의 고민을 넘어 ‘친환경 소비의 필요성과 어떻게 친환경 소비에 동참할 수 있는지’를 고객에게 납득시키는 변화의 선봉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 LG Business Insight 1127
지난해 말 전 세계를 강타했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는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행성을 찾아 다니는 인간과 그 행성의 토착민인 나비족 사이의 대립을 그리고 있다. 인간과 외계인의 대립이라면 당연히 인간의 승리를 응원하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통상적인 선과 악의 구조를 뒤집어 보는 이들에게 자기 반성을 요구한다. 인간은 환경을 지배하고 파괴하는 것도 모자라 또 다른 행성의 파괴를 계획하는 존재로, 나비족은 지구 환경과 교감하며 후손의 미래를 생각하는 존재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모든 에너지는 잠시 빌린 것이야. 언젠가는 돌려줘야 해.” 나비족 여주인공이 전하는 가르침은 건축가 윌리엄 맥도너의 ‘요람에서 요람으로’식 사고와 유사하다. ‘요람에서 요람으로’는 생산에 사용된 모든 요소가 폐기 단계에 이르렀을 때 자연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성분으로 생분해 되거나 재활용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의 산업 프로세스를 의미한다. 생태계의 균형에 귀 기울여 대응하고 자연의 일부분으로 생존할 줄 아는 나비족의 모습은 녹색 성장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었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생존 철학과 닮아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지 못한 녹색 열풍
지금 우리는 환경 파괴적 인간과 환경 친화적인 나비족 사이에서 어디쯤 존재할까? 2009년 IBM이 전 세계 224명의 경영자들을 대상으로한 조사에 따르면 최고 경영자들의 3분의 2가 지속가능성을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으며 그 중 절반은 친환경이 차별적 경쟁 우위가 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녹색 성장이라는 패러다임은 아직 우리의 현실과 거리가 있는 듯 하다. 미국 썬더버드 대학 그레고리 안루 교수와 리처드 이텐슨 교수는 하버드 비즈니스 비즈니스 리뷰(2010.6)에 기고한 글에서, ‘2007년에서 2009년 사이 친환경 제품의 출시가 500% 이상 증가하며 전례 없는 그린 러시(Green Rush)를 맞고 있지만 무엇이 친환경인지에 대한 기준은 여전히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환경 마케팅 회사인 테라초이스(Terrachoice)도 최근 보고에서 지난해와 올해 사이 미국 소비자들이 접할 수 있는 친환경 제품의 규모는 73%나 증가했으나 그 가운데 그린워시(Green Wash)의 혐의에서 자유로운 제품은 단 5%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친환경이라고는 했지만 사실은 플라스틱 손잡이를 나무 손잡이로 바꾼 것과 같은 미온적 변화가 대부분이기도 하다. 이렇게 친환경에 대한 적극적인 변화는 물론이고 명확한 정의 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많은 기업들은 ‘친환경’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도 기업활동의 전면에 내세우기는 부담스러워한다. 그래서 친환경 활동은 사업 전략보다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소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친환경’ 이라는 것이 디자인처럼 차별화를 위한 콘셉 중 하나로 사용되고는 있지만, 아직 원료 조달, 생산 활동 등 사업 활동 전반에서 핵심적으로 고려되는 원칙, 즉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친환경 전략의 딜레마
무엇이 이토록 변화를 어렵게 만드는가? 친환경 전략에 대한 기업들의 태도는 게임 이론을 설명하는 ‘죄수의 딜레마’와 유사하다. 전체적으로 보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대안이 있는데 개개인이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다 결국 최선의 결론을 저버리는 선택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동일한 상황을 반복하다 보면 죄수들도 학습효과로 결국 모두가 행복해지는 행위를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환경 문제의 경우, 보상은 즉각적이지 않은데 눈 앞에 지불해야 할 비용은 높기 때문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의 선택이 더욱 어렵다.
우선 소비자들은 생각보다 느리게 변하고 있다. 기업들은 친환경 구매를 하겠다는 소비자들의 ‘말’이 실제 소비 ‘행동’으로 잘 연결되지 않고 있음을 알고 있다. 미 경제정책연구소의 제러드 번스타인은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상반된 심리 상태를 WITT, YOYO라는 말로 묘사했다. 환경문제는, “우리는 한 배를 탔다(We’re in This Together, WITT)”라는 상황을 인식하면서도 “당신은 당신대로(You’re On Your Own, YOYO)”라는 개인주의와의 충돌이 심한 영역이다. 무엇이 친환경적인 소비인지 알지 못하는 소비자도 많다. 글로벌 마케팅회사 랜도어소시에이트가 2006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6%는 기업이 보다 더 환경 친화적이 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며 고객이 친환경적이라고 인식하는 브랜드와 실제로 친환경적인 것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한다. 친환경 소비에 대한 소비자들의 변화가 더디기 때문에 기업들도 즉각적으로 변화할 필요성을 덜 느끼는 것인지 모른다.
친환경이라는 대안을 선택하는 데 따르는 비용도 높다. 오늘날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제품 포트폴리오와 비즈니스 프로세스는 대부분 환경이 그다지 중요한 고려 요소가 아닐 때부터 만들어져 온 것들이다. 이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는 생각 이상으로 많은 비용이 수반된다. 게다가 비즈니스 프로세스는 분업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옷 하나를 만들 때 사용된 원단, 단추, 지퍼는 모두 각각의 전문 생산업체로부터 흘러 들어온다. 환경친화적인 방식으로 옷을 생산한다는 것은 내가 만들지는 않았어도 누군가로부터 ‘구입한’ 모든 투입 요소들까지도 환경적으로 무해해야만 가능하다. 심지어 많은 브랜드들은 제조조차 하지 않는다. 디자인과 브랜드만 관리할 뿐 실제 제품의 생산은 글로벌 전문 생산업체가 담당한다. 아디다스, 나이키, 리복의 제품이 한 업체를 통해 만들어 질 수도 있다. 이처럼 글로벌 전문 생산업체들이 상당부분을 외주화한 오늘날의 생산 체계에서 한 기업의 노력만으로 변화를 이끌어내기란 어렵다.
시장에 합의된 표준이 없는 것도 기업들의 결단을 어렵게 만든다. 친환경이라는 넓은 스펙트럼에 모두 대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그 가운데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도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흔히 ‘환경 친화적이다’, ‘지속가능하다’라고 말할 때 사실 그 말이 포함하고 있는 내용은 매우 다양하다. 재생 가능한 원료를 쓰는지, 인체에 무해한지, 에너지 소비가 적은지 등 각기 다른 차원의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또 어느 한 기업이 독자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조건인 경우도 많다. 어떤 기업의 친환경성을 평가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고 가정해 보자. “에너지 소비가 적고, 유해 물질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폐기처리 시설이 잘 확립되어 있고, 노동착취나 아동노동과 관련이 없으며,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으면서 운송 과정에서의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는 곳에서 원재료를 구입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기업이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 미지수다. 친환경성에 대한 현실 가능한 목표나 정의가 모호한 것도 소비자나 기업의 행동 변화를 더디게 하는 요인이다.
당장 시도 가능한 일부 기능만이라도 친환경으로 바꿔보았다가 깐깐한 환경주의자들에게 오히려 ‘거짓말쟁이’로 낙인 찍힐지도 모른다. 친환경 전략은 차별화 도구인 동시에 환경이라는 시험대 위에 스스로를 올려 놓아 소비자가 몰랐던 환경적 약점까지 공개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기업들은 친환경적인 노력을 하면서도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리바이스의 경우 연간 목화 구매량의 2%가 유기농 목화이고 서서히 그 비중을 증가시킬 계획을 하고 있지만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그 효과에 대해 확신하기 전에 화제가 되어 환경감시단의 평가대 위에 오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가 일반적이라면 어떤 기업이 환경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 해도 그것이 경쟁 기업에 자극이 되고 일반적인 게임의 룰로 자리잡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에코 지능, 녹색 패러다임을 향한 변화의 동력
결국 친환경 전략의 딜레마는 ‘무엇이 친환경적인가’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고객은 그것이 왜 필요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변화하지 않고, 기업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변화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따라서 ‘무엇이 친환경적인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변화를 촉진시키고 스스로의 친환경 정책을 정의해 나가면서 녹색 시장을 선점할 전략을 준비할 수 있다.
정보가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사례는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FDA가 가공식품에 트랜스 지방 함량을 표시하는 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을 때도 처음에는 많은 기업이 반대했다. 하지만 트랜스 지방의 유해성에 대한 보고가 잇달아 쏟아지고 소비자도 이에 대해 인식하게 되자 변화가 시작되었다.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트랜스 지방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대체 물질 개발을 시작한 것이다. 완전한 정보 공개가 시장에서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문제는 실제로 환경에 대한 이슈에 부딪치면, 어떤 것이 허용 가능하고 어떤 것이 치명적인지에 대한 구분이 모호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얼마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낙지 파동도 결국 불분명한 기준과 커뮤니케이션이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감성지능(EQ, Emotional Quotient)으로 유명한 하버드대학의 심리학자 대니얼 골만은 에코지능(Ecological Intelligence)이라는 개념으로 환경이라는 최대 과제를 풀어가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설명한다. 에코 지능이란 인간과 자연의 상호 영향을 이해하는 인식 능력, 즉 자신의 소비와 생산 활동이 지구 환경에 미칠 영향 전반을 파악할 줄 아는, 예민하고 현명한 통찰력을 말한다. <아바타>의 나비족은 비록 생명을 보호한다는 목적이었더라도 자기 손으로 파괴된 생명을 보며 침통해한다. 극단적으로는 환경의 영향에 대한 이러한 ‘공감’ 능력, 그래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역량이 에코 지능이다.
기업에 있어 에코 지능이란 생산 과정에서 환경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뿐 아니라 좀 더 넓은 맥락에서 자사의 경영 활동이 환경에 간접적으로 미치는 영향도 고려할 줄 아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최종 생산품의 원료 획득 과정부터 시작해 생산, 유통, 소비자에게 사용되는 방식, 폐기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요소와 과정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전 과정 평가(Life Cycle Assessment)의 이해와 유사하다.
에코 지능의 차이는 전략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일례로 포드는 미국 리버 루즈의 공장을 환경 친화적으로 설계 변경하여 생산 과정에서의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는데 주력했다. 반면에 도요타는 전 가치 사슬에 걸쳐 자사의 사업이 환경에 가장 크게 미치는 영향은 최종 생산품인 자동차의 내연기관이 소모하는 연료와 이를 통해 배출되는 배기가스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하이브리드 기술에 적극 투자했다. 덕분에 도요타의 프리우스는 지금 친환경 자동차 시장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대명사격이 되었다. 양자 모두 의미있는 선택이기는 하지만 파급력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녹색 패러다임을 위한 준비
기업들은 에코지능을 활용해 시장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선발 주자로서의 위치를 다질 수 있다. 지금 시장에서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변화 사례들은 기업과 소비자들이 에코 지능을 높이고 전략적으로 활용하는데 필요한 과제들을 제시해 줄 것이다.
● 규칙 준수자(Rule Follower)가 아니라 규칙 제정자(Rule Setter)가 되자
BCG가 2008년 18-65세 성인 9천명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그린 컨슈머 조사에 따르면 제품 및 지역별로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친환경 이슈들에 차이가 있었다(<그림> 참고). 예를 들어 이탈리아 소비자들에게는 동물 실험 여부가 중요한 친환경 이슈로 받아들여졌으나 일본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재활용 가능한 재료를 사용했느냐는 독일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민감한 이슈다.
이처럼 친환경에 대한 스펙트럼, 개개인의 기준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기업의 친환경 전략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아직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전체 비즈니스 프로세스에서 환경에 가장 긍정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어떤 부분이 해당 제품군 및 산업 부문 내에서 경쟁의 핵심이 될 것인지 정의해 나감으로써 스스로의 친환경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노력이 업계에서도 모방되고 소비자들에게 받아들여진다면 경쟁사가 미리 정해 놓은 기준에 맞추는 것보다 선점자의 우위를 누릴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월마트, 테스코 등 유통 기업들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월마트는 최근 독립적인 학술 컨소시엄과 협력하여 제품 수명 주기 분석 데이터를 활용해 월마트 매장에서 판매하는 모든 제품을 평가하는 ‘지속가능성지수’ 개발에 착수했다. 월마트에 물건을 납품하는 10만 개 이상의 업체들이 동일한 기준으로 환경 투명성과 영향성을 평가 받게 한다는 계획이다. 영국의 테스코는 자사에서 판매하는 상품에 ‘탄소 발자국’이란 라벨을 부착하고 있다. 탄소 발자국에는 상품을 생산하기까지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양이 표시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물 소비량을 50% 줄이고 포장재도 덜 쓰는 농축 세탁 세제가 시장에 나왔을 때, 처음에는 시장의 반응이 시큰둥했지만 2007년 월마트가 이 농축 세탁 세제만 판매하겠다고 나선 이후 점유율이 급등했다고 한다. 이처럼 거대 유통 기업이 시장에 끼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이들의 시도를 단순한 사업 전략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정해놓은 친환경 기준’을 통해 시장 지배적인 위치를 강화하려는 전략적 의도와 더불어 결국 소비자의 생각과 라이프스타일, 더 나아가서는 문화를 바꾸는 도전이 될 것이다. 친환경이라는 소비자 코드에 월마트가 주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녹색 패러다임의 도래가 생각보다 멀지 않았을지 모른다.
● 친환경 시장 저변을 확대하자
기업들이 현실에서 친환경 관련 활동에서 가장 주저하는 부분은 ‘친환경 시장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확신 부족이다. 아직까지 그린 소비자라고 분류되는 소비자들의 상당수는 친환경 소비 활동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적극적으로 그린 소비를 주도할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집단이다. 가장 큰 한계는 정보 및 인식의 부족이다. 비단 환경 문제가 아니더라도 역사적으로 볼 때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는 언제나 정보 비대칭성이 존재해 왔다. 하지만 블로그, 트위터,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소셜 미디어는 개인 간 대화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공적 대화를 촉진시키며 소비자 주도의 시장 변화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업은 소비자들의 에코 지능을 높일 수 있는 활동들을 통해 친환경 소비 시장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소비자들이 접촉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영향력 있는 친환경 정보들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글로벌 PR회사인 에델만이 2006년 말 발표한 ‘블로고스피어(Blogosphere)상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따르면, 지속가능 경영에 대한 관심은 아직 정치나 종교 등 다른 사회 이슈들 대비해서 낮은 수준이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활동이 주요 언론이 보도한 특정 기업의 바람직하지 못한 활동들에 대한 의견 게재나 이를 제제하기 위한 여론 형성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을 유도할만한 정보제공 및 교환과 같이 에코 지능을 높일 수 있는 활동들은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사실 소셜 미디어가 갖는 본질적인 한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IT산업 등에서는 프로슈머 같은 생산자적 소비자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정책 분야에서도 다양하고 창의적 의견들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기업과 NGO와 같은 전문 집단이 보다 정확하고 영향력 있는 정보들을 많이 제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당장의 수익으로는 연결되지 않지만 소비자의 환경 의식 수준을 높이기 위한 기업의 CSR 활동도 이러한 관점에서는 장기적 투자다.
굿가이드닷컴(GoodGuide.com)은 등록 제품이 환경, 건강,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 평가하는 아이폰 전용 응용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한다. 현재 6만종 이상 제품에 대한 환경 영향 평가가 가능하다. 유럽에서는 ‘지속 가능한 위키피디아(Sustainable Wikipedia)’를 개발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오픈소스 기반의 위키피디아에 환경적 특성에 대한 정보를 추가한 것이다. 이런 기술의 확산은 점차 많은 기업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울 것이고 소비자들에게는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친환경적으로 올바른지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공해 줄 것이다. 이러한 정보 제공 채널이 확대될수록 친환경 시장에 대한 저변도 확대될 수 있다.
● 변화를 함께 할 파트너를 만들자
기업이 그린 경제로의 전환에 주도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기업들이 펼치는 노력들은 종종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월마트의 경우 오래 전부터 지속가능성을 중요한 기업 가치로 정하고 관련 활동들을 전개해 왔다. 그런데 정작 소비자가 느끼는 월마트 브랜드 이미지는 극과 극이다. 미국 마케팅 컨설팅 회사인 BBMG가 미국 내 소비자 2,000명에게 사회적, 환경적 책임을 다하는 회사가 어딘지 물었더니, 월마트가 최악과 최고의 기업으로 동시에 선정됐다는 것이다. ‘월마트 패러독스’라고 불리는 이 일화는 기업이 인류와 지구 환경에 기여한다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기업들은 소비자들이 신뢰할만한 정부 및 NGO와 함께 움직이거나 최소한 다른 기업들과 함께 손을 잡는 것이 유리하다.
나이키, 파타고니아, 팀버랜드 같은 유명기업들이 회원으로 속해 있는 아웃도어산업협회(Outdoor Industry Association)는 아웃도어 용품 업계가 환경 영향을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협회 내 60여개 업체가 소속되어 있는 에코워킹그룹(EWG)은 친환경 시장 및 제품에 대한 브레인스토밍 모임을 통해 제품별로 최대한 친환경 요소를 살리는 한편, 친환경시장 전체를 확대시켜 공공의 이익을 거둘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환경과 같은 문제는 친환경 제품 개발 못지않게 소비자 의식 개선과 친환경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동시에 수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객이 입던 낡은 옷을 수거해 단추 등의 부속품을 제거하고 다시 재활용하거나 풀뿌리 환경보호 활동과 같은 업계 공동의 기금 모음 활동을 전개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아웃도어산업 공통의 환경지수(Ecoindex)를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사실 지수화와 같은 친환경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의 존재는 참여자들에게 확실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건축물의 경우 LEED라는 인증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몇 년 동안 그린 빌딩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다. 산업계가 협력하여 건축물에 있어서의 ‘친환경’을 정의함으로써 이 분야에서의 녹색 패러다임을 앞당긴 셈이다.
또 오늘날의 분업화된 경제 체제에서는 어느 한 기업의 친환경 노력만으로 진정한 친환경을 달성하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어떤 제조사가 친환경적인 생산 설비를 구축해 제품을 생산한다 해도 그 원료가 되는 성분이 환경 파괴적인 방식으로 생산된다면 전체 공급사슬을 놓고 볼 때 완전히 친환경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어스스터(Earthster)라는 웹 기반의 오픈소스 시스템은 제품의 공급 사슬을 분석하여 부정적인 환경 영향이 수반되는 부분을 진단한다. 참여 기업들은 각자의 전 과정 환경성 평가 정보를 공개하고 공급 사슬의 어느 지점을 환경적으로 개선해야 제품의 평가 등급을 높일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혼자서는 파악하기 힘든 환경에 대한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함으로써 기업들의 에코 지능이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친환경 제품을 넘어 에코지능이 높은 기업으로
사실 환경이라는 시험대에서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효율이 높은 제품의 발견은 종종 더 많은 소비를 촉진시켜 결과적으로 전체 에너지 소비는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아바타>의 나비족과 같은 삶이 아니고서야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 속에서 자연에 빌린 것을 그대로 되돌려 주는 것은 지극히 이상적인 개념이다. 엄격한 잣대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친환경은 존재하기 어려울 지 모른다. 따라서 친환경 제품이나 전략을 내걸 때도 완성의 개념이 아니라 기업 역시 해답을 찾는 과정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IQ가 좋다는 것은 지식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우월함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녹색 패러다임 시대의 기업 경쟁력인 에코지능도 환경에 대한 지식, 친환경 제품의 가짓수가 아니라 소비자의 생활 방식과 기업의 생산 활동을 보다 환경 친화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평가될 수 있다. 물론 그에 앞서 친환경 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기본이 된다. 라벨링, 지수화 등 완벽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친환경에 대한 정의를 시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직은 고객에게나 기업 모두에게 무엇이 친환경인가에 대한 개념부터가 모호하다. 따라서 친환경이라는 가치를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기업은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잘 만드는’ 차원의 고민을 넘어 ‘친환경 소비의 필요성과 어떻게 친환경 소비에 동참할 수 있는지’를 고객에게 납득시키는 변화의 선봉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 LG Business Insight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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