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17. 09:28
[Business]
소재의 중요성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소재산업의 혁신은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단기적 성과에 안주하여 혁신을 게을리 할 경우 장기적인 성장활력 저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외부 환경과 역량을
탓하기 보다는 소재산업의 발전을 위한 실행가능한 혁신 방안을 고민할 때이다. 가치 혁신형 소재란 소재설계 자체는 혁신적이지 않더라도 고객에게
확실히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소재를 말한다. 소재산업이 범용화되고 기술혁신 정체가 심화됨에 따라 신소재 개발에만 매달리는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소재기업들은 혁신 소재로서 신소재와 함께 가치 혁신형 소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향후 가치 혁신형 소재가 타겟으로 삼아야 할 유망 분야로는 희소한 고가 소재를 풍부한 저가 소재로 대체하거나, 규제에 대비한 환경친화형 소재를 개발하거나, 나노기술을 활용하여 기존 소재의 물성을 극대화하는 등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각 분야 모두 지속적인 니즈 확대가 예상되며, 이미 다수의 기업들이 진출하여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가치 혁신형 소재를 성공적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객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소재 개발 단계부터 최종 비즈니스 모델 관점의 필요역량을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협력 모델을 통해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 기초 기술 역량은 부족하나 응용 및 가공 역량이 뛰어난 국내 소재기업들에게 가치 혁신형 소재는 경쟁기업과 차별화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재는 제품의 수명주기가 가장 긴 산업으로 알려져 있다. 전자, 자동차, 의류 등의 소비재는 매년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지만, 소재는 한 번 개발되면 수십 년에서 어떤 경우는 수백 년 간 큰 변화 없이 사용되기도 한다. 제품의 수명이 길고 수요가 안정적이라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범용화에 따른 수익성 저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소재산업의 현실이다.
많은 소재기업들이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여 새로운 소재의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그러나 신소재의 개발 과정 자체가 워낙 어렵고, 최근에는 신소재의 등장속도가 확연히 저하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소재기업들의 연구개발 의욕이 약화될 경우 제품력보다는 규모와 가격 경쟁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궁극적으로는 이것이 소재산업의 성장활력을 저하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렇다면 신소재 외에 소재산업을 혁신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1. 소재산업 혁신의 새로운 Keyword, ‘가치 혁신’
글로벌 화학전문 조사기관인 ICIS는 해마다 혁신적인 화학제품을 선정하여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의 최고 대상은 인도 Tata Chemicals의 ‘Swach’라는 가정용 정수기가 수상하였다. 이 제품이 다른 정수기보다 성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인도 농촌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평범한 쌀겨의 재(Rice Husk Ash)와 은 나노 입자를 정수기 필터 재료로 활용함으로써, 저소득층도 큰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수상의 배경이었다.
언뜻 보면 단순하지만 Tata의 사례는 소재산업의 혁신이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근본적 물음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획기적 성능의 소재 개발만을 혁신의 대상으로 삼아 왔다. 이러한 접근은 성공할 경우 막대한 수익이 보장되지만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 실패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Tata의 ‘Swach’는 이와는 정반대의 접근을 취한 사례이다. 고가의 기능성 소재 대신 평범한 소재를 활용하여 ‘성능이 동등하면서도(미국 환경청의 수질 기준 충족) 저가격’이라는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하여 성공할 수 있었다. 결국 혁신이란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를 제공하는 것인데, 소재산업에서는 그동안 너무 획일화된 방법론에 갇혀 혁신의 본질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치 혁신’을 통한 소재산업의 혁신 방안, 보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신소재가 아니라도 소재기업들이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소재 혁신에 대한 개념부터 정리해보자. <그림 1>에서는 소재설계 혁신의 정도와 가치 혁신의 정도에 따라 소재 혁신의 유형을 네 가지로 분류해 볼 수있다. 소재설계가 기존의 소재와 확실하게 차별화될 경우 우리는 이를 일반적으로 ‘신소재’라고 부른다. 하지만 신소재는 다시 성공한 신소재와 실패한 신소재(현재 시점에서의 판단을 기준으로 할 경우)의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가치 혁신이 고객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아무리 획기적인 성능의 소재라도 시장에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실패한 소재가 성공한 소재보다 훨씬 많은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가치라는 것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다분히 사후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가치란 고객이 지불한 비용을 통해서 느끼는 만족 또는 효용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객관적인 소재의 성능이나 품질은 물론 사용의 편리성, 구매 용이성, 환경에 대한 배려 등도 포함될 수 있으며, 이러한 요소들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이렇게 구분할 경우 앞서 말한 성공한 신소재(고기능 신소재)란 소재설계 자체도 혁신적이지만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가 기존 소재에 비해 확연히 차별화된 소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반대로 소재설계 자체는 혁신적이지 않지만 고객에게 확실히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면 이 역시 혁신 소재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것이 가치 혁신형 소재의 개념이다. 가치 혁신형 소재와 고기능 신소재의 구체적 특징 및 차이는 <그림 1>에 설명되어 있다.
2. 가치 혁신형 소재 개발의 유망 분야와 사례
가치 혁신형 소재의 등장은 근본적으로 고객 니즈의 변화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고객 니즈의 변화가 빠르고, 변화의 폭이 클 경우 소재기술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지체현상이 나타나게 되고, 당연히 새로운 소재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소재산업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최근의 환경 변화를 살펴보면 먼저 거시 환경 측면에서 신흥국의 약진을 들 수 있다. 가격에 큰 구애받지 않고 소재의 첨단 기능이나 성능을 중시하는 선진국형 소비 패턴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구매력이 갈수록 막강해지고 있는 신흥국 고객들의 특성과 니즈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자원 및 에너지·환경 문제의 심화는 소재산업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지금까지 공짜였거나 풍부하다고 여겨졌던 환경 요소들이 제약조건으로 바뀌면서 기능으로만 판단하던 고객들의 소재에 대한 가치 체계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소재기업들 자체의 자세 변화도 달라진 점이다. 기술혁신이 정체되면서 기존 소재로부터 고객들이 원하는 가치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과거에 비해 한층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요인들은 향후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가치 혁신형 소재 개발 역시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회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하에서는 가치 혁신형 소재 개발이 유망할 것으로 전망되는 세 가지 분야를 제시하고, 각 분야 별로 기업들의 소재 개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① 희소한 고가 소재를 풍부한 저가 소재로 대체
최근 산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를 몰고 다니는 소재는 희소금속(Rare Metal)이다. 세계 최대 희토류(희소금속의 한 종류, 중국이 세계 수요의 90% 이상 공급) 생산국인 중국이 생산 및 수출 제한 조치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각국의 반발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출 제한 조치를 지속적으로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리튬, 코발트, 니오븀 등의 희소금속은 사용량은 적지만 각종 IT 제품, 전기 자동차 등의 첨단 제품에 없어서는 안 될 소재로 ‘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린다. 이름 그대로 부존량이 적고 매장량도 일부 국가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 간, 기업 간 자원 확보를 위한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자원 확보가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희소금속의 대체 내지는 사용 최소화를 위한 기술이 갈수록 중요해질 전망이다.
희소금속의 소비량이 중국 다음으로 많은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2007년 경제산업성 주도로 희소금속 대체재료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하였으며, 2009년에는 대체 대상 희소금속의 범위를 확대한 바 있다(<그림 2> 참조). 기업들의 노력도 활발하다. 특히 수요량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리튬이온전지의 양극재(코발트), 투명전극(인듐), 영구자석(네오듐, 디스프로슘) 등의 분야에 기업들의 참여가 급증하고 있다. 리튬이온전지 양극재에 사용되는 코발트의 대체재로는 망간계, 3성분(니켈, 코발트, 망간)계, 인산철계 등이 경쟁하고 있으며, 기업들의 투자도 확대되는 추세이다. 일본의 후지경제연구소는 리튬이온전지 양극재의 시장규모가 2009년 800억 엔에서 2014년에는 2,000억 엔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밖에 일본의 신에츠화학과 대동특수강은 전기자동차용 모터에 사용되는 네오듐자석의 디스프로슘 사용량(원가의 30∼40% 차지)을 절반 이상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였으며, 토다공업과 데이진 등은 네오듐 자체를 철로 대체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고가 재료의 대체가 희소금속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금, 백금 등의 귀금속도 대체 또는 사용 최소화 기술 개발이 활발해질 것이다. 이밖에 상대적으로 고가인 소재는 잠재적으로 대체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앞서 예로 든 Swach의 사례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좋은 제품을 싸게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것은 모든 산업에서 가치 혁신의 가장 기본이기 때문이다.
② 규제에 대비한 환경친화형 소재의 개발
당장 개발이 시급한 희소금속의 대체재가 단기적으로 가장 유망하다고 한다면, 장기적으로 잠재력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환경친화형 소재로의 대체를 들 수 있다. 에너지 소비가 상대적으로 많은 기초 소재산업의 특성 상 모든 소재가 대체 내지는 개선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 소재산업 별로 개발 현황 및 유망 소재를 살펴보자.
석유화학
고갈성 자원이면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석유를 직접적 원료로 이용하는 석유화학산업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바이오 플라스틱의 개발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가격경쟁력은 물론 품질에 있어서도 기존 석유화학제품에 미치지 못해 소비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세계 플라스틱 시장에서 바이오 플라스틱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성과와 관계없이 바이오 플라스틱의 개발 요구는 앞으로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온실가스 규제 강화와 함께 유가도 장기적으로 상승세가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양산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제고하고 기존 제품 대비 동등 이상의 품질을 확보하는 것이 향후 중점 과제가 될 것이며, 대체 범위의 확대를 위한 노력도 활성화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하여 기업들의 연구개발 성과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어 전망은 밝은 편이다. 브라질의 화학기업인 Braskem은 지난해 9월 사탕수수로부터 추출한 에탄올을 원료로 한 20만 톤 규모의 ‘그린 PE(폴리에틸렌)’ 가동을 시작했다. 이 회사는 이미 존슨앤존슨, P&G, 토요타 등의 대형 고객을 확보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연산 100만 톤 규모의 생산능력 확대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린 PE’에 이어 2013년에는 10만 톤 규모의 ‘그린 PP(폴리프로필렌)’도 가동할 계획이다. 공업용 효소기업인 Novozyme과 공동으로 에탄올을 경유하지 않고 사탕수수로부터 PP 원료를 직접 생산할 수 있는 고효율 프로세스를 개발 중이다.
브라질처럼 자원이 풍부한 나라는 사실상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비식용자원을 활용한 제품 개발이 활발하다. 지난해 8월 NEC는 볏짚과 캐슈넛 껍질을 원료로 고성능 바이오 플라스틱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볏짚은 물론 캐슈넛 껍질도 한해 100만 톤 정도가 버려지고 있어 원료 조달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NEC는 화학기업과의 협력 하에 양산기술을 확보하여 2013년까지 바이오 플라스틱을 PC 외장재로 제품화할 계획이다.
이밖에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인 PC(폴리카보네이트)나 타이어의 원료인 이소부탄올 등 기능성 제품을 식물성 원료로 만드는 기술이나, 더 나아가 이산화탄소를 원료로 메탄올 등 유용한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혁신 기술도 상업화에 점차 근접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시멘트
시멘트(일명 포틀랜드 시멘트)는 건설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소재로 연간 생산량만 28억 톤에 달하는 대규모 기초 소재다. 그러나 원료인 석회석을 섭씨 1,500도의 고온으로 처리해야 하는 제조공정의 특성 상 대량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시멘트산업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5%를 차지할 정도로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이에 따라 시멘트기업과 건설기업들은 고로슬래그나 플라이애시(fly ash, 석탄 보일러의 배출가스로부터 채취하는 석탄재) 등 산업 부산물을 활용하여 시멘트의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그린 콘크리트’ 개발에 노력하여 왔다. 시멘트 사용량을 부분적으로 줄이는 것은 물론 시멘트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그린 콘크리트도 개발되고 있다.
최근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시멘트 제조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혁신적 개념의 ‘그린 시멘트’가 개발되고 있다. 영국의 벤처기업인 Novacem은 자사의 그린 시멘트로 포틀랜드 시멘트를 대체할 경우 시멘트 1톤당 1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린 시멘트는 석회석 대신 마그네슘 실리케이트를 원료로 사용하는데, 이것이 굳어지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원리를 이용한다. Novacem은 영국 정부 및 기관투자가의 자금을 확보해 지난해 8월부터 파일럿 플랜트를 가동하고 있다. 비슷한 시도는 다른 몇몇 기업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의 Calera는 그린 시멘트 제조설비를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화력발전소와 통합하여 건설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고려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석탄 대기업인 Peabody Energy(지분 참여)와 엔지니어링 기업인 벡텔과 협력하고 있다. 그린 시멘트는 아직까지 기술적 검증의 과정이 남아 있으나 상업화될 경우 시멘트산업은 물론 온실가스 감축 산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섬유
세계적으로 매년 7천만 톤 이상의 섬유가 생산되고 있으며, 그 중의 절반 이상을 폴리에스터, 아크릴, 나일론 등의 합성섬유가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합성섬유는 석유로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에 여타 산업과 마찬가지로 석유자원 고갈 및 온실가스 배출이라는 환경 문제를 안고 있다. 섬유기업들이 이에 대처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석유가 아닌 바이오폴리머를 통해 섬유를 제조하는 방법으로 듀퐁, 도레이 등이 이미 다양한 제품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사용된 제품(의류, PET병 등)을 회수하여 재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수거 및 분류 시스템 구축이 어려워 경제성 확보가 쉽지 않고, 이 때문에 단순 재활용(저가 플라스틱 용기나 연료 등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만을 놓고 본다면 재활용의 방법이 오히려 파급효과가 크지만, 여러 가지 장애요인 때문에 활성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섬유기업인 데이진은 ‘Eco Circle’이라는 폴리에스터 의류 수거 시스템을 구축, 재활용 섬유 생산에 성공한 사례이다. 재활용 섬유라고 해서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전혀 아니다. 데이진은 자사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화학적 재활용(Chemical Recycling) 기술을 통해 원재료(virgin material)와 완전히 동등한 품질의 재활용 섬유를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Eco Circle’이라는 시스템에 있다(<그림 3> 참조). 퀵실버, 파타고니아, 헨리 로이드 등 유명 의류업체가 참여하고 있는 이 시스템의 구축 및 성공적 운영을 위해 데이진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데이진은 재활용 섬유의 안정적 판로를 확보하고, 의류업체들은 재활용 의류 제품을 통해 환경보호에 기여한다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데이진은 회원기업의 지속적 확대와 함께 재활용 섬유의 고부가가치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③ 나노기술을 활용한 기존 소재의 물성 극대화
고객 니즈에 기반한 앞의 두 분야와 달리 가치 혁신형 소재의 마지막 유망 분야는 나노기술의 적극적 활용을 들 수 있다. 소재의 구조를 분자 수준에서 해석하고 조작하는 나노기술의 특성 상 기존 소재의 물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새로운 용도 창출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기능성 나노테크 섬유를 들 수 있다. 일본의 도레이는 ‘Nanomatrix’라는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이전 섬유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능을 구현하고 있다. 폴리에스터나 나일론 등 합성섬유의 표면에 수십에서 수백 나노미터 두께의 균일한 피막을 형성하는 이 기술은 냄새 제거, 세균 제거, 정전기 방지 등의 다양한 기능 구현이 가능하다. 도레이는 이 기술을 활용하여 모래가 쉽게 떨어지는 수영복 소재, 꽃가루가 묻지 않는 코트 소재 등 신제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유니클로와 공동으로 개발한 발열 의류 ‘히트텍’은 이미 대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앞서 설명한 Tata Chemicals의 ‘Swach’ 역시 나노기술을 통해 재탄생한 사례이다. 사실 Tata는 1990년대 쌀겨 재를 활용하여 ’Sujal’이라는 정수기를 개발한 바 있었다. 그러나 세균 제거 효과가 80%에 그치자 상업화를 포기하였다. 시간이 흘러 Tata 내부의 기술이 축적되면서 연구진은 은 나노 입자의 첨가를 통해 쌀겨 재의 항균 처리 기능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개발하였고, 이것이 경쟁력 있는 정수기의 개발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다른 산업들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최근 경량화 재료로 주목받고 있는 발포 알루미늄(Aluminum Foam)이 그중 하나이다. 1948년 최초로 개발된 발포 알루미늄은 초경량성, 흡음성, 방음성, 전자파 차폐성, 단열성, 불연성, 가공성, 인체 무해성, 재활용 가능성 등 뛰어난 특성에도 그동안 제조기술의 낙후로 응용이 저조하였다. 지금까지는 주로 흡음, 방음, 방열, 방진 등 상대적으로 단순한 용도로 사용되어 왔으나, 최근 기술 발전 및 수요산업의 요구에 따라 자동차, 항공, 군수 등의 구조재로 용도가 확대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Metcomb Nanostructures는 나노기술을 활용하여 발포 알루미늄의 기공을 균일한 크기로 제조하는 기술을 개발하였다. 이 기술은 경량에다 두께를 얇게 만들면서도 충격을 균일하게 분산할 수 있어 자동차 옆문의 충격보강재, 방탄재료 등으로의 사용이 기대되고 있다.
3. 가치 혁신형 소재 개발을 가능케 하려면
지금까지 가치 혁신형 소재의 유망 분야와 향후 주목할 만한 소재들을 기업 사례를 통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은 가치 혁신형 소재의 정의상 일반적으로 어떤 특정한 소재가 유망하다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데이진의 재활용 섬유가 성공했다고 해서 재활용 섬유 자체가 유망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데이진의 제품력과 Eco Circle이라는 시스템이 결합되어 성공적인 가치 창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혁신의 출발은 고객의 요구에 귀 기울이는 것부터
가치 혁신형 소재가 일반적인 신소재와 가장 다른 점은 고객을 사전에 정의하고, 이들이 필요로 하는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결국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치 혁신형 소재 성공의 출발이라 할 수 있다. Dow Corning은 소재기업 중에서 고객 니즈 파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이 회사는 ‘Citizen Service Corps Program’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통해 고객의 니즈를 파악한다. 프로젝트 별로 10명 내외의 자원자를 선발, 주로 신흥시장에 한 달 정도의 기간으로 파견하는 프로그램이다. 팀원들은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거쳐 선발하는데 다양한 경력이나 국적의 사람들로 구성된다. 사회공헌활동을 겸하기도 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원들은 새로운 시장과 고객들을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현지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신사업이나 신제품의 아이디어를 얻는다. Dow Corning이 이 프로그램을 ’살아 있는 연구소(a living laboratory)‘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작은 아이디어라도 고객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해결책 제시가 필요하다. 성능이 혁신적이지 않더라도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성공적인 가치 혁신형 소재가 될 수 있다. 일본의 고사철공은 JFE강판, 아스제약과 공동으로 방충 스테인레스 강판을 개발하였다. 스테인레스 강판이 녹은 슬지 않지만, 주방 등과 같이 습기가 많은 곳에서 사용되다보니 바퀴벌레 등의 벌레가 꼬인다는 고객들의 불편에 주목한 것이다. 그러나 스테인레스 강판의 표면에는 얇은 막이 형성되어있기 때문에 방충제를 도포하기가 어려웠다. 이에 따라 고사철공과 JFE강판은 도장회사와 공동으로 특수한 강판 처리법을 개발해, 방충제를 도포하는 데 성공하였다. 고사철공은 우선 가정이나 음식점용 수요를 예상하지만, 전자레인지나 냉장고용으로도 판매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협력 모델 없이는 성공도 없다
가치 혁신형 소재 개발에 있어서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점은 자사에 맞는 협력 모델을 적시에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재 개발 단계부터 최종 비즈니스 모델 관점의 필요 역량을 점검하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제시한 Braskem의 그린 PP, Calera의 그린 시멘트, 데이진의 재활용 섬유 등은 모두 협력 모델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 경우이다. 원료기업, 가공기업, 고객기업 등의 일부 또는 전체가 협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경쟁기업과의 협력이 필요할 경우도 있다. 자동차용 초경량 강판 개발을 위해 세계 철강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축한 것은 경쟁기업간 협력 모델의 대표적 사례이다.
기술 부족만을 탓하여 혁신을 게을리 하는 것은 경쟁에서 도태되기 위한 지름길을 선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고객으로부터 혁신의 아이디어를 찾고 자신의 역량과 협력 모델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정체된 소재산업에서도 지속적인 혁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한 기초기술 역량은 부족하나 응용 및 가공 역량이 뛰어난 국내 소재기업들에게도 가치 혁신형 소재는 경쟁기업과 차별화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LG Business Insight 1128호
향후 가치 혁신형 소재가 타겟으로 삼아야 할 유망 분야로는 희소한 고가 소재를 풍부한 저가 소재로 대체하거나, 규제에 대비한 환경친화형 소재를 개발하거나, 나노기술을 활용하여 기존 소재의 물성을 극대화하는 등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각 분야 모두 지속적인 니즈 확대가 예상되며, 이미 다수의 기업들이 진출하여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가치 혁신형 소재를 성공적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객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소재 개발 단계부터 최종 비즈니스 모델 관점의 필요역량을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협력 모델을 통해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 기초 기술 역량은 부족하나 응용 및 가공 역량이 뛰어난 국내 소재기업들에게 가치 혁신형 소재는 경쟁기업과 차별화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재는 제품의 수명주기가 가장 긴 산업으로 알려져 있다. 전자, 자동차, 의류 등의 소비재는 매년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지만, 소재는 한 번 개발되면 수십 년에서 어떤 경우는 수백 년 간 큰 변화 없이 사용되기도 한다. 제품의 수명이 길고 수요가 안정적이라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범용화에 따른 수익성 저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소재산업의 현실이다.
많은 소재기업들이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여 새로운 소재의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그러나 신소재의 개발 과정 자체가 워낙 어렵고, 최근에는 신소재의 등장속도가 확연히 저하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소재기업들의 연구개발 의욕이 약화될 경우 제품력보다는 규모와 가격 경쟁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궁극적으로는 이것이 소재산업의 성장활력을 저하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렇다면 신소재 외에 소재산업을 혁신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1. 소재산업 혁신의 새로운 Keyword, ‘가치 혁신’
글로벌 화학전문 조사기관인 ICIS는 해마다 혁신적인 화학제품을 선정하여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의 최고 대상은 인도 Tata Chemicals의 ‘Swach’라는 가정용 정수기가 수상하였다. 이 제품이 다른 정수기보다 성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인도 농촌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평범한 쌀겨의 재(Rice Husk Ash)와 은 나노 입자를 정수기 필터 재료로 활용함으로써, 저소득층도 큰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수상의 배경이었다.
언뜻 보면 단순하지만 Tata의 사례는 소재산업의 혁신이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근본적 물음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획기적 성능의 소재 개발만을 혁신의 대상으로 삼아 왔다. 이러한 접근은 성공할 경우 막대한 수익이 보장되지만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 실패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Tata의 ‘Swach’는 이와는 정반대의 접근을 취한 사례이다. 고가의 기능성 소재 대신 평범한 소재를 활용하여 ‘성능이 동등하면서도(미국 환경청의 수질 기준 충족) 저가격’이라는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하여 성공할 수 있었다. 결국 혁신이란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를 제공하는 것인데, 소재산업에서는 그동안 너무 획일화된 방법론에 갇혀 혁신의 본질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치 혁신’을 통한 소재산업의 혁신 방안, 보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신소재가 아니라도 소재기업들이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소재 혁신에 대한 개념부터 정리해보자. <그림 1>에서는 소재설계 혁신의 정도와 가치 혁신의 정도에 따라 소재 혁신의 유형을 네 가지로 분류해 볼 수있다. 소재설계가 기존의 소재와 확실하게 차별화될 경우 우리는 이를 일반적으로 ‘신소재’라고 부른다. 하지만 신소재는 다시 성공한 신소재와 실패한 신소재(현재 시점에서의 판단을 기준으로 할 경우)의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가치 혁신이 고객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아무리 획기적인 성능의 소재라도 시장에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실패한 소재가 성공한 소재보다 훨씬 많은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가치라는 것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다분히 사후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가치란 고객이 지불한 비용을 통해서 느끼는 만족 또는 효용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객관적인 소재의 성능이나 품질은 물론 사용의 편리성, 구매 용이성, 환경에 대한 배려 등도 포함될 수 있으며, 이러한 요소들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이렇게 구분할 경우 앞서 말한 성공한 신소재(고기능 신소재)란 소재설계 자체도 혁신적이지만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가 기존 소재에 비해 확연히 차별화된 소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반대로 소재설계 자체는 혁신적이지 않지만 고객에게 확실히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면 이 역시 혁신 소재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것이 가치 혁신형 소재의 개념이다. 가치 혁신형 소재와 고기능 신소재의 구체적 특징 및 차이는 <그림 1>에 설명되어 있다.
2. 가치 혁신형 소재 개발의 유망 분야와 사례
가치 혁신형 소재의 등장은 근본적으로 고객 니즈의 변화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고객 니즈의 변화가 빠르고, 변화의 폭이 클 경우 소재기술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지체현상이 나타나게 되고, 당연히 새로운 소재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소재산업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최근의 환경 변화를 살펴보면 먼저 거시 환경 측면에서 신흥국의 약진을 들 수 있다. 가격에 큰 구애받지 않고 소재의 첨단 기능이나 성능을 중시하는 선진국형 소비 패턴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구매력이 갈수록 막강해지고 있는 신흥국 고객들의 특성과 니즈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자원 및 에너지·환경 문제의 심화는 소재산업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지금까지 공짜였거나 풍부하다고 여겨졌던 환경 요소들이 제약조건으로 바뀌면서 기능으로만 판단하던 고객들의 소재에 대한 가치 체계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소재기업들 자체의 자세 변화도 달라진 점이다. 기술혁신이 정체되면서 기존 소재로부터 고객들이 원하는 가치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과거에 비해 한층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요인들은 향후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가치 혁신형 소재 개발 역시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회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하에서는 가치 혁신형 소재 개발이 유망할 것으로 전망되는 세 가지 분야를 제시하고, 각 분야 별로 기업들의 소재 개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① 희소한 고가 소재를 풍부한 저가 소재로 대체
최근 산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를 몰고 다니는 소재는 희소금속(Rare Metal)이다. 세계 최대 희토류(희소금속의 한 종류, 중국이 세계 수요의 90% 이상 공급) 생산국인 중국이 생산 및 수출 제한 조치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각국의 반발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출 제한 조치를 지속적으로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리튬, 코발트, 니오븀 등의 희소금속은 사용량은 적지만 각종 IT 제품, 전기 자동차 등의 첨단 제품에 없어서는 안 될 소재로 ‘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린다. 이름 그대로 부존량이 적고 매장량도 일부 국가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 간, 기업 간 자원 확보를 위한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자원 확보가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희소금속의 대체 내지는 사용 최소화를 위한 기술이 갈수록 중요해질 전망이다.
희소금속의 소비량이 중국 다음으로 많은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2007년 경제산업성 주도로 희소금속 대체재료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하였으며, 2009년에는 대체 대상 희소금속의 범위를 확대한 바 있다(<그림 2> 참조). 기업들의 노력도 활발하다. 특히 수요량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리튬이온전지의 양극재(코발트), 투명전극(인듐), 영구자석(네오듐, 디스프로슘) 등의 분야에 기업들의 참여가 급증하고 있다. 리튬이온전지 양극재에 사용되는 코발트의 대체재로는 망간계, 3성분(니켈, 코발트, 망간)계, 인산철계 등이 경쟁하고 있으며, 기업들의 투자도 확대되는 추세이다. 일본의 후지경제연구소는 리튬이온전지 양극재의 시장규모가 2009년 800억 엔에서 2014년에는 2,000억 엔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밖에 일본의 신에츠화학과 대동특수강은 전기자동차용 모터에 사용되는 네오듐자석의 디스프로슘 사용량(원가의 30∼40% 차지)을 절반 이상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였으며, 토다공업과 데이진 등은 네오듐 자체를 철로 대체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고가 재료의 대체가 희소금속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금, 백금 등의 귀금속도 대체 또는 사용 최소화 기술 개발이 활발해질 것이다. 이밖에 상대적으로 고가인 소재는 잠재적으로 대체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앞서 예로 든 Swach의 사례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좋은 제품을 싸게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것은 모든 산업에서 가치 혁신의 가장 기본이기 때문이다.
② 규제에 대비한 환경친화형 소재의 개발
당장 개발이 시급한 희소금속의 대체재가 단기적으로 가장 유망하다고 한다면, 장기적으로 잠재력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환경친화형 소재로의 대체를 들 수 있다. 에너지 소비가 상대적으로 많은 기초 소재산업의 특성 상 모든 소재가 대체 내지는 개선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 소재산업 별로 개발 현황 및 유망 소재를 살펴보자.
석유화학
고갈성 자원이면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석유를 직접적 원료로 이용하는 석유화학산업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바이오 플라스틱의 개발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가격경쟁력은 물론 품질에 있어서도 기존 석유화학제품에 미치지 못해 소비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세계 플라스틱 시장에서 바이오 플라스틱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성과와 관계없이 바이오 플라스틱의 개발 요구는 앞으로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온실가스 규제 강화와 함께 유가도 장기적으로 상승세가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양산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제고하고 기존 제품 대비 동등 이상의 품질을 확보하는 것이 향후 중점 과제가 될 것이며, 대체 범위의 확대를 위한 노력도 활성화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하여 기업들의 연구개발 성과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어 전망은 밝은 편이다. 브라질의 화학기업인 Braskem은 지난해 9월 사탕수수로부터 추출한 에탄올을 원료로 한 20만 톤 규모의 ‘그린 PE(폴리에틸렌)’ 가동을 시작했다. 이 회사는 이미 존슨앤존슨, P&G, 토요타 등의 대형 고객을 확보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연산 100만 톤 규모의 생산능력 확대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린 PE’에 이어 2013년에는 10만 톤 규모의 ‘그린 PP(폴리프로필렌)’도 가동할 계획이다. 공업용 효소기업인 Novozyme과 공동으로 에탄올을 경유하지 않고 사탕수수로부터 PP 원료를 직접 생산할 수 있는 고효율 프로세스를 개발 중이다.
브라질처럼 자원이 풍부한 나라는 사실상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비식용자원을 활용한 제품 개발이 활발하다. 지난해 8월 NEC는 볏짚과 캐슈넛 껍질을 원료로 고성능 바이오 플라스틱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볏짚은 물론 캐슈넛 껍질도 한해 100만 톤 정도가 버려지고 있어 원료 조달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NEC는 화학기업과의 협력 하에 양산기술을 확보하여 2013년까지 바이오 플라스틱을 PC 외장재로 제품화할 계획이다.
이밖에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인 PC(폴리카보네이트)나 타이어의 원료인 이소부탄올 등 기능성 제품을 식물성 원료로 만드는 기술이나, 더 나아가 이산화탄소를 원료로 메탄올 등 유용한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혁신 기술도 상업화에 점차 근접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시멘트
시멘트(일명 포틀랜드 시멘트)는 건설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소재로 연간 생산량만 28억 톤에 달하는 대규모 기초 소재다. 그러나 원료인 석회석을 섭씨 1,500도의 고온으로 처리해야 하는 제조공정의 특성 상 대량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시멘트산업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5%를 차지할 정도로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이에 따라 시멘트기업과 건설기업들은 고로슬래그나 플라이애시(fly ash, 석탄 보일러의 배출가스로부터 채취하는 석탄재) 등 산업 부산물을 활용하여 시멘트의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그린 콘크리트’ 개발에 노력하여 왔다. 시멘트 사용량을 부분적으로 줄이는 것은 물론 시멘트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그린 콘크리트도 개발되고 있다.
최근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시멘트 제조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혁신적 개념의 ‘그린 시멘트’가 개발되고 있다. 영국의 벤처기업인 Novacem은 자사의 그린 시멘트로 포틀랜드 시멘트를 대체할 경우 시멘트 1톤당 1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린 시멘트는 석회석 대신 마그네슘 실리케이트를 원료로 사용하는데, 이것이 굳어지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원리를 이용한다. Novacem은 영국 정부 및 기관투자가의 자금을 확보해 지난해 8월부터 파일럿 플랜트를 가동하고 있다. 비슷한 시도는 다른 몇몇 기업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의 Calera는 그린 시멘트 제조설비를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화력발전소와 통합하여 건설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고려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석탄 대기업인 Peabody Energy(지분 참여)와 엔지니어링 기업인 벡텔과 협력하고 있다. 그린 시멘트는 아직까지 기술적 검증의 과정이 남아 있으나 상업화될 경우 시멘트산업은 물론 온실가스 감축 산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섬유
세계적으로 매년 7천만 톤 이상의 섬유가 생산되고 있으며, 그 중의 절반 이상을 폴리에스터, 아크릴, 나일론 등의 합성섬유가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합성섬유는 석유로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에 여타 산업과 마찬가지로 석유자원 고갈 및 온실가스 배출이라는 환경 문제를 안고 있다. 섬유기업들이 이에 대처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석유가 아닌 바이오폴리머를 통해 섬유를 제조하는 방법으로 듀퐁, 도레이 등이 이미 다양한 제품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사용된 제품(의류, PET병 등)을 회수하여 재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수거 및 분류 시스템 구축이 어려워 경제성 확보가 쉽지 않고, 이 때문에 단순 재활용(저가 플라스틱 용기나 연료 등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만을 놓고 본다면 재활용의 방법이 오히려 파급효과가 크지만, 여러 가지 장애요인 때문에 활성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섬유기업인 데이진은 ‘Eco Circle’이라는 폴리에스터 의류 수거 시스템을 구축, 재활용 섬유 생산에 성공한 사례이다. 재활용 섬유라고 해서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전혀 아니다. 데이진은 자사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화학적 재활용(Chemical Recycling) 기술을 통해 원재료(virgin material)와 완전히 동등한 품질의 재활용 섬유를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Eco Circle’이라는 시스템에 있다(<그림 3> 참조). 퀵실버, 파타고니아, 헨리 로이드 등 유명 의류업체가 참여하고 있는 이 시스템의 구축 및 성공적 운영을 위해 데이진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데이진은 재활용 섬유의 안정적 판로를 확보하고, 의류업체들은 재활용 의류 제품을 통해 환경보호에 기여한다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데이진은 회원기업의 지속적 확대와 함께 재활용 섬유의 고부가가치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③ 나노기술을 활용한 기존 소재의 물성 극대화
고객 니즈에 기반한 앞의 두 분야와 달리 가치 혁신형 소재의 마지막 유망 분야는 나노기술의 적극적 활용을 들 수 있다. 소재의 구조를 분자 수준에서 해석하고 조작하는 나노기술의 특성 상 기존 소재의 물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새로운 용도 창출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기능성 나노테크 섬유를 들 수 있다. 일본의 도레이는 ‘Nanomatrix’라는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이전 섬유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능을 구현하고 있다. 폴리에스터나 나일론 등 합성섬유의 표면에 수십에서 수백 나노미터 두께의 균일한 피막을 형성하는 이 기술은 냄새 제거, 세균 제거, 정전기 방지 등의 다양한 기능 구현이 가능하다. 도레이는 이 기술을 활용하여 모래가 쉽게 떨어지는 수영복 소재, 꽃가루가 묻지 않는 코트 소재 등 신제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유니클로와 공동으로 개발한 발열 의류 ‘히트텍’은 이미 대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앞서 설명한 Tata Chemicals의 ‘Swach’ 역시 나노기술을 통해 재탄생한 사례이다. 사실 Tata는 1990년대 쌀겨 재를 활용하여 ’Sujal’이라는 정수기를 개발한 바 있었다. 그러나 세균 제거 효과가 80%에 그치자 상업화를 포기하였다. 시간이 흘러 Tata 내부의 기술이 축적되면서 연구진은 은 나노 입자의 첨가를 통해 쌀겨 재의 항균 처리 기능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개발하였고, 이것이 경쟁력 있는 정수기의 개발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다른 산업들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최근 경량화 재료로 주목받고 있는 발포 알루미늄(Aluminum Foam)이 그중 하나이다. 1948년 최초로 개발된 발포 알루미늄은 초경량성, 흡음성, 방음성, 전자파 차폐성, 단열성, 불연성, 가공성, 인체 무해성, 재활용 가능성 등 뛰어난 특성에도 그동안 제조기술의 낙후로 응용이 저조하였다. 지금까지는 주로 흡음, 방음, 방열, 방진 등 상대적으로 단순한 용도로 사용되어 왔으나, 최근 기술 발전 및 수요산업의 요구에 따라 자동차, 항공, 군수 등의 구조재로 용도가 확대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Metcomb Nanostructures는 나노기술을 활용하여 발포 알루미늄의 기공을 균일한 크기로 제조하는 기술을 개발하였다. 이 기술은 경량에다 두께를 얇게 만들면서도 충격을 균일하게 분산할 수 있어 자동차 옆문의 충격보강재, 방탄재료 등으로의 사용이 기대되고 있다.
3. 가치 혁신형 소재 개발을 가능케 하려면
지금까지 가치 혁신형 소재의 유망 분야와 향후 주목할 만한 소재들을 기업 사례를 통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은 가치 혁신형 소재의 정의상 일반적으로 어떤 특정한 소재가 유망하다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데이진의 재활용 섬유가 성공했다고 해서 재활용 섬유 자체가 유망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데이진의 제품력과 Eco Circle이라는 시스템이 결합되어 성공적인 가치 창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혁신의 출발은 고객의 요구에 귀 기울이는 것부터
가치 혁신형 소재가 일반적인 신소재와 가장 다른 점은 고객을 사전에 정의하고, 이들이 필요로 하는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결국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치 혁신형 소재 성공의 출발이라 할 수 있다. Dow Corning은 소재기업 중에서 고객 니즈 파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이 회사는 ‘Citizen Service Corps Program’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통해 고객의 니즈를 파악한다. 프로젝트 별로 10명 내외의 자원자를 선발, 주로 신흥시장에 한 달 정도의 기간으로 파견하는 프로그램이다. 팀원들은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거쳐 선발하는데 다양한 경력이나 국적의 사람들로 구성된다. 사회공헌활동을 겸하기도 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원들은 새로운 시장과 고객들을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현지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신사업이나 신제품의 아이디어를 얻는다. Dow Corning이 이 프로그램을 ’살아 있는 연구소(a living laboratory)‘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작은 아이디어라도 고객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해결책 제시가 필요하다. 성능이 혁신적이지 않더라도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성공적인 가치 혁신형 소재가 될 수 있다. 일본의 고사철공은 JFE강판, 아스제약과 공동으로 방충 스테인레스 강판을 개발하였다. 스테인레스 강판이 녹은 슬지 않지만, 주방 등과 같이 습기가 많은 곳에서 사용되다보니 바퀴벌레 등의 벌레가 꼬인다는 고객들의 불편에 주목한 것이다. 그러나 스테인레스 강판의 표면에는 얇은 막이 형성되어있기 때문에 방충제를 도포하기가 어려웠다. 이에 따라 고사철공과 JFE강판은 도장회사와 공동으로 특수한 강판 처리법을 개발해, 방충제를 도포하는 데 성공하였다. 고사철공은 우선 가정이나 음식점용 수요를 예상하지만, 전자레인지나 냉장고용으로도 판매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협력 모델 없이는 성공도 없다
가치 혁신형 소재 개발에 있어서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점은 자사에 맞는 협력 모델을 적시에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재 개발 단계부터 최종 비즈니스 모델 관점의 필요 역량을 점검하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제시한 Braskem의 그린 PP, Calera의 그린 시멘트, 데이진의 재활용 섬유 등은 모두 협력 모델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 경우이다. 원료기업, 가공기업, 고객기업 등의 일부 또는 전체가 협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경쟁기업과의 협력이 필요할 경우도 있다. 자동차용 초경량 강판 개발을 위해 세계 철강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축한 것은 경쟁기업간 협력 모델의 대표적 사례이다.
기술 부족만을 탓하여 혁신을 게을리 하는 것은 경쟁에서 도태되기 위한 지름길을 선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고객으로부터 혁신의 아이디어를 찾고 자신의 역량과 협력 모델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정체된 소재산업에서도 지속적인 혁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한 기초기술 역량은 부족하나 응용 및 가공 역량이 뛰어난 국내 소재기업들에게도 가치 혁신형 소재는 경쟁기업과 차별화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LG Business Insight 11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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