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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8. 4. 09:02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업들은 저마다 혁신을 외쳐대지만, 시장의 반응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시장에서 인정하는 ‘혁신의 달인’ 기업 사례를 통해, 혁신의 궁극적인 지향점과 혁신의 성공 포인트를 찾아 본다. 
 
최근 미국에서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은 출시된 지 이틀 만에 27만대가 판매되는 등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한때 연이은 수익 악화로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애플이 이제는 아이팟, 아이폰 등 연이은 히트작으로 화제를 몰고 다니며, 각종 기관에서 발표되는 혁신 기업 1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애플’하면 항상 ‘혁신’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정도다. 그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발표된 이 회사의 실적은 과거의 매출과 순익 기록을 또다시 뛰어넘었다. 이쯤이면 애플은 혁신에 통달하여 그 성과를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혁신의 달인(Master of Innovation)’이라 불릴 만 하다.
 
애플이 많은 기업들에게 선망의 대상이긴 하지만, 다른 기업들도 나름의 혁신 활동을 부단히 추진해오고 있다. 이중에는 혁신 활동 면에서 최고임을 자부하는 회사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실제로 자사의 혁신 결과물에 대한 가치를 시장에서 인정받아 고객들로부터도 혁신 기업으로 불리는 기업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 글에서는 애플, 구글, P&G 등 혁신의 달인이라 불릴만한 글로벌 기업 사례를 통해서 고객에게 인정받는 혁신의 길을 살펴보자. 이를 통해 혁신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기업 중심이 아니라, 고객이 되어야 함을 말하고자 한다.
 
고객에게 외면 받는 혁신 유형 
 
갈수록 치열해지는 기업 간 경쟁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기업들은 기업활동 전반에 걸쳐 혁신을 외쳐대지만, 시장에서의 반응은 그리 녹록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어찌 보면 혁신 활동을 통해 기업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적도 잊은 채, ‘혁신을 위한 혁신’을 외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혁신의 결과물이 시장에서 외면 받고, 결국 고객에게 ‘혁신의 달인’이라는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들을 구체적으로 보자.
 
● 성공 보장 없는 ‘최초’ 
 
혁신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는 혁신의 결과물이 기존의 것과는 완전히 새로운 ‘최초의 제품’이어야 한다고 여긴다는 점이다. 많은 기업들은 자사의 신제품을 낼 때는 항상 국내 최초 내지는 세계 최초라고 떠들어댄다. 최초의 제품을 내놓는 것이 곧 혁신이라는 믿음에서다. 고객에게 어떤 의미나 가치로 받아들여지든 간에 시장에 최초로 출시하기만 하면 마치 성공은 따 놓은 당상으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최초가 반드시 성공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P&G의 ‘팸퍼스’를 최초의 일회용 기저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1932년 존슨앤존슨 계열사인 치커피 밀즈의 ‘척스’이다. 오늘날 PDA로 통용되는 최초의 포켓용 컴퓨터 제품은 애플의 ‘뉴튼’이었지만, 시장의 대중들이 원하는 제품은 ‘팜 파일럿’이었다. 오늘날 애플의 아이팟이 그러하듯이, 대히트를 치는 혁신적 제품이 반드시 최초일 필요는 없다.
 
● ‘기술 집착’만으로는 한계 
 
최초가 혁신의 성공을 보장해준다고 믿는 것만큼이나, 기술적 우위만이 시장에서 최고로 평가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술 중심의 혁신적 제품에 승부수를 두는 경우가 있다. 과거 애플의 실패를 돌이켜보자. 매킨토시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한 이후에도 애플은 고질적인 기술 집착증에 빠져 소비자의 취향 등 시장의 목소리를 무시했다. 당시 CEO였던 스티브 잡스에게 시장 조사란 아무 쓸모 없는 짓이었고, 오로지 시대를 앞서가기 위한 ‘혁신을 위한 혁신’만이 우선시되었다. 애플의 기술은 너무나 선도적이었지만, 대중들에게 어필하기는 어려웠다. 당시 애플이 내놓은 새로운 PC들은 혁신적인 컴퓨터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판매에서는 부진해 2003년 세계 PC시장에서 고작 2% 미만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했을 뿐이다.
 
66개의 위성을 연결해 전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꿈의 통신 기술로 알려졌던 ‘이리듐’이나 도심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기술 혁신 제품으로 소개되었던 ‘세그웨이’역시 기술적 혁신의 성과는 이뤄냈지만, 소비자들의 필요성은 자극하지 못해 외면 받았던 사례이다. 혁신적 기술 이외에도 마케팅, 비즈니스 모델, 프로세스 등 다른 측면의 혁신을 통해서 고객에게 더 높은 가치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 ‘홀로서기’에는 역부족 
 
혁신의 성과를 독식하려는 생각에 혁신 활동도 조직 내부에만 의존할 수 있다. 과거 애플이 이에 해당된다. 1985년 당시 운영체계 중 유일하게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갖춘 애플의 맥OS의 시장점유율은 한때 16%까지 치솟기도 했다. 그러나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매킨토시에서만 운영되는 폐쇄형 소프트웨어를 고집하다가 결국 MS에게 컴퓨터 독점 세계를 넘겨주고 만다. 오픈 소스를 활용하는 외부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을 저버린 채 혁신 활동에 홀로서기만을 고집한 결과였다.
 
컨버전스가 확대되고, 산업의 범위를 뛰어넘는 기업 간 치열한 파트너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오늘날의 기업들은 거대한 생태계와 같은 경영 환경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 시대에 더 이상 독점적 기술이나 폐쇄적인 사업방식으로는 혁신적 성과를 내거나 누릴 수도 없다. 더구나 한번의 혁신만으로 게임이 끝나지 않는 상황에서 나홀로 일련의 혁신 성과를 내놓기에는 역부족이다. 기존에는 산업 내 독자적인 기업 역량으로만 승부해왔던 기업들이 다른 조직과의 협력을 통해야만 하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혁신의 달인 기업, 무엇이 다른가 
 
고객 중심적인 사고가 피상적인 수준에 그쳤거나 지나치게 앞서갔던, 기업의 자기 중심적인 혁신 유형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러한 한계점을 극복하고 진정한 혁신 달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성공포인트는 다음과 같다(<그림 1> 참조).
 
● 기존 개념에 도전하라 
 
혁신의 달인들이 가지는 차별점은 반드시 최초나 기술적으로 최고를 추구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기존에 고객들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것을 혁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BMW의 혁신적인 광고 사례를 보자. 세계 유수의 영화 감독들이 제작한 「The Hire」라는 제목의 이 광고는 약 8분 분량의 미니드라마 형식이며, 유료 TV광고가 아닌 온라인으로 소개되었다. 30초 분량의 TV광고 방영이라는 기존 광고의 개념에 도전한 것이다. 이 과감한 실험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표준 광고도 방송 매체 섭외도 없었지만, 전 세계 신문과 TV로부터 공짜 보도를 타는 동안 마케팅 활동은 극대화되었으며, 결국 2년 연속 기록적인 판매고로 보상을 받았다.
 
혁신적인 광고로 따지자면, 원조는 애플이다. 매킨토시 컴퓨터를 처음 출시했을 때, 한 여자 선수가 큰 해머를 들고 돌진하며 대형 화면을 깨부수는 광고를 슈퍼볼 중계방송 도중 내보냈다. 이를 통해 기존의 PC와는 완전히 차별화된 상품이라는 것을 고객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비단 광고만이 아니었다. 기존의 뮤직 플레이어의 개념을 바꾼 아이팟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온라인 뮤직 스토어 사업 간 시너지를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했다. 또한 애플은 문서 작업이나 인터넷 등을 위한 과거의 PC개념으로는 수요가 한계에 봉착했음을 먼저 간파했다. 캠코더, 디지털 카메라, MP3플레이어, 휴대폰 등 디지털 기기들의 가치를 한층 더 올려줄 수 있는 ‘디지털 허브’로 PC의 개념을 바꾼 ‘맥미니’를 출시해 성공을 거두었다. 그 이후에도 아이폰, 애플TV 등의 혁신 제품으로 기존의 개념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 고객들도 모르는 숨은 니즈를 찾아라 
 
고객들은 기업들의 혁신 그 자체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혁신을 통해 그 동안 충족되지 못했거나 아니면 그들마저도 미처 깨닫지 못한 숨은 니즈를 충족 받았을 때, 고객들은 감동하게 된다. 그렇다고 숨은 니즈가 반드시 거창하거나 충족시키기 어려울 필요는 없다. 고객의 짧은 기다림의 시간까지도 관리하는 BOA(Bank of America)의 사례를 보자. 기업들은 제품이건, 서비스건 고객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부단히 힘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은 이러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받기까지 아무런 정보도 받지 않은 채 얼마간 기다림을 감내해야 한다. BOA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그냥 방치해두곤 하는 이런 짧은 기다림의 시간마저도 고객을 위한 혁신의 기회로 삼았다. 새로운 고객 서비스 컨셉 탐색을 위한 실험에서, 줄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3분을 넘기면 고객은 실제 기다린 시간보다 더 오래 기다렸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여기에 재미있는 비디오를 틀어주는 등의 노력으로 고객의 불편함이 완화될 수 있으며, 고객 만족도 지수 중 한가지 사항만 개선해도 고객 1인당 1.4달러의 매출 증가 효과가 있음도 알아냈다. 이를 토대로 혁신팀을 가동하는 등 고객만족을 위한 지속적인 투자를 한 결과, 고객들의 로열티와 추천의향이 늘어나 파이낸셜 타임스가 뽑는 ‘올해의 미국 은행’으로 2년 연속 선정되었다.
 
애플을 회생시킨 결정적인 요인 중에 하나는 ‘단순함’이라는 소비자들의 숨은 니즈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오늘날과 같이 기능과 정보가 넘쳐나는 복잡한 시대에 애플 제품의 단순한 디자인은 고객들에게 어필했다. 물론 다른 기업들도 단순한 디자인을 추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애플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혁신의 본질은 바로 ‘사용자의 편의성’에 목적을 둔 단순함에 있다. 아이팟의 경우, 터치스크린의 조작만으로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 외부의 파트너와 함께 하라 
 
혁신은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외부로부터도 나올 수 있다. 나 혼자 모든 것을 만들어 낼 수 없으며, 사내 연구개발 만으로는 혁신 성과물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오히려 외부의 혁신적 아이디어와 기술 등을 활용하여 그것들을 조정·통합해서 그 이상을 창조해낼 수 있는 네트워크 이노베이션의 오케스트라 역할이 중요하다.
 
아이팟은 애플의 아이디어와 외부의 기술을 잘 섞어 고품격의 소프트웨어와 세련된 디자인으로 마무리한 작품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아이팟에 대한 아이디어를 최초로 내놓은 쪽은 애플이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고용한 한 컨설턴트였다. 아이팟의 음악 파일을 다운로드할 수 있게 한 아이튠즈 역시 처음에는 외부에서 사들여와서 성능을 개선한 것이다. 물론 음반업계 메이저 회사들과도 윈-윈 계약을 맺은 덕분에 디지털 음반 시장을 합법적으로 상업화하게 되었으며 뮤직스토어도 존재하게 된 것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P&G는 ‘C&D(Connect & Develop)’라는 외부 네트워크를 활용해 신제품 개발을 가속화하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 회사가 출시한 신제품 중 약 35%는 외부의 아이디어나 기술이 반영된 것이며, 혁신의 성공률이 두 배 증가하는 등 R&D 생산성이 60%가량 증가했다. 북미 시장에서 소위 대박을 터뜨렸던 ‘프링글스 프린트’는 C&D 네트워크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존 감자칩에 간단한 유머와 상식을 새긴 이 제품은 사내 브레인스토밍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으나, 감자칩에 그림을 새기는 작업이 기술적 한계에 부딪혔다. 그러던 중 이탈리아의 한 작은 빵집에서 개발한 식용 잉크 분무기를 찾아내어 해결할 수 있었다.
 
● 실패에서 배워라 
 
한번 혁신에 성공했다고 성공이 계속되는 것도 아니며, 혁신이 한번에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실패하더라도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마침내는 성공을 이끌어 내야 한다. 오늘날 애플의 성공작들은 과거의 실패작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매킨토시는 리사(LISA)의 실패를 딛고 탄생한 것이고, 아이폰 역시 모토로라와 함께 내놓았다 실패한 뮤직폰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었다. 두 차례 모두 애플은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고 다시 시도했던 것이다. 애플의 최신작 컴퓨터들도 과거 스티브 잡스가 세웠다가 실패하여 애플에 인수된 넥스트(NeXT)에서 개발한 기술을 활용한 것들이다.  
 
혁신적 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잘못이나 실패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조그만 시도를 장려하는 조직문화와 메커니즘도 함께 뒷받침되어야 한다. 대표적인 혁신 기업 3M이 만약 자동차 왁스 사업이 실패했다고 해서 직원들을 해고시키거나 곤경에 몰아넣었다면 아마도 스카치 테이프나 포스트잇 등을 발명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 혁신 공간을 조성하라 
 
마지막으로, 물리적인 공간 환경도 중요하다. 혁신의 달인 기업들에서는 회사의 공간마저도 직원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뒷받침해 주기 위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어떠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쥐어짠다고 쉽게 나오는 게 아니다. 더구나 고객을 만족시키고 감동을 줄 만한 혁신적 아이디어는 즐거움에서 나온다는 기본적인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P&G의 ‘짐(The GYM)’이라는 이노베이션 센터를 예로 들 수 있다. 자유롭고 쾌적한 이 공간에서 사장이건 신입 직원이건 어떤 부서건 커뮤니케이션의 장벽을 허물고, 서로 협력하고 고객 가치를 높이기 위한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 위치한 구글 본사는 하나의 캠퍼스에 가깝다. 실제로 직원들은 모자 달린 티셔츠와 청바지, 운동화 차림으로 인문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외부 인사를 초청해 강의를 듣는다.  
 
이 밖에도 회사의 각종 제도, 공간 배치도 직원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뒷받침해 주기 위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식사, 운동, 퇴근 시간도 자유롭고 업무 중에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건 복도에 엎드려 일하건 상관없다. 아예 업무 시간의 20%를 업무와 무관한 자신이 직접 선택한 프로젝트에 할애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자유로운 분위기는 구글이 검색기술에서 출발해 전자상거래, 통신, 부동산, 광고 등으로 혁신적 사업 모델을 확장해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수많은 기업들이 오늘도 혁신 활동에 매진하고 있지만, 과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혁신인지 되돌아볼 일이다. 혁신의 달인 기업들이 고객의 관점에서 새로운 가치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은 한마디로 최초나 최고를 지향하기 보다는 시장 지향적 혁신을 추구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 주간경제 94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