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ge.com
설립년도: 1892년
설립자: Thomas Alva Edison
Chairman & CEO: Jeffrey R. Immelt
2006 Sales (billion $): 163.4
2005 Employees: 316,000
1878년 발명왕 에디슨이 설립한 에디슨회사가 그 기원인 GE는, 1896년 찰스 다우가 다우존스 지수를 산정하기 위해 선정했던 12개 기업 중 현재까지 유일하게 존재하는 기업이다. GE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어떤 기업보다도 젊고 왕성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GE는 많은 학자와 기업인들에게 영속성 측면에서 연구 대상이기도 하며, 끊임없는 혁신과 성장으로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로 GE는 지난 3월 초 발표된 『포춘』의 ‘존경 받는 기업’ 순위에서도 세계 1위를 차지했는데 지난 9년간 GE는 무려 7번이나 1위를 기록했다. 올해 평가에서도 GE는 혁신, 재무 건전성, 환경 및 사회적 책임, 수익모델 창출 및 글로벌 수준 등의 8개 모든 항목에서 1위를 했을 정도로 세계 최고 기업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GE- 전기, 우주, 제트 시대 개척하다
GE는 사업다각화에 성공한 대표적 다국적 기업이다. 19세기 후반 설립 당시 전구램프 메이커로 시작한 GE는 100년이 넘는 기업 역사만큼 사업 영역도 다양하다. 전기 발전, 수송, 통제 및 가용과 가전 용품, 산업 전기 제품을 생산하여 인류에게 전기 시대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항공기 제트 엔진을 제작하며 공업용 플라스틱과 실리콘, 절단 재료 등을 생산해 우주 시대의 개막과 제트 기술의 도래를 인류에게 선물하였다. 또한 리스나 부동산 사업과 같은 금융 서비스업도 하고 있으며, NBC TV를 통한 방송사업 및 X-Ray를 비롯한 각종 의료기계도 제작하고 있다. 이 중 주요 사업영역은 항공기 엔진, 가전용품, 방송사업, 전기산업, 재료산업, 파워 시스템, 기술 제품과 서비스 사업, 금융 서비스 산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혁신의 GE- 1위, 2위가 아니면 사업을 매각하라
1980년대 GE는 잭 웰치의 등장과 함께 대대적인 경영 재구축을 단행한다. 이 시기에 GE는 세계 시장에서 1위 또는 2위가 아닌 사업부는 폐쇄하거나 매각을 시행했다. 그 결과, GE는 100억 달러에 상당하는 사업부를 매각하게 되었고, 1990년대에 세계 시장을 선도할 약 190억 달러에 달하는 사업부에 대한 인수를 감행하기도 하였다.
GE가 위대한 기업으로 추앙 받는 이유는 이러한 하드웨어적인 변화뿐 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차원에서의 혁신을 이루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당시 GE는 직원들에게 자신감(Self-Confidence)과 간결함(Simplicity) 그리고 신속함(Speed)을 강조하였다. 또한 워크아웃(Work-Out)과 변화 가속화 운동(CAP, Change Acceleration Process) 같은 경영혁신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관료주의 타파에 힘썼으며,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의 개발에 주력하였다.
한편, 6시그마 등 GE의 성공적인 경영 혁신 기법은 지금도 세계 유수 기업들이 벤치마킹하기를 원하는 대상이다. 그 배경에는GE의 두뇌를 육성하는 크로톤빌 연수원 및 벽 없는 조직으로 대표되는 GE만의 조직문화가 있다. 이는 GE가 POST-잭 웰치 시대에 진입해서도 꾸준히 성장과 혁신을 거듭하는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친환경 기업 GE- 친환경 기술 개발에도 역점
지난 2월, GE는 월마트, 포드 등 100여 개의 세계적인 기업들과 함께 온실가스 배출 감소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은 ‘미국 기후 행동 파트너십’ 구축을 선언하고 부시 대통령에게 온실가스 배출 총량제 실시를 건의했다. 또 대외적으로는 환경 정책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주력하는 동시에, 대내적으로는 태양열 기관차와 공해 배출을 줄인 항공기 엔진 그리고 에너지 효율을 높인 전구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GE는 ‘Ecomagination ’ 캠페인 구호 아래, 2006년에 7억 달러의 R&D 비용을 환경 부문에 사용했는데, 이런 노력으로 GE의 100개 사업장에서 7천만 달러의 에너지 비용을 감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GE의 이러한 친환경 경영전략은 『포춘』의 존경 받는 기업 선정시 다른 어떤 기업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사회공헌에 앞장서는 GE- 매년 1억$ 이상의 사회공헌비 지출
GE는 지속적이고 활발한 사회공헌 활동이로도 유명하다. GE의 사회공헌 활동은 크게 자원봉사 조직인 엘펀(Elfun, Electrical Fund)과 GE 재단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1928년 조직된 엘펀은 전 세계 128개 지부의 4만8,000명의 회원(퇴직자 포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은 연간 100만 시간 이상 자원봉사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엘펀은 영국에서는 문맹퇴치 캠페인, 브라질에서는 학교운동장 건립, 말레이시아에서는 도서관 건립 등 세계에 산재하는 GE 사업장의 지역민을 위한 봉사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엘펀과 함께 GE 사회공헌활동의 양대 축인 GE 재단은 1953년 설립되어 교육과 장학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GE 재단은 전 세계 GE 사업지역 소외계층의 교육과 지역사회와의 유대관계 강화를 도모하고 있는데, 환경보전과 공공정책 및 장애인에 대한 교육 등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GE의 매년 사회공헌활동비는 1억 달러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1년 45세에 잭 웰치 회장의 후임으로 취임한 이멜트 회장은 과거 잭 웰치 회장이 1,2 순위에 집착한 것과 달리 수익 중시 경영을 추구해 GE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단기 실적보다는 향후 성장이 예상되는 분야에 대한 M&A에 집중했는데, 의약부문의 생명공학 분야, 미디어부문의 영화 판권 및 DVD 등 소프트분야, 금융부문의 소비자금융 및 은행이 대표적인 예이다. 실제로 이멜트 회장 취임 5년 동안, GE는 매출액, 순이익 등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체계적인 후계자 승계 프로그램에 의해 다양한 전문 경력을 축적하고, 리더 자질을 검증 받아 선정된 CEO 이멜트가 쓰는 새로운 GE 역사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2. 도요타 Toyota Motor Corporation
http://www.toyota.co.jp
설립년도: 1937년
설립자: Toyota Sakachi(豊田 佐吉)
Chairman: Cho Fujio(張 富士夫)
President and Member of the Board: Watanabe Katsuaki(渡邊 捷昭)
2006 Sales (mil.): $179,083.0
2006 Net Income (mil.): $11,681.0
2006 Employees: 285,977
일본 열도에서는 지금, 우정공사부터 시작해 라면집에 이르기까지 도요타 방식을 적용해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에서 450여 개 이상의 기업 및 정부 등 여러 기관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도요타를 방문하고 있으며, 지금도 마치 도요타 신드롬에 빠진 듯 도요타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2006년에 전 세계에서 790만대의 자동차를 판매한 도요타는 2007년을 기점으로 세계 자동차 생산 1위인 GM을 따돌리고 자동차산업에서 명실상부한 최강자로의 등극을 노리고 있다. 또한 2007년 『포춘』이 발표한 ‘세계에서 존경 받는 기업’ 순위에서 도요타는 2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신화를 창조하고 있는 도요타는 과연 어떤 기업인가?
직물기계 공장이 세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가 되다
1867년에 태어난 도요타 사키치(豊田 佐吉). 일본의 발명왕이라 불리는 그는 직기를 발명하고 직기 공장을 설립해 많은 돈을 모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동차가 직기 이상으로 실생활에 가까운 도구가 될 것임을 예견하고, 직물기계 공장 내에 한 부서를 만들어 자동차 사업을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도요타 자동차는 도요타 사키치의 아들, 기이치로(喜一郞)에 의해 더욱 발전하게 된다. 동경제대를 졸업한 기이치로는 1937년 도요타 자동차공업을 설립한다. 그는 일찍이 자동차의 품질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협력업체의 모든 품질까지도 일원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항상 일정하고 안정된 거래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전문화를 꾀하기 위해 협력업체의 육성과 지도를 강조하였다.
도요타는 트럭을 주력으로 생산하며 사업 초기에 빠른 성장을 이룬다. 그러나 일본 폐망 후 정부의 긴축정책 실시로 도요타는 종업원들에게 월급조차 주지 못하는 파산위기에 직면하게 되고, 이 때 기이치로는 인원감축을 포함한 구조조정을 시행하면서 경영자로서의 책임을 지고 경영일선에서 사퇴한다.
이러한 위기 상황과 책임지는 경영진의 행동으로 도요타는, 도요타만의 위기의식, 신뢰기반의 노사관계 등이 정립되고, 낭비를 없애자는 도요타 생산방식(TPS: Toyota Production System)의 틀을 세우게 된다. 또한 도요타의 일련의 위기 상황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군수산업의 부흥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도요타식 모노즈쿠리(物作り)
일본말 ‘모노즈쿠리’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물건 만들기’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물건 만들기란 표현으로는 ‘도요타의 모노즈쿠리’를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일본 자동차산업 연구의 대가인 후지모토 교수는 도요타에 대해 “도요타를 조금 아는 사람들은 도요타를 ‘재고가 거의 없는 기업’이라고 하고, 좀 더 안다는 사람들은 ‘언제나 문제해결에 능한 기업’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보다 더 도요타를 잘 이해하는 사람들은 도요타를 ‘문제를 찾아내서 그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절부절 하는 집단’이라고 말한다.”고 설명한다.
도요타식 모노즈쿠리는 문제를 찾아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실천이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도요타는TPS, 간반(かんばん) 및 JIT(Just in time) 등을 탄생시키고 발전시켰던 것이다.
글로벌 생산에 의한 규모의 경제
최근 도요타의 놀라운 실적의 원동력은 해외 생산 확대전략의 성공 때문이다. 일본의 자동차 업체들은 미국의 통상압력을 회피하기 위해 1980년대부터 해외 생산을 시작했는데 도요타는 닛산, 혼다 등 경쟁업체보다 늦은 1988년에 해외생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도요타는 2010년까지 현재 31개 해외공장을 41개로 확대하고, 해외 생산 비중을 47.8%에서 50% 이상으로 증가시키려 하는 한편, 총 자동차 생산대수를 1,000만대 이상으로 늘릴 계획으로 어떤 경쟁업체보다 활발한 글로벌 생산을 실천하고 있다. 이처럼 도요타는 글로벌 대량생산에 따른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가격과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하며, 철저한 현지화로 효과적인 시장공략의 성과를 내고 있다.
환경자동차 개발로 신수요 창출
경쟁업체가 미온적으로 대응하던 환경자동차 시장에 도요타는 1997년 프리우스를 내놓으면서 하이브리드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도요타의 친환경 차량 도입은 고소득층을 고객으로 확보하는 한편, 일반인들에게 친환경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도요타는 이미 고급 모델인 렉서스의 SUV 모델 RX330 등과 픽업트럭까지 하이브리드 기술을 접목한 차량 판매 계획을 밝혔으며,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다소 비싼 하이브리드 차량 가격을 4,000달러~5,000달러 낮춰 고객층을 확대할 계획도 발표했다.
한편 도요타는 지난해 총 연구개발비 중 70억 달러를 환경 관련 기술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경쟁업체와의 차별을 강화하고 있는데, 지난 3월 19일에는 에탄올 하이브리드차 개발 계획을 발표하여 대체에너지 자동차 시장에서도 도요타의 독주를 예고했다.
3. P&G The Procter & Gamble Company
http://www.pg.com
설립연도: 1839년
설립자: William Procter, James Gamble
Chairman & CEO: Alan G. Lafley
2006 Sales (million $): 68,222
2006 Employees: 138,000
팬틴, SKⅡ, 비달사순, 헤드앤숄더, 플링글스, 위스퍼, 페브리즈, 아이보리 등등.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유명 소비재들이다. 이 제품들은 모두 P&G라는 회사가 만들어 낸 것이다. 1837년 두 사람으로 시작한 비누 및 양초 제조회사 P&G가 어떻게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직원 13만 명 이상을 거느린, 680억 달러 규모의 거대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기업 3위에 오른 P&G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비누와 양초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 모든 가정의 찬장과 캐비닛을 점령하다
1837년 영국의 양초 제조업자였던 프록터와 아일랜드의 비누 제조업자였던 갬블이 미국 신시내티에서 서로의 업체를 통합하면서 P&G가 탄생하게 된다. P&G는 미국의 남북전쟁 동안에는 북군에게 양초와 비누를 팔았으며, 남북전쟁 이후에는 일반인들에게 양초와 비누를 팔아 사업을 성장시켜 나갔다. 그러던 중 P&G는 차별화되고 브랜드화된 비누인 아이보리를 만들게 되고, 크리스코, 커메이, 옥시돌 등 더 많은 제품을 개발하면서 소비재 분야에서 역량을 쌓아 나갔다. 또한 역대의 히트작인 합성세제 타이드를 출시하면서 기업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P&G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80년까지 제품을 다각화하는데 주력했다. 기존에 비누, 지방, 기름으로 한정되었던 제품기반을 음료, 치약, 종이 제품으로 확대해 가면서, 종이 기저귀 팸퍼스, 치약 크레스트 등을 만들어냈다. P&G는 상품을 다양화하는 과정에서 기존 제품들을 차별화하거나 개량하여 새로운 제품을 개발했으며, 가공처리 기술도 혁신시켜 나갔다. 또한 마케팅의 중요성을 간파하여 전파매체를 적절히 활용하고, 관련기관들과의 지속적인 제휴 관계를 강화해 갔다. 생산부문에서는 공장의 고효율 작업 시스템을 개발하고, 다양한 제품을 관리하기 위해 독립적인 분산화된 기업 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이 시기에 P&G는 제품 개발, 생산, 판매에 이르는 공급체인에서의 경쟁우위도 차지하게 된다.
1980년 이후 P&G는 유니레버, 킴벌리-클라크 등 경쟁업체들과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P&G는 의료, 여성전문케어, 미용 등 새로운 분야로 진출을 시도하며, 기존의 구미 시장에서 아시아, 중동부 유럽 등 신성장시장으로 진출하여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경영이란 도덕적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다’
P&G가 세계에서 존경 받는 기업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불순물 없는 깨끗한 원료는 물론 양질의 제품 그리고 윤리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영 원칙에 있다고 할 수 있다. P&G의 설립자였던 블록터와 갬블은 강직한 성품으로, P&G 회사의 핵심가치인 정직, 성실, 공평성을 바탕으로 명성을 쌓았으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회사의 모든 활동과 운영의 기초를 이루는 목표, 가치, 원칙을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P&G는 원칙을 지키지 않는 직원들을 교육하고, 투명하지 않은 거래에 대한 계약은 피하며, 회사의 명성을 더럽힐 소지가 있는 제품은 자발적으로 폐기한다. 또한 회사가 활동하는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발전을 도모하며, 지역복지에 기여하고 있다.
핵심역량을 바탕으로 한 사업 확대
P&G는 자사의 근원적 정체성은 소비재 상품 판매업체에 있다는 원칙하에 소비재에서 쌓은 핵심역량을 기반으로 사업을 확대해 가고 있다. 한때 P&G에서도 면화유, 공업용도의 목재 펄프 같은 제품을 팔기도 했지만, 자사의 뿌리인 소비재에 기반을 둔 사업을 추진해왔다. 1960년대 주요 대형 제조업체들이 이질 업종으로 진출했을 때도 P&G는 소비재라는 한 우물을 팠다.
P&G는 회사의 기반이 된 비누와 세제 사업에서 쌓은 지방과 기름이라는 성분에 대한 지식과 노하우를 중심으로 수많은 소비재를 탄생시켰다. 대표적인 것으로 비누에서 쇼트닝으로의 발전은 기름에 대한 전문지식을 활용한 것이며, 이 지식은 즉석요리용 빵가루, 땅콩버터, 감자 스낵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세제에서 축적된 기술은 샴푸와 치약으로 연결되었으며, 세탁수 성분의 하나인 칼슘에 대한 지식으로 치석제거용 치약, 음료에 넣는 칼슘 첨가물, 골다공증 치료제 등을 개발할 수 있었다. P&G가 현재 벌이고 있는 전문의약품 사업도 소비재에서 확보한 전문적 지식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고객기반 아이디어 중심의 제품 개발
P&G는 일상생활 속에서의 소비자들의 모습, 즉 욕실, 주방, 세탁실에서의 행동하는 모습을 직접 관찰하는 현장조사의 개척자이다. 그리고 이런 고객에 대한 밀착 현장 조사를 통해 고객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찾아내고 여기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여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1980년대에 옷감에서 일어나는 정전기, 옷에서 잘 빠지지 않는 얼룩, 아이들의 충치는 일상화된 생활의 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P&G는 여기에서 바운스, 타이드, 크레스트와 같은 제품을 만들어 냈다. 최근에는 중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중국인들이 머리를 자주 감지 않는다는 것에 착안하여 향기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리조이스 샴푸’를 출시하여 히트시켰으며, 일본에서 히트한 ‘고정형 페브리즈’는 일본인의 가정에 방문하여 밀착 조사한 결과 내용물 모양이 변형되는 것이 싫어 탈취제를 눈에 띄지 않게 둔다는 사실에 기반을 두어 만들어낸 것이다. P&G는 이와 같은 고객기반 아이디어 중심의 제품 개발로 시장의 선도 기업이 된 것이다.
열린 혁신: C&D 전략
P&G는 R&D(Research & Development)전략이 아닌 C&D(Connect & Development) 전략, 즉 혁신적 아이디어를 내부에 국한하지 않고 외부에서 적극적으로 구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이것은 외부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내부 R&D 역량과 결합하는 것으로 기획부터 개발까지 회사 내부에서 추진하는 독자개발 모델과는 확연히 다르다. P&G에는 내부 연구 인력이 약 8,000여명이나 있지만, 전 세계에 뻗어 있는 P&G 회사 모두를 연구실로 만들려고 한다.
P&G의 C&D 대표적 사례로는 소비자들로부터 변함없는 인기를 받고 있는 감자칩 스낵 프링글스를 들 수 있다. 이 제품은 P&G의 오픈 이노베이션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프링글스의 인기는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만한 제품을 계속해서 출시하는 데 있다. 2년 전 P&G는 감자칩 위에 그림이나 글자가 적힌 ‘프링글스 프린트’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북미지역 프링글스 사업이 2년간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할 만큼 대박을 터트렸다. 과거엔 이런 대박 상품을 하나 만들려면 2년 정도가 필요했다. 그러나 ‘프링글스 프린트’는 제품 기획에서 출시까지 1년이 채 안 걸렸다. 핵심은 C&D 전략에 있었다. 이 제품 개발과정에서 습기가 많은 고온의 감자칩 반죽에 그림이나 글자를 넣기가 어려웠다. P&G는 이런 문제점을 요약해 P&G 글로벌 C&D 네트워크에 배포했다. 그러자 유럽네트워크의 한 전문가가 이탈리아 볼로냐의 한 대학교수가 운영하는 제과점과 연결해주었다. 이 제과점은 수년 전부터 자신이 개발한 식용 잉크 분무기기를 빵으로 만드는 데 활용하고 있었다. P&G는 이 제과점과 제휴하고, 기술을 받아들여 ‘프링글스 프린트’를 만들어냈다.
21세기를 주도해 나갈 소비재 기업
170년 넘게 소비재 시장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P&G는 그들의 고유한 경영 원칙인 윤리경영, 고객지향, 끊임없는 혁신으로 수많은 경영교과서의 모범 사례로 인용되고 있다. 그리고 2006년 경영실적을 보면, 매출액은 전년비 20% 증가한 680억 달러, 순이익은 전년비 19.7% 성장한 86억 달러, 순이익률은 12.6%를 기록하여 성장성과 수익성 모두에서 놀라운 실적으로 보이고 있으며, 시장에서도 투자의견을 상향 조정 받을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오늘도 쉼 없이 자신들의 성공 DNA를 발전시키고 있는 P&G는 21세기에도 소비재 시장을 주도해 갈 것으로 보인다.
4 존슨앤존슨 Johnson & Johnson
http://www.jnj.com
Chairman & CEO: William C. Weldon
2006 Sales (billion $): 53.3
2006 Net Earnings (billion $): 11.1
2005 Employees: 115,600
우리에게는 ‘베이비로션’ 등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존슨앤존슨은 매년 『월스트리트저널』이 발표하는 기업평판지수 1,2위를 독차지하는 기업일 뿐 아니라, 2006년 『포춘』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기업 6위에 오르기도 했다. 사실 존슨앤존슨 외에도 화이자(Pfizer), 글락소스미스클라인(Glaxosmithkline), 노바티스(Novartis), 머크(Merck) 등 우리 귀에 익숙한 이름의 다국적 의료업체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존슨앤존슨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존슨앤존슨의 태생과 성장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윤리와 책임의 100년 전통, Our Credo
1886년 외과 의사였던 조지프 리스터와 존슨 형제가 미국 뉴저지주에 설립한 붕대 제조회사가 존슨앤존슨의 출발이었다. 이후 존슨앤존슨은 각종 보건, 의료용품을 개발하는 회사로 착실히 성장한다. 1893년에는 베이비파우더 관련 제품을 출시하기 시작했으며, 1921년에는 Band-Aid를, 1960년에는 초히트 상품인 타이레놀을 출시했다. 한편 1961년에는 벨기에의 제약회사 얀센을 인수해 제약회사로 거듭났으며, 그 후에도 지속 성장을 해 나가고 있다.
1932년, 창업자의 손자로서 최고경영자가 된 로버트 우드 존슨은 고객, 직원, 지역사회, 주주들에 대한 책임을 역설하였고, 1943년에는 이러한 내용을 명문화한 ‘우리의 신조(Our Credo)’를 작성했다. 이 신조는 현재까지도 존슨앤존슨의 기업윤리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야 비로소 지속가능경영(Corporate Sustainability Management) 등의 이름으로 윤리와 책임이 강조되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존슨앤존슨의 ‘우리의 신조(Our Credo)’는 놀라울 뿐이다.
이러한 윤리강령을 50년 이상 회사 경영에 반영함으로써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미국에서 존슨앤존슨은 기업윤리(business ethics) 분야의 단연 선두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에 대한 가장 현명한 대처
한편 이러한 윤리강령이 존슨앤존슨 기업경쟁력의 핵심요소로 떠오른 데에는 ‘타이레놀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우리의 신조(Our Credo)’로부터 시작된 존슨앤존슨의 기업시민 의식은 1982년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 앞에서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1960년 출시된 존슨앤존슨의 간판 상품 타이레놀은 당시 연간 4억5,000만 달러의 매출 실적과 미국 내 시장점유율 35%를 기록하고 있던 진통제 시장의 리딩 브랜드였다. 그런데 타이레놀이 한창 잘 나가던 1982년 9월, 시카고 근교에서 타이레놀을 복용한 7명의 주민들이 잇달아 급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고 소식은 미국 전역으로 삽시간에 전파되었고(미국인의 94%가 이 사건을 인지했던 것으로 조사됨), 여론은 이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당시 미국 전역에 걸쳐 250여명의 사망자가 이 약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의심을 받는 등 타이레놀에 대한 소비자들의 공포는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사건발생 후 1주일 만에 타이레놀의 시장점유율은 6.5%로 떨어졌고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등 존슨앤존슨은 회사의 존폐가 염려될 만큼의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사건발생 후 지방정부와 미연방당국은 신속히 수사에 착수했고, 시안화물(청산가리)이라는 독극물이 캡슐형 타이레놀에 투입된 것이 사고 원인임을 밝혀냈다. 문제는 누가, 언제 이런 짓을 했는지,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얼마만큼의 타이레놀에 이런 독극물이 투입되었는지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것은 존슨앤존슨 측의 대응이었다. 책임 소재 여부를 떠나 존슨앤존슨은 사건의 심각성을 조기에 인식하고 즉시 여러 가지 대응조치를 취했다. 사건에 대한 첫 뉴스가 발생한 순간부터 미디어들의 취재에 철저하게 협조하는 한편, 관련된 정보를 최대한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또한 더 이상 대중들이 독극물에 노출되는 일을 방지하고자 타이레놀의 회수와 구입자의 복용금지 요청, 원인조사에 대한 진척상황 보고 등 타이레놀에 대한 경고 및 대응책을 안내하는 등의 총괄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CEO였던 제임스 E. 버크(James E. Burke) 회장은 책임 유무를 떠나 사건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정중한 애도의 편지를 보내 위로했으며, 1억 달러의 손실을 감수하고 시중에 유포된 타이레놀 3,100만병을 전량 회수한다는 놀랄만한 결정을 내렸다 .
그 후 범인이 잡히면서 존슨앤존스은 공식적인 책임에서 벗어났지만 사건 초에 구성하였던 CEO 휘하 7인의 위기관리위원회를 계속 운영했다. 이 사건에 대한 사후문제를 처리하고 타이레놀의 신뢰 회복을 위한 계획과 발전방향을 수립하고 집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위원회 조사결과 타이레놀 복용자들은 패키지가 안전하게 봉해진다면 다시 타이레놀을 구매하여 복용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건 발생 후 보여준 회사의 노력이 긍정적으로 인식되어 기업이미지는 크게 손상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 후 타이레놀은 적극적인 위기관리 및 그에 대응하는 집중적인 제품광고와 마케팅 캠페인을 통해 사건발생 6개월 만에 사건 전의 시장점유율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고, 오히려 주변 이해관계자들로부터 더욱 모범적이고 신뢰할만한 기업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100년 기업의 본보기
전 세계 57개국에 12만 명의 직원이 있는 존슨앤존슨은 초창기의 신조와 함께 타이레놀 위기를 통한 경험을 회사의 기본 문화로 계승해 오고 있다. 이러한 존슨앤존슨은 모든 기업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100년 기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이자 본보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2007년 5월 현재, 존슨앤존슨의 시장가치는 1,860억 달러로 화이자(1940억 달러)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으며, 그 뒤를 글락소스미스클라인(1,622억 달러), 노바티스(1,370억 달러), 머크(1,127억 달러) 등이 뒤따르고 있다.
존슨앤존슨의 우리의 신조 (Our Credo)
첫째, 우리는 우리 제품의 수요자인 의사, 간호사, 환자와 자녀를 둔 부모들 모두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다. 이들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고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며 끊임없이 원가를 절감한다. 고객의 주문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하며, 우리와 거래하는 사업자들도 정당한 이익을 올릴 수 있게 한다.
둘째, 우리는 전 세계 직원 모두에 대한 책임을 진다. 모든 직원의 인간적인 존엄성을 중시하고, 고용을 안정시키며 정당한 처우를 제공한다. 근무환경은 청결하고 안전해야 하며 자격을 갖춘 직원들에게는 공평한 고용과 승진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우수한 경영진을 확보하며 경영관리는 공명정대하고 윤리적이어야 한다.
셋째, 지역사회는 물론 세계 공동체에 대해 책임을 지며 선행과 자선을 베풀고 적절한 세금을 납부한다. 사회의 발전, 건강과 교육의 증진을 위해 노력하며 환경과 천연자원을 보호한다.
넷째, 회사의 마지막 책임은 주주에 대한 것이며 적절한 이윤을 남길 수 있어야 한다. 연구개발과 혁신을 통해 신제품 개발에 노력할 것이며, 위기시의 대비책을 항상 강구해야 한다. 이로부터 주주들에게 적정한 투자수익을 보장한다.
5 애플 Apple Inc.
http://www.apple.com
CEO and Director: Steven P. (Steve) Jobs
2006 Sales (mil $): 19,315
2006 Net Earnings (mil $): $1,989.0
2005 Employees: 16,820
반쯤 베어 먹은 사과 로고로 우리에게 친숙한 애플은 기술 및 제품 혁신을 끊임없이 시도하며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는 혁신의 대명사이다. 『포춘』과 보스턴 컨설팅그룹은 애플의 혁신 활동에 대해 높이 평가하며 애플을 세계 최고의 혁신기업으로 선정했다. 또한 『비즈니스 위크』는 애플을 ‘2006년 베스트 기업’으로, 『포춘』은 ‘2007년 존경 받는 기업 5위’로 선정하였다.
컴퓨터 업체로 시작한 이후 음악 업체로의 변신을 통해 극적인 성공을 이룬 애플 그리고 애플의 창업자이자 현 CEO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많은 기업들에게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PC산업의 신화 창조자
애플컴퓨터(Apple Computer Inc.)는 IT업계의 악동이자 거침없는 카리스마의 소유자인 스티브 잡스와 전자공학계의 천재 스티브 워즈니악에 의해 1976년 실리콘 밸리의 작은 차고에서 시작되었다. 애플은 컴퓨터가 아직 생소했던 1979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인 애플II의 상용화 성공, 1980년 12월 증시 상장, 1984년 GUI를 이용한 획기적인 매킨토시 개발 등으로 벤처기업의 신화를 이루며, 컴퓨터산업의 대표 주자로 최고의 전성시대를 구가한다.
그러나 애플은 자사의 기술에 대한 강한 자부심으로 라이선스 공개시기를 놓치게 되고,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유능한 인재들이 회사를 떠나는 등 내분을 겪게 된다. 결국 애플은 1996년엔 13.8억 달러, 1997년엔 10.7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파산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그 후 1997년 애플의 구원 투수로 픽사(Pixar)로 대성공을 이룬 스티브 잡스가 복귀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 복귀 이후 애플은 본체와 모니터가 하나로 된 아이맥(iMac) 컴퓨터를 출시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애플은 최악의 상황을 반전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2005년 1월에는 키보드도 마우스도 모니터도 없는 조그만 컴퓨터인 맥 미니(Mac Mini ‘애플 역사상 가장 값싸고 부담 없는 매킨토시’)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 지배하는 세계에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음악산업의 특성을 바꾸다
애플은 또한 이미 성숙기에 있는 컴퓨터 사업을 넘어 디지털 음악과 사진 부분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2001년 10월 애플이 내놓은 아이팟(iPod)은 애플 역사상 가장 성공한 제품이다. 이는 MP3를 단순한 가전기기가 아닌 디지털 엔터테인먼트로 생각하고, 음악을 자유롭게 다운로드하고 편집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와 결합함으로써 애플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었다. 아이팟은 이미 세계 MP3 플레이어 시장의 50% 이상을 장악하고, 미국 MP3 시장의 약 80% 점유하고 있다.
동시에 애플은 2001년에 디지털 음악혁명으로 명명하는 가상의 주크박스인 아이튠(iTunes)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포춘』이 선정한 ‘2003년 히트 상품’에 뽑힌 아이튠 뮤직스토어를 구축하였다. 이로서 애플은 음악산업의 특성을 바꿔 놓았으며, 세계 음반업계의 거역할 수 없는 강자로 자리 잡게 되었다.
창조 리더와 인재 경영
애플은 다른 기업은 하나도 갖기 어려운 혁신 제품을 끊임없이 제시하는 대표적인 혁신기업이다. 흔히 애플의 혁신 3요소로 혁신적인 디자인, 영리한 마케팅 그리고 스티브 잡스라는 창조적 리더가 손꼽힌다. 스티브 잡스는 자기중심적이고 독단적인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탁월한 비전 제시 및 결단력, 혁신에 대한 열정 그리고 그 열정을 구현해 내는 힘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의 타고난 창조정신과 디자인 중시의 미적 감각, 뛰어난 협상력이 바로 새로운 제품들을 만들어낸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스티브 잡스에 대해 애플의 최대 강점이자 약점이라고도 한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신제품의 제품명부터 기능, 디자인까지 경영 전반에 전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스티브 잡스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영체제가 향후 해결 과제라는 것이다.
애플의 성공 이면에는 스티브 잡스 외에도 애니메이션 전문가 래서터나 천재적인 디자이너 아이브 등 능력 있는 인재들이 있다. 사실 애플의 혁신과 창의성은 독특한 애플의 문화에서 나왔다고도 할 수 있다. 초창기 애플은 ‘가장 앞선, 가장 좋은, 가장 사용자 친화적인 컴퓨터를 만들어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겠다’는 ‘꿈’을 생산하기 위해 설립되었고, 사명감에 사로잡힌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람들이 좋아하는 문화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는 존 스컬리 주도하의 구조조정과 성과 위주의 보상체계하에서 무너졌으며, 1990년대 애플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한편 스티브 잡스는 애플로 복귀 후 고객의 감성과 창의적 인재를 중시하고, 팀워크와 팀원의 열정을 이끌어내는 창조적 리더십을 발휘했다. 스티브 잡스의 ‘해적이 되라(Be a pirate)’는 모토는 애플이 어떻게 핵심 인재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열정을 끌어내는 지를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디자인 중심 기업
경영학의 그루 톰 피터스는 “디자인은 새로운 기업의 영혼이다.”라고 강조하면서 21세기를 디자인의 시대라고 칭한 바 있다. 애플만큼 디자인을 중시하고 디자인으로 성공한 기업이 있을까? 기술과 고객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디자인을 결합한 시장 지향적 혁신을 지향하는 예술가가 바로 애플의 정신이다.
애플은 아이팟, 아이맥 등 시대를 앞선 기능과 독특한 디자인 제품을 출시하면서 시장에 충격을 주고 소비자 트렌드를 주도하면서 맥 마니아와 파디(Poddy)와 같은 마니아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의 10대들은 아이팟에 대해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다. 이처럼 아이팟 등은 단순한 제품이 아닌 새로운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영리한 마케팅
애플은 마케팅에 주력하여 애플과 고객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만든다. 지속적인 제품 혁신, 고유의 브랜드,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성공적으로 확립함에 따라 고객과의 감성적 관계를 강화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또한 애플은 신화 관리를 통해 비밀스러운 애플의 활동, 화려한 주목을 받는 중대 발표 그리고 항상 애플은 기대를 넘어선다는 인상 등을 주는 회사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물론 거대기업 IBM과의 경쟁 스토리, 스티브 잡스의 흥미진진한 개인사 등으로 소비자들에게 이야깃거리를 제공하여 소비자와의 거리감을 축소시키기도 한다.
한편 최근 애플은 기술 맹신과 폐쇄경영에 의한 매킨토시 실패를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 되는 일로 여기고 경쟁사(MS)와 제휴하는 등 외부와의 네트워크에 의한 시너지 창출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개방형 협력을 통해 고객들과의 Win-Win 관계를 형성하고자 더욱 노력하고 있다.
지속 성장을 위한 애플의 전략
2007년 1월 맥월드 컨퍼런스 & 엑스포에서 애플은 중대한 결정을 발표했다. 지난 30년간 사용해 왔던 애플컴퓨터라는 이름에서 컴퓨터를 제외하고 애플사(Apple Inc.)로 거듭났다. 이는 애플사가 앞으로 보다 넓은 범위의 사업영역으로 넓혀 갈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실 애플의 최고 히트 상품인 아이팟은 시장포화에 의해 매출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으며, PC산업에서는 세계 시장점유율 2%에 머물고 있다. 이에 애플은 그 동안의 기술 중심의 폐쇄 경영을 뒤집고 2005년 6월 인텔의 CPU를 채택하는가 하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에 맥을 오픈 하는 개방형 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는 애플의 지속 성장을 위한 노력 및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애플은 PC를 3단계로 구분하고 있는데, 1단계 PC가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유용한 도구였다면 2단계는 모든 컴퓨터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3단계에서 PC는 캠코더, 디지털 카메라, MP3 플레이어, PDA, 휴대전화 등 우리 생활 속 디지털 장치들을 하나로 묶는 디지털 허브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애플은 맥을 제3단계의 PC, 즉 가정의 디지털 허브로 삼고 아이팟, TV, DVD 등을 연결하여 다양한 컨텐츠를 즐길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기존 제품과의 시너지 및 홈 네트워크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아이팟의 강점을 바탕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여 BMW, 메르세데스 벤츠, 볼보 등 전 세계의 자동차 메이커와 제휴하여 아이팟 통합 차량의 보급을 확대하고 있다.
애플은 지속적으로 신사업도 발굴하고 있는데, 영화 다운로드 서비스인 ‘아이비디오’ 서비스 런칭, 애플TV를 통한 TV사업 진출, 아이팟, 아이튠즈와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아이폰 개발 등이 그것이다. 특히 아이폰은 파격적인 디자인과 휴대폰 기능 이외 MP3 재생, 200만 화소 카메라, 동영상, GPS, 주요 무선 표준 지원, 고메모리, 구글의 지도 서비스를 연계한 실시간 검색 등을 제공하고 있어 거의 휴대용 컴퓨터에 가깝다고 평가 받고 있으며, 올해 6월 본격적인 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다.
혁신기업 애플이 노력을 멈추지 않는 한 애플의 성공신화는 멈추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6. 버크셔 해서웨이 Berkshire Hathaway
http://www.berkshirehathaway.com
Chairman & CEO: Warren E. Buffett
2006 Sales (billion $): 98.5
2006 Net Earnings (billion $): 11.0
2006년 6월 전 재산의 85%인 374억 달러(약 37조원)를 자선기금으로 출연(出捐)해 세상을 놀라게 한 워렌 버핏이 CEO로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코카콜라, 질레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 보험, 금융, 제조, 서비스, 소매, 유틸리티 및 에너지 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초일류 다국적기업을 자회사로 보유하고 있는 미국계 투자지주회사이다.
최근 KOSPI지수 1700 돌파로 주식투자의 붐이 다시 확산되면서 투자수익에 대한 개인투자자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지난 40여 년간 시장수익률의 40배가 넘는 투자수익을 실현한 버크셔 해서웨이의 투자비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43년째 버크셔 해서웨이의 최대주주이자 최고경영자겸 회장으로 있는 워렌 버핏의 고집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 최고의 투자자와 그의 기업
워렌 버핏이 운영하는 투자조합은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섬유회사의 주식을 사 모으기 시작해 1965년 최대주주가 되었다.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한지 2년만인 1967년 이 회사는 오마하에 본점을 둔 내셔널 손해 보험사를 포함한 소형 보험회사 2개를 매입하면서 투자지주회사로 변모하기 시작했고, 실제로 투자수익이 섬유영업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을 능가했다. 1985년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섬유사업부문을 정리하고 투자회사로의 변신을 본격화하였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그 후 블루칩 스탬프, 시즈 캔디, 버펄로 뉴스, 네브라스카 가구판매, 게이코 보험회사 등을 인수해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코카콜라, 질레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워싱톤 포스트, ABC 방송, 기네스 등 굴지의 글로벌 기업에도 투자하여 큰 수익을 거두고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 A주 한 주의 가치는 약 1억원을 넘는다. 주가가 천문학적인 수준에 이르게 된 데는 무엇보다 워렌 버핏의 고집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그는 우직하게 액면분할을 피했다. 또한 시장에서 유통되는 물량을 최소한으로 유지하여 A주의 발행규모는 113만주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엑슨 모빌 주식 수는 59억4,000만주에 이른다.
워렌 버핏은 ‘시장은 늘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게 아니다’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시각을 공유하여 자신의 회사가 시장의 비합리적인 가치평가에 휘둘리는 것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실제로 그는 주주에게 보낸 서한에서 “우리 회사의 주식에 관심을 갖고 있는 시장 참여자가 비합리적이고 감성적이라면, 주가도 비합리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그가 액면분할을 거부하고 유통물량을 극소화한 덕분에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뜨내기 주주가 감히 매입을 엄두를 낼 수 없는 수준으로 주가가 상승하게 됐다. 뜨내기 주주가 아니라 진정한 동업자만이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을 매입하도록 한 셈이다.
그렇다면 뜨내기 주주를 멀리하는 워렌 버핏의 고집 덕분에 장기보유 주주는 충분한 보상을 받았을까? 사실 주가의 흐름만을 놓고 볼 때 대답은 ‘그렇다’이다. 처음 상장된 시점인 1960년대 중반 10달러 수준이었던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가는 1970년대 100달러 수준으로 올랐고, 1980년대에는 1,000달러대에 진입했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1만 달러, 2000년대에는 10만 달러를 넘어섰다. 적어도 10년간 이 회사의 주식을 보유한 주주라면 10배의 수익은 누렸다고 할 수 있다.
내재가치에 근거한 투자 원칙 ‘가치투자’
1956년 단돈 100달러로 투자를 시작한 워렌 버핏이 오랜 세월 투자의 전설이라는 왕좌를 지켜온 비결은 ‘가치투자’가 그 핵심이며, 이러한 원칙을 지켜온 CEO로서의 리더십도 한 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워렌 버핏은 ‘주식시장은 단기적으로 변덕과 두려움 그리고 탐욕이 이끄는 대로 가치를 평가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을 내재가치에 따라 평가한다’는 스승 그레이엄의 가르침을 투자 철학으로 삼아 가치 있는 주식을 발굴해 사들이고 이를 10년, 20년이 지나도록 오랫동안 보유하고, 단기적인 주가폭락에도 초조해 하지 않았다.
이러한 워렌 버핏의 가치투자에는 원칙중심이라는 리더십의 원리가 숨어있다. 올바른 인격과 성품을 기초로 단기적으로는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정해진 원칙을 고수해 부하직원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것이 원칙중심의 리더십이다.
또한 그는 소문과 유행, 투기성 매개가 성행하는 월스트리트에서 한 가지 투자원칙을 고수하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투자방식을 주주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회사의 광대한 주식 포트폴리오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리기 위한 ‘포괄이익(look-through earning)’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포괄이익은 손익계산서에 기재되는 수익에다 계열사들의 영업이익과 이익 잉여금을 합하고, 거기에다 이익 잉여금이 실제로 배당된다면 버크셔 해서웨이가 부담해야 할 세금을 공제한 금액으로 결정된다.
그리고 워렌 버핏은 신규 주식을 투자하는데 있어서도 몇 가지 원칙을 정하고 그 원칙을 모두 만족하는 주식에만 투자할 것을 연차보고서 기재한다.(아래 내용은 2007년 2월 연차보고서에서 밝히 신규 주식 매입의 평가 요소이다.)
우리는 다음의 모든 항목을 만족하는 사업을 대상으로 매입할 것이다.
(1) 대규모 사업(세전 수익이 7,500만 달러 이상인 사업)
(2) 지속적인 수익창출 능력 실증(미래 계획에는 관심 없음)
(3) 부채는 없거나 적은 반면, ROE는 좋아야 함
(4) 적격한 경영자가 있어야 함
(5) 기술이 너무 많은 사업은 이해할 수 없으므로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업이어야 함
(6) 가격이 제시되어 있어야 함 (가격 흥정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위의 원칙에서 알수 있듯이 실제로 버크셔 해서웨이는 대형주나 혹은 초대형 주식에만 투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예외가 하나있다. 회사를 통째로 사들이는 경우에는 소형주에도 투자하기도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회사의 자본 배분을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덕성과 신뢰에 기반을 둔 기업 경영
이러한 투자전략은 필수적으로 장기투자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게으름뱅이’ 접근법은 매일같이 주식을 사고파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괴상하게 비쳐질 텐데 이에 대해 워렌 버핏은 엄격한 도덕성을 보여주어 투자자로부터의 평판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단적인 예로, 그는 아직도 1958년 3만 달러를 주고 산 고향 오마하의 시골집에 살고 있으며, 20달러짜리 스테이크나 햄버거를 먹고 자신이 직접 중고차를 몰고 다니는 검소한 모습으로 살고 있으며, “사업상 하는 모든 일이 뉴욕타임즈 1면에 나와도 떳떳할 수 있게 하자”라고 직원들을 독려했다고 한다. ‘돈을 잃어도 괜찮지만 평판은 잃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신념은 직원을 뽑을 때도 두뇌나 에너지 보다 성실(Integrity)을 더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
버크셔 해서웨이 경영의 마지막 특징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권한이양(empowerment)이다. 워렌 버핏은 투자한 회사의 경영자를 깊이 신뢰하고 쉽게 간섭하지 않는다. 또 버크셔 해서웨이의 내부 업무도 대부분 임직원들에게 맡긴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종업원은 3만3,000명이지만, 본부 인력은 12명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신뢰에 기반을 둔 권한이양은 유럽의 대표적인 투자지주회사인 InvestorAB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처럼 투자회사에 대한 지주회사의 신뢰와 권한이양이 수많은 업종에서 수십 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회사로 성장하는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실제로 두 가지 일만 한다. 하나는 우리의 역할을 대신해 줄 경영자를 끌어들이고 잡아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권한의 분배이다. 나는 과중한 모든 업무를 하부 경영진에게 위임했다. 퇴직 시점까지 권한을 위임할 것이다.”
- 포스코 경영연구소 (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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