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마트는 도심에 진출해있는 강력한 경쟁자를 피해 지방에서 성장한 후 도심으로 진출하는 방식을 취한 독특한 케이스다. 월마트의 신화는 1962년에 시작된다. 샘 월튼은 ‘우리는 더 싸게 팝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아칸소 주에 작은 할인 매장을 열었다. 기존 유통 대기업들이 대도시를 놓고 출혈 경쟁을 하는 사이 월마트는 5만 명 규모의 작은 소도시를 중점적으로 공략한다. 지방에서 사세를 키운 월마트는 1980년대 이미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하지만, 도심권으로의 본격적인 진출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 시작된다. 거대 유통 기업들이 경영난에 빠져 성장을 못하는 사이 월마트는 안정적인 성장을 거두었고, 이후 대도시로 진출해 미국 유통시장을 석권하게 된다.
유통이 가격을 결정한다
월마트는 ‘Everyday Low Price’정책을 고수해 할인점 중 최저 가격을 고수하고 있다.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점포를 개설했기 때문에 타 할인점 대비 땅 값과 인건비가 저렴했다. 줄일 수 있는 비용은 철저하게 줄인 것이 월마트의 가격경쟁력의 비결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월마트의 커다란 성공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월마트와 시장에서 사라진 K-Mart와의 차이점은 첨단 IT 기술의 적극적인 도입 여부다. 비용 지출에 인색한 월마트였지만, 유통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던 첨단 IT기술 도입에는 주저하지 않았다.
현재 월마트의 초당 평균 고객 숫자는 2,200만 명이며, 전세계에 7,000여개가 넘는 매장에서 막대한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이런 정보를 사람이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며 하나의 실수로 무수한 잘못된 정보가 양산될 수도 있다. 이런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첨단 IT 도입에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월마트는 세계 최초로 물류 데이터처리센터를 설립했으며, 실시간 모니터링 기능을 갖춘 컴퓨터 물류 정보망을 구축해 구매·재고, 주문, 배송, 판매까지 원스톱으로 처리가 가능하도록 했다. 월마트 매장에서 고객이 상품을 구매하면 구매계획 담당자와 공급사 컴퓨터에도 관련 정보가 입력된다. 이런 정보 활용을 통해 필요한 제품 수량을 적시에 공급받을 수 있어 재고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물류센터 역시 철저한 계획 하에 만들어진다. 하나의 물류센터가 100여개의 소매점을 지원할 수 있도록 소매점 중심 지역에 설립한다. 320km 반경 내 상권에 배송센터 1개꼴이며, 입고 차량에 물건 출고가 함께 처리되기 때문에 유통비용 절감이 이뤄졌다.
월마트는 물류를 하청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본사가 담당해 물류비용의 2-3%를 절감시키고 있다. 물류비용의 2~3%가 제품 판매 가격에 커다란 차이가 있을까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월마트의 최저가 정책을 지키는 근간이 되고 있다. 월마트 본사를 방문한 사람들 대부분이 놀라고 만다. 아직도 아칸소주에 머물고 있으며, 번듯한 대형 건물이 아니라 군대막사와 같은 조립식 목조 건물이 본사이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IT 도입은 비용절감 차원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기에 도입하고 있을 뿐이다. 아칸소주 소도시에는 예상보다 많은 기업 본사들이 몰려있다. 월마트 본사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월마트에 제품을 납품하는 제조기업들이 어쩔 수 없이 본사를 이전시킬 수밖에 없었다. 제조기업이 아닌 월마트가 제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다. 또한 1980년대에 쏘아올린 인공위성을 통해 2만대의 수송 트레일러를 추적하며, 점포 도착시간과 배달 물품을 정확하게 잡아내고 있다. 그리고 2기의 통신위성을 이용해 신용카드 조회를 3초 이내에 가능하도록 했다.
월마트는 보다 빠른 물류를 실현하기 위해 RFID 도입에도 적극적이다. RFID를 통해 선반 결손품 비율이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RFID를 도입한 기업과 도입하지 않은 기업의 판매량은 30% 이상 벌어졌다. 정확한 시점에 적정재고의 입고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월마트 본사에서 유통되고 있는 전체 물량의 RFID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은 10명이 채 넘지 않는다. 아주 적은 인원으로 엄청난 재고 관리가 가능한 이유 역시 RFID 때문이다. 우리가 편의점이나 할인마트에서 볼 수 있는 시스템 대부분이 월마트에서 시도했고, 월마트가 완성해 세계에 보급된 시스템이다. RFID의 성공여부도 월마트에 달려있다.
토종 물류의 지존 ‘E-Mart’
국내에서 대형할인점 시대를 연 기업은 킴스클럽이지만, 본격적인 대형할인점 체인망을 구축한 기업은 E-Mart가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이마트 역시 ‘Everyday Low Price'라는 슬로건으로 1993년 11월 창동점을 오픈한 후 일 평균매출 2억원에 이르는 성공을 거둔다. 이후 신세계라는 막대한 자본력을 배경으로 할인점 설립을 위한 부지를 발 빠르게 선점하고 단시간 내에 다점포화에 성공한다. 백화점 예정지를 할인점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롯데가 국내 할인점 시장에서 이마트를 따라잡지 못한 것은 단지 이마트보다 시장선점에서 약간 늦었기 때문이다. 후발주자들은 할인점에 유리한 지역선점에 늦었기 때문에 SSM(Super SuperMarket)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마트의 가장 대표적인 정책은 최저가격 2배 보상제도다. 동일상권에 이마트보다 싼 상품이 있다면 차액의 두배를 환불해주는 제도다. 실제 보상비용은 적은 반면, 이마트가 제일 저렴하다는 이미지 제고에는 커다란 성과를 가져왔다. 유통업은 규모의 경제가 큰 사업이다. 매출규모가 커질수록 제조업체에 대한 협상력이 커지기 때문에 시장점유율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후발업체와의 매출 격차는 점점 벌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마트의 막대한 시장장악력을 바탕으로 제조기업과의 가격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된 것이다.
이마트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신선식품이다. 이마트 역시 개점 초기 세계적인 유통기업인 월마트를 벤치마킹했지만, 한국에 적용하기에는 쉽지 않은 정책이 많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고, IT 부문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포기하고 점차 자기 색을 강하게 나타내는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 중심에는 신선제품이 있다. 국내 할인점은 기존 재래시장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에 신선제품이 기업 경쟁력을 좌지우지할 것으로 내다보았던 것이다. 신선제품을 확보하기 위해 제주도에 양식어장을 구매하고, 선박을 구매해 오징어를 잡아 각 매장에 공급했다. 이런 결과 ‘신선제품 =이마트’라는 공식을 만들 수 있었다.
인공위성을 통해 제품 입고 시간을 알려주는 월마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마트 역시 IT 시스템 도입에 적극적이었고, 이런 차이가 국내 다른 기업과 차별화를 결정지었다. SCM(공급망관리), 웹 EDI, DWH(데이터분석관리). EAN-14(물류박스바코드) 시스템 등이 시간과 비용절감을 가져올 수 있도록 했고, GOT(점발주)를 통해 날씨정보와 매출동향 등을 그래프를 통해 다양하게 분석, 현장에서 고객들이 선호하는 상품을 즉시 발주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시장정보를 매장사원에서 본사간부, CEO까지 실시간으로 동시 확인이 가능하도록 해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장점이 없어진 월마트 결국 한국 철수
두 기업 모두 IMF가 기회의 장이 되었다. 월마트는 IMF를 한국 진출에 적합한 시점으로 보고 국내 유통기업을 인수한 후 한국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 이후 2004년도까지 매장을 16곳으로 확장한 후 한국 5대 유통업체로 성장한다. 월마트는 충분한 자본과 구매 우위로 저가창고 운영방식이라는 월마트 운영방식을 한국에 이식한 후 한국 할인점 시장 장악을 시도한다. 이런 시도는 시장 초기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기록했으나 2004년을 기점으로 손실을 기록하게 된다. 이마트 역시 IMF시기를 적극 활용했다. 소비자들이 IMF를 기점으로 백화점을 기피하고 할인점을 찾으면서 유통시장의 주류로 성장하게 된다. IMF에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는 상황에서도 이마트는 매장을 지속적으로 확대했는데, 매출 역시 급성장한다. 개점과 동시에 흑자를 기록하는 등 이마트의 성장은 지금까지 멈추지 않았다.
2006년 월마트는 늘어나는 적자 때문에 이마트에 월마트를 판매하고 한국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하고 만다.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할인점 이용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었고, 실제 시장은 그런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왜 월마트가 실패하게 된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판매하는 제품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 것과 소비자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월마트는 할인점이지만 주요 판매품이 신선도가 중요하지 않는 먹을거리와 가전제품인 할인점이다. 이는 미국시장에서 기인한 것이다. 미국에서 신선상품을 취급할 경우 24시간이 넘어가는 유통시간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산지에서 물류센터를 거쳐 각 지점으로 분산하면 이미 신선함은 사라져버리고 만다. 미국에서 월마트가 신선상품을 직접 취급할 경우 오히려 기업 이미지가 악화될 수 있다.
한국은 먹을거리와 가전제품은 분명하게 양분되어 있는 시장이다. 음식은 할인점에서, 가전제품은 가전제품 할인매장을 선호했다. 월마트는 이마트와 경쟁해야 했지만, 하이마트라는 또 다른 할인점과 경쟁해야 했다. 그리고 박스로 구매할 경우 월마트 가격이 저렴했지만, 한번에 구매하기에는 너무 양이 많다. 신선한 야채와 생선을 사기 위해 자주 할인점에 들리는 한국인(특히 주부들) 의 습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미국 고객은 이동거리가 길기 때문에 한번에 많은 것을 구매하지만, 한국인들은 할인점을 동네 슈퍼를 대체하는 수준에서 생각했기 때문에 다양한 제품을 소량 구매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이런 시장의 흐름에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응한 이마트가 월마트를 인수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땅값이 저렴한 장소를 골라 월마트를 개점한 것도 문제였다. 대한민국 주부의 경우 할인점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 쇼핑을 하나로 묶어 행동하는 특성을 간과한 것이다.
월마트가 전세계에서 성공만 거두고 있는 기업은 아니다. 미국시장에서만 판매된 금액으로 세계 제1의 기업이 되었지만 자신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주장하다 한국과 브라질, 그리고 유럽 교두보로 삼으려고 했던 독일에서도 철수하고 만다. 현재 중국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일본 역시 한국과 동일한 상황이라 고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IT가 기업의 경쟁력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고객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그에 걸맞은 마케팅 정책이 수립된 다음 IT를 도입해야한다는 것을 월마트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 Beyond Promise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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