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많은 유럽 국가들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지만, 1939년 소련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독일에 합류한 핀란드에게 남은 것은 막대한 전쟁배상금이었고, 카렐리야 지역의 절반을 소련에게 또 다시 빼앗기고 만다. 사람을 죽이는 전쟁은 끝났지만 핀란드에게는 먹고 살기 위한 새로운 전쟁의 시작이었다.
핀란드의 면적은 남한의 1.5배, 인구는 525만 명. 삼림자원을 제외하고는 부존자원이 거의 없고, 1년 중 절반은 추운 겨울이다. 핀란드 전체가 사람이 생활하기도, 기업이 활동하기도 힘든 척박한 대지다. 핀란드는 1천년 가까운 기간을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비록 2차 세계대전에 독일 측에 참여해 많은 영토를 소련에게 빼앗기기는 했지만, 독립을 지켜낸 것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핀란드다.
핀란드는 역사적인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주변의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해 왔다. 오랜 기간 스웨덴의 지배를 받아왔기 때문에 적대적 의식이 강하지만, 스웨덴이 만든 합리적인 법률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소련에게 땅을 빼앗겼지만, 그렇다고 정치 이데올로기 때문에 오랜 기간 이어온 소련과의 무역을 끊진 않았다. 오히려 소련의 사회주의 장점을 받아들여 자주 경제에 적용 시키기도 했다.
가혹한 자연환경을 이겨낸 불굴의 의지
전쟁이 끝난 시점, 핀란드는 유럽 후진국이었다. 전 국민의 50%가 농업과 임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런 산업기반으로는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될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난 후 핀란드는 군수산업을 민간산업으로 재빠르게 전환했고, 생산성 향상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했다. 핀란드 경제는 1970년대까지 가파르게 성장했지만 펄프, 종이제조 연관 기계공업이 주력산업이었던 후발 산업 국가였으며, 간호사들을 독일에 파견해 수익을 벌어온 것은 영판 1970년대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그러나 작금에 이르러 핀란드의 국가경쟁력은 최상위이지만, 대한민국은 중간정도에서 턱걸이하고 있다. 도대체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핀란드 역시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에 인적자원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고, 고급 인적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핀란드는 국민소득의 7.5%를 교육에 할당하고 있다. 고등학교까지 무상의무교육이며, 대학교에 입학해도 학비는 없으며, 대학원생의 경우 약간의 월급도 받는다. 국가에서 국가 경쟁력의 원천인 교육을 책임지기 때문에 사교육이 판치는 대한민국과 전혀 다른 양상이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정원은 같은 연령층 대비 30%에 불과하며, 핀란드에서 입학할 수 있는 대학교 숫자는 불과 20개 밖에 되지 않는다. 소수 정예를 육성해 이들이 핀란드 지식사회를 이끌어가도록 한 것이다. 나머지 인력들은 기술대학에서 철저하게 회사가 원하는 기능인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고도성장과 함께 복지 시스템의 완성도를 높여왔기 때문에 굳이 대학을 고집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위기상황에도 R&D 투자는 확대
1990년대 소련의 붕괴와 유럽의 금융위기는 고도성장을 이룩하던 핀란드의 발목을 잡는다. 핀란드가 선진국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했다. 이때 당시 핀란드는 대한민국을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비록 GNP는 핀란드가 높지만, 핀란드처럼 부존자원도 없는 상황에서 세계 13위의 무역강국으로 발전한 대한민국의 급속한 성장이 탐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복지를 포기하고 성장위주의 정책을 펼쳐나갔기 때문에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핀란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1994년 청년실업률이 34%까지 치솟자 1996년 핀란드 정부는 위기를 타도하기 위해 ‘지식기반사회로의 선언’을 발표하고 전국에 난립하고 있던 200여개 기술대학을 약 30여개로 통폐합하고, 4년제 직업훈련 기술대학(Polytechnic)을 세운다. 교육은 철저하게 실무 위주로 진행되었다. 교수진은 산업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엔지니어, 기술자 출신으로 채워졌다. 교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박사 학위가 아니라 현장 경험이었다. 기업체들은 세계화에 발맞춰 세계 고객을 상대로 제품설명회를 열 수 있도록 학생들의 영어 활용도를 높일 것을 요구했고, 학교와 정부는 영어로 수업하는 강좌를 300여개 이상으로 확대했다.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을 100% 충족시키는 것이 핀란드 기술대학들이다.
북유럽 최초의 사이언스 파크 ‘울루’
기술대학을 모두 통폐합한 후 기술 대학을 중심으로 과학단지를 조성한다. 긴밀한 산·학 연대를 통해 첨단산업의 집적효과를 올린 것이다. 그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가 바로 울루 테크노폴리스(technopolis)다. 울루시는 헬싱키 북쪽 500km에 위치하고 있는 2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 소도시다. 규모는 작지만 북유럽 최초의 사이언스 파크 도시로 핀란드 GDP의 45%, 전체 R&D 투자의 약 30%, 국가 수출액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울루는 지역 전체가 하나의 인큐베이팅 회사이자 산·학·연·관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거대 복합 기업체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상암 DMC처럼 웅대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 기준으로 본다면 아주 작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수준이다. 외관으로 울루를 평가했다가는 오산이다. 울루 사이언스 파크의 핵심은 울루 대학이다. 1958년 설립된 울루대학은 65년 설립된 전자공학과를 중심으로 고급인력을 공급해왔으며, 1973년 노키아가 울루에 진출하면서 하이테크 중심지로 발전하게 된다. 이후 1974년 국립기술연구센터가 들어서게 된다. 이로서 클러스터의 기본이 갖춰졌지만, 아쉽게도 울루시 산업기반이 취약해 울루대학에서 양성된 고급인력자원들이 다른 지역으로 유출되자, 1982년 울루시를 대주주로 업체, 연구소, 시민의 참여하에 ‘울루 테코노폴리스’를 설립한다. 1999년에는 울루시는 ‘울루 테크노폴리스’를 헬싱키 주식시장에 상장하기도 했다. 핀란드 정부가 1990년대 금융위기를 타개할 새로운 산업으로 IT와 BT를 주목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자 첨단 클러스터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울루의 입지는 더욱 높아진다.
휴대폰 업계의 신화인 Nokia의 산실
울루에서 회의를 할 경우 10분 후에 기업과 관계자 모두가 모여서 회의가 가능하다. 핀란드의 가혹한 자연환경 때문에 사람의 동선이 짧은 곳에 모두 몰려있는 것이다. 기업과 학교, 연구소, 정부기관이 모여 있기 때문에 휴식 공간 자체가 정보 교환의 장이 된다. 단지 내에서 대학과 기업, 연구소의 경계는 따로 없으며 모든 인력의 이동이 자유롭다. 핀란드 대학원생의 95%는 기업에서 석사학위 논문을 쓰며 학생들은 강의실과 기업체, 연구기관을 오가면서 살아있는 지식을 습득한다. 기업들은 학생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며 학생들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도 많다. 노키아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GSM 방식도 이런 산학협력의 성과물이다.
노키아는 기업의 전문가를 대학에 보내 강의를 하도록 하며, 대학교수를 기업 연구소에 초빙해 협력방안을 모색하기도 한다. 상주하고 있는 기업이 대학에 연구중심 프로젝트를 주면 대학은 프로젝트에 맞는 학사과정을 개발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기업 정보가 누출될 가능성은 전무 하다. 핀란드에는 버스, 지하철, 전차 어디에도 검표원이 없을 정도로 정직한 국민성 때문에 입주한 글로벌 기업들은 보안에 커다란 걱정을 하지 않는다. 기업이 투자하지 못하는 기초학문 연구는 핀란드 아카데미가 지원하기 때문에 기초학문도 튼튼하다. 울루 테크노폴리스는 울루시가 주도하는 가운데 지역기업, 울루대학, 중앙정부 등 이사회 회원들이 참가하고 있으며, 핵심기업으로는 노키아, HP, SUN 등 세계 유명 250개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울루에서 배울 점이 많아
핀란드는 GDP 대비 R&D 투자비율이 세계 1위인 국가로 그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연구개발비는 삭감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투자를 확대한 국가다.핀란드의 발전 배경에는 기업과 국민의 요구사항을 빠르게 수용하는 핀란드 정치도 커다란 몫을 했다. 전세계에서 부패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가 핀란드로 각 정당은 정당의 노선을 고집하지 않으며, 기업과 국민의 요구와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한다. 또한 독자적인 정책 수립보다는 기업과 연구소, 학계의 요구를 모두 반영한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핀란드 울루는 외국자본을 유치해 산업을 일으키는 방식에서 벗어나 산/학 협력을 토한 혁신적인 기술 개발로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국가로 변모하고 있어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점이 크다.
- Beyond Promise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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