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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 21. 13:10

스티브 잡스가 천재임은 분명하지만, 그 역시 빌 게이츠처럼 훌륭한 개발자는 아니다. 젊은 시절의 그는 독선적이고 냉철하기로 유명했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가졌지만 타인의 의견을 묵살했고, 타인의 의견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했다. 만약 그에게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조직의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진작 사라졌을 인물이다. 빌 게이츠가 완벽한 조직을 구성해 MS를 성장시켰다면,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힘으로 성장한 인물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소설로 쓴다고 가정해보자. 고아로 태어났고 주차창고에서 회사를 설립해 세계적인 기업인으로 성장한다. 성공의 기쁨도 잠시 믿었던 동료에 의해 회사에서 추출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후 끝없는 추락. 그러나 영화를 통한 화려한 재등장, 그리고 자신이 설립한 기업을 위기에서 구원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생존률 1%라는 췌장암에 걸려 있다. 너무 많은 설정 때문에 독자의 반응은 재미없을 것이며 과도한 설정이 소설의 매력을 떨어뜨렸다고 비난할 것이다. 그만큼 스티브 잡스의 인생은 그 어떤 소설 속 주인공보다 화려하다. 그가 아름다운 이유는 이런 역경에 굴복하지 않고 모두 이겨냈으며 더욱 더 성숙한 인간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인들은 스티브 잡스를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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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성공과 몰락을 거듭

스티브 잡스는 태어나자 마자 미혼모인 조앤 캐롤에게서 버려졌고, 이후 양부모를 만나 정규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양부모의 생활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대학등록금에 평생 모은 자금을 사용해야 했다. 그토록 공부하고 싶었던 물리학이었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해 폐품과 재활용품을 모아야했던 그는 부모님에게 2학기 등록금을 부탁할 수 없었고 결국 대학을 자퇴하기에 이른다.

그가 처음 취업한 곳은 당시 가장 잘나가던 게임회사였다. 얼마가지 않아 뛰어난 그의 능력은 인정받았지만 그에겐는 대중과 어울릴 수 없는 결점이 있었다. 선불교에 빠져있던 그는 목욕을 하지 않았는데, 채식을 하기 때문에 씻지 않아도 몸이 깨끗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악취가 나는 그와의 업무를 즐거워할리 없었고, 회사는 어쩔 수 없이 그를 야간 근무로 전환한다. 지저분한 그에게는 괴짜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가 바로 천재 해커로 알려진 스티브 워즈니악이다.

게임을 좋아한 워즈니악은 HP사에 입사했지만, 게임업체에 취업한 스티브 잡스를 부러워했다. 컴퓨터 활용능력은 뛰어나지만 프로그래밍 언어를 모르던 스티브 잡스에게 게임 기획과 개발 업무가 떨어졌지만, 그는 커다란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천재 프로그래머인 워즈니악이라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게임을 기획한 후 게임을 즐기기 위해 찾아온 워즈니악에게 무제한의 게임을 제공하는 대신 몇 개의 게임을 개발하도록 요구했는데, 이때 만들어진 것이 그 유명한 ‘블록 깨기’ 게임이다.

궁합이 맞은 둘은 1976년 허름한 주차 창고에 모여 최초의 PC를 개발하는데 이것이 바로 애플 I이다. 개인용 PC의 성공을 바탕으로 그는 세계적인 기업가로 거듭나지만, 애플 II를 뛰어넘을 매킨토시 개발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애플Ⅱ를 비하하는 발언으로 절친한 친구인 워즈니악에게 상처를 입히고 결별하게 된다. 워즈니악이 사라지자 그의 독주를 두려워한 애플사의 대주주는 그를 경영일선에서 퇴진시키고 만다. 이후 그는 퇴사를 결정하였지만, 이 결정은 애플과 그에게 좋은 결정이 아니었다. 그가 떠난 애플은 곧 쇠퇴기에 접어들게 된다.

스티브 잡스 역시 애플에서 추출당한 후 지속적인 하락을 거듭하게 된다. IT 업계에는 애플의 집요한 방해 때문에 그가 설 자리가 없었고 그의 아이디어 대부분이 애플사에 귀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역시 IT 회사인 NexT를 설립하지만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몇년 후 대규모 감원을 실행한다. 사람들 시야에서 사라졌던 그가 화려하게 재등장한 것은 IT 업계가 아닌 영화계에서다. 조지 루카스가 특수영상 제작을 위해 설립한 픽사를 인수하면서 만든 첫 번째 100% 3D 애니메이션인 ‘토이스토리’의 성공으로 그는 다시 부활한 것이다.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 등 만드는 작품마다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게 되고 그는 다시 돈방석에 앉게 된다.

애플은 새로운 그래픽 OS를 탑재한 매킨토시의 보급 확산으로 한때 전성기를 구가하지만, 윈도우 95가 출시되자 한자리 수 점유율을 기록하게 된다. 시장이 외면한 상태에서도 지속적인 고수익정책을 고수해 사용자들은 점점 애플을 외면하기에 이른다. 성능은 좋지만, 오피스와 같은 킬러소프트의 부재가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를 가져온다. 적자에 허덕이는 애플에게는 새로운 해적 선장이 필요했고, 스티브 잡스는 쫓겨난 지 12년만에 화려하게 복귀한다.

그는 애플사의 CEO로 재취임하면서 MS로부터 1억 5천만 달러의 투자를 받는다. 빌과 스티브는 물과 기름이다. 한때 인텔의 앤디 그루브가 인터뷰 도중 스티브 잡스를 칭찬하자 그 기사를 본 빌 게이츠가 바로 전화해 그보다 내가 못한 것이 무엇이냐고 따졌을 정도로 이 둘은 앙숙이다. 하지만 회사의 회생을 위해서 빌 게이츠의 도움이 필수였고 스티브 잡스는 자존심을 버렸다. 이 계약으로 오피스 시리즈 등 응용프로그램을 5년 이상 제공받기로 합의했고, 익스플로러를 기본으로 내장하기로 한다. 애플의 지지자들은 배신이라고 비난했지만, 냉혹한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애플은 MS에 무릎을 꿇고 빌어야할 상황이었다. 그리고 1년 후 애플은 4,700만 달러의 흑자기업으로 변화한다. 이후 그가 내놓은 iPod, iPhone은 시장에서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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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에서 Good Listener로

그의 디자인 철학은 한 세대를 앞서나갔다. 컴퓨터의 성능이 중요시되던 시절부터 디자인과 성능 모두를 숭배했다. 특히 디자인에 대한 그의 숭배는 그를 괴짜로 몰고 가기에 충분했다. 너무 앞서갔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컨버전스 시대가 도래 하자 그의 선구자적인 마인드는 극찬을 받고 있다. 무려 30년 전부터 그는 디자인을 결정하고 이후 그에 맞는 기능을 추가하는 방식의 설계를 진행했다. 당연히 그의 제품은 경쟁제품과 차별화될 수밖에 없다.

그가 이야기하는 디자인은 단지 제품의 외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본질적인 인터페이스를 이야기하는 것이다.독불장군에 냉혈한으로 평가받는 스티브 잡스의 피를 따뜻하게 변화시킨 것은 그의 와이프인 로렌이다. 결혼 후 그는 버려져있던 친 딸을 데러와 정성껏 양육해 명문대에 입학시켰고, 그를 버린 생모를 만나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대저택에서 작은 주택으로 이사해 이제 그는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듣는 것을 즐겨하고 있다.

물론 그의 창조적인 재능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에게 가장 큰 위기는 2004년 췌장암 판정이다. 길어야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고 완치확률은 불과1%에 불과했다. 죽음도 그의 정열을 가로막지 못했고, 그의 화려한 소설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 Beyond Promise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