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작된 경기침체가 올해는 본격화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과거를 돌이켜 보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도약한 기업들도 적지 않다. 과연 그러한 기업들은 어떻게 불황을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었을까? 대표적 기업 사례를 통해 그들의 지혜를 배워보자.
요즘 심각한 불황으로 인해 죽겠다는 기업이 많다. 당장 운영자금이 모자라 감원을 하거나 직원들의 봉급을 낮추고, 대출 이자를 갚기 위해 연구개발이나 마케팅에 써야 할 돈을 확 줄여버리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10년 전 IMF 때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어려운 시기에 ‘농부아사침궐종자(農夫餓死枕厥種子)’라는 옛말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농부는 굶어 죽더라도 그 종자를 베고 죽는다는 뜻으로, 미래에 대한 꿈을 잃지 말고 미리 대비를 하라는 의미다. 그러나 비록 죽을 지경까지는 아니더라도 배고픈 시기에 이를 견딜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당장의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는 한끼의 식사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 지금까지 여러 차례의 불황을 이겨내고 소위 잘 나가는 기업으로 탈바꿈한 기업들은 불황기에 무엇을 어떻게 했을까? 불황기에도 미래를 위해 농사 지을 종자만은 버리지 않았을까?
이 글은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과거의 불황기를 되짚어 보며 그 시기를 잘 견뎌 내고 성장한 기업들이나, 어려운 시기를 활용하여 새로운 사업을 일으킨 기업들을 살펴보았다.
불황기에 미래를 준비한 기업
15세기 유럽인들의 꿈은 인도로 가는 직항로를 개척하는 것이었다. 비록 바다의 폭풍우가 거세고 이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겠지만 이 꿈을 꺾지는 못했다. 특히 포르투갈은 국왕의 전폭적인 투자와 수많은 탐험가들의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정신, 폭풍우도 이겨낼 수 있는 선원들의 투지를 모아 1488년 유럽 최초로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발견했다. 이 모험에 앞장선 이가 바르톨로뮤 디아스였다. 그 이후 만 10년 만인 1498년에는 바스코 다 가마가 이끈 선단이 인도로 가는 직항로를 개척, 많은 물품을 싣고 돌아오면서 포르투갈은 이후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었다.
이처럼 대항해 시대에 폭풍우를 견디어 내고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지금의 불황기를 이겨 내고 새로운 성장을 맞이하려는 기업들에게도 꼭 필요한 부분이다. 불황은 머나먼 항해 중에 거대한 폭풍우를 만난 것과 같다.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금리와 환율이 상승하고, 부동산과 주가가 폭락했으며, 전세계적인 불황에 의해 수출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는 결국 가계와 기업의 부채 부담을 가중시키고, 소비심리와 기업의 투자에 대한 의지를 위축시켜 소비와 투자가 동시에 감소하는 경기침체 현상을 빚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결코 지금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이미 90년대 말 IMF 시기를 겪었으며, 전세계적으로도 경기주기의 반복으로 여러 번의 불황이 있었다. 불황기에는 예외 없이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으나 이를 잘 견디고 성공한 기업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기업들의 지혜를 얻기 위해 <그림 1>과 같이 70년대 이래 전세계 GDP 성장률을 분석하여 대표적인 불황기를 찾아 보았다. 여기에는 1·2차 오일쇼크, 80년대 중반 엔고 위기, 90년대 초 불황 및 2000년대 초반 IT버블 붕괴기 등이 있다. 그리고 이 불황기를 기회로 삼아 매출을 신장하고 영업이익률을 높여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기업들을 찾았다. 먼저 핵심역량을 강화해 불황을 정면으로 돌파한 기업으로 인텔과 아사히맥주를, 불황기를 기회로 활용하여 새로운 사업모델을 제시한 기업으로 IBM과 커브스를 대표적인 사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다양한 특징을 살펴보기 위해 B2B 기업과 B2C 기업을 안배했다. 이러한 기업들의 사례를 분석하여 불황 극복을 위한 지혜를 얻어 보기로 하자.
1. 80년대 엔고 위기를 맛으로 이겨낸 아사히 맥주
80년대 미국은 무역수지와 재정적자가 동시에 악화되는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게 되었다. 미국의 경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1985년 9월 G7 국가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 모인다. 여기서 결정된 것이 달러 가치를 내리고 엔화의 가치를 높이는 플라자 합의였다. 이에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발표 다음날 1달러에 20엔이 급락했으며, 합의 후 1년 만에 1달러당 235엔에서 120엔으로 급격한 환율변화가 발생했다. 급격한 엔고는 일본 기업들에 큰 어려움을 안겨 주었다. 수출가격 급등으로 수출이 어려워지고, 공장에 재고가 쌓이면서 설비 가동률이 떨어졌다.
이러한 상황은 아사히맥주에게도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1975년 이후 일본 맥주시장이 포화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엔고 사태가 더해지면서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대규모 경비절감을 통해 적자는 모면할 수 있었으나, 시장점유율이 10% 이하로 추락했다. 불황으로부터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던 아사히맥주는 1986년 3월 주거래은행의 부행장 출신인 히구치 히로따로우를 신임사장으로 맞이한다. 히구치 사장은 가장 먼저 패배주의에 젖어있던 사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전례가 없으므로 할 수 없다’는 보수적인 문화를 ‘전례가 없으므로 하겠다’는 역동적 문화로 바꾸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영업 실적과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신상품 개발에 전력을 기울였다. 불황 극복은 결국 소비자가 선택하는 제품, 즉 가치 있는 상품 출시에 있다고 판단한 히구치 사장은 맥주의 핵심가치인 ‘맛있는 맥주’ 만들기에 주력했다. 그 결과 쌉쌀함과 청량감을 주는 ‘슈퍼드라이’ 맥주를 개발, 일본 맥주시장 역대 최고의 히트작을 만들었다. 슈퍼드라이가 한때 아사히맥주 전체 매출의 85%를 차지할 정도였으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실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불황에도 불구하고 아사히맥주의 기업문화를 바꾸고 히트상품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내실경영을 통한 투자 재원 확보가 선행되었기 때문이다. 아사히맥주는 방만하게 운영되던 구매 비용을 줄이고 업무를 효율화하여 신상품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했다. 신제품이 성공한 이후에는 여기서 나오는 수익을 활용하여 새로운 제품 개발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이러한 적극적인 불황탈출 전략을 통해 아사히맥주는 85년 당시 9.6%에 불과하던 일본 내 시장점유율을 95년 27.6%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2001년에는 일본 최고의 맥주기업인 기린을 제치고 1등 맥주기업의 자리를 차지했다. 지금도 이 때의 경영성과가 지속되어 2007년 말 37.9%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으며 <그림 3>에서 보듯이 86년 당시 2천 6백억 엔에 불과하던 매출액을 1.5조 엔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2. 90년대 불황을 기회로 솔루션 기업으로 변신한 IBM
1980년대 경기 호황을 누리면서 많은 미국 기업들이 M&A를 통한 성장을 선택했다.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고,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한 기업들은 부채증가, 재무구조 악화의 어려움에 직면했다. 여기에 80년대 말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들이 부실화되면서 기업과 가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결국 90년대 초반 소비와 투자가 감소하면서 전체 경기가 침체하는 불황기를 겪게 된다.
불황과 더불어 PC 기능이 급속히 향상되면서 IBM의 주력사업인 메인프레임과 중형 컴퓨터의 수요가 급감했다. 또한 하드웨어의 비약적 발전으로 기업간 차별화가 어려워지면서 서비스와 소프트웨어가 업계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으로 등장했다. 그 결과 대형컴퓨터와 같은 하드웨어에 집중하던 IBM의 영업이익률이 90년 16%에서 91년 1.5%로 급락하는 위기를 맞게 된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한 IBM은 93년 신임회장으로 루 거스너를 맞이한다. 루 거스너 회장은 거대한 공룡인 IBM을 변화시키기 위해 구조조정을 통한 내실경영과 주력사업 전환을 실천에 옮긴다. 비 핵심 부문을 중심으로 92년도에 30만 명에 달하던 직원을 95년까지 18만 명으로 줄이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지나친 구조조정의 여파로 우수한 인재를 잃는 어려움도 겪었으나 외부에서 영입된 경영자로서 변화에 저항하는 직원들과 기업문화를 일시에 바꾸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를 통해 확보한 여력을 바탕으로 주력 사업을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위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했다. 메인프레임 생산 위주의 사업을 소프트웨어 개발과 판매 컨설팅, 프로젝트 사업 등 각종 소프트 관련 사업으로 전환했다. 1995년에는 굴지의 소프트웨어 업체인 로터스를 인수,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했다.
이러한 내실경영과 사업구조 전환의 노력은 성과 향상으로 이어져 <그림 4>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속적인 매출 상승과 10% 이상의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IBM은 2007년 말 기준으로 매출액 980억 달러, 영업이익률 14%에 달하는 초대형 우량기업으로 성장했다.
3. 90년대 경기침체기에 피트니스 클럽의 새로운 장을 연 커브스
90년대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감소로 미국의 전통적인 헬스클럽 시장은 정체기를 맞이한다. 일반적인 헬스클럽은 최신의 운동기구와 각종 부대 설비를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초기 투자비용이 50~100만 달러에 달했다. 이 때문에 고객들도 월 100달러 선의 높은 회비를 부담해야만 했다. 이 정도의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고객은 미국 전체 인구의 12%에 불과했으며 그나마도 대도시에 편중되어 있었다.
이러한 기존 헬스클럽의 한계를 인식한 게리 헤이븐은 새로운 사업모델을 바탕으로 커브스를 창립했다. 의학을 전공하다 중퇴한 게리 헤이븐은 헬스클럽에서 영양사와 코치로 일하며 기존 헬스클럽의 문제점을 인식했다. 그리고 불황의 골이 깊던 1992년 고향인 텍사스에 여성 전용 피트니스센터를 설립, 여성을 위한 ‘퀵 핏(Quick fit) 순환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메이크업 No, 거울 No, 남자 No’라는 슬로건 아래 기존 헬스클럽에서 소외되고 있던 30, 40대 중년 여성을 목표고객으로 삼아 피트니스 산업의 새로운 사업모델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커브스를 단순히 운동하는 장소가 아닌 사교와 교감, 문화교류의 장소로 만들었다. 특히 기존 헬스클럽이 50~100만 달러라는 높은 투자비용이 드는 것에 비해 커브스는 가맹비를 포함, 5만 달러 이하의 저렴한 비용으로 프랜차이즈를 시작할 수 있게 해 쉽게 사업을 확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월 회비를 30달러 정도로 낮출 수 있었고, 하루 한잔의 커피값으로 운동할 수 있는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매년 1백만 달러 이상을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에 투자하여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된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커브스는 창립 3년 후인 95년부터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해 7년 만에 가맹점 6,000개를 돌파, 가장 짧은 기간에 프랜차이즈를 늘린 기록으로 기네스 북에까지 올랐다. <그림 5>에서 보듯이 현재는 전세계 60개국에 1만 개 이상의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회원이 430만 명에 이르고 있다.
4. 2000년대 초 IT버블의 붕괴에도 R&D 투자를 강화한 인텔
1990년대 말 전세계적으로 인터넷 보급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인터넷의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 엄청난 자금이 닷컴 기업들에 투자되고 주가가 폭등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수익모델 없이 과도하게 부풀려진 거품은 2000년부터 꺼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2001년 9.11테러와 연이은 기업회계 부정 사건의 여파로 닷컴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하는 등 경제 전반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반도체와 PC 업계도 IT버블 붕괴의 충격을 피할 수 없었다. 많은 기업들이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설비 투자를 줄이고 R&D 비용을 축소했다. 그러나 인텔은 달랐다. IT업계의 전반적인 불황에 인텔도 영업이익률이 2000년 30.8%에서 2001년 8.5%로 급감하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여기에 동요하지 않았다. 불황의 중심에 있던 2000년과 2001년 사이에 130억 달러를 들여 생산시설을 개선하고 공장, 생산라인, 시험 장비를 신설하는 등 아시아와 세계 각 지역에서 투자를 확대했다. <그림 6>에서 보는 바와 같이 R&D 투자도 2000년 11.6%에서 2001년 14.3%, 2002년에는 15.1%까지 확대했다.
이에 반해 90년대 말 인텔을 추격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던 AMD는 불황이 닥치면서 수익성 악화를 우려해 신규 설비투자를 멈췄다. 1999년 애슬론 중앙처리장치(CPU)를 개발해 2류 기업의 이미지를 탈피한 AMD는 매출 성장률이 한때 인텔의 3배에 이르렀다. 특히 불황이 막 시작되던 2000년 3월, 세계 최초로 1기가헤르쯔(GHz) 속도의 애슬론 CPU를 발표, 인텔에 패배의 쓴 잔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불황기에 적자로 돌아선 상황을 극복하기에는 힘겨웠다. 인력의 15%를 감축하는 등 뼈를 깎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텔과는 큰 차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인텔은 AMD의 추격을 물리치기 위해 설비투자와 더불어 펜티엄4 프로세서에 대한 광고에도 대대적으로 투자했다. 이를 통해 AMD를 멀리 제치고 시장 1위 업체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할 수 있었다.
불황기에 무엇을 해야 하나?
지금까지 불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아내거나 불황기를 활용하여 핵심역량을 강화한 4개의 기업을 살펴보았다. 이 기업들이 지금의 불황기를 대처하는 우리 기업들에 주는 공통된 교훈은 무엇일까? <그림 7>에서 보듯이 크게 3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미래에 대한 식견과 꿈을 바탕으로, 둘째 기업의 기초체력을 다지고, 셋째 핵심역량 및 핵심가치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식견과 꿈을 잃지 마라!
사람은 어려움에 처할수록 꿈과 희망이 필요하다. 농부가 당장의 배고픔에도 종자를 먹지 않는 것은 다음에 돌아올 봄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아사히맥주의 히구치 사장이 취임 후 가장 먼저 주력했던 점이 임직원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었다. 아사히맥주가 비록 3등 기업이지만 고객이 원하는 가치 있는 제품을 만든다면 절대 강자인 기린맥주도 이길 수 있다는 꿈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노력했다. IBM은 불황기의 어려움 속에서도 산업의 변화 방향에 대한 식견을 가지고 이에 맞게 변하려는 의지를 잃지 않았다. 하드웨어 중심에서 서비스와 소프트웨어 중심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거액을 들여 로터스를 인수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커브스를 창립한 게리 헤이븐은 텍사스의 조그만 헬스클럽에서 시작했지만 고객이 원하는 새로운 개념의 헬스클럽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남들과 같이 값비싼 헬스 기구를 갖추기 보다는 진정으로 고객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세계적인 헬스클럽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꿈을 간직했다.
이와 같이 미래에 대한 식견과 비전, 그 비전을 구체화한 목표는 기업에게 불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다. 미래의 시장은 과연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그 변화 속에 기업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고 싶은지,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기초체력을 다지는 기회로 활용하라!
생산성 제고와 원가절감을 통해 기업의 내실을 다지는 것은 불황 극복의 가장 기본적인 전략이다. 당장의 운영 자금이 없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면 더 이상의 미래도 없다. 호황기에 방만하게 운영되어 온 사업구조와 조직을 일신하고 민첩한 기업으로 다시 설 수 있을 때 불황의 계곡을 넘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기업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군살을 제거해야 한다.
아사히맥주의 경우 비용 절감을 통한 자금 확보가 없었다면 슈퍼드라이도 탄생할 수 없었다. 패배주의에 젖어 무기력하게 업무를 수행하던 직원들을 독려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원가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구매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이를 통해 신제품 개발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1등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IBM도 구조조정을 통해 방만한 운영체계를 뜯어 고치고, 표준화로 신제품 출시 기간을 단축할 수 없었다면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제살을 깎아내는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물이 차있으면 암초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물이 빠지면 누구든지 쉽게 암초를 찾을 수 있다. 이처럼 불황기에는 기업 내부에 산재해 있는 낭비적인 요소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지혜로운 기업은 불황을 낭비를 제거하기 위한 혁신의 호기로 삼는다.
핵심역량과 핵심가치에 대한 투자도 잊지 말자!
미래에 대한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불황기에 내실경영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는 기초체력을 확보했다면 그 다음으로 신경써야 할 부분이 미래를 위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다. 인텔의 창업자인 고든 무어는 “기업이 지출을 줄여야 할 때에도 전략적 투자를 위한 기회를 늘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황기에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는 멈추면 안 된다는 뜻이다. 꼭 필요한 투자까지 줄이면 당장의 현금흐름은 좋아질 수 있으나 결국 미래에 더 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먼저 경쟁업체와 나를 차별화할 수 있는 핵심역량을 키워야 한다. 인텔은 매출이 감소하고 영업이익이 급락하던 IT버블 붕괴기에 오히려 생산설비를 확장하고 평소보다 더 많은 금액을 R&D에 투자했다. 물론 매년 20~30%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축적해왔기에 가능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이 불황기를 이유로 일단 투자를 미루고 보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시사점이 크다. 인텔은 이 같은 투자를 통해 경쟁기업인 AMD를 크게 따돌릴 수 있었다.
핵심역량과 함께 꼭 신경 써야 할 부분이 고객을 위한 핵심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불황기에는 고객이 진정 필요로 하는, 그리고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아사히맥주는 고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차별화된 제품만이 회사를 살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슈퍼드라이를 개발했고, 이를 통해 매출을 급격히 높일 수 있었다. 커브스는 신생기업으로 부족한 자금에도 불구하고 고객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에 매년 1백만 달러 이상을 투자한다.
이와 같이 불황을 견디는 힘이 내실경영에서 비롯된다면, 불황기를 딛고 일어서는 힘은 핵심역량과 핵심가치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얻어진다. 물론 불황의 초입에, 그 기간이 얼마간 지속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평소와 같이 투자를 지속하라는 것은 무책임한 말로 들릴 수 있다. 기업의 존폐를 책임져야 하는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보수적인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내실경영만을 강조하고 미래를 위해 필수적인 투자도 미루고, 이로 인해 경쟁우위를 상실한 많은 기업들이 주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린 왕자의 저자인 생텍쥐 베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만일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을 불러모아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등의 일을 하지 말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라.” 미래에 대한 비전과 목표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이 말이 지금의 불황기에 임직원을 대함에 있어 가장 필요한 말이 아닌가 한다. 요즘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도 미래에 대한 식견과 꿈을 바탕으로 기초체력을 튼튼히 하고, 핵심역량과 핵심가치에 투자할 수 있는 기업이라면 임직원에게 바다에 대한, 다음에 돌아올 호황기에 대한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2009년 새해가 밝았다. 신년에는 불황에 대한 푸념만 늘어놓지 말고 다음에 다가올 호황에 대한 희망도 같이 이야기해 보는 것은 어떨까?
- LG Business Insight 10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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