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23. 09:26
30년 만에 세계 교역규모의 절대 크기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최근 각국이 쏟아내고 있는 다양한 보호무역주의적 정책들은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무엇보다 전통적인 관세 및 비관세 장벽 이외에 구제금융지원, 경기부양책 같은 국내 경제정책의 외양을 띤 보호주의적 조치들이 급증했다. 아울러 실제 자국 산업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국가가 선별적으로 강도 높은 개입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올해 각국 보호주의 통상정책의 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현재의 상황을 오히려 글로벌 통상역량 강화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부는 각국의 무역규제 조치로 인한 분쟁해결을 위해 당사국간 무역분쟁 방지 사전조정 프로세스를 정립하고, WTO제소 등 분쟁 유형별 대응 시나리오도 미리 수립해 놓을 필요가 있다. 한-EU FTA를 포함해 동시다발적인 FTA 추진을 통해 한-미 FTA에 대한 우회압박을 시도할 필요도 있다. 우리 기업들은 수출국 정부 정책과 경쟁업체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성장이 예상되는 신흥경제권 시장 발굴에 주력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또 각국 경기부양 과정에서 예상되는 사업기회에 유연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 목 차 >
Ⅰ. 교역 축소 속 거세지는 보호무역주의
Ⅱ. 최근 보호무역주의의 특징과 동향
Ⅲ. 우리가 받는 영향과 대응 방향
세계무역기구(WTO)가 발표한 국제무역통계에 따르면 2007년 세계무역성장률은 2006년 8.5%에서 6%로 떨어졌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기 침체 본격화에 따른 전 세계 수입수요의 급격한 감소를 반영할 경우 지난해 무역성장률은 2%, 그리고 올해는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우리 수출산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우리나라 교역의존도는 76%로 중국 64%, 일본 31%, 미국 22% 등에 비해 월등히 높다. 수출이 내수보다 변동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할 때 높은 교역의존도를 가진 우리 경제는 지금과 같은 급격한 통상환경 변화에 크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속 하락하던 수출증가율이 1월 전년 동기 대비 32.8%로 하락했고 무역수지도 다시 적자로 반전됐다. 우리나라 13대 주요 수출 품목 중 선박류를 제외한 전 품목의 수출이 적게는 19%, 많게는 65%까지 감소했다. 설상가상으로 각국이 자국산업 보호와 경기부양을 위해 연일 자국산 제품 우선 또는 의무 구매 등 보호주의적 무역규제 조치들을 쏟아내고 있다.
사상 유례 없이 악화된 통상환경 속에서 우리 경제는 어디로 갈 것인가? 올해 우리나라 경제가 맞닥뜨릴 통상환경의 변화를 교역대상국들의 통상관련 정책에 대한 분석을 통해 진단해 본다. 또 각국의 보호무역주의적 정책들이 향후 어떠한 모습으로 전개될지, 우리 정부와 관련업계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살펴 본다.
Ⅰ. 교역 축소 속 거세지는 보호무역주의
세계 교역 규모 30년 만에 감소 예상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세계 교역 규모가 올 한해 4~5%정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1월 들어 전년 대비 2.1~2.8% 감소로 전망을 수정했다. 이 경우 1975년의 1.9% 감소 이래 최대 폭의 교역 위축을 맞이하는 셈이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추정한 2008년 전 세계 교역 규모(상품 및 서비스)가 약 19조 달러였음을 감안하면, 올해 약 4천억~5천억 달러의 교역 감소가 예상된다는 의미다. 문제는 현재의 세계 경기 하강 속도가 이러한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는 데 있다. 결국 전 세계 수입수요가 더 큰 폭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우리 수출산업의 시장도 그만큼 더 축소될 우려가 커졌다는 얘기다.
미국시장은 지난해 11월 수출입 규모가 전년 동기 대비 13%나 감소했다. 소비심리 또한 악화돼 컨퍼런스 보드가 발표한 1월 소비자신뢰지수는 37.7로, 1967년 지수 산정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4사분기까지 약 6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 가계의 자산 손실 확대도 소비를 둔화시켜 수입수요를 더 감소시킬 것으로 보인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유럽연합(EU) 주요 회원국들과 일본의 수입수요도 두 자릿수 감소세를 기록 중이다.
중국 등 신흥시장들의 여건도 좋지 않다. 우선 중국은 2008년 우리 전체 수출에서 21.7%를 차지하는 우리의 최대 수출대상국이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 발표에 따르면 3개월 연속 수입이 감소세를 보여 우리 경제에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중국은 우리 경제 최대의 해외 생산기지로서 우리 원재료나 반제품을 수입하는 우리나라 전체 가공품 수출무역의 약 56%를 차지하는 거대 수출시장이기 때문이다. 이밖에 우리나라 10대 수출대상국인 러시아, 인도, 멕시코 등 신흥경제권 국가들과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의 수입수요도 30~50%의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다.
보호무역주의 거세질 조짐
세계 통상환경을 더 어렵게 만드는 원인은 비록 자국경제 회생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겠지만, 최근 세계 각국이 주저 없이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세계 경기가 급속히 침체하자 주요국들은 대응책 강구를 위해 11월 20개국 정상회담(G-20)을 개최했다. 참가국들은 WTO 다자간 무역협상인 도하라운드(DDA)의 조속한 합의 도출에 힘쓰고, 향후 12개월 동안 신규 무역장벽을 만들지 않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며칠도 지나지 않아 러시아는 수입자동차 부문에, 인도는 외국산 철강제품에 큰 폭의 수입관세를 부과함으로써 말뿐인 합의가 되어버렸다. 세계무역기구 조사결과 관세인상, 수입제한 등 지난해 10월 이후 시행 또는 검토 중인 각종 무역규제 조치는 38건에 달한다.
이처럼 각국의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는 자유무역에 대한 지난 수십 년 동안의 노력을 훼손하고 세계 교역질서를 교란시킴으로써 세계경제의 성장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1986년 우루과이라운드(UR) 출범 이래 상품에 부과되는 전세계 평균 관세율은 26%에서 지난해 상반기 8.8%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각국은 자국산업 보호 등을 명목으로 수입관세를 경쟁적으로 올리고 있다. WTO는 만약 153개 회원국이 서로 합의했던 현 수준의 양허관세율(Applied Tariff Rate)을 최대 허용치인 한계관세율(Bound Tariff Rate) 수준까지 인상하게 되면 교역규모 감소 폭이 전 세계 무역의 8.2%, 약 1조 6천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에 걸친 각국의 자유무역을 향한 각고의 노력은 국가간 무역장벽을 꾸준히 제거해 왔다. 그 결과 2000년 이래 개도국과 후진국들이 차지하는 세계 수출 비중은 그 이전의 2배인 42%까지 올라간 상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호무역주의화는 단순히 수치적 후퇴를 의미한다기보다 국가간 합의하에 정립된 세계경제 메커니즘에 대한 신뢰 상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그림 1> 참조).
Ⅱ. 최근 보호무역주의의 특징과 동향
최근의 각국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방식과 내용면에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어 우리 정책당국과 수출업계의 주목과 대응을 요한다. 최근 우리 기업들에게 제약으로 다가오는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의 특징과 동향을 살펴보자.
1. 최근 보호무역주의 양상과 특징 : 개입 범위 확대와 강도 증가
미국발 위기발생 이후 발표된 각국의 보호주의 통상정책의 내용을 보면 크게 ▲ 무역규제(관세 및 비관세), ▲ 국내산업 지원책(구제금융 및 경기부양)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이들 정책들이 보호주의적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는 그 이전 정책들과 유사하다. 그런데 개입 범위가 확대되고 강도가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종전과는 다른 특징들이 발견된다.
우선 개입 범위 측면에서 보면, 전통적 무역구제 수단인 관세나 비관세(수량제한 등) 조치들 외에 국제규범(WTO) 내에서 다루지 않고 있거나 견제할 수 없는 기법을 통해 개입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국내산업 보호를 위한 우회적 보호주의 수단이라 할 수 있는 인위적 환율조정, 고용보호 목적의 입법과 기업 세제 혜택 부여, 수출세 환급 등이다. 나아가 민간부문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기업에 대한 지급 및 채무보증 등도 간접적인 보호무역 효과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보호무역주의의 확대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또 다른 특징은 국가의 개입 강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WTO 상품 및 서비스 무역협정(Agreement on Goods and Services)에 의하면 국가는 외국이나 외국기업의 공정 또는 불공정 무역으로 인해 자국의 산업이나 기업이 ‘피해를 받았다고 인정될 때’에 한해 ‘명시적으로 규정된 관세 또는 비관세’ 조치들을 사용해서 피해를 복구하도록 허용되어 있다. 이를 ‘WTO 무역구제조치’라 하는데, 그 유형으로는 반덤핑 관세,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등이 있다. 이는 무분별한 무역구제조치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실제 피해가 발생한 이후의 사후적 조치만을 인정하겠다는 취지이다. 하지만 최근 각국 무역조치들은 실제 외국과의 무역으로 인해 피해발생이 구체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일방적으로 관세 등 무역구제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정도가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행위는 피해발생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사전 조치를 취하겠다는 식의 사전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의 형태라 할 수 있는데, 이는 WTO 협정 위반에 해당한다.
일례로 WTO 정보통신협정(ITA)상 무선통신기기는 무관세 적용을 받게 되어 있다. 하지만 EU는 TV기능이 내장된 무선통신기기를 가전제품으로 품목유형을 변경함으로써 외견상 WTO 규약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관세를 올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교묘한 방식의 보호무역 조치들은 시장경쟁의 영역에 국가가 개입 강도가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 다른 사례로, 러시아는 극동시베리아지방에 수입되는 자동차들 중 ‘오른쪽 운전석 차량’에 한해 수입관세를 대폭 인상했다. 일본산 자동차 수입을 견제함으로써 자국 자동차업체를 보호하려는 의도다. 이는 매우 노골적인 국가의 시장 개입으로 역시 국가 개입의 강도가 증가한 예이다.
지난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1월까지 조사된 각국 무역규제 조치 중 피해가 실제 발생하고 WTO 규정에 부합하는 무역규제 조치는 전체 38건 중 단 한 건(미국의 농축산물 원산지 표시 의무화 조치)에 불과하다.
이처럼 경기부양책과 구제금융 투입 등 한 국가의 국내 정책 형태를 띤 조치들은 비록 국민경제 회생을 위한 지난한 노력의 부산물이라고는 하지만 이 속에 강력한 보호주의적 장벽이 숨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동아시아 외환위기 때나 2000년 초 IT버블 붕괴 때에도 소위 정책금융(공적자금)이라는 수단을 통해 국가가 자국 산업과 업계에 대한 지원을 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국가의 경제회복 조치에 대해 WTO 국제무역규범 위반이라는 등의 적극적인 반발이 크지 않았다. 그 영향이 일부 지역에 국한돼 있었고 특정 산업에 해당함으로 인해 피해의 파급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국, 프랑스, 영국 등의 자국 자동차 산업 지원과 대만, 일본의 자국 전자업체들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등에 대해 ‘EU 경쟁법 위반’ 내지 ‘WTO 불공정 무역관행’이라는 이유로 전 세계 이해 당사국 정부와 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현재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Buy American’ 조항과 같은 정부조달 시장에서의 자국산(自國産) 우선 구매 조항, 부실은행 등 금융기관 등에 대한 구제금융(공적자금) 투입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방식의 보호주의 정책은 타국의 수출 기업들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WTO를 통해 해결하는 데에는 피해 당사자의 입증책임 등 넘어야 할 제약이 많고 소요기간도 길어 원만한 해결이 매우 어렵다. 또 주권국가의 국내 정책에 대해 국제기구가 개입할 여지는 여전히 크지 않은 실정이다. 이렇듯 최근 각국의 보호주의적 통상 정책들은 개입영역 확대와 규제방식 고도화로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수십 년에 걸친 자유무역주의의 성장 이면에서 보호무역주의도 교묘하게 탈바꿈을 해온 셈이다.
2. 각국 통상 정책의 현황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1월 말 현재까지 각국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시행중인 통상 및 수입규제 조치는 총 6개국 13건으로 파악된다. 미국의 한국산 디젤엔진부품에 대한 상계관세 1건, 중국의 한국산 석유화학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 1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중 실제 금액이나 물량의 형태로 피해가 현실화 된 예는 우크라이나와 터키의 한국산 섬유, 전기부품, 기계 등 5건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조치(Safeguard)이다. 하지만 예상 피해액은 미미해서 전체 수출시장을 놓고 보면 아직은 보호무역조치로 인한 타격이 작아 보인다. 규제조치의 형태도 WTO가 허용하고 있는 무역구제조치들에 한정돼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WTO에 따르면 같은 기간 전체 153개 회원국이 실행 중인 무역규제 조치는 19개국 23건이다(<표 1> 참조). 실행여부를 검토 중인 조치들까지 합하면 25개국 38건에 달한다. 파악되지 않는 각국의 수면 밑 조치들은 제외한 수치다. 무역규제 조치 시행국은 우리나라의 10대 수출대상국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지난해 10대 수출대상국은 우리 수출의 76.6%를 차지했다. 이를 우리나라 13대 주요 품목별로 보면 선박류(2008년 수출비중 9.6%), 컴퓨터(2.6%)를 제외한 나머지 11개 품목군에서 직간접적인 무역규제조치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역규제 장벽으로 대부분의 수출시장과 상품이 영향을 받게 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주요 교역대상국들의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을 국가별 정책분석을 통해 살펴 보자.
미국 : 명분은 자유주의, 실리는 보호주의
미국의 명분은 공정무역(Fair Trade)를 통한 자유무역주의를 지향하고 있다지만 실제 정책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보호무역주의의 색깔이 짙다. 최근 미국은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n) 조항에 대해 비난이 높아지자 경기부양안에 대한 상원 구두표결에서 기존 국제협정을 맺은 나라들에게는 적용하지 않을 것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우리 철강업계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조치다. 원안대로 통과된다 할지라도 현재의 인프라(SOC) 건설 및 보수에 필요한 철강제품에 대해서만 적용할 계획이라면 주로 형강류와 봉강류가 대상이 된다. 우리나라 대미 주력 철강제품은 형강류와 봉강류가 아닌 판재류이기 때문에 우리 기업의 피해는 제한적일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새로운 협정을 체결할 경우엔 보호주의적 규제를 적용하겠다는 의미도 된다. 실제 미 상원 민주당 일각에서는 각계의 우려를 뒤로하고 바이 아메리카 조항을 인프라 관련 공산품 전체로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을 준비 중이다. 이 경우 자동차, 반도체, 석유화학, IT제품 등 거의 모든 대미 수출품목이 영향권에 들면서 우리 공산품 수출이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미국은 공정무역이라는 명분하에 ‘2008 신 무역정책’을 제시하고, ‘2009 무역이행법’을 입안 중이다. 하지만 이런 명분의 이면에는 보호주의 해석의 여지가 높은 조치들을 수반하고 있다. 그 예로 지난해 9월 이후 각국 수입품목에 대한 견제차원에서 품목별 무역구제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현재는 중국이 21건으로 가장 많은 제재를 받고 있다. 한국산 스테인레스 철강 파이프 제품도 1건 포함돼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실제 ‘미국의 산업을 보호하고 불공정 무역으로부터 고용을 지키기 위해(Safeguarding American Industries and Jobs against unfair trade)’라는 제하의 미 상무부 수입무역국의 정책 입안 및 운영지침에 반영된 내용이다.
미 행정부의 신 통상정책 5대 핵심 내용은 공정무역(Fair Trade) 강화, NAFTA 개정, 무역조정지원(TAA) 강화, 해외고용 증대 기업 세금우대 폐지, 국내고용 창출 기업 조세혜택 강화로 정리된다. 그런데 이들 내용은 교역 상대국들 입장에서 볼 때 ‘자유’라는 말보다 ‘보호’라는 말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 대통령이 언론을 통해 미국 통상정책의 궁극적인 지향이 자유무역에 있음을 연일 강조해도 세계가 신뢰의 마음을 주지 못하는 이유다.
이러한 미국의 공정무역을 명분으로 한 보호주의 정책은 자국의 근로자 고용 창출, 공정한 노동 및 환경 정책 확산 등을 이유로 각국에 대한 무역규제조치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불황에 처한 미국업계 보호를 위해 한국산 섬유, 철강, 반도체, 가전 등 우리 주력 수출품에 대해 반덤핑 및 상계관세, 수입량 규제와 같은 보호주의 조치를 강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의 세계 경제에 대한 영향력이 과거 전성기 때에 비해 줄어든 건 사실이나 아직까지는 엄연히 국제 통상 질서의 규칙 제안자(Rule-Setter)이다. 미국의 통상 관련 정책과 법률은 그만큼 파급효과가 크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바마 행정부의 신 통상정책(New Trade Policy)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세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편 지금의 어려운 시기가 지나면 미국의 향후 장기적인 통상정책 방향이 다시 자유무역쪽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FTA만이 아니라 WTO 도하라운드도 논의를 재개할 것이다. 그리고 공정무역을 통한 다자주의 자유무역의 완성이라는 명분하에 기존 상품, 서비스 분야는 물론이고 환경과 노동관련 다자라운드도 출범시킬 가능성이 높다. 현재 미국의 통상정책 방향은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사 키워드를 빌려 표현하자면 ‘대외협력과 공존(Cooperation and Coexistence)’보다는 ‘미국경제 우선 회생을 위한 재건(Remaking of the US for Recovery)’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하겠다.
중국 : 내수중심 경제로의 이행을 위한 이중잣대 룰 구사
중국도 미국을 견제하기보다는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보호주의로 기우는 모습이다. 중국의 30년 개혁개방정책이 꽃을 피울 수 있었던 데에는 2000년대 들어 국제사회의 글로벌 임밸런스(미국과 그 교역 상대국 사이의 막대한 국제수지 불균형) 현상에 대한 용인이 큰 역할을 했다. 즉,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위안화 저평가를 수용하여 값싼 중국산 제품을 사줌으로써 중국의 경제발전을 뒤받침했다(<그림 2> 참조).
이에 중국도 그간의 무역수지 흑자 누적으로 인한 외환보유액 급증에서 오는 거시경제적 압력과 미국과의 환율 갈등에서 오는 무역분쟁 해소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중국은 현실적으로 아직은 그럴 여유가 없는 모습이다. 아직은 안정적 경제성장을 위해 8%대 성장률 사수라는 입장에서 위안화 환율의 적정관리와 이를 통한 수출의 현상유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내수중심형 경제로의 이행이라는 정책 기조전환의 효과가 발현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수출부문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글로벌 임밸런스 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결과 오히려 위안화 절상을 놓고 벌이는 미국과의 환율 갈등,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n) 조항으로 촉발된 철강제품 수입규제 마찰 등 보호무역주의의 파고를 증폭시키는 데 한 당사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중국의 통상정책은 경제성장률 유지와 내수중심형 경제로의 이행과정상에 발생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호주의와 자유주의의 이중잣대를 활용할 전망이다. 최근 중국 상무부는 바이 차이나 정책을 취하지 않겠다고 천명했으나 실제로는 자국 기계설비를 사용하는 기업에게 제품하자 보상을 해주고 있다. 또 지방 농민층에 1조원 규모의 정부 보조금 지급을 통해 가능하면 자국산 가전제품 구매를 유도하는 소위 ‘가전 하향(下鄕)정책’도 확대하고 있다. 한편 이와는 대조적으로 최근 한국산 폴리에틸렌(PE)와 폴리프로필렌(PP) 등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개시하고, 인도의 중국산 장난감 수입 금지조치에 대해서는 WTO 제소를 검토하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현재 중국 수출에 있어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중국 기업의 수출상품 3,700여 개에 대한 수출세환급정책 재도입, 상하이자동차(SAIC) 등 자국 산업에 대한 세제혜택과 구입보조금 지급 등 무역규제 조치들 때문이다. 우리 최종 소비재가 중국시장에서 외국산 제품에 비해 상품 포트폴리오 다양화, 마케팅, 브랜드 인지도 등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해 뚜렷한 성과를 못 내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내수중심 경제로의 전환이 진행되고 있어, 우리 기업들의 대응이 시급하다.
EU, 일본과 신흥경제권 : 조정자 역할 부족
마지막으로 유럽연합(EU)과 일본도 자유무역의 깃발을 내려 놓고 있는 모습이다. 바이 아메리카 조항이 나오고 미국의 위안화 절상 요구에 대해 최대 미국채 보유국인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가 2월 초 미국채 추가매입 거부 가능성을 표명하는 등 미-중 갈등 개시 초기만 하더라도 유럽연합(EU)은 이를 비판하며 자유무역의 수호천사 역할을 담당하는 듯 했다. 하지만 EU 일부 회원국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지금은 보호무역 규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되었다. 경기부양책이라는 명분을 걸고 프랑스는 르노, 푸조, 시트로앵 등 자동차 업체에 60억 유로를 지원하고 외국기업의 M&A로부터 자국 기업을 보호하는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영국과 스웨덴은 자동차업계에 채무보증을 하기로 했고 독일은 오펠에 대한 18억 유로 융자 등 EU 공정경쟁법에 저촉되는 무역규제를 늘리고 있다. 일본도 자국 자동차 및 전기전자 업계에 대한 대규모 구제금융과 수출지원 정책 등을 통해 보호주의 색채를 띠고 있다.
한국무역협회(KITA) 통계에 따르면 신흥경제권이라 불리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베트남, 남아공, 멕시코, 칠레 등에서도 우리나라 제품에 대한 수입규제가 총 121건으로 특히 지난해 하반기에 70%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Ⅲ. 우리가 받는 영향과 대응 방향
1.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
최근 쏟아지는 각국의 보호주의적 통상정책들이 우리나라 경제와 수출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산술적으로 정확하게 추정해 내기는 매우 어렵다. 앞서 언급한 38건의 규제조치들을 보면 관세인상 11건, 반덤핑 또는 비관세 장벽 14건, 자국산업 간접지원(수출보조금 또는 수출세 환급 등) 13건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관세인상분이 반영된 가격변화로 인해 과연 판매물량이 얼마나 감소할지를 정확히 산정하기가 어렵고 또 제품 특성(소비재 vs. 사치재 또는 내구재 vs. 비내구재), 마케팅 등 비가격적 측면의 영향도 판매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정확히 전체 물량의 몇 %가 판매 감소될지 정확한 영향을 정량적으로 추정하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점은 이러한 조치들이 외국에 수출되는 우리나라 상품의 수입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현지 소비수요 감소로 나타날 것이라는 점이다.
수입량 제한(Quota)이나 일방적으로 수입을 중단하는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등 비관세 규제 수단으로 인한 피해 규모나 영향력은 관세와 같은 가격통제의 경우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각국의 경기부양책으로 분류되는 정책들은 대부분 이런 직접적인 규제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편 국가별로 잇따라 발표되고 있는 다양한 경기부양책들 가운데 우리 수출기업들에게 기회요인이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자못 크다. 그러나 외국의 자국산업 지원을 위한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책 등 자국산업 지원을 위한 국내 정책들이 우리 수출산업에 미칠 수 있는 정성적 영향을 살펴보면 자국산업 보호와 고용유지, 수출산업 지원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 우리 수출업계에 대한 기회보다는 위험요인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 EU, 일본 등 선진국들의 경기부양책들은 우리 기업의 해당국 정책과 연관된 사업분야 참여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내용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국가의 부양책은 주로 자국 내 특정산업에 대한 금융지원, 고용유지, 내수소비 진작을 위한 직간접적 세제 혜택 등 중심이어서 우리 기업들의 참여 가능성 자체가 원천적으로 낮다. 또 이러한 지원책의 수혜 기업들이 우리나라 기업들과 경쟁관계에 있다. 다만 각국의 경기부양책이 경제를 살리는 데 기여할 경우 전체 수입수요가 살아나서 우리의 수출에도 도움을 주는 간접적인 효과는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신흥경제권 국가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기회가 많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국가는 제조업 기반을 육성하려는 정책 지향과 자원개발, 사회인프라 구축 등 기간산업 정비가 경기부양의 주목적이어서 우리 기업들의 연관분야 사업참여 기회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 우리 정부와 기업의 대응
미국은 공정무역을 표방하며 자유무역의 기치를 내세우고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실리위주의 무역규제조치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내수중심형 경제로의 이행기 동안 위안화 절상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수출에 매진할 전망이다. EU와 일본은 환경분야에서 그 동안 구축해온 시장구조와 첨단 기술력을 무기로 무역과 연계한 환경라운드를 본격화할 움직임이다. 신흥경제권 국가들도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그 동안의 다자간 합의를 뒷전으로 하고 각종 보호무역 규제조치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이처럼 최근 국제 통상환경은 국가간 무역갈등 조정과 통상질서 재편에 대한 주도적인 연출자가 없는 상태이다. 최근 있었던 선진국 G-7회담에서도 뚜렷한 방향성을 잡지 못했다. 오는 4월에 있을 G-20회담까지는 눈치보기가 계속될 전망이다.
상황이 호전돼 앞으로 세계 경기가 회복이 되더라도 보호주의적 통상정책은 형태와 내용을 달리하며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한번 인상된 관세나 추가된 비관세 무역장벽들을 다시 원상회복시키거나 감축해 나가는 데 있어 시간도 시간이지만 국가간 합의 도출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미증유의 경기 침체를 경험해 본 신흥경제권 국가들은 이번 충격을 통해 시장보다는 국가의 개입을 우선시 하는 국가자본주의의 영향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보호주의적인 통상환경이 세계 경제 위기 이전의 상황으로 회복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앞서 봤듯이 관세만 보더라도 1986년 비교시점의 1/3수준으로 줄이기 위해 세계는 20년을 보내야 했음을 상기하면 앞으로 여정의 험난함을 예상할 수 있다.
정부는 각국의 불공정한 무역규제에 대해서는 당사국간 무역분쟁 방지를 위해 사전조정 프로세스를 정립하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WTO 무역구제조치와 분쟁해결기구(DSB)를 통한 적극적인 대응 시나리오도 미리 수립해 놓을 필요가 있다. 또 각국의 무역규제 조치에 의해 영향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수출품목을 별도 관리하고, 기업에게 무역규제관련 정보를 신속히 제공하는 지원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도 보호주의 파고를 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요구된다. 수출대상국 정부의 무역관련 정책과 경쟁업체의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 하는 가운데 각국 경기부양 과정에서 오는 사업기회에 적극 참여할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또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성장이 예상되는 신흥경제권 시장 발굴에 주력하고 유연한 생산공급망관리(SCM) 체제, 물류·유통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언제 생길지 모를 환경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보호주의적 통상환경 타개를 위해 국제공조를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전 세계 FTA 추진이 눈에 띄게 약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EU FTA가 3월 타결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음은 시사하는 바 크다. 보호주의가 확산되는 때일수록 우리 정부는 다수 국가들과의 FTA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각국 무역규제 영향을 최소화시키고, 한-미 FTA 비준에도 우회적인 압력을 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농업부문 이슈로 난관에 봉착해 있는 WTO 다자간 무역협상인 도하라운드(DDA) 진행을 위해 한-인도 CEPA(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논의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조정자 역할을 찾아보는 적극성도 요구된다. 즉, 과거 농업부문 협상 경험을 통해 현재 강경한 입장에 있는 인도와 미국간 농업부문 갈등 완화를 유도함으로써 자유무역논의가 본 궤도로 복귀될 수 있도록 전방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LG Business Insight 1029호
< 목 차 >
Ⅰ. 교역 축소 속 거세지는 보호무역주의
Ⅱ. 최근 보호무역주의의 특징과 동향
Ⅲ. 우리가 받는 영향과 대응 방향
세계무역기구(WTO)가 발표한 국제무역통계에 따르면 2007년 세계무역성장률은 2006년 8.5%에서 6%로 떨어졌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기 침체 본격화에 따른 전 세계 수입수요의 급격한 감소를 반영할 경우 지난해 무역성장률은 2%, 그리고 올해는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우리 수출산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우리나라 교역의존도는 76%로 중국 64%, 일본 31%, 미국 22% 등에 비해 월등히 높다. 수출이 내수보다 변동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할 때 높은 교역의존도를 가진 우리 경제는 지금과 같은 급격한 통상환경 변화에 크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속 하락하던 수출증가율이 1월 전년 동기 대비 32.8%로 하락했고 무역수지도 다시 적자로 반전됐다. 우리나라 13대 주요 수출 품목 중 선박류를 제외한 전 품목의 수출이 적게는 19%, 많게는 65%까지 감소했다. 설상가상으로 각국이 자국산업 보호와 경기부양을 위해 연일 자국산 제품 우선 또는 의무 구매 등 보호주의적 무역규제 조치들을 쏟아내고 있다.
사상 유례 없이 악화된 통상환경 속에서 우리 경제는 어디로 갈 것인가? 올해 우리나라 경제가 맞닥뜨릴 통상환경의 변화를 교역대상국들의 통상관련 정책에 대한 분석을 통해 진단해 본다. 또 각국의 보호무역주의적 정책들이 향후 어떠한 모습으로 전개될지, 우리 정부와 관련업계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살펴 본다.
Ⅰ. 교역 축소 속 거세지는 보호무역주의
세계 교역 규모 30년 만에 감소 예상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세계 교역 규모가 올 한해 4~5%정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1월 들어 전년 대비 2.1~2.8% 감소로 전망을 수정했다. 이 경우 1975년의 1.9% 감소 이래 최대 폭의 교역 위축을 맞이하는 셈이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추정한 2008년 전 세계 교역 규모(상품 및 서비스)가 약 19조 달러였음을 감안하면, 올해 약 4천억~5천억 달러의 교역 감소가 예상된다는 의미다. 문제는 현재의 세계 경기 하강 속도가 이러한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는 데 있다. 결국 전 세계 수입수요가 더 큰 폭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우리 수출산업의 시장도 그만큼 더 축소될 우려가 커졌다는 얘기다.
미국시장은 지난해 11월 수출입 규모가 전년 동기 대비 13%나 감소했다. 소비심리 또한 악화돼 컨퍼런스 보드가 발표한 1월 소비자신뢰지수는 37.7로, 1967년 지수 산정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4사분기까지 약 6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 가계의 자산 손실 확대도 소비를 둔화시켜 수입수요를 더 감소시킬 것으로 보인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유럽연합(EU) 주요 회원국들과 일본의 수입수요도 두 자릿수 감소세를 기록 중이다.
중국 등 신흥시장들의 여건도 좋지 않다. 우선 중국은 2008년 우리 전체 수출에서 21.7%를 차지하는 우리의 최대 수출대상국이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 발표에 따르면 3개월 연속 수입이 감소세를 보여 우리 경제에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중국은 우리 경제 최대의 해외 생산기지로서 우리 원재료나 반제품을 수입하는 우리나라 전체 가공품 수출무역의 약 56%를 차지하는 거대 수출시장이기 때문이다. 이밖에 우리나라 10대 수출대상국인 러시아, 인도, 멕시코 등 신흥경제권 국가들과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의 수입수요도 30~50%의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다.
보호무역주의 거세질 조짐
세계 통상환경을 더 어렵게 만드는 원인은 비록 자국경제 회생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겠지만, 최근 세계 각국이 주저 없이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세계 경기가 급속히 침체하자 주요국들은 대응책 강구를 위해 11월 20개국 정상회담(G-20)을 개최했다. 참가국들은 WTO 다자간 무역협상인 도하라운드(DDA)의 조속한 합의 도출에 힘쓰고, 향후 12개월 동안 신규 무역장벽을 만들지 않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며칠도 지나지 않아 러시아는 수입자동차 부문에, 인도는 외국산 철강제품에 큰 폭의 수입관세를 부과함으로써 말뿐인 합의가 되어버렸다. 세계무역기구 조사결과 관세인상, 수입제한 등 지난해 10월 이후 시행 또는 검토 중인 각종 무역규제 조치는 38건에 달한다.
이처럼 각국의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는 자유무역에 대한 지난 수십 년 동안의 노력을 훼손하고 세계 교역질서를 교란시킴으로써 세계경제의 성장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1986년 우루과이라운드(UR) 출범 이래 상품에 부과되는 전세계 평균 관세율은 26%에서 지난해 상반기 8.8%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각국은 자국산업 보호 등을 명목으로 수입관세를 경쟁적으로 올리고 있다. WTO는 만약 153개 회원국이 서로 합의했던 현 수준의 양허관세율(Applied Tariff Rate)을 최대 허용치인 한계관세율(Bound Tariff Rate) 수준까지 인상하게 되면 교역규모 감소 폭이 전 세계 무역의 8.2%, 약 1조 6천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에 걸친 각국의 자유무역을 향한 각고의 노력은 국가간 무역장벽을 꾸준히 제거해 왔다. 그 결과 2000년 이래 개도국과 후진국들이 차지하는 세계 수출 비중은 그 이전의 2배인 42%까지 올라간 상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호무역주의화는 단순히 수치적 후퇴를 의미한다기보다 국가간 합의하에 정립된 세계경제 메커니즘에 대한 신뢰 상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그림 1> 참조).
Ⅱ. 최근 보호무역주의의 특징과 동향
최근의 각국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방식과 내용면에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어 우리 정책당국과 수출업계의 주목과 대응을 요한다. 최근 우리 기업들에게 제약으로 다가오는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의 특징과 동향을 살펴보자.
1. 최근 보호무역주의 양상과 특징 : 개입 범위 확대와 강도 증가
미국발 위기발생 이후 발표된 각국의 보호주의 통상정책의 내용을 보면 크게 ▲ 무역규제(관세 및 비관세), ▲ 국내산업 지원책(구제금융 및 경기부양)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이들 정책들이 보호주의적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는 그 이전 정책들과 유사하다. 그런데 개입 범위가 확대되고 강도가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종전과는 다른 특징들이 발견된다.
우선 개입 범위 측면에서 보면, 전통적 무역구제 수단인 관세나 비관세(수량제한 등) 조치들 외에 국제규범(WTO) 내에서 다루지 않고 있거나 견제할 수 없는 기법을 통해 개입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국내산업 보호를 위한 우회적 보호주의 수단이라 할 수 있는 인위적 환율조정, 고용보호 목적의 입법과 기업 세제 혜택 부여, 수출세 환급 등이다. 나아가 민간부문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기업에 대한 지급 및 채무보증 등도 간접적인 보호무역 효과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보호무역주의의 확대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또 다른 특징은 국가의 개입 강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WTO 상품 및 서비스 무역협정(Agreement on Goods and Services)에 의하면 국가는 외국이나 외국기업의 공정 또는 불공정 무역으로 인해 자국의 산업이나 기업이 ‘피해를 받았다고 인정될 때’에 한해 ‘명시적으로 규정된 관세 또는 비관세’ 조치들을 사용해서 피해를 복구하도록 허용되어 있다. 이를 ‘WTO 무역구제조치’라 하는데, 그 유형으로는 반덤핑 관세,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등이 있다. 이는 무분별한 무역구제조치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실제 피해가 발생한 이후의 사후적 조치만을 인정하겠다는 취지이다. 하지만 최근 각국 무역조치들은 실제 외국과의 무역으로 인해 피해발생이 구체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일방적으로 관세 등 무역구제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정도가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행위는 피해발생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사전 조치를 취하겠다는 식의 사전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의 형태라 할 수 있는데, 이는 WTO 협정 위반에 해당한다.
일례로 WTO 정보통신협정(ITA)상 무선통신기기는 무관세 적용을 받게 되어 있다. 하지만 EU는 TV기능이 내장된 무선통신기기를 가전제품으로 품목유형을 변경함으로써 외견상 WTO 규약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관세를 올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교묘한 방식의 보호무역 조치들은 시장경쟁의 영역에 국가가 개입 강도가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 다른 사례로, 러시아는 극동시베리아지방에 수입되는 자동차들 중 ‘오른쪽 운전석 차량’에 한해 수입관세를 대폭 인상했다. 일본산 자동차 수입을 견제함으로써 자국 자동차업체를 보호하려는 의도다. 이는 매우 노골적인 국가의 시장 개입으로 역시 국가 개입의 강도가 증가한 예이다.
지난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1월까지 조사된 각국 무역규제 조치 중 피해가 실제 발생하고 WTO 규정에 부합하는 무역규제 조치는 전체 38건 중 단 한 건(미국의 농축산물 원산지 표시 의무화 조치)에 불과하다.
이처럼 경기부양책과 구제금융 투입 등 한 국가의 국내 정책 형태를 띤 조치들은 비록 국민경제 회생을 위한 지난한 노력의 부산물이라고는 하지만 이 속에 강력한 보호주의적 장벽이 숨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동아시아 외환위기 때나 2000년 초 IT버블 붕괴 때에도 소위 정책금융(공적자금)이라는 수단을 통해 국가가 자국 산업과 업계에 대한 지원을 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국가의 경제회복 조치에 대해 WTO 국제무역규범 위반이라는 등의 적극적인 반발이 크지 않았다. 그 영향이 일부 지역에 국한돼 있었고 특정 산업에 해당함으로 인해 피해의 파급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국, 프랑스, 영국 등의 자국 자동차 산업 지원과 대만, 일본의 자국 전자업체들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등에 대해 ‘EU 경쟁법 위반’ 내지 ‘WTO 불공정 무역관행’이라는 이유로 전 세계 이해 당사국 정부와 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현재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Buy American’ 조항과 같은 정부조달 시장에서의 자국산(自國産) 우선 구매 조항, 부실은행 등 금융기관 등에 대한 구제금융(공적자금) 투입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방식의 보호주의 정책은 타국의 수출 기업들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WTO를 통해 해결하는 데에는 피해 당사자의 입증책임 등 넘어야 할 제약이 많고 소요기간도 길어 원만한 해결이 매우 어렵다. 또 주권국가의 국내 정책에 대해 국제기구가 개입할 여지는 여전히 크지 않은 실정이다. 이렇듯 최근 각국의 보호주의적 통상 정책들은 개입영역 확대와 규제방식 고도화로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수십 년에 걸친 자유무역주의의 성장 이면에서 보호무역주의도 교묘하게 탈바꿈을 해온 셈이다.
2. 각국 통상 정책의 현황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1월 말 현재까지 각국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시행중인 통상 및 수입규제 조치는 총 6개국 13건으로 파악된다. 미국의 한국산 디젤엔진부품에 대한 상계관세 1건, 중국의 한국산 석유화학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 1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중 실제 금액이나 물량의 형태로 피해가 현실화 된 예는 우크라이나와 터키의 한국산 섬유, 전기부품, 기계 등 5건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조치(Safeguard)이다. 하지만 예상 피해액은 미미해서 전체 수출시장을 놓고 보면 아직은 보호무역조치로 인한 타격이 작아 보인다. 규제조치의 형태도 WTO가 허용하고 있는 무역구제조치들에 한정돼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WTO에 따르면 같은 기간 전체 153개 회원국이 실행 중인 무역규제 조치는 19개국 23건이다(<표 1> 참조). 실행여부를 검토 중인 조치들까지 합하면 25개국 38건에 달한다. 파악되지 않는 각국의 수면 밑 조치들은 제외한 수치다. 무역규제 조치 시행국은 우리나라의 10대 수출대상국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지난해 10대 수출대상국은 우리 수출의 76.6%를 차지했다. 이를 우리나라 13대 주요 품목별로 보면 선박류(2008년 수출비중 9.6%), 컴퓨터(2.6%)를 제외한 나머지 11개 품목군에서 직간접적인 무역규제조치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역규제 장벽으로 대부분의 수출시장과 상품이 영향을 받게 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주요 교역대상국들의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을 국가별 정책분석을 통해 살펴 보자.
미국 : 명분은 자유주의, 실리는 보호주의
미국의 명분은 공정무역(Fair Trade)를 통한 자유무역주의를 지향하고 있다지만 실제 정책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보호무역주의의 색깔이 짙다. 최근 미국은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n) 조항에 대해 비난이 높아지자 경기부양안에 대한 상원 구두표결에서 기존 국제협정을 맺은 나라들에게는 적용하지 않을 것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우리 철강업계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조치다. 원안대로 통과된다 할지라도 현재의 인프라(SOC) 건설 및 보수에 필요한 철강제품에 대해서만 적용할 계획이라면 주로 형강류와 봉강류가 대상이 된다. 우리나라 대미 주력 철강제품은 형강류와 봉강류가 아닌 판재류이기 때문에 우리 기업의 피해는 제한적일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새로운 협정을 체결할 경우엔 보호주의적 규제를 적용하겠다는 의미도 된다. 실제 미 상원 민주당 일각에서는 각계의 우려를 뒤로하고 바이 아메리카 조항을 인프라 관련 공산품 전체로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을 준비 중이다. 이 경우 자동차, 반도체, 석유화학, IT제품 등 거의 모든 대미 수출품목이 영향권에 들면서 우리 공산품 수출이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미국은 공정무역이라는 명분하에 ‘2008 신 무역정책’을 제시하고, ‘2009 무역이행법’을 입안 중이다. 하지만 이런 명분의 이면에는 보호주의 해석의 여지가 높은 조치들을 수반하고 있다. 그 예로 지난해 9월 이후 각국 수입품목에 대한 견제차원에서 품목별 무역구제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현재는 중국이 21건으로 가장 많은 제재를 받고 있다. 한국산 스테인레스 철강 파이프 제품도 1건 포함돼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실제 ‘미국의 산업을 보호하고 불공정 무역으로부터 고용을 지키기 위해(Safeguarding American Industries and Jobs against unfair trade)’라는 제하의 미 상무부 수입무역국의 정책 입안 및 운영지침에 반영된 내용이다.
미 행정부의 신 통상정책 5대 핵심 내용은 공정무역(Fair Trade) 강화, NAFTA 개정, 무역조정지원(TAA) 강화, 해외고용 증대 기업 세금우대 폐지, 국내고용 창출 기업 조세혜택 강화로 정리된다. 그런데 이들 내용은 교역 상대국들 입장에서 볼 때 ‘자유’라는 말보다 ‘보호’라는 말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 대통령이 언론을 통해 미국 통상정책의 궁극적인 지향이 자유무역에 있음을 연일 강조해도 세계가 신뢰의 마음을 주지 못하는 이유다.
이러한 미국의 공정무역을 명분으로 한 보호주의 정책은 자국의 근로자 고용 창출, 공정한 노동 및 환경 정책 확산 등을 이유로 각국에 대한 무역규제조치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불황에 처한 미국업계 보호를 위해 한국산 섬유, 철강, 반도체, 가전 등 우리 주력 수출품에 대해 반덤핑 및 상계관세, 수입량 규제와 같은 보호주의 조치를 강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의 세계 경제에 대한 영향력이 과거 전성기 때에 비해 줄어든 건 사실이나 아직까지는 엄연히 국제 통상 질서의 규칙 제안자(Rule-Setter)이다. 미국의 통상 관련 정책과 법률은 그만큼 파급효과가 크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바마 행정부의 신 통상정책(New Trade Policy)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세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편 지금의 어려운 시기가 지나면 미국의 향후 장기적인 통상정책 방향이 다시 자유무역쪽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FTA만이 아니라 WTO 도하라운드도 논의를 재개할 것이다. 그리고 공정무역을 통한 다자주의 자유무역의 완성이라는 명분하에 기존 상품, 서비스 분야는 물론이고 환경과 노동관련 다자라운드도 출범시킬 가능성이 높다. 현재 미국의 통상정책 방향은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사 키워드를 빌려 표현하자면 ‘대외협력과 공존(Cooperation and Coexistence)’보다는 ‘미국경제 우선 회생을 위한 재건(Remaking of the US for Recovery)’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하겠다.
중국 : 내수중심 경제로의 이행을 위한 이중잣대 룰 구사
중국도 미국을 견제하기보다는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보호주의로 기우는 모습이다. 중국의 30년 개혁개방정책이 꽃을 피울 수 있었던 데에는 2000년대 들어 국제사회의 글로벌 임밸런스(미국과 그 교역 상대국 사이의 막대한 국제수지 불균형) 현상에 대한 용인이 큰 역할을 했다. 즉,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위안화 저평가를 수용하여 값싼 중국산 제품을 사줌으로써 중국의 경제발전을 뒤받침했다(<그림 2> 참조).
이에 중국도 그간의 무역수지 흑자 누적으로 인한 외환보유액 급증에서 오는 거시경제적 압력과 미국과의 환율 갈등에서 오는 무역분쟁 해소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중국은 현실적으로 아직은 그럴 여유가 없는 모습이다. 아직은 안정적 경제성장을 위해 8%대 성장률 사수라는 입장에서 위안화 환율의 적정관리와 이를 통한 수출의 현상유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내수중심형 경제로의 이행이라는 정책 기조전환의 효과가 발현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수출부문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글로벌 임밸런스 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결과 오히려 위안화 절상을 놓고 벌이는 미국과의 환율 갈등,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n) 조항으로 촉발된 철강제품 수입규제 마찰 등 보호무역주의의 파고를 증폭시키는 데 한 당사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중국의 통상정책은 경제성장률 유지와 내수중심형 경제로의 이행과정상에 발생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호주의와 자유주의의 이중잣대를 활용할 전망이다. 최근 중국 상무부는 바이 차이나 정책을 취하지 않겠다고 천명했으나 실제로는 자국 기계설비를 사용하는 기업에게 제품하자 보상을 해주고 있다. 또 지방 농민층에 1조원 규모의 정부 보조금 지급을 통해 가능하면 자국산 가전제품 구매를 유도하는 소위 ‘가전 하향(下鄕)정책’도 확대하고 있다. 한편 이와는 대조적으로 최근 한국산 폴리에틸렌(PE)와 폴리프로필렌(PP) 등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개시하고, 인도의 중국산 장난감 수입 금지조치에 대해서는 WTO 제소를 검토하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현재 중국 수출에 있어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중국 기업의 수출상품 3,700여 개에 대한 수출세환급정책 재도입, 상하이자동차(SAIC) 등 자국 산업에 대한 세제혜택과 구입보조금 지급 등 무역규제 조치들 때문이다. 우리 최종 소비재가 중국시장에서 외국산 제품에 비해 상품 포트폴리오 다양화, 마케팅, 브랜드 인지도 등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해 뚜렷한 성과를 못 내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내수중심 경제로의 전환이 진행되고 있어, 우리 기업들의 대응이 시급하다.
EU, 일본과 신흥경제권 : 조정자 역할 부족
마지막으로 유럽연합(EU)과 일본도 자유무역의 깃발을 내려 놓고 있는 모습이다. 바이 아메리카 조항이 나오고 미국의 위안화 절상 요구에 대해 최대 미국채 보유국인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가 2월 초 미국채 추가매입 거부 가능성을 표명하는 등 미-중 갈등 개시 초기만 하더라도 유럽연합(EU)은 이를 비판하며 자유무역의 수호천사 역할을 담당하는 듯 했다. 하지만 EU 일부 회원국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지금은 보호무역 규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되었다. 경기부양책이라는 명분을 걸고 프랑스는 르노, 푸조, 시트로앵 등 자동차 업체에 60억 유로를 지원하고 외국기업의 M&A로부터 자국 기업을 보호하는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영국과 스웨덴은 자동차업계에 채무보증을 하기로 했고 독일은 오펠에 대한 18억 유로 융자 등 EU 공정경쟁법에 저촉되는 무역규제를 늘리고 있다. 일본도 자국 자동차 및 전기전자 업계에 대한 대규모 구제금융과 수출지원 정책 등을 통해 보호주의 색채를 띠고 있다.
한국무역협회(KITA) 통계에 따르면 신흥경제권이라 불리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베트남, 남아공, 멕시코, 칠레 등에서도 우리나라 제품에 대한 수입규제가 총 121건으로 특히 지난해 하반기에 70%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Ⅲ. 우리가 받는 영향과 대응 방향
1.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
최근 쏟아지는 각국의 보호주의적 통상정책들이 우리나라 경제와 수출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산술적으로 정확하게 추정해 내기는 매우 어렵다. 앞서 언급한 38건의 규제조치들을 보면 관세인상 11건, 반덤핑 또는 비관세 장벽 14건, 자국산업 간접지원(수출보조금 또는 수출세 환급 등) 13건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관세인상분이 반영된 가격변화로 인해 과연 판매물량이 얼마나 감소할지를 정확히 산정하기가 어렵고 또 제품 특성(소비재 vs. 사치재 또는 내구재 vs. 비내구재), 마케팅 등 비가격적 측면의 영향도 판매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정확히 전체 물량의 몇 %가 판매 감소될지 정확한 영향을 정량적으로 추정하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점은 이러한 조치들이 외국에 수출되는 우리나라 상품의 수입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현지 소비수요 감소로 나타날 것이라는 점이다.
수입량 제한(Quota)이나 일방적으로 수입을 중단하는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등 비관세 규제 수단으로 인한 피해 규모나 영향력은 관세와 같은 가격통제의 경우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각국의 경기부양책으로 분류되는 정책들은 대부분 이런 직접적인 규제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편 국가별로 잇따라 발표되고 있는 다양한 경기부양책들 가운데 우리 수출기업들에게 기회요인이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자못 크다. 그러나 외국의 자국산업 지원을 위한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책 등 자국산업 지원을 위한 국내 정책들이 우리 수출산업에 미칠 수 있는 정성적 영향을 살펴보면 자국산업 보호와 고용유지, 수출산업 지원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 우리 수출업계에 대한 기회보다는 위험요인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 EU, 일본 등 선진국들의 경기부양책들은 우리 기업의 해당국 정책과 연관된 사업분야 참여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내용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국가의 부양책은 주로 자국 내 특정산업에 대한 금융지원, 고용유지, 내수소비 진작을 위한 직간접적 세제 혜택 등 중심이어서 우리 기업들의 참여 가능성 자체가 원천적으로 낮다. 또 이러한 지원책의 수혜 기업들이 우리나라 기업들과 경쟁관계에 있다. 다만 각국의 경기부양책이 경제를 살리는 데 기여할 경우 전체 수입수요가 살아나서 우리의 수출에도 도움을 주는 간접적인 효과는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신흥경제권 국가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기회가 많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국가는 제조업 기반을 육성하려는 정책 지향과 자원개발, 사회인프라 구축 등 기간산업 정비가 경기부양의 주목적이어서 우리 기업들의 연관분야 사업참여 기회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 우리 정부와 기업의 대응
미국은 공정무역을 표방하며 자유무역의 기치를 내세우고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실리위주의 무역규제조치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내수중심형 경제로의 이행기 동안 위안화 절상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수출에 매진할 전망이다. EU와 일본은 환경분야에서 그 동안 구축해온 시장구조와 첨단 기술력을 무기로 무역과 연계한 환경라운드를 본격화할 움직임이다. 신흥경제권 국가들도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그 동안의 다자간 합의를 뒷전으로 하고 각종 보호무역 규제조치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이처럼 최근 국제 통상환경은 국가간 무역갈등 조정과 통상질서 재편에 대한 주도적인 연출자가 없는 상태이다. 최근 있었던 선진국 G-7회담에서도 뚜렷한 방향성을 잡지 못했다. 오는 4월에 있을 G-20회담까지는 눈치보기가 계속될 전망이다.
상황이 호전돼 앞으로 세계 경기가 회복이 되더라도 보호주의적 통상정책은 형태와 내용을 달리하며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한번 인상된 관세나 추가된 비관세 무역장벽들을 다시 원상회복시키거나 감축해 나가는 데 있어 시간도 시간이지만 국가간 합의 도출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미증유의 경기 침체를 경험해 본 신흥경제권 국가들은 이번 충격을 통해 시장보다는 국가의 개입을 우선시 하는 국가자본주의의 영향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보호주의적인 통상환경이 세계 경제 위기 이전의 상황으로 회복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앞서 봤듯이 관세만 보더라도 1986년 비교시점의 1/3수준으로 줄이기 위해 세계는 20년을 보내야 했음을 상기하면 앞으로 여정의 험난함을 예상할 수 있다.
정부는 각국의 불공정한 무역규제에 대해서는 당사국간 무역분쟁 방지를 위해 사전조정 프로세스를 정립하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WTO 무역구제조치와 분쟁해결기구(DSB)를 통한 적극적인 대응 시나리오도 미리 수립해 놓을 필요가 있다. 또 각국의 무역규제 조치에 의해 영향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수출품목을 별도 관리하고, 기업에게 무역규제관련 정보를 신속히 제공하는 지원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도 보호주의 파고를 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요구된다. 수출대상국 정부의 무역관련 정책과 경쟁업체의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 하는 가운데 각국 경기부양 과정에서 오는 사업기회에 적극 참여할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또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성장이 예상되는 신흥경제권 시장 발굴에 주력하고 유연한 생산공급망관리(SCM) 체제, 물류·유통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언제 생길지 모를 환경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보호주의적 통상환경 타개를 위해 국제공조를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전 세계 FTA 추진이 눈에 띄게 약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EU FTA가 3월 타결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음은 시사하는 바 크다. 보호주의가 확산되는 때일수록 우리 정부는 다수 국가들과의 FTA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각국 무역규제 영향을 최소화시키고, 한-미 FTA 비준에도 우회적인 압력을 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농업부문 이슈로 난관에 봉착해 있는 WTO 다자간 무역협상인 도하라운드(DDA) 진행을 위해 한-인도 CEPA(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논의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조정자 역할을 찾아보는 적극성도 요구된다. 즉, 과거 농업부문 협상 경험을 통해 현재 강경한 입장에 있는 인도와 미국간 농업부문 갈등 완화를 유도함으로써 자유무역논의가 본 궤도로 복귀될 수 있도록 전방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LG Business Insight 10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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