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11. 11:56
생산자 중심적 사고에서 출발한 제품 개발은 소비자에게 기능 피로(Feature Fatigue)를 야기시켜 오히려 제품 구매를 회피하게 만들 수 있다. 사용 빈도와 신속한 기능 전환 정도에 따라 필요 없는 기능을 제거하고 UI 개선으로 기능 피로를 감소시켜야 한다. 기능 피로의 감소가 새로운 제품 차별화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한 디자인 사이트에서 소개된 리모컨 리폼 아이디어가 전세계 네티즌에게 화제가 되었다. TV와 위성 TV 수신기 리모컨 위에 종이가 덧씌워져 있고 간단한 메모가 적혀 있는데, “끄고, 켜고”, “소리 크게, 소리 작게” 버튼과 채널 숫자 버튼만 남아 있고 나머지 복잡한 버튼들은 모두 종이로 가렸다. “쓰지도 않는 기능인데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드냐?”는 유머스러운 질책인 것이다. 어떤 네티즌들은 “복잡한 버튼과 기능 때문에 고통(?)받는 실버 세대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재미있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복잡한 버튼과 기능 때문에 고통받는 것이 실버 세대 뿐일까?
가격이 조금 더 비싸도 기능이 많아야 좋다?
많은 기업들이 “수많은 기능 + 약간의 가격 상승 = 성공” 이라는 황금률을 되뇌며 제품 개발에 절치부심해왔다. 특히 컨버전스라는 패러다임이 휩쓴 디지털 제품에서 이 원칙은 너무나 견고한 것 같다. 디지털 제품이 이런 추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주된 이유로 △ 부품 모듈화, 원칩화 등의 영향으로 적은 비용으로 다기능을 부가할 수 있었다는 점과 △ 여러 계층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복합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세분 시장 별로 각각 대응하는 것보다 용이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 제품 개발을 위해 시장 조사를 할 때 다수의 최신 기능을 선호하는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들에 의해 편향된(Biased) 의견이 그대로 반영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최근까지 이 성공 방정식은 대부분 사실로 판명되었다. 핸드셋 메이커들은 음성 통화 위주의 핸드폰에 SMS, 카메라, 계산기, 전자 사전, 게임 등 각종 기능을 추가하며 시장에서 성공 거두었다. 프린터 메이커들은 기존 프린터와 복사기, 스캐너, 팩시밀리 등을 합친 MFP(Multi Function Printer; 다기능 프린터, 복합기)를 출시하면서 시장을 빠르게 대체시켰다. 디지털 카메라에 동영상 녹화는 기본이 되고 있다. 각종 PS2, XBOX 등 메이저 게임기 업체들은 “가정의 컨트롤 박스”라는 기치를 내걸고 오디오, DVD 플레이어, 인터넷 네트워크 기능 들을 추가하여 소비자를 유혹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다기능 = 가치”라는 이 성공 방정식은 계속 유효할 것인가? 매릴랜드 대학의 경영학 교수인 Rust 등(2006)은 “다기능 제품이 소비자의 구매 의욕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라며 “다기능 = 가치”라는 전통적인 가정을 반박한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제품을 처음 구매하는 소비자만 기능이 많은 제품을 선호할 뿐, 동일한 제품을 재구매하는 소비자는 복잡한 기능 때문에 사용이 불편하면 오히려 이 불편함을 비용으로 간주하고 그 제품의 가치를 더 낮게 평가하며 결국 구매를 회피한다는 것이다. 결국 가격은 같고 기능은 많은데 소비자는 오히려 이 제품을 외면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역설의 중심에는 기능 피로가 있다. 기능 피로란 '제품 내 기능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하는데 느끼는 불편함'을 뜻한다. 기능 피로를 느끼는 소비자는 ‘너무 복잡해서 쓰기 불편하다.’ ‘쓰지도 않는 기능을 넣어서 가격만 올린다.’ 등의 불만을 토로한다. MIT 미디어랩의 창립자이자 명예 이사장인 니콜라스 네그로폰데도 많은 제품이 ‘여러 기능을 한 기기에 합치다 보니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최근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디지털 캠코더는 LCD 창도 작고, 촬영 시간도 적고, 화질도 그다지 좋지 않은 포켓 캠코더이다. 버튼도 몇 개 보이지 않고 전자 계산기보다 작은 손바닥만한 포켓 캠코더가 고화질과 대용량의 수많은 캠코더와 대등하게 경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 촬영과 편집의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 휴대의 편리함 △ 별도의 변환 없이 유투브 등의 사이트에 곧바로 올릴 수 있는 편리함을 제시한다. 언제든지 들고 다니다가 녹화 버튼을 누르면 녹화되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달려있는 LCD 창에서 녹화된 영상을 곧바로 볼 수 있다. 영상 편집 프로그램이 있어 그 자리에서 편집도 가능하다. 인터넷에 접속하면 찍은 동영상을 클릭 몇 번만에 유투브 등에 올릴 수 있다. 화질이 낮은 것은 오히려 이점이다. 파일 용량이 작아져 많은 동영상을 저장할 수 있고 인터넷 업로딩 시간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고화질 고용량 동영상은 오히려 더 부담스럽기만 할 뿐이다.
이외에도 기능 피로를 줄임으로써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단일 모델로 밀리언 셀러를 달성한 와인폰은 각종 복잡한 기능을 없애고 일반 휴대폰보다 화면, 스피커, 버튼을 2배 크게 만든, 말 그대로 ‘기본에 충실한 핸드폰’이다. 몇 백만 화소의 카메라 모듈, DMB 기능, 터치 패널, 풀 브라우징 등 갖가지 화려한 기능을 포기하고, 프라다 등 유명 상표와의 제휴도 없었다. 그러나 와인 폰은 굳건한 스테디셀러로 시장에서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기능 피로는 실버 세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때때로 상당수 소비자는 수많은 기능을 가진 제품보다 자신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단순한 제품에 더욱 열광하기도 한다.
불필요한 기능을 제거하는 기준은 사용 빈도와 신속한 기능 전환의 필요성
기능 피로로 인해 최근 필요한 기능만 넣는 디버전스(Divergence)라는 개념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그리고 디버전스의 핵심 질문은 “어떤 기능을 빼서 소비자의 기능 피로를 줄일 수 있을 것인가?”이다. 이론적으로는 제품에서 소비자가 가장 필요로 하는 기능만 제공하고 다른 기능을 없앰으로 기능 피로를 줄여야 하는 것이 왕도(王道)다. 제품을 쓰는데 필요 이상의 복잡한 것을 좋아하는 소비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개인 별로 맞춤화된(customized)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 이상 이런 소비자의 욕구를 100%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시장을 세분화하더라도 이런 문제는 계속 발생할 뿐이다. 반대로 개인별로 100% 맞춤화된 다소 고가의 제품과 다른 기능이 추가된 다기능 저가 제품이 있다면 소비자는 상당수 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제조업체는 리스크가 적은 다기능 저가(?) 제품 생산을 자연스럽게 고집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 제조업체가 소비자의 기능 피로를 줄이고자 시도한다면 어떤 기준에서 제품의 기능을 빼야 할까?
소비자가 두 기능을 한 제품에 붙이기 원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기능들이 서로 관련이 없더라도 두 기능 모두 너무 자주 사용해서 어짜피 두 제품을 붙여 놓아야 효율적인 경우이다. 또 하나는 한 기능을 쓰다가 즉시 다른 기능을 써야 효율적인 경우이다. 첫 번째 경우를 ‘사용 빈도’라고 말할 수 있고, 두 번째 경우를 ‘신속한 기능 전환 필요’로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축을 바탕으로 기능 선택의 매트릭스를 그릴 수 있다(<그림 2> 참조). 전자 업체는 Ⅲ영역에 위치한 신속한 기능 전환의 필요성과 사용 빈도가 낮은 기능을 일차적으로 제거하여 기능 피로를 줄일 수 있다. 그 후에 다른 기능으로의 전환이 신속하게 필요한 경우나 사용 빈도가 많은 기능을 소비자의 니즈에 따라 선택적으로 남겨야 한다. 이 때 기능을 추가해도 원가가 높아지지 않아 이 기능 저 기능 그대로 남겨놓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기능 피로를 줄이는 것이지 동일 원가에 더 많은 기능을 넣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흔히 복합기로 불리기도 하는 MFP를 생각해보자. 복합기를 사는 상당수의 소비자는 기본적으로 프린터 기능을 위해 MFP를 구매한다. 그렇다면 스캐너, 복사기, 팩시밀리 기능 중 어떤 기능이 MFP에 추가되고 빠져야 할까? 무형의 정보 데이터를 출력하는 프린터와 유사하게 복사기는 종이에 기록된 유형의 정보 데이터를 출력하는 출력장치이다. 따라서 입력 정보의 유형에 따라 신속하게 기능이 전환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프린터와 복사기 기능은 복합되는 것이 유리하다. 반면 입력 장치인 스캐너는 출력 장치인 프린터와 같은 기능을 동일 시점에서 공유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스캐너 외 디지털 카메라, 디지털 캠코더, 키보드 등 다양한 입력 장치가 발달한 현재 자주 사용되는 기능도 아니다. 스캐닝을 자주 하는 특정 고객에 전문화된 제품을 출시하지 않는 이상, 단지 복사기에 저장 장치나 네트워크 기능을 추가하고 스캐닝 소프트웨어까지 인스톨해야 하는 스캐너 기능을 포함시키는 것은 오히려 소비자에게 기능 피로를 더하는 형국이 된다. 팩시밀리 역시 사용 빈도가 높지도 않고, 프린터를 쓰다가 빠르게 기능을 전환해야 하는 기능이 아니다. 따라서 제조사는 프린터와 복사기 기능 위주의 복합기 위주로 단순하게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기능이 추가된다면 다수의 종이 위의 정보를 빨리 출력할 수 있는 자동 급지 장치나 컴퓨터를 통하지 않고서도 디지털 카메라와 같이 다른 입력 소스의 정보를 직접 출력할 수 있는 픽트 브릿지(Pict Bridge) 기능이 추가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물론 최종 제품의 기능 조합이 고객이나 기업의 역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접근 방식은 소비자의 기능 피로 감소를 위해 기업이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할 과정이다.
필수 기능이 많다면 UI의 개선으로
만약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기능을 다 제거했음에도 필수 기능이 기능 피로를 야기할 정도로 많다면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때는 UI(User Interface: 유저 인터페이스)를 변경함으로써 이를 해결할 수 있다.
UI는 컴퓨터 시스템 또는 프로그램에서 데이터 입력이나 동작을 제어하기 위해 사용하는 명령어나 기법을 말한다. 간단하게 사용자가 기계와 쉽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UI라고 한다. 컴퓨터나 전자제품의 입력 장치가 협의(狹義)의 UI라면 인간이 기계를 제어하는 모든 방법을 광의(廣義)의 UI라 할 수 있다. 가장 흔한 예로 컴퓨터의 입력 장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컴퓨터를 제어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는 명령을 내려 주어야 한다. 과거 90년대 중반까지 사용된 DOS는 키보드를 통해 텍스트 명령을 입력하는 텍스트 UI를 이용했다. 이런 텍스트 유저 인터페이스는 아직도 유닉스나 리눅스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현재까지 대부분 PC에서 사용되는 윈도우즈에서는 마우스 중심의 GUI(Graphic User Interface,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주로 이용했다. 이 외에도 1990년대 이전에 사용되었던 카드 펀칭이나 카세트 테이프 형식의 입력 장치, 현대의 TV 리모컨, 휴대폰에서 사용되는 키패드, 게임기에서 주로 사용되는 조이스틱, 음성 인식, 심지어는 지문 인식이나 홍체 인식 등도 광의(廣義)의 인터페이스 중 하나이다.
제품의 기능이 많아지면 UI는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가장 간단해 보이는 MP3 플레이어를 생각해 보자. 초기 MP3 플레이어는 카세트 테이프와 유사한 UI를 가졌다. 최초의 MP3 플레이어는 재생, 멈춤, 앞으로, 뒤로의 네 버튼에서 시작했다. 이후 원하는 폴더와 파일을 선택하기 위해 각 폴더를 이동하는 네비게이션 기능, 이를 지원하는 조이스틱 같은 버튼도 포함되었다. 레코딩 기능이 추가되면서 레코딩 버튼이 나오고 이퀄라이저를 선택하기 위한 메뉴 버튼도 생겼다. 라디오 기능이 추가되면서 기존 MP3 플레이어의 각 버튼에 라디오 기능도 추가되었다. 주파수를 자동 스캔하는 명령을 실행하는 알고리즘도 생겼다. DMB 기능이 추가되면서 외워야 할 기능이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UI를 통해 기능 피로를 극복하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인 닌텐도의 위(Wii)이다. 닌텐도 위(Wii)가 출시될 때 시장은 닌텐도 위(Wii)의 성공에 반신반의 했다. 같은 세대의 게임기인 플레이 스테이션 3이나 엑스박스 360은 실제라고 해도 믿길 만큼 섬세한 그래픽과 인터넷에 접속함으로써 전세계 사람들과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 게임 매니아들의 열성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반면 닌텐도 위(Wii)는 상대적으로 그래픽 질이 떨어지고 인터넷과 연결도 안 되었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닌텐도 위(Wii)에 대해서 “그래픽이나 진지한 스토리 게임을 좋아하는 사용자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온라인 게임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2% 부족한 게임기다. 쉽고 가벼운 게임을 원하는 사람들만 할 것이다.”라고 평가절하 하기도 했다.
그러나 3월 말 결산 법인인 닌텐도는 올 회계연도에 26조원 상당의 매출(전년도 대비 증가율 158%)을 올리고 영업 이익률도 30%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닌텐도의 사원 일인당 이익이 구글과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와 같은 초우량 기업을 능가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닌텐도 위(Wii)가 이렇게 성공을 거둔 이유는 무엇일까? 게임기가 모션 센서로 사람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때문에 따로 조작법을 익힐 필요가 없어 남녀노소 온 가족이 게임에 쉽게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골프 게임의 경우 리모컨을 쥐고 실제 골프를 치듯 텔레비전 화면을 향해 휘두르면 된다. 닌텐도는 사격, 탁구, 골프 등의 미니 게임과 테니스, 야구, 볼링, 골프, 복싱 등의 스포츠 게임 뿐만 아니라 위핏(Wii Fit) 보드라는 것도 만들어 요가 등 피트니스 게임도 제공하고 있다. 이로써 게임기와 무관할 것 같았던 40대, 50대 중년층도 게임기에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풀터치폰 역시 UI 혁신을 통한 성공 사례 중 하나이다. 복잡한 키패드가 아닌 특정 기능에 맞는 인터페이스와 꼭 필요한 버튼이 제공되고, 소비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멀티 터치 휴대폰의 경우 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가능한데, 아직 기초적인 단계이지만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톰 크루즈가 두 손과 손가락을 움직이고 돌리면서 화면을 움직이는 것처럼 조작이 가능하다. 이는 버튼을 외워서 사용하는 것보다 인간의 직관과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한발짝 다가선 것이다. 올해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2009에서 LG전자는 3D인 S클래스 UI를 탑재한 아레나 폰으로 호평을 받았다. 삼성 전자도 ‘터치위즈 업그레이드’ UI를 탑재한 울트라터치를 선보였다. 도시바도 3D 동작 인식 기능을 통해 손가락의 터치 방향이나 단말기 움직임을 감지해 작동하는 독특한 UI를 선보였다. 시장 조사 기관인 로아(ROA)그룹은 "올 한해 휴대전화 트렌드로 3차원 이펙트 효과와 지자기 센서(동작의 속도 변화를 감지하는 센서) 등 다양한 센싱 기능을 조합한 터치 UI가 최대 화두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전자산업 전반에서 시도되는 UI 개선
UI를 통한 기능 피로의 해결은 전자 산업 전반에서 시도되고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애플은 단순한 디자인의 아이팟과 터치스크린을 사용한 아이폰으로 전세계로부터 열광을 받았다.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중 하나인 CES 2009에서도 독특한 UI가 각종 기기에서 소개되었다. MID(Mobile Internet Device)에서는 국내 유경테크놀로지스가 새로운 3D 유저 인터페이스를 선보였다. 수십년 동안 리모컨을 벗어나지 못했던 TV에서도 새로운 UI 도입에 대한 가능성이 보였다. 버튼을 작동시켜 약속된 신호를 TV로 보내는 리모컨은 TV를 제어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그래서 많은 기업은 리모컨의 버튼의 감도를 향상시키거나, 재질을 개선하거나, 버튼의 숫자를 줄이거나, 자주 쓰지 않는 버튼을 숨기는 등 버튼에 초점을 맞추어 제품을 개발했다. 그러나 파나소닉은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와 손목 동작 인식을 동시에 적용한 리모컨을 선보였다. 네방향의 최소한 키만 남기고 번호 키를 모두 없애고 터치 패드 위의 손가락 움직임을 통해 번호를 입력할 수 있게 했다. 한손 또는 양손으로도 이용이 가능하고 화면 메뉴의 전체 이동은 가벼운 손목 동작으로도 가능하다. 도시바도 손의 모션 작동을 통해 TV의 인터페이스를 조정하는 ‘공간 모션 인터페이스(Spatial Motion Interface)’라는 한 발 앞선 기술을 선보였다. TV 위의 작은 컨트롤 박스가 손의 동작을 인식하여 명령을 수행하는데, 화면 위의 사진 이미지들을 마치 손으로 종이를 집어서 정렬하거나 구겨서 휴지통에 넣는 것처럼 입체적으로 정렬할 수도 있다. 이는 작년 가을 일본의 가전 전시회에서 히타치가 선보인 제스쳐 컨트롤 TV(Gesture-Controlled TV)와 유사하다. 비록 상용화 되는 데는 2~3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소파에 누워 손을 몇 번 휘젓는 것만으로 TV를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이점으로 등장할 것이다.
사전에서도 UI의 개선을 통한 경쟁력 강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카시오, 샤프 등 대표적인 전자사전 메이커들은 소형 디스플레이 표면이나 터치패드 등에 펜으로 한자를 쓰면 그 한자를 찾아주는 한자 필기 인식 UI를 선보이며 중국어나 일본어 중심의 어학 공부를 하는 사람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이런 UI 개선을 통한 경쟁력 강화는 인터넷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필기 인식으로 한, 중, 일의 한자를 입력하여 찾는 네이버의 한자 사전, 클릭한 상태에서 화면에 그리는 마우스의 움직임에 따라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각종 명령을 내릴 수 있게 하는 알툴바의 마우스 액션, 은행의 오프라인 공간을 그림으로 옮겨 실제 은행의 창구를 찾는 듯한 신한은행의 고객센터 등은 현실적이고 직관적인 알고리즘과 그 사용의 편리함으로 네티즌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다.
만약 닌텐도 위(Wii)에서 동작 센서로 처리되는 것을 각종 버튼으로 조작해야 한다면 사용자는 게임하기 전에 조작하느라 이미 지쳐버릴 것을 염려해 제품을 구매조차 하지 않을지 모른다. 만약 애플이 MP3와 휴대폰에서 버튼 위주의 UI를 개선하지 못했다면 애플의 신화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쓰기만 하면 한자를 찾아주는데, 처음 보는 어려운 한자를 찾기 위해 부수를 찾고, 획수를 세고, 수많은 검색된 한자를 눈을 찡그려 찾아야 하는 수고를 감당할 소비자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다수의 필수 기능에서 발생하는 기능 피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UI의 중요성은 해가 더할수록 높아지고 있다.
단순 하드웨어 개발? 기능 피로의 해결사!
한 소비자는 “집에 TV, PC, 게임기, 셋탑박스, 오디오 등을 설치하고 탁자에 리모컨을 늘어놓았다. 버튼이 수십 개인 리모컨 7개를 탁자에 늘어놓으니, 내가 항공기 관제탑에 있는 줄 알았다. 필요해서 구매하기는 했지만 제품에 쓰지도 않는 기능도 많고, 심지어 무슨 기능이 있는지 조차 모르겠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현재 소비자들은 과거 소비자들보다 자신에게 어떤 기능이 필요하고 어떤 기능이 필요하지 않을지를 더 꼼꼼히 따져본다. 이런 트렌드 가운데서 생산자는 “어떤 기능을 넣어서 비용은 줄이고 가격을 올릴 것인가?”라는 관점이 아니라 “소비자의 기능 피로를 어떻게 하면 줄일 것인가?”라는 관점으로 제품 개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 때 생산자는 경쟁사에 비해 저비용으로 더 적은 기능을 제공했는데, 오히려 소비자의 갈채와 가격 프리미엄까지 더 받는 꿈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은 고객이 꼭 필요로 하는 기능과 그렇지 않은 기능을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나아가 고객이 꼭 필요로 하는 기능을 포함한 제품에는 더 직관적인 UI, 인간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전자 기기에 자동적으로 인식시킬 수 있는 UI를 개발해야 한다. 미시간 주립대 AT&T의 석좌교수인 프랭클린 비오카 교수는 이를 “인간의 온 몸을 조이스틱이나 마우스로 쓰는 것”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인간의 직관과 움직임에 반응하는 제품의 개발이야말로 진정한 소비자 중심이고 나아가 인간 중심의 제품 개발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소프트웨어 개발과 센서의 활용에 더욱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소비자는 돈을 주고 피곤함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반면 기능 피로를 줄인 제품에 대해서는 동일한 가격이나 오히려 프리미엄을 지불할 의향도 있다. 그리고 세상에는 “나이와 무관한 실버 세대”가 생각보다 많다.
- Business Insight 1040호
최근 미국의 한 디자인 사이트에서 소개된 리모컨 리폼 아이디어가 전세계 네티즌에게 화제가 되었다. TV와 위성 TV 수신기 리모컨 위에 종이가 덧씌워져 있고 간단한 메모가 적혀 있는데, “끄고, 켜고”, “소리 크게, 소리 작게” 버튼과 채널 숫자 버튼만 남아 있고 나머지 복잡한 버튼들은 모두 종이로 가렸다. “쓰지도 않는 기능인데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드냐?”는 유머스러운 질책인 것이다. 어떤 네티즌들은 “복잡한 버튼과 기능 때문에 고통(?)받는 실버 세대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재미있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복잡한 버튼과 기능 때문에 고통받는 것이 실버 세대 뿐일까?
가격이 조금 더 비싸도 기능이 많아야 좋다?
많은 기업들이 “수많은 기능 + 약간의 가격 상승 = 성공” 이라는 황금률을 되뇌며 제품 개발에 절치부심해왔다. 특히 컨버전스라는 패러다임이 휩쓴 디지털 제품에서 이 원칙은 너무나 견고한 것 같다. 디지털 제품이 이런 추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주된 이유로 △ 부품 모듈화, 원칩화 등의 영향으로 적은 비용으로 다기능을 부가할 수 있었다는 점과 △ 여러 계층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복합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세분 시장 별로 각각 대응하는 것보다 용이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 제품 개발을 위해 시장 조사를 할 때 다수의 최신 기능을 선호하는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들에 의해 편향된(Biased) 의견이 그대로 반영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최근까지 이 성공 방정식은 대부분 사실로 판명되었다. 핸드셋 메이커들은 음성 통화 위주의 핸드폰에 SMS, 카메라, 계산기, 전자 사전, 게임 등 각종 기능을 추가하며 시장에서 성공 거두었다. 프린터 메이커들은 기존 프린터와 복사기, 스캐너, 팩시밀리 등을 합친 MFP(Multi Function Printer; 다기능 프린터, 복합기)를 출시하면서 시장을 빠르게 대체시켰다. 디지털 카메라에 동영상 녹화는 기본이 되고 있다. 각종 PS2, XBOX 등 메이저 게임기 업체들은 “가정의 컨트롤 박스”라는 기치를 내걸고 오디오, DVD 플레이어, 인터넷 네트워크 기능 들을 추가하여 소비자를 유혹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다기능 = 가치”라는 이 성공 방정식은 계속 유효할 것인가? 매릴랜드 대학의 경영학 교수인 Rust 등(2006)은 “다기능 제품이 소비자의 구매 의욕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라며 “다기능 = 가치”라는 전통적인 가정을 반박한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제품을 처음 구매하는 소비자만 기능이 많은 제품을 선호할 뿐, 동일한 제품을 재구매하는 소비자는 복잡한 기능 때문에 사용이 불편하면 오히려 이 불편함을 비용으로 간주하고 그 제품의 가치를 더 낮게 평가하며 결국 구매를 회피한다는 것이다. 결국 가격은 같고 기능은 많은데 소비자는 오히려 이 제품을 외면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역설의 중심에는 기능 피로가 있다. 기능 피로란 '제품 내 기능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하는데 느끼는 불편함'을 뜻한다. 기능 피로를 느끼는 소비자는 ‘너무 복잡해서 쓰기 불편하다.’ ‘쓰지도 않는 기능을 넣어서 가격만 올린다.’ 등의 불만을 토로한다. MIT 미디어랩의 창립자이자 명예 이사장인 니콜라스 네그로폰데도 많은 제품이 ‘여러 기능을 한 기기에 합치다 보니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최근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디지털 캠코더는 LCD 창도 작고, 촬영 시간도 적고, 화질도 그다지 좋지 않은 포켓 캠코더이다. 버튼도 몇 개 보이지 않고 전자 계산기보다 작은 손바닥만한 포켓 캠코더가 고화질과 대용량의 수많은 캠코더와 대등하게 경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 촬영과 편집의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 휴대의 편리함 △ 별도의 변환 없이 유투브 등의 사이트에 곧바로 올릴 수 있는 편리함을 제시한다. 언제든지 들고 다니다가 녹화 버튼을 누르면 녹화되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달려있는 LCD 창에서 녹화된 영상을 곧바로 볼 수 있다. 영상 편집 프로그램이 있어 그 자리에서 편집도 가능하다. 인터넷에 접속하면 찍은 동영상을 클릭 몇 번만에 유투브 등에 올릴 수 있다. 화질이 낮은 것은 오히려 이점이다. 파일 용량이 작아져 많은 동영상을 저장할 수 있고 인터넷 업로딩 시간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고화질 고용량 동영상은 오히려 더 부담스럽기만 할 뿐이다.
이외에도 기능 피로를 줄임으로써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단일 모델로 밀리언 셀러를 달성한 와인폰은 각종 복잡한 기능을 없애고 일반 휴대폰보다 화면, 스피커, 버튼을 2배 크게 만든, 말 그대로 ‘기본에 충실한 핸드폰’이다. 몇 백만 화소의 카메라 모듈, DMB 기능, 터치 패널, 풀 브라우징 등 갖가지 화려한 기능을 포기하고, 프라다 등 유명 상표와의 제휴도 없었다. 그러나 와인 폰은 굳건한 스테디셀러로 시장에서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기능 피로는 실버 세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때때로 상당수 소비자는 수많은 기능을 가진 제품보다 자신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단순한 제품에 더욱 열광하기도 한다.
불필요한 기능을 제거하는 기준은 사용 빈도와 신속한 기능 전환의 필요성
기능 피로로 인해 최근 필요한 기능만 넣는 디버전스(Divergence)라는 개념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그리고 디버전스의 핵심 질문은 “어떤 기능을 빼서 소비자의 기능 피로를 줄일 수 있을 것인가?”이다. 이론적으로는 제품에서 소비자가 가장 필요로 하는 기능만 제공하고 다른 기능을 없앰으로 기능 피로를 줄여야 하는 것이 왕도(王道)다. 제품을 쓰는데 필요 이상의 복잡한 것을 좋아하는 소비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개인 별로 맞춤화된(customized)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 이상 이런 소비자의 욕구를 100%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시장을 세분화하더라도 이런 문제는 계속 발생할 뿐이다. 반대로 개인별로 100% 맞춤화된 다소 고가의 제품과 다른 기능이 추가된 다기능 저가 제품이 있다면 소비자는 상당수 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제조업체는 리스크가 적은 다기능 저가(?) 제품 생산을 자연스럽게 고집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 제조업체가 소비자의 기능 피로를 줄이고자 시도한다면 어떤 기준에서 제품의 기능을 빼야 할까?
소비자가 두 기능을 한 제품에 붙이기 원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기능들이 서로 관련이 없더라도 두 기능 모두 너무 자주 사용해서 어짜피 두 제품을 붙여 놓아야 효율적인 경우이다. 또 하나는 한 기능을 쓰다가 즉시 다른 기능을 써야 효율적인 경우이다. 첫 번째 경우를 ‘사용 빈도’라고 말할 수 있고, 두 번째 경우를 ‘신속한 기능 전환 필요’로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축을 바탕으로 기능 선택의 매트릭스를 그릴 수 있다(<그림 2> 참조). 전자 업체는 Ⅲ영역에 위치한 신속한 기능 전환의 필요성과 사용 빈도가 낮은 기능을 일차적으로 제거하여 기능 피로를 줄일 수 있다. 그 후에 다른 기능으로의 전환이 신속하게 필요한 경우나 사용 빈도가 많은 기능을 소비자의 니즈에 따라 선택적으로 남겨야 한다. 이 때 기능을 추가해도 원가가 높아지지 않아 이 기능 저 기능 그대로 남겨놓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기능 피로를 줄이는 것이지 동일 원가에 더 많은 기능을 넣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흔히 복합기로 불리기도 하는 MFP를 생각해보자. 복합기를 사는 상당수의 소비자는 기본적으로 프린터 기능을 위해 MFP를 구매한다. 그렇다면 스캐너, 복사기, 팩시밀리 기능 중 어떤 기능이 MFP에 추가되고 빠져야 할까? 무형의 정보 데이터를 출력하는 프린터와 유사하게 복사기는 종이에 기록된 유형의 정보 데이터를 출력하는 출력장치이다. 따라서 입력 정보의 유형에 따라 신속하게 기능이 전환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프린터와 복사기 기능은 복합되는 것이 유리하다. 반면 입력 장치인 스캐너는 출력 장치인 프린터와 같은 기능을 동일 시점에서 공유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스캐너 외 디지털 카메라, 디지털 캠코더, 키보드 등 다양한 입력 장치가 발달한 현재 자주 사용되는 기능도 아니다. 스캐닝을 자주 하는 특정 고객에 전문화된 제품을 출시하지 않는 이상, 단지 복사기에 저장 장치나 네트워크 기능을 추가하고 스캐닝 소프트웨어까지 인스톨해야 하는 스캐너 기능을 포함시키는 것은 오히려 소비자에게 기능 피로를 더하는 형국이 된다. 팩시밀리 역시 사용 빈도가 높지도 않고, 프린터를 쓰다가 빠르게 기능을 전환해야 하는 기능이 아니다. 따라서 제조사는 프린터와 복사기 기능 위주의 복합기 위주로 단순하게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기능이 추가된다면 다수의 종이 위의 정보를 빨리 출력할 수 있는 자동 급지 장치나 컴퓨터를 통하지 않고서도 디지털 카메라와 같이 다른 입력 소스의 정보를 직접 출력할 수 있는 픽트 브릿지(Pict Bridge) 기능이 추가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물론 최종 제품의 기능 조합이 고객이나 기업의 역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접근 방식은 소비자의 기능 피로 감소를 위해 기업이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할 과정이다.
필수 기능이 많다면 UI의 개선으로
만약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기능을 다 제거했음에도 필수 기능이 기능 피로를 야기할 정도로 많다면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때는 UI(User Interface: 유저 인터페이스)를 변경함으로써 이를 해결할 수 있다.
UI는 컴퓨터 시스템 또는 프로그램에서 데이터 입력이나 동작을 제어하기 위해 사용하는 명령어나 기법을 말한다. 간단하게 사용자가 기계와 쉽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UI라고 한다. 컴퓨터나 전자제품의 입력 장치가 협의(狹義)의 UI라면 인간이 기계를 제어하는 모든 방법을 광의(廣義)의 UI라 할 수 있다. 가장 흔한 예로 컴퓨터의 입력 장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컴퓨터를 제어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는 명령을 내려 주어야 한다. 과거 90년대 중반까지 사용된 DOS는 키보드를 통해 텍스트 명령을 입력하는 텍스트 UI를 이용했다. 이런 텍스트 유저 인터페이스는 아직도 유닉스나 리눅스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현재까지 대부분 PC에서 사용되는 윈도우즈에서는 마우스 중심의 GUI(Graphic User Interface,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주로 이용했다. 이 외에도 1990년대 이전에 사용되었던 카드 펀칭이나 카세트 테이프 형식의 입력 장치, 현대의 TV 리모컨, 휴대폰에서 사용되는 키패드, 게임기에서 주로 사용되는 조이스틱, 음성 인식, 심지어는 지문 인식이나 홍체 인식 등도 광의(廣義)의 인터페이스 중 하나이다.
제품의 기능이 많아지면 UI는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가장 간단해 보이는 MP3 플레이어를 생각해 보자. 초기 MP3 플레이어는 카세트 테이프와 유사한 UI를 가졌다. 최초의 MP3 플레이어는 재생, 멈춤, 앞으로, 뒤로의 네 버튼에서 시작했다. 이후 원하는 폴더와 파일을 선택하기 위해 각 폴더를 이동하는 네비게이션 기능, 이를 지원하는 조이스틱 같은 버튼도 포함되었다. 레코딩 기능이 추가되면서 레코딩 버튼이 나오고 이퀄라이저를 선택하기 위한 메뉴 버튼도 생겼다. 라디오 기능이 추가되면서 기존 MP3 플레이어의 각 버튼에 라디오 기능도 추가되었다. 주파수를 자동 스캔하는 명령을 실행하는 알고리즘도 생겼다. DMB 기능이 추가되면서 외워야 할 기능이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UI를 통해 기능 피로를 극복하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인 닌텐도의 위(Wii)이다. 닌텐도 위(Wii)가 출시될 때 시장은 닌텐도 위(Wii)의 성공에 반신반의 했다. 같은 세대의 게임기인 플레이 스테이션 3이나 엑스박스 360은 실제라고 해도 믿길 만큼 섬세한 그래픽과 인터넷에 접속함으로써 전세계 사람들과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 게임 매니아들의 열성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반면 닌텐도 위(Wii)는 상대적으로 그래픽 질이 떨어지고 인터넷과 연결도 안 되었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닌텐도 위(Wii)에 대해서 “그래픽이나 진지한 스토리 게임을 좋아하는 사용자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온라인 게임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2% 부족한 게임기다. 쉽고 가벼운 게임을 원하는 사람들만 할 것이다.”라고 평가절하 하기도 했다.
그러나 3월 말 결산 법인인 닌텐도는 올 회계연도에 26조원 상당의 매출(전년도 대비 증가율 158%)을 올리고 영업 이익률도 30%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닌텐도의 사원 일인당 이익이 구글과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와 같은 초우량 기업을 능가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닌텐도 위(Wii)가 이렇게 성공을 거둔 이유는 무엇일까? 게임기가 모션 센서로 사람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때문에 따로 조작법을 익힐 필요가 없어 남녀노소 온 가족이 게임에 쉽게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골프 게임의 경우 리모컨을 쥐고 실제 골프를 치듯 텔레비전 화면을 향해 휘두르면 된다. 닌텐도는 사격, 탁구, 골프 등의 미니 게임과 테니스, 야구, 볼링, 골프, 복싱 등의 스포츠 게임 뿐만 아니라 위핏(Wii Fit) 보드라는 것도 만들어 요가 등 피트니스 게임도 제공하고 있다. 이로써 게임기와 무관할 것 같았던 40대, 50대 중년층도 게임기에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풀터치폰 역시 UI 혁신을 통한 성공 사례 중 하나이다. 복잡한 키패드가 아닌 특정 기능에 맞는 인터페이스와 꼭 필요한 버튼이 제공되고, 소비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멀티 터치 휴대폰의 경우 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가능한데, 아직 기초적인 단계이지만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톰 크루즈가 두 손과 손가락을 움직이고 돌리면서 화면을 움직이는 것처럼 조작이 가능하다. 이는 버튼을 외워서 사용하는 것보다 인간의 직관과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한발짝 다가선 것이다. 올해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2009에서 LG전자는 3D인 S클래스 UI를 탑재한 아레나 폰으로 호평을 받았다. 삼성 전자도 ‘터치위즈 업그레이드’ UI를 탑재한 울트라터치를 선보였다. 도시바도 3D 동작 인식 기능을 통해 손가락의 터치 방향이나 단말기 움직임을 감지해 작동하는 독특한 UI를 선보였다. 시장 조사 기관인 로아(ROA)그룹은 "올 한해 휴대전화 트렌드로 3차원 이펙트 효과와 지자기 센서(동작의 속도 변화를 감지하는 센서) 등 다양한 센싱 기능을 조합한 터치 UI가 최대 화두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전자산업 전반에서 시도되는 UI 개선
UI를 통한 기능 피로의 해결은 전자 산업 전반에서 시도되고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애플은 단순한 디자인의 아이팟과 터치스크린을 사용한 아이폰으로 전세계로부터 열광을 받았다.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중 하나인 CES 2009에서도 독특한 UI가 각종 기기에서 소개되었다. MID(Mobile Internet Device)에서는 국내 유경테크놀로지스가 새로운 3D 유저 인터페이스를 선보였다. 수십년 동안 리모컨을 벗어나지 못했던 TV에서도 새로운 UI 도입에 대한 가능성이 보였다. 버튼을 작동시켜 약속된 신호를 TV로 보내는 리모컨은 TV를 제어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그래서 많은 기업은 리모컨의 버튼의 감도를 향상시키거나, 재질을 개선하거나, 버튼의 숫자를 줄이거나, 자주 쓰지 않는 버튼을 숨기는 등 버튼에 초점을 맞추어 제품을 개발했다. 그러나 파나소닉은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와 손목 동작 인식을 동시에 적용한 리모컨을 선보였다. 네방향의 최소한 키만 남기고 번호 키를 모두 없애고 터치 패드 위의 손가락 움직임을 통해 번호를 입력할 수 있게 했다. 한손 또는 양손으로도 이용이 가능하고 화면 메뉴의 전체 이동은 가벼운 손목 동작으로도 가능하다. 도시바도 손의 모션 작동을 통해 TV의 인터페이스를 조정하는 ‘공간 모션 인터페이스(Spatial Motion Interface)’라는 한 발 앞선 기술을 선보였다. TV 위의 작은 컨트롤 박스가 손의 동작을 인식하여 명령을 수행하는데, 화면 위의 사진 이미지들을 마치 손으로 종이를 집어서 정렬하거나 구겨서 휴지통에 넣는 것처럼 입체적으로 정렬할 수도 있다. 이는 작년 가을 일본의 가전 전시회에서 히타치가 선보인 제스쳐 컨트롤 TV(Gesture-Controlled TV)와 유사하다. 비록 상용화 되는 데는 2~3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소파에 누워 손을 몇 번 휘젓는 것만으로 TV를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이점으로 등장할 것이다.
사전에서도 UI의 개선을 통한 경쟁력 강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카시오, 샤프 등 대표적인 전자사전 메이커들은 소형 디스플레이 표면이나 터치패드 등에 펜으로 한자를 쓰면 그 한자를 찾아주는 한자 필기 인식 UI를 선보이며 중국어나 일본어 중심의 어학 공부를 하는 사람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이런 UI 개선을 통한 경쟁력 강화는 인터넷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필기 인식으로 한, 중, 일의 한자를 입력하여 찾는 네이버의 한자 사전, 클릭한 상태에서 화면에 그리는 마우스의 움직임에 따라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각종 명령을 내릴 수 있게 하는 알툴바의 마우스 액션, 은행의 오프라인 공간을 그림으로 옮겨 실제 은행의 창구를 찾는 듯한 신한은행의 고객센터 등은 현실적이고 직관적인 알고리즘과 그 사용의 편리함으로 네티즌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다.
만약 닌텐도 위(Wii)에서 동작 센서로 처리되는 것을 각종 버튼으로 조작해야 한다면 사용자는 게임하기 전에 조작하느라 이미 지쳐버릴 것을 염려해 제품을 구매조차 하지 않을지 모른다. 만약 애플이 MP3와 휴대폰에서 버튼 위주의 UI를 개선하지 못했다면 애플의 신화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쓰기만 하면 한자를 찾아주는데, 처음 보는 어려운 한자를 찾기 위해 부수를 찾고, 획수를 세고, 수많은 검색된 한자를 눈을 찡그려 찾아야 하는 수고를 감당할 소비자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다수의 필수 기능에서 발생하는 기능 피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UI의 중요성은 해가 더할수록 높아지고 있다.
단순 하드웨어 개발? 기능 피로의 해결사!
한 소비자는 “집에 TV, PC, 게임기, 셋탑박스, 오디오 등을 설치하고 탁자에 리모컨을 늘어놓았다. 버튼이 수십 개인 리모컨 7개를 탁자에 늘어놓으니, 내가 항공기 관제탑에 있는 줄 알았다. 필요해서 구매하기는 했지만 제품에 쓰지도 않는 기능도 많고, 심지어 무슨 기능이 있는지 조차 모르겠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현재 소비자들은 과거 소비자들보다 자신에게 어떤 기능이 필요하고 어떤 기능이 필요하지 않을지를 더 꼼꼼히 따져본다. 이런 트렌드 가운데서 생산자는 “어떤 기능을 넣어서 비용은 줄이고 가격을 올릴 것인가?”라는 관점이 아니라 “소비자의 기능 피로를 어떻게 하면 줄일 것인가?”라는 관점으로 제품 개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 때 생산자는 경쟁사에 비해 저비용으로 더 적은 기능을 제공했는데, 오히려 소비자의 갈채와 가격 프리미엄까지 더 받는 꿈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은 고객이 꼭 필요로 하는 기능과 그렇지 않은 기능을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나아가 고객이 꼭 필요로 하는 기능을 포함한 제품에는 더 직관적인 UI, 인간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전자 기기에 자동적으로 인식시킬 수 있는 UI를 개발해야 한다. 미시간 주립대 AT&T의 석좌교수인 프랭클린 비오카 교수는 이를 “인간의 온 몸을 조이스틱이나 마우스로 쓰는 것”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인간의 직관과 움직임에 반응하는 제품의 개발이야말로 진정한 소비자 중심이고 나아가 인간 중심의 제품 개발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소프트웨어 개발과 센서의 활용에 더욱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소비자는 돈을 주고 피곤함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반면 기능 피로를 줄인 제품에 대해서는 동일한 가격이나 오히려 프리미엄을 지불할 의향도 있다. 그리고 세상에는 “나이와 무관한 실버 세대”가 생각보다 많다.
- Business Insight 1040호
'Business > 2009'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직 창의성을 가로막는 6가지 편견 (0) | 2009.05.18 |
---|---|
Three Words Leaders Should Learn (0) | 2009.05.11 |
불안정한 넛크래커에서 역동적인 넛크래커로 (0) | 2009.05.04 |
기억력이 좋은 기업 (0) | 2009.04.27 |
일본 사례를 통해 본 도시광산의 미래 (0) | 2009.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