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25. 09:13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B2B 사업의 양축인 고객사와 B2B 기업 사이의 관계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저가의 부품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 보다는 장기적 협력 관계를 유지할 능력이 있는 B2B 기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추앙 받고 있는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호황도 좋지만 불황은 더욱 좋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는 ‘호황기와는 달리 불황기에는 사업의 모든 과정을 면밀히 재검토해 보고, 각종 불합리한 낭비요소를 제거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불황을 극복하는 지혜를 제시한 것이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한 불황기를 거치면서 B2B 사업의 양축인 고객사와 B2B 기업 사이의 관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고객사는 생존이 달린 원가 절감 계획의 일환으로 공급망 사슬의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B2B 기업들도 역시 고객사 상황에 따른 차별적 대응을 통해 살길을 모색하는 등 기업간 관계의 변화가 빠르고 명확하게 바뀌고 있다. 이러한 거래관계의 변화는 B2B 기업이 고객사에 제공하는 부품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B2B 거래의 대상인 부품은 최종제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최종 제품의 성능에 큰 영향이 없고, 부품의 원가와 공급기업의 교체 비용이 최종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소비재(Commodity) 성격의 부품이다. 또 하나는, 최종 제품의 성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부품으로서 공급기업의 변경에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이 막대하고, 원가의 비중 또한 최종 원가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핵심부품이다. 소비재 성격의 부품도 불황기를 맞아 그 거래 방식에 다소간의 변화가 있겠지만, 핵심부품의 경우에는 B2B 기업의 대응 방식에 따라 거래관계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HP, Dell 등 노트북 기업들에 2차 전지를 공급하는 B2B 기업들은 최근 대조적인 사업환경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노트북 기업들은 최근 위축된 시장으로 인해 극도의 원가 절감 압력을 받고 있음에도, 중국계 전지 기업들의 저가 제품 채택을 주저하는 예상 밖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면, 2008년 상반기와 같은 전지 공급 부족 시기에 장기적 파트너로 자리매김한 한국계 전지 기업들과는 상대적으로 높은 공급가격에도 불구하고, 위기 이전보다 오히려 더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다.
이하에서는 기업간 관계의 변화 방향이 명확히 구분되는 불황기에 있어, 핵심부품을 공급하는 거래관계의 변화 양상을 알아보고, 이에 대한 B2B 기업의 성공적인 대응 방안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최근 B2B 사업의 변화 방향과 핵심 포인트
실적 급락으로 고개 숙인 경영진, 부품 공급기업의 연쇄 도산, 그리고 지역 경제의 붕괴, 10년 전 가격으로 팔겠다는 소매업자들의 외침소리. 여기저기 드리워진 저성장 시대 공급과잉의 그늘이 심상치가 않다.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고객사들은 ‘IMF 사태 때의 위기를 기억하면서 계속 현금 보유량을 늘려왔고, 공급기업과의 관계도 나름대로 잘 관리해 왔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왠지 불안한 마음을 떨칠 길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최근까지, 고객사 입장에서 공급기업을 관리하는 방법은 ‘조금이라도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기업을 선택하고 우선권을 부여함으로써, 기업간 무한 경쟁을 유도하여 부품 원가를 낮추는 가격기반의 접근법이 우세했다. 이 방법을 취하는 고객사는 개별 부품을 최종 제품을 구성하는 단순한 구성품의 하나로 여기고, 정보 공유 및 납득할 만한 협상 과정 없이 일방적인 공급가격 인하를 B2B 기업에 수시로 요청한다. 또한 고객사는 부품의 개발부터 생산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파악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조금이라도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기업으로 당장 교체하는 것이 원가경쟁력을 갖추는 데 필수적이라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B2B 사업에서 가격기반 접근법은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먼저, 이익 창출의 지속성이다. 공급기업은 고객사의 요청에 따라 일시적으로 가격을 낮추기는 하지만, ‘단순한 부품’을 공급하는 B2B 기업은 기술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기에 지속적 대응이 힘들다. 이러한 지속성의 부재는 장기적 불황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고객사의 원가경쟁력 구축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 다음으로는 고객사의 강압적 압력에 의한 부작용의 발생이다. 최종 제품의 성능이 복잡해지고 구성부품에 대한 고객사의 이해도와 통제력이 약해지면서, 일부 B2B 기업은 강압적 공급가격 인하 요구에 대응하고자 일정 폭의 여유를 가지고 초기가격을 제안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오히려 고객사와 합의된 가격의 수준을 합리적인 가격보다 더 높이기까지 한다(<그림 1> 참조).
따라서, 가격기반 접근법은 원가경쟁력이라는 ‘탄탄한 맷집’을 갖추고 있느냐가 생존의 관건인 불황기에 결정적 약점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미국 Big3 자동차 기업들에 부품을 공급하던 어느 기업의 경영진이 말하기를, ‘그들은 직원들을 미움의 학교 (Hate school)에 보내서 어떻게 하면 공급기업을 미워할 지 그 방법을 배우게 하는 것 같다. 그들과 우리는 항상 극단적으로 대립한다. 매년 가격협상 이후, 나는 항상 그들이 만드는 차를 구매하지 않기로 맹세한다.’ 100년 넘게 세계 자동차 산업을 주름잡았던 미국 Big3 자동차 기업들의 어려움은 바로 공급기업에 대한 기술과 경영 지원은 제쳐두고 비용 줄이기에만 몰두한 것이 주요 요인이라는 분석이 근래에 많이 나오고 있다.
최근에 많은 주목을 받는 지식기반의 접근법은 장기적 협력관계를 유지할 능력이 있는 B2B 기업을 중시하고 대우하는 방법이다. 이를 지향하는 고객사는 B2B 기업과 함께 목표 달성을 위하여 비용을 낮추고 생산성을 높이는 등 혁신과 개선을 계속한다. 고객사는 B2B 기업을 장기적 파트너로 대하고, 경영지식과 전문적 기술, 그리고 공정개선 정보를 공유하는 등 기존의 관계를 더욱 심화, 발전시킨다. 자동차 제조기업이 아닌 조립기업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도요타는 공급기업 관리에 있어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도요타에 납품하는 기업의 경영진은 ‘도요타는 우리 생산 시스템의 혁신이 가능하도록 도와준다.
도요타가 조언한 대로 개선된 부품을 만들어 공급하면, 도요타는 우리에게 더 많은 양의 물량을 주문함으로써 보상해 준다. 도요타는 우리에게 최고의 고객이다.’라고 하였다. 도요타는 엄격하고 까다로운 공급기업 관리에도 불구하고 외부로부터 비난을 받는 일이 드물다. 또한 최근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공급기업과의 유기적 관계를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는 평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식기반의 접근법으로 바뀌고 있는 B2B 거래관계 변화의 핵심 포인트는 ‘장기적 관점의 이익 창출’ 여부이다. 즉, ‘장기적 이익의 제시’ 여부에 따라 파트너로 인정받은 공급기업은 물량의 안정적 보장과 더불어 원가 절감 및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한 지식도 전수받게 되며, 정보 공유와 공동의 개선 활동을 통해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키워나간다. 한편, 단기적 이익만 제공한다고 판단되는 공급기업은 기존에 진행되던 거래가 마무리됨과 동시에 관계 단절을 통보받기도 한다.
B2B 기업과 고객사의 성공적 관계 구축 방안
무조건적인 공급가격 인하를 요청하기보다 지식기반의 방법으로 B2B 기업과 서로 좋은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은 이미 여러 사례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그 어느 고객사도 단기적인 이익을 내세우면서 접근하는 B2B 기업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객사 입장에서 보면 장기적 파트너로 삼을 B2B 기업을 선택하는 일에 신중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 ‘장기적인 이익을 주겠다’고 내세우는 기업하고 무턱대고 파트너십을 맺을 수도 없는 일이다. 이에 대한 결정은 고객사들의 판단에 달려있고, 그 결정에 따라 B2B 기업은 사업의 성패가 결정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B2B 기업의 입장에서 언제까지나 고객사의 결정에 따라 생존이 좌우되는 수동적 사업전개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B2B 기업이 어떻게 하면 위기에 빠진 고객사의 마음에 드는 파트너가 되어 불황기에도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지 알아보자.
1. 고객사 관점에서 원하는 것을 파악하라
B2B 고객사 입장에서 공급기업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공급부품이 ‘장기적이고 지속적 가치를 창출하느냐’이다. 비록, 불황기에 원가절감의 부담을 공급기업에 떠넘기려는 고객사의 요구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장기적이고 지속적 가치의 중요성이 가려 질 수도 있다. 또한, B2B 기업들도 자신들이 마치 소비재 사업자인 양 착각하면서, 일단 가장 손쉬운 방법인 공급가격 하락을 통해 싸게 조금이라도 더 팔아서 매출도 올리고 재고도 줄이는 방안이 유일한 불황의 돌파구인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공급가격 하락이 한시적이라는 것이다.
연간 150여 공급기업들을 통해 1,200억 개의 부품을 공급받아 일년 내내 24시간 휴대폰 생산을 하고 있는 노키아에 어느 B2B 기업이 최저 가격을 제안하여 진입에 성공했다고 가정해보자. 노키아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품질을 우려할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무검사 원칙을 재고할 것이다. 100% 검사한다면 발생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더구나 무사히 검사를 마무리해도 언제 불량이 발생할 지 모른다. 결국, 아무리 사소한 불량이라도 소비자의 불만을 야기하면서 노키아의 시장 경쟁력은 점차 떨어질 것이고, 비용절감도 이것저것 추가비용의 발생으로 애초에 예상했던 것만큼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노키아는 장기간 관계를 맺어온 B2B 기업을 사업의 생존 여부가 달린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바꾸지 않을 것이다. 설사 바꾸더라도 일시적으로 조금 싸고, 좀더 빨리 받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핵심부품의 성능, 더 나아가 사업 성패를 좌우하기도 하는 자사 제품의 품질을 양보하면서까지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B2B 기업은 고객사와 거래 시, 의사결정자가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고객사가 공급기업을 선택하고 구매 규모를 결정하는 과정은, 구매, 개발, 생산, 마케팅 등 주요 부문을 대표하는 각 부서의 실무진과 그 상위단계의 관리자들이 참여하며, 장기간에 걸쳐 세밀하게 이루어진다. 즉, B2B 고객사의 의사결정자들은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각 부서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실무진들의 집합인 것이다. 따라서, B2B 기업이 일시적 가격하락과 같은, 구매부서만 좋아할 부분적 이익을 제시한다면 여러 부서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복잡한 의사 결정’을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다.
2. 고객사의 신뢰를 얻어라
1996년부터 운영된 노키아의 통합 구매조직인 SLM(Supply Line Management)은 공급기업의 선택 및 퇴출, 공급 물량 관리 등 공급망 사슬의 모든 사항에 대해 결정한다(<그림 3> 참조). SLM은 주요 사항을 판단할 때 공급가격 위주로 결정하던 이전의 관행에서 벗어나서, 통합적 공급망 관리(Supply chain management)능력, 기술 역량, 생산 규모, 그리고 시장 대응력까지 검토하여 결정한다. 업계 최고 수준의 원가절감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SLM 조직의 경쟁력은 최근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휴대폰 산업에서 노키아가 부동의 1위를 지키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고객사가 요구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보수적 요건과 혁신적 요건으로 구분된다. 먼저, 보수적 요건은 부품으로서 요구되는 기본적 성능의 충족과 부품 공급기업으로서 안정적 공급역량을 갖추었을 때 충족된다.
HP가 디스플레이 모듈 공급기업에 가장 먼저 원하는 것은 부품 성능의 충실한 구현이다. 아무리 얇고 혁신적인 해상도를 갖추었다고 해도 기본적 요구 수명이나 안정적 품질 수준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그 기업과 더 이상의 거래관계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연간 3천만 대에 달하는 노트북의 꾸준한 생산을 위해서라도 안정적 공급 능력과 물류 시스템 확보는 필수적이다. 혁신적 요건은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 혁신적 기술력과 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원가경쟁력을 의미한다. 디스플레이 모듈을 HP에 공급하는 기업은 단순히 PC에 필요한 개별부품만 공급하는 것이 아니다. HP의 입장에서는 공급되는 제품에 요구되는 성능 외에, 과연 그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이 시장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알고 싶어할 것이다. 예를 들어 향후 구부러지는 디스플레이 소재가 주력으로 등장할 시점을 예측하는 마케팅 능력과 이를 제품으로 구현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초기 구매비용만이 아닌, 품질관리 비용 등이 총망라된 비용 차원의 경쟁력이 있는지, 그리고 메모리 칩과 같은 또 다른 핵심부품까지 통합적으로 공급이 가능해서 추가적인 공급기업에 대한 관리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지도 평가 범위에 포함시킬 것이다.
이처럼, B2B 기업은 고객사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입장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고객사의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파악해야 복잡하고 세밀한 의사 결정 과정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객사의 가치 향상에 도움이 되는 부품을 제시하는 수준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고객사의 신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시기에 ‘몇 년만 참아다오. 반드시 경쟁력 있는 부품을 만들 테니까’ 라고 고객사에게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어떻게 고객사가 믿고 기다리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람 사이에서 신뢰를 얻는 것도 쉽지 않은데, 기업의 신뢰를 얻는 것은 아득히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루아침에 고객사와 굳건한 신뢰를 쌓을 수는 없다.
B2B 기업의 입장에서는 B2B 사업에서 강조되는 장기적이고 지속적 관계의 특성에 따라 한 단계씩 차곡차곡 신뢰를 쌓아나가야 할 것이다. 신뢰 형성의 첫 단계는 구성원들의 전문적 역량과 책임감을 통해 구축된다. B2B 거래관계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만큼, 구성원들의 역량과 업무에 대한 책임감을 통한 믿음의 축적은 고객사와의 신뢰 구축에 필수적이다. 다음 단계는 거래의 일관성과 기업의 건전성이다. 시황이나 협상 대상의 변화에 따라 거래의 원칙이 달라져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장기간에 걸쳐 생존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생산설비 투자도 할 수 있는 재무적 건전성은 일관적 거래의 전제 조건이다.
마지막 단계는 시장에서의 신의에 대한 평판의 검증이다. 핵심부품의 갑작스런 공급 부족으로 인해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다른 수요기업의 유혹에도 굳건히 견디고 기존 관계를 고수한다는 시장의 평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3. 고객사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먼저 제시하라
고객사의 요구사항과 신뢰를 이해하고 파악했다 하더라도, 고객사는 구체적으로 장기적 관점의 이익을 먼저 제시하는 공급기업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장기적 관점의 이익’의 구성요소들은 시장과 고객사의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것으로서, 공급기업이 그 구체적인 실체에 대해 이해하기는 다소 막막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고객사가 그 실체에 대해 정확히 규정하고 제시해주는 것은 더욱 아니다. 따라서, 공급기업이 B2B 고객사의 대표적인 구매 특성에 맞게 장기적 관점의 이익을 먼저 예측해서 고객사에 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를 들어, 고객사가 혁신적 기술의 보유 여부를 알고자 하면, B2B 기업은 미래 관점의 기술적 솔루션을 제시하고 그에 적합한 R&D 자원을 투입하여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원가 경쟁력을 알고자 한다면 공급망 사슬에서 각각의 과정마다 원가 절감을 위한 세부 실행 방안을 수립하고, 또 고객사가 원하는 다른 부품에 대한 솔루션까지 제안하면 부품 통합구매 측면의 원가 혁신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관건은 그 관계를 얼마만큼 능동적, 적극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지에 달려있다(<그림 5> 참조).
고객사와 능동적 거래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역량을 축적해야
마른 행주도 다시 짜서 쓴다는 불황기에는 B2B 거래관계에서 상대방에 대한 평가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그에 따라 빠른 속도로 거래관계가 변한다. 거래관계 형성에 있어 상대적으로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B2B 기업은 평상시 고객사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불황기를 맞이하여 B2B 기업들도 고객사와의 관계를 능동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역량을 축적해야 한다. 즉, 고객사의 추가적 공급가격 인하 요청에 응하기 이전에 그 고객사가 어려움을 같이 헤쳐나갈 동반자인지, 아니면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기업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불황기를 겪는 공급기업으로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역량이다. 구체적으로, 기존 거래관계에서 지식 및 기술 공유 경험을 돌이켜보고 고객사의 생존 가능성과 향후 사업 전망을 분석한 후, 대응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가격 인하 압력을 피하면서 다른 고객사를 찾아볼 것인지, 아니면 향후 더욱 공고해질 관계를 위해 일시적 가격 인하를 감수하고 그에 대한 물량 보장을 요구할 지도 적극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논의한 세 가지 핵심요인, 즉 ‘고객사의 관점에서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장기적 관점의 이익을 구체적으로 먼저 제시하는 것’은 불황기에 다가오는 ‘거래관계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B2B 기업의 필수 조건이다. 또한, B2B 기업은 금번 불황을 계기로 하여, 기존의 수동적 거래 관행에서 벗어나 적극적 거래관계 구축의 기회로 삼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역시 고객사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잭 웰치 전 GE 회장은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취하는 방법 중 가장 매력 없는 방법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 하였다. 고객사도 어려운 불황기를 혼자서 이겨내려 하기 보다는, B2B 기업과 상생에 대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매력적인 파트너와 함께 경쟁력을 키운다면 눈앞의 힘든 상황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 LG Business Insight 1042호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추앙 받고 있는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호황도 좋지만 불황은 더욱 좋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는 ‘호황기와는 달리 불황기에는 사업의 모든 과정을 면밀히 재검토해 보고, 각종 불합리한 낭비요소를 제거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불황을 극복하는 지혜를 제시한 것이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한 불황기를 거치면서 B2B 사업의 양축인 고객사와 B2B 기업 사이의 관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고객사는 생존이 달린 원가 절감 계획의 일환으로 공급망 사슬의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B2B 기업들도 역시 고객사 상황에 따른 차별적 대응을 통해 살길을 모색하는 등 기업간 관계의 변화가 빠르고 명확하게 바뀌고 있다. 이러한 거래관계의 변화는 B2B 기업이 고객사에 제공하는 부품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B2B 거래의 대상인 부품은 최종제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최종 제품의 성능에 큰 영향이 없고, 부품의 원가와 공급기업의 교체 비용이 최종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소비재(Commodity) 성격의 부품이다. 또 하나는, 최종 제품의 성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부품으로서 공급기업의 변경에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이 막대하고, 원가의 비중 또한 최종 원가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핵심부품이다. 소비재 성격의 부품도 불황기를 맞아 그 거래 방식에 다소간의 변화가 있겠지만, 핵심부품의 경우에는 B2B 기업의 대응 방식에 따라 거래관계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HP, Dell 등 노트북 기업들에 2차 전지를 공급하는 B2B 기업들은 최근 대조적인 사업환경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노트북 기업들은 최근 위축된 시장으로 인해 극도의 원가 절감 압력을 받고 있음에도, 중국계 전지 기업들의 저가 제품 채택을 주저하는 예상 밖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면, 2008년 상반기와 같은 전지 공급 부족 시기에 장기적 파트너로 자리매김한 한국계 전지 기업들과는 상대적으로 높은 공급가격에도 불구하고, 위기 이전보다 오히려 더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다.
이하에서는 기업간 관계의 변화 방향이 명확히 구분되는 불황기에 있어, 핵심부품을 공급하는 거래관계의 변화 양상을 알아보고, 이에 대한 B2B 기업의 성공적인 대응 방안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최근 B2B 사업의 변화 방향과 핵심 포인트
실적 급락으로 고개 숙인 경영진, 부품 공급기업의 연쇄 도산, 그리고 지역 경제의 붕괴, 10년 전 가격으로 팔겠다는 소매업자들의 외침소리. 여기저기 드리워진 저성장 시대 공급과잉의 그늘이 심상치가 않다.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고객사들은 ‘IMF 사태 때의 위기를 기억하면서 계속 현금 보유량을 늘려왔고, 공급기업과의 관계도 나름대로 잘 관리해 왔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왠지 불안한 마음을 떨칠 길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최근까지, 고객사 입장에서 공급기업을 관리하는 방법은 ‘조금이라도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기업을 선택하고 우선권을 부여함으로써, 기업간 무한 경쟁을 유도하여 부품 원가를 낮추는 가격기반의 접근법이 우세했다. 이 방법을 취하는 고객사는 개별 부품을 최종 제품을 구성하는 단순한 구성품의 하나로 여기고, 정보 공유 및 납득할 만한 협상 과정 없이 일방적인 공급가격 인하를 B2B 기업에 수시로 요청한다. 또한 고객사는 부품의 개발부터 생산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파악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조금이라도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기업으로 당장 교체하는 것이 원가경쟁력을 갖추는 데 필수적이라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B2B 사업에서 가격기반 접근법은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먼저, 이익 창출의 지속성이다. 공급기업은 고객사의 요청에 따라 일시적으로 가격을 낮추기는 하지만, ‘단순한 부품’을 공급하는 B2B 기업은 기술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기에 지속적 대응이 힘들다. 이러한 지속성의 부재는 장기적 불황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고객사의 원가경쟁력 구축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 다음으로는 고객사의 강압적 압력에 의한 부작용의 발생이다. 최종 제품의 성능이 복잡해지고 구성부품에 대한 고객사의 이해도와 통제력이 약해지면서, 일부 B2B 기업은 강압적 공급가격 인하 요구에 대응하고자 일정 폭의 여유를 가지고 초기가격을 제안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오히려 고객사와 합의된 가격의 수준을 합리적인 가격보다 더 높이기까지 한다(<그림 1> 참조).
따라서, 가격기반 접근법은 원가경쟁력이라는 ‘탄탄한 맷집’을 갖추고 있느냐가 생존의 관건인 불황기에 결정적 약점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미국 Big3 자동차 기업들에 부품을 공급하던 어느 기업의 경영진이 말하기를, ‘그들은 직원들을 미움의 학교 (Hate school)에 보내서 어떻게 하면 공급기업을 미워할 지 그 방법을 배우게 하는 것 같다. 그들과 우리는 항상 극단적으로 대립한다. 매년 가격협상 이후, 나는 항상 그들이 만드는 차를 구매하지 않기로 맹세한다.’ 100년 넘게 세계 자동차 산업을 주름잡았던 미국 Big3 자동차 기업들의 어려움은 바로 공급기업에 대한 기술과 경영 지원은 제쳐두고 비용 줄이기에만 몰두한 것이 주요 요인이라는 분석이 근래에 많이 나오고 있다.
최근에 많은 주목을 받는 지식기반의 접근법은 장기적 협력관계를 유지할 능력이 있는 B2B 기업을 중시하고 대우하는 방법이다. 이를 지향하는 고객사는 B2B 기업과 함께 목표 달성을 위하여 비용을 낮추고 생산성을 높이는 등 혁신과 개선을 계속한다. 고객사는 B2B 기업을 장기적 파트너로 대하고, 경영지식과 전문적 기술, 그리고 공정개선 정보를 공유하는 등 기존의 관계를 더욱 심화, 발전시킨다. 자동차 제조기업이 아닌 조립기업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도요타는 공급기업 관리에 있어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도요타에 납품하는 기업의 경영진은 ‘도요타는 우리 생산 시스템의 혁신이 가능하도록 도와준다.
도요타가 조언한 대로 개선된 부품을 만들어 공급하면, 도요타는 우리에게 더 많은 양의 물량을 주문함으로써 보상해 준다. 도요타는 우리에게 최고의 고객이다.’라고 하였다. 도요타는 엄격하고 까다로운 공급기업 관리에도 불구하고 외부로부터 비난을 받는 일이 드물다. 또한 최근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공급기업과의 유기적 관계를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는 평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식기반의 접근법으로 바뀌고 있는 B2B 거래관계 변화의 핵심 포인트는 ‘장기적 관점의 이익 창출’ 여부이다. 즉, ‘장기적 이익의 제시’ 여부에 따라 파트너로 인정받은 공급기업은 물량의 안정적 보장과 더불어 원가 절감 및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한 지식도 전수받게 되며, 정보 공유와 공동의 개선 활동을 통해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키워나간다. 한편, 단기적 이익만 제공한다고 판단되는 공급기업은 기존에 진행되던 거래가 마무리됨과 동시에 관계 단절을 통보받기도 한다.
B2B 기업과 고객사의 성공적 관계 구축 방안
무조건적인 공급가격 인하를 요청하기보다 지식기반의 방법으로 B2B 기업과 서로 좋은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은 이미 여러 사례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그 어느 고객사도 단기적인 이익을 내세우면서 접근하는 B2B 기업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객사 입장에서 보면 장기적 파트너로 삼을 B2B 기업을 선택하는 일에 신중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 ‘장기적인 이익을 주겠다’고 내세우는 기업하고 무턱대고 파트너십을 맺을 수도 없는 일이다. 이에 대한 결정은 고객사들의 판단에 달려있고, 그 결정에 따라 B2B 기업은 사업의 성패가 결정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B2B 기업의 입장에서 언제까지나 고객사의 결정에 따라 생존이 좌우되는 수동적 사업전개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B2B 기업이 어떻게 하면 위기에 빠진 고객사의 마음에 드는 파트너가 되어 불황기에도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지 알아보자.
1. 고객사 관점에서 원하는 것을 파악하라
B2B 고객사 입장에서 공급기업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공급부품이 ‘장기적이고 지속적 가치를 창출하느냐’이다. 비록, 불황기에 원가절감의 부담을 공급기업에 떠넘기려는 고객사의 요구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장기적이고 지속적 가치의 중요성이 가려 질 수도 있다. 또한, B2B 기업들도 자신들이 마치 소비재 사업자인 양 착각하면서, 일단 가장 손쉬운 방법인 공급가격 하락을 통해 싸게 조금이라도 더 팔아서 매출도 올리고 재고도 줄이는 방안이 유일한 불황의 돌파구인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공급가격 하락이 한시적이라는 것이다.
연간 150여 공급기업들을 통해 1,200억 개의 부품을 공급받아 일년 내내 24시간 휴대폰 생산을 하고 있는 노키아에 어느 B2B 기업이 최저 가격을 제안하여 진입에 성공했다고 가정해보자. 노키아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품질을 우려할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무검사 원칙을 재고할 것이다. 100% 검사한다면 발생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더구나 무사히 검사를 마무리해도 언제 불량이 발생할 지 모른다. 결국, 아무리 사소한 불량이라도 소비자의 불만을 야기하면서 노키아의 시장 경쟁력은 점차 떨어질 것이고, 비용절감도 이것저것 추가비용의 발생으로 애초에 예상했던 것만큼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노키아는 장기간 관계를 맺어온 B2B 기업을 사업의 생존 여부가 달린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바꾸지 않을 것이다. 설사 바꾸더라도 일시적으로 조금 싸고, 좀더 빨리 받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핵심부품의 성능, 더 나아가 사업 성패를 좌우하기도 하는 자사 제품의 품질을 양보하면서까지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B2B 기업은 고객사와 거래 시, 의사결정자가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고객사가 공급기업을 선택하고 구매 규모를 결정하는 과정은, 구매, 개발, 생산, 마케팅 등 주요 부문을 대표하는 각 부서의 실무진과 그 상위단계의 관리자들이 참여하며, 장기간에 걸쳐 세밀하게 이루어진다. 즉, B2B 고객사의 의사결정자들은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각 부서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실무진들의 집합인 것이다. 따라서, B2B 기업이 일시적 가격하락과 같은, 구매부서만 좋아할 부분적 이익을 제시한다면 여러 부서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복잡한 의사 결정’을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다.
2. 고객사의 신뢰를 얻어라
1996년부터 운영된 노키아의 통합 구매조직인 SLM(Supply Line Management)은 공급기업의 선택 및 퇴출, 공급 물량 관리 등 공급망 사슬의 모든 사항에 대해 결정한다(<그림 3> 참조). SLM은 주요 사항을 판단할 때 공급가격 위주로 결정하던 이전의 관행에서 벗어나서, 통합적 공급망 관리(Supply chain management)능력, 기술 역량, 생산 규모, 그리고 시장 대응력까지 검토하여 결정한다. 업계 최고 수준의 원가절감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SLM 조직의 경쟁력은 최근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휴대폰 산업에서 노키아가 부동의 1위를 지키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고객사가 요구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보수적 요건과 혁신적 요건으로 구분된다. 먼저, 보수적 요건은 부품으로서 요구되는 기본적 성능의 충족과 부품 공급기업으로서 안정적 공급역량을 갖추었을 때 충족된다.
HP가 디스플레이 모듈 공급기업에 가장 먼저 원하는 것은 부품 성능의 충실한 구현이다. 아무리 얇고 혁신적인 해상도를 갖추었다고 해도 기본적 요구 수명이나 안정적 품질 수준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그 기업과 더 이상의 거래관계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연간 3천만 대에 달하는 노트북의 꾸준한 생산을 위해서라도 안정적 공급 능력과 물류 시스템 확보는 필수적이다. 혁신적 요건은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 혁신적 기술력과 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원가경쟁력을 의미한다. 디스플레이 모듈을 HP에 공급하는 기업은 단순히 PC에 필요한 개별부품만 공급하는 것이 아니다. HP의 입장에서는 공급되는 제품에 요구되는 성능 외에, 과연 그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이 시장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알고 싶어할 것이다. 예를 들어 향후 구부러지는 디스플레이 소재가 주력으로 등장할 시점을 예측하는 마케팅 능력과 이를 제품으로 구현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초기 구매비용만이 아닌, 품질관리 비용 등이 총망라된 비용 차원의 경쟁력이 있는지, 그리고 메모리 칩과 같은 또 다른 핵심부품까지 통합적으로 공급이 가능해서 추가적인 공급기업에 대한 관리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지도 평가 범위에 포함시킬 것이다.
이처럼, B2B 기업은 고객사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입장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고객사의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파악해야 복잡하고 세밀한 의사 결정 과정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객사의 가치 향상에 도움이 되는 부품을 제시하는 수준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고객사의 신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시기에 ‘몇 년만 참아다오. 반드시 경쟁력 있는 부품을 만들 테니까’ 라고 고객사에게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어떻게 고객사가 믿고 기다리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람 사이에서 신뢰를 얻는 것도 쉽지 않은데, 기업의 신뢰를 얻는 것은 아득히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루아침에 고객사와 굳건한 신뢰를 쌓을 수는 없다.
B2B 기업의 입장에서는 B2B 사업에서 강조되는 장기적이고 지속적 관계의 특성에 따라 한 단계씩 차곡차곡 신뢰를 쌓아나가야 할 것이다. 신뢰 형성의 첫 단계는 구성원들의 전문적 역량과 책임감을 통해 구축된다. B2B 거래관계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만큼, 구성원들의 역량과 업무에 대한 책임감을 통한 믿음의 축적은 고객사와의 신뢰 구축에 필수적이다. 다음 단계는 거래의 일관성과 기업의 건전성이다. 시황이나 협상 대상의 변화에 따라 거래의 원칙이 달라져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장기간에 걸쳐 생존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생산설비 투자도 할 수 있는 재무적 건전성은 일관적 거래의 전제 조건이다.
마지막 단계는 시장에서의 신의에 대한 평판의 검증이다. 핵심부품의 갑작스런 공급 부족으로 인해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다른 수요기업의 유혹에도 굳건히 견디고 기존 관계를 고수한다는 시장의 평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3. 고객사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먼저 제시하라
고객사의 요구사항과 신뢰를 이해하고 파악했다 하더라도, 고객사는 구체적으로 장기적 관점의 이익을 먼저 제시하는 공급기업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장기적 관점의 이익’의 구성요소들은 시장과 고객사의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것으로서, 공급기업이 그 구체적인 실체에 대해 이해하기는 다소 막막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고객사가 그 실체에 대해 정확히 규정하고 제시해주는 것은 더욱 아니다. 따라서, 공급기업이 B2B 고객사의 대표적인 구매 특성에 맞게 장기적 관점의 이익을 먼저 예측해서 고객사에 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를 들어, 고객사가 혁신적 기술의 보유 여부를 알고자 하면, B2B 기업은 미래 관점의 기술적 솔루션을 제시하고 그에 적합한 R&D 자원을 투입하여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원가 경쟁력을 알고자 한다면 공급망 사슬에서 각각의 과정마다 원가 절감을 위한 세부 실행 방안을 수립하고, 또 고객사가 원하는 다른 부품에 대한 솔루션까지 제안하면 부품 통합구매 측면의 원가 혁신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관건은 그 관계를 얼마만큼 능동적, 적극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지에 달려있다(<그림 5> 참조).
고객사와 능동적 거래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역량을 축적해야
마른 행주도 다시 짜서 쓴다는 불황기에는 B2B 거래관계에서 상대방에 대한 평가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그에 따라 빠른 속도로 거래관계가 변한다. 거래관계 형성에 있어 상대적으로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B2B 기업은 평상시 고객사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불황기를 맞이하여 B2B 기업들도 고객사와의 관계를 능동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역량을 축적해야 한다. 즉, 고객사의 추가적 공급가격 인하 요청에 응하기 이전에 그 고객사가 어려움을 같이 헤쳐나갈 동반자인지, 아니면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기업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불황기를 겪는 공급기업으로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역량이다. 구체적으로, 기존 거래관계에서 지식 및 기술 공유 경험을 돌이켜보고 고객사의 생존 가능성과 향후 사업 전망을 분석한 후, 대응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가격 인하 압력을 피하면서 다른 고객사를 찾아볼 것인지, 아니면 향후 더욱 공고해질 관계를 위해 일시적 가격 인하를 감수하고 그에 대한 물량 보장을 요구할 지도 적극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논의한 세 가지 핵심요인, 즉 ‘고객사의 관점에서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장기적 관점의 이익을 구체적으로 먼저 제시하는 것’은 불황기에 다가오는 ‘거래관계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B2B 기업의 필수 조건이다. 또한, B2B 기업은 금번 불황을 계기로 하여, 기존의 수동적 거래 관행에서 벗어나 적극적 거래관계 구축의 기회로 삼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역시 고객사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잭 웰치 전 GE 회장은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취하는 방법 중 가장 매력 없는 방법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 하였다. 고객사도 어려운 불황기를 혼자서 이겨내려 하기 보다는, B2B 기업과 상생에 대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매력적인 파트너와 함께 경쟁력을 키운다면 눈앞의 힘든 상황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 LG Business Insight 10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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