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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10. 09:42
계획 오류란 현실적인 어려움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실제보다 낙관적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계획 오류는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지 못하는 인간의 자기중심적 성향에서 발생한다. 미래에 대한 예측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현대 기업 환경에서, 계획 오류는 더 자주 나타날 것이다. 소니의 사례로부터 계획 오류의 위험과 예방책에 대해 생각해 본다. 
 
10일 오후 3시 30분 군 최고사령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동태평양에서 작전 중인 해군부대는 6월 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알류샨 열도에 있는 적의 거점과 주변 일대를 급습하는 공격을 펼쳤다. 한편 5일에는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적 근거지인 미드웨이 섬 공군기지에 공습을 감행했고, 지원하러 오던 미국 함대에 맹공을 퍼부어 적 항공모함과 주요 군사시설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다. 
 
1942년 6월 11일 일본의 <아사히신문>에 난 기사다. 이 신문은 태평양 전황은 이 전투로 결판이 났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전과를 거두었다고 보도했다. 다른 신문도 미드웨이 해전의 승전보를 전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결과가 일어났다. 진주만 공습이래 승승장구하던 일본 해군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완패했다. 이 전쟁은 태평양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미드웨이 해전의 패배로 인해 그때까지 미군에 우위를 보이던 일본군의 전력과 사기가 일거에 뒤집힌다. 이는 결국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토록 중요한 전투였기에 국민들의 불안을 감추기 위해 사실과 다른 보도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다. 당시 일본군의 전력은 미군에 비해서 월등히 앞서 있었다. 북태평양에서 작전을 펼치는 일본 해군 함정은 항공모함 여덟 척을 비롯해 200척이나 되었고, 항공기는 700여기를 넘었다. 여기에 일본 해군은 세계 최고 성능의 비행기, 사정거리가 가장 긴 장거리포, 최고 정확도의 어뢰 등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비해 미군은 진주만 기습의 여파로 사용할 수 있는 전함은 한 척도 없었으며 제대로 된 항공모함은 두 척에 불과했다. 더욱이 일본 조종사들은 진주만 공습을 경험한 베테랑들이었고 미군 조종사들은 기량이 부족한 신참들이 대부분이었다. 수적인 화력에서도 세 배 이상 차이가 났지만, 조종사들의 숙련도를 감안하면 일본군의 전력이 미군보다 대여섯 배 높았다. 험준한 산악이나 해류가 뒤엉킨 복잡한 섬에서의 전투가 아닌, 태평양 한가운데에서의 싸움은 전략보다 전력 싸움이다. 항공모함끼리 서로 화력 대결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이 질 수 없었다.  
 
도대체 일본군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일본군의 계획 오류 
 
일본군의 계획은 치밀했다. 애초 일본군은 미드웨이 공습에서 진주만 공습 때 잡지 못했던 항공모함을 격침시키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다음과 같은 계획을 세웠다.
 
1단계 : 알래스카 근처의 알류샨 열도를 침공함   으로써 미군의 관심을 돌린다.
2단계 : 미드웨이 기지에 있는 항공기와 시설에 공습을 가해 화력을 무력화시킨다.
3단계 : 미드웨이 점령을 듣고 달려온 미군 항공모함을 폭격기로 공격하여 격침시킨다.
 
그런데 일본군이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미군 내에 수학자들로 구성된 암호해독반이 일본군의 암호를 해독했던 것이다. 미군은 미드웨이 기지를 점령할 일본군의 계획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에 미군은 알류샨 열도에 있는 기지를 포기했다. 미드웨이에서도 항공기를 철수시키고, 항공모함은 미리 출격하여 섬 북쪽에서 일본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군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일본군은 1차 공습에서 미드웨이 기지를 완전히 전소하지 못했다. 미군은 일본군의 예상과는 달리 빠르게 반격했다. 미드웨이 작전을 지휘하던 나구모 주이치 사령관은 무언가 상서롭지 않은 조짐을 느꼈다. 그러나 계획을 중시하던 나구모는 미드웨이 기지를 점령하려는 목적을 위해 2차 폭격을 준비했다. 이때 정찰기가 미군 항공모함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미드웨이 작전을 지휘하던 나구모 주이치 사령관은 혼란에 빠졌다. 미드웨이 기지를 점령할 때까지 미군 항공모함은 나타나면 안되는 것이었다. 미드웨이 기지 점령을 위해 공습을 지속할지, 미군 항공모함과는 어떻게 싸울지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미군 전투기들이 일본 항공모함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이제서야 나구모는 부랴부랴 항공모함에 대한 공격을 결정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네 척의 일본 항공모함 전투기들은 모두 육지를 공격하기 위한 무장을 하고 있었다. 이제 폭탄을 어뢰로 교체하는 등 함정공격용으로 즉시 무장을 전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항공모함 갑판 위에 폭탄을 늘어놓게 되었다. 그리고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미드웨이를 공격하고 돌아오는 공격대를 착륙시키기 위해 함정공격용으로 무장한 전투기들을 즉각 출격시키지 못했다. 이러한 혼란을 틈타 미군의 전투기가 일본 항공모함을 공격했다. 기량이 부족한 대부분의 미군 전투기는 일본군의 공격에 격침되었지만 한두 전투기에서 투하한 폭탄이 일본 항공모함에 떨어졌다. 이것이 갑판 위에 가득한 폭탄, 연료와 함께 폭발하여 항공모함 네 척이 모두 격침되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항공모함 네 척과 순양함 한 척을 잃고, 항공기 300대가 격추당했으며 3천명이 넘는 해군이 사망했다. 이 전투로 전쟁 종식이 1년 이상 앞당겨졌다고 한다.
 
미드웨이 해전은 계획과 현실이 다르게 나타났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교훈을 준다. 계획과 다른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즉각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보여준다.
 
더불어 미드웨이 해전은 인간이 세우는 계획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계획과 현실 사이에 수많은 변수들이 등장하는데 이를 예상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더욱이 사람들은 현재의 정보만을 토대로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고, 주관적인 입장에서 미래를 바라보다 보니 계획이 틀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낙관적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성향을 심리학에서는 계획의 오류(Planning Fallacy)라고 부른다. 인간의 본성으로 인해 계획 오류는 피할 수 없는 것이므로 완벽한 계획을 세우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돌발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계획을 그때그때 변화시킬 수밖에 없는데, 일본군이 그랬듯이 많은 조직에서 계획을 고수하다가 커다란 피해를 입는 경우가 발생한다.
 
일본군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범했던 실수가 50년이 지난 후 일본 최고 기업인 소니에서 똑같이 나타난다.
 
소니의 계획 
 
1995년 이데이 노부유키는 오가 노리오의 후계자로 사장에 취임한다. 창업자인 이부카 마사루와 모리타 아키오, 그리고 모리타가 일찍 발굴하여 경영자로 키운 오가에 이어, 실질적인 네 번째 CEO였다. 이데이는 앞으로 소니가 당면할 경영환경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까지 소니는 아날로그 기술로 세계를 재패했다. 소니는 세계 최초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만들어 미국시장을 공략했고, 트리니트론 TV, 워크맨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했으며, CD와 MD를 개발하여 음반 산업을 발전시켰다. 세계 최고의 AV(오디오·비디오) 기술을 가지고 있던 회사였다. 또 영화사와 음반사를 인수하여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도 진출했다. 아날로그 세계에서 소니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최고 회사였다.
 
그러나 다가오는 시대에는 디지털 기술이 가전과 오락 산업을 지배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취임 후 처음 맞이한 연례 경영자회의 기조연설에서, 이데이 사장은 2천명의 소니 간부들 앞에서 ‘제2의 창업(Regeneration)’을 주창했다. 앞으로 소니는 디지털 시대에서 자랐고 디지털 기술에 친숙한 고객의 꿈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독창적이고 재미가 넘치는 상품을 계속 만들어가자고 하면서, ‘디지털 드림 키즈(Digital Dream Kids)’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제시했다.
 
단순히 디지털 제품을 만들어 팔겠다는 것이 아니다. 향후 네트워크 시대의 도래를 내다보고 소니의 제품을 연결하여 고객에게 더 나은 즐거움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1990년대 미리 10년을 내다보고 Connect, Synergy, Hub로 이어지는 치밀한 계획을 수립했다.
 
● 1단계: Connect 
 
소니는 콘텐츠, 콘텐츠를 실어 나르는 유통, 콘텐츠를 재생하는 기기를 모두 연결하여 소비자들이 더 쉽고 편리하게 소니의 제품과 서비스를 활용하도록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소니는 영화와 음악, 게임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필요한 콘텐츠가 풍부했다. 이 콘텐츠를 디지털로 변환시켰다. 이렇게 전환된 디지털 콘텐츠를 방송이나 인터넷, 연결매체, 케이블 TV 등을 통해서 전달하기 위해, 1995년 인터넷 접속회사인 소네트를 설립하였고, 스카이 퍼펙트 TV를 통해 디지털 위성방송 사업에도 진출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애플보다 먼저 온라인 음악상점인 프레스플레이(Pressplay)를 통해 음악 다운로드를 가능하게 했다. 또 에버퀘스트(EverQuest)를 통해 게임을 다운로드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러한 콘텐츠를 소니의 TV, 오디오, 휴대용 미디어 기기, 게임기 등을 통해 재생하게 하는 것이다. 소니가 1997년 바이오(VAIO)라는 브랜드로 PC 사업에 뛰어든 것도 네트워크를 통해 디지털 콘텐츠를 연결하는데 컴퓨터가 없어서는 안되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메모리스틱, AV 제품과 PC를 연결시켜주는 아이링크(i.Link) 등을 개발한 것도 가정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손쉽게 이동시키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 2단계: Synergy 
 
소니의 제품들이 연결되면 점유율이 높은 소니의 제품을 가지고 있는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다른 것도 구매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연결과 점유율 확대가 선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았다. 가령 소니의 캠코더와 디지털 카메라에서 찍은 동영상이나 사진을 바이오와 연결하면 곧바로 재생할 수 있고 프린트까지 할 수 있다. 다른 컴퓨터로는 이처럼 편리하게 소니의 제품을 사용할 수 없다. 자연스레 바이오를 구매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소비자들에게 인기 있는 가전제품과 콘텐츠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위성방송이나 인터넷 사이트의 회원도 점차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렇게 되면 소니 제품에 열광하는 소비자들이 소니 제품과 서비스의 연결망에 묶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하여 시너지를 창출하려는 생각은 창업자인 모리타 회장 때부터 있었다. 모리타는 1970년대 기술적으로 우수한 베타맥스의 실패를 돌이켜 보면서, 그때 영화나 텔레비전 라이브러리를 가지고 있었다면 VHS와의 싸움에서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이러한 모리타의 염원이 CBS 레코드와 콜럼비아 영화사를 인수하게 만든 것이다.
 
● 3단계: Hub 
 
궁극적으로는 세계의 가정에 소니의 제품이 중심이 되는 디지털 허브를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다. 소니가 구상하는 홈 네트워크는 디지털 방송이나 지상파, 인터넷 등을 통해 가정으로 들어오는 많은 양의 정보를 홈 서버에 축적하여 소비자가 원할 때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콘텐츠를 소니의 TV, 각종 멀티미디어 기기, 카 미디어 같은 다양한 AV 기기를 연결하여 즐길 수 있게 된다면 다양한 수익 모델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소니 왕국이 건설되면 장차 디지털 시대를 제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소니의 현실 
 
그러나 현실은 소니의 생각과 달랐다. 소니의 콘텐츠와 제품, 서비스를 연결하면 취약한 제품의 판매도 따라 올라갈 줄 알았는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가령 2004년 아이팟에 대응하는 디지털 음악플레이어를 출시했을 때 MP3 포맷이 아닌 독자적인 디지털 음악 포맷인 ATRAC 파일만 재생되도록 했다. 자체적으로 음악 콘텐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불법 복제나 공유가 쉽지 않은 독자 포맷을 가져간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MP3 음악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 제품으로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매력적이지 않았다. 제품은 실패했고, 프레스플레이를 통해 소니의 음원을 구매하는 소비자도 거의 없어졌다. 마찬가지로 바이오가 아닌 다른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소비자는 바이오하고만 연결되는 소니의 멀티미디어 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불편했다. 점유율이 낮은 제품이 인기 있는 제품의 판매를 끌어내린 꼴이 되었다.
 
체인의 법칙이 적용된 것이다. 체인의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 체인의 법칙이다. 수많은 부품 중에서 가장 약한 부품의 품질이 우주선의 안전을 결정하는 사례 등에 적용된다. 그런데 이 법칙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대부분의 서비스에서 나타난다. 소니의 제품과 서비스도 연결되는 순간 가장 취약한 부분이 전체 네트워크의 품질과 만족도에 영향을 준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제품을 연결하는 단계에서 소니가 생각하던 그림이 현실화되지 않자, 다음 단계의 계획은 자연스럽게 물거품이 되었다.
 
소니의 실수 
 
그러면 소니의 생각은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가?
 
● 너무 앞서갔다 
 
소니가 예상한 방향은 맞았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도래를 너무 앞서서 바라보았다. 이데이 사장은 소프트웨어와 네트워크의 미래에 관한 연설 도중에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 TV 한대에 10엔이 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회사의 기술력에 따라 제품마다 커다란 차이가 있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어느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이건 차이가 없어질 것이었다. 결국 하드웨어로는 차별화시키지 못할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디지털 TV 산업도 부품이 모듈화되고 범용화됨에 따라 컴퓨터 산업처럼 수평 분화되리라고 생각하여 당시 차세대 기술로 각광받던 LCD나 PDP에 투자하지 않았다. TV 생산에 필요한 부품은 다른 회사에서 공급받으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히려 훨씬 앞선 기술인 OLED에 투자했다. 하지만 현실은 LCD TV가 대중화되어 수요가 폭발했다. LCD 모듈을 자체 생산하지 않았던 소니는 TV 수요에 즉시 대응하지 못하여 한국기업에게 시장 지위를 내주게 되었다. 반면 OLED는 오랜 기간 상품화되지 않아 투자비를 회수하지도 못하고 사업을 접었다.
 
너무 미래를 앞서 나간 실수를 했다.
 
● 너무 구체적이었다 
 
컨텐츠와 소프트파워가 중요해질 거라는 소니의 계획은 들어맞았다. 하지만 소니는 모든 영역에서 너무나 장기적이면서도 자세한 그림을 그렸다. 소니가 구축하려고 하는 디지털 허브는 AV 제품뿐만 아니라 미디어, 게임, 정보통신 등 다양한 기술로 구성되어 있다. 이 모든 영역의 기술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니는 네트워크 전략을 세우던 당시의 기술로 모든 것을 엮으려고 했지만 현실은 다르게 진화되었다.
 
가령 홈 서버에 다양한 정보를 저장하려던 소니의 계획은 인터넷의 발달로 저장매체의 중요성이 감소하여 사업성이 줄어들었다. 메모리스틱이나 아이링크로 디지털 기기를 연결하려던 계획은 산업의 표준이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여 무용지물이 되었다. 미래의 기술 변화를 하나하나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함에도 소니는 이를 시도했다.
 
즉 10년의 계획이 너무 구체적이었던 것이 또 다른 실수였다.
 
● 너무 자신만만했다 
 
당시 소니는 일등 기업이었고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너무 자신만만했다. 소니는 콘텐츠부터 플랫폼, 혁신적인 제품까지 엔터테인먼트 관련 산업의 가치사슬(Value Chain)을 대부분 가지고 있었으므로, 자신의 왕국 안에서 소비자들을 붙잡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소비자들이 MP3 음악을 듣는 추세 속에서도 독자적인 포맷을 제시하여 소비자들을 이끌려고 했다.
 
더욱이 소니와 같은 일본기업이 잘나가는 것에 대해서 글로벌 경쟁기업이나 서구 사회에서는 시기와 질투심을 가지게 된다. 최근 도요타 제품 불량 사태에서 미국 사회가 보여준 것처럼, 시기의 대상이 된 기업은 약점을 보이면 더 크게 다친다. 소니가 사업에서 오만함을 보이자 소비자들은 물론이고 경쟁기업들마저 점차적으로 소니의 반대세력이 된 것이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우월한 전력과 우수한 군사를 보유한 일본군이 미군을 얕보는 실수를 범한 것처럼, 소니 역시 겸손하지 못하고 자만에 빠진 것이 큰 실수였다.
 
조령모개를 잘하는 기업 
 
“전투란 착오의 연속으로, 착오를 적게 저지른 쪽이 좋은 결과를 얻는다. 상대가 어떤 행동으로 나올 것인지, 이에 대한 우리 대응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확실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불확실한 상황 때문에 게임의 참가자는 착오의 연속에 직면하게 된다.”
 
지식경영의 대가 노나카를 비롯한 일본의 군사학자들이 태평양전쟁의 패배를 분석한 책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에 나오는 말이다. 착오란 계획과 현실의 차이다. 불가피한 것이다. 전쟁은 착오의 싸움이다. 누가 착오를 적게 범하느냐의 싸움이며, 착오를 범하더라도 얼마나 빨리 이를 줄이느냐의 싸움이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군이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전개되었다. 알류샨 열도를 구하기 위해 미군이 그쪽으로 몰려가지 않았으며, 항공모함이 진주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과 싸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군은 착오가 발생했는데도 계획을 고수하려다가 큰 낭패를 보았다. 평생 계획의 실천에 목숨을 바쳤던 사령관 나구모 주이치는 결국 자결한다.
 
앞으로 경영환경은 전쟁터처럼 예측이 점점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만큼 계획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더 커진 것이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판단해도 완벽한 계획이란 있을 수 없다. 계획 오류에서 벗어나는 길은 계획이란 항상 변할 수 있음을 인식하는 데서부터다.
 
모방에서 혁신으로 도약한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저마다 새로운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 다각화된 제품을 결합하고 서비스를 융합하여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고자 컨버전스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아마 그동안 한국기업이 GE와 같은 기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GE는 한국기업처럼 다각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기술, 금융, 비즈니스 모델 등을 결합하여 차별화된 솔루션을 만들어 성공했다. 하지만 GE는 B2B 회사다. 한정된 고객을 대상으로 한두 경쟁자와 싸운다. 상황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소비재 회사는 다르다. 불특정 다수의 고객들과 수많은 경쟁자들이 모인 곳에서 게임을 하기 때문에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지금 한국기업은 10여 년 전 소니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소니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너무 앞서가거나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아마도 소비자가 이에 대한 해답을 줄 것이다.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컨버전스 전략은 고객에게 더 나은 가치를 주는 과정에서 여러 서비스가 차곡차곡 쌓였을 때 만들어 질 수 있다.
 
조령모개(朝令暮改)란 말을 재해석해야 할 지 모른다. 조령모개란 아침에 내린 명령을 저녁에 고친다는 뜻으로, 일관성 없이 갈팡질팡함을 꼬집는 말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조령모개를 잘하는 것도 기업의 새로운 역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LG Business Insight 109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