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26. 19:34
우리 기업은 선진 기업이 개발한
상품을 개량하여 신속하게 내놓는 추격자형 경영을 통해 성공해왔다. 이제는 선발자를 따라가는 캐치 업 경영만으로는 국제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생존·번영하는 일등 기업이 될 수 없다. 이노베이션 선도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한 근본적인 체질 변화를 시도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는 지금 선진국으로 가는 문턱에 와 있다. 비단 경제 규모 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으로 도약해 가는 변혁기에 있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간, 우리 기업은 선진 기업이 내놓은 상품을 보다 낮은 가격, 더 나은 품질, 디자인으로 개량하여 국제 시장에 제공함으로써 성장해 왔다. 한마디로, ‘재빠른 추격자(Fast Follower)’로서 성공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추격자형 경영으로는 세계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생존·번영하는 일등 기업이 되기는 어렵다. 요즘과 같이 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시장 기회를 선점하는 선발 기업의 프리미엄이 더 커지고, 후발 기업이 성공할 확률은 적어질 수 밖에 없다. 또, 중국, 인도 등 가격 경쟁력이 앞선 신흥 개발국 기업들의 도전이 거세지는 것도 위협적인 요인이다.
이제는 기업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선진 기업을 따라가는 캐치 업(Catch-up) 경영을 뛰어넘어,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거나 기존 상품의 고객 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여 시장을 주도하는 선도적 이노베이션 역량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된 몇 가지 경영 포인트를 정리해 본다.
잠재 시장의 선행적 탐구
● 1만 시간 이상 먼저 보고 준비한다
이노베이션 선도를 위한 가장 기본은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아직 시장이 드러나지 않은 잠재된 사업이나 상품 분야를 먼저 보고 미리 준비하는 탐험적 연구 노력이다.
스탠포드 경영 대학의 제임스 마치 교수는 기업이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식을 축적하고 응용하는 학습이 끊임없이 일어나야 한다고 하면서, 조직의 학습 활동을 크게 ‘활용(Exploitation)’과 ‘탐구(Exploration)’라는 두 가지로 구분하였다. 활용이란 현재 가지고 있는 자원을 활용하여 기존의 제품/서비스를 개량함으로써 성과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탐구란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창조하는 이노베이션 활동을 의미한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이 두 가지 능력을 균형 있게 갖추어야 한다.
현재 가지고 있는 역량의 활용에만 치우칠 경우 단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고, ‘괜찮은 추격자(Good Follower)’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독창적인 제품/서비스 개발로 기회를 선점해 나가는 ‘이노베이션 선도자(Innovation Leader)’는 될 수 없다. 아직 드러나지 않는 분야를 연구하고 개척해 나가는 탐험적 학습 활동 없이는 고객 가치 창조를 선도할 수 없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분야를 개척하는 탐험 학습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미래의 경영 활동에 대한 자원 배분 가이드 라인부터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구글에는 ‘70:20:10’라는 원칙이 있다. 이는 회사 자원의 70%는 현재의 주력 핵심 사업, 20%는 핵심 사업과 관련된 분야, 나머지 10%는 미래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사업 분야를 찾는 탐색 업무에 투자하라는 전략적 자원 배분 지침이다.
자원 배분의 지속성도 중요하다. 아직 선례가 없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여 성과를 거두려면, 단기간에 가시적 결과를 얻으려는 성과 조급증을 가져서는 안 된다. 최소 3년 이상의 장기적 관점에서 멀리 보고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말콤 글라드웰이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s)’에서 강조한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학습 원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느 분야에서든 통달한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 1만 시간의 훈련이나 학습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스포츠 선수, 예술가, 문학가 등 특정 분야에서 최고가 된 사람들 중, 1만 시간 미만의 노력으로 세계적 수준의 성과를 낸 경우는 없다. 하루 3시간씩 집중 노력을 한다고 가정할 경우, 1만 시간은 약 10년에 해당하는 학습 기간이다. 압축해서 하루 8시간의 고도의 노력을 할 경우, 숙련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약 4년이 걸리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구성원들이 기존에 없었던 독창적 이노베이션에 도전해서 성과를 낼 만큼 숙련된 전문성을 갖추려면 적어도 3~4년 이상은 공을 들여야 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아직 선례가 없는, 잘 알려져 있는 않은 분야에 도전하여 이노베이션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4년 이상을 남보다 먼저 보고 미리 준비하는 선행 연구와 학습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기존에 해보지 않은 혁신적인 신사업이나 신제품을 개발하려 한다면, 관련 R&D 인력을 최소 3년 전에 미리 뽑아 준비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스마트 폰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애플의 아이폰도 출시 이전에 약 3년 이상의 선행 연구와 준비 기간을 거쳐 탄생되었다고 한다. 특히, 아이폰에 탑재된 운영 체계(OS)의 개발만을 놓고 볼 때, 아이폰은 10년이 넘는 기간의 선행적 연구 개발 노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아이폰의 운영 체계는 과거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나와 창업한 소프트웨어 회사인 넥스트가 90년대 후반에 개발한 운영 프로그램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꿈/상상력 기반의 전략
● 시장 조사, 실증 논리를 넘어선다
독창적 이노베이션을 위한 두 번째 조건은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고,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하는 미래에 대한 꿈과 상상력이다.
통상적인 기업들은 새로운 사업 모델이나 상품을 기획할 경우, 시장 조사, 다른 기업들의 동향 분석 등을 실시하고 그에 입각한 논리적 추론으로 대안을 수립한다. 수요 추이, 경쟁사 제품 사례, 실적 추이 자료 등 각종 데이터 분석 차트로 가득 찬 보고서 작성 작업에 많은 시간을 투여한다. 그러나 이러한 실증적 분석 논리에 기반한 접근으로는 독창적 이노베이션이 나올 수 없다. 시장 조사, 데이터 분석으로는 미래의 숨겨진 고객 니즈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잠재적인 고객 니즈는 고객 자신도 명확히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고객 인터뷰나 서베이 등 시장 조사 자료에 나타나지 않는다. 또, 과거와 현재의 고객 데이터 분석으로는 기존의 연장선 속에서 이루어지는 연속적 변화는 예측할 수 있지만, 기존과 전혀 다른 불연속적인 변화는 발견할 수 없다. 하버드 경영 대학원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그의 저서 ‘혁신 기업의 딜레마(Innovator’s Dilemma)’에서 주장한 한마디를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고객이 현재 필요치 않는 미래 혁신으로 기업을 인도해 줄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고객과 가까이 하는 것은 점진적 혁신을 하는 데는 중요하지만, 파괴적 혁신을 하는 데는 잘못된 데이터를 줄 수도 있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 패드로 이어지는 독창적 이노베이션 제품으로 연속적으로 대박을 치고 있는 애플은 시장 조사나 경쟁사 제품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히도쯔바시 대학의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에 따르면, 일본 내 성공한 사업이나 상품 혁신 사례들을 연구한 결과, 고객에게 높은 가치를 주어 세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이노베이션은 단순한 시장 조사나 시장 분석을 통해서 생겨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성공한 이노베이션 사례는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발상으로 고객에게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준 것들이었다. 결국, 새로운 고객 니즈를 창조하는 독창적 이노베이션은 데이터로 나타나지 않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직관적 통찰력, 현재의 생각을 뛰어넘는 미래에 대한 상상력, 고객 가치에 대한 꿈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헨리 포드는 1900년대 초 자동차가 희귀한 시절에,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저렴한 대중적인 차를 꿈꾸었다고 한다. “10~20년 후에는 미국 대부분의 길에서 말과 마차가 사라지고, 우리가 만든 자동차가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르며, 우리 종업원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이 만든 자동차를 타고 다니게 할 것이다.” 이런 미래에 대한 꿈과 상상력이 있었기에, 컨베이어 벨트 조립 시스템과 같은 독창적 발상으로 자동차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이노베이션이 가능했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1억대 이상 팔린 소니의 워크맨이 탄생한 배경에도 모리오 아키다 회장의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기를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1970년대 중반 당시 개인용 컴퓨터가 생소하던 시절에, “누구나 살 수 있고 비전문가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어서 각 개인들이 자유롭게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해방의 도구를 제공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또, 2007년 아이폰 출시 배경에도 “우리는 과거 그 어떤 휴대용 기기보다 휠씬 스마트하고 훨씬 사용하기 쉬운 전혀 다른 차원의 뛰어난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실험에 의한 학습
● 먼저 실험해 보고 배워서 길을 찾는다
선발 기업의 사업이나 상품을 모방할 수 있는 Catch-up 상황에 비해,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선도 상황에서는 선례가 없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표 1> 참조). 그 과정은 마치 짙은 안개가 자욱한 숲 속 길을 걷는 것과 같다.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에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고, 사전에 정교한 계획을 세울 수 없다. 설사 계획을 세운다 하더라도 전략적 확신을 가지고 실행하기 어렵다. 오히려 상세한 계획을 짜고, 확신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기 위한 정보 수집에 공을 들이다가는 시간 낭비로 의사결정이 늦어져 선점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전에 상세한 계획을 세우려 하기 보다는, 불완전하더라도 가능성이 있는 것을 중심으로 일단 행동에 옮겨 실험해 보고 그를 통해 배워서 해법을 찾아 나가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일단 저지르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소위 ‘행동 학습(Learning by Doing)’, ‘실험 학습(Learning by Experiment)’이 이루어져야 한다.
미시간 경영 대학원의 칼 와익 교수는,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사전에 상세한 계획을 세운 후 행동하기 보다는 큰 방향만 정해지면 확실한 계획이 없더라도 신속히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현명하다고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하였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헝가리 부대의 한 소대원들은 알프스 산맥에서 훈련 중이던 어느 날 정찰을 나갔다가 눈보라 속에 길을 잃어 동사할 위기 상황에 직면하였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행히도 어느 소대원이 주머니에서 알프스 산맥의 지도를 찾게 되었다. 나침반도 없는 상황이었으나 그 지도를 보며 길을 찾아 결국 본대에 복귀할 수 있었다. 소대장은 부대에 복귀한 후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알프스에서 길을 찾도록 이끌어 준 그 지도는 알프스 산맥 지도가 아니라 피레네 산맥 지도였다는 것이다…” 비록 틀린 지도였지만, 그 지도로 인해 소대원들이 길을 찾아 나서는 행동이 촉발되었고, 결국은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사전 계획 수립에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기본 방향만 잡히면 먼저 행동해 보고 배워서 사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사후적 합리성(Posterior Rationality)’이라고 부른다.
짐 콜린스는 ‘성공하는 기업의 7가지 습관(Built to Last)’에서, 장수하는 혁신 기업들의 특징 중 하나로 실험 정신을 꼽고 있다. 혁신 기업들에게는 ‘많은 것을 시도해 보고 그 중 잘 되는 것에 집중한다’는 실험 학습의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애플에는 디자인 업무를 수행하는 가이드라인으로 ‘10:3:1’이라는 원칙이 있다고 한다. 신제품을 디자인할 경우, 디자이너들은 먼저 10개의 다른 개념의 모델을 만든다. 그 다음에는 10개의 모델 중에서 가장 적합한 3개를 고른다. 이 3가지 모델을 수개월에 걸쳐 시험하고 평가하여 최종적으로 1개의 모델을 정하는 방식이다.
세계적인 히트 상품들이 창조된 배경에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믿고 개발을 시도해 보는 기업가적 실험 정신이 자리잡고 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맥나이트, 리처드 칼턴 등 3M의 역대 CEO들은, “한 번 해보게 하라, 그것도 지금 당장!”, “무엇인가 시도하지 않는다면 우연에 의해서라도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다!”고 하면서, 아이디어의 실험을 적극 장려했다. 방수용 사포, 스카치 테이프, 포스트 잇 등 3M이 창출한 수 많은 세계적 히트 상품들은 모두 다 이러한 실험 학습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이노베이션 중시의 인사
이노베이션을 탐구하는 실험 학습이 잘 이루어지려면, 인력, 예산, 시간 등 필요한 자원이 적절히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인은 구성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도록 하는 것이다.
● 창의적 도전과 성과의 질을 중시한다
우선, 성과 평가 시스템부터 이노베이션 행동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정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성과에 대한 생각부터 달리해야 할 것이다. 회사의 매출이나 수익에 당장 도움이 되는 단기 결과 중심적인 성과 관념을 탈피해야 한다. ‘이익에 얼마나 공헌했는가?’하는 결과 만이 아니라 기존에 없던 것을 개척하려는 시도, 획기적으로 고객 가치를 높이려는 시도 등 혁신 행동 그 자체를 높이 평가하는, 노력의 질을 보려는 성과 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실패에 대한 시각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실패를 ‘이노베이션으로 가는 중간 과정’으로 인정할 수 있는 성과 평가 철학이 필요하다. 물론, ‘게으른 실패’, ‘부주의한 실패’는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창의적인 실패’, ‘도전적인 실패’, ‘정직한 실패’는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성공한 신제품 사례들을 보면, 어떤 경우이든지 그 개발 과정에서 많은 실패를 경험한다. 어떤 경우에는 과거에 실패한 제품이 신제품 성공의 밑거름이 된다. 이런 면에서 실패는 성공으로 가기 위한 필연적인 학습 과정이다. 실패는 없지만 도전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당장 결과는 안 좋더라도 이노베이션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인정하고 기회를 주는 성과 문화가 구축되어야 한다.
소니는 1980년대 후반에 ‘NEWS’라는 워크스테이션을 개발하였으나, 시장에서 실패했다. 그러나 소니의 경영진은 개발 담당자들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재도전의 기회를 주었다. 이들이 제품 개발 과정에서 학습한 기술적 경험과 실패로부터 배운 지식을 중시한 것이다. 이렇게 개발된 제품이 바로 ‘VAIO’ 노트북 컴퓨터였다. 최근 소니는 과거에 비해 많이 침체되어 있는 모습인데, 이러한 이노베이션을 고무하는 문화가 예전만 못한 것이 한 원인이라는 지적이 있다.
평범한 민간 기업(시마즈제작소)의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200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다나카 고이치는, 그의 연구 결과를 ‘실수에 의한 우연한 발견’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런 우연한 발견을 가능케 했던 핵심 동인은 미지의 분야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실패나 실수를 포용해준 회사의 경영 풍토라고 하였다. “나는 실험을 거듭하면서 많은 실패를 했습니다. 연구비를 낭비한다고 질책하는 회사였다면 벌써 해고됐을 것입니다. 경영진은 미래에 활용할 만한 신기술이라면 어떤 것을 연구해도 좋다며 예산을 배정해 주었습니다.” 시마즈제작소는 의료기기 등을 개발·판매하는 회사였는데, 다나카의 연구팀이 개발한 기기(질량 분석기)는 몇 대 안 팔려 회사 성과에는 기여하지 못했다. 그러나 인사상 불익을 주지 않고, 연구를 계속 하도록 배려해주었다.
성과 목표 부여시 이노베이션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성과 책임을 배분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예컨대, 매년 매출의 30%를 최근 4년내에 개발된 신제품으로 채우게 하는 3M의 ‘30% 룰’이 여기에 해당된다.
● 이노베이션 기질을 보고 채용한다
사람을 뽑는 채용 기준도 바뀔 필요가 있다. 남보다 앞서 이노베이션을 선점하려면, 미지 세계에 대한 호기심, 모험 정신, 스스로 일을 만드는 주도성 등 혁신가적 기질을 가진 구성원들이 많아야 한다. 미국 브리검 영 대학의 제프리 다이어 교수는 혁신가의 기질적 특성을 5가지로 제시하였다(<표 2> 참조). 서로 다른 것들을 연결하여 조합하는 ‘연상력(Associating)’, 기존의 지배적 사고와 현상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Questioning)’, 현상에 숨어 있는 것을 보는 ‘관찰력(Observing), 끊임없이 실험하는 모험적 ‘실험 정신(Experimenting)’,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상호작용하여 아이디어를 얻는 ‘네트워킹(Networking)’이다.
이러한 혁신가적 특성을 가진 인재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가진 기질적 특성을 심도 있게 검증할 수 있도록 인재 채용 프로세스를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인턴십, 관찰, 다단계의 심층 면접과 같이 사람의 특성을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선발 프로세스가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단지, 이력서에 나타난 경력 요인만을 우선시 해서는 안 된다. 특히, 학력이나 학벌 중심의 채용은 지양될 필요가 있다. 물론 학력은 중요한 요인이긴 하다. 학력은 성실성, 논리력, 분석력 등 좌뇌적 역량을 가늠하는 척도일 수 있다. 그러나, 상상력, 모험정신, 호기심 등 독창적 이노베이션에 원천이 되는 우뇌적 역량을 상징한다고는 볼 수 없다.
캐나다 맥길 대학의 민츠버그 교수는 “경영자는 MBA가 아니다(Managers Not MBAs)”라는 저서에서 미국 경영 대학원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경영 대학원에서는 현장 경험이 약한 젊은 층을 상대로 논리와 분석 중심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직관, 경험, 상상력을 활용하는 면은 도외시 된다는 것이다. 그 교육을 받은 젊은 엘리트들이 기업으로 들어가면, 논리와 분석 중심적으로 움직이게 되어, 직관, 상상력 등 독창적 이노베이션에 필요한 우뇌적 능력은 약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츠버그 교수는 MBA를 ‘경영학 석사(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가 아니라 ‘분석에 의한 경영(Management By Analysis)’이라고 꼬집었다.
눈에 안 보이는 가치를 보는 능력
● 리더가 생각을 열고 흡수 능력을 키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노베이션 선도 요건은 의사결정의 키를 쥐고 있는 리더들의 흡수 능력이다. ‘흡수 능력(Absorptive Capacity)’이란 어떤 지식이나 정보, 아이디어의 가치를 알아보고, 활용하는 능력이다. 리더가 흡수 능력이 부족하면, 조직 내부 또는 외부로부터 훌륭한 이노베이션 아이디어가 제안되더라도 무용지물이 된다. 제품 혁신이든 기술 혁신이든 선례가 없는 독창적 이노베이션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수 많은 시행착오를 동반하는 블랙 박스이다. 마치 고고학적 탐사와 같이 무엇을 찾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발견할지조차 알 수 없는 매우 불확실한 과정이다.
이렇게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제한된 정보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리더가 아이디어의 잠재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과 통찰력이 없으면, 선도적 이노베이션 활동은 추진되기 어렵다. ‘그거 해서 성공하겠냐?’, ‘성공할 수 있는 근거를 대라!’, ‘그거 별거 아니야!’라는 식으로 폄하하면 이노베이션의 싹이 죽을 수 밖에 없다.
리더의 흡수 능력 부족으로 이노베이션 아이디어의 잠재 가치를 경시하여, 선도적 사업 기회를 놓친 사례들이 많다. 예컨대, 1875년 3월, 벨이 전화기를 발명한 후, 웨스턴 유니온사를 찾아가 경영층에게 시연하고, 사업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거절 당하였다. “당신의 발명품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나, 우리가 보기에는 상업성이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 전자 장난감의 미래는 없다고 본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나중에 벨은 직접 회사(AT&T)를 세웠고, 전화 관련 발명 특허는 역사상 최고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는 창업 이전에 ‘디이쇼(D.E. Shaw)’라는 월스트리트 헤지 펀드 회사에 근무하였다. 당시, 베조스는 인터넷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변화 물결에 대해 주목하다가 인터넷 서점이라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구상하게 되었다. 이 아이디어의 사업화를 회사에 제안하였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결국, 베조스는 회사를 나와 아마존을 창업하였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공하였다. 미래 관점에서 이노베이션 아이디어의 잠재된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의 부재로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이노베이션 아이디어의 가치나 눈에 안 보이는 기회를 읽어내는 흡수 능력은 관련 분야에서 사전적으로 축적된 지식에 비례한다. 흡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습득하는 학습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끊임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을 습득하고, 생각의 지평을 넓혀 가는 ‘학습하는 리더(Learning Leader)’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리더 자신의 과거 체험에 근거한 자기 중심의 시각이 아닌, 고객의 눈으로 바라보고 판단하는 생각의 유연성을 키워야 할 것이다.
고대 중국의 철학자 장자(莊子)는 ‘무용지용(無用之用)’, ‘소용지이(所用之異)’라고 하였다. 무용지용이란, ‘언뜻 보기에 무용하게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유용하다’는 의미이다. 소용지이란, ‘사물은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이노베이션을 선도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독창적 아이디어의 발현 못지 않게, 그에 내재된 숨어 있는 가치를 간파하는 경영진의 통찰력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 LG Business Insight1090호
우리는 지금 선진국으로 가는 문턱에 와 있다. 비단 경제 규모 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으로 도약해 가는 변혁기에 있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간, 우리 기업은 선진 기업이 내놓은 상품을 보다 낮은 가격, 더 나은 품질, 디자인으로 개량하여 국제 시장에 제공함으로써 성장해 왔다. 한마디로, ‘재빠른 추격자(Fast Follower)’로서 성공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추격자형 경영으로는 세계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생존·번영하는 일등 기업이 되기는 어렵다. 요즘과 같이 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시장 기회를 선점하는 선발 기업의 프리미엄이 더 커지고, 후발 기업이 성공할 확률은 적어질 수 밖에 없다. 또, 중국, 인도 등 가격 경쟁력이 앞선 신흥 개발국 기업들의 도전이 거세지는 것도 위협적인 요인이다.
이제는 기업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선진 기업을 따라가는 캐치 업(Catch-up) 경영을 뛰어넘어,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거나 기존 상품의 고객 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여 시장을 주도하는 선도적 이노베이션 역량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된 몇 가지 경영 포인트를 정리해 본다.
잠재 시장의 선행적 탐구
● 1만 시간 이상 먼저 보고 준비한다
이노베이션 선도를 위한 가장 기본은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아직 시장이 드러나지 않은 잠재된 사업이나 상품 분야를 먼저 보고 미리 준비하는 탐험적 연구 노력이다.
스탠포드 경영 대학의 제임스 마치 교수는 기업이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식을 축적하고 응용하는 학습이 끊임없이 일어나야 한다고 하면서, 조직의 학습 활동을 크게 ‘활용(Exploitation)’과 ‘탐구(Exploration)’라는 두 가지로 구분하였다. 활용이란 현재 가지고 있는 자원을 활용하여 기존의 제품/서비스를 개량함으로써 성과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탐구란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창조하는 이노베이션 활동을 의미한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이 두 가지 능력을 균형 있게 갖추어야 한다.
현재 가지고 있는 역량의 활용에만 치우칠 경우 단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고, ‘괜찮은 추격자(Good Follower)’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독창적인 제품/서비스 개발로 기회를 선점해 나가는 ‘이노베이션 선도자(Innovation Leader)’는 될 수 없다. 아직 드러나지 않는 분야를 연구하고 개척해 나가는 탐험적 학습 활동 없이는 고객 가치 창조를 선도할 수 없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분야를 개척하는 탐험 학습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미래의 경영 활동에 대한 자원 배분 가이드 라인부터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구글에는 ‘70:20:10’라는 원칙이 있다. 이는 회사 자원의 70%는 현재의 주력 핵심 사업, 20%는 핵심 사업과 관련된 분야, 나머지 10%는 미래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사업 분야를 찾는 탐색 업무에 투자하라는 전략적 자원 배분 지침이다.
자원 배분의 지속성도 중요하다. 아직 선례가 없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여 성과를 거두려면, 단기간에 가시적 결과를 얻으려는 성과 조급증을 가져서는 안 된다. 최소 3년 이상의 장기적 관점에서 멀리 보고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말콤 글라드웰이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s)’에서 강조한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학습 원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느 분야에서든 통달한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 1만 시간의 훈련이나 학습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스포츠 선수, 예술가, 문학가 등 특정 분야에서 최고가 된 사람들 중, 1만 시간 미만의 노력으로 세계적 수준의 성과를 낸 경우는 없다. 하루 3시간씩 집중 노력을 한다고 가정할 경우, 1만 시간은 약 10년에 해당하는 학습 기간이다. 압축해서 하루 8시간의 고도의 노력을 할 경우, 숙련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약 4년이 걸리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구성원들이 기존에 없었던 독창적 이노베이션에 도전해서 성과를 낼 만큼 숙련된 전문성을 갖추려면 적어도 3~4년 이상은 공을 들여야 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아직 선례가 없는, 잘 알려져 있는 않은 분야에 도전하여 이노베이션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4년 이상을 남보다 먼저 보고 미리 준비하는 선행 연구와 학습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기존에 해보지 않은 혁신적인 신사업이나 신제품을 개발하려 한다면, 관련 R&D 인력을 최소 3년 전에 미리 뽑아 준비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스마트 폰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애플의 아이폰도 출시 이전에 약 3년 이상의 선행 연구와 준비 기간을 거쳐 탄생되었다고 한다. 특히, 아이폰에 탑재된 운영 체계(OS)의 개발만을 놓고 볼 때, 아이폰은 10년이 넘는 기간의 선행적 연구 개발 노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아이폰의 운영 체계는 과거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나와 창업한 소프트웨어 회사인 넥스트가 90년대 후반에 개발한 운영 프로그램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꿈/상상력 기반의 전략
● 시장 조사, 실증 논리를 넘어선다
독창적 이노베이션을 위한 두 번째 조건은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고,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하는 미래에 대한 꿈과 상상력이다.
통상적인 기업들은 새로운 사업 모델이나 상품을 기획할 경우, 시장 조사, 다른 기업들의 동향 분석 등을 실시하고 그에 입각한 논리적 추론으로 대안을 수립한다. 수요 추이, 경쟁사 제품 사례, 실적 추이 자료 등 각종 데이터 분석 차트로 가득 찬 보고서 작성 작업에 많은 시간을 투여한다. 그러나 이러한 실증적 분석 논리에 기반한 접근으로는 독창적 이노베이션이 나올 수 없다. 시장 조사, 데이터 분석으로는 미래의 숨겨진 고객 니즈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잠재적인 고객 니즈는 고객 자신도 명확히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고객 인터뷰나 서베이 등 시장 조사 자료에 나타나지 않는다. 또, 과거와 현재의 고객 데이터 분석으로는 기존의 연장선 속에서 이루어지는 연속적 변화는 예측할 수 있지만, 기존과 전혀 다른 불연속적인 변화는 발견할 수 없다. 하버드 경영 대학원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그의 저서 ‘혁신 기업의 딜레마(Innovator’s Dilemma)’에서 주장한 한마디를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고객이 현재 필요치 않는 미래 혁신으로 기업을 인도해 줄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고객과 가까이 하는 것은 점진적 혁신을 하는 데는 중요하지만, 파괴적 혁신을 하는 데는 잘못된 데이터를 줄 수도 있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 패드로 이어지는 독창적 이노베이션 제품으로 연속적으로 대박을 치고 있는 애플은 시장 조사나 경쟁사 제품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히도쯔바시 대학의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에 따르면, 일본 내 성공한 사업이나 상품 혁신 사례들을 연구한 결과, 고객에게 높은 가치를 주어 세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이노베이션은 단순한 시장 조사나 시장 분석을 통해서 생겨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성공한 이노베이션 사례는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발상으로 고객에게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준 것들이었다. 결국, 새로운 고객 니즈를 창조하는 독창적 이노베이션은 데이터로 나타나지 않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직관적 통찰력, 현재의 생각을 뛰어넘는 미래에 대한 상상력, 고객 가치에 대한 꿈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헨리 포드는 1900년대 초 자동차가 희귀한 시절에,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저렴한 대중적인 차를 꿈꾸었다고 한다. “10~20년 후에는 미국 대부분의 길에서 말과 마차가 사라지고, 우리가 만든 자동차가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르며, 우리 종업원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이 만든 자동차를 타고 다니게 할 것이다.” 이런 미래에 대한 꿈과 상상력이 있었기에, 컨베이어 벨트 조립 시스템과 같은 독창적 발상으로 자동차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이노베이션이 가능했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1억대 이상 팔린 소니의 워크맨이 탄생한 배경에도 모리오 아키다 회장의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기를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1970년대 중반 당시 개인용 컴퓨터가 생소하던 시절에, “누구나 살 수 있고 비전문가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어서 각 개인들이 자유롭게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해방의 도구를 제공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또, 2007년 아이폰 출시 배경에도 “우리는 과거 그 어떤 휴대용 기기보다 휠씬 스마트하고 훨씬 사용하기 쉬운 전혀 다른 차원의 뛰어난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실험에 의한 학습
● 먼저 실험해 보고 배워서 길을 찾는다
선발 기업의 사업이나 상품을 모방할 수 있는 Catch-up 상황에 비해,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선도 상황에서는 선례가 없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표 1> 참조). 그 과정은 마치 짙은 안개가 자욱한 숲 속 길을 걷는 것과 같다.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에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고, 사전에 정교한 계획을 세울 수 없다. 설사 계획을 세운다 하더라도 전략적 확신을 가지고 실행하기 어렵다. 오히려 상세한 계획을 짜고, 확신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기 위한 정보 수집에 공을 들이다가는 시간 낭비로 의사결정이 늦어져 선점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전에 상세한 계획을 세우려 하기 보다는, 불완전하더라도 가능성이 있는 것을 중심으로 일단 행동에 옮겨 실험해 보고 그를 통해 배워서 해법을 찾아 나가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일단 저지르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소위 ‘행동 학습(Learning by Doing)’, ‘실험 학습(Learning by Experiment)’이 이루어져야 한다.
미시간 경영 대학원의 칼 와익 교수는,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사전에 상세한 계획을 세운 후 행동하기 보다는 큰 방향만 정해지면 확실한 계획이 없더라도 신속히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현명하다고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하였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헝가리 부대의 한 소대원들은 알프스 산맥에서 훈련 중이던 어느 날 정찰을 나갔다가 눈보라 속에 길을 잃어 동사할 위기 상황에 직면하였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행히도 어느 소대원이 주머니에서 알프스 산맥의 지도를 찾게 되었다. 나침반도 없는 상황이었으나 그 지도를 보며 길을 찾아 결국 본대에 복귀할 수 있었다. 소대장은 부대에 복귀한 후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알프스에서 길을 찾도록 이끌어 준 그 지도는 알프스 산맥 지도가 아니라 피레네 산맥 지도였다는 것이다…” 비록 틀린 지도였지만, 그 지도로 인해 소대원들이 길을 찾아 나서는 행동이 촉발되었고, 결국은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사전 계획 수립에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기본 방향만 잡히면 먼저 행동해 보고 배워서 사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사후적 합리성(Posterior Rationality)’이라고 부른다.
짐 콜린스는 ‘성공하는 기업의 7가지 습관(Built to Last)’에서, 장수하는 혁신 기업들의 특징 중 하나로 실험 정신을 꼽고 있다. 혁신 기업들에게는 ‘많은 것을 시도해 보고 그 중 잘 되는 것에 집중한다’는 실험 학습의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애플에는 디자인 업무를 수행하는 가이드라인으로 ‘10:3:1’이라는 원칙이 있다고 한다. 신제품을 디자인할 경우, 디자이너들은 먼저 10개의 다른 개념의 모델을 만든다. 그 다음에는 10개의 모델 중에서 가장 적합한 3개를 고른다. 이 3가지 모델을 수개월에 걸쳐 시험하고 평가하여 최종적으로 1개의 모델을 정하는 방식이다.
세계적인 히트 상품들이 창조된 배경에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믿고 개발을 시도해 보는 기업가적 실험 정신이 자리잡고 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맥나이트, 리처드 칼턴 등 3M의 역대 CEO들은, “한 번 해보게 하라, 그것도 지금 당장!”, “무엇인가 시도하지 않는다면 우연에 의해서라도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다!”고 하면서, 아이디어의 실험을 적극 장려했다. 방수용 사포, 스카치 테이프, 포스트 잇 등 3M이 창출한 수 많은 세계적 히트 상품들은 모두 다 이러한 실험 학습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이노베이션 중시의 인사
이노베이션을 탐구하는 실험 학습이 잘 이루어지려면, 인력, 예산, 시간 등 필요한 자원이 적절히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인은 구성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도록 하는 것이다.
● 창의적 도전과 성과의 질을 중시한다
우선, 성과 평가 시스템부터 이노베이션 행동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정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성과에 대한 생각부터 달리해야 할 것이다. 회사의 매출이나 수익에 당장 도움이 되는 단기 결과 중심적인 성과 관념을 탈피해야 한다. ‘이익에 얼마나 공헌했는가?’하는 결과 만이 아니라 기존에 없던 것을 개척하려는 시도, 획기적으로 고객 가치를 높이려는 시도 등 혁신 행동 그 자체를 높이 평가하는, 노력의 질을 보려는 성과 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실패에 대한 시각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실패를 ‘이노베이션으로 가는 중간 과정’으로 인정할 수 있는 성과 평가 철학이 필요하다. 물론, ‘게으른 실패’, ‘부주의한 실패’는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창의적인 실패’, ‘도전적인 실패’, ‘정직한 실패’는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성공한 신제품 사례들을 보면, 어떤 경우이든지 그 개발 과정에서 많은 실패를 경험한다. 어떤 경우에는 과거에 실패한 제품이 신제품 성공의 밑거름이 된다. 이런 면에서 실패는 성공으로 가기 위한 필연적인 학습 과정이다. 실패는 없지만 도전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당장 결과는 안 좋더라도 이노베이션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인정하고 기회를 주는 성과 문화가 구축되어야 한다.
소니는 1980년대 후반에 ‘NEWS’라는 워크스테이션을 개발하였으나, 시장에서 실패했다. 그러나 소니의 경영진은 개발 담당자들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재도전의 기회를 주었다. 이들이 제품 개발 과정에서 학습한 기술적 경험과 실패로부터 배운 지식을 중시한 것이다. 이렇게 개발된 제품이 바로 ‘VAIO’ 노트북 컴퓨터였다. 최근 소니는 과거에 비해 많이 침체되어 있는 모습인데, 이러한 이노베이션을 고무하는 문화가 예전만 못한 것이 한 원인이라는 지적이 있다.
평범한 민간 기업(시마즈제작소)의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200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다나카 고이치는, 그의 연구 결과를 ‘실수에 의한 우연한 발견’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런 우연한 발견을 가능케 했던 핵심 동인은 미지의 분야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실패나 실수를 포용해준 회사의 경영 풍토라고 하였다. “나는 실험을 거듭하면서 많은 실패를 했습니다. 연구비를 낭비한다고 질책하는 회사였다면 벌써 해고됐을 것입니다. 경영진은 미래에 활용할 만한 신기술이라면 어떤 것을 연구해도 좋다며 예산을 배정해 주었습니다.” 시마즈제작소는 의료기기 등을 개발·판매하는 회사였는데, 다나카의 연구팀이 개발한 기기(질량 분석기)는 몇 대 안 팔려 회사 성과에는 기여하지 못했다. 그러나 인사상 불익을 주지 않고, 연구를 계속 하도록 배려해주었다.
성과 목표 부여시 이노베이션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성과 책임을 배분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예컨대, 매년 매출의 30%를 최근 4년내에 개발된 신제품으로 채우게 하는 3M의 ‘30% 룰’이 여기에 해당된다.
● 이노베이션 기질을 보고 채용한다
사람을 뽑는 채용 기준도 바뀔 필요가 있다. 남보다 앞서 이노베이션을 선점하려면, 미지 세계에 대한 호기심, 모험 정신, 스스로 일을 만드는 주도성 등 혁신가적 기질을 가진 구성원들이 많아야 한다. 미국 브리검 영 대학의 제프리 다이어 교수는 혁신가의 기질적 특성을 5가지로 제시하였다(<표 2> 참조). 서로 다른 것들을 연결하여 조합하는 ‘연상력(Associating)’, 기존의 지배적 사고와 현상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Questioning)’, 현상에 숨어 있는 것을 보는 ‘관찰력(Observing), 끊임없이 실험하는 모험적 ‘실험 정신(Experimenting)’,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상호작용하여 아이디어를 얻는 ‘네트워킹(Networking)’이다.
이러한 혁신가적 특성을 가진 인재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가진 기질적 특성을 심도 있게 검증할 수 있도록 인재 채용 프로세스를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인턴십, 관찰, 다단계의 심층 면접과 같이 사람의 특성을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선발 프로세스가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단지, 이력서에 나타난 경력 요인만을 우선시 해서는 안 된다. 특히, 학력이나 학벌 중심의 채용은 지양될 필요가 있다. 물론 학력은 중요한 요인이긴 하다. 학력은 성실성, 논리력, 분석력 등 좌뇌적 역량을 가늠하는 척도일 수 있다. 그러나, 상상력, 모험정신, 호기심 등 독창적 이노베이션에 원천이 되는 우뇌적 역량을 상징한다고는 볼 수 없다.
캐나다 맥길 대학의 민츠버그 교수는 “경영자는 MBA가 아니다(Managers Not MBAs)”라는 저서에서 미국 경영 대학원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경영 대학원에서는 현장 경험이 약한 젊은 층을 상대로 논리와 분석 중심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직관, 경험, 상상력을 활용하는 면은 도외시 된다는 것이다. 그 교육을 받은 젊은 엘리트들이 기업으로 들어가면, 논리와 분석 중심적으로 움직이게 되어, 직관, 상상력 등 독창적 이노베이션에 필요한 우뇌적 능력은 약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츠버그 교수는 MBA를 ‘경영학 석사(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가 아니라 ‘분석에 의한 경영(Management By Analysis)’이라고 꼬집었다.
눈에 안 보이는 가치를 보는 능력
● 리더가 생각을 열고 흡수 능력을 키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노베이션 선도 요건은 의사결정의 키를 쥐고 있는 리더들의 흡수 능력이다. ‘흡수 능력(Absorptive Capacity)’이란 어떤 지식이나 정보, 아이디어의 가치를 알아보고, 활용하는 능력이다. 리더가 흡수 능력이 부족하면, 조직 내부 또는 외부로부터 훌륭한 이노베이션 아이디어가 제안되더라도 무용지물이 된다. 제품 혁신이든 기술 혁신이든 선례가 없는 독창적 이노베이션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수 많은 시행착오를 동반하는 블랙 박스이다. 마치 고고학적 탐사와 같이 무엇을 찾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발견할지조차 알 수 없는 매우 불확실한 과정이다.
이렇게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제한된 정보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리더가 아이디어의 잠재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과 통찰력이 없으면, 선도적 이노베이션 활동은 추진되기 어렵다. ‘그거 해서 성공하겠냐?’, ‘성공할 수 있는 근거를 대라!’, ‘그거 별거 아니야!’라는 식으로 폄하하면 이노베이션의 싹이 죽을 수 밖에 없다.
리더의 흡수 능력 부족으로 이노베이션 아이디어의 잠재 가치를 경시하여, 선도적 사업 기회를 놓친 사례들이 많다. 예컨대, 1875년 3월, 벨이 전화기를 발명한 후, 웨스턴 유니온사를 찾아가 경영층에게 시연하고, 사업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거절 당하였다. “당신의 발명품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나, 우리가 보기에는 상업성이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 전자 장난감의 미래는 없다고 본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나중에 벨은 직접 회사(AT&T)를 세웠고, 전화 관련 발명 특허는 역사상 최고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는 창업 이전에 ‘디이쇼(D.E. Shaw)’라는 월스트리트 헤지 펀드 회사에 근무하였다. 당시, 베조스는 인터넷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변화 물결에 대해 주목하다가 인터넷 서점이라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구상하게 되었다. 이 아이디어의 사업화를 회사에 제안하였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결국, 베조스는 회사를 나와 아마존을 창업하였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공하였다. 미래 관점에서 이노베이션 아이디어의 잠재된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의 부재로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이노베이션 아이디어의 가치나 눈에 안 보이는 기회를 읽어내는 흡수 능력은 관련 분야에서 사전적으로 축적된 지식에 비례한다. 흡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습득하는 학습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끊임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을 습득하고, 생각의 지평을 넓혀 가는 ‘학습하는 리더(Learning Leader)’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리더 자신의 과거 체험에 근거한 자기 중심의 시각이 아닌, 고객의 눈으로 바라보고 판단하는 생각의 유연성을 키워야 할 것이다.
고대 중국의 철학자 장자(莊子)는 ‘무용지용(無用之用)’, ‘소용지이(所用之異)’라고 하였다. 무용지용이란, ‘언뜻 보기에 무용하게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유용하다’는 의미이다. 소용지이란, ‘사물은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이노베이션을 선도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독창적 아이디어의 발현 못지 않게, 그에 내재된 숨어 있는 가치를 간파하는 경영진의 통찰력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 LG Business Insight10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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