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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2. 21. 11:29
일본 경제와 일본기업의 부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무역 강국 일본이 무역 적자국으로 돌아서고, 많은 일본 기업들이 부진한 실적을 쏟아놓고 있는 지금 일본의 후퇴하는 모습이 더 크게 보인다. 실제 일본 제조기업 총 매출의 절대 규모가 90년의 수준에서 정체되고 있고 기업의 수익력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는 모습이다. 80년대 미국의 기업들이 두려워 했던 일본 기업들은 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되었을까. 

무엇보다도 일본 기업들은 개량형 혁신에 치중하다가 제품과 사업의 진부화의 흐름을 막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성숙기에 접어든 사업에서는 진부화의 흐름을 역전할 탈 성숙화 전략이 필요했지만 일본 기업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 2000년대를 거쳐 급속하게 진행되어온 디지털화와 개방화, 소프트화의 흐름에 뒤쳐졌다. 양적 확대에 치중한 기술경영, 다른 나라기업에 비해 원천기술에 경도된 연구개발도 기술력에 대한 착시와 상품화 되지 않는 기술을 누적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혁신을 위해 미국식 경영방식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일본 기업 본연의 강점들도 많이 훼손되는 결과를 낳았다. 반면 일본 기업 중에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업영역을 확대하며 성장하고 있는 기업들은 자신들의 기업문화를 중심으로 혁신하며 오랫동안 축적된 핵심역량과 기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해 간 경우가 많다. 

여러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에 오른 한국기업에게 일본기업의 실패와 성공이 주는 의미는 크다. IT혁명 태동기였던 90년대 일본기업의 도전적 상황이 IT 생태계 혁명의 한가운데 있는 오늘 우리기업의 상황처럼 보여 더욱 그렇다. 트렌드의 큰 맥을 놓치지 말아야겠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강점을 가볍게 여겨서도 안될 것이다. 유지해야 할 것과 혁신해야 할 것을 구별하면서 혁신 역량의 재정의, 비즈니스 모델의 재정의에 임해야 할 것이다. 
  
   
Ⅰ. 계속되는 일본기업의 부진 
  

영업이익률의 장기적 하락세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을 능가하여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경계를 받았던 일본기업이 1990년대 이후에는 장기불황과 신흥국의 도전, 계속되는 엔고, 글로벌 경제 불안 등으로 인해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은 1960년대의 7.5%에서 1990, 2000년대에는 3%대로 떨어졌으며, 미국발 금융위기의 충격이 컸던 2008, 2009년의 경우 사상 처음으로 1%대에 그치는 부진을 보였다. 2012년 3월 결산에서는 소니, 파나소닉, 샤프 등 일본을 대표하는 유수의 글로벌 기업도 막대한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일본기업의 부진은 갑작스럽게 나타났다기보다는 고도경제성장기 이후 부동산버블 붕괴 및 장기불황의 중장기적인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기업의 중장기적인 수익성 악화 흐름 속에서 아예 파산한 기업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충하여 성장한 기업, 새로 탄생하여 급성장한 기업이 있다. 이들 간의 차이점이 주목된다. 

일본기업 흥망성쇠의 역사 

우선, 일본기업의 역사적 추이를 보면, 제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을 빠르게 극복한 후 1960년대에는 고도경제성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중화학공업화가 진행되고 주력 상품도 경공업에서 조선, 철강 등의 중공업으로 변화했다. 신일본제철 등의 중공업 기업이 US Steel 등 구미기업을 능가하기 시작했으며, 조선 산업은 1956년에 영국을 능가하여 세계최대의 건조량을 기록한 후 1999년까지 세계 1위의 자리를 지켰다. 

일본 기업은 선진국의 산업을 발 빠르게 모방하면서도 당시 신에너지였던 석유로의 전환을 위해 신형 설비를 과감하게 도입하여 경쟁력을 높였다. 주요 선진국이 연료효율 측면에서 석유보다 떨어지고 운반 코스트도 많이 드는 석탄을 에너지로 사용하는 비중이 높았던 반면, 일본은 전후 신형설비를 대규모로 도입하면서 석유에너지 의존도를 70% 이상으로 높여 1960년대까지의 저유가 상황에서 중화학공업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성공한 것이다. 

1970년대에는 두 번의 석유파동을 계기로 고도경제성장이 마감되고 일본 제조업의 영업이익률도 5.6%로 1960년대의 7.5%에서 크게 낮아졌으나 일본기업은 점차 석유파동의 충격을 극복했다. 석유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일본 산업에게 석유파동은 커다란 충격이었지만 일본은 석유의존도를 1970년의 71.9%에서 1990년에는 57.1%, 2000년 50.8%까지 급격하게 낮추면서 대응했다. 주력 수출제품도 중공업에서 1970년대 이후 가전, 쿼츠시계 등 경박단소(輕薄短小)가 키워드가 되는 제품으로 전환했으며, 1980년대에는 특히 반도체, 자동차 등의 세계시장에서의 지위가 크게 향상되었다. 경박단소를 뒷받침한 ME(Micro Electronics) 혁명이 일본 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던 시기였다. 

1980년대에는 전기전자, 자동차 등의 가공조립 산업이 미일 마찰 속에서 급성장했으며, 기술마찰도 심화되면서 일본은 자체 기초기술 개발에도 주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에는 엔고 저지를 위한 금융완화로 일본의 부동산 및 주식 시장의 가격이 급상승하는 자산 버블 현상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기업의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 판단 기준도 흔들렸다. 당시 내수의 호조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은 4%대로 계속 떨어졌다. 

1990년대에는 자산 버블이 붕괴되고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가 시작되자 일본기업의 수익률은 더욱 하락하고 점차 위기의식이 고조되었다. 버블이 붕괴되자 일본기업은 처음에는 이것이 단기적인 영향에 그칠 것으로 보고 과잉설비, 과잉채무, 과잉인력의 조정에 주안점을 둔 구조조정에 매진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인터넷 혁명, PC 산업 등이 주도한 모듈형 글로벌 생산시스템화 등의 기술혁신 조류에 선행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2000년대에는 일본기업이 경영혁신에 더욱 매진하는 한편 전통적인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모노즈크리(장인정신에 기초한 제조)’ 전략이 전개되었다.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은 다시 상승했다. 2004년에서 2007년까지 4% 이상을 기록하며, 1990년대 및 2000년대 평균치를 상회했다. 그러나 일본기업의 경영혁신은 제대로 성공했던 것이 아니었다. 일본 제조업의 수익 개선은 2000년대 중반의 역사적인 엔저(한 때 실질 기준으로 1980년 플라자 합의 이전 수준으로 엔화 가치 하락)에 힘입은 바 컸다. 리만쇼크 이후 비정상적인 엔저가 엔고로 반전되자 일본기업의 어려움이 다시 시작되었다. 

장수형 기업의 부도 확대 

일본기업이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도산하거나 사업에서 철수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특히 도산한 기업을 보면 오랫동안 사업을 유지해 왔던 장수형 기업이 과거에 비해 많아졌다. 

동경상공리서치의 집계에 따르면 도산한 기업중 평균 업무 연수가 30년을 넘는 기업의 비중은 1990년대 중반의 10%대 초반 수준에서 2000년대에는 20%대로 상승하였고 특히 2007~2009년에는 3년 연속으로 30%대를 기록했다. 2010년의 경우 도산 기업 1만 1,611개사 중 30년 이상의 장수 기업이 3,420개사로 29.4%의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제조업의 2010년 도산기업 중 38.2%가 30년 이상의 장수기업이었다. 

일본경제의 장기부진 과정에서 구조적 변화 트렌드에 맞게 전략 전환을 하지 못했던 장수형 제조업체의 경우 점차 경영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장수형 기업일수록 과거로부터 내려온 경영기반이 상대적으로 견고하기 때문에 불황이 오자 일단 몸을 움츠려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었겠지만 일본경제의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더 견디기 어려워졌을 것이다. 

업종별 명암 차이 

일본기업의 어려움에는 업종별로 차이도 컸다. 전자산업의 경우 조립형 대기업이 상대적으로 더욱 저조한 실적을 보였다. 2011년 12월 말 주가를 1989년 말과 비교해 보면 소니의 주가는 66.6%, 파나소닉은 72.2% 하락했지만 전문 부품 기업인 세라믹 콘덴서의 무라타제작소는 91.4% 상승했고, HDD용 소형 모터 제조업체인 일본전산은 558%나 상승하는 등 전문 부품 기업은 도약하였다. 

화학 산업의 경우 2000년대까지 종합화학 기업의 실적이 부진했고 신에츠화학 등의 전문 소재 기업의 위상이 확대되었으나 최근에는 미쓰비시화학 등의 종합화학 기업도 특화된 고기술 분야에서 실적을 올려 위상이 회복되고 있다. 생활화학 사업은 일본의 저출산 및 인구고령화로 전체 시장 규모가 정체를 보이고 있어서 어려움이 있으나 유니챰, 카오, 시세이도 등은 신흥국시장 전략이 성과를 거두는 등 글로벌 전략의 성공에 힘입어 계속 호조를 보이고 있다. 

섬유, 철강, 화학 등 소재 산업의 경우 고도경제성장이 마감된 이후 전체 제조업 중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장기적으로 하락해 왔으나 최근에는 첨단 소재 분야를 중심으로 성장세를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고연비, 고신뢰성 등 신흥국이 모방하기가 어려운 강점이 있는 자동차 산업의 경우 전자 산업에 비해 경쟁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도요타, 혼다 등이 일본 내에서 시가총액 상위기업으로서의 위상을 지키고 있다. 
  

Ⅱ. 실패 기업의 함정 
  

이상 본 바와 같이 일본기업의 역사적인 추이를 볼 때 일본기업은 1980년대까지 에너지 절약 기술 활용, ME(Micro Electronics) 혁명 등 중요한 기술 트렌드에 잘 적응하여 경쟁력을 높여 왔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그렇지 못했다. 이러한 이노베이션 효과의 하락이 일본 제조업을 전반적으로 어렵게 한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까지는 선진국의 모범 사례를 따라잡는 추격자(Follower)로서 선진국의 기술을 활용하면서 이노베이션 효과를 높일 수가 있었지만 그 후 스스로가 세계 정상급 기업으로서 원천 기술을 개발하고 혁신을 주도하는 혁신자(Innovator)로 발전하는 데에 미진했던 기업이 많았다. 

개량형 혁신에 치중하면서 제품과 사업 진부화 

1990년대 이후 일본기업이 어려움을 겪게 되는 유형으로서 기존의 제품 개량을 통한 품질 개선 노력이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여 신흥국기업과의 끊임없는 가격 경쟁에 직면한 현상을 지적할 수 있다. 

고품질의 일본 오디오 회사 등이 잇따라 몰락했으며, 고화질 TV로 평가가 높았던 파이오니아도 경영위기에 직면해 디스플레이 사업 등에서 철수했다. 파이오니아는 화질에서 흑색 표현력의 강점을 살려 고급 TV 시장에서 압도적인 브랜드 파워를 확립하며 2000년의 시장점유율이 50%에 달했다. 그러나 시장 저변이 확대되는 과정에서도 고가격 및 고품질을 계속 고수한 결과, 양산기술에 강점을 가진 경쟁사에 의해 점차 밀려났다. 휴대폰에서도 일본기업은 세계 최초로 인터넷 접속 기능, GPS 서비스, 전자화폐 등의 기능을 개발했으나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대에서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했다. 

제품이나 기술은 도입기에서 성장기, 쇠퇴기로 이어지는 흐름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이 계속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존 사업이나 제품의 성숙화 및 진부화(陳腐化) 흐름을 역전시킬 수 있는 탈 성숙화 전략을 통해 부가가치를 제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림 3>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제품 성숙기에 접어들면 기존 기술 방향에서 아무리 많은 노력을 통해 개선을 거듭하여도 그 성과는 떨어져 전혀 새로운 기술체계로 도전하는 제품이나 기업의 위협에 취약하게 되기 쉽다. 일본기업은 성숙기에 접어든 제품의 진부화를 역전시킬 수 있는 탈 성숙화를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하고 기존 기술체계의 개선 수준에 몰두하다가 쇠약해졌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2000년대 들어서 IT기술과 가전 기술이 융합되고 기존 가전제품이 디지털 가전제품으로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여 신성장 영역으로서 각광을 받게 되었으나 가전 왕국인 일본이 이 디지털 가전으로의 변화 트렌드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990년대 초기에는 자체 규격인 아날로그 하이비전 TV를 고집하고 디지털 대응이 늦어졌다. 그 후에도 가전기술과 IT 기술의 융합화 과정에서 일본기업은 제품 사상, 개발 시스템 전체를 IT기술과 각종 인터넷 컨텐츠 비즈니스에 적합한 형태로 원천적으로 혁신하기 보다는 IT 기술을 필요에 따라 보완적으로 추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대응 전략은 IT기술의 비중이 많아질수록 제품 컨셉트나 개발체제를 점점 더 복잡한 형태로 만들게 되었다. <표>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일본기업은 원천적으로 IT기술에 기반한 기술체계로 가지 못하고 기존의 하드웨어 기술 중심적 입장에서 IT기술에 대응하는 제품개발 패턴을 보이면서 제품의 복잡성, 플랫폼 대응 미숙 등의 문제점을 초래했다. 

제품과 사업의 탈 성숙화를 위해서는 IT기술과 같이 중요한 산업 트렌드에 맞게 과감하게 전략을 전환하며 한편으로는 일본 기업이 가지고 있었던 ‘모노즈쿠리’ 등 고유의 핵심 역량을 진화시키고 다각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일본기업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양적 확대에 치중한 기술경영의 성과 부진 

물론, 일본기업도 1980년대 후반 이후 기초연구개발에 매진했다. 그러나 일본기업의 기초연구개발이 제품 이노베이션을 통해 수익의 확대에 기여하는 효과는 약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일본기업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하이비전TV, 제5세대 인공지능 컴퓨터 등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인터넷 컴퓨팅 기술 등에 대한 투자는 미진했다. 30년 이상 주력해 왔던 초전도기술은 최근에야 성과가 나오기 시작한 상황이다. 

일본기업은 1980년대 각 사업부에서 독립된 중앙연구소를 잇따라 설립하여 기초연구에 매진했지만 이러한 중앙연구소체제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기초한 혁신적 컨셉트를 가진 제품의 개발보다도 각 연구원들이 전문 분야를 심화시키는 형태로 학문적인 성격이 강해졌다. 기초연구 등이 학구적인 방향에서 운영되면서 초전도, 인공지능 등 도전적이지만 10년, 20년 걸려도 실현되기 어려운 기술적 과제에 매진하게 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당시 글로벌 기업들은 기초연구를 대학과의 산학연계를 통해 수행하는 추세였지만 일본 산업계에서는 이러한 추세와 달리 대학의 연구기능 활용에 큰 기대를 걸지않았다. 일본기업 연구소 연구진이 노벨상을 수상하겠다는 포부까지 품고 적극적으로 기초연구에도 매진하는 분위기였다. 이에 따라 일본기업은 많은 기술을 개발했으나 많은 경우 거의 상품화되지 않는 기술을 누적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예를 들면  1980년 소니에 입사한 곤도테츠지로(近藤哲次朗, 현재 소니를 떠나 아이큐브드 연구소 사장)는 1995년 소니 재임 당시 400건의 기술특허를 보유해서 사내 일등이었지만 이들 기술은 하나도 상품화되지 않았다(1997년에 이데이사장이 발탁하여 평면브라운관 WEGA의 개발에 부분적으로 활용되긴 했음). 

일본기업이 과거의 성공 과정에서 해외 원천 기술을 빠르게 흡수하여 개량하는 현장 주도의 추격자 시대의 기술경영 체제를 기본적으로 고수하면서 연구개발 예산만을 늘려 선도적인 기술의 개발에 주력했기 때문에 투자에 비해 성과가 미진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이노베이터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술을 융합하고 새로운 제품 컨셉트를 창조할 수 있는 전략적 리더십에 기초한 기술경영 체제로의 혁신이 필요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식 경영의 문제점 부각과 개혁에 따른 폐해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과거에 존경을 받았던 일본식 경영에 대한 평가도 바뀌었다. 일본기업은 1990년대 후반 이후 미국식의 연봉제를 도입하였다. 현장을 중시하여 화합에 기초한  Bottom up식 의사 결정을 하는 일본식 경영은 Follower 시대와 같이 목표가 명확한 상태에서는 효과가 있었으나 이노베이터로 변신하는 데에는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인식되었다. 일본식 경영은 ‘회사를 위해 열심히’ 하기만 하는 회사 인간의 양성에 효과를 발휘했지만 일본기업이 세계를 주도할 리더로서 활동해야 하는 시점에서는 보다 외부의 시각과 전문성을 가지고 자기 조직도 비판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식 경영의 혁신 과정에서도 폐해가 발생하여 오히려 더 어려움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 공동체적인 의식이 강했던 일본기업이 갑자기 성과주의 인사 제도를 도입하게 되면서 마찰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일본기업의 인재 육성 기능이나 서구기업에 비해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수 있었던 일본식 경영의 장점이 약해지는 폐해도 발생했다. 예를 들면, 소니의 경우 1990년대 후반 이후 미국식의 현금 중시 경영을 강조한 결과 원래 소니가 가지고 있었던,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 종업원들이 과감하게 리스크에 도전하는 기업문화가 후퇴하기도 했다. 
  

Ⅲ. 성공기업의 혁신 패턴 
  

핵심 역량을 트렌드에 맞게 강화 

1990년대 이후 많은 일본기업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사업영역을 확대하며 성장하고 있는 기업도 있다. 이들의 특징을 보면, 자사 고유의 강점을 시대의 변화에 맞게 발전시키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핵심 역량이 되는 기술을 우물을 파듯이 깊게 파고들고 심화시키는 한편 외부세계도 관찰하면서 다른 기술과 산업의 트렌드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변화 트렌드에 맞게 이러한 독자 기술의 발전 방향을 조정하고 다양한 제품이나 사업에 도전했다. 우연한 기회의 포착이 중요한 요소가 된 경우도 있었다. 

합성섬유업체였던 클레하는 실패했던 연구결과 중 일부를 전지소재 분야에 활용하여 2차전지의 바인더와 음극재 시장으로 다각화하는데 성공한 경우이다. 클레하는 1970년대 중반에 원유→나프타→에틸렌이라는 기존의 생산 공정을 혁신하여 원유에서 직접 에틸렌을 생산하는 신기술의 개발에 주력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이 연구과정에서 축적한 성분 기술이 2차전지의 음극재 개발로 이어졌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원유에서 나프타나 휘발유를 추출한 후에 남은 찌꺼기인 ‘Pitch Oil’를 2차전지의 음극재로 사용하는 연구프로젝트를 소니와 함께 1980년경에 추진했지만 이때에도 소형제품에 적합했던 흑연(黑鉛)에 밀려 또 다시 실패했다. 그러나 2000년대 말 이후 스마트그리드, 자동차용 대형 축전지의 필요성이 높아지자 클레하의 ‘Pitch Oil’를 원료로 한 음극재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결정 구조상 틈새가 많아서 리튬이온을 많이 흡수할 수 있는 성질 때문에 보다 고용량을 달성할 수 있는 장점이 부각된 것이다. 클레하의 2차전지 음극재는 두 번의 실패를 거치며 40년 가까운 기간을 두고 거둔 성과였다. 장기간의 연구 과정에서의 실패 경험을 포함해서 다양한 지식을 축적한 성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닛신보HD는 본업인 방직사업에서의 기술을 다각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자동차용 브레이크 부품 사업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경우다. 방직 사업에서 축적한 마찰력이 큰 섬유에 대한 기술을 응용하여 브레이크 패드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도레이는 섬유 기술에서 탄소섬유를 개발하여 항공기 등 각종 구조재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자동차산업으로의 응용을 통해 기존 소재의 대체에도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해수를 담수화하는 플랜트에 쓰이는 분리 막 재료 분야에도 다각화 했다. 

닛신보, 도레이 이외에도 후지필름 등 일본 화학 산업의 경우 자사의 기술 역량을 다각적으로 활용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 성공한 기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장기적인 기술개발의 축적이 필요한 소재 기술의 경우 중장기적으로 기술에 투자할 수 있는 일본기업의 특성과 잘 맞기 때문에 일본기업이 이노베이터로서 성장하는 데 상대적으로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성공 기업의 경우 자사 사업과 별 관련성이 없는 연구 주제에 R&D 자금을 낭비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기존 사업이나 기술의 연속적인 개선에만 몰두하지도 않았다. 미국계 IT기업과 같은 참신한 발상과 아이디어에 기초한 파괴적인 기술혁신이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창조에 성공한 일본기업 사례는 거의 없지만 자사의 핵심 역량을 심화시키면서 그 핵심역량을 기반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며 새로운 제품 및 사업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일본기업들은 많이 나타나고 있다. 

Follower 시절의 기술경영체제를 이노베이터 시대에 맞게 혁신 

핵심 역량을 사회 및 기술 트렌드에 접목하기 위해서 기술경영체제를 혁신한 모습들도 나타났다. 우연한 행운으로 자사 기술을 다각적으로 활용해서 성공한 기업의 경우도 이러한 행운을 필연으로 만들기 위해 기술경영체제를 새롭게 구축하고 있다. 

예를 들면 첨단 부품 및 소재 등의 분야에서 성공하고 있는 일본기업 중에는 자사의 강점 분야를 첨단기술적인 관점과 Low Technology(절삭, 연마, 결합, 실험, 검사, 배양 등의 기본 가공 기술 등)적인 관점에서 동시에 검토하고 양자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데 기술경영의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항암, 항 바이러스 작용을 가진 인터페론의 양산기술이나 각종 항체, 인체 생리 활성화 물질의 양산기술 등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 첨단 바이오 관련 전문 기업인 하야시하라 생물화학연구소 그룹의 경우 자사의 핵심 기술을 규정 및 정리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동사는 △ 독자적인 효소를 찾아내는 기술 △ 제품의 양산화 기술 등의 Low Technology를 핵심 기술로 지목하여 이를 계속 연마하면서 항암, 항 바이러스 작용을 가진 인터페론 등의 첨단기술 제품의 개발에 활용했다. 동사는 인간세포를 배양하는 양산 기술을 위해서 실험 동물인 쥐의 체내에서 인간 세포를 증식시키는 독자 방법을 개발하여 이 쥐를 오랜 기간 교배시켜서 인간 세포 이식과 세포 증식에 적합한 쥐를 만들어 냈다. 이는 인터페론의 양산을 위해 각광 받았던 기존의 유전자 조작 기술과 차별화된 보다 안전한 방법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한편, 생활화학의 카오의 경우 각 사업부의 연구소, 중앙연구소 등간의 조직적인 경계를 낮추고 이들이 매트릭스 형태로 자유자재로 협업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각종 기반기술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컨셉트의 제품 개발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Low Technology적인 기반 기술을 연마하면서 시대의 변화에 맞는 첨단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사회 및 기술 트렌드 포착의 시스템화가 과제가 된다. 무라타제작소의 경우 사회, 고객, 기술 등에 대한 트렌드 분석을 기반으로 작성된 로드맵을 일종의 사내 및 협력회사와의 컨센서스로 활용하면서 핵심 역량을 중심으로 한 기술경영의 목적과 비전을 공유해 연구개발의 효과를 확대하고 있다. 

일본식 성과주의로 협조적 프로집단 조직 지향 

일본식 경영의 협조적인 강점을 살리면서 프로집단화를 지향하는 성과주의 경영으로의 혁신에 성공한 기업들도 있다. 많은 기업이 성과주의 인사 제도로 인사 관행을 일신하는 식으로 도입한 것과 달리 이들 기업들은 과거 현장에서 세밀하게 이루어져 왔던 육성 전략을 지속적으로 유지·발전시키면서 점진적으로 성과급에 차등을 주는 방식으로 도입했다. 공동체적인 기반을 유지하면서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실력주의를 강화시키는 모습이다. 

생활화학의 카오의 경우 1960년대부터 종업원의 목표 관리와 성과측정 스킬의 향상에 역점을 두어 왔다, 1990년대에 수많은 일본기업이 성과급 인사제도를 도입할 때에도 자사의 평가 시스템을 기존 페이스로 묵묵히 향상시켜 왔다. 카오는 신제품개발에 주력하는 생활화학 기업으로서 창조성을 중시해 왔기 때문에 그 기초가 되는 종업원 개개인의 능력개발을 성과평가와 연계시켜서 강화해 왔던 것이다. 평가와 함께 능력 개발 및 교육, 경력 관리를 일관되게 추진하는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구축하고 개선해 나가고 있다. 관리직은 전사 공통 규격으로 관리하는 한편 현장에서는 직종별로 세밀하게 평가 및 육성 시스템을 차별화하고 있다. 또한 생산부문에서는 스킬 레벨별로, 연구 부문에서는 장기적 연구성과 등 직군 별로 평가 방법을 달리하고 있다. 종업원들에게 평가는 자신들의 올바른 육성의 기초가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고 평가결과는 마지막 단계에서 연봉의 차별화에 활용되고 있다. 

고바야시제약의 경우는 잘못 도입된 성과급 제도의 폐해를 시정하면서 종업원의 의식개혁에 성공한 사례다. 2005년도에 엄격한 성과급 인사제도를 도입했으나 점차 팀워크가 와해되고 실적이 악화되자 문제점 개선에 주력하여 그룹장이나 중견 사원들에게 부하 및 후배의 육성 지도에 관한 목표를 설정하게 하고 그 달성도를 평가하는 시스템으로 바꿨다. 

고바야시제약 이외의 일본기업도 성과급 인사제도를 운영 측면에서 보완하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성과급 자체가 ‘惡’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운영 측면에서의 개선을 통해 부작용이나 악화된 부분을 보완하는 일본기업이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 성과 결과에 이르는 프로세스에 대한 평가 비중의 확대 △ 부하에 대한 지도와 동료에 대한 협력도 평가요소에 포함 △ 개인평가 기준에 팀 성과 추가 △ 평가자의 수 확대 △ 임금의 차등 폭 축소 △ 회사 행사 확대를 통한 팀워크의 강화 등이 보완책으로서 활용되고 있다. 
  

Ⅳ. 시사점 
  

대성공을 거둔 후 갑자기 무너진 것처럼 보이는 일본 기업의 실패사례나 위기를 극복해 간 일본의 성공 사례가 여러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에 오른 한국기업에게 주는 의미는 커 보인다. 특히 경제, 사회 기술 트렌드의 구조적 변화가 불황과 함께 가속될 수 있는 현실을 앞에 두고 일시적으로 참고 견디기 위해 비용 절감이라는 통상적인 불황 대처에만 그칠 경우 실패한 일본기업처럼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는 위험도 크게 다가온다. 

일본기업의 실패는 디지털화, 네트워크화와 같은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기술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었다. IT혁명 태동기였던 90년대 일본기업의 도전적 상황이 모바일 OS플랫폼과 컨텐츠·소프트웨어가 주도하는 IT생태계 혁명의 한가운데 있는 오늘날 우리기업의 상황일 지 모른다. 트렌드의 큰 맥을 놓치지 말아야겠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강점을 가볍게 여겨서도 안될 것이다. 이노베이터로의 혁신과정에서 소니가 기존의 기술 경영의 강점을 상실한 것처럼 우리가 갖고 있는 경쟁력의 원천을 쉽게 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유지해야 할 것과 혁신해야 할 것을 구별하면서 혁신 역량의 재정의 , 비즈니스 모델의 재정의에 임해야 할 것이다. 

연구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일본기업의 실패 교훈도 중요하다. 이노베이터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의 확대, 연구개발인력의 비중 확대가 중요하겠지만 기존 방식대로 투자만 늘릴 경우 일본 기업처럼 낭패를 볼 수 있다. 자사의 성공 과정이나 자사의 조직 역량을 종합적으로 재검토하면서 핵심역량, 핵심 기술을 기반으로 시장흐름과 기술흐름에 맞게 사업영역을 확장해 가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보전자 소재 부문 등에서 핵심기술 역량을 기반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는데 성공한 일본 기업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적지 않다. 이들 기업의 성과는 20~40년의 긴 기간의 노력 끝에 달성된 경우가 많았지만 우리기업의 경우는 보다 집중력과 효율을 발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핵심역량과 연계될 수 있는 부문의 시장트렌드와 기술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한발 앞서가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독창적 기술을 위해 신속하게 투자를 확대하는 식의 기술경영체제가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LG Business Insight 1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