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27. 11:57
대부분의 글로벌 전자 기업들이 저수익성의 덫에 빠져 있거나 성과의 변동이 심한 반면 캐논은 지난 10년 간 꾸준한 성과를 일구어 오고 있다. 캐논은 집중화된 사업 구조 하에 개별 사업들이 해당 시장에서 Top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함에 따라 뛰어난 수익 창출에 성공하고 있다. 이러한 고성과는 캐논이 포진하고 있는 산업의 크기가 작고 아날로그적인 성격으로 강해 경쟁 강도는 약한 반면 다양한 수익모델로 이익을 확보할 경로가 많다는 산업적 특성에서 1차적으로 기인하고 있다. 그러나 캐논과 유사한 포트폴리오를 가진 기업을 비교해 보면 캐논의 성과는 다시 두드러진다. 이는 철저한 선택과 집중, 그리고 폐쇄 전략을 통한 수익 모델의 확립, 셀 생산 방식을 통해 혁신적인 원가 구조의 확보, 뛰어난 기술, 종신 고용에 기반한 구성원들의 높은 로열티, CEO의 리더십이 융합되면서 나타난 결과로 파악된다. 하지만 최근 난항을 겪고 있는 캐논의 미래 신사업에서 알 수 있듯 지난 10년 간 캐논의 성공이 향후에도 지속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일부 의문이 남아 있다. 우리 기업들은 캐논의 사례가 말해주는 집중화된 사업 구조를 통한 경영의 집중성 확보, 기술의 중요성,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접근, 장기 경영의 중요성 등이 갖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Ⅰ. 왜 지금 캐논을 말하는가
1. 캐논의 뛰어난 수익 창출력
2006년 글로벌 전자 산업의 실적을 분석해 보면 몇 가지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기업들의 수익성이 규모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실적이 뚜렷이 양극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교 대상 16개 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6.4%)를 상회하는 기업은 대상 기업의 31%인 5개사 뿐이다(<그림 1> 참조).
실적이 뛰어난 5개 사(캐논, 노키아, 애플, 삼성전자, 모토로라)를 좀 더 살펴 보자. 모토로라나 애플은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으나 과거 실적을 살펴 볼 때 성과가 꾸준하지 못했으며 나머지 기업들도 대개 특정 사업에서 대부분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이는 아무리 뛰어난 기업이라 할지라도 치열한 경쟁과 변화 앞에서는 모든 분야에서 골고루 탁월한 성과를 내기도, 유지하기도 힘들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결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현실과 논리를 무색케 하는 플레이어가 있다. 바로 캐논(Canon)이다. 캐논의 지난 10년간 경영실적을 놓고 보면 가히 경이롭다 할 수 있다(<그림 2> 참조). 1999년을 기점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해 2006년에는 17%의 영업이익률을 실현하고 있으며 3대 주력 사업들은 20%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올리고 있다. 시가총액은 7.9조 엔(2007.10.24 기준)이 이르러 이미 소니(5.3조 엔)나 마쓰시타(4.9조 엔)를 능가하고 있다. 이처럼 캐논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캐논의 성공 요인과 시사점을 살펴 보도록 하자.
2. 주력 사업별 성과 분석
먼저 캐논 성과의 특징을 살펴 보자. 우선 캐논은 <그림 3>에서 보듯이 집중적이면서도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주력 사업인 카메라, 프린터, 복사기 사업이 전체 매출의 90% 가까이 차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카메라 사업이 성장하면서 매출이나 수익에 있어 개별 사업들이 산술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다. 개별 사업들은 해당 시장에서도 상대적인 경쟁력을 보여 주고 있어서 장기적으로도 주력 사업들이 안정적인 구도를 유지해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① 프린터 사업
프린터 사업은 전체 매출의 33%, 수익의 44%를 차지하는 캐논의 핵심사업이다(2005년 기준). 프린터 시장의 격전지(금액 기준으로 전체 프린터 시장의 약 70%를 차지)라고 할 수 있는 레이저 프린터 시장에서 캐논의 성과를 살펴 보자. 2005년 시장점유율을 살펴 보면 HP의 지배력이 압도적이고 캐논은 후발 사업자인 것처럼 보인다(오른쪽 페이지 <표> 참조). 그러나 캐논은 프린터 사업에 있어 OEM 사업을 겸하면서 실리를 취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캐논의 프린터 사업은 상당 부분 OEM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HP 프린터의 대부분은 캐논 엔진을 채택하고 있으며 실제 하드웨어의 대부분도 캐논으로부터 조달 받고 있는데 2005년 캐논 전체 매출에서 HP의 OEM사업과 관련된 매출은 780,639백만 엔으로 캐논 전체 매출의 20.8%를 차지하고 있다. 영업이익률 측면에서 비교해 볼 때 캐논은 26.7%(이익규모는 30억 달러), HP는 13.5%(이익규모는 38억 달러)로 양사는 동등한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보면, 캐논의 전체 시장 지배력은 사실상 Top 수준임을 알 수 있다.
② 복사기 사업
복합기 시장에서 캐논의 시장 점유율 역시 Top 수준으로 17%~28%을 오가고 있는데 최근 성장하고 있는 컬러 복합기 시장에서는 라인 업 미비로 시장 지배력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캐논이 복사기 시장에서 판가하락을 주도하면서도 영업이익률 18%대(2005년 기준)의 높은 수익을 창출하고 2위 사업자인 제록스(9%)나 리코(14%)와 많은 격차를 유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캐논의 경쟁력은 아직 굳건하다고 봐야 한다.
③ 카메라 사업
다른 사업과 달리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 캐논은 상당기간 약세를 면치 못했었다. 아날로그 카메라 시장의 강자였지만 디지털화에 대한 대응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IXY라는 히트 카메라 출시에 성공하면서 디지털 카메라 사업의 교두보를 확보했으며 DSLR시장에서는 니콘과 사실상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특히 성장기에 접어들고 있는 DSLR시장은 기존 아날로그 시장의 경쟁 우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데 카메라 사업의 영업이익률은 18.5%에 육박하고 있다.
Ⅱ. Profitable Growth의 원동력
1. 산업 내부의 낮은 경쟁도
전자산업의 큰 시장들은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아 저수익의 덫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시장인 TV나 오디오/비디오 시장은 규모는 크지만 LG, 삼성, 소니, 도시바, 마쓰시타, 샤프와 같이 쟁쟁한 기업들간 경쟁이 치열해 산업 내 수익성은 2.2%에 불과하다. 특히 최근에는 디지털화로 인한 사업 본질의 변화가 가속화 되고, 수직통합 되어 있던 가치사슬의 분화가 증가함에 따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들은 뛰어난 브랜드를 가지고 있더라도 쓴 맛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술의 대명사, TV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소니가 북미 DTV 시장에서는 전체 직원 90명의 비지오(Vizio) 앞에 무릎을 꿇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반면 복사기나 카메라 시장은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은 반면 기술적 난이도나 진입장벽이 높아 경쟁강도가 약한 편이다. 이 사업의 주요 기술인 광학, 기구, 화학, 메카트로닉스 기술 등은 TV나 핸드폰의 주요 기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날로그적 특성이 강해 디지털화에 덜 노출됨에 따라 후발 기업들의 추격이 용이하지 않다. 특히 비구면 렌즈의 연마, 렌즈의 밝기를 제고시키기 위한 화학처리 기술, 레이저 처리, 토너 가공 기술 등은 아직도 아날로그적 특성이 많이 남아 있다.
한편 프린터, 복사기, 카메라 모두 지속적인 수요를 유발하는 제품이라는 특성이 있다. 프린터는 잉크, 복사기는 토너, 카메라는 필름 및 렌즈와 같이 캐논이 포진한 대부분의 산업들은 한 번의 판매로 매출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모품이나 주변 기기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매출이 이어진다. 그 결과 제품 판매에서 충분한 이윤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After Market에서 다시 이윤을 창출할 수 있으며 교체비용으로 인해 시장 지배력도 쉽게 변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예를 들어 DSLR은 렌즈가격이 카메라 가격보다 비싼 경우가 허다하며 다양한 렌즈를 보유한 사용자들은 카메라 선택에 있어 고착화(Lock-in)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앞서 살펴 본 카메라, 복사기 및 프린터 사업의 특징은 전자 산업 내의 다른 블록버스터급 사업들보다 시장 참여자들에게 높은 수익을 제공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캐논과 유사한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기업들은 모두 높은 수익을 창출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사업 부문별 경쟁력 비교에서 알 수 있듯 기업간 경쟁력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며 캐논과 유사한 사업포트폴리오를 가진 기업들(Peer Group)과 비교해 보면 캐논의 뛰어난 성과가 단순히 사업적 특성에 기인한다고만 해석할 수는 없다. 캐논만의 성공 비결을 중점적으로 살펴 보도록 하자.
2. 캐논 내부의 성공 요인
① 전략 - 철저한 선택과 집중, 그리고 폐쇄전략
캐논의 성공 요인으로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성장의 궤적을 그려 왔다는 점이다. 실제 캐논은 기존 기술에 새로운 분야의 기술을 컨버전스 시킨 후 관련된 분야로 이동해 가는 인접이동을 꾸준히 실천해 왔다. <그림 6>에 나와 있듯이 아날로그 기술에 뿌리를 두고 있는 광학기술을 인접이동의 기본 인프라로 활용하면서 복사기, 프린터, 팩스, 이미징 센서 Chip 등에 폭 넓게 적용해 왔다. 즉 기술기반이 철저히 확보되지 않은 사업에 있어서는 성장 가능성이 높다 할 지라도 과감하게 철수하고 기존의 확립된 기술이나 제품 기반과 관련된 분야로 확장한 후 집요하게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사업의 성공확률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1990년대 당시 미래 성장 분야로 각광 받던 PC나 디스플레이 사업(FLC)에서 시장을 주도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과감히 철수했던 것도 오늘날 캐논이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던 주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눈 여겨 봐야 할 부분은 이중, 삼중의 폐쇄전략이다. 캐논은 2000년 이후 해외 공장의 국내 회귀를 본격화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금형업체와 NEC의 로봇 생산 자회사를 인수함으로써 생산 도구의 내재화를 뚜렷이 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생산기지 국내 회귀, 생산 도구 업체 인수, 핵심 부품의 블랙박스화 등은 핵심 노하우를 숨기고자 하는 캐논의 전략 방향과 정확히 정렬(Align)되어 있다.
캐논의 이러한 행동은 기술 유출 방지와 더불어 자신이 포진한 산업 내에서 가치사슬별 전문 기업을 통합시킴으로써 더 큰 효율을 창출 할 수 있는 수평적 분업화가 진전되는 것을 최대한 저지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즉 기술이나 생산 노하우를 철저히 숨김으로써 다른 일본 전자 기업들이 겪었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후발 기업들의 모방을 차단하는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② 생산 - 셀, 그리고 Next 셀 생산방식
종신 고용제를 추구하고 있는 캐논은 고비용 인력 구조를 지니고 있다. 캐논 주식회사의 경우 구성원들의 평균 연령은 39.3세이며 연평균 급여는 861만 엔으로 국내 기업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런데 캐논의 원가구조를 살펴 보면 예상과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 간접비와 변동비의 비중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2005년을 기준으로 볼 때, 판매관리비의 비중이 25.3%에 불과하며 매출 총이익율은 48.5%에 육박한다. 이러한 혁신적인 원가 구조는 사업 전반의 높은 수익성, OEM 방식의 프린터 사업 전개에 따른 판매 관리비 절감, 그리고 셀 생산 방식을 통한 높은 노동 생산성을 실현이 주요한 이유로 파악된다. 이하에서는 캐논의 셀 생산 방식에 대해 자세히 살펴 보도록 하자.
캐논은 기존 컨베이어 시스템 하에서 확보할 수 있는 원가 구조를 뛰어 넘기 위해 1997년 소니를 벤치마킹하고 셀 방식으로의 전환을 결정하였다. 1998년 나가하마 공장을 시작으로 2000년에는 해외공장에도 도입하여 2003년에는 모든 공장에서 셀 생산방식을 도입하였다. 셀 생산방식이 성공적으로 안착하자 불량률의 하락 외에 2000년 당시 65일 수준이던 재고일수가 2005년에는 47일까지 빠르게 감소하였다. 동시에 전세계 공장에 있던 20㎞의 컨베이어 벨트 철거로 공장(줄어든 공간은 1,137,447㎡)이나 창고(147,041㎡)의 공간도 크게 줄었다.
생산방식의 변화는 단순한 원가절감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혁신활동의 단초가 되기도 하였다. 작업자의 숙련도가 제고됨에 따라 만여 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복사기를 혼자서 조립할 수 있는 ‘명장’이 나오는가 하면 작업 공구 자체 제작을 위한 ‘지혜 Tech’라는 연구가 활성화되기도 하였다. 실제 카메라 렌즈 공장에서는 과거 25만 엔에 구매하던 기구를 재료비 1만 8천엔 정도로 제작하여 비용을 절감한 사례도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생산기지들의 국내 회귀로 개발과 생산 부문간 협업이 활성화되면서 셀 생산은 평면적인 생산성 향상에서 입체적인 혁신활동의 양상을 띄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캐논의 전체적인 원가절감을 견인하였다.
캐논의 셀 생산에서 보다 눈 여겨 볼 부분은 재무적 효과 외에 생산, 그 자체에 대한 캐논의 접근 방식이다. 캐논의 미타라이 사장은 해외 생산기지 이전을 ‘화전민식 경영’이라고 보았다. 해외 생산기지 이전은 단기적인 원가절감 효과는 있으나 현지임금이나 환율이 점차 상승함에 따라 새로운 이전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원가 절감의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제품이 라인을 따라 흐르기 시작하면 원가나 불량을 잡을 수 있는 기회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점, 경제적 설계를 통해 원가를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여전히 많다는 점에 착안해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다.
캐논은 현재의 셀 생산방식 또한 원가경쟁력 제고에 한계가 있음을 인지하고 추가적인 원가혁신을 위해 자동화 기기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자동화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단순한 원가 절감을 넘어 향후 10년간 원가경쟁력 확보를 위한 Next 셀 생산이라는 관점 하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캐논은 로봇의 개발, 제조를 외부에 의지할 경우 로봇의 불필요한 동작을 제어하기 힘들고 이럴 경우 원가절감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로봇을 직접 생산, 생산 현장과의 밀접한 연계를 통해 최적의 작업과 행동을 구현할 수 있도록 NEC의 자회사를 인수 한 바 있다. 캐논은 2007년 기준으로 국내 생산액의 25%에 해당하는 2,500억 엔 분의 물량을 자동화 라인에서 생산하려 하고 있으며 오이타 캐논 머티리얼은 캐논의 첫 자동화 모델 공장이다.
365일 24시간 무인화 공장 운영이라는 캐논의 시도가 성공할 경우 제조업의 성격은 인건비 경쟁에서 자본과 지식 중심의 경쟁으로 다시 한 번 변화할 수 있다. 이런 환경에 필요한 핵심 요건이 캐논이나 일본기업들이 상대적으로 강점이 있는 부서간 협업, 최적화된 공정 구현 능력, 발달된 공작기계 산업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자동화 라인의 구축은 단순한 원가경쟁력 제고를 넘어 전략적 의도가 담겨 있는 행동이라고 봐야 한다.
③ 기술 - 10년간 세계 특허 순위 3위 이내
캐논은 비용구조 상의 강점을 바탕으로 R&D 중심의 경쟁구도를 더욱 심화시켰다. 캐논은 7.6%의 R&D투자를 하고 있는데 이는 동종 업계 최고 수준이다. 프린터와 광학기술에 있어 캐논의 기술력은 이미 널리 알려 진 바다. 디스플레이 강국인 한국 글로벌 전자 기업들도 노광 장비의 대부분을 캐논에 의존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캐논은 자신들의 잉크젯 기술을 바이오 분야에 응용해 DNA칩이나 인공피부와 같은 바이오 분야의 진출을 꾀하고 있는데 이들 제품의 기본 원리는 잉크젯 프린터의 노즐을 나노 단위로 만들어 잉크 대신 세포를 주입해 프린팅 할 경우 DNA칩이나 피부와 같은 것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경쟁에 뒤져 있던 사업을 따라 잡는 방식에 있어서도 캐논은 독자 기술 확보 쪽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 시장의 성장기에 센서 기술 부족으로 소니와 같은 전통 전자기업들에게 약점을 노출한 캐논은 대부분의 기업이 사용하고 있던 CCD(Charge Coupled Device)를 소싱해 사업을 전개하기 보다는 근본적인 판세를 뒤집기 위해 CMOS 센서 자체 개발에 착수, 집요한 노력을 통해 자체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경쟁 구도를 근본적으로 뒤집는데 성공한다.
기술 개발과 더불어 기술 보호에도 적극적인데 지난 10년간 매년 만 건 이상의 특허(전체 특허 기준)를 출원하고 있으며 카메라나 사무기기 산업 내가 아닌 전체 특허 순위(미국 특허 기준)에서 3위 권 이내를 꾸준히 지켜 오고 있다. 이와 같은 기술력과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 앞에 경쟁사나 후발기업들은 무기력할 수 밖에 없었다. 프린터 시장의 강자라고 하는 HP도 특허문제로 인해 캐논으로부터 프린터 엔진이나 하드웨어를 소싱할 수 밖에 없었으며 가격 또한 원하는 만큼 싸게 조달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④ 사람 - 구성원들의 로열티와 CEO의 리더십
캐논은 종신 고용제를 유지하고 있는 독특한 회사이다. 종신 고용은 일본사회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부분도 상당히 크지만 일본 기업 중에서도 캐논처럼 종신 고용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핵심가치-캐논의 경영철학은 ‘공생(共生)’이며 3대 행동 강령은 자발, 자치, 자각이다- 단계로 까지 발전시킨 기업은 보기 드물다.
미타라이 사장은 “캐논에서 인원 정리를 한 적은 없다. 다만 내가 젊었을 때(도쿄 올림픽 후 불황) 두 번 임금을 삭감 당한 적은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만두지 않았다. 일본 회사는 그런 의식이 있기 때문에 불황에 강하다. 곤란한 환경일수록 운명공동체 의식으로 단결한 소수정예부대가 금전적 보상을 최대의 동기 부여로 삼아 이합집산하는 조직보다 훨씬 강하다. 캐논 경쟁력의 원천은 여기 있다. 경영이 위급하게 되었을 때 인원 정리가 어렵다고 말하는 경영자도 있지만 처음부터 어렵게 될 경영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필요 이상으로 종업원을 고용한 점에 원인이 있다. 경영의 잘못을 제도 탓으로 핑계를 대선 안 된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앞서 언급했던 PC사업의 경우 철수가 결정된 후 관련 연구 인력들은 복사기나 프린터의 디지털화에 대비하도록 이동배치 되었는데 이들은 후에 디지털 복사기를 제어하는 컨트롤러 개발, PC를 경유하지 않고 디지털 카메라에서 프린터로 직접 프린팅이 가능케 하는 기술 개발의 주역이 되었다. 캐논이 성공(셀 생산)해 왔고 향후 추진하고 있는 전략(개발, 생산, 장비간 극한의 협업을 통한 혁신)의 성공을 자신하는 것도 구성원들의 로열티가 높아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세계 누구보다 뛰어 나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신고용제는 연공서열제로 인해 조직 내 활력이 사라진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다. 이를 위해 캐논은 일본식 종신고용제도에 성과주의를 가미함으로써 회사와 구성원간 관계를 장기관계주의에서 장기능력주의로 전환시켰다. 신인사 시스템의 3대 원칙은 연공서열에 따른 자동 승급 폐지, 기회 균등을 보장하는 공정과 공평, 글로벌 일관성 확보였다. 이를 기반으로 기본급(직능에 따른 기본급과 수당)과 사실상 고정급화된 상여로 구성되어 있던 기존 연봉체계에서 수당을 폐지하고 상여가 실질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도록 직무, 개인실적, 기업실적에 연동되게 바꿨다. 신인사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일시적인 생산성 하락을 겪었지만 오히려 이것이 인사 부분의 역량 강화를 촉진시켜 조직 풍토에 맞는 적합한 인재(Right People)의 확보와 육성에 큰 진전을 이루게 되었다.
조직적인 측면에서 캐논은 한 때 사업부제의 병폐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미타라이 사장이 캐논에 부임할 즈음 캐논은 수익성 저하로 사상 처음으로 배당을 하지 못하는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환율 상승이라는 외부적 악재가 있었지만 캐논의 내부 조직 문제가 전반적인 경쟁력 저하를 일으킨 주범이었다.
당시 캐논의 사업부제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많은 권한이 사업부제로 이양됨에 따라 본사는 제 기능을 상실하고 사업부는 봉건 영주와 같이 자신들의 성장을 위해 전사적인 활동에 소극적인 상태였다. 실적이 저조한 사업부에는 인력이 남아 돌고 일부 실적이 좋은 사업부는 계속 사람을 증원한다거나 해외 생산 기지 건설에 있어서도 다른 사업부 공장을 활용하기 보다 새로운 공장을 짓는 현상이 빈번히 발생하였다. 이러한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미타라이 사장은 다수의 위원회 조직을 신설한 후 전체 최적화를 위한 실행 도구로 활용하였다. 생산, 개발, 물류, 재무에서 회사 규정에 이르기까지 신설된 8개의 전문 위원회는 ‘전체 최적’, ‘경영 스피드 제고’를 모토로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에 불을 지핀 결과 사업부간 벽을 허무는데 성공하였다.
Ⅲ. 캐논의 한계와 리스크
최근 들어 캐논도 주요 분야에서 일부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컬러 복합기 시장에서는 라인업 부족으로 인한 경쟁력 약화 현상이 우려되고 있다. 2005년에 리코나 제록스가 10여 종의 제품 라인 업을 추가한 반면, 캐논은 5종의 제품 밖에 출시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프린터 시장에서는 기술적 난이도가 높은 프린터 엔진 개발에 후발기업들이 잇달아 성공(삼성전자 1997년, 브라더스 공업 2007년 8월 등)하면서 진입 장벽이 서서히 낮아지고 있다. 동시에 사무기기의 네트워크화로 인해 복사기와 프린터기의 구분이 점차 모호해 지고 기업에서 원 스톱 대응을 요구함에 따라 복사기가 강한 기업은 프린터를, 프린터가 강한 기업은 복사기나 관련 부품을 아웃 소싱하는 흐름이 뚜렷지고 있다. 이에 따라 프린터 엔진의 외판 시장에 후발 기업들이 끼어들 공간이 계속 커지고 있다. 실제 제록스는 후지 제록스 이외에 코니카미놀타나 삼성전자로부터 엔진을 공급받고 있으며 대만 기업인 Aetas는 델에 납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린터 시장의 진입장벽 완화와 이에 따른 후발기업들의 성장 그리고 핵심 부품시장의 활성화가 캐논의 HP OEM 사업에 영향을 미칠 경우 그 영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캐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차세대 신사업인 SED(표면전도전자방출 디스플레이)사업에 대한 것이다. 1980년 대 이후 숙원사업이었던 SED는 과도한 투자비, 가격 경쟁력의 한계, Set업체와의 전략적 제휴의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성공에 대한 회의가 점차 커지고 있다. 캐논과 공동으로 SED TV를 개발해 온 도시바는 올 1월 특허 문제를 표면에 내걸어 공동 출자를 포기한 바 있으며 출시 시기 또한 불투명한 상황이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캐논이 과거의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SED의 경우 기술적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독자 노선과 폐쇄 전략으로 사업화의 시기를 놓쳐 성공을 담보하기 힘든 상황인데 과거 1990년 대 분루를 삼키며 철수한 디스플레이(FLC)사업과 정확히 같은 단계를 밟아 실패의 문턱을 넘어 서려 하고 있다. 이상을 살펴 볼 때, 캐논이 향후에도 지난 10년의 성공을 다시 지속될 수 있을지 확신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Ⅳ. 시사점
이상에서 지난 10년간 캐논이 뛰어난 성과를 지속할 수 있었던 원인과 당면하고 있는 주요 리스크를 살펴 보았다. 캐논의 사례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다음과 같다.
첫째, 포트폴리오의 다양성이 높은 수익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캐논의 경우 소수의 집중화된 사업구조를 바탕으로 뛰어난 수익을 창출함으로써 다른 일본의 종합전자기업들 보다 높은 시가 총액을 실현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의 경우 굉장히 폭넓은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지만 대표 사업을 제외한 많은 사업들은 의미 있는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포트폴리오는 여러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경영이나 자원의 집중성을 떨어질 경우 글로벌 경쟁에 취약해 질 가능성이 많다.
물론 GE처럼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면서도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하는 기업도 있지만 이는 GE가 그에 걸맞는 탁월한 경영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캐논의 과감한 선택과 집중, 그리고 집요한 실행은 우리 기업들에게 의미있는 대안을 제시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기술투자의 높은 효과를 들 수 있다. 캐논은 경쟁력 확보를 위해 R&D에 지속적인 투자를 해 왔고 이에 따른 과실을 향유하고 있다. 특히 컨버전스에 가장 적합한 영역을 중심으로 도메인을 잡고 이에 부합하는 연구를 통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는 사실은 장기적인 기술 투자와 선견력 있는 기술 전략이 효과적으로 결합될 경우 기술이라는 것이 기업 경쟁력 제고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다만 SED 사업에서 알 수 있듯이 기술력은 성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님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셋째, 쉬운 대안보다는 근본적인 대안에 대한 면밀한 고찰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캐논의 경우 원가혁신을 위해 생산지 이전을 가속화 했더라면 보다 쉬운 방법으로 원가를 줄일 수 있었겠지만 항구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 경제적 설계 능력 확보, 극한의 협업을 통한 제조 경쟁력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라인 중심의 혁신활동이나 생산지 이전이라는 카드를 너무 쉽게 뽑아 드는 경향이 있다. 겉으로 드러난 증상을 해결하는 데 급급하기 보다 핵심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캐논의 접근방식은 우리 기업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넷째, 장기 경영에 대한 중요성을 들 수 있다. 캐논은 성공하고 있는 셀 생산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지금부터 철저한 준비를 해 나가고 있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도 기술에 있어서도 장기적 관점을 취하고 있음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미래를 대비한 꾸준한 포석과 일관성 있는 행동은 오늘날의 캐논을 있게 한 주요한 원동력이다. 이 과정에서 CEO의 역할이 중요하다. CEO와 COO는 바로 이점에서 다른 역할을 요구 받고 있기 때문이다.
- LG경제연구원
Ⅰ. 왜 지금 캐논을 말하는가
1. 캐논의 뛰어난 수익 창출력
2006년 글로벌 전자 산업의 실적을 분석해 보면 몇 가지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기업들의 수익성이 규모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실적이 뚜렷이 양극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교 대상 16개 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6.4%)를 상회하는 기업은 대상 기업의 31%인 5개사 뿐이다(<그림 1> 참조).
실적이 뛰어난 5개 사(캐논, 노키아, 애플, 삼성전자, 모토로라)를 좀 더 살펴 보자. 모토로라나 애플은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으나 과거 실적을 살펴 볼 때 성과가 꾸준하지 못했으며 나머지 기업들도 대개 특정 사업에서 대부분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이는 아무리 뛰어난 기업이라 할지라도 치열한 경쟁과 변화 앞에서는 모든 분야에서 골고루 탁월한 성과를 내기도, 유지하기도 힘들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결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현실과 논리를 무색케 하는 플레이어가 있다. 바로 캐논(Canon)이다. 캐논의 지난 10년간 경영실적을 놓고 보면 가히 경이롭다 할 수 있다(<그림 2> 참조). 1999년을 기점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해 2006년에는 17%의 영업이익률을 실현하고 있으며 3대 주력 사업들은 20%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올리고 있다. 시가총액은 7.9조 엔(2007.10.24 기준)이 이르러 이미 소니(5.3조 엔)나 마쓰시타(4.9조 엔)를 능가하고 있다. 이처럼 캐논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캐논의 성공 요인과 시사점을 살펴 보도록 하자.
2. 주력 사업별 성과 분석
먼저 캐논 성과의 특징을 살펴 보자. 우선 캐논은 <그림 3>에서 보듯이 집중적이면서도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주력 사업인 카메라, 프린터, 복사기 사업이 전체 매출의 90% 가까이 차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카메라 사업이 성장하면서 매출이나 수익에 있어 개별 사업들이 산술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다. 개별 사업들은 해당 시장에서도 상대적인 경쟁력을 보여 주고 있어서 장기적으로도 주력 사업들이 안정적인 구도를 유지해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① 프린터 사업
프린터 사업은 전체 매출의 33%, 수익의 44%를 차지하는 캐논의 핵심사업이다(2005년 기준). 프린터 시장의 격전지(금액 기준으로 전체 프린터 시장의 약 70%를 차지)라고 할 수 있는 레이저 프린터 시장에서 캐논의 성과를 살펴 보자. 2005년 시장점유율을 살펴 보면 HP의 지배력이 압도적이고 캐논은 후발 사업자인 것처럼 보인다(오른쪽 페이지 <표> 참조). 그러나 캐논은 프린터 사업에 있어 OEM 사업을 겸하면서 실리를 취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캐논의 프린터 사업은 상당 부분 OEM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HP 프린터의 대부분은 캐논 엔진을 채택하고 있으며 실제 하드웨어의 대부분도 캐논으로부터 조달 받고 있는데 2005년 캐논 전체 매출에서 HP의 OEM사업과 관련된 매출은 780,639백만 엔으로 캐논 전체 매출의 20.8%를 차지하고 있다. 영업이익률 측면에서 비교해 볼 때 캐논은 26.7%(이익규모는 30억 달러), HP는 13.5%(이익규모는 38억 달러)로 양사는 동등한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보면, 캐논의 전체 시장 지배력은 사실상 Top 수준임을 알 수 있다.
② 복사기 사업
복합기 시장에서 캐논의 시장 점유율 역시 Top 수준으로 17%~28%을 오가고 있는데 최근 성장하고 있는 컬러 복합기 시장에서는 라인 업 미비로 시장 지배력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캐논이 복사기 시장에서 판가하락을 주도하면서도 영업이익률 18%대(2005년 기준)의 높은 수익을 창출하고 2위 사업자인 제록스(9%)나 리코(14%)와 많은 격차를 유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캐논의 경쟁력은 아직 굳건하다고 봐야 한다.
③ 카메라 사업
다른 사업과 달리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 캐논은 상당기간 약세를 면치 못했었다. 아날로그 카메라 시장의 강자였지만 디지털화에 대한 대응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IXY라는 히트 카메라 출시에 성공하면서 디지털 카메라 사업의 교두보를 확보했으며 DSLR시장에서는 니콘과 사실상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특히 성장기에 접어들고 있는 DSLR시장은 기존 아날로그 시장의 경쟁 우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데 카메라 사업의 영업이익률은 18.5%에 육박하고 있다.
Ⅱ. Profitable Growth의 원동력
1. 산업 내부의 낮은 경쟁도
전자산업의 큰 시장들은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아 저수익의 덫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시장인 TV나 오디오/비디오 시장은 규모는 크지만 LG, 삼성, 소니, 도시바, 마쓰시타, 샤프와 같이 쟁쟁한 기업들간 경쟁이 치열해 산업 내 수익성은 2.2%에 불과하다. 특히 최근에는 디지털화로 인한 사업 본질의 변화가 가속화 되고, 수직통합 되어 있던 가치사슬의 분화가 증가함에 따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들은 뛰어난 브랜드를 가지고 있더라도 쓴 맛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술의 대명사, TV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소니가 북미 DTV 시장에서는 전체 직원 90명의 비지오(Vizio) 앞에 무릎을 꿇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반면 복사기나 카메라 시장은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은 반면 기술적 난이도나 진입장벽이 높아 경쟁강도가 약한 편이다. 이 사업의 주요 기술인 광학, 기구, 화학, 메카트로닉스 기술 등은 TV나 핸드폰의 주요 기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날로그적 특성이 강해 디지털화에 덜 노출됨에 따라 후발 기업들의 추격이 용이하지 않다. 특히 비구면 렌즈의 연마, 렌즈의 밝기를 제고시키기 위한 화학처리 기술, 레이저 처리, 토너 가공 기술 등은 아직도 아날로그적 특성이 많이 남아 있다.
한편 프린터, 복사기, 카메라 모두 지속적인 수요를 유발하는 제품이라는 특성이 있다. 프린터는 잉크, 복사기는 토너, 카메라는 필름 및 렌즈와 같이 캐논이 포진한 대부분의 산업들은 한 번의 판매로 매출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모품이나 주변 기기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매출이 이어진다. 그 결과 제품 판매에서 충분한 이윤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After Market에서 다시 이윤을 창출할 수 있으며 교체비용으로 인해 시장 지배력도 쉽게 변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예를 들어 DSLR은 렌즈가격이 카메라 가격보다 비싼 경우가 허다하며 다양한 렌즈를 보유한 사용자들은 카메라 선택에 있어 고착화(Lock-in)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앞서 살펴 본 카메라, 복사기 및 프린터 사업의 특징은 전자 산업 내의 다른 블록버스터급 사업들보다 시장 참여자들에게 높은 수익을 제공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캐논과 유사한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기업들은 모두 높은 수익을 창출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사업 부문별 경쟁력 비교에서 알 수 있듯 기업간 경쟁력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며 캐논과 유사한 사업포트폴리오를 가진 기업들(Peer Group)과 비교해 보면 캐논의 뛰어난 성과가 단순히 사업적 특성에 기인한다고만 해석할 수는 없다. 캐논만의 성공 비결을 중점적으로 살펴 보도록 하자.
2. 캐논 내부의 성공 요인
① 전략 - 철저한 선택과 집중, 그리고 폐쇄전략
캐논의 성공 요인으로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성장의 궤적을 그려 왔다는 점이다. 실제 캐논은 기존 기술에 새로운 분야의 기술을 컨버전스 시킨 후 관련된 분야로 이동해 가는 인접이동을 꾸준히 실천해 왔다. <그림 6>에 나와 있듯이 아날로그 기술에 뿌리를 두고 있는 광학기술을 인접이동의 기본 인프라로 활용하면서 복사기, 프린터, 팩스, 이미징 센서 Chip 등에 폭 넓게 적용해 왔다. 즉 기술기반이 철저히 확보되지 않은 사업에 있어서는 성장 가능성이 높다 할 지라도 과감하게 철수하고 기존의 확립된 기술이나 제품 기반과 관련된 분야로 확장한 후 집요하게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사업의 성공확률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1990년대 당시 미래 성장 분야로 각광 받던 PC나 디스플레이 사업(FLC)에서 시장을 주도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과감히 철수했던 것도 오늘날 캐논이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던 주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눈 여겨 봐야 할 부분은 이중, 삼중의 폐쇄전략이다. 캐논은 2000년 이후 해외 공장의 국내 회귀를 본격화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금형업체와 NEC의 로봇 생산 자회사를 인수함으로써 생산 도구의 내재화를 뚜렷이 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생산기지 국내 회귀, 생산 도구 업체 인수, 핵심 부품의 블랙박스화 등은 핵심 노하우를 숨기고자 하는 캐논의 전략 방향과 정확히 정렬(Align)되어 있다.
캐논의 이러한 행동은 기술 유출 방지와 더불어 자신이 포진한 산업 내에서 가치사슬별 전문 기업을 통합시킴으로써 더 큰 효율을 창출 할 수 있는 수평적 분업화가 진전되는 것을 최대한 저지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즉 기술이나 생산 노하우를 철저히 숨김으로써 다른 일본 전자 기업들이 겪었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후발 기업들의 모방을 차단하는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② 생산 - 셀, 그리고 Next 셀 생산방식
종신 고용제를 추구하고 있는 캐논은 고비용 인력 구조를 지니고 있다. 캐논 주식회사의 경우 구성원들의 평균 연령은 39.3세이며 연평균 급여는 861만 엔으로 국내 기업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런데 캐논의 원가구조를 살펴 보면 예상과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 간접비와 변동비의 비중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2005년을 기준으로 볼 때, 판매관리비의 비중이 25.3%에 불과하며 매출 총이익율은 48.5%에 육박한다. 이러한 혁신적인 원가 구조는 사업 전반의 높은 수익성, OEM 방식의 프린터 사업 전개에 따른 판매 관리비 절감, 그리고 셀 생산 방식을 통한 높은 노동 생산성을 실현이 주요한 이유로 파악된다. 이하에서는 캐논의 셀 생산 방식에 대해 자세히 살펴 보도록 하자.
캐논은 기존 컨베이어 시스템 하에서 확보할 수 있는 원가 구조를 뛰어 넘기 위해 1997년 소니를 벤치마킹하고 셀 방식으로의 전환을 결정하였다. 1998년 나가하마 공장을 시작으로 2000년에는 해외공장에도 도입하여 2003년에는 모든 공장에서 셀 생산방식을 도입하였다. 셀 생산방식이 성공적으로 안착하자 불량률의 하락 외에 2000년 당시 65일 수준이던 재고일수가 2005년에는 47일까지 빠르게 감소하였다. 동시에 전세계 공장에 있던 20㎞의 컨베이어 벨트 철거로 공장(줄어든 공간은 1,137,447㎡)이나 창고(147,041㎡)의 공간도 크게 줄었다.
생산방식의 변화는 단순한 원가절감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혁신활동의 단초가 되기도 하였다. 작업자의 숙련도가 제고됨에 따라 만여 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복사기를 혼자서 조립할 수 있는 ‘명장’이 나오는가 하면 작업 공구 자체 제작을 위한 ‘지혜 Tech’라는 연구가 활성화되기도 하였다. 실제 카메라 렌즈 공장에서는 과거 25만 엔에 구매하던 기구를 재료비 1만 8천엔 정도로 제작하여 비용을 절감한 사례도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생산기지들의 국내 회귀로 개발과 생산 부문간 협업이 활성화되면서 셀 생산은 평면적인 생산성 향상에서 입체적인 혁신활동의 양상을 띄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캐논의 전체적인 원가절감을 견인하였다.
캐논의 셀 생산에서 보다 눈 여겨 볼 부분은 재무적 효과 외에 생산, 그 자체에 대한 캐논의 접근 방식이다. 캐논의 미타라이 사장은 해외 생산기지 이전을 ‘화전민식 경영’이라고 보았다. 해외 생산기지 이전은 단기적인 원가절감 효과는 있으나 현지임금이나 환율이 점차 상승함에 따라 새로운 이전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원가 절감의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제품이 라인을 따라 흐르기 시작하면 원가나 불량을 잡을 수 있는 기회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점, 경제적 설계를 통해 원가를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여전히 많다는 점에 착안해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다.
캐논은 현재의 셀 생산방식 또한 원가경쟁력 제고에 한계가 있음을 인지하고 추가적인 원가혁신을 위해 자동화 기기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자동화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단순한 원가 절감을 넘어 향후 10년간 원가경쟁력 확보를 위한 Next 셀 생산이라는 관점 하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캐논은 로봇의 개발, 제조를 외부에 의지할 경우 로봇의 불필요한 동작을 제어하기 힘들고 이럴 경우 원가절감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로봇을 직접 생산, 생산 현장과의 밀접한 연계를 통해 최적의 작업과 행동을 구현할 수 있도록 NEC의 자회사를 인수 한 바 있다. 캐논은 2007년 기준으로 국내 생산액의 25%에 해당하는 2,500억 엔 분의 물량을 자동화 라인에서 생산하려 하고 있으며 오이타 캐논 머티리얼은 캐논의 첫 자동화 모델 공장이다.
365일 24시간 무인화 공장 운영이라는 캐논의 시도가 성공할 경우 제조업의 성격은 인건비 경쟁에서 자본과 지식 중심의 경쟁으로 다시 한 번 변화할 수 있다. 이런 환경에 필요한 핵심 요건이 캐논이나 일본기업들이 상대적으로 강점이 있는 부서간 협업, 최적화된 공정 구현 능력, 발달된 공작기계 산업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자동화 라인의 구축은 단순한 원가경쟁력 제고를 넘어 전략적 의도가 담겨 있는 행동이라고 봐야 한다.
③ 기술 - 10년간 세계 특허 순위 3위 이내
캐논은 비용구조 상의 강점을 바탕으로 R&D 중심의 경쟁구도를 더욱 심화시켰다. 캐논은 7.6%의 R&D투자를 하고 있는데 이는 동종 업계 최고 수준이다. 프린터와 광학기술에 있어 캐논의 기술력은 이미 널리 알려 진 바다. 디스플레이 강국인 한국 글로벌 전자 기업들도 노광 장비의 대부분을 캐논에 의존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캐논은 자신들의 잉크젯 기술을 바이오 분야에 응용해 DNA칩이나 인공피부와 같은 바이오 분야의 진출을 꾀하고 있는데 이들 제품의 기본 원리는 잉크젯 프린터의 노즐을 나노 단위로 만들어 잉크 대신 세포를 주입해 프린팅 할 경우 DNA칩이나 피부와 같은 것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경쟁에 뒤져 있던 사업을 따라 잡는 방식에 있어서도 캐논은 독자 기술 확보 쪽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 시장의 성장기에 센서 기술 부족으로 소니와 같은 전통 전자기업들에게 약점을 노출한 캐논은 대부분의 기업이 사용하고 있던 CCD(Charge Coupled Device)를 소싱해 사업을 전개하기 보다는 근본적인 판세를 뒤집기 위해 CMOS 센서 자체 개발에 착수, 집요한 노력을 통해 자체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경쟁 구도를 근본적으로 뒤집는데 성공한다.
기술 개발과 더불어 기술 보호에도 적극적인데 지난 10년간 매년 만 건 이상의 특허(전체 특허 기준)를 출원하고 있으며 카메라나 사무기기 산업 내가 아닌 전체 특허 순위(미국 특허 기준)에서 3위 권 이내를 꾸준히 지켜 오고 있다. 이와 같은 기술력과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 앞에 경쟁사나 후발기업들은 무기력할 수 밖에 없었다. 프린터 시장의 강자라고 하는 HP도 특허문제로 인해 캐논으로부터 프린터 엔진이나 하드웨어를 소싱할 수 밖에 없었으며 가격 또한 원하는 만큼 싸게 조달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④ 사람 - 구성원들의 로열티와 CEO의 리더십
캐논은 종신 고용제를 유지하고 있는 독특한 회사이다. 종신 고용은 일본사회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부분도 상당히 크지만 일본 기업 중에서도 캐논처럼 종신 고용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핵심가치-캐논의 경영철학은 ‘공생(共生)’이며 3대 행동 강령은 자발, 자치, 자각이다- 단계로 까지 발전시킨 기업은 보기 드물다.
미타라이 사장은 “캐논에서 인원 정리를 한 적은 없다. 다만 내가 젊었을 때(도쿄 올림픽 후 불황) 두 번 임금을 삭감 당한 적은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만두지 않았다. 일본 회사는 그런 의식이 있기 때문에 불황에 강하다. 곤란한 환경일수록 운명공동체 의식으로 단결한 소수정예부대가 금전적 보상을 최대의 동기 부여로 삼아 이합집산하는 조직보다 훨씬 강하다. 캐논 경쟁력의 원천은 여기 있다. 경영이 위급하게 되었을 때 인원 정리가 어렵다고 말하는 경영자도 있지만 처음부터 어렵게 될 경영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필요 이상으로 종업원을 고용한 점에 원인이 있다. 경영의 잘못을 제도 탓으로 핑계를 대선 안 된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앞서 언급했던 PC사업의 경우 철수가 결정된 후 관련 연구 인력들은 복사기나 프린터의 디지털화에 대비하도록 이동배치 되었는데 이들은 후에 디지털 복사기를 제어하는 컨트롤러 개발, PC를 경유하지 않고 디지털 카메라에서 프린터로 직접 프린팅이 가능케 하는 기술 개발의 주역이 되었다. 캐논이 성공(셀 생산)해 왔고 향후 추진하고 있는 전략(개발, 생산, 장비간 극한의 협업을 통한 혁신)의 성공을 자신하는 것도 구성원들의 로열티가 높아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세계 누구보다 뛰어 나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신고용제는 연공서열제로 인해 조직 내 활력이 사라진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다. 이를 위해 캐논은 일본식 종신고용제도에 성과주의를 가미함으로써 회사와 구성원간 관계를 장기관계주의에서 장기능력주의로 전환시켰다. 신인사 시스템의 3대 원칙은 연공서열에 따른 자동 승급 폐지, 기회 균등을 보장하는 공정과 공평, 글로벌 일관성 확보였다. 이를 기반으로 기본급(직능에 따른 기본급과 수당)과 사실상 고정급화된 상여로 구성되어 있던 기존 연봉체계에서 수당을 폐지하고 상여가 실질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도록 직무, 개인실적, 기업실적에 연동되게 바꿨다. 신인사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일시적인 생산성 하락을 겪었지만 오히려 이것이 인사 부분의 역량 강화를 촉진시켜 조직 풍토에 맞는 적합한 인재(Right People)의 확보와 육성에 큰 진전을 이루게 되었다.
조직적인 측면에서 캐논은 한 때 사업부제의 병폐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미타라이 사장이 캐논에 부임할 즈음 캐논은 수익성 저하로 사상 처음으로 배당을 하지 못하는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환율 상승이라는 외부적 악재가 있었지만 캐논의 내부 조직 문제가 전반적인 경쟁력 저하를 일으킨 주범이었다.
당시 캐논의 사업부제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많은 권한이 사업부제로 이양됨에 따라 본사는 제 기능을 상실하고 사업부는 봉건 영주와 같이 자신들의 성장을 위해 전사적인 활동에 소극적인 상태였다. 실적이 저조한 사업부에는 인력이 남아 돌고 일부 실적이 좋은 사업부는 계속 사람을 증원한다거나 해외 생산 기지 건설에 있어서도 다른 사업부 공장을 활용하기 보다 새로운 공장을 짓는 현상이 빈번히 발생하였다. 이러한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미타라이 사장은 다수의 위원회 조직을 신설한 후 전체 최적화를 위한 실행 도구로 활용하였다. 생산, 개발, 물류, 재무에서 회사 규정에 이르기까지 신설된 8개의 전문 위원회는 ‘전체 최적’, ‘경영 스피드 제고’를 모토로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에 불을 지핀 결과 사업부간 벽을 허무는데 성공하였다.
Ⅲ. 캐논의 한계와 리스크
최근 들어 캐논도 주요 분야에서 일부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컬러 복합기 시장에서는 라인업 부족으로 인한 경쟁력 약화 현상이 우려되고 있다. 2005년에 리코나 제록스가 10여 종의 제품 라인 업을 추가한 반면, 캐논은 5종의 제품 밖에 출시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프린터 시장에서는 기술적 난이도가 높은 프린터 엔진 개발에 후발기업들이 잇달아 성공(삼성전자 1997년, 브라더스 공업 2007년 8월 등)하면서 진입 장벽이 서서히 낮아지고 있다. 동시에 사무기기의 네트워크화로 인해 복사기와 프린터기의 구분이 점차 모호해 지고 기업에서 원 스톱 대응을 요구함에 따라 복사기가 강한 기업은 프린터를, 프린터가 강한 기업은 복사기나 관련 부품을 아웃 소싱하는 흐름이 뚜렷지고 있다. 이에 따라 프린터 엔진의 외판 시장에 후발 기업들이 끼어들 공간이 계속 커지고 있다. 실제 제록스는 후지 제록스 이외에 코니카미놀타나 삼성전자로부터 엔진을 공급받고 있으며 대만 기업인 Aetas는 델에 납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린터 시장의 진입장벽 완화와 이에 따른 후발기업들의 성장 그리고 핵심 부품시장의 활성화가 캐논의 HP OEM 사업에 영향을 미칠 경우 그 영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캐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차세대 신사업인 SED(표면전도전자방출 디스플레이)사업에 대한 것이다. 1980년 대 이후 숙원사업이었던 SED는 과도한 투자비, 가격 경쟁력의 한계, Set업체와의 전략적 제휴의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성공에 대한 회의가 점차 커지고 있다. 캐논과 공동으로 SED TV를 개발해 온 도시바는 올 1월 특허 문제를 표면에 내걸어 공동 출자를 포기한 바 있으며 출시 시기 또한 불투명한 상황이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캐논이 과거의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SED의 경우 기술적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독자 노선과 폐쇄 전략으로 사업화의 시기를 놓쳐 성공을 담보하기 힘든 상황인데 과거 1990년 대 분루를 삼키며 철수한 디스플레이(FLC)사업과 정확히 같은 단계를 밟아 실패의 문턱을 넘어 서려 하고 있다. 이상을 살펴 볼 때, 캐논이 향후에도 지난 10년의 성공을 다시 지속될 수 있을지 확신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Ⅳ. 시사점
이상에서 지난 10년간 캐논이 뛰어난 성과를 지속할 수 있었던 원인과 당면하고 있는 주요 리스크를 살펴 보았다. 캐논의 사례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다음과 같다.
첫째, 포트폴리오의 다양성이 높은 수익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캐논의 경우 소수의 집중화된 사업구조를 바탕으로 뛰어난 수익을 창출함으로써 다른 일본의 종합전자기업들 보다 높은 시가 총액을 실현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의 경우 굉장히 폭넓은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지만 대표 사업을 제외한 많은 사업들은 의미 있는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포트폴리오는 여러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경영이나 자원의 집중성을 떨어질 경우 글로벌 경쟁에 취약해 질 가능성이 많다.
물론 GE처럼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면서도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하는 기업도 있지만 이는 GE가 그에 걸맞는 탁월한 경영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캐논의 과감한 선택과 집중, 그리고 집요한 실행은 우리 기업들에게 의미있는 대안을 제시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기술투자의 높은 효과를 들 수 있다. 캐논은 경쟁력 확보를 위해 R&D에 지속적인 투자를 해 왔고 이에 따른 과실을 향유하고 있다. 특히 컨버전스에 가장 적합한 영역을 중심으로 도메인을 잡고 이에 부합하는 연구를 통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는 사실은 장기적인 기술 투자와 선견력 있는 기술 전략이 효과적으로 결합될 경우 기술이라는 것이 기업 경쟁력 제고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다만 SED 사업에서 알 수 있듯이 기술력은 성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님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셋째, 쉬운 대안보다는 근본적인 대안에 대한 면밀한 고찰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캐논의 경우 원가혁신을 위해 생산지 이전을 가속화 했더라면 보다 쉬운 방법으로 원가를 줄일 수 있었겠지만 항구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 경제적 설계 능력 확보, 극한의 협업을 통한 제조 경쟁력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라인 중심의 혁신활동이나 생산지 이전이라는 카드를 너무 쉽게 뽑아 드는 경향이 있다. 겉으로 드러난 증상을 해결하는 데 급급하기 보다 핵심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캐논의 접근방식은 우리 기업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넷째, 장기 경영에 대한 중요성을 들 수 있다. 캐논은 성공하고 있는 셀 생산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지금부터 철저한 준비를 해 나가고 있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도 기술에 있어서도 장기적 관점을 취하고 있음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미래를 대비한 꾸준한 포석과 일관성 있는 행동은 오늘날의 캐논을 있게 한 주요한 원동력이다. 이 과정에서 CEO의 역할이 중요하다. CEO와 COO는 바로 이점에서 다른 역할을 요구 받고 있기 때문이다.
- LG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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