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 9. 02:10
많은 기업들이 비전을 수립하고 선포하지만, 액자 속의 구호로 잊혀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비전에 대한 잘못된 상식으로 인해 실행하기 어려운 비전으로 출발하기 때문이다. 기업 비전 수립에 대한 오해를 규명하고 올바른 수립방향을 제시한다.
중세 시대에 한 젊은이가 길을 가다가 열심히 돌을 다듬고 있는 석공을 만났다. 지치고 화난 듯한 석공에게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그저 돌을 다듬고 있는데 등이 휘어질 것 같은 고된 작업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여행을 계속하던 중 젊은이는 비슷한 돌을 다듬고 있는 또 다른 석공을 만나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자, 그 석공은 무표정한 얼굴로 집을 짓기 위해 돌을 가다듬고 있다고 대답했다. 젊은이는 계속 길을 가다가 행복하게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일하고 있는 세번째 석공을 만나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 석공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성당을 짓고 있습니다.”
미래에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하는 것, 즉 비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새해가 열리면서 많은 사람들은 각자 추구하고자 하는 장래상을 새롭게 그려보곤 한다. 곧 바뀌게 될 새 정부도 더 나은 국가 비전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연초부터 몇몇 기업들은 새롭게 비전을 선포하며, 힘찬 도약의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기업에게 비전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비전은 기업이 지향해야 할 방향성과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를 알려주는 나침반 구실을 한다. 둘째, 기업의 최고 자산이라 할 수 있는 우수한 인재 확보를 가능케 한다. 취업과 이직 관련 설문조사 결과들을 보면, 금전적 보상 다음으로 회사의 비전이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셋째, 비전이 공유되어 확신에 찬 인재들이 모인 조직일수록 활력이 넘쳐흐르고, 조직의 역량을 한데 결집시키는 데 유리하다. 1990년대초 존폐의 위기까지 내몰렸다가 이제는 18%이상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초우량기업으로 거듭난 아모레퍼시픽(舊 태평양)이 좋은 사례이다.‘미와 건강 분야의 강한 브랜드 기업’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구조조정과 브랜드 강화를 통해 기업 체질을 변화시켰다.
그러나 비전을 수립한 기업들이 모두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행 과정상의 어려움은 차치하고라도, 애초부터 실행하기 어려운 비전으로 출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비전의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비전 수립에 대한 잘못된 상식과 믿음에서 기인한다. 기업 비전 수립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규명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기업의 비전은 언제 수립되는가
비전은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거나 변화가 진행 중일 때, 조직구성원들을 일깨우고 조직의 방향을 재설정하거나 완전히 새롭게 변신할 수 있도록 하는데 꼭 필요하다. 이를 크게 사업과 조직의 측면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사업 측면에서는 사업 지역을 확대하던가, 신규 사업 분야에 진출하거나 비즈니스 모델에 변화를 모색할 때이다. <표>에서와 같이, 지난해는 글로벌 경영 확대를 강조하기 위한 우리 기업들의 새로운 비전 선포가 줄을 이었다. 조직 측면에서는 조직의 쇄신과 근본적인 체질 변화를 요구할 때 비전 수립이 제격이다. 새로운 CEO가 취임하거나 M&A로 조직이 통합된 이후 비전이 수립되는 경우이다. 위기에 빠진 닛산자동차를 구하기 위해 투입된 카를로스 곤이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새로운 비전을 세우는 것이었고, 이를 실행에 옮겨 회사를 성공적으로 회생시킬 수 있었다.
기업 비전 수립에 대한 오해
대부분의 기업이 비전을 수립하고 선포하지만, 실제로 현실화되는 비전보다는 액자 속에서 잊혀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수립된 비전이 실행으로 이어지기까지 여러 어려움들을 극복해야 하는 면도 있지만, 상당 부분이 비전 수립에 대한 다음과 같은 오해에서 비롯한다(<그림 1> 참조).
비전 스테이트먼트(Vision Statement) 작성이 핵심이다
‘비전(Vision)’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을 때,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회사 입구 또는 사무실 곳곳에 걸려 있는 비전 스테이트먼트 액자일 것이다. 비전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가 바로 비전 수립을 비전 스테이트먼트의 작성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실제로 기업의 비전 수립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보면, TFT(Task Force Team)의 멤버들 중에도 멋진 비전 스테이트먼트만 뽑으면 된다는 식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경우를 종종 발견하곤 한다. 이런 경우, 전체 프로젝트에서 필요 이상의 일정을 비전 스테이트먼트 작성에 할당하여 조직의 소중한 자원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
비전을 만든다는 것은 비전 스테이트먼트, 핵심가치, 핵심역량, 중장기 전략, 전략과제 등의 요소 간 유기적 연결체계의 수립과정이라 할 수 있다(<그림2> 참조). 비전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슬로건(Slogan)은 ‘Global Best & First’처럼, 비전 스테이트먼트를 최대한 함축한 구이다. 핵심가치(Core Value)는 ‘창조성’, ‘고객 우선’, ‘자율과 책임’처럼, 비전 달성을 위해 조직구성원들이 가져야 하는 행동 기준이 되는 주요 원칙이다. 핵심역량(Core Competence)은 ‘신사업 창출’, ‘프로페셔널 전문성’, ‘리스크 관리’처럼, 비전 달성을 위해 조직이 이미 보유하고 있거나 향후 반드시 갖추어야 할, 차별화된 경쟁우위의 원천으로 삼을 역량을 의미한다. 이렇게 표현된 비전 문구들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사업목표와 사업포트폴리오를 설정하여 중장기 사업전략과 전략과제를 도출하는 것까지 비전 수립에 모두 포함된다.
‘고객에게 헌신, 전문성, 기술적 혁신을 통해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으로...(중략) 베스트 플레이어가 되는 것’에서와 같이, 비전 스테이트먼트는 핵심가치, 제공가치, 전략목표 등의 요소들을 포괄하여 문장화한 요약본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 스테이트먼트 자체에만 신경쓰기 보다는 그것이 포괄하는 나머지 요소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고민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 고민의 깊이만큼 미래 환경에 대한 메가트렌드 및 이에 대응하기 위한 사업전개방향 등이 바르게 도출될 것이다. 또 그만큼 비전 스테이트먼트는 잘 짜인 구조로 실질적인 의미를 담아내기가 수월해진다.
비전은 웅대하고 거창해야만 한다
초등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선생님, 의사, 법관, 대통령, 과학자, 스포츠선수, 연예인 등 대체로 자기가 되고 싶은 꿈과 희망을 자유롭게 표현할 것이다. 비전은 현재 존재하지 않지만, 미래에 되고 싶은 장래상(What we want to be)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신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희망하는 것만을 강조하기 쉽다. 비전 스테이트먼트를 비전의 핵심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만큼이나 비전은 본래 웅대하고 거창한 것이어서 폼나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비전은 그저 미래에 되고 싶은 것에 대한 자기만의 선언이나 예언이 아니다. 비전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만들어지고, 동기 유발의 중요한 수단일지라도,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비전 목표는 허상에 불과할 뿐이다. 오히려 조직원들은 지나친 목표에 움츠려 들어 아예 시도조차도 안 하게 된다. 내부 구성원에게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공개된 비전은, 해당 기업과 이해관계자인 주주, 협력업체, 고객 등과의 암묵적인 약속이기도 하다. 만약 지키지도 못할 미래상만 남발해놓고 그 달성 여부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그 기업에 대한 신뢰성 상실은 물론이고 최근 강조되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측면에서도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 기업들의 비전을 살펴보면, 내수 중심의 중소기업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 기업’, ‘초우량 기업’, ‘초일류 기업’이 되겠다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해당 산업의 성숙도나 자사의 현재 역량 수준, 실현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모두들 세계 Top기업이 되겠다고 외쳐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세계 최고가 되겠다던 수많은 기업들이 IMF위기를 견뎌내지 못하고 줄줄이 사라지고 말았다. 최종 지향점은 물론 세계 최고일 수 있지만, 오히려 자신의 현실적 조건에 적합하고 실현 가능한 비전을 먼저 세워 차근차근 실행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반면, 유수 선진 기업은 소박하지만 내실 있는 비전을 설정한다. 연간 판매량 기준으로 GM을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로 부상한 도요타가 지난해 제시한 ‘글로벌 비전 2020’은 눈길을 끌만 하다. 이 초일류 기업의 비전에는 거창한 목표가 없다. 대신에 와타나베 사장이 밝힌 핵심 지향점은 ‘동네 최고의 기업’이 되고, ‘가벼운 차’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이가 아프면 세계에서 가장 큰 치과를 찾기보다는 자기 동네에서 잘하기로 소문난 치과를 찾듯이, 전세계 어느 도시에서든 고객이 차에 관한 한 도요타를 가장 먼저 찾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향후 10년간 3만여 개에 이르는 자동차 부품의 무게를 조금씩 줄여, 지금보다 10% 가벼운 차로 연료효율을 3~4% 높이겠다는 것이다. 다소 소박한 이 비전 목표를 달성한다면 역설적으로 ‘지구촌 최고의 기업’, ‘에너지·친환경 선도’라는 웅대한 목표를 달성하게 되는 셈이다.
비전은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미래의 목표와 현실을 연결하는 전략적 구상이다. 도전적이지만, 언젠가는 도달 가능한 목표를 필요 역량 등 현실적 조건을 고려하여 단계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성적인 비전을 먼저 설정하고 중간적인 목표로써 정량적인 비전을 함께 설정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정량적인 목표에도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도 사업기반이 취약한 기업이 비전 목표로 단번에 ‘글로벌 초일류 기업’을 지향하기 보다는 ‘국내 Top3 진입’ → ‘국내 No.1, 아시아 Top3’ → ‘글로벌 Top3 진입’ 식의 점진적 발전상을 세우는 것이 낫다.
비전은 남의 것과 무조건 달라야 한다
글로벌, 미래, 창조, 선도, 가치 등은 기업들의 비전 스테이트먼트에서 단골 메뉴처럼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기업 비전의 표현들이 다소 유사해 보이는 것은 온갖 매력적인 단어들을 끌어 모아놓은 데서 기인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새로운 비전 수립을 담당하는 실무자나 최종 승인을 내리게 될 경영진 모두, 우리 비전은 뭔가 남보다는 달라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게 된다. 비전이 남의 것과는 무조건 달라야 한다는 오해로부터 급기야 문구의 차별성을 위해 자사의 전략 방향과 동떨어지거나 애매모호한 비전이 나오게 된다. 아니면 경쟁사보다 무조건 높은 수치 목표를 부각시키는 경우까지 있다.
비전은 화려한 문구나 허황된 목표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아니다. 화려한 문구가 필요했다면, 카피라이터가 비전 작업에 더 적합할 것이고, 검증되지 않은 목표수치라면 침팬지가 다트 게임에서 찍은 숫자를 써도 무방할 것이다. 설령 비전 문구나 최종 지향 목표가 유사하더라도 비전이 도출된 Context와 비전을 실행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비전의 본질은 단순히 보여지는 결과물보다는 그것이 나오게 된 배경이나 향후 전개될 방식을 명확하게 간파해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글로벌’이라는 단어를 누구나 사용할 수는 있지만, 기업마다 글로벌 사업의 동인은 다를 것이고, 사업 수행방식이나 필요 역량도 각자의 상황에 차이가 있다.
비전 수립의 겉모습은 남의 것을 따라 할 수 있지만, 비전 수립의 과정에서 나온 전략과 실행 과제는 자기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 전략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최선의 대안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과 이에 답하기 위한 지식과 정보의 수집·축적 과정에서 비전의 구성요소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새로운 비전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사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깊은 반성을 하게 되는 것도 역사적 교훈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가장 올바른 미래의 방향을 결정하기 위함이다.
4.비전은 내부 구성원의 동의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최고경영층이나 외부컨설팅회사의 일방적 주도로 만들어진 비전을 실행하는데 내부 구성원들의 힘을 모으기란 쉽지 않다. 비전의 성패는 비전의 내용이나 표현 자체보다는 그것이 얼마나 내부 구성원들의 마음 속에 공유되고 내면화되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참여형 비전’이 강조되면서 비전 수립 과정에서 전 조직원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고 있다(<그림 3>참조). 환경 전망 및 현상 분석 단계에서 내부 구성원들에게 서베이를 통해 자사의 미래상, 역량이나 조직문화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다. 전사 이슈를 도출하고 비전 문구를 설정할 때는 워크샵이나 핵심 그룹 인터뷰(Focused Group Interview; FGI), 비전 경연대회나 투표 등을 통해 조직원들의 관심과 동참을 독려할 수 있다. 비전 실행을 위한 전략과제 및 액션플랜을 작성할 때도 전사가 참여하는 워크샵을 통해 합의와 공유를 이끌어낸다.
그러나 참여형 비전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비전 수립에서 내부 구성원의 동의를 절대적으로 우선시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심지어 조직원의 다수결 의견으로 비전이 결정된다고 믿는 경우도 있다. 내부 구성원의 공감대 형성에 비전 수립의 중심축을 과도하게 놓을 경우, 소극적이고 현실안주적인 시각으로 기업의 운명을 결정짓는 위험성이 있다. 바람직한 비전은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면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혁신적 시각은 기존의 조직 내지 업무 방식 등에 대대적인 도전과 변신을 요구하기 때문에 내부 구성원들이 저항하게 마련이다.
전략적 비전은 객관적인 분석에 기초하여 미래 사업환경을 전망하고 내부역량을 고려한 기업의 대응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전 수립 시, 최고경영층의 경영철학과 의지가 반영되는 Top-down방식과 조직 구성원들의 꿈과 열정, 요구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Bottom-up방식이 병행되어야 한다.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지금껏 보고 들은 경험 내에 한정될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불확실한 미래의 그림을 그리는 비전 수립 작업에 산업전문가, 애널리스트, 고객, 경쟁사, 협력업체 등 외부로부터의 자사에 대한 시각과 쓴소리까지 포함되어야 하는 이유다. 실제로 외부 인터뷰를 해보면 내부에서 바라보는 모습과는 정반대이거나 전혀 생각하지 못한 자사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내외부의 다양한 의견과 시각을 총망라하고 종합했을 때 올바른 미래 방향성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내부 구성원들보다 최고경영층의 의지, 고객의 니즈 등이 더 적극 반영된 혁신적인 사업방식, 전략방향이 도출될 수 있다. 모든 구성원들의 동의를 처음에는 얻지 못하더라도 그 방향성이 객관적 증거와 사업가적 통찰력으로 판단했을 때 옳다면, 비전 선포 이후라도 최고경영층은 조직원들을 적극 설득하면서 공감대를 확산시켜나갈 수 있다.
5.비전은 영구불변적이다
비전을 한번 수립하고 나면 그만이라는 식의 오해를 하기 쉽다. 이러한 오해는 미션(Mission)과 비전을 혼동하는 데서 생긴다. 미션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기업의 궁극적인 존재이유(Why we exist)를 말하는데, 통상 비전에 대한 상위개념으로 설정한다. 기업에 따라 비전을 상위개념으로 강조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비전을 영구불변적인 것으로 잘못 이해할 수 있다. ‘Built to Last’에서 짐 콜린스가 비전기업(Visionary Company)을 논할 때 사용했던 비전의 정의도 미션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기업이념과도 종종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기업이념은 사회에 대한 기업의 책임, 목적, 사명, 경영자세 등을 명확히 표명한 것으로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면, 비전은 기업이념을 투영해 기업이 나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으로써, 10년 정도를 단위로 바뀌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엄청난 속도로 변화해가는 환경 속에서 10년이라는 세월은 예측하기도 힘들고, 상당 기간 효과적이었던 비전도 시대적 상황이 변하면 그 의미가 퇴색할 수 밖에 없다. 이를 반영하듯 5년 단위로 중장기전략과 함께 비전을 재정비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중대한 환경 변화뿐만 아니라, 기존 비전에서 설정된 목표를 조기에 달성한 경우에도 비전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올해 초 새롭게 비전을 선포한 국내 모 건설사의 경우, 지난해 이미 비전 2010의 목표를 초과 달성함으로써 새로운 도약을 위한 목표 수정이 요구되었다.
일단 수립된 비전의 실현 가능성을 높여주기 위해선, 비전을 5년 단위의 중장기 전략, 매년 경영방침 및 중점 추진 과제로 Break-down하여 계획-실행-평가-재실행하는 프로세스를 가져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측정하지 않으면 관리할 수 없으며, 지속적인 모니터링 없이는 측정 역시 불가능하다.”라는 피터 드러커의 격언이 있다. 기업 비전이 구체적인 행동이나 성과로 연결되고 있는지 측정하고 확인할 수 있는 Milestone 내지 구체적인 성과지표가 있어야 한다. Metro Bank, Mobil, 캐논, BMW, LG필립스LCD 같은 기업들은 일찍이 비전이 구체적인 행동과 성과로 연계되도록 BSC(Balanced Scorecard)의 개념을 활용한 성과지표를 관리하고 있다.
실행을 염두해 둔 비전 수립 필요
제아무리 계획이 완벽하다 하더라도 실행 과정상에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하지만 계획이 실행에 들어가기도 전에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면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한 순간의 이벤트성 선언이나 구호로만 끝나지 않고, 살아 숨쉬는 기업 비전이 되기 위해서는 비전 수립 과정에서부터 실행력이 고려되고 강조되어야 한다.
- LG Business Insight 970호
중세 시대에 한 젊은이가 길을 가다가 열심히 돌을 다듬고 있는 석공을 만났다. 지치고 화난 듯한 석공에게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그저 돌을 다듬고 있는데 등이 휘어질 것 같은 고된 작업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여행을 계속하던 중 젊은이는 비슷한 돌을 다듬고 있는 또 다른 석공을 만나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자, 그 석공은 무표정한 얼굴로 집을 짓기 위해 돌을 가다듬고 있다고 대답했다. 젊은이는 계속 길을 가다가 행복하게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일하고 있는 세번째 석공을 만나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 석공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성당을 짓고 있습니다.”
미래에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하는 것, 즉 비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새해가 열리면서 많은 사람들은 각자 추구하고자 하는 장래상을 새롭게 그려보곤 한다. 곧 바뀌게 될 새 정부도 더 나은 국가 비전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연초부터 몇몇 기업들은 새롭게 비전을 선포하며, 힘찬 도약의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기업에게 비전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비전은 기업이 지향해야 할 방향성과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를 알려주는 나침반 구실을 한다. 둘째, 기업의 최고 자산이라 할 수 있는 우수한 인재 확보를 가능케 한다. 취업과 이직 관련 설문조사 결과들을 보면, 금전적 보상 다음으로 회사의 비전이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셋째, 비전이 공유되어 확신에 찬 인재들이 모인 조직일수록 활력이 넘쳐흐르고, 조직의 역량을 한데 결집시키는 데 유리하다. 1990년대초 존폐의 위기까지 내몰렸다가 이제는 18%이상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초우량기업으로 거듭난 아모레퍼시픽(舊 태평양)이 좋은 사례이다.‘미와 건강 분야의 강한 브랜드 기업’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구조조정과 브랜드 강화를 통해 기업 체질을 변화시켰다.
그러나 비전을 수립한 기업들이 모두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행 과정상의 어려움은 차치하고라도, 애초부터 실행하기 어려운 비전으로 출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비전의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비전 수립에 대한 잘못된 상식과 믿음에서 기인한다. 기업 비전 수립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규명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기업의 비전은 언제 수립되는가
비전은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거나 변화가 진행 중일 때, 조직구성원들을 일깨우고 조직의 방향을 재설정하거나 완전히 새롭게 변신할 수 있도록 하는데 꼭 필요하다. 이를 크게 사업과 조직의 측면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사업 측면에서는 사업 지역을 확대하던가, 신규 사업 분야에 진출하거나 비즈니스 모델에 변화를 모색할 때이다. <표>에서와 같이, 지난해는 글로벌 경영 확대를 강조하기 위한 우리 기업들의 새로운 비전 선포가 줄을 이었다. 조직 측면에서는 조직의 쇄신과 근본적인 체질 변화를 요구할 때 비전 수립이 제격이다. 새로운 CEO가 취임하거나 M&A로 조직이 통합된 이후 비전이 수립되는 경우이다. 위기에 빠진 닛산자동차를 구하기 위해 투입된 카를로스 곤이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새로운 비전을 세우는 것이었고, 이를 실행에 옮겨 회사를 성공적으로 회생시킬 수 있었다.
기업 비전 수립에 대한 오해
대부분의 기업이 비전을 수립하고 선포하지만, 실제로 현실화되는 비전보다는 액자 속에서 잊혀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수립된 비전이 실행으로 이어지기까지 여러 어려움들을 극복해야 하는 면도 있지만, 상당 부분이 비전 수립에 대한 다음과 같은 오해에서 비롯한다(<그림 1> 참조).
비전 스테이트먼트(Vision Statement) 작성이 핵심이다
‘비전(Vision)’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을 때,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회사 입구 또는 사무실 곳곳에 걸려 있는 비전 스테이트먼트 액자일 것이다. 비전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가 바로 비전 수립을 비전 스테이트먼트의 작성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실제로 기업의 비전 수립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보면, TFT(Task Force Team)의 멤버들 중에도 멋진 비전 스테이트먼트만 뽑으면 된다는 식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경우를 종종 발견하곤 한다. 이런 경우, 전체 프로젝트에서 필요 이상의 일정을 비전 스테이트먼트 작성에 할당하여 조직의 소중한 자원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
비전을 만든다는 것은 비전 스테이트먼트, 핵심가치, 핵심역량, 중장기 전략, 전략과제 등의 요소 간 유기적 연결체계의 수립과정이라 할 수 있다(<그림2> 참조). 비전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슬로건(Slogan)은 ‘Global Best & First’처럼, 비전 스테이트먼트를 최대한 함축한 구이다. 핵심가치(Core Value)는 ‘창조성’, ‘고객 우선’, ‘자율과 책임’처럼, 비전 달성을 위해 조직구성원들이 가져야 하는 행동 기준이 되는 주요 원칙이다. 핵심역량(Core Competence)은 ‘신사업 창출’, ‘프로페셔널 전문성’, ‘리스크 관리’처럼, 비전 달성을 위해 조직이 이미 보유하고 있거나 향후 반드시 갖추어야 할, 차별화된 경쟁우위의 원천으로 삼을 역량을 의미한다. 이렇게 표현된 비전 문구들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사업목표와 사업포트폴리오를 설정하여 중장기 사업전략과 전략과제를 도출하는 것까지 비전 수립에 모두 포함된다.
‘고객에게 헌신, 전문성, 기술적 혁신을 통해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으로...(중략) 베스트 플레이어가 되는 것’에서와 같이, 비전 스테이트먼트는 핵심가치, 제공가치, 전략목표 등의 요소들을 포괄하여 문장화한 요약본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 스테이트먼트 자체에만 신경쓰기 보다는 그것이 포괄하는 나머지 요소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고민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 고민의 깊이만큼 미래 환경에 대한 메가트렌드 및 이에 대응하기 위한 사업전개방향 등이 바르게 도출될 것이다. 또 그만큼 비전 스테이트먼트는 잘 짜인 구조로 실질적인 의미를 담아내기가 수월해진다.
비전은 웅대하고 거창해야만 한다
초등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선생님, 의사, 법관, 대통령, 과학자, 스포츠선수, 연예인 등 대체로 자기가 되고 싶은 꿈과 희망을 자유롭게 표현할 것이다. 비전은 현재 존재하지 않지만, 미래에 되고 싶은 장래상(What we want to be)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신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희망하는 것만을 강조하기 쉽다. 비전 스테이트먼트를 비전의 핵심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만큼이나 비전은 본래 웅대하고 거창한 것이어서 폼나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비전은 그저 미래에 되고 싶은 것에 대한 자기만의 선언이나 예언이 아니다. 비전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만들어지고, 동기 유발의 중요한 수단일지라도,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비전 목표는 허상에 불과할 뿐이다. 오히려 조직원들은 지나친 목표에 움츠려 들어 아예 시도조차도 안 하게 된다. 내부 구성원에게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공개된 비전은, 해당 기업과 이해관계자인 주주, 협력업체, 고객 등과의 암묵적인 약속이기도 하다. 만약 지키지도 못할 미래상만 남발해놓고 그 달성 여부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그 기업에 대한 신뢰성 상실은 물론이고 최근 강조되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측면에서도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 기업들의 비전을 살펴보면, 내수 중심의 중소기업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 기업’, ‘초우량 기업’, ‘초일류 기업’이 되겠다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해당 산업의 성숙도나 자사의 현재 역량 수준, 실현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모두들 세계 Top기업이 되겠다고 외쳐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세계 최고가 되겠다던 수많은 기업들이 IMF위기를 견뎌내지 못하고 줄줄이 사라지고 말았다. 최종 지향점은 물론 세계 최고일 수 있지만, 오히려 자신의 현실적 조건에 적합하고 실현 가능한 비전을 먼저 세워 차근차근 실행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반면, 유수 선진 기업은 소박하지만 내실 있는 비전을 설정한다. 연간 판매량 기준으로 GM을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로 부상한 도요타가 지난해 제시한 ‘글로벌 비전 2020’은 눈길을 끌만 하다. 이 초일류 기업의 비전에는 거창한 목표가 없다. 대신에 와타나베 사장이 밝힌 핵심 지향점은 ‘동네 최고의 기업’이 되고, ‘가벼운 차’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이가 아프면 세계에서 가장 큰 치과를 찾기보다는 자기 동네에서 잘하기로 소문난 치과를 찾듯이, 전세계 어느 도시에서든 고객이 차에 관한 한 도요타를 가장 먼저 찾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향후 10년간 3만여 개에 이르는 자동차 부품의 무게를 조금씩 줄여, 지금보다 10% 가벼운 차로 연료효율을 3~4% 높이겠다는 것이다. 다소 소박한 이 비전 목표를 달성한다면 역설적으로 ‘지구촌 최고의 기업’, ‘에너지·친환경 선도’라는 웅대한 목표를 달성하게 되는 셈이다.
비전은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미래의 목표와 현실을 연결하는 전략적 구상이다. 도전적이지만, 언젠가는 도달 가능한 목표를 필요 역량 등 현실적 조건을 고려하여 단계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성적인 비전을 먼저 설정하고 중간적인 목표로써 정량적인 비전을 함께 설정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정량적인 목표에도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도 사업기반이 취약한 기업이 비전 목표로 단번에 ‘글로벌 초일류 기업’을 지향하기 보다는 ‘국내 Top3 진입’ → ‘국내 No.1, 아시아 Top3’ → ‘글로벌 Top3 진입’ 식의 점진적 발전상을 세우는 것이 낫다.
비전은 남의 것과 무조건 달라야 한다
글로벌, 미래, 창조, 선도, 가치 등은 기업들의 비전 스테이트먼트에서 단골 메뉴처럼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기업 비전의 표현들이 다소 유사해 보이는 것은 온갖 매력적인 단어들을 끌어 모아놓은 데서 기인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새로운 비전 수립을 담당하는 실무자나 최종 승인을 내리게 될 경영진 모두, 우리 비전은 뭔가 남보다는 달라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게 된다. 비전이 남의 것과는 무조건 달라야 한다는 오해로부터 급기야 문구의 차별성을 위해 자사의 전략 방향과 동떨어지거나 애매모호한 비전이 나오게 된다. 아니면 경쟁사보다 무조건 높은 수치 목표를 부각시키는 경우까지 있다.
비전은 화려한 문구나 허황된 목표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아니다. 화려한 문구가 필요했다면, 카피라이터가 비전 작업에 더 적합할 것이고, 검증되지 않은 목표수치라면 침팬지가 다트 게임에서 찍은 숫자를 써도 무방할 것이다. 설령 비전 문구나 최종 지향 목표가 유사하더라도 비전이 도출된 Context와 비전을 실행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비전의 본질은 단순히 보여지는 결과물보다는 그것이 나오게 된 배경이나 향후 전개될 방식을 명확하게 간파해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글로벌’이라는 단어를 누구나 사용할 수는 있지만, 기업마다 글로벌 사업의 동인은 다를 것이고, 사업 수행방식이나 필요 역량도 각자의 상황에 차이가 있다.
비전 수립의 겉모습은 남의 것을 따라 할 수 있지만, 비전 수립의 과정에서 나온 전략과 실행 과제는 자기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 전략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최선의 대안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과 이에 답하기 위한 지식과 정보의 수집·축적 과정에서 비전의 구성요소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새로운 비전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사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깊은 반성을 하게 되는 것도 역사적 교훈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가장 올바른 미래의 방향을 결정하기 위함이다.
4.비전은 내부 구성원의 동의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최고경영층이나 외부컨설팅회사의 일방적 주도로 만들어진 비전을 실행하는데 내부 구성원들의 힘을 모으기란 쉽지 않다. 비전의 성패는 비전의 내용이나 표현 자체보다는 그것이 얼마나 내부 구성원들의 마음 속에 공유되고 내면화되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참여형 비전’이 강조되면서 비전 수립 과정에서 전 조직원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고 있다(<그림 3>참조). 환경 전망 및 현상 분석 단계에서 내부 구성원들에게 서베이를 통해 자사의 미래상, 역량이나 조직문화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다. 전사 이슈를 도출하고 비전 문구를 설정할 때는 워크샵이나 핵심 그룹 인터뷰(Focused Group Interview; FGI), 비전 경연대회나 투표 등을 통해 조직원들의 관심과 동참을 독려할 수 있다. 비전 실행을 위한 전략과제 및 액션플랜을 작성할 때도 전사가 참여하는 워크샵을 통해 합의와 공유를 이끌어낸다.
그러나 참여형 비전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비전 수립에서 내부 구성원의 동의를 절대적으로 우선시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심지어 조직원의 다수결 의견으로 비전이 결정된다고 믿는 경우도 있다. 내부 구성원의 공감대 형성에 비전 수립의 중심축을 과도하게 놓을 경우, 소극적이고 현실안주적인 시각으로 기업의 운명을 결정짓는 위험성이 있다. 바람직한 비전은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면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혁신적 시각은 기존의 조직 내지 업무 방식 등에 대대적인 도전과 변신을 요구하기 때문에 내부 구성원들이 저항하게 마련이다.
전략적 비전은 객관적인 분석에 기초하여 미래 사업환경을 전망하고 내부역량을 고려한 기업의 대응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전 수립 시, 최고경영층의 경영철학과 의지가 반영되는 Top-down방식과 조직 구성원들의 꿈과 열정, 요구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Bottom-up방식이 병행되어야 한다.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지금껏 보고 들은 경험 내에 한정될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불확실한 미래의 그림을 그리는 비전 수립 작업에 산업전문가, 애널리스트, 고객, 경쟁사, 협력업체 등 외부로부터의 자사에 대한 시각과 쓴소리까지 포함되어야 하는 이유다. 실제로 외부 인터뷰를 해보면 내부에서 바라보는 모습과는 정반대이거나 전혀 생각하지 못한 자사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내외부의 다양한 의견과 시각을 총망라하고 종합했을 때 올바른 미래 방향성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내부 구성원들보다 최고경영층의 의지, 고객의 니즈 등이 더 적극 반영된 혁신적인 사업방식, 전략방향이 도출될 수 있다. 모든 구성원들의 동의를 처음에는 얻지 못하더라도 그 방향성이 객관적 증거와 사업가적 통찰력으로 판단했을 때 옳다면, 비전 선포 이후라도 최고경영층은 조직원들을 적극 설득하면서 공감대를 확산시켜나갈 수 있다.
5.비전은 영구불변적이다
비전을 한번 수립하고 나면 그만이라는 식의 오해를 하기 쉽다. 이러한 오해는 미션(Mission)과 비전을 혼동하는 데서 생긴다. 미션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기업의 궁극적인 존재이유(Why we exist)를 말하는데, 통상 비전에 대한 상위개념으로 설정한다. 기업에 따라 비전을 상위개념으로 강조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비전을 영구불변적인 것으로 잘못 이해할 수 있다. ‘Built to Last’에서 짐 콜린스가 비전기업(Visionary Company)을 논할 때 사용했던 비전의 정의도 미션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기업이념과도 종종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기업이념은 사회에 대한 기업의 책임, 목적, 사명, 경영자세 등을 명확히 표명한 것으로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면, 비전은 기업이념을 투영해 기업이 나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으로써, 10년 정도를 단위로 바뀌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엄청난 속도로 변화해가는 환경 속에서 10년이라는 세월은 예측하기도 힘들고, 상당 기간 효과적이었던 비전도 시대적 상황이 변하면 그 의미가 퇴색할 수 밖에 없다. 이를 반영하듯 5년 단위로 중장기전략과 함께 비전을 재정비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중대한 환경 변화뿐만 아니라, 기존 비전에서 설정된 목표를 조기에 달성한 경우에도 비전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올해 초 새롭게 비전을 선포한 국내 모 건설사의 경우, 지난해 이미 비전 2010의 목표를 초과 달성함으로써 새로운 도약을 위한 목표 수정이 요구되었다.
일단 수립된 비전의 실현 가능성을 높여주기 위해선, 비전을 5년 단위의 중장기 전략, 매년 경영방침 및 중점 추진 과제로 Break-down하여 계획-실행-평가-재실행하는 프로세스를 가져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측정하지 않으면 관리할 수 없으며, 지속적인 모니터링 없이는 측정 역시 불가능하다.”라는 피터 드러커의 격언이 있다. 기업 비전이 구체적인 행동이나 성과로 연결되고 있는지 측정하고 확인할 수 있는 Milestone 내지 구체적인 성과지표가 있어야 한다. Metro Bank, Mobil, 캐논, BMW, LG필립스LCD 같은 기업들은 일찍이 비전이 구체적인 행동과 성과로 연계되도록 BSC(Balanced Scorecard)의 개념을 활용한 성과지표를 관리하고 있다.
실행을 염두해 둔 비전 수립 필요
제아무리 계획이 완벽하다 하더라도 실행 과정상에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하지만 계획이 실행에 들어가기도 전에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면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한 순간의 이벤트성 선언이나 구호로만 끝나지 않고, 살아 숨쉬는 기업 비전이 되기 위해서는 비전 수립 과정에서부터 실행력이 고려되고 강조되어야 한다.
- LG Business Insight 9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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