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1. 11:24
불황기에는 마케팅 조사비가 비용 절감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마케팅 조사의 축소는 장기적으로 마케팅 역량 약화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럴 때일수록 비용을 절감하면서 조사의 효과는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기업들은 마케팅 조사 결과를 이용하는 마케팅 담당자의 고객 인사이트를 높임으로써, 데이터 자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마케팅 비용을 절감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객 인사이트를 높이기 위해서는 마케팅 담당자가 일부 조사를 직접 수행하는 등 마케팅 조사 대상자에 더 가까이 가야 한다. 전통적인 설문 조사를 탈피하여 근접 관찰 등을 통해 새로운 각도의 고객 정보를 수집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고객이 갖고 있는 다양한 존재 특성을 분석함으로써 새로운 인사이트를 도출할 수도 있다. 한편, 마케팅 조사 데이터를 거래 데이터 등과 결합하면 파생 데이터가 생성되는데, 이를 통해 좀 더 깊이 있는 분석을 할 수도 있다.
이제는 마케팅 조사에서도 혁신을 생각할 때다. 특히, 조사 방법의 변화와 함께 조사 이용자의 태도와 행동도 바꿈으로써 비용을 줄이면서 조사의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Ⅰ. 마케팅 조사의 고민
전세계적인 불황이 본격화되면서 기업의 마케팅 업무에도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불황기에 어렵지 않은 기업이 없겠으나, 마케팅 기능이 강한 기업이 느끼는 고통의 강도는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마케팅 업무의 비중이 큰 회사들이 속한 업종들은 생존을 위한 기본 소비가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소비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불황에는 반드시 필요한 소비보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소비를 우선적으로 줄이기 마련이다. 예컨대 여행, 패션, 외식 같은 카테고리의 상품들은 불황기에 소비를 줄이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불황의 고통 속에서 경영자들은 마케팅을 활성화하여 매출을 늘이려는 노력과 함께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자 고심하게 된다. 그런데, 매출을 늘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손익 개선을 위해 쉽게 손이 가는 방법은 결국 비용 절감이다.
마케팅 비용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항목 중에서도 절감했을 때 단기적으로 부작용이 적은 마케팅 조사비가 비용 절감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판매 채널에 대한 리베이트와 같이 줄였을 때 매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업 관련 직접 비용들은 쉽게 손대지 못한다. 광고비도 마케팅 간접비지만 소비자를 직접 자극하는 효과가 있어 쉽게 줄이기는 어렵다. 또, 불황기에는 미디어 비용이 낮아지는 경향도 있어, 물량을 줄이지 않고도 광고 비용을 어느 정도 절감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마케팅 조사와 같은 간접 비용은 마케팅 투자라고도 할 수 있다. 불황이라고 해서 투자를 줄이면, 호황으로 전환되었을 때 마케팅 역량 약화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결국,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마케팅 역량 약화라는 부작용은 최소화하면서 마케팅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이다. 본고에서는 여러 유형의 마케팅 활동 중 마케팅 조사를 저비용 고효율화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1. Armchair Marketer에서 탈피하라
인류학자라고 하면 미개 부족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행동을 연구하는 사람을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이렇게 현장에서 발로 뛰지 않고 연구실에 앉아서 스스로의 추측과 짐작에 의존하여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들을 안락의자 인류학자(Armchair Anthropologist)라고 한다.
19세기 말 당대의 저명한 인류학자였던 프레이저(James Fraser)는 한번도 현장에 나가지 않았다. 탐험가나 선교사로부터 얻은 단편적인 자료와 이야기만을 바탕으로 인류학을 연구하고 황금 가지(Golden Bough)라는 유명한 책을 남겼다. 이 당시에는 이러한 방법이 크게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리놉스키(Malinowski)가 1차 세계 대전 당시 정치적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파푸아 뉴기니 원주민들과 함께 수년간 생활하게 되면서 인류학 연구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그곳에 체류하던 기간 중 초기에 그는 인류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원주민과 어울리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외로움에 지친 그는 현지 언어를 배우고 원주민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현상을 보게 되었고, 또 그 현상의 이면을 이해하게 되었다.
인류학 분야에 안락의자 인류학자가 있다면, 기업에는 자리에 앉아서 고객을 이해하고 계획을 세우는 책상물림 마케터들이 있다. 이들은 고객에게 다가가서 고객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하기보다 조사 업체에서 전해 준 데이터 자체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철저히 데이터에 기초해 계획을 세워야 제대로 된 마케팅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사 기획 과정에서 질문 작성, 현장 자료 수집 과정에 걸쳐 데이터에는 수많은 오류가 들어갈 수 있다. 또, 데이터가 정확하더라도 더 중요한 것은 그 데이터의 이면에 있는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다.
물론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일대일 심층 인터뷰(In-depth Interview)나 그룹 인터뷰(Focus Group Interview)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더라도 직접 수행하거나 그 과정을 면밀히 관찰하기보다는 정리된 인터뷰 결과만을 참고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비용을 들여 집단 인터뷰를 할 때도 바쁘다는 이유로 인터뷰 현장에 가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녹화된 영상을 보면 된다고 변명하지만, 추후에 녹화 영상을 틀어 보는 경우는 흔치 않다.
2. 아는 만큼 보인다
똑 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아는 만큼 보인다. 같은 조사 결과를 놓고도 마케팅 담당자의 지식과 논리에 따라 해석은 크게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마케팅 조사는 데이터에만 초점을 맞추고 분석자의, 즉 마케팅 담당자의 해석력을 높이는 데에는 소홀했다.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은 낮은 상황에서 마케팅 조사에서 많은 내용을 끌어내려고 하면 두 가지 측면에서 부작용이 나타난다.
하나는 조사 내용이 지나치게 어려워지고 복잡해지는 것이다. 고객 스스로도 잘 모르는 내용까지 질문하게 된다. 또, 같은 사안을 여러 각도에서 질문함으로써 질문이 복잡해지고, 조사의 양도 많아진다. 이렇게 되면 조사 대상이 되는 고객도 힘들고 조사를 수행하는 담당자도 힘들어진다. 결국 부실 조사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마케팅 담당자들 중에는 난해한 조사 계획을 내놓으면서, 조사가 어려워도 전문 업체를 압박하면 다 해가지고 온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마케팅 조사는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이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무리한 조사는 부실하거나 왜곡된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고객이 답변하기 힘든 조사를 기획한다는 사실 자체가 마케팅 담당자가 고객을 제대로 모르는 책상물림 마케터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조사를 해석하는 능력이 낮은 데서 오는 다른 하나의 부작용은 비슷한 혹은 동일한 조사를 반복하는 것이다. 또, 조사의 표본수를 과도하게 늘리기도 한다. 조사 결과의 원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자신이 이해한 것에 대해 스스로 확신한다면 굳이 조사를 자주 할 필요가 없다. 세밀한 트래킹(Tracking) 조사가 아니라면 표본수도 굳이 크게 가져갈 필요가 없다.
대규모 표본의 잦은 조사는 결국 마케팅 비용의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요즘 같은 불황에서 더 경계해야 할 일이다.
한편, 조사 데이터의 분량이 많아지면 과다 데이터로 인한 정신적 소화 불량도 조심해야 할 포인트다. 이는 특히 정기적 트래킹 조사에서 흔히 나타나는 문제인데, 조사 결과를 형식적으로 보고하기만 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심각히 고민하지 않는 것이다. 업무량이 많아서 고민을 못할 수도 있지만, 유사한 데이터가 반복적으로 쌓이게 되면 새로 수집된 데이터에서 새로움도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배가 부른 상태에서 맛을 느끼기 어려운 것과 유사하다.
또, 자주 조사를 하다 보면, 미세한 조사 오류와 고객의 실질적 변화를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단기간 내에 고객의 큰 변화가 있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변화의 양이 오차 범위 안에 놓이게 된다. 이 경우 마케터들은 차이가 실질적인지 오차인지 고민하게 되고, 이런 과정이 반복될수록 정신적 소화 불량은 심해진다.
Ⅱ. 고객 인사이트 제고
마케팅 조사의 개선 방향은 비용을 줄이면서 조사의 효과를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마케팀 담당자의 데이터 해석 능력을 높여야 한다. 고객 데이터의 해석력은 고객에 대한 인사이트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객에 대한 인사이트를 높일 수 있을까.
1. 마케팅 조사 직접 수행
설문 조사는 마케팅 조사의 주종을 이룬다. 설문 조사를 할 때 마케팅 담당자는 조사의 기획에만 참여할 뿐, 실제 조사 대상자를 만나 설문을 받는 이른바 실사(Field Work)는 전혀 수행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조사를 기획하기만 하는 것과 직접 조사 대상자를 만나 질문을 하고 응답을 받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적은 수의 표본이라도 직접 설문 응답을 받게 되면, 단순한 데이터로 전달되지 않는 고객의 미묘한 반응을 느낄 수 있다. 또, 고객이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문항이 무엇인지도 알아차릴 수 있다. 또, 응답자의 반응에 따라 새롭게 묻고 싶은 내용이 생각날 경우 이를 즉흥적으로 질문할 수도 있다.
직접 설문을 쉽게 하는 방법은 가족이나 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평소에 잘 알던 사람인데 무슨 새로운 이야기가 있을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설문지를 갖고 제대로 질문해보면,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던 많은 새로운 생각을 들을 수 있다. 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편리한 방법이지만, 좀 더 생생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2. 일상에서의 관찰
고객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또, 알더라도 잘 표현하지 못한다. 이럴 때는 고객에게 질문하기 보다 고객의 행동을 옆에서 관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애플은 신제품을 개발할 때 소비자 조사를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소비자에게 무엇인가 물어보는 것으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다. 소비자 조사를 무시하는 애플의 접근이 항상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존 스컬리(John Sculley)에게 애플의 경영권을 넘겨주고, 새롭게 창업을 해서 내놓은 넥스트 컴퓨터(NeXT Computer)는 고객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맥킨토시와 아이팟, 아이튠, 아이폰 등의 성공은 애플이 다른 어떤 회사보다도 적중도 높은 신제품을 만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티브 잡스는 뉴욕의 매디슨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아이팟의 다양화에 관한 아이디어를 끌어냈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들이 걸어가면서 음악을 듣는지, 그런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가방을 들고 가는지를 잘 관찰하면, 음악을 들을 만한 사람이 안듣는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제품을 만들면 이런 사람들이 새로운 사용자가 될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애플의 모든 제품은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와 쉬운 사용법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컴퓨터를 구입한 사용자들은 먼저 제품을 만져본다. 그러다가 어려워서 잘 다뤄지지 않으면 매뉴얼을 보게 된다. 이런 소비자의 행동을 관찰해보면 소비자에게 질문을 하지 않고도 제품을 처음 사용할 때 소비자가 부딪히는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 고객의 행동에 대한 통찰은 애플이 더 쉬운 제품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종군 사진 기자로 유명한 로버트 카파(Robert Capa)는 '만일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건 당신이 충분히 가까운 거리에서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고객을 잘 모르겠다면 최대한 그들 가까이 가서 그들의 모습을 살펴봐야 한다.
그런데, 소비자 관찰에서도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포인트가 있다. 그것은 가능한 직접 관찰해야 한다는 점이다. 많은 조사 회사들이 고객에 대한 관찰을 서비스 상품으로 제공한다. 구매 상황을 재현해 놓은 장소에서 소비자의 행동을 관찰하는 CLT(Central Location Test)나 인류학에서의 민속지(Ethnography) 조사 같이 실제 소비자의 행동을 근접해서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자연주의적 탐구 조사(Naturalistic Inquiry)가 그런 예다. 소비자 관찰을 조사 회사에 맡긴다고 할 경우에도 현장 관찰 작업의 일부를 직접 수행해 봐야 한다.
Ⅲ. 입체적인 관점과 데이터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은 대상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만 보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사고 방식을 무시한다면 통찰력이 아니라 비현실적 공상이 되기 쉽다. 통찰력은 생각의 교차점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철저한 관찰에 바탕을 둔 과학적 사고와 예술적 감각을 결합시켜 많은 걸작을 만들었다. 최근 여러 분야에서 인기를 끄는 학제적(Inter-disciplinary) 연구도 다양한 각도의 사고를 모아보고자 하는 시도다. 마케팅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관점과 데이터가 결합되었을 때 고객에 대한 인사이트가 나올 수 있다.
고객에 대한 다양한 관점은 고객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존재적 특성을 고려함으로써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30대의 남성 고객이 있다. 단순히 바라보면 그저 갓 결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젊은 소비자일 뿐이다. 그러나 이 소비자는 바쁘게 사는 직장인, 오디오 애호가, 신혼기에서 벗어나 잔소리에 시달리는 남편, 매일 밤 우는 아이에 지친 젊은 아빠라는 특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 같은 특성을 잘 결합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온다. 즉, 아이가 잠든 밤에 아이를 깨우지 않고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작은 음량에 최적화된 고급 오디오 같은 제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필자는 화장품 용기 디자인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해외의 유명 남성 디자이너가 만든 용기는 날렵하면서도 세련된 모습이었다. 많은 소비자들이 용기 디자인에 대해 멋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한 여성 소비자가 ‘용기가 뾰쪽해서 어린아이가 찔리면 다치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을 하자, 그때까지 멋있다고 하던 소비자들의 의견이 저 용기는 안되겠다는 반응으로 뒤바뀌었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여성으로서의 마음과 엄마로서의 본능이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입체적 사고에 따른 인사이트는 생각의 자가 발전만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생각의 재료인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고객에 대한 정보라고 하면 평면적인 조사 데이터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조사나 관찰에서 얻은 데이터가 실제 행동과 결합될 수 있으면 그 가치는 두 종류 데이터 가치의 합이 아니라 곱이 된다고도 볼 수 있다.
컨설팅 회사 맥킨지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전자 제품 체인점인 베스트 바이(Best Buy)는 소비자 조사와 판매 데이터를 결합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점포의 형태를 조정한 결과 7%의 매출 증대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즉, 이 회사는 부유한 남성 전문직이 많은 지역에서는 고급 홈 씨어터 장비를 보강하고, 극성스러운 엄마들이 많은 지역에서는 점포의 인테리어를 여성 및 아동 취향에 맞도록 바꾸고 아동용 전자 제품을 더 많이 구비했다고 한다.
또, 영국의 소매업체인 테스코는 설문 조사와 로열티 카드 데이터를 결합하여 소비자 세그먼트별로 특정 제품 카테고리에 대한 매출을 분석했다. 그 결과 특정 인적 특성을 가진 소비자 집단이 설문 조사에서 응답한 결과와 상이한 실제 구매 행동을 하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테스코는 자사의 점포를 규모에 따라 4가지 브랜드로 분류하고 있는데, 특정 점포 유형에서 젊은 엄마들이 아이용품을 구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젊은 엄마들이 약국형 수퍼마켓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입체적인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테스코는 베이비 클럽이라는 부가 서비스를 론칭하였고 유아 용품이 점포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16%에서 24%로 높일 수 있었다.
이처럼 입체적인 데이터는 유용하다. 그러나, 설문 데이터와 거래 데이터를 연계시키는 식의 입체적인 고객 데이터는 대규모의 표본을 대상으로 수집하기는 어렵다. 이때 소규모의 데이터는 편향될(biased)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러나, 편향되지 않은 조사는 이미 넘친다. 대부분의 기업들에게는 편향될 위험이 일부 있더라도 깊이 있는, 밋밋하지 않은 정보가 더 요긴하다.
Ⅳ. 생각의 전환과 마케팅 조사 혁신
1. 생각의 전환이 혁신의 출발점
마케팅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종종 고객의 생각과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마케터들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일부 고관여 제품을 제외하면 고객들은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케팅 담당자들이 지나치게 깊게 생각하면 고객의 현실은 무시한 채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에서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마케팅 담당자로써 구체적인 마케팅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할 때는 그 생각의 깊이가 깊을수록 좋다. 그러나, 고객의 마음을 읽어낼 때는 고객의 관여도와 똑같은 수준으로 맞춰야 한다.
다만, 얼리 어답터나 일부 마니아형 고객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접근을 통해 제품의 개선점에 대한 아이디어 등을 끌어내는 것이 좋다. 이런 소비자들은 제품 개발자 이상의 지식을 가진 경우도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또, 마케팅 담당자는 자사 제품에 대한 방어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 마케터들에게 제품은 자식과 같아서 고슴도치가 자식을 예뻐하듯이 자사 제품에 대해 흔히 방어적이 된다. 방어적인 태도가 마음에 깔려 있으면 자사 제품이 실제보다 좋게 보이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마케팅 담당자들은 자사 제품에 대한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소비자 커뮤니티 같은 곳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부정적인 의견을 발견하면 발끈해서 생경한 댓글을 달기도 한다. 그 댓글이 여론을 유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차분히 쓴 것이라면 문제가 없겠으나, 흥분해서 썼다면 한숨 돌리고 자신의 태도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제품을 개발하거나 판매할 때는 자사 제품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자사 제품을 평가할 때는 열린 마음을 갖고 철저히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의 전환은 마케팅 조사 혁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2. 마케팅 조사의 혁신
마케팅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다. 고객의 새로운 니즈를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여, 새로운 방법으로 판매하고자 고민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마케팅의 출발점인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방법은 구태의연하다. 인터넷 시대의 개막과 함께 온라인 조사 시대가 열리기는 했으나 채널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설문조사 형태가 주종을 이룬다.
이제 마케팅 조사에서도 혁신을 생각할 때다. 특히, 조사 방법의 변화와 함께 조사 이용자의 태도와 행동도 바꿈으로써 비용을 줄이면서 조사의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신제품 개발, 광고 판촉, 고객 관리 등 다양한 측면에서 기업들간의 마케팅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최근의 경제 위기는 기업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그러나, 위기 상황 속에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기 상황에서는 평소에는 너무 무리하다고 판단하여 실행하기 힘들었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발명품이 나온 것은 바로 전쟁이라는 위기 속에서였다.
비용을 절감하면서 동시에 효과는 높은 마케팅 조사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유연한 사고를 갖고 끈기 있게 방법을 찾아보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다만, 고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마케팅 담당자의 인사이트를 제고하는 마케팅 조사 혁신의 핵심은 고객에 대한 암묵적 지식을 학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은 미리 짚어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 새로운 마케팅 조사에 대해 단기적으로 큰 기대를 갖게 되면 쉽게 실망하고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서 그렇듯이 남들과 다른 시도를 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마케팅 조사도 예외는 아니다.
- LG Business Insight 1017호
이런 관점에서 우리 기업들은 마케팅 조사 결과를 이용하는 마케팅 담당자의 고객 인사이트를 높임으로써, 데이터 자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마케팅 비용을 절감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객 인사이트를 높이기 위해서는 마케팅 담당자가 일부 조사를 직접 수행하는 등 마케팅 조사 대상자에 더 가까이 가야 한다. 전통적인 설문 조사를 탈피하여 근접 관찰 등을 통해 새로운 각도의 고객 정보를 수집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고객이 갖고 있는 다양한 존재 특성을 분석함으로써 새로운 인사이트를 도출할 수도 있다. 한편, 마케팅 조사 데이터를 거래 데이터 등과 결합하면 파생 데이터가 생성되는데, 이를 통해 좀 더 깊이 있는 분석을 할 수도 있다.
이제는 마케팅 조사에서도 혁신을 생각할 때다. 특히, 조사 방법의 변화와 함께 조사 이용자의 태도와 행동도 바꿈으로써 비용을 줄이면서 조사의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Ⅰ. 마케팅 조사의 고민
전세계적인 불황이 본격화되면서 기업의 마케팅 업무에도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불황기에 어렵지 않은 기업이 없겠으나, 마케팅 기능이 강한 기업이 느끼는 고통의 강도는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마케팅 업무의 비중이 큰 회사들이 속한 업종들은 생존을 위한 기본 소비가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소비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불황에는 반드시 필요한 소비보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소비를 우선적으로 줄이기 마련이다. 예컨대 여행, 패션, 외식 같은 카테고리의 상품들은 불황기에 소비를 줄이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불황의 고통 속에서 경영자들은 마케팅을 활성화하여 매출을 늘이려는 노력과 함께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자 고심하게 된다. 그런데, 매출을 늘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손익 개선을 위해 쉽게 손이 가는 방법은 결국 비용 절감이다.
마케팅 비용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항목 중에서도 절감했을 때 단기적으로 부작용이 적은 마케팅 조사비가 비용 절감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판매 채널에 대한 리베이트와 같이 줄였을 때 매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업 관련 직접 비용들은 쉽게 손대지 못한다. 광고비도 마케팅 간접비지만 소비자를 직접 자극하는 효과가 있어 쉽게 줄이기는 어렵다. 또, 불황기에는 미디어 비용이 낮아지는 경향도 있어, 물량을 줄이지 않고도 광고 비용을 어느 정도 절감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마케팅 조사와 같은 간접 비용은 마케팅 투자라고도 할 수 있다. 불황이라고 해서 투자를 줄이면, 호황으로 전환되었을 때 마케팅 역량 약화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결국,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마케팅 역량 약화라는 부작용은 최소화하면서 마케팅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이다. 본고에서는 여러 유형의 마케팅 활동 중 마케팅 조사를 저비용 고효율화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1. Armchair Marketer에서 탈피하라
인류학자라고 하면 미개 부족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행동을 연구하는 사람을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이렇게 현장에서 발로 뛰지 않고 연구실에 앉아서 스스로의 추측과 짐작에 의존하여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들을 안락의자 인류학자(Armchair Anthropologist)라고 한다.
19세기 말 당대의 저명한 인류학자였던 프레이저(James Fraser)는 한번도 현장에 나가지 않았다. 탐험가나 선교사로부터 얻은 단편적인 자료와 이야기만을 바탕으로 인류학을 연구하고 황금 가지(Golden Bough)라는 유명한 책을 남겼다. 이 당시에는 이러한 방법이 크게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리놉스키(Malinowski)가 1차 세계 대전 당시 정치적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파푸아 뉴기니 원주민들과 함께 수년간 생활하게 되면서 인류학 연구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그곳에 체류하던 기간 중 초기에 그는 인류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원주민과 어울리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외로움에 지친 그는 현지 언어를 배우고 원주민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현상을 보게 되었고, 또 그 현상의 이면을 이해하게 되었다.
인류학 분야에 안락의자 인류학자가 있다면, 기업에는 자리에 앉아서 고객을 이해하고 계획을 세우는 책상물림 마케터들이 있다. 이들은 고객에게 다가가서 고객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하기보다 조사 업체에서 전해 준 데이터 자체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철저히 데이터에 기초해 계획을 세워야 제대로 된 마케팅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사 기획 과정에서 질문 작성, 현장 자료 수집 과정에 걸쳐 데이터에는 수많은 오류가 들어갈 수 있다. 또, 데이터가 정확하더라도 더 중요한 것은 그 데이터의 이면에 있는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다.
물론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일대일 심층 인터뷰(In-depth Interview)나 그룹 인터뷰(Focus Group Interview)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더라도 직접 수행하거나 그 과정을 면밀히 관찰하기보다는 정리된 인터뷰 결과만을 참고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비용을 들여 집단 인터뷰를 할 때도 바쁘다는 이유로 인터뷰 현장에 가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녹화된 영상을 보면 된다고 변명하지만, 추후에 녹화 영상을 틀어 보는 경우는 흔치 않다.
2. 아는 만큼 보인다
똑 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아는 만큼 보인다. 같은 조사 결과를 놓고도 마케팅 담당자의 지식과 논리에 따라 해석은 크게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마케팅 조사는 데이터에만 초점을 맞추고 분석자의, 즉 마케팅 담당자의 해석력을 높이는 데에는 소홀했다.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은 낮은 상황에서 마케팅 조사에서 많은 내용을 끌어내려고 하면 두 가지 측면에서 부작용이 나타난다.
하나는 조사 내용이 지나치게 어려워지고 복잡해지는 것이다. 고객 스스로도 잘 모르는 내용까지 질문하게 된다. 또, 같은 사안을 여러 각도에서 질문함으로써 질문이 복잡해지고, 조사의 양도 많아진다. 이렇게 되면 조사 대상이 되는 고객도 힘들고 조사를 수행하는 담당자도 힘들어진다. 결국 부실 조사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마케팅 담당자들 중에는 난해한 조사 계획을 내놓으면서, 조사가 어려워도 전문 업체를 압박하면 다 해가지고 온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마케팅 조사는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이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무리한 조사는 부실하거나 왜곡된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고객이 답변하기 힘든 조사를 기획한다는 사실 자체가 마케팅 담당자가 고객을 제대로 모르는 책상물림 마케터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조사를 해석하는 능력이 낮은 데서 오는 다른 하나의 부작용은 비슷한 혹은 동일한 조사를 반복하는 것이다. 또, 조사의 표본수를 과도하게 늘리기도 한다. 조사 결과의 원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자신이 이해한 것에 대해 스스로 확신한다면 굳이 조사를 자주 할 필요가 없다. 세밀한 트래킹(Tracking) 조사가 아니라면 표본수도 굳이 크게 가져갈 필요가 없다.
대규모 표본의 잦은 조사는 결국 마케팅 비용의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요즘 같은 불황에서 더 경계해야 할 일이다.
한편, 조사 데이터의 분량이 많아지면 과다 데이터로 인한 정신적 소화 불량도 조심해야 할 포인트다. 이는 특히 정기적 트래킹 조사에서 흔히 나타나는 문제인데, 조사 결과를 형식적으로 보고하기만 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심각히 고민하지 않는 것이다. 업무량이 많아서 고민을 못할 수도 있지만, 유사한 데이터가 반복적으로 쌓이게 되면 새로 수집된 데이터에서 새로움도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배가 부른 상태에서 맛을 느끼기 어려운 것과 유사하다.
또, 자주 조사를 하다 보면, 미세한 조사 오류와 고객의 실질적 변화를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단기간 내에 고객의 큰 변화가 있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변화의 양이 오차 범위 안에 놓이게 된다. 이 경우 마케터들은 차이가 실질적인지 오차인지 고민하게 되고, 이런 과정이 반복될수록 정신적 소화 불량은 심해진다.
Ⅱ. 고객 인사이트 제고
마케팅 조사의 개선 방향은 비용을 줄이면서 조사의 효과를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마케팀 담당자의 데이터 해석 능력을 높여야 한다. 고객 데이터의 해석력은 고객에 대한 인사이트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객에 대한 인사이트를 높일 수 있을까.
1. 마케팅 조사 직접 수행
설문 조사는 마케팅 조사의 주종을 이룬다. 설문 조사를 할 때 마케팅 담당자는 조사의 기획에만 참여할 뿐, 실제 조사 대상자를 만나 설문을 받는 이른바 실사(Field Work)는 전혀 수행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조사를 기획하기만 하는 것과 직접 조사 대상자를 만나 질문을 하고 응답을 받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적은 수의 표본이라도 직접 설문 응답을 받게 되면, 단순한 데이터로 전달되지 않는 고객의 미묘한 반응을 느낄 수 있다. 또, 고객이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문항이 무엇인지도 알아차릴 수 있다. 또, 응답자의 반응에 따라 새롭게 묻고 싶은 내용이 생각날 경우 이를 즉흥적으로 질문할 수도 있다.
직접 설문을 쉽게 하는 방법은 가족이나 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평소에 잘 알던 사람인데 무슨 새로운 이야기가 있을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설문지를 갖고 제대로 질문해보면,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던 많은 새로운 생각을 들을 수 있다. 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편리한 방법이지만, 좀 더 생생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2. 일상에서의 관찰
고객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또, 알더라도 잘 표현하지 못한다. 이럴 때는 고객에게 질문하기 보다 고객의 행동을 옆에서 관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애플은 신제품을 개발할 때 소비자 조사를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소비자에게 무엇인가 물어보는 것으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다. 소비자 조사를 무시하는 애플의 접근이 항상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존 스컬리(John Sculley)에게 애플의 경영권을 넘겨주고, 새롭게 창업을 해서 내놓은 넥스트 컴퓨터(NeXT Computer)는 고객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맥킨토시와 아이팟, 아이튠, 아이폰 등의 성공은 애플이 다른 어떤 회사보다도 적중도 높은 신제품을 만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티브 잡스는 뉴욕의 매디슨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아이팟의 다양화에 관한 아이디어를 끌어냈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들이 걸어가면서 음악을 듣는지, 그런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가방을 들고 가는지를 잘 관찰하면, 음악을 들을 만한 사람이 안듣는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제품을 만들면 이런 사람들이 새로운 사용자가 될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애플의 모든 제품은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와 쉬운 사용법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컴퓨터를 구입한 사용자들은 먼저 제품을 만져본다. 그러다가 어려워서 잘 다뤄지지 않으면 매뉴얼을 보게 된다. 이런 소비자의 행동을 관찰해보면 소비자에게 질문을 하지 않고도 제품을 처음 사용할 때 소비자가 부딪히는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 고객의 행동에 대한 통찰은 애플이 더 쉬운 제품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종군 사진 기자로 유명한 로버트 카파(Robert Capa)는 '만일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건 당신이 충분히 가까운 거리에서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고객을 잘 모르겠다면 최대한 그들 가까이 가서 그들의 모습을 살펴봐야 한다.
그런데, 소비자 관찰에서도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포인트가 있다. 그것은 가능한 직접 관찰해야 한다는 점이다. 많은 조사 회사들이 고객에 대한 관찰을 서비스 상품으로 제공한다. 구매 상황을 재현해 놓은 장소에서 소비자의 행동을 관찰하는 CLT(Central Location Test)나 인류학에서의 민속지(Ethnography) 조사 같이 실제 소비자의 행동을 근접해서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자연주의적 탐구 조사(Naturalistic Inquiry)가 그런 예다. 소비자 관찰을 조사 회사에 맡긴다고 할 경우에도 현장 관찰 작업의 일부를 직접 수행해 봐야 한다.
Ⅲ. 입체적인 관점과 데이터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은 대상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만 보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사고 방식을 무시한다면 통찰력이 아니라 비현실적 공상이 되기 쉽다. 통찰력은 생각의 교차점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철저한 관찰에 바탕을 둔 과학적 사고와 예술적 감각을 결합시켜 많은 걸작을 만들었다. 최근 여러 분야에서 인기를 끄는 학제적(Inter-disciplinary) 연구도 다양한 각도의 사고를 모아보고자 하는 시도다. 마케팅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관점과 데이터가 결합되었을 때 고객에 대한 인사이트가 나올 수 있다.
고객에 대한 다양한 관점은 고객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존재적 특성을 고려함으로써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30대의 남성 고객이 있다. 단순히 바라보면 그저 갓 결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젊은 소비자일 뿐이다. 그러나 이 소비자는 바쁘게 사는 직장인, 오디오 애호가, 신혼기에서 벗어나 잔소리에 시달리는 남편, 매일 밤 우는 아이에 지친 젊은 아빠라는 특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 같은 특성을 잘 결합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온다. 즉, 아이가 잠든 밤에 아이를 깨우지 않고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작은 음량에 최적화된 고급 오디오 같은 제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필자는 화장품 용기 디자인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해외의 유명 남성 디자이너가 만든 용기는 날렵하면서도 세련된 모습이었다. 많은 소비자들이 용기 디자인에 대해 멋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한 여성 소비자가 ‘용기가 뾰쪽해서 어린아이가 찔리면 다치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을 하자, 그때까지 멋있다고 하던 소비자들의 의견이 저 용기는 안되겠다는 반응으로 뒤바뀌었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여성으로서의 마음과 엄마로서의 본능이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입체적 사고에 따른 인사이트는 생각의 자가 발전만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생각의 재료인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고객에 대한 정보라고 하면 평면적인 조사 데이터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조사나 관찰에서 얻은 데이터가 실제 행동과 결합될 수 있으면 그 가치는 두 종류 데이터 가치의 합이 아니라 곱이 된다고도 볼 수 있다.
컨설팅 회사 맥킨지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전자 제품 체인점인 베스트 바이(Best Buy)는 소비자 조사와 판매 데이터를 결합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점포의 형태를 조정한 결과 7%의 매출 증대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즉, 이 회사는 부유한 남성 전문직이 많은 지역에서는 고급 홈 씨어터 장비를 보강하고, 극성스러운 엄마들이 많은 지역에서는 점포의 인테리어를 여성 및 아동 취향에 맞도록 바꾸고 아동용 전자 제품을 더 많이 구비했다고 한다.
또, 영국의 소매업체인 테스코는 설문 조사와 로열티 카드 데이터를 결합하여 소비자 세그먼트별로 특정 제품 카테고리에 대한 매출을 분석했다. 그 결과 특정 인적 특성을 가진 소비자 집단이 설문 조사에서 응답한 결과와 상이한 실제 구매 행동을 하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테스코는 자사의 점포를 규모에 따라 4가지 브랜드로 분류하고 있는데, 특정 점포 유형에서 젊은 엄마들이 아이용품을 구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젊은 엄마들이 약국형 수퍼마켓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입체적인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테스코는 베이비 클럽이라는 부가 서비스를 론칭하였고 유아 용품이 점포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16%에서 24%로 높일 수 있었다.
이처럼 입체적인 데이터는 유용하다. 그러나, 설문 데이터와 거래 데이터를 연계시키는 식의 입체적인 고객 데이터는 대규모의 표본을 대상으로 수집하기는 어렵다. 이때 소규모의 데이터는 편향될(biased)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러나, 편향되지 않은 조사는 이미 넘친다. 대부분의 기업들에게는 편향될 위험이 일부 있더라도 깊이 있는, 밋밋하지 않은 정보가 더 요긴하다.
Ⅳ. 생각의 전환과 마케팅 조사 혁신
1. 생각의 전환이 혁신의 출발점
마케팅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종종 고객의 생각과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마케터들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일부 고관여 제품을 제외하면 고객들은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케팅 담당자들이 지나치게 깊게 생각하면 고객의 현실은 무시한 채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에서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마케팅 담당자로써 구체적인 마케팅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할 때는 그 생각의 깊이가 깊을수록 좋다. 그러나, 고객의 마음을 읽어낼 때는 고객의 관여도와 똑같은 수준으로 맞춰야 한다.
다만, 얼리 어답터나 일부 마니아형 고객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접근을 통해 제품의 개선점에 대한 아이디어 등을 끌어내는 것이 좋다. 이런 소비자들은 제품 개발자 이상의 지식을 가진 경우도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또, 마케팅 담당자는 자사 제품에 대한 방어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 마케터들에게 제품은 자식과 같아서 고슴도치가 자식을 예뻐하듯이 자사 제품에 대해 흔히 방어적이 된다. 방어적인 태도가 마음에 깔려 있으면 자사 제품이 실제보다 좋게 보이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마케팅 담당자들은 자사 제품에 대한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소비자 커뮤니티 같은 곳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부정적인 의견을 발견하면 발끈해서 생경한 댓글을 달기도 한다. 그 댓글이 여론을 유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차분히 쓴 것이라면 문제가 없겠으나, 흥분해서 썼다면 한숨 돌리고 자신의 태도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제품을 개발하거나 판매할 때는 자사 제품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자사 제품을 평가할 때는 열린 마음을 갖고 철저히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의 전환은 마케팅 조사 혁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2. 마케팅 조사의 혁신
마케팅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다. 고객의 새로운 니즈를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여, 새로운 방법으로 판매하고자 고민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마케팅의 출발점인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방법은 구태의연하다. 인터넷 시대의 개막과 함께 온라인 조사 시대가 열리기는 했으나 채널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설문조사 형태가 주종을 이룬다.
이제 마케팅 조사에서도 혁신을 생각할 때다. 특히, 조사 방법의 변화와 함께 조사 이용자의 태도와 행동도 바꿈으로써 비용을 줄이면서 조사의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신제품 개발, 광고 판촉, 고객 관리 등 다양한 측면에서 기업들간의 마케팅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최근의 경제 위기는 기업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그러나, 위기 상황 속에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기 상황에서는 평소에는 너무 무리하다고 판단하여 실행하기 힘들었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발명품이 나온 것은 바로 전쟁이라는 위기 속에서였다.
비용을 절감하면서 동시에 효과는 높은 마케팅 조사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유연한 사고를 갖고 끈기 있게 방법을 찾아보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다만, 고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마케팅 담당자의 인사이트를 제고하는 마케팅 조사 혁신의 핵심은 고객에 대한 암묵적 지식을 학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은 미리 짚어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 새로운 마케팅 조사에 대해 단기적으로 큰 기대를 갖게 되면 쉽게 실망하고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서 그렇듯이 남들과 다른 시도를 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마케팅 조사도 예외는 아니다.
- LG Business Insight 10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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