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노키아 ‘속도 경영’ 앞장
의사결정 신속하게 내리려면 기업내 관료주의부터 없애야
빠르고 멀리 달리기 위해선 한꺼번에 발산하는 추진력 필요
“덩치가 큰 기업이 항상 작은 기업을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빠른 기업은 언제나 느린 기업을 이긴다.”
지난 2000년 MS(마이크로소프트)와 GE(제너럴일렉트릭)를 제치고 전세계 시가총액 1위에 올랐던 시스코 시스템즈(Cisco Systems)의 CEO 존 챔버스(John Chambers)의 말이다. 비즈니스 환경이 급변하고 소비자의 기호도 쉴 새 없이 변하는 요즘, 스피드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기업들은 경영 프로세스의 속도를 높이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신상품 출시에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한 사례도 속속 등장했다. 닛산자동차의 경우 과거 21개월 정도 걸리던 신차(新車) 개발 시간을 이제는 10개월 이내로 줄였다. 노키아나 모토로라, 삼성전자 같은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의 경우도 과거 18개월 정도 걸리던 것을 6개월 이내로 단축하고 있다.
이제는 ‘스피드’가 기업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날로 변해가는 고객의 요구에 발맞춘 신제품을 만들어내고, 경쟁사의 추격을 뿌리치고 앞서나가려면 스피드 경쟁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기업의 스피드를 높이는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 1. 신속한 의사결정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검토 과정에서 시간이 지연되면 제품 출시 시기를 놓치거나 아예 사장될 수도 있다. 의사결정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업 내에 뿌리내려 있는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민첩성을 유지해야 한다.
미국의 레스토랑 프랜차이즈 회사 레이빙 브랜즈(Raving Brands)는 빠른 의사결정으로 유명하다. 이 회사는 CEO가 직접 참여해 중요한 의사결정까지 내려 주는 아이디어 회의를 매주 개최한다. 이 회사는 본사가 특별히 따로 없다. 아이디어의 개발 및 실행과 관련된 위원회 같은 것도 두지 않았다.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돌아가며 회의를 열어 의사결정을 한다. 이를 통해 이 회사는 지난 5년간 셰인즈립(Shane’s Rib Shack), 닥그린즈샐러드(Doc Green’s Gourmet Salads) 등 6개의 새로운 레스토랑 프랜차이즈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대개 프랜차이즈 아이디어가 구체화돼 1호 점을 오픈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업계 평균적으로 2년 이상인 데 비해, 이 회사는 절차를 간소화해 1년만에 끝내고 있다.
1992년 무너져가는 GM(제너럴모터스)을 위기에서 구한 잭 스미스(Jack Smith)는 “21세기의 승자는 크고 빠른(big and fast)기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후 GM은 ‘Go-Fast’라 불리는 경영기법으로 스피드 경영을 실천했다. Go-Fast는 자동차 산업의 거대 공룡인 GM을 스포츠카와 같이 빠르고 날렵한 기업으로 변모시키기 위한 기업개선 작업의 명칭이다. Go-Fast의 핵심은 ‘간결함’이다. GM은 관료적이고 느린 의사결정 구조를 찾아 제거하는 것에 최우선 순위를 뒀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보고하고 결재하는 데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고, 가급적 곧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바꿨다. 그 결과 GM은 아이디어 구상부터 제품 출시까지의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는 문화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 2. ‘멀티 태스킹(multi-tasking)’의 활성화
수많은 업무를 신속하게 해결해 나가는 CEO들의 공통점은 여러 업무를 동시에 처리하는 데 탁월하다는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신상품이 나오기까지의 복잡한 프로세스는 기업 내부의 사정일 뿐, 고객들 입장에서는 굳이 이해하거나 기다릴 필요가 없다. 여러 작업을 동시에 진행시키는 멀티태스킹 능력을 갖춘다면 그만큼 기업의 속도 경쟁력은 높아질 것이다.
파인더웨이(Findaway)는 디지털 오디오북 시장을 개척한 회사다. 맨땅에서 시작해서 오디오북이라는 새로운 상품을 매우 빠른 시간 내에 출시했다. 이 회사는 제품 기획을 할 때부터 모든 프로세스가 병렬로 진행되도록 했다. 실제 제조과정에서도 각 프로세스는 동시에 진행되었다. 미국 중부지역에서는 플라스틱 금형을 제조하고, 서부에서는 전자회로를 테스트하며, 멕시코에서는 최종 조립을 하는 식이다. 제조 공정이 계속되는 동안 디자인을 수정하고 시험하는 등 모든 과정이 거의 함께 이뤄졌다. 결국 파인더웨이는 2005년 9월, 13개월 만에 신상품을 탄생시켰고, 미국 대형서점을 휩쓰는 대 성공을 거뒀다.
최근에는 멀티태스킹 효과를 높여 시간을 단축하는 수단으로 아웃소싱이 많이 활용되고 있다. 요즘 아웃소싱 기업들은 상당히 전문화돼 있다. 이제는 특정 업무를 싸게 수행해 주는 데 그치지 않고, 빠르고 완성도 높게 과업을 수행한다.
미국 새너제이의 셀론(Cellon)은 휴대전화 전문 디자인 아웃소싱 업체다. 셀론은 고객의 주문이 없는 경우에도 디자인 R&D를 자체적으로 수행한다. 이러한 사전작업을 통해 몇 개의 기본 디자인을 미리 준비해 놓고 있다가 특정 고객의 요구가 있을 때 그 요구에 맞게 기존 디자인을 변형하는 형태로 업무를 진행한다. 이를 통해 셀론은 약 5개월이면 제품 디자인에서 출시까지 마칠 수 있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세계 유수의 휴대전화 제조기업들은 제품의 디자인을 개발하는 데 이 회사를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이미 속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업체를 아웃소싱하는 것 또한 경영의 스피드를 높이는 방법이 된다.
■ 3. 일사불란한 추진력
스피드경영의 세 번째 요건은 ‘추동(推動·추진동력)’이다. 빠르고 멀리 달리기 위해서는 힘을 모았다가 한꺼번에 발산하는 동작이 필요하다. 기업이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도 이를 밀어줄 수 있는 동작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기업의 모든 역량을 결집시키는 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
켄달잭슨(Kendall-Jackson)이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미국의 와인회사 잭슨(Jackson Enterprise)이 좋은 사례다. 2004년 말 와인의 세계적인 과잉공급으로 인해 시장상황이 여의치 않자 이 회사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단 몇 주 만에 새로운 브랜드 2개를 출시해낸 것이다. 기업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부문의 직원들을 외딴 곳에 불러 모아놓고 1주일간 브레인스토밍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이 모든 아이디어를 쏟아내도록 했다. 또 와인산업에 전혀 경험이 없는 대학생들을 참여시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모았다. 디자인과 브랜딩 파워를 강화하기 위해 세계적인 디자인 기업 아이데오(IDEO)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 결과 와인 병의 모양을 육면체로 만드는 파격적인 아이디어가 나왔고, 이를 받아들여 제품 출시를 결정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와인블록(Wine Block)’과 ‘도그하우스(Dog House)’는 모두 큰 히트를 기록했다. 각각 1만상자가량을 팔 수 있을 것이라는 회사의 예상과는 달리 둘 다 10만상자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던 것이다.
■ 4. 성공경험을 적용하라
‘성공 경험을 적용하는 것’은 버진(Virgin) 그룹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다. 버진은 1999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모바일 휴대전화 서비스를 시작할 때 네트워크를 새로 구축하지 않고 기존의 네트워크 사업자와 제휴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를 통해 단 6개월 만에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 버진은 이 성공모델을 다른 나라에도 똑같이 적용해 성공했다. 이처럼 일단 성공이 확인된 모델을 다른 지역이나 시장에서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은 개척하는데 드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실패 위험 또한 줄일 수 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기업이 있다. 하나는 빠른 기업이고 나머지 하나는 곧 소멸할 기업이다. 선진기업들도 이제는 스피드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다.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시간은 가장 성스러운 자원이다. 시간을 관리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경쟁시장에서 앞서 나가려면 스피드 경쟁력을 극대화 시켜야 한다. 신속한 의사결정과, 시간을 줄여주는 프로세스를 개발해 내는 것, 그리고 힘을 발산해 내는 추동의 기회를 만드는 것이 속도를 높이는 비결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속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조직의 문화에 깊이 뿌리 내리려는 리더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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