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8. 24. 22:40
상품수지가 대외여건 변화에 취약하고 서비스수지와 소득수지가 만성적 적자를 지속하는 등 우리 국제수지 구조가 개도국형 또는 채무국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혁신주도형 성장 기반을 구축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해외투자를 활성화함으로써 역동적인 채권국의 면모를 갖추어야 한다.
올해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작년(61억 달러)의 절반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는 더욱 줄어들어 1997년 83억 달러 적자에서 1998년 404억 달러 흑자로 전환한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도 있다. 향후 1년여 동안은 적지 않은 경기불안 요인에도 불구하고 경기회복과 원화절상으로 인해 수입이 수출보다 빠르게 늘어나고 서비스수지 악화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경상수지 흑자 기조의 약화는 전반적인 성장활력 둔화와 맞물려 우리 경제의 향후 전망을 어둡게 한다.
경상수지 기조는 경제성장 단계와 일정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경제개발 초기에 경상수지는 대체로 적자로 나타나며, 개발 성과가 가시화하면서 흑자로 전환한다. 나아가 경제가 고도소비사회라고 불리는 성숙 단계에 이르면 경상수지는 다시 적자로 돌아서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수지 단계론’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국제수지 구조는 몇 차례에 걸쳐 커다란 흐름 상의 변화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크게 보면, 경제개발 착수 이래 ‘경상수지 적자-자본수지 흑자’ 양상을 보이다 1980년대 후반 3저호황 시기에 ‘경상 흑자-자본 적자’ 구조로 바뀌었다. 그 후 ‘경상 적자-자본 흑자’로 되돌아갔다가 외환위기 이후 또다시 정반대로 뒤집혔다. 이하에서는 국제수지 단계론의 관점에서 우리나라 국제수지 구조의 특징을 살펴보고 개선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국제수지 변천의 7단계
국제수지 발전 단계는 상품서비스수지, 소득수지, 경상수지, 자본수지 등 부문별 국제수지와 대외 채권·채무 관계의 양상을 기준으로 적게는 4가지, 많게는 10여가지로 분류된다. 여기서는 부문 국제수지들의 구조를 일차적인 기준으로 하고 순국제투자(Net International Investment Position)를 보조지표로 삼아 국제수지 단계를 <표 1>에 나타난 것처럼 7가지로 세분해 살펴본다.
첫 번째 단계는 경제개발 착수 이전 시기에 대응하는 ‘신생 채무국 단계(New Debtors)’ 단계다. 전 산업에 걸쳐 대외경쟁력이 취약한 탓에 이 단계에서 상품서비스 수지와 경상수지는 만성 적자에 시달린다. 자본수지는 경제개발 재원으로 쓰이는 유·무상 원조의 지속 유입으로 인해 흑자를 이어간다. 제2단계는 ‘성숙한 채무국(Mature Debtors) ’단계로서, 비교우위 산업 육성에 성공한 결과 수출이 수입을 상회하는 점이 1단계와 다르다. 3단계는 수출로 벌어들인 외환으로 대외채무를 상환하게 되는 ‘채무상환국(Repayers)’ 단계이다. 소득수지가 적자임에도 불구하고 상품서비스수지 흑자가 더 큰 폭으로 늘어나 경상수지가 흑자로 전환하고 자본 흐름은 순유입에서 순유출로 바뀐다.
교역의 확대·심화, 수출 고도화 등에 힘입어 경제성장세가 지속되면 축적된 국내저축을 해외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그 초기인 제4단계, ‘신생 채권국(New Creditors)’ 단계에서는 상품서비스수지 흑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소득수지도 흑자가 된다. 그 결과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급증하고 대외순자산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전환한다. 소득 수준 향상에 따라 수입이 늘어나 상품서비스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면 ‘성숙 채권국(Mature Creditors)’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해외투자 소득이 꾸준히 유입됨으로써 소득수지 흑자로 상품서비스수지 적자를 보전할 수 있다. 하지만 고도소비사회가 되면 경상수지는 적자로 반전되어 해외자산을 처분해야만 소비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채권소진국(Drawers)’ 단계가 시작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주요 산업들에서 경쟁력 상실이 잇따르고 저축률이 회복되지 않으면 해외자산보다 대외채무가 많아지는 ‘노쇠한 채무국 또는 황혼경제(twilight economy)’로 전락하고 만다. 국제수지 구조가 신생 채무국과 비슷해지는 점을 고려할 때 퇴행기에 다름 아니다.
이상의 국제수지 단계 분류는 ‘국제수지 구조는 해당 경제의 성장과정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는 관점에서 이뤄진 것이다. 또한 경제는 마치 유기체처럼 시간 경과에 따라 생성-성장-소멸의 변천을 겪는다는 가정도 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글로벌 차원에서의 일국의 자금동원력을 그림으로 나타내면 <그림 1>처럼 경제성장에 따라 사이클을 그리며 변화하게 될 것이다.
세계 48개 주요국의 국제수지 단계 분류
지금까지 제시한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을 포함한 48개 주요국의 최근 5년간 국제수지 단계를 구분해 보면 <표 2>와 같다. 분류 결과를 살펴보면 위에서 말한 전제들과 상충되는 점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발전 단계와 국제수지 단계 간의 일대일 조응 관계를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4단계)이 아이슬란드(1단계), 아일랜드(2단계), 오스트리아(3단계) 등 선진국들보다 높은 단계에 속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또한 모든 나라가 1단계에서 출발해 순차적으로 높은 단계로 옮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쿠웨이트 같은 중동 산유국도 그랬지만 ‘다크호스 경제’라고 할 만한 중국은 4단계의 채권국으로서 국제경제 무대에 등장했다. 국제수지 단계가 같더라도 분류 배경이나 경제 펀더멘털 수준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이 7단계로 분류되었으나, 이는 경제 노쇠화의 결과가 아니라 기축통화국이라는 특수한 지위를 반영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상을 감안할 때 국제수지 7단계는 다양한 국제수지 구조의 경제적 맥락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이론적 모형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국제수지 단계 분류
최근 5년간(2002~2006년) 우리나라의 국제수지 구조는 제3단계, 즉 채무상환국 단계의 양상을 보여준다. 여기서 ‘채무상환국 단계’의 의미 해석에 주의해야 한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채권국·채무국 분류의 잣대로 이용하는 순대외채권(대외채권-대외채무)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1999년까지 채무국, 2000년 이후는 채권국 (2002~06년 순대외채권 연평균 901억 달러 흑자)이다. 본고의 ‘채무상환국 단계’란 국제투자대조표(IIP)상의 순국제투자(대외투자-외국인투자)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즉 순대외채권 기준과 달리 직접투자, 주식투자 등 상환 의무가 없는 지분투자까지 감안한 단계분류이다. 외국에서는 순대외채권 통계를 내지 않는 점을 감안해 여기서는 국가간 비교가 가능하도록 순국제투자를 기준으로 국제수지 단계를 분류한다. 순국제투자 기준을 적용할 때 우리나라는 현재 채무국 단계(2002~06년 순국제투자 연평균 1,250억 달러 적자)에 머물러 있다. 한편 IIP를 기준으로 쓸 때는 2001년 이후 IIP 작성 기준이 바뀐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2000년 이전 시기에 대해 부문별 국제수지 기준만을 적용하기로 한다.
부문별 국제수지를 기준으로 했을 때 우리나라 국제수지는 △1984년까지 1단계 △1985~89년 3단계 △1990~97년 1단계 △1998~2006년 3단계로 이어지는 변천을 했다(<그림 2> 참조). 1단계와 3단계 사이를 엎치락뒤치락했으나 결과적으로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우리나라 국제수지 구조의 특징
첫째, 경상수지의 대종을 이루는 상품서비스수지의 방향과 크기가 대외여건의 변화에 영향을 크게 받아 급변동하는 개도국의 면모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대외거래의 비중이 높아서 원자재 가격 상승, 원화절상 등에 직접 영향을 받는 점, 국가경제의 허리 역할을 하는 소재 및 부품 산업의 경쟁력이 약해 수출이 수입을 부르는 ‘가마우지 경제’ 체질이 굳어진 점,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결정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 발굴이 미흡한 점 등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점들이 반영된 모습이다.
둘째, 서비스수지의 만성적인 적자가 상품서비스수지의 흑자 기조를 약화시키고 있다. 부문별로 보면 여행수지, 사업서비스수지, 특허권등 사용료수지 등에서의 적자가 전체 서비스수지 적자의 주요인으로 나타난다. 이들 부문은 우리 서비스산업 가운데 경쟁력이 특히나 취약한 부문임을 감안할 때 서비스수지 적자 폭을 단기간에 줄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셋째, 경상수지를 구성하는 부문 수지들이 채무상환국 단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자본수지가 여전히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소득수지 개선이 미미한 형편이다. 이는 외국 투자자들의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에 비해 우리 가계나 기업들의 해외투자가 활발하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지속적 자본 유입은 외환의 대량공급을 통해 원화의 평가절상을 조장하고 있으며, 우리 금융시장에 잠재적 교란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제수지 구조 개선 방향
국제수지는 균형을 유지하는 게 좋다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외풍에 취약한 개방경제의 현실에서 국제수지 균형은 예외적인 현상이며 반드시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성장의 과실을 최대한 거두어 채권국으로 도약해야 성숙단계에서도 성장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 채권국 중에서도 가장 역동적인 신생 채권국 단계를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신생 채권국의 국제수지 구조는 ‘경상수지 흑자-자본수지 적자’로, 무역과 투자를 통해 매년 꼬박꼬박 수익을 얻고 그 수익을 다시 해외시장에 투자하는 패턴이다. 중국 같은 다크호스, 쿠웨이트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신생 채권국 단계에 있는 나라들은 대부분 선진국들이다. 그 중 대만과 일본의 사례는 경제성장 경로나 경제 체질의 유사성 측면에서 우리에게 참고가 될 만하다.
대만은 1970년대까지 신생 채무국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으나 1980년대 이후 상품서비스수지 확대에 힘입어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유지해왔다(<그림 3> 참조). 서비스수지는 만성 적자를 면치 못했으나 꾸준한 해외투자의 결과로 소득수지가 1982년 이후 흑자를 지속해 경상수지 흑자에 한 몫을 했다. 그 결과 IIP 통계가 처음 작성된 2000년 부터 채권국으로서 면모를 과시할 수 있었다. 대만의 GDP 대비 소득수지 흑자의 규모는 2006년 2.6%로 일본(2.7%)과 더불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같은 해 순국제투자의 GDP 대비 비중은 109%로서 스위스(292%)와 홍콩(2004년 261%)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다. 소득수지의 구성 내역을 보면 급료 및 임금수지와 직접투자소득수지, 포트폴리오투자소득수지는 적자이나 해외예금, 장단기대출 등에서 나오는 소득이 포함되는 기타투자소득수지가 큰 폭의 흑자를 나타내고 있다.
일본 국제수지 구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역시 소득수지 흑자의 급증이다(<그림 4> 참조). 지난해 일본의 상품서비스수지 흑자는 7.3조 엔으로 전체 경상수지 흑자의 36%에 불과한 반면 소득수지 흑자는 13.7조 엔으로 경상수지 흑자의 69%를 차지했다. 경상수지 흑자의 GDP 대비 비중이 지난해(3.9%)와 비슷했던 20여년 전에는 상품서비스수지 흑자가 경상수지 흑자의 90%를 설명했었다. 지난해 일본의 순국제투자는 215조엔(1.8조 달러)로, 16년째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포트폴리오투자(69조 엔)와 외국인직접투자(41조 엔)가 절반 가량을 차지하며, 두 가지 투자에서 나오는 소득이 각각 10.5조 엔과 3조 엔으로 소득수지의 95%를 차지한다. 해외 포트폴리오 투자 비중이 높은 것은 1990년대 장기불황 국면에서 지속된 초저금리 상황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따른 전반적인 저축률 증가세의 영향이 컸다.
정책 과제 : 국내 플로우 활성화-해외 스톡 축적
가장 바람직한 대외거래 패턴은 글로벌시장을 한국인과 한국 기업들의 활동무대로 삼고 외국경제를 한국경제의 충격을 완화하는 버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에 조응하는 국제수지 단계가 바로 신생 채권국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신생채권국 단계의 이상적인 경제 펀터멘털의 모습은 이러하다. 개인, 기업 및 산업 수준에서 글로벌 경쟁력이 향상되어 해외시장을 활용한 부가가치 창출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해외투자를 통해 환류시킴으로써 환율, 물가 등 가격 측면의 불안정성을 예방하고 노후자금 같은 장기적인 소비의 재원으로 활용한다. 한 마디로 말해 국내적으로 부가가치 창출 극대화를 위한 유량(流量·flow) 활동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대외적으로는 투자자산을 불려가는 저량(貯量·stock) 축적이 순조롭게 이뤄지는 ‘내유외저(內流外貯)’의 경제구조라고 하겠다.
경제체질을 내유외저형으로 개조하기 위한 정책과제는 ‘혁신주도형 성장기반 확립’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저출산과 인구고령화의 급속한 진행, 경제 성숙화에 따른 국제분업구조 상 지위 변화(넛크래커 상황)와 비즈니스 기회 감소에 따른 투자 부진 등 현 단계 우리 경제의 구조적 제약요인들을 감안할 때 요소투입을 늘려 성장률을 높이는 투입주도형 성장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어내지 않고서는 글로벌 비즈니스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서비스업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특히나 시급한 과제다. 소득 증가 속도를 능가할 정도로 서비스 소비가 빠르게 고급화하고 있어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지 않는다면 서비스수지 적자가 고착될 우려가 있다. 전후방 연관효과가 큰 서비스업 부문들에 대한 진입장벽 해소와 일방적 시장개방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외적으로는 자산스톡 축적의 본격화를 위한 인프라 마련이 필요하다. 민간부문의 해외투자가 활성화되려면 ‘해외분산투자가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규제완화와 이를 통한 한국판 ‘빅뱅’을 통해 우리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제고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투자공사 등의 국부펀드(SWF)나 국민연금 등 공공부문이 해외투자를 선도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다만 공공부문의 해외투자는 가입자 또는 수탁자이자 수혜자인 국민들의 동의와 운용 관련 지배구조 개선을 전제로 최대한 신중히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 주간경제 951호
올해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작년(61억 달러)의 절반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는 더욱 줄어들어 1997년 83억 달러 적자에서 1998년 404억 달러 흑자로 전환한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도 있다. 향후 1년여 동안은 적지 않은 경기불안 요인에도 불구하고 경기회복과 원화절상으로 인해 수입이 수출보다 빠르게 늘어나고 서비스수지 악화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경상수지 흑자 기조의 약화는 전반적인 성장활력 둔화와 맞물려 우리 경제의 향후 전망을 어둡게 한다.
경상수지 기조는 경제성장 단계와 일정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경제개발 초기에 경상수지는 대체로 적자로 나타나며, 개발 성과가 가시화하면서 흑자로 전환한다. 나아가 경제가 고도소비사회라고 불리는 성숙 단계에 이르면 경상수지는 다시 적자로 돌아서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수지 단계론’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국제수지 구조는 몇 차례에 걸쳐 커다란 흐름 상의 변화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크게 보면, 경제개발 착수 이래 ‘경상수지 적자-자본수지 흑자’ 양상을 보이다 1980년대 후반 3저호황 시기에 ‘경상 흑자-자본 적자’ 구조로 바뀌었다. 그 후 ‘경상 적자-자본 흑자’로 되돌아갔다가 외환위기 이후 또다시 정반대로 뒤집혔다. 이하에서는 국제수지 단계론의 관점에서 우리나라 국제수지 구조의 특징을 살펴보고 개선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국제수지 변천의 7단계
국제수지 발전 단계는 상품서비스수지, 소득수지, 경상수지, 자본수지 등 부문별 국제수지와 대외 채권·채무 관계의 양상을 기준으로 적게는 4가지, 많게는 10여가지로 분류된다. 여기서는 부문 국제수지들의 구조를 일차적인 기준으로 하고 순국제투자(Net International Investment Position)를 보조지표로 삼아 국제수지 단계를 <표 1>에 나타난 것처럼 7가지로 세분해 살펴본다.
첫 번째 단계는 경제개발 착수 이전 시기에 대응하는 ‘신생 채무국 단계(New Debtors)’ 단계다. 전 산업에 걸쳐 대외경쟁력이 취약한 탓에 이 단계에서 상품서비스 수지와 경상수지는 만성 적자에 시달린다. 자본수지는 경제개발 재원으로 쓰이는 유·무상 원조의 지속 유입으로 인해 흑자를 이어간다. 제2단계는 ‘성숙한 채무국(Mature Debtors) ’단계로서, 비교우위 산업 육성에 성공한 결과 수출이 수입을 상회하는 점이 1단계와 다르다. 3단계는 수출로 벌어들인 외환으로 대외채무를 상환하게 되는 ‘채무상환국(Repayers)’ 단계이다. 소득수지가 적자임에도 불구하고 상품서비스수지 흑자가 더 큰 폭으로 늘어나 경상수지가 흑자로 전환하고 자본 흐름은 순유입에서 순유출로 바뀐다.
교역의 확대·심화, 수출 고도화 등에 힘입어 경제성장세가 지속되면 축적된 국내저축을 해외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그 초기인 제4단계, ‘신생 채권국(New Creditors)’ 단계에서는 상품서비스수지 흑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소득수지도 흑자가 된다. 그 결과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급증하고 대외순자산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전환한다. 소득 수준 향상에 따라 수입이 늘어나 상품서비스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면 ‘성숙 채권국(Mature Creditors)’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해외투자 소득이 꾸준히 유입됨으로써 소득수지 흑자로 상품서비스수지 적자를 보전할 수 있다. 하지만 고도소비사회가 되면 경상수지는 적자로 반전되어 해외자산을 처분해야만 소비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채권소진국(Drawers)’ 단계가 시작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주요 산업들에서 경쟁력 상실이 잇따르고 저축률이 회복되지 않으면 해외자산보다 대외채무가 많아지는 ‘노쇠한 채무국 또는 황혼경제(twilight economy)’로 전락하고 만다. 국제수지 구조가 신생 채무국과 비슷해지는 점을 고려할 때 퇴행기에 다름 아니다.
이상의 국제수지 단계 분류는 ‘국제수지 구조는 해당 경제의 성장과정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는 관점에서 이뤄진 것이다. 또한 경제는 마치 유기체처럼 시간 경과에 따라 생성-성장-소멸의 변천을 겪는다는 가정도 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글로벌 차원에서의 일국의 자금동원력을 그림으로 나타내면 <그림 1>처럼 경제성장에 따라 사이클을 그리며 변화하게 될 것이다.
세계 48개 주요국의 국제수지 단계 분류
지금까지 제시한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을 포함한 48개 주요국의 최근 5년간 국제수지 단계를 구분해 보면 <표 2>와 같다. 분류 결과를 살펴보면 위에서 말한 전제들과 상충되는 점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발전 단계와 국제수지 단계 간의 일대일 조응 관계를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4단계)이 아이슬란드(1단계), 아일랜드(2단계), 오스트리아(3단계) 등 선진국들보다 높은 단계에 속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또한 모든 나라가 1단계에서 출발해 순차적으로 높은 단계로 옮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쿠웨이트 같은 중동 산유국도 그랬지만 ‘다크호스 경제’라고 할 만한 중국은 4단계의 채권국으로서 국제경제 무대에 등장했다. 국제수지 단계가 같더라도 분류 배경이나 경제 펀더멘털 수준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이 7단계로 분류되었으나, 이는 경제 노쇠화의 결과가 아니라 기축통화국이라는 특수한 지위를 반영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상을 감안할 때 국제수지 7단계는 다양한 국제수지 구조의 경제적 맥락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이론적 모형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국제수지 단계 분류
최근 5년간(2002~2006년) 우리나라의 국제수지 구조는 제3단계, 즉 채무상환국 단계의 양상을 보여준다. 여기서 ‘채무상환국 단계’의 의미 해석에 주의해야 한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채권국·채무국 분류의 잣대로 이용하는 순대외채권(대외채권-대외채무)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1999년까지 채무국, 2000년 이후는 채권국 (2002~06년 순대외채권 연평균 901억 달러 흑자)이다. 본고의 ‘채무상환국 단계’란 국제투자대조표(IIP)상의 순국제투자(대외투자-외국인투자)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즉 순대외채권 기준과 달리 직접투자, 주식투자 등 상환 의무가 없는 지분투자까지 감안한 단계분류이다. 외국에서는 순대외채권 통계를 내지 않는 점을 감안해 여기서는 국가간 비교가 가능하도록 순국제투자를 기준으로 국제수지 단계를 분류한다. 순국제투자 기준을 적용할 때 우리나라는 현재 채무국 단계(2002~06년 순국제투자 연평균 1,250억 달러 적자)에 머물러 있다. 한편 IIP를 기준으로 쓸 때는 2001년 이후 IIP 작성 기준이 바뀐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2000년 이전 시기에 대해 부문별 국제수지 기준만을 적용하기로 한다.
부문별 국제수지를 기준으로 했을 때 우리나라 국제수지는 △1984년까지 1단계 △1985~89년 3단계 △1990~97년 1단계 △1998~2006년 3단계로 이어지는 변천을 했다(<그림 2> 참조). 1단계와 3단계 사이를 엎치락뒤치락했으나 결과적으로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우리나라 국제수지 구조의 특징
첫째, 경상수지의 대종을 이루는 상품서비스수지의 방향과 크기가 대외여건의 변화에 영향을 크게 받아 급변동하는 개도국의 면모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대외거래의 비중이 높아서 원자재 가격 상승, 원화절상 등에 직접 영향을 받는 점, 국가경제의 허리 역할을 하는 소재 및 부품 산업의 경쟁력이 약해 수출이 수입을 부르는 ‘가마우지 경제’ 체질이 굳어진 점,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결정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 발굴이 미흡한 점 등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점들이 반영된 모습이다.
둘째, 서비스수지의 만성적인 적자가 상품서비스수지의 흑자 기조를 약화시키고 있다. 부문별로 보면 여행수지, 사업서비스수지, 특허권등 사용료수지 등에서의 적자가 전체 서비스수지 적자의 주요인으로 나타난다. 이들 부문은 우리 서비스산업 가운데 경쟁력이 특히나 취약한 부문임을 감안할 때 서비스수지 적자 폭을 단기간에 줄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셋째, 경상수지를 구성하는 부문 수지들이 채무상환국 단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자본수지가 여전히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소득수지 개선이 미미한 형편이다. 이는 외국 투자자들의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에 비해 우리 가계나 기업들의 해외투자가 활발하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지속적 자본 유입은 외환의 대량공급을 통해 원화의 평가절상을 조장하고 있으며, 우리 금융시장에 잠재적 교란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제수지 구조 개선 방향
국제수지는 균형을 유지하는 게 좋다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외풍에 취약한 개방경제의 현실에서 국제수지 균형은 예외적인 현상이며 반드시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성장의 과실을 최대한 거두어 채권국으로 도약해야 성숙단계에서도 성장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 채권국 중에서도 가장 역동적인 신생 채권국 단계를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신생 채권국의 국제수지 구조는 ‘경상수지 흑자-자본수지 적자’로, 무역과 투자를 통해 매년 꼬박꼬박 수익을 얻고 그 수익을 다시 해외시장에 투자하는 패턴이다. 중국 같은 다크호스, 쿠웨이트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신생 채권국 단계에 있는 나라들은 대부분 선진국들이다. 그 중 대만과 일본의 사례는 경제성장 경로나 경제 체질의 유사성 측면에서 우리에게 참고가 될 만하다.
대만은 1970년대까지 신생 채무국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으나 1980년대 이후 상품서비스수지 확대에 힘입어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유지해왔다(<그림 3> 참조). 서비스수지는 만성 적자를 면치 못했으나 꾸준한 해외투자의 결과로 소득수지가 1982년 이후 흑자를 지속해 경상수지 흑자에 한 몫을 했다. 그 결과 IIP 통계가 처음 작성된 2000년 부터 채권국으로서 면모를 과시할 수 있었다. 대만의 GDP 대비 소득수지 흑자의 규모는 2006년 2.6%로 일본(2.7%)과 더불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같은 해 순국제투자의 GDP 대비 비중은 109%로서 스위스(292%)와 홍콩(2004년 261%)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다. 소득수지의 구성 내역을 보면 급료 및 임금수지와 직접투자소득수지, 포트폴리오투자소득수지는 적자이나 해외예금, 장단기대출 등에서 나오는 소득이 포함되는 기타투자소득수지가 큰 폭의 흑자를 나타내고 있다.
일본 국제수지 구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역시 소득수지 흑자의 급증이다(<그림 4> 참조). 지난해 일본의 상품서비스수지 흑자는 7.3조 엔으로 전체 경상수지 흑자의 36%에 불과한 반면 소득수지 흑자는 13.7조 엔으로 경상수지 흑자의 69%를 차지했다. 경상수지 흑자의 GDP 대비 비중이 지난해(3.9%)와 비슷했던 20여년 전에는 상품서비스수지 흑자가 경상수지 흑자의 90%를 설명했었다. 지난해 일본의 순국제투자는 215조엔(1.8조 달러)로, 16년째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포트폴리오투자(69조 엔)와 외국인직접투자(41조 엔)가 절반 가량을 차지하며, 두 가지 투자에서 나오는 소득이 각각 10.5조 엔과 3조 엔으로 소득수지의 95%를 차지한다. 해외 포트폴리오 투자 비중이 높은 것은 1990년대 장기불황 국면에서 지속된 초저금리 상황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따른 전반적인 저축률 증가세의 영향이 컸다.
정책 과제 : 국내 플로우 활성화-해외 스톡 축적
가장 바람직한 대외거래 패턴은 글로벌시장을 한국인과 한국 기업들의 활동무대로 삼고 외국경제를 한국경제의 충격을 완화하는 버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에 조응하는 국제수지 단계가 바로 신생 채권국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신생채권국 단계의 이상적인 경제 펀터멘털의 모습은 이러하다. 개인, 기업 및 산업 수준에서 글로벌 경쟁력이 향상되어 해외시장을 활용한 부가가치 창출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해외투자를 통해 환류시킴으로써 환율, 물가 등 가격 측면의 불안정성을 예방하고 노후자금 같은 장기적인 소비의 재원으로 활용한다. 한 마디로 말해 국내적으로 부가가치 창출 극대화를 위한 유량(流量·flow) 활동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대외적으로는 투자자산을 불려가는 저량(貯量·stock) 축적이 순조롭게 이뤄지는 ‘내유외저(內流外貯)’의 경제구조라고 하겠다.
경제체질을 내유외저형으로 개조하기 위한 정책과제는 ‘혁신주도형 성장기반 확립’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저출산과 인구고령화의 급속한 진행, 경제 성숙화에 따른 국제분업구조 상 지위 변화(넛크래커 상황)와 비즈니스 기회 감소에 따른 투자 부진 등 현 단계 우리 경제의 구조적 제약요인들을 감안할 때 요소투입을 늘려 성장률을 높이는 투입주도형 성장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어내지 않고서는 글로벌 비즈니스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서비스업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특히나 시급한 과제다. 소득 증가 속도를 능가할 정도로 서비스 소비가 빠르게 고급화하고 있어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지 않는다면 서비스수지 적자가 고착될 우려가 있다. 전후방 연관효과가 큰 서비스업 부문들에 대한 진입장벽 해소와 일방적 시장개방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외적으로는 자산스톡 축적의 본격화를 위한 인프라 마련이 필요하다. 민간부문의 해외투자가 활성화되려면 ‘해외분산투자가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규제완화와 이를 통한 한국판 ‘빅뱅’을 통해 우리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제고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투자공사 등의 국부펀드(SWF)나 국민연금 등 공공부문이 해외투자를 선도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다만 공공부문의 해외투자는 가입자 또는 수탁자이자 수혜자인 국민들의 동의와 운용 관련 지배구조 개선을 전제로 최대한 신중히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 주간경제 9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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