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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 12. 21:09

20세기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인 트랜지스터 탄생 40주년. 트랜지스터 하면 연상되는 기업은 인텔, 인텔에서 가장 기억되는 인물은 고든 무어. 무어의 법칙으로 유명한 그는 인텔의 기반을 다진 인물로 평가되며 엔지니어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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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연구소에서 윌리엄 쇼클리가 세계 최초의 트랜지스터를 개발하면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돌입하게 된다. 이후 윌리엄 쇼클리는 벨연구소 대우에 불만을 품고 쇼클리 반도체를 설립한다. 그러나 쇼클리 반도체 연구원 8명은 쇼클리의 제왕적 운영방식에 반대하며 독립해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설립한다. 페어차일드 반도체는 이후 자의는 아니지만 세계 반도체 기업의 모태가 된다. 쇼클리와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거친 반도체 설계 전문가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즈가 독립해 회사를 설립하는데, 이 회사가 바로 인텔이다.

8비트 반도체는 전문가 한명이 설계가 가능했기 때문에 1960년대 반도체 회사들이 많이 설립된다. 이후 16비트와 32비트 넘어가면서 팀 단위 설계인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1970년대 반도체 회사는 그리 많지 않다. 무어도 인텔의 성공 요인 중 운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고 할 정도로 인텔은 시작부터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신설 반도체 회사인 인텔은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동일기술로 시장에서 경쟁하기 보다는 남들이 채택하지 않은 방식을 채택하기로 결정하는데, 이 방식이 반도체 메모리 시장을 주도하게 된다. 7년이라는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면서 인텔은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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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무어와 ‘Moore's Law’

1929년생 고든 무어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버클리 대학에서 1950년 화학을 전공했고, 1954년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화학과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는다. 쇼클리에게 발탁되어 쇼클리 반도체에 입사했지만, 이후 페어차일드 반도체 설립에 참여하면서 쇼클리 와이프로부터 ‘8인의 배신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기도 한다. 1968년 로버트 노이즈와 함께 인텔사를 공동창립 해 부사장으로 근무하다 1975년 인텔사 최고 경영자가 된다. 이후 1987년 앤드루 그로브에게 최고경영자 자리를 내놓았으며, 1997년 이사회 회장도 은퇴하고 명예회장이 된다. 2001년 캘리포니아 공대에 부인과 함께 후학 양성을 위해 6억불을 기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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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는 인텔사의 최고경영자 무어보다 ‘무어의 법칙’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졌다. 페어차일드에 근무하던 시절 1965년 일렉트로닉스 잡지에 무어는 반도체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양은 12개월에 2배씩 늘어나는 개발추이에 대해 언급했지만, 잡지는 마치 12개월에 2배씩 늘어나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여한다. 이후 ‘무어의 법칙’은 IT 세상을 대표하는 법칙으로 발전한다. 최초에 언급한 것은 12개월이었지만, 개발추이에 따라 1975년 24개월로 수정되었다 이후 18개월로 정의되었다. 무어의 법칙에는 PC 성능 개선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PC 성능은 5년마다 10배, 10년마다 100배씩 개선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무어의 법칙에 따라 1971년 발표된 마이크로프로세서 4004는 2,300여개의 트랜지스터를 내장했지만, 최근 출시된 마이크로프로세서는 8억2000만개의 트랜지스터를 탑재했다.

그러나 무어의 법칙은 기술상의 문제로 2020년 정도에 종말을 맞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새로운 한계점에 도달한 80386 계열의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시대가 끝나면, 양자 컴퓨팅 또는 새로운 방식의 컴퓨터로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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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의 위기와 무어의 용퇴

메모리 반도체로 승승장구하던 인텔은 새로 나타난 일본 경쟁사들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한다. 1984년 인텔의 이익은 2억 달러에 육박했지만 1985년에는 200만 달러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반도체로 성공한 인텔 직원들은 일본기업에 뒤진다는 상황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때 앤드루 그로브는 당시 CEO 고든 무어에게 물었다. “만일 주주들이 우리를 내쫓고 새로운 경영진을 들여온다면, 새 경영진은 무엇을 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고든 무어가 대답했다. “회사의 역사를 생각지 않고 모든 것을 확 바꿔놓겠지.” 그러자 앤드루 그로브의 명언이 나온다. “그럼 우리가 새로 들어온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지금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하는 게 어떨까요?”

앤드루 그로브의 조언대로 무어는 1986년 반도체 사업을 포기하고, CPU 사업에 총력을 기울인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80386 마이크로프로세서다. 혁신적인 32비트 80386 계보를 이은 인텔사 제품은 이후 CPU 시장을 장악하게 되며, 이후 인텔은 안정된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80386의 성장을 확인한 고든 무어는 그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알고, 경영권을 앤드루 그로브에게 넘겨주고 이사회로 물러나게 된다.
- Beyond Promise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