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나면 항공기 제조산업의 숙청이 시작된다. 전쟁이 항공산업의 지대한 발전을 초래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쟁이 끝나면 정부라는 거대 수요가 사라지고, 점차 항공기 제조업체의 공급과잉으로 수익률이 떨어져 도산이 이어지며 이 중 거대기업만이 생존한다. 민간항공기를 구매하는 항공사의 경우 선택할 수 있는 항공기 종류가 제한돼 차별화 전략에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1978년 미국정부가 항공사 시장 진입 장벽을 철폐하면서 항공사 시장에도 생존 경쟁이 시작된다. 미국 거대 항공사들은 지역별 허브 공항을 거점으로 전세계를 연결한다. 소형 항공사들은 허브공항보다는 수요가 많은 지역간 직항로를 개설해, 거대 항공사들의 틈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규제 철폐 이후 미국 내 120여개 항공사들이 쓰러졌으며, 여기에는 미국 3대 항공사 중 하나로 꼽히던 Pan Am도 포함되어 있다. 항공사의 높은 항공기 구매 비용은 경영압박을 발생시킨다. 비행기 한대의 구매 원가가 높아 이익을 발생시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반면, 저가 항공사들이 등장하면서 경쟁이 치열해 적정 수준의 항공료를 받을 수 없다. 시장에서 이기려면 가장 최신의 가장 좋은 항공기를 더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래저래 적자는 쌓일 수 밖에 없다. 미국 내 항공사 부채규모는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런 취약한 재무구조 때문에 대부분의 항공사들은 성장기회를 놓치고 만다.
서비스 지존 델타 항공, IT의 지존 아메리칸 항공
경영학의 대가인 톰 피터스는 1981년 ‘초우량기업의 조건’이라는 저서에서 델타 항공의 고객서비스에 대해 극찬했다. 델타 항공은 이 책 덕분에 5억 달러에 이르는 무료광고 효과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델타 항공을 이용한 대부분의 고객은 톰 피터스의 평가에 동의할 정도로 델타 항공의 서비스는 기업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었다.
1982년 항공 산업이 침체에 빠지자 다른 경쟁사들이 직원들을 해고시키거나 임금을 삭감하는 정책을 펼쳤지만, 델타 항공은 직원들 임금을 오히려 인상시킨다. 델타의 성공은 직원들 덕분이었고, 생산성과 품질의 향상만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요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조치로 델타 항공의 일인당 생산성과 고객 서비스는 더욱 더 향상되었으며, 항공 산업을 지배하는 위치에 도달하게 된다.
한편, 아메리칸 항공은 1929년 설립된 오랜 전통의 항공사로 여러 항공사를 인수·합병하면서 성장해왔다. 아메리칸 항공은 고객서비스의 일환으로 제트기 도입에 앞장 선 항공사이며, 1962년에는 전자항공예약시스템인 세이버(SABER)를 항공사로는 처음으로 도입한다. 이후 세이버는 유럽과 아시아 지역의 항공사 지점에 확대 설치되어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도 컴퓨터를 이용해 아메리칸 항공 예약이 가능하도록 했다.
세이버는 이후 1980년대 거점지역에서 전세계로 확산되자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1980년대 후반 아메리칸 항공이 항공 서비스를 그만두고 세이버 사업에만 전념해도 델타 항공이 항공사업으로 벌어들이는 전체 이익보다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아메리칸 항공은 마일리지 서비스를 가장 먼저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저비용 항공사들이 속출하자, 비상에 걸린 항공사들은 고객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고객이탈 방지 프로그램으로 마일리지 서비스를 도입한다. 마일리지 서비스는 캐쉬백 마케팅의 원조로 꼽히고 있다.
저가 항공사와 경쟁을 위한 각기 다른 선택
미국의 항공망은 상당히 복잡하다. 이들 모두를 직항으로 하기에는 위험부담이 크며, 관리 역시 쉽지 않다. 대형항공사가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허브공항이다. 주별로 하나의 허브공항을 정하고, 우선적으로 허브공항으로 이동한 후 하위 공항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허브공항을 통해 복잡한 항공노선을 정리할 수 있었으나 저가항공사는 이런 허브공항의 단점을 파고든다. 사우스웨스트 항공과 같은 신생항공사들이 이용객이 많은 노선에 직항서비스를 제공하자 고객들은 저렴한 비용과 시간 단축을 이유로 급격하게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허브공항의 가치가 퇴색하게 된다. 이제 저가항공사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때 두 기업은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대응을 했으며, 그 결과는 상이한 차이를 나타내게 된다. 델타 항공은 여행사라는 기존 항공권 판매망이 있기 때문에 전자항공예약시스템 도입을 고려하지 않았다. 항공사 비즈니스가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본업에 충실하면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아메리칸 항공은 IT 도입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보였기 때문에 새로운 IT 구축으로 경쟁력 강화를 시도한다.
아메리칸 항공, VIP 고객을 위한 인터넷 사이트 구축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여행사를 통한 판매도 중요하지만, 항공사 자체 판매도 중요한 이슈로 부각된다. 아메리칸 항공은 1994년 예약센터에 걸려오는 전화가 예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50%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충격적인 보고를 받고, 예약시스템을 새롭게 개선하기로 결정한다. 우선적으로 주요 고객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시작했다. 이용 빈도가 높은 VIP 고객 모두가 PC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은 여행 스케줄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작성할 수 있는 환경을 요구했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원하는 출장 지역의 항공권 예약과 호텔 정보를 받기 원했지만, 근무시간 이후 콜 센터가 이를 대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때문에 고객이 필요한 정보를 인터넷으로 제공하기로 결정했지만, 기존 사이트로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고객을 위한 새로운 사이트를 개설한다. 이때 구축한 정보는 고객센터 상담원들이 고객 상담에 사용하는 데이터였다. 이를 모아 웹 사이트에 제공했다. 중요도를 분류해 3차에 걸쳐 고객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올렸으며, 그 결과 고객들은 상담원을 통해 얻는 정보보다 웹 사이트에서 얻는 정보가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덧붙여 경쟁사 운항 정보까지 비교 가능하도록 하였다. 고객들은 경쟁사보다 아메리칸 항공에서 경쟁사 운항정보를 보다 상세하게 알 수 있었다. 효과를 확인한 아메리칸 항공은 이제는 수화물 관리, VIP 고객 관리, 공항관리, 예약 시스템을 하나로 묶는 작업을 시작했다. 전산실에 각 부서에서 차출된 인력이 컨텐츠 관리를 시작했으며, 1996년부터는 개인 계정 발급을 통해 마일리지, 항공편, 호텔, 식당 이용에 관한 내역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축적된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공석이 많은 주말에 적용하는 운임할인 프로그램을 이메일로 발송하면서 주말 빈 자리를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메일 서비스를 신청한 고객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발 빠르게 이메일을 통해 빈 좌석 확인과 항공권 예약이 가능하도록 했다. 판촉행사 후 대체로 판매 증가곡선이 하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아메리칸 항공은 판매가 줄어들지 않았다.
그 밖에도 고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마일리지를 숙박시설과 음식점에서도 사용가능하도록 했으며, 1997년에는 종이가 없는 항공권 판매를 구현했다. 이런 결과 1998년에는 웹 사이트를 통한 예약 서비스를 2배로 늘려 잡았지만, 1/4분기에 가볍게 기대치를 넘어서고 말았다. 이후 다른 경쟁사들이 아메리칸 항공의 인터넷 시스템을 모방했지만, 아메리칸 항공의 인터넷 회원수는 아직도 경쟁사를 압도하고 있다.
서비스만 고집한 델타 항공 결국 파산의 길로
아메리칸 항공의 발 빠른 대응과 달리 델타 항공은 서비스만 고집했다. 물론 델타 항공의 서비스는 탁월했지만 마케팅은 낙제점이었다. 다른 항공사들이 단순한 가격할인 정책과 인터넷 경매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델타 항공은 복잡한 가격할인 계획을 내놓아 여행사의 외면을 받기 시작한다. 결국 델타 항공은 직원을 배려하는 회사라는 명성을 포기하고 조종사와 직원을 해고하기 시작하면서, 델타 항공의 가장 큰 장점이었던 서비스까지 포기해야만 했다. 좋은 서비스만이 기업의 전체 가치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76년 전통의 델타 항공은 2005년 9월 파산 신청을 하게 된다. 또 다른 경쟁의 시작최근 두 기업의 변화는 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2005년 파산한 델타 항공은 2007년 4월 파산보호 상황에서 벗어났으며, 2008년 2월 노스웨스트 항공과 합병 계획을 발표했다. 이대로 합병이 진행된다면 수송량에서 세계 1위인 아메리칸 항공을 능가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아메리칸 항공이 델타에게 도전해야하는 상황이 펼쳐질 지도 모른다. 바야흐로 경쟁의 2라운드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 Beyond Promise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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