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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5. 1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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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소프트웨어가 공식적으로 사망을 선고받았다. 넷스케이프 개발사인 AOL은 3월 1일부로 이 이상 넷스케이프의 업그레이드는 없으며, 기존 사용자들은 넷스케이프 대신 파이어폭스를 사용할 것을 권유했다. 넷스케이프 탄생 14년 만에 일어난 사건이다.

군사적인 목적으로 개발된 인터넷은 개발 초기부터 값비싼 컴퓨터를 소유할 수 있었던 소수의 군인과 과학자들만이 이용할 수 있었다. 소수가 이용하던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부터다. 영국의 팀 버너스 리는 그가 근무하고 있던 스위스 유럽 입자물리연구소에서 연구원 간의 체계적인 정보 공유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동료 한 명과 함께 개발에 들어간다. 1990년 그는 웹 브라우저 개발에 성공하며 크리스마스에 이 브라우저로 최초의 웹 서버인 info.cern.ch과 통신하는 데 성공한다. 한 개인의 열정으로 World Wide Web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팀 버너스 리는 이후 인터넷 언어인 HTML, 통신 규약인 HTTP, 서버 이름인 URL 등을 순차적으로 개발한다.

본격적인 브라우저 활용이 가능해진 시점, 그는 그가 개발한 것들에 대해 지적재산권을 행사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 하게 된다. 결국 그는 자신이 개발한 것들을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특허 출원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무료로 공개하기로 결정한다. 그의 결정은 이후 인터넷 산업의 오픈소스라는 커다란 주류를 형성하게 된다.

팀 버너스 리의 업적은 위대했지만 그가 개발한 브라우저에는 많은 한계점이 있었다. 브라우저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었던 것은 텍스트밖에 없었다. 물론 그가 브라우저를 개발할 시점은 MS DOS 시절로 지금처럼 멀티미디어 소스가 풍부했던 것도 아니고, 소수의 멀티미디어 소스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었던 솔루션도 없었다. 그리고 MS DOS 역시 그래픽을 제대로 지원할 수 있는 OS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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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스케이프, 빼어난 기술력으로 시장 선도

1993년 NCSA(National Center for Supercomputing Applications)에서 근무하던 일리노이 대학의 마크 안드리센은 몇몇 대학 동료들과 함께 파트타임으로 이미지까지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웹 브라우저를 개발한다. 그가 개발한 것이 최초의 멀티미디어 웹 브라우저인 모자이크다. 최초 버전은 유닉스 버전이었지만 이후 PC와 맥킨토시 버전을 개발해 공개한다. 이 프로그램이 공개되자 93년 한 해에만 100만 건의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한다. 네티즌들은 새로 개발된 브라우저에 찬사를 보냈지만 정작 NCSA는 안드리센을 홀대한다. 새로운 버전의 모자이크 개발팀에서 그를 따돌린 것이다. 이후 라이선스 문제로 NCSA와 안드리센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었고 결국 안드리센은 모자이크 개발에 참여한 대학동료들과 독립해 회사를 설립한다. 이때 그가 창업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이가 바로 실리콘 그래픽스의 창업자인 짐 클라크다.

클라크와 안드리센이 처음 설립한 회사명은 모자이크 커뮤니케이션즈였지만, NCSA가 라이선스 문제를 제기하자 이름을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즈로 바꾼다. 이로서 세계 첫 닷컴 기업이 탄생한 것이다.

이들은 NCSA에서 개발했던 모자이크를 기반으로 새롭고 혁신적인 브라우저를 개발하는데 이것이 바로 넷스케이프 1.0이다. 이들이 개발한 프로그램은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전 세계에 확산되었고, 한때 시장 점유율이 87%에 육박하기도 한다. 웹 브라우저 시장은 사실상 넷스케이프가 독점한 것이다. 이때 MS의 인터넷 익스플로러(이후 IE)의 시장점유율은 4%였으므로 MS의 IE가 넷스케이프의 경쟁자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었다.

이런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바탕으로 1995년 8월 9일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즈는 나스닥에 상장된다. 상장 다음날 넷스케이프 주가는 28달러에서 58.26달러로 마감할 정도로 시장에서의 반응은 뜨거웠다. 비록 넷스케이프가 올린 실적은 미미하지만 앞으로 인터넷이 성장할수록 넷스케이프의 미래는 더욱 밝다고 많은 투자가들은 생각했다. 이후 많은 IT 기업들이 넷스케이프를 성장 모델로 삼게 된다. 넷스케이프 역시 팀 버너스 리 처럼 인터넷 문화를 만드는 데 많은 공헌을 했다. 넷스케이프를 비상업적으로 이용할 경우 무상 배포가 가능했으며, 넷스케이프는 수익의 대부분을 광고에서 실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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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개발할 수 없다면 합병해서 적을 공격한다

MS의 빌 게이츠는 인터넷 비즈니스에 대해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인터넷은 정보를 서로 자유롭게 교환하게 만들어진 오픈소스이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돈이 되는 비즈니스를 창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인터넷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빌 게이츠가 넷스케이프에게 위협을 느끼게 된 것은 OS가 컴퓨터 플랫폼이라는 개념에서 웹 브라우저가 컴퓨터 플랫폼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나면서부터다. 실제 패러다임의 변화는 구글 탄생 이후 시작되었고 실제 그 시절에는 너무 이른 표현이었음이 분명하지만, 윈도우 3.1로 전 세계 데스크톱 시장을 독점해 나가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런 패러다임을 사용자들이 인식한다는 것을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더욱이 넷스케이프의 급속한 성장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새로운 도전으로 보였던 것이다.

인터넷 브라우저 시장에 진출하기로 결정은 했지만, 인터넷 웹 브라우저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상황이었고, 자체 솔루션 개발 능력이 전무했기 때문에 자체 개발보다는 과감하게 소스 업체를 매수한다. 1994년 12월 16일 넷스케이프에 대항하기 위해 익스플로러 1.0을 출시한다. 그러나 넷스케이프에 비해 형편없는 성능에 사용자들은 IE를 비웃으며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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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는 것이 善이다

MS는 모자이크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던 NCSA에서 코드 사용 라이선스를 사들인다. 이를 기반으로 IE가 개발된 것이다. 결국 마크 안드리센이 개발한 브라우저가 넷스케이프의 성공을 가져다 주었지만 목을 조르는 무기도 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의 독점적인 지위를 활용해 넷스케이프를 무너뜨리기로 결정하고 IE를 윈도우에 기본으로 탑재한다. 게다가 무료로 배포한다. 물론 넷스케이프 역시 일반 사용자들에게는 무료로 배포하고 있지만 엄연한 상업용 프로그램이었다.

가장 혁신적인 OS로 평가받는 윈도우 95에는 IE가 탑재되지 않았다. 넷스케이프와 마찬가지로 다운로드 받아서 설치해야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런 경쟁은 후발주자인 MS에게 불리했다.

MS는 사용자 선택의 폭을 줄이기로 결정한다. 윈도우 95 플러스 팩에는 IE를 탑재해 OS 인스톨 과정에서 IE를 인스톨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해 언론과 경쟁사가 불법이라고 주장하자, 아예 OS에 통합한다. 윈도우 95가 판매되던 시절은 대부분 모뎀을 통해 프로그램을 다운받아서 실행해야 했기 때문에 인스톨 CD에 포함된 익스플로러는 성능은 미흡했지만, 편의성 때문에 사용자가 증가하기 시작한다. MS는 새로운 OS를 출시할 때마다 새로운 IE를 탑재하는 전략을 활용한다. 윈도우 NT 4.0에는 IE 2.0을, 윈도우 98에는 IE 4.0을, 윈도 XP에는 IE 6.0을 포함했다. IE 4.0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MS는 넷스케이프의 시장점유율을 넘어서게 된다. 넷스케이프사는 독립적인 프로그램인 IE를 OS에 결합한 것이 독점이라고 법원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팔려나가고 있는 인스톨 CD 판매를 막을 수는 없었다. MS는 OS와 결합되었기 때문에 지금 당장 분리 하기에는 난색을 표시했고, 넷스케이프는 이런 MS의 정책에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시장에서 서서히 퇴출되면서 AOL에게 판매되고 만다. 문제는 AOL은 넷스케이프를 인수하기는 했지만, 이를 활용할 그 어떤 전략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AOL의 넷스케이프 인수는 IT 관련 최악의 M&A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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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자가 사라진 후

그 누구보다 소프트웨어 업계에 화려하게 등장했던 넷스케이프의 영광은 5년도 안 돼 시들어 버린다. 기술력과 마케팅 능력이 떨어지기 보다는 MS의 집중포화를 감당하기에는 조직과 자금이 너무 부족했다. 사실 MS는 가장 돈이 많은 IT 기업 중 하나다. MS의 눈에 뜨였다는 것은 MS의 공격을 받을 확률이 높은 시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는 MS가 진출하는 시장에서 모든 기업들이 물러나주기를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리고 경쟁하게 될 경우 합병을 통해서라도 철저하게 짓밟는 것이다. 기업윤리를 버렸다고 하지만, 윤리보다는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소비자들도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MS의 손을 들어주었다. MS는 경쟁 제품을 제거하기 위해 저가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는 나쁠 것이 없었다.

물론 경쟁자가 사라진 시장에서 고가의 정책을 펼치기도 했지만 말이다. MS는 유틸리티 개발 경쟁사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자신의 강점인 OS에 유사 유틸리티를 포함하는 정책을 많이 펼쳤다. 1990년대 압축 프로그램을 MS-DOS에 포함하여 Stac을 제거했고,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로 멀티미디어 시장을 섬멸했고, MSN 메신저로 전 세계 메신저 시장을 장악했다. 물론 이런 독과점에 대한 사용자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무료로 제공하였다. 언론들은 MS 정책이 공정하지 않다고 비난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목표는 독점이기 때문이며, 이를 충실하게 행한 MS가 과연 잘못한 것인가? 살아남지 못한 기업들이 잘못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경쟁자가 사라진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 IE 업그레이드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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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가쁘게 개발되었던 IE가 버전 6에서 한참 동안 멈추게 된다. IE 개발팀과 MS를 다시 바쁘게 만든 것은 역시 넷스케이프다. IE의 공격에 허물어지기 시작한 넷스케이프는 1998년 결단을 내린다. 바로 넷스케이프 소스 코드를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것이 모질라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그러나 시작과 동시에 모질라 개발자들은 난관에 봉착한다. 공개된 코드가 복잡하고 협력사와의 라이선스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 코드의 사용을 포기하고 새로운 엔진과 새로운 브라우저 개발을 시작한다. 그러나 AOL이 모질라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등 중간과정은 순조롭지 않았지만, 구글과 같은 기업의 기부를 받아 넷스케이프를 넘어선 브라우저 개발에 성공한다. 이것이 모질라 파이어폭스다. 전체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던 MS는 파이어폭스가 독일에서 40%, 미국에서 15%의 시장점유율을 넘어서자 IE 7.0 개발을 서두르게 된다. 죽은 넷스케이프가 산 MS를 춤추게 한 것이다.
- Beyond Promise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