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 19. 05:40
한중 FTA 논의가 조만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중국이 체결한 FTA 사례를 통해 중국의 FTA 추진 배경과 전략을 살펴보고, 우리의 대중국 FTA 대응에 대한 시사점을 찾아본다.
한미 FTA 타결에 이어 한EU FTA 협상의 막이 올랐다. 다각적인 FTA 추진에 대한 공감대가 점차 형성되면서 한국경제의 글로벌화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최대 교역대상국인 중국과의 FTA 논의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방한한 원자바오 총리가 한중FTA 조기 체결을 희망한다는 공식입장을 거듭 밝힐 정도로 중국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산·관·학 공동연구가 예정대로 올해 안에 끝나고 한국 내에서 한중 FTA 추진에 대한 공감대만 형성된다면 내년부터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글에서는 중국이 최근 FTA를 적극 추진하는 배경과 기존에 중국이 체결한 FTA 사례를 통해 중국의 전략을 점검하고, 이에 대한 한국의 대응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발 빠르게 움직이는 FTA 후발주자, 중국
중국이 처음부터 FTA에 큰 관심을 가져왔던 것은 아니다. 1991년 APEC 가입 이후 상당기간 역내협력에 대해 회의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했으며 한 때는‘아시아통화기금(AMF)’ 구상에 대해 반대입장까지 보였다. 그러나 1999년 미국과의 관계 악화로 주변국과의 협력 강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면서 수동적이던 지역경제통합 추진 전략이 능동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 특히 2001년 WTO 가입 이후 세계경제에 급속히 편입되면서 세계화와 지역경제협력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사실을 인식, FTA 등 지역협력 추진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변신했다. 일부 반FTA 세력이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것과 달리 중국 국내에서는 FTA 찬성을 제창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높은 실정이다.
비록 중국의 FTA 추진은 늦게 시작되었지만 진행속도는 매우 빠르다. 중국 상무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2007년 4월까지 20여 개 국가를 포함하는 10건의 FTA 협상을 타결했거나 추진 중이며, 2006년 현재 이 국가들과의 무역액은 대외무역 총액의 24%에 해당하는 4천244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ASEAN 10개국, 2005년과 2006년에 칠레, 파키스탄과 각각 FTA협정을 체결하였고, 홍콩, 마카오와는 경제협력강화협정(CEPA, Closer Economic Partnership Arrangement)을 통해 완전한 시장개방을 이루었다. 현재 FTA 공식협상국은 호주, 뉴질랜드를 비롯하여 아이슬란드 등을 들 수 있고, 걸프협력협의회(GCC),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과도 FTA 추진에 합의하였다.
중국의 FTA 추진 속셈 헤아리기
중국이 FTA를 추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크게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FTA를 추진하는 다른 대부분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관세인하 및 비관세장벽 철폐를 통해 시장 접근성 향상과 산업고도화 촉진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고품질 저가격의 상품과 서비스 구입 기회 확대와 같은 소비자 측면의 이득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다음으로는 세계무역질서 변화에서 소외 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빠르게 지역통합을 추진하는 와중에 가만히 있으면 국제통상 무대의 중심에서 변두리로 내몰리는 ‘변연화(邊緣化)’ 상황에 부딪히고 무역전환효과로 피해를 입기 마련이다. 또한 FTA를 통해 대선진국 교역의존도를 낮춤으로써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무역마찰, 특히 급속히 늘어나는 중국기업을 상대로 한 반덤핑 제재로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의 해결책을 찾으려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접근을 통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以經促政)’하기 위함이다. 중국은 자국 중심의 경제블록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궁극적으로 NAFTA, EU에 이은 제3의 ‘경제중심’으로 요약함으로써 세계무대에서 미국의 거센 입김을 약화시키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상무부 등 주요 기관들의 자료에 나타나듯, FTA를 통해 인민폐의 국제화 추진, 국제정치적 지위와 다자간 무역협상에서의 협상력 향상은 물론, 많은 국가와 협력관계를 맺음으로써 최근 일부 개발도상국과의 관계 강화에 나서고 있는 대만을 효과적으로 견제하려는 의도도 갖고 있다. 최근 중국의 외교정책은 종래의 수동적 자세(韜光養晦)로부터 책임을 지고 적극 행동(有所作爲)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면서 ‘평화굴기(和平屈起)’라는 개념을 강조하고 있는데 FTA가 이런 자국의 부상에 유리한 외부환경을 조성할 수 있고 ‘중국위협론’을 진정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 경험 축적 및 수출시장 다원화
중국은 FTA 파트너 선택에 있어 경제규모가 작은 국가나 지역그룹을 먼저 고려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한국이 칠레, 싱가포르 등과의 FTA를 통해 실전 경험을 먼저 쌓은 후 그 대상을 점차 확대했던 것처럼 중국 역시 자국산업에 대한 충격이 크지 않은 나라와의 협상을 통해 경험을 축적하기 위해 세운 방침이다. 중국의 주요 교역대상국이 선진국들인데도 불구하고 FTA 타결 국가가 비선진국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전략은 협상역량 강화와 남남협력을 통해 개도국 그룹에 대한 협상력을 증가시키는 데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신시장을 향하여 (邁向新市場)’라는 시장다원화 전략에도 도움을 준다. 즉, 중국은 선진국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개도국을 잠재시장으로 개척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다방위(多方位), 다형식(多形式)의 전략을 내세워 대륙별로 대표적인 나라를 선택해 동시다발적인 협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 대주변(大周邊) 선점 전략
‘대주변’이란 동아시아를 주축으로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그리고 러시아, 호주, 뉴질랜드 등 아태지역 국가에 이르기까지, 즉 중국을 중심으로 둘러싸인 주변지역을 큰 범주로 정의하여 가리키는 말이다. 중국은 FTA 파트너를 선택할 때 이 ‘대주변’ 국가들을 우선 고려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물론 중국의 주요교역국이 이 지역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국을 중심으로 넓은 지역블록을 구축하려는 중장기적인 계획이 있다.
중국 상무부 국제무역경제합력연구원 주임 쉬창운(徐長文) 등 학자들의 보고서나 발언을 보면, ‘전세계적으로 FTA 추진사례를 살펴볼 때, 대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중국이 역내경제협력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은 필연적’이라며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으로서의 책임(大國責任)을 져야 하고 자국시장 개방을 통해 대국으로서의 믿음직스러운 이미지를 확립시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것이 눈에 띄는데 이런 시각은 중국에서는 매우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동아시아 최대 영토국이자 인구 보유국이며 유일한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동시에 동아시아 문화의 발상지이므로 FTA를 추진할 때도 대등한 공동체 의식보다는 대국과 주변국이라는 자국중심적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의 ‘대주변을 향하여(邁向大周邊)’ 전략 역시 이런 사고방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 국내 경제정책 효과 극대화
중국 내 경제정책도 FTA 전략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중국 서남지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ASEAN과 가장 먼저 FTA를 체결한 것도 서부대개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동남아는 중국 서부지역의 남하(南下) 통로와 주요 수출시장이면서 화교자본이 집중돼 있는 지역인데 양 지역 간 관계가 더욱 공고해지면 화교 자본을 서남지역으로 끌어들이기가 한결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FTA 체결 이후 광시(廣西)성을 자유무역지대의 물류중심과 자원투자개발중심으로, 운남(雲南)성을 비즈니스교류중심으로 건설하겠다는 움직임이나, 이를 위해 광시성 지역에 대한 인프라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 안정적인 ‘에너지 및 자원 공급원 확보
중국은 경제고성장에 따른 자원부족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FTA를 통한 자원확보를 매우 중시한다. 칠레(구리), 호주(철광석, 아연, 니켈), 아이슬란드(알루미늄) 등은 모두 중국의 주요 광물 수입국이며, GCC 6개국이 전세계 45%이상의 석유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중국의 의도는 자명하다. SCO 국가들과 군사안보협력 이외에 경제협력관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이 국가들의 풍부한 에너지 매장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은 SCO 국가들을 ‘서쪽으로 펼치는 날개(西翼)’에 비유할 정도로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연결하는 ‘에너지 수송통로’의 역할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중국은 대문을 얼마나 열 것인가?
현재까지 중국이 체결한 중-ASEAN 및 중-칠레 FTA는 상품무역 분야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완결된 FTA라고 보기 힘들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작년 9월 중-칠레 간 ‘투자촉진합작 양해각서’를 체결한 데 이어 지난 4월 2차 협상을 개시함으로써 양국 간 FTA는 서비스, 무역 및 투자 영역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또 ASEAN을 중국기업의 해외투자, 건설공사 수주와 노동인력 진출(勞務合作)의 중요한 시장으로 여김으로써 ‘앞으로 서비스, 투자 등이 포함된 포괄적인 FTA를 목표로 한다’는 의지도 밝힌 바 있다. 2006년 체결된 중-파키스탄 FTA에서도 투자촉진 및 보호 등 관련규정이 마련되어 있어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FTA의 추진범위가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호주 등 선진국의 경우, 중국식 협상 모델, 즉 상품무역분야를 우선 타결하고 상황을 봐서 서비스, 제도 등까지 협력분야를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을 거부하고 지적재산권, 투자정책 등 ‘소프트 부문’이슈까지 일괄 타결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서비스부문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국 입장을 고려할 때 타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또, 비록 FTA협정을 통해 일부 비관세장벽 철폐, 투자환경개선 등이 약속되더라도 현재 중국의 시장경제발전수준을 감안할 때 이를 모두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장메커니즘 개선, 사회제도 선진화 등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한 실정이다. FTA 협정을 맺는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독자표준정책을 포기하고 글로벌 스탠다드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에는 아직도 수많은 비관세장벽이 존재한다. 예컨대, 일부 전자제품은 반드시 중국정부가 지정한 CCC(China Compulsory Certification)인증을 획득해야만 수입 및 유통이 가능하고, 또 지역과 세관직원에 따라 통관처리기준이 상이하며 관련 규정이 공개되지 않거나 사전예고 없이 변경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한 예로, WTO 가입을 위해 자동차 국산화율이 40%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을 폐지했지만 수입부품 금액이 완성차 전체 부품 원가의 60% 이상인 경우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새로운 ‘대책’이 나오기도 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의 개방 확대는 불가피하겠지만, 중국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대내외 정책 기조를 감안할 때 그 속도는 상당히 더딜 전망이다.
중국이 한국에게 ‘구애’하는 까닭은?
그렇다면, 중국이 한국에게 FTA 협상을 먼저 제의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중국은 동아시아 지역 경제통합을 위해 가장 중요한 두 지역으로 남중국해 주변과 환황해(環黃海)지역을 꼽고 있으며, 한국과 ASEAN이 각각의 지역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한중FTA를 성공적으로 출범시킴으로써 역내에 있는 다른 나라들이 한중 중심의 경제협력체로 쏠리도록 하는 ‘FTA 도미노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둘째, 일본, 미국과의 주도권 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다. 한미 FTA 타결로 한층 커진 한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에 대응하여야 하며, 만약에 한국이 일본과 먼저 FTA를 맺게 되면 중국의 처지가 매우 불리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먼저 선수를 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셋째, 한중 FTA를 통해 쇠퇴의 길에 들어선 동북3성의 개발을 촉진하려는 의도가 있다. 중국의 11.5규획에서 강조하는 ‘동북진흥’ 정책이나 ‘중국은 앞으로 각종 첨단기술, 특히 정보기술을 중점적으로 개발해 정보화를 바탕으로 한 산업화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정부방침을 감안할 때 IT강국인 한국과의 FTA를 통해 산업고도화를 가속화시키려는 목적도 있어 보인다.
중국과 FTA 협상을 한다면
중국은 2008년 안에 한국과의 FTA 협상에 실질적인 진전이 있길 기대하고 있으며, 2010년까지 한중 FTA를 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등 한중 FTA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한중간의 무역 및 투자 관계는 FTA가 아니더라도 갈수록 심화되는 추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한국의 민감한 품목에 대해 예외 인정과 같은 유연한 대처가 가능하다는 입장까지 밝히면서 한중 FTA의 적극 추진을 희망하는 것은 동아시아 주도권확보 등 정치적 동기와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의 이런 주도권 경쟁심리를 감안할 때 한EU FTA, 한일 FTA 등의 추진을 한국의 협상력 제고에 기여하는 레버리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중국이 ASEAN과의 협상 당시 조기타결을 위해 상당한 양보를 하며 조기자유화조치(Early Harvest Program)에 동의했다는 점을 근거로 한중 FTA에서도 많은 양보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ASEAN과의 교역비중은 비교적 높지 않지만 한국은 중국의 제3대 무역국인 만큼 한국과의 FTA는 중국경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보다 중국의 입장이 더 다급한 만큼 한국은 대중 협상에서 좀 더 유리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비록 중국은 한중 FTA 협상을 상품무역 중심으로 이끌어 가려고 하겠지만 한국은 한국 기업들의 중국 시장 진출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단순 상품무역 차원이 아닌 투자 및 지적재산권 보호 등을 포함한 수준 높은 FTA를 추진해야 한다. 아울러, 글로벌 스탠다드 정착, 비관세장벽 철폐 및 정책투명화 등을 강력히 요구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아직까지는 투자 관련 논의를 꺼려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한중FTA를 추진하는 목적 중 하나가 동북3성에 대한 투자유치라는 점에서 투자자유화 논의를 협상테이블에 올릴 여지도 상당히 크며, 한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FTA보다 ‘양자간 투자협정(BIT)’을 먼저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경제발전수준, 산업구조 등 여러 면에서 중국의 다른 기체결 대상국들과 달라 한국이 FTA 협상 시 참고할 만한 선례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좀 더 여유를 갖고 호주 등 선진국과의 협상 진전을 지켜보면서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 주간경제 936호
한미 FTA 타결에 이어 한EU FTA 협상의 막이 올랐다. 다각적인 FTA 추진에 대한 공감대가 점차 형성되면서 한국경제의 글로벌화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최대 교역대상국인 중국과의 FTA 논의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방한한 원자바오 총리가 한중FTA 조기 체결을 희망한다는 공식입장을 거듭 밝힐 정도로 중국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산·관·학 공동연구가 예정대로 올해 안에 끝나고 한국 내에서 한중 FTA 추진에 대한 공감대만 형성된다면 내년부터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글에서는 중국이 최근 FTA를 적극 추진하는 배경과 기존에 중국이 체결한 FTA 사례를 통해 중국의 전략을 점검하고, 이에 대한 한국의 대응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발 빠르게 움직이는 FTA 후발주자, 중국
중국이 처음부터 FTA에 큰 관심을 가져왔던 것은 아니다. 1991년 APEC 가입 이후 상당기간 역내협력에 대해 회의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했으며 한 때는‘아시아통화기금(AMF)’ 구상에 대해 반대입장까지 보였다. 그러나 1999년 미국과의 관계 악화로 주변국과의 협력 강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면서 수동적이던 지역경제통합 추진 전략이 능동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 특히 2001년 WTO 가입 이후 세계경제에 급속히 편입되면서 세계화와 지역경제협력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사실을 인식, FTA 등 지역협력 추진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변신했다. 일부 반FTA 세력이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것과 달리 중국 국내에서는 FTA 찬성을 제창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높은 실정이다.
비록 중국의 FTA 추진은 늦게 시작되었지만 진행속도는 매우 빠르다. 중국 상무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2007년 4월까지 20여 개 국가를 포함하는 10건의 FTA 협상을 타결했거나 추진 중이며, 2006년 현재 이 국가들과의 무역액은 대외무역 총액의 24%에 해당하는 4천244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ASEAN 10개국, 2005년과 2006년에 칠레, 파키스탄과 각각 FTA협정을 체결하였고, 홍콩, 마카오와는 경제협력강화협정(CEPA, Closer Economic Partnership Arrangement)을 통해 완전한 시장개방을 이루었다. 현재 FTA 공식협상국은 호주, 뉴질랜드를 비롯하여 아이슬란드 등을 들 수 있고, 걸프협력협의회(GCC),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과도 FTA 추진에 합의하였다.
중국의 FTA 추진 속셈 헤아리기
중국이 FTA를 추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크게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FTA를 추진하는 다른 대부분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관세인하 및 비관세장벽 철폐를 통해 시장 접근성 향상과 산업고도화 촉진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고품질 저가격의 상품과 서비스 구입 기회 확대와 같은 소비자 측면의 이득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다음으로는 세계무역질서 변화에서 소외 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빠르게 지역통합을 추진하는 와중에 가만히 있으면 국제통상 무대의 중심에서 변두리로 내몰리는 ‘변연화(邊緣化)’ 상황에 부딪히고 무역전환효과로 피해를 입기 마련이다. 또한 FTA를 통해 대선진국 교역의존도를 낮춤으로써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무역마찰, 특히 급속히 늘어나는 중국기업을 상대로 한 반덤핑 제재로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의 해결책을 찾으려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접근을 통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以經促政)’하기 위함이다. 중국은 자국 중심의 경제블록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궁극적으로 NAFTA, EU에 이은 제3의 ‘경제중심’으로 요약함으로써 세계무대에서 미국의 거센 입김을 약화시키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상무부 등 주요 기관들의 자료에 나타나듯, FTA를 통해 인민폐의 국제화 추진, 국제정치적 지위와 다자간 무역협상에서의 협상력 향상은 물론, 많은 국가와 협력관계를 맺음으로써 최근 일부 개발도상국과의 관계 강화에 나서고 있는 대만을 효과적으로 견제하려는 의도도 갖고 있다. 최근 중국의 외교정책은 종래의 수동적 자세(韜光養晦)로부터 책임을 지고 적극 행동(有所作爲)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면서 ‘평화굴기(和平屈起)’라는 개념을 강조하고 있는데 FTA가 이런 자국의 부상에 유리한 외부환경을 조성할 수 있고 ‘중국위협론’을 진정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 경험 축적 및 수출시장 다원화
중국은 FTA 파트너 선택에 있어 경제규모가 작은 국가나 지역그룹을 먼저 고려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한국이 칠레, 싱가포르 등과의 FTA를 통해 실전 경험을 먼저 쌓은 후 그 대상을 점차 확대했던 것처럼 중국 역시 자국산업에 대한 충격이 크지 않은 나라와의 협상을 통해 경험을 축적하기 위해 세운 방침이다. 중국의 주요 교역대상국이 선진국들인데도 불구하고 FTA 타결 국가가 비선진국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전략은 협상역량 강화와 남남협력을 통해 개도국 그룹에 대한 협상력을 증가시키는 데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신시장을 향하여 (邁向新市場)’라는 시장다원화 전략에도 도움을 준다. 즉, 중국은 선진국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개도국을 잠재시장으로 개척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다방위(多方位), 다형식(多形式)의 전략을 내세워 대륙별로 대표적인 나라를 선택해 동시다발적인 협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 대주변(大周邊) 선점 전략
‘대주변’이란 동아시아를 주축으로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그리고 러시아, 호주, 뉴질랜드 등 아태지역 국가에 이르기까지, 즉 중국을 중심으로 둘러싸인 주변지역을 큰 범주로 정의하여 가리키는 말이다. 중국은 FTA 파트너를 선택할 때 이 ‘대주변’ 국가들을 우선 고려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물론 중국의 주요교역국이 이 지역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국을 중심으로 넓은 지역블록을 구축하려는 중장기적인 계획이 있다.
중국 상무부 국제무역경제합력연구원 주임 쉬창운(徐長文) 등 학자들의 보고서나 발언을 보면, ‘전세계적으로 FTA 추진사례를 살펴볼 때, 대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중국이 역내경제협력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은 필연적’이라며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으로서의 책임(大國責任)을 져야 하고 자국시장 개방을 통해 대국으로서의 믿음직스러운 이미지를 확립시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것이 눈에 띄는데 이런 시각은 중국에서는 매우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동아시아 최대 영토국이자 인구 보유국이며 유일한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동시에 동아시아 문화의 발상지이므로 FTA를 추진할 때도 대등한 공동체 의식보다는 대국과 주변국이라는 자국중심적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의 ‘대주변을 향하여(邁向大周邊)’ 전략 역시 이런 사고방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 국내 경제정책 효과 극대화
중국 내 경제정책도 FTA 전략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중국 서남지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ASEAN과 가장 먼저 FTA를 체결한 것도 서부대개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동남아는 중국 서부지역의 남하(南下) 통로와 주요 수출시장이면서 화교자본이 집중돼 있는 지역인데 양 지역 간 관계가 더욱 공고해지면 화교 자본을 서남지역으로 끌어들이기가 한결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FTA 체결 이후 광시(廣西)성을 자유무역지대의 물류중심과 자원투자개발중심으로, 운남(雲南)성을 비즈니스교류중심으로 건설하겠다는 움직임이나, 이를 위해 광시성 지역에 대한 인프라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 안정적인 ‘에너지 및 자원 공급원 확보
중국은 경제고성장에 따른 자원부족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FTA를 통한 자원확보를 매우 중시한다. 칠레(구리), 호주(철광석, 아연, 니켈), 아이슬란드(알루미늄) 등은 모두 중국의 주요 광물 수입국이며, GCC 6개국이 전세계 45%이상의 석유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중국의 의도는 자명하다. SCO 국가들과 군사안보협력 이외에 경제협력관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이 국가들의 풍부한 에너지 매장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은 SCO 국가들을 ‘서쪽으로 펼치는 날개(西翼)’에 비유할 정도로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연결하는 ‘에너지 수송통로’의 역할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중국은 대문을 얼마나 열 것인가?
현재까지 중국이 체결한 중-ASEAN 및 중-칠레 FTA는 상품무역 분야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완결된 FTA라고 보기 힘들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작년 9월 중-칠레 간 ‘투자촉진합작 양해각서’를 체결한 데 이어 지난 4월 2차 협상을 개시함으로써 양국 간 FTA는 서비스, 무역 및 투자 영역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또 ASEAN을 중국기업의 해외투자, 건설공사 수주와 노동인력 진출(勞務合作)의 중요한 시장으로 여김으로써 ‘앞으로 서비스, 투자 등이 포함된 포괄적인 FTA를 목표로 한다’는 의지도 밝힌 바 있다. 2006년 체결된 중-파키스탄 FTA에서도 투자촉진 및 보호 등 관련규정이 마련되어 있어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FTA의 추진범위가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호주 등 선진국의 경우, 중국식 협상 모델, 즉 상품무역분야를 우선 타결하고 상황을 봐서 서비스, 제도 등까지 협력분야를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을 거부하고 지적재산권, 투자정책 등 ‘소프트 부문’이슈까지 일괄 타결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서비스부문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국 입장을 고려할 때 타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또, 비록 FTA협정을 통해 일부 비관세장벽 철폐, 투자환경개선 등이 약속되더라도 현재 중국의 시장경제발전수준을 감안할 때 이를 모두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장메커니즘 개선, 사회제도 선진화 등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한 실정이다. FTA 협정을 맺는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독자표준정책을 포기하고 글로벌 스탠다드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에는 아직도 수많은 비관세장벽이 존재한다. 예컨대, 일부 전자제품은 반드시 중국정부가 지정한 CCC(China Compulsory Certification)인증을 획득해야만 수입 및 유통이 가능하고, 또 지역과 세관직원에 따라 통관처리기준이 상이하며 관련 규정이 공개되지 않거나 사전예고 없이 변경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한 예로, WTO 가입을 위해 자동차 국산화율이 40%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을 폐지했지만 수입부품 금액이 완성차 전체 부품 원가의 60% 이상인 경우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새로운 ‘대책’이 나오기도 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의 개방 확대는 불가피하겠지만, 중국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대내외 정책 기조를 감안할 때 그 속도는 상당히 더딜 전망이다.
중국이 한국에게 ‘구애’하는 까닭은?
그렇다면, 중국이 한국에게 FTA 협상을 먼저 제의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중국은 동아시아 지역 경제통합을 위해 가장 중요한 두 지역으로 남중국해 주변과 환황해(環黃海)지역을 꼽고 있으며, 한국과 ASEAN이 각각의 지역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한중FTA를 성공적으로 출범시킴으로써 역내에 있는 다른 나라들이 한중 중심의 경제협력체로 쏠리도록 하는 ‘FTA 도미노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둘째, 일본, 미국과의 주도권 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다. 한미 FTA 타결로 한층 커진 한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에 대응하여야 하며, 만약에 한국이 일본과 먼저 FTA를 맺게 되면 중국의 처지가 매우 불리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먼저 선수를 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셋째, 한중 FTA를 통해 쇠퇴의 길에 들어선 동북3성의 개발을 촉진하려는 의도가 있다. 중국의 11.5규획에서 강조하는 ‘동북진흥’ 정책이나 ‘중국은 앞으로 각종 첨단기술, 특히 정보기술을 중점적으로 개발해 정보화를 바탕으로 한 산업화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정부방침을 감안할 때 IT강국인 한국과의 FTA를 통해 산업고도화를 가속화시키려는 목적도 있어 보인다.
중국과 FTA 협상을 한다면
중국은 2008년 안에 한국과의 FTA 협상에 실질적인 진전이 있길 기대하고 있으며, 2010년까지 한중 FTA를 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등 한중 FTA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한중간의 무역 및 투자 관계는 FTA가 아니더라도 갈수록 심화되는 추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한국의 민감한 품목에 대해 예외 인정과 같은 유연한 대처가 가능하다는 입장까지 밝히면서 한중 FTA의 적극 추진을 희망하는 것은 동아시아 주도권확보 등 정치적 동기와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의 이런 주도권 경쟁심리를 감안할 때 한EU FTA, 한일 FTA 등의 추진을 한국의 협상력 제고에 기여하는 레버리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중국이 ASEAN과의 협상 당시 조기타결을 위해 상당한 양보를 하며 조기자유화조치(Early Harvest Program)에 동의했다는 점을 근거로 한중 FTA에서도 많은 양보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ASEAN과의 교역비중은 비교적 높지 않지만 한국은 중국의 제3대 무역국인 만큼 한국과의 FTA는 중국경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보다 중국의 입장이 더 다급한 만큼 한국은 대중 협상에서 좀 더 유리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비록 중국은 한중 FTA 협상을 상품무역 중심으로 이끌어 가려고 하겠지만 한국은 한국 기업들의 중국 시장 진출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단순 상품무역 차원이 아닌 투자 및 지적재산권 보호 등을 포함한 수준 높은 FTA를 추진해야 한다. 아울러, 글로벌 스탠다드 정착, 비관세장벽 철폐 및 정책투명화 등을 강력히 요구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아직까지는 투자 관련 논의를 꺼려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한중FTA를 추진하는 목적 중 하나가 동북3성에 대한 투자유치라는 점에서 투자자유화 논의를 협상테이블에 올릴 여지도 상당히 크며, 한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FTA보다 ‘양자간 투자협정(BIT)’을 먼저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경제발전수준, 산업구조 등 여러 면에서 중국의 다른 기체결 대상국들과 달라 한국이 FTA 협상 시 참고할 만한 선례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좀 더 여유를 갖고 호주 등 선진국과의 협상 진전을 지켜보면서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 주간경제 9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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