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 12. 20:38
'글로벌 칼잡이'가 지멘스에 칼을 들이대다
비자금 조성·뇌물 스캔들로 160년 역사상 최대 위기
지멘스 창립 이래 첫 외국인 CEO 영입
임원 470명 징계·130명 해고
"몇년이 걸리더라도 기업 문화 싹 바꿔놓겠다"
"혁명(revolution)이 아니라 진화(evolution)를 택할 것이다."
지난해 7월 독일의 세계적인 기계·설비업체인 지멘스의 신임 CEO에 오른 페터 뢰셔(Peter Loescher·51)의 취임 일성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맡겨진 임무는 '진화(進化)'가 아니라 '진화(鎭火)'였다. 당시 지멘스는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뇌물로 제공한 혐의로 160년 역사상 최대 위기를 맞고 있었다. 뢰셔는 오스트리아 출생으로 지멘스 창립 이래 첫 외국인 CEO다. 다급해진 지멘스가 찾은 '구원투수'였다.
한국에서는 삼성이 비자금 의혹으로 큰 위기를 겪고 있지만, 지멘스는 이보다 1년 전 뇌물 스캔들을 겪은 '선배' 격이다.
독일 당국 조사에 따르면, 지멘스는 비자금을 조성한 뒤 해외로 빼돌려 나이지리아·리비아·러시아 등지에서 통신 관련 계약을 따내기 위해 해당 국가 정책 담당자에게 뇌물을 줬다. 뇌물 제공은 1990년대부터 2006년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 밝혀진 비자금 규모는 4억5000만 유로(약 6200억원)였지만, 조사가 해외로 확대되고 있어 그 끝이 어딘지는 짐작하기 힘들다.
독일 슈피겔은 "독일 당국이 선고한 벌금과 추징 세금(3억8000만유로·약5250억원), 법률 비용 등을 포함해 지멘스가 현재까지 부담해야 하는 액수는 15억유로(2조원)"라고 지난해 12월 보도했다. 여기에 미국 등의 조사도 남아 있어 지멘스의 부담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래서 뢰셔가 지멘스 CEO로 취임할 때 세간에서는 "아마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자리일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 12월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5월) 지멘스 CEO직을 제안 받고 결정하는데 10초도 안 걸렸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솔직히 말하면 문제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했다. 처음에는 통신 부문에만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다른 사업 부문으로 전염됐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비자금 스캔들을 진화하기 위한 그의 처방은 단호했다. 그는 "기업 구조와 문화를 바꿔 나가겠다"고 강조하면서 지금까지 비리 등과 관련이 있는 임원 470명을 징계하고, 이 중 130명을 해고했다. 뢰셔는 "익명의 사내 제보도 할 수 있게 했다"면서 "이를 통해 기존에 드러나지 않은 문제점도 나올 수 있겠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모든 의혹을 털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그동안의 잘못을 1월 말까지 고백하는 임직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죄를 묻지 않기로 유예 기간을 뒀다"고 전했다.
뢰셔는 또 뇌물을 주고라도 계약을 따내는 직원을 회사가 묵인하고, 승진·보너스 등으로 보상하는 관행을 고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12월 14일 지멘스는 3대 사업부문 중 하나인 제조업(industry) 부문 재무 책임자 임명을 일주일 만에 취소했는데, 이 또한 그가 뇌물 스캔들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해당 임원이 어떤 의혹을 받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전 회사 경영진이 노조와의 우호적 관계를 위해 노조 간부에게 돈을 준 사안과 연루된 것으로 전해졌다. 뢰셔는 이번 일과 관련, "조금이라도 불확실성이 있을 경우 굳이 기다릴 이유가 없다"며 "우리는 최고의 윤리 수준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지멘스는 뢰셔를 기용한 배경에 대해 "그의 강직한 성품, 글로벌 배경, 두드러진 국제적 평판, 기획·재무·기술 등 경영 전반에 걸친 폭넓은 경험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무엇보다 내부 인재로는 도저히 난국을 헤쳐나갈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멘스의 내부 순혈주의(純血主義)가 문제를 덮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뢰셔는 지멘스의 방만한 조직에도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그는 지멘스의 구조적 문제점으로 사업 분야가 너무 복잡하고 정리가 안 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조직 슬림화에 착수했다.
그는 전 세계 190개국에 통신·자기부상열차 등 10여 가지로 산재해 있던 사업부를 에너지·헬스케어·제조업 등 3개 부문(sector)으로 정리·정돈했다. 그는 또 "2010년까지 전체 경비의 10~20%에 해당하는 12억~24억유로의 비용을 절감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사업은 구조조정이 뒤따르고, 많게는 수만 명을 해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는 지멘스의 노동생산성이 GE의 절반 수준이라고 지적하면서 성과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GE식 경영 기법을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번 내비쳤다. 그는 원칙 없는 인센티브 체계와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문제점으로 꼽고 있어 이 부문에서도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신장이 2m에 달하는 거구인 뢰셔는 자신을 '글로벌 시민'이라고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영어·일어·독일어 등 6개 국어를 구사하며, 대학 교육도 오스트리아(빈대학)와 홍콩(중문대), 미국(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3개국에서 밟았다. 또 부인은 스페인 사람이며, 두 딸은 미국에서, 아들은 스페인에서 태어났다.
뢰셔는 주로 제약회사에서 근무했다. 다국적 제약사인 '아벤티스 파마'와 영국 생명공학 회사인 '아머샴', GE의 헬스케어 부문, 미국 제약사 머크에서 근무했다.
뢰셔는 머크에서도 '칼잡이'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당시 글로벌 휴먼 헬스 부문을 책임졌던 그는 "머크는 오랫동안 너무 내부지향적이었고 조직도 경직됐다"며 본사에 몰려 있던 인력을 해외로 배치하고, 의약품 판매 및 마케팅부문을 구조조정했으며, 중복 사업을 정리하는 등 대대적 조직 개편에 나섰다.
그는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멘스의 문화를 바꾸는 작업은 앞으로 몇 년이 걸릴 과제"라고 말했다.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1/11/2008011101161.html
비자금 조성·뇌물 스캔들로 160년 역사상 최대 위기
지멘스 창립 이래 첫 외국인 CEO 영입
임원 470명 징계·130명 해고
"몇년이 걸리더라도 기업 문화 싹 바꿔놓겠다"
"혁명(revolution)이 아니라 진화(evolution)를 택할 것이다."
지난해 7월 독일의 세계적인 기계·설비업체인 지멘스의 신임 CEO에 오른 페터 뢰셔(Peter Loescher·51)의 취임 일성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맡겨진 임무는 '진화(進化)'가 아니라 '진화(鎭火)'였다. 당시 지멘스는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뇌물로 제공한 혐의로 160년 역사상 최대 위기를 맞고 있었다. 뢰셔는 오스트리아 출생으로 지멘스 창립 이래 첫 외국인 CEO다. 다급해진 지멘스가 찾은 '구원투수'였다.
한국에서는 삼성이 비자금 의혹으로 큰 위기를 겪고 있지만, 지멘스는 이보다 1년 전 뇌물 스캔들을 겪은 '선배' 격이다.
독일 당국 조사에 따르면, 지멘스는 비자금을 조성한 뒤 해외로 빼돌려 나이지리아·리비아·러시아 등지에서 통신 관련 계약을 따내기 위해 해당 국가 정책 담당자에게 뇌물을 줬다. 뇌물 제공은 1990년대부터 2006년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 밝혀진 비자금 규모는 4억5000만 유로(약 6200억원)였지만, 조사가 해외로 확대되고 있어 그 끝이 어딘지는 짐작하기 힘들다.
독일 슈피겔은 "독일 당국이 선고한 벌금과 추징 세금(3억8000만유로·약5250억원), 법률 비용 등을 포함해 지멘스가 현재까지 부담해야 하는 액수는 15억유로(2조원)"라고 지난해 12월 보도했다. 여기에 미국 등의 조사도 남아 있어 지멘스의 부담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래서 뢰셔가 지멘스 CEO로 취임할 때 세간에서는 "아마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자리일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 12월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5월) 지멘스 CEO직을 제안 받고 결정하는데 10초도 안 걸렸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솔직히 말하면 문제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했다. 처음에는 통신 부문에만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다른 사업 부문으로 전염됐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비자금 스캔들을 진화하기 위한 그의 처방은 단호했다. 그는 "기업 구조와 문화를 바꿔 나가겠다"고 강조하면서 지금까지 비리 등과 관련이 있는 임원 470명을 징계하고, 이 중 130명을 해고했다. 뢰셔는 "익명의 사내 제보도 할 수 있게 했다"면서 "이를 통해 기존에 드러나지 않은 문제점도 나올 수 있겠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모든 의혹을 털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그동안의 잘못을 1월 말까지 고백하는 임직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죄를 묻지 않기로 유예 기간을 뒀다"고 전했다.
뢰셔는 또 뇌물을 주고라도 계약을 따내는 직원을 회사가 묵인하고, 승진·보너스 등으로 보상하는 관행을 고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12월 14일 지멘스는 3대 사업부문 중 하나인 제조업(industry) 부문 재무 책임자 임명을 일주일 만에 취소했는데, 이 또한 그가 뇌물 스캔들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해당 임원이 어떤 의혹을 받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전 회사 경영진이 노조와의 우호적 관계를 위해 노조 간부에게 돈을 준 사안과 연루된 것으로 전해졌다. 뢰셔는 이번 일과 관련, "조금이라도 불확실성이 있을 경우 굳이 기다릴 이유가 없다"며 "우리는 최고의 윤리 수준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지멘스는 뢰셔를 기용한 배경에 대해 "그의 강직한 성품, 글로벌 배경, 두드러진 국제적 평판, 기획·재무·기술 등 경영 전반에 걸친 폭넓은 경험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무엇보다 내부 인재로는 도저히 난국을 헤쳐나갈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멘스의 내부 순혈주의(純血主義)가 문제를 덮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뢰셔는 지멘스의 방만한 조직에도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그는 지멘스의 구조적 문제점으로 사업 분야가 너무 복잡하고 정리가 안 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조직 슬림화에 착수했다.
그는 전 세계 190개국에 통신·자기부상열차 등 10여 가지로 산재해 있던 사업부를 에너지·헬스케어·제조업 등 3개 부문(sector)으로 정리·정돈했다. 그는 또 "2010년까지 전체 경비의 10~20%에 해당하는 12억~24억유로의 비용을 절감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사업은 구조조정이 뒤따르고, 많게는 수만 명을 해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는 지멘스의 노동생산성이 GE의 절반 수준이라고 지적하면서 성과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GE식 경영 기법을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번 내비쳤다. 그는 원칙 없는 인센티브 체계와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문제점으로 꼽고 있어 이 부문에서도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신장이 2m에 달하는 거구인 뢰셔는 자신을 '글로벌 시민'이라고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영어·일어·독일어 등 6개 국어를 구사하며, 대학 교육도 오스트리아(빈대학)와 홍콩(중문대), 미국(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3개국에서 밟았다. 또 부인은 스페인 사람이며, 두 딸은 미국에서, 아들은 스페인에서 태어났다.
뢰셔는 주로 제약회사에서 근무했다. 다국적 제약사인 '아벤티스 파마'와 영국 생명공학 회사인 '아머샴', GE의 헬스케어 부문, 미국 제약사 머크에서 근무했다.
뢰셔는 머크에서도 '칼잡이'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당시 글로벌 휴먼 헬스 부문을 책임졌던 그는 "머크는 오랫동안 너무 내부지향적이었고 조직도 경직됐다"며 본사에 몰려 있던 인력을 해외로 배치하고, 의약품 판매 및 마케팅부문을 구조조정했으며, 중복 사업을 정리하는 등 대대적 조직 개편에 나섰다.
그는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멘스의 문화를 바꾸는 작업은 앞으로 몇 년이 걸릴 과제"라고 말했다.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1/11/20080111011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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