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15. 00:18
미국의 기업을 세계의 기업으로 만들다 GE인터내셔널 베칼리 회장
매출액 절반이상을 미국 밖에서 벌어들이는 GE의 외무부장관
미국인처럼 일하고 유럽인처럼 생각하고 이탈리아인처럼 먹고 입는다
지난 12일 페르디난도 베칼리-팔코(Beccalli-Falco) GE인터내셔널 회장을 만났을 때 그는 막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날 하루 동안 잘츠부르그, 브뤼셀, 베를린, 이렇게 유럽 세 도시 땅을 밟는 그를 중간에 1시간 동안 브뤼셀에서 붙잡았다.
그는 GE인터내셔널 회장답게 잠도 '인터내셔널'로 잔다. 2월 스케줄을 보니 한 도시에 사흘 밤 이상 자는 날이 없었다. 잘츠부르크(월)→브뤼셀·베를린(화)→파리(수)→브뤼셀·터키 이스탄불(목)→브뤼셀(금)→독일 뉘렌베르그(토)를 거쳐 노모가 사는 고향 토리노에서 일요일을 보내는 이번 주 일정은 그래도 조용했다. 앞으로 2주간, 브뤼셀에서 월요일을 시작해 독일→카자흐스탄→한국→태국→인도네시아→일본→영국을 거쳐 브뤼셀로 되돌아온다.
GE인터내셔널 본사는 '유럽의 수도' 브뤼셀 시내 중심의 로베르 슈망 광장에 있었다. 창가 맞은 편으로 EU(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웅장한 건물이 보였다.
"왜 브뤼셀인가?" 베칼리 회장을 만났을 때 제일 먼저 물어본 질문이다. GE의 전 세계 시장을 총괄하는 GE인터내셔널 본부는 원래 영국 런던에 있었다. 런던에서 브뤼셀로 본부를 옮긴 건 지난 2001년 GE가 항공기 부품업체 하니웰을 인수하려다 EU(유럽연합)의 승인을 받지 못해 무산된 뼈아픈 경험을 치른 이후다. "미국 바깥의 시장을 너무 몰랐다"는 반성에서, EU 27개국 정상들이 수시로 회동하는 '유럽의 수도' 브뤼셀로 이사 왔다고 했다. GE가 세계 시장을 바라보는 눈도, 접근하는 전략도 달라졌다는 뜻이다.
GE는 전기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항공기 엔진 제작에서부터 발전(發電)설비, 수(水)처리, 보안 비즈니스, 의료영상장비, 기업금융 및 소비자금융, 미디어 콘텐츠 사업에 이르기까지 사업 분야가 방대하다. 이 거대한 회사가 매년 10% 안팎씩 성장하는 비결이 무엇일까?
그는 "시장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언제나 시장의 요구에 맞춰 빠르고 능동적으로 변신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130년간 생존하면서 성장을 이어가는 비결이 바로 '변화'입니다. 우리의 DNA 인자도 바로 그것이죠. GE의 기업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것도 도전적인 문화요, 실적(performance) 지향적이며, 통합성(integrity)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버스 운전사지만, 정해진 루트가 없습니다. 시장 상황에 맞게 우리가 판단해서 루트를 정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묻자 그는 GE가 21세기에 맞춰 사업 부문을 크게 바꾼 것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물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수(水)처리 비즈니스를 시작했어요. 2001년에는 모두가 보안을 이야기하더군요. 그래서 보안 비즈니스를 시작해 지금까지 매우 성공적입니다. 헬스케어 비즈니스, 환경 부문 투자도 늘렸죠. 반대로 시장 상황을 면밀히 들여다보면서 더 이상 잘 경영하기 힘들다고 생각되는 사업 부문은 과감히 매각합니다. 플라스틱 사업부문이 단적인 예입니다. 저는 GE에서 30년 넘게 일한 기간 중에 25년을 플라스틱 사업부문에 몸담았습니다. GE 임원 중 상당수가 플라스틱 사업부문 출신이죠. 하지만 원료 가격은 계속 오르고 제조업체간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면서 수익성을 높이기가 힘들어진다는 전략적 판단에 우리의 모태(母胎)와 같은 플라스틱 사업부문도 팔아버렸습니다."
올해 어떤 사업 부문에 주안점을 둘 계획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신흥시장에서는 인프라, 헬스케어 등의 사업부문이 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령 사우디아라비아는 앞으로 5~10년에 걸쳐 병원을 2000개 지을 계획이라는 것. 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지금까지 미국 중심의 비즈니스였으나 이를 글로벌 비즈니스로 더 키울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 '아이'(사업부문)들은 어디에나 다 있고, 모두가 성장에 기여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소비자금융, 기업금융은 선진국에서 매우 성공적인 사업 분야이며, 심지어 전구 등 전통 사업부문도 중동 등 일부 지역에서의 건설 붐 덕에 매출이 좋다고 설명했다.
GE인터내셔널은 미국 외 국가에서 진행하는 사업을 총괄한다. 실제 매출을 올리는 것은 GE내 각 사업부문들이지만, 이들 각 사업 부문에서 보지 못하는 분야를 발굴하거나 외국 정부 등을 상대로 GE그룹의 대외 관계를 총괄하는 임무를 한다. GE의 세계 시장 매출이 급성장하는 데는 베칼리 회장의 진두지휘가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어 발음이 묻어나는 베칼리 회장의 영어 말투는 명쾌하고 시원시원하다. GE에서 그는 '협상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자신을 "미국인처럼 일하고, 유럽인처럼 생각하며, 이탈리아인처럼 먹고 입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미국인처럼 열심히 일하고, 유럽 사람처럼 다양하고 개방된 사고를 갖고 있으며, 이탈리아 사람처럼 맛과 멋을 즐길 줄 안다는 뜻이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올해 미국의 경기 침체가 세계 경제에 그늘을 드리우면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및 세계 경기 전망을 어떻게 보나?
"미국의 침체(recession)라기보다는 둔화(slowdown)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경기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침체라고 부를 상황까지는 아니다. 나는 미국 경제가 '회색 지대'에 들어섰다고 본다.
미국은 경기 둔화라고 해도 나머지 경제, 가령 유럽은 보기에 따라 다르다. 내 조국 이탈리아 경제는 분명 병세가 심각하지만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는 썩 높은 성장은 아니어도 그런대로 괜찮은(reasonable) 수준이다. 중국의 경우 성장이 둔화됐다고 하지만 연 8~9%를 이어간다."
―미국 경기가 나빠져도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하지 않고 중국, 인도 등을 중심으로 한 신흥 시장에서 성장이 이어질 것이라는 '디커플링(decoupling)'을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다. 미국 경기가 나빠지면 당연히 나머지 세계 경제에도 여파가 미친다. 중요한 것은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비중이 예전 같지 않고, 줄어든다는 점이다. 완전한 디커플링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디커플링도 일어나고 있다.
이미 중국, 인도는 수출에만 의존하는 경제가 아니라 내수에 기반한 성장을 하고 있다. GE의 경우, 미국 외 매출이 커지면서 미국 경기가 둔화되어도 나머지 시장에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다지 비관적이지는 않다."
―GE의 경영 방식은 빠른 성장, 인재 경영, 과감한 혁신, 그리고 6시그마와 같은 지속적인 품질 개선 등이다. GE의 성공 비결이 다른 기업에도 적용될 수 있나?
"아니다. 그것은 정확히 우리의 기업문화다. 130년간 우리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의 기업 문화가 아무리 성공적이라도 그것이 다른 곳에서 자동적으로 성공하는 건 아니다. 부분적으로 성공적인 요소를 도입할 수는 있겠지만 GE의 기업 문화를 다른 곳에 통째로 이식할 수는 없다.
지난 1990년대 초 일본에 부임했을 때 같은 말이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알겠다. 이해한다(I understand)'고 대답하면 서구 문화에서는 즉각 행동에 옮긴다는 뜻까지 포함하는데, 일본에서는 말 그대로 '이해했다'는 것이지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것까지 뜻하는 게 아니었다. 같은 말이라도 문화에 따라 이처럼 차이가 크다. 그 이후로 일본에서의 경영 방식을 바꿨다."
―그렇다면 다른 기업들은 어떻게 자신만의 성공적인 기업 문화를 구축할 수 있는가?
"기업 내부의 장단점을 진지하게 이해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기업 문화는 한 달, 1년 새 바뀌는 것이 아니라 오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떤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시작해야 한다. 매우 오랜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과거의 리더십과 21세기에 요구되는 리더십은 다른가?
"물론 우리 할아버지 시대의 리더십과 지금의 리더십은 다르다. 80~90년대의 행복한 시절은 끝나고 점점 엄격한 책임이 요구된다. 정보화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인터넷,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에 접한다. 지구 한 부분에서 일어난 사건이 전 세계에 금방 알려진다. 이런 기술의 변화가 심오한 변화를 가져왔다.
기업들에도 더 많은 책임, 더 많은 사회적 양심이 요구된다. 돈을 벌고 성과를 올리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버느냐가 점점 더 중요해진다."
―GE의 전임 잭 웰치(Welch) 회장과 현재 제프리 이멜트(Immelt) 회장의 리더십을 비교한다면.
"잭 웰치 회장은 보스 입장에서 나를 키워준 사람이지만 멀리 있고, 그에 비하면 이멜트 회장은 친구처럼 가깝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여서 나로서는 두 사람의 리더십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다만 보다 엄격한 경영 방식의 잭은 과거에 적합한 리더십이었고, 팀을 강조하는 제프는 21세기에 걸맞은 리더십이라고 생각된다. 리더십의 차이는 개인적 성향과 시대적 요구가 복합돼 빚어졌다."
―GE는 세계 최고의 CEO 사관학교로 불린다. 인재 양성 비법은 무엇이며, 21세기에 필요한 인재는 어떤 유형인가?
"우리는 매년 수십억달러를 교육에 투자한다. 과거에는 개인적 장단점을 분석해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교육이 중요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팀을 창조하는데 역점을 둔다. 팀을 만들어 함께 경험하게 만들고, 함께 전략을 개발하게 만든다. 이를 통해 명쾌한 사고와 비전을 갖게 한다. 나는 6주마다 세계각국의 책임자 모두와 전화통화를 하는데, 이 방법으로 만 48시간 만에 완벽한 정보를 수집한다. 또 분기마다 지역별 모임을 갖는다. 우리의 이런 정보 수집 메커니즘 덕분에 나는 이틀이면 전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으며, 이를 토대로 정확한 판단과 결정을 내린다."
"한국경제 세가지 희망은 기술·세계·북한입니다"
■베칼리 회장의 한국을 위한 충고
―최근 GE는 신흥시장에서 급성장세를 이어간다. 어떻게 신흥시장을 공략하는가?
"인프라 구축이다. 중국, 인도, 중동, 남미, 아프리카 같은 신흥시장에서는 발전, 수(水)처리 등 그 사회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 부문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GE에는 매우 중대한 순간이다. 우리는 그 나라들이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돕는다. 그동안에는 '기업 대 기업' 방식의 비즈니스에 익숙했지만 이것은 지평이 전혀 다르다. 정부와 이야기하는 '기업 대 국가' 방식의 비즈니스다."
―중국처럼 기업 환경이 불안정한 곳에서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시장을 공략하는가?
"중국에서는 단지 제품만 팔고 떠나버리는 식으로 진출해서는 안된다. 기술을 투입해야 하고, 투자해야 하고, 중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와 협상해야 한다. 여전히 위험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중국은 시장 잠재력이 크다. 특히 대부분의 기업이 동부 연안 지역에 한정돼 있는데, 중국 서부는 여전히 개발이 필요하고, 막대한 사회 인프라 역시 필요하다."
―한국 시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국은 기술이 앞선 시장이다. 삼성, LG 등 세계적 기업이 있는 한국은 어떤 부문에서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자랑한다.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기술 및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적절한 투자 대상이 있다면 언제든 더 투자할 의향도 있다."
―한국 경제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많은 기업인들도 새로운 투자 대상을 찾느라 고민한다. 한국이 살아갈 길이 무엇이라고 보나?
"세 가지 길, 그러니까 기술, 세계화, 북한이다. 기술에서 앞서야 하고, 작은 나라니만큼 적극적으로 밖을 바라보며 나가야 한다. 그리고 한국이 통일되면 지금보다 더 큰 시장이 될 것이다. 북한은 앞으로 많은 사회적 인프라를 필요로 할 것이다. 한국 입장에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경제적 관점에서 하는 말이다."
■ 베칼리 회장은…
페르디난도 베칼리-팔코 GE인터내셔널 회장은 1975년 GE에 입사, 30년 넘게 'GE맨'으로 일하고 있다. 1977년부터 2001년까지 플라스틱 부문에서 일하며 GE플라스틱 유럽 지역 마케팅 이사, GE플라스틱 일본 법인 사장을 지냈다. 이후 GE캐피탈 서비스 부사장, GE인터내셔널 유럽·중동·남미·캐나다 지역 사장을 거쳐 2005년 1월부터 GE인터내셔널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지역에서 GE의 성장 전략을 총괄·조정하는 게 그의 임무다. 이탈리아 토리노 출생으로 토리노공대 화공과를 졸업하고, 미국 신시내티 자비에르(Xavier)대학에서 MBA 과정을 밟았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15/2008021501538.html
매출액 절반이상을 미국 밖에서 벌어들이는 GE의 외무부장관
미국인처럼 일하고 유럽인처럼 생각하고 이탈리아인처럼 먹고 입는다
지난 12일 페르디난도 베칼리-팔코(Beccalli-Falco) GE인터내셔널 회장을 만났을 때 그는 막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날 하루 동안 잘츠부르그, 브뤼셀, 베를린, 이렇게 유럽 세 도시 땅을 밟는 그를 중간에 1시간 동안 브뤼셀에서 붙잡았다.
그는 GE인터내셔널 회장답게 잠도 '인터내셔널'로 잔다. 2월 스케줄을 보니 한 도시에 사흘 밤 이상 자는 날이 없었다. 잘츠부르크(월)→브뤼셀·베를린(화)→파리(수)→브뤼셀·터키 이스탄불(목)→브뤼셀(금)→독일 뉘렌베르그(토)를 거쳐 노모가 사는 고향 토리노에서 일요일을 보내는 이번 주 일정은 그래도 조용했다. 앞으로 2주간, 브뤼셀에서 월요일을 시작해 독일→카자흐스탄→한국→태국→인도네시아→일본→영국을 거쳐 브뤼셀로 되돌아온다.
GE인터내셔널 본사는 '유럽의 수도' 브뤼셀 시내 중심의 로베르 슈망 광장에 있었다. 창가 맞은 편으로 EU(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웅장한 건물이 보였다.
"왜 브뤼셀인가?" 베칼리 회장을 만났을 때 제일 먼저 물어본 질문이다. GE의 전 세계 시장을 총괄하는 GE인터내셔널 본부는 원래 영국 런던에 있었다. 런던에서 브뤼셀로 본부를 옮긴 건 지난 2001년 GE가 항공기 부품업체 하니웰을 인수하려다 EU(유럽연합)의 승인을 받지 못해 무산된 뼈아픈 경험을 치른 이후다. "미국 바깥의 시장을 너무 몰랐다"는 반성에서, EU 27개국 정상들이 수시로 회동하는 '유럽의 수도' 브뤼셀로 이사 왔다고 했다. GE가 세계 시장을 바라보는 눈도, 접근하는 전략도 달라졌다는 뜻이다.
GE는 전기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항공기 엔진 제작에서부터 발전(發電)설비, 수(水)처리, 보안 비즈니스, 의료영상장비, 기업금융 및 소비자금융, 미디어 콘텐츠 사업에 이르기까지 사업 분야가 방대하다. 이 거대한 회사가 매년 10% 안팎씩 성장하는 비결이 무엇일까?
그는 "시장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언제나 시장의 요구에 맞춰 빠르고 능동적으로 변신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130년간 생존하면서 성장을 이어가는 비결이 바로 '변화'입니다. 우리의 DNA 인자도 바로 그것이죠. GE의 기업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것도 도전적인 문화요, 실적(performance) 지향적이며, 통합성(integrity)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버스 운전사지만, 정해진 루트가 없습니다. 시장 상황에 맞게 우리가 판단해서 루트를 정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묻자 그는 GE가 21세기에 맞춰 사업 부문을 크게 바꾼 것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어떤 사업 부문에 주안점을 둘 계획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신흥시장에서는 인프라, 헬스케어 등의 사업부문이 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령 사우디아라비아는 앞으로 5~10년에 걸쳐 병원을 2000개 지을 계획이라는 것. 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지금까지 미국 중심의 비즈니스였으나 이를 글로벌 비즈니스로 더 키울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 '아이'(사업부문)들은 어디에나 다 있고, 모두가 성장에 기여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소비자금융, 기업금융은 선진국에서 매우 성공적인 사업 분야이며, 심지어 전구 등 전통 사업부문도 중동 등 일부 지역에서의 건설 붐 덕에 매출이 좋다고 설명했다.
GE인터내셔널은 미국 외 국가에서 진행하는 사업을 총괄한다. 실제 매출을 올리는 것은 GE내 각 사업부문들이지만, 이들 각 사업 부문에서 보지 못하는 분야를 발굴하거나 외국 정부 등을 상대로 GE그룹의 대외 관계를 총괄하는 임무를 한다. GE의 세계 시장 매출이 급성장하는 데는 베칼리 회장의 진두지휘가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어 발음이 묻어나는 베칼리 회장의 영어 말투는 명쾌하고 시원시원하다. GE에서 그는 '협상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자신을 "미국인처럼 일하고, 유럽인처럼 생각하며, 이탈리아인처럼 먹고 입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미국인처럼 열심히 일하고, 유럽 사람처럼 다양하고 개방된 사고를 갖고 있으며, 이탈리아 사람처럼 맛과 멋을 즐길 줄 안다는 뜻이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미국의 침체(recession)라기보다는 둔화(slowdown)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경기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침체라고 부를 상황까지는 아니다. 나는 미국 경제가 '회색 지대'에 들어섰다고 본다.
미국은 경기 둔화라고 해도 나머지 경제, 가령 유럽은 보기에 따라 다르다. 내 조국 이탈리아 경제는 분명 병세가 심각하지만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는 썩 높은 성장은 아니어도 그런대로 괜찮은(reasonable) 수준이다. 중국의 경우 성장이 둔화됐다고 하지만 연 8~9%를 이어간다."
―미국 경기가 나빠져도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하지 않고 중국, 인도 등을 중심으로 한 신흥 시장에서 성장이 이어질 것이라는 '디커플링(decoupling)'을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다. 미국 경기가 나빠지면 당연히 나머지 세계 경제에도 여파가 미친다. 중요한 것은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비중이 예전 같지 않고, 줄어든다는 점이다. 완전한 디커플링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디커플링도 일어나고 있다.
이미 중국, 인도는 수출에만 의존하는 경제가 아니라 내수에 기반한 성장을 하고 있다. GE의 경우, 미국 외 매출이 커지면서 미국 경기가 둔화되어도 나머지 시장에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다지 비관적이지는 않다."
―GE의 경영 방식은 빠른 성장, 인재 경영, 과감한 혁신, 그리고 6시그마와 같은 지속적인 품질 개선 등이다. GE의 성공 비결이 다른 기업에도 적용될 수 있나?
"아니다. 그것은 정확히 우리의 기업문화다. 130년간 우리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의 기업 문화가 아무리 성공적이라도 그것이 다른 곳에서 자동적으로 성공하는 건 아니다. 부분적으로 성공적인 요소를 도입할 수는 있겠지만 GE의 기업 문화를 다른 곳에 통째로 이식할 수는 없다.
지난 1990년대 초 일본에 부임했을 때 같은 말이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알겠다. 이해한다(I understand)'고 대답하면 서구 문화에서는 즉각 행동에 옮긴다는 뜻까지 포함하는데, 일본에서는 말 그대로 '이해했다'는 것이지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것까지 뜻하는 게 아니었다. 같은 말이라도 문화에 따라 이처럼 차이가 크다. 그 이후로 일본에서의 경영 방식을 바꿨다."
―그렇다면 다른 기업들은 어떻게 자신만의 성공적인 기업 문화를 구축할 수 있는가?
"기업 내부의 장단점을 진지하게 이해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기업 문화는 한 달, 1년 새 바뀌는 것이 아니라 오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떤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시작해야 한다. 매우 오랜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과거의 리더십과 21세기에 요구되는 리더십은 다른가?
"물론 우리 할아버지 시대의 리더십과 지금의 리더십은 다르다. 80~90년대의 행복한 시절은 끝나고 점점 엄격한 책임이 요구된다. 정보화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인터넷,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에 접한다. 지구 한 부분에서 일어난 사건이 전 세계에 금방 알려진다. 이런 기술의 변화가 심오한 변화를 가져왔다.
기업들에도 더 많은 책임, 더 많은 사회적 양심이 요구된다. 돈을 벌고 성과를 올리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버느냐가 점점 더 중요해진다."
―GE의 전임 잭 웰치(Welch) 회장과 현재 제프리 이멜트(Immelt) 회장의 리더십을 비교한다면.
"잭 웰치 회장은 보스 입장에서 나를 키워준 사람이지만 멀리 있고, 그에 비하면 이멜트 회장은 친구처럼 가깝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여서 나로서는 두 사람의 리더십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다만 보다 엄격한 경영 방식의 잭은 과거에 적합한 리더십이었고, 팀을 강조하는 제프는 21세기에 걸맞은 리더십이라고 생각된다. 리더십의 차이는 개인적 성향과 시대적 요구가 복합돼 빚어졌다."
―GE는 세계 최고의 CEO 사관학교로 불린다. 인재 양성 비법은 무엇이며, 21세기에 필요한 인재는 어떤 유형인가?
"우리는 매년 수십억달러를 교육에 투자한다. 과거에는 개인적 장단점을 분석해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교육이 중요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팀을 창조하는데 역점을 둔다. 팀을 만들어 함께 경험하게 만들고, 함께 전략을 개발하게 만든다. 이를 통해 명쾌한 사고와 비전을 갖게 한다. 나는 6주마다 세계각국의 책임자 모두와 전화통화를 하는데, 이 방법으로 만 48시간 만에 완벽한 정보를 수집한다. 또 분기마다 지역별 모임을 갖는다. 우리의 이런 정보 수집 메커니즘 덕분에 나는 이틀이면 전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으며, 이를 토대로 정확한 판단과 결정을 내린다."
"한국경제 세가지 희망은 기술·세계·북한입니다"
■베칼리 회장의 한국을 위한 충고
―최근 GE는 신흥시장에서 급성장세를 이어간다. 어떻게 신흥시장을 공략하는가?
"인프라 구축이다. 중국, 인도, 중동, 남미, 아프리카 같은 신흥시장에서는 발전, 수(水)처리 등 그 사회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 부문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GE에는 매우 중대한 순간이다. 우리는 그 나라들이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돕는다. 그동안에는 '기업 대 기업' 방식의 비즈니스에 익숙했지만 이것은 지평이 전혀 다르다. 정부와 이야기하는 '기업 대 국가' 방식의 비즈니스다."
―중국처럼 기업 환경이 불안정한 곳에서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시장을 공략하는가?
"중국에서는 단지 제품만 팔고 떠나버리는 식으로 진출해서는 안된다. 기술을 투입해야 하고, 투자해야 하고, 중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와 협상해야 한다. 여전히 위험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중국은 시장 잠재력이 크다. 특히 대부분의 기업이 동부 연안 지역에 한정돼 있는데, 중국 서부는 여전히 개발이 필요하고, 막대한 사회 인프라 역시 필요하다."
―한국 시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국은 기술이 앞선 시장이다. 삼성, LG 등 세계적 기업이 있는 한국은 어떤 부문에서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자랑한다.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기술 및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적절한 투자 대상이 있다면 언제든 더 투자할 의향도 있다."
―한국 경제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많은 기업인들도 새로운 투자 대상을 찾느라 고민한다. 한국이 살아갈 길이 무엇이라고 보나?
"세 가지 길, 그러니까 기술, 세계화, 북한이다. 기술에서 앞서야 하고, 작은 나라니만큼 적극적으로 밖을 바라보며 나가야 한다. 그리고 한국이 통일되면 지금보다 더 큰 시장이 될 것이다. 북한은 앞으로 많은 사회적 인프라를 필요로 할 것이다. 한국 입장에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경제적 관점에서 하는 말이다."
■ 베칼리 회장은…
페르디난도 베칼리-팔코 GE인터내셔널 회장은 1975년 GE에 입사, 30년 넘게 'GE맨'으로 일하고 있다. 1977년부터 2001년까지 플라스틱 부문에서 일하며 GE플라스틱 유럽 지역 마케팅 이사, GE플라스틱 일본 법인 사장을 지냈다. 이후 GE캐피탈 서비스 부사장, GE인터내셔널 유럽·중동·남미·캐나다 지역 사장을 거쳐 2005년 1월부터 GE인터내셔널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지역에서 GE의 성장 전략을 총괄·조정하는 게 그의 임무다. 이탈리아 토리노 출생으로 토리노공대 화공과를 졸업하고, 미국 신시내티 자비에르(Xavier)대학에서 MBA 과정을 밟았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15/20080215015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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