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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4. 12. 17:43
63년 연속 매출 늘어… "직원이 자산? 직원이 곧 회사!"

고대 그리스의 아르키메데스가 최초의 펌프를 만든 지 2000년. 펌프는 이제 인류 생존의 필수품이 됐다. 그 펌프를 세계에서 제일 많이, 잘 만드는 기업은 아르키메데스의 후예도, 제조업 강국 독일이나 일본의 기업도 아니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서쪽으로 330㎞ 떨어진 유틀란드 반도의 소도시 베어링브로(Bjerringbro). 인구 7000명의 목가풍 마을에 있는 그런포스(Grundfos)가 장본인이다. 1945년 베어링브로의 한 농가 창고에서 시작한 이 회사는 창업 이래 단 한번도 매출이 감소한 적이 없다. 63년 연속 성장! 게다가 30년 이상 자본시장에 손을 벌린 적 없는 '자립 금융'을 자랑한다. 작년 매출은 약 3조5000억원(168억 크로네).

칼스턴 비야그(Carsten Bjerg·49) 그런포스 그룹 CEO를 3월 중순 본사에서 만났다. 그는 1997년 기술담당 임원으로 입사한 뒤 작년 창업자인 고(故) 폴 듀 옌슨과 2세 닐스 옌슨에 이어 3대 CEO이자 첫 전문경영인 출신 수장에 올랐다.

집무실 창 밖으로 자전거가 한가로이 지나다니는 북구(北歐)의 오후 풍경이 들어왔다. 명품 가구로 유명한 빨간색 아르네 야곱슨 의자만 아니었다면, 회의용 탁자와 책상이 전부인 그의 사무실은 한국의 중소기업 사장의 집무실만큼 소박했다. 시종 진지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한 그는 그런포스의 성공비결을 "사람이 곧 회사"라는 말로 요약했다.

―창업 이후 63년 연속 매출 성장을 기록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결과에 대해 결코 만족하지 않으려 노력한 것이 한 비결일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뭘 더 잘 할 수 있을까'를 자문합니다. 좋은 성과가 나오면 물론 자축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곧 바로 '자, 이제 좀 더 잘할 방법은 없을까'하고 토의를 시작합니다. '올해만큼만 하자'는 생각은 절대 사절입니다. 10%가 됐든 8%가 됐든 아니면 12%가 됐든 오직 성장만을 목표로 합니다. 또 회사가 성장하려면 직원들에게 더 강한 동기를 부여하고 일하는 것을 더욱 재미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직원들을 재미있게 하고 동기를 부여합니까? 금전적 보상인가요?

"직원들이 공정한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선 다른 회사와 별다를 것은 없죠. 그러나 우리는 직원들을 흥분시킬 정도의 도전적인 과제를 제시함으로써 조직에 동기를 부여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직원들이 단지 돈 몇 푼을 벌어 집으로 돌아가 그것을 쓰는 재미로 회사에 나오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포스를 다닌다는 게 도전의식을 불러 일으키고 재미있어야 합니다."

―북구의 기업들은 매우 보수적인 문화를 가졌다고들 하는데 '펀(fun)'이니 '도전' 같은 이야기를 들으니 흥미롭군요.

"덴마크의 기업, 혹은 사회문화는 사회민주주의의 전형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인상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북구의 사회민주주의를 그 내면까지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죠.

덴마크 기업에 가보세요. 매우 경쟁적인 분위기, 회사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회사에 대한 높은 충성심, 공동의 목표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도 목격할 것입니다. 이는 사민주의 방식의 긍정적인 측면입니다. 우리는 고용주와 고용자간에 이해관계에 큰 차이가 없고, 서로 싸우느라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지 않습니다. 보다 좋은 결과를 위해 공동의 노력을 다합니다. 덴마크 기업들이 보수적이라는 견해에 반드시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그런포스도 노동자를 대량 해고한 적이 있나요?

"있습니다. 우리의 문화가 해고를 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해고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경영진은 남은 노동자들을 위해 이를 실행할 책임이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5년간 그런 불행한 순간을 맞지 않았습니다. 이는 우리가 성장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직원들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합니까? 그리고 좋은 리더를 기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직원들과 목표와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CEO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회의를 활용합니다. 지난 주에 열린 세계 지사장 회의가 바로 그런 예입니다. 반년에 한번씩 열리는 이 회의에서 우리는 계획, 전략, 야망을 공유합니다.

좋은 리더를 기르기 위해 우리는 교육에 우선 순위를 둡니다. 2000년에 우리는 스위스 경영대학원인 IMD와 손 잡고 사내 교육기관인 '폴 듀 옌슨 아카데미'를 열었습니다. 전 세계 지사의 직원들을 이곳으로 불러서, 실무 교육은 물론 회사의 가치와 방향, 회사를 이끌어가는 방식을 교육합니다. 이는 미래에 대한 중요한 투자이기도 합니다.

많은 경영자들은 '직원들이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겠어요. '아뇨, 틀렸어요. 직원들이 바로 회사예요. 자산이 아니라 그들이 바로 회사라고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직원들에게 투자를 하고, 그들의 지식을 늘리고 서로의 이해 수준을 높이고 그들과 소통하고 우리의 가치를 공유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직원들이 우리가 가야 할 바를 확신해야 합니다."

그런포스는 54개국에 지사가 있다. 그런데 창업자인 폴 듀 옌슨의 손자가 지사장으로 있는 싱가포르를 제외하고는 모두 현지인이다. 한국도 이강호(57) 사장이 19년째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1992년 충북 음성공장 준공식 때 2대 회장인 닐스 옌슨은 한국식 고사에 동참, 돼지머리 고사상에 술잔과 현금을 올렸다.

―지사장이 모두 현지인인데, 그런포스 고유의 기업문화와 전략, 철학을 이해시키거나 서로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습니까?

"글로벌 기업의 CEO들은 한편으로는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회사를 만들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나라 고유의 문화와 차이를 존중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 둘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관건이죠. 이 일은 영원한 답이 없습니다.

우리는 현지인에게 과감하게 맡깁니다. 한국 지사는 한국인이, 중국 지사는 중국인이 경영하도록 합니다. 그래야 지역 고유의 문화와 차이를 존중할 수 있습니다. 대신 국경을 초월한 토론와 회의를 통해 우리의 가치를 공유합니다. 우리는 고객의 요구를 해결하는 일개 기업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고객의 요구는 현지의 고유한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기 마련이고, 바로 그래서 현지 문화를 존중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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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포스의 창업자인 폴 듀 옌슨(1977년 작고)은 원래 배관 기술자였다. 1945년 한 농부의 부탁을 받고 펌프를 만든 것을 계기로 그런포스를 창업했다. 그런포스는 영어의 'Ground flow'에 해당하는 덴마크 말.

그런포스는 펌프 한 우물만 파서 세계 1위에 올랐다. 급수나 냉난방에 사용되는 펌프에서부터 첨단 산업용 제품까지 400여가지 제품을 만든다. 연간 생산량은 1600만대.

영국 버킹엄궁, 중국 인민대회당과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러시아 볼쇼이극장, 2006년 독일 월드컵 주경기장,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이 회사의 펌프가 작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63빌딩, 도곡동 타워팰리스, 삼성동 아이파크, 강남의 파이낸스센터(옛 스타타워) 등 최근 10년 동안 건설된 30층 이상 빌딩 90%가 그런포스 펌프를 쓰고 있다. 청계천과 서울시청의 분수도 그런포스 펌프가 돌린다.

―미국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건설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향후 펌프시장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단기적으로는 건설산업이 위축되겠죠. 하지만 그런 상태가 향후 20년간 계속 되지는 않을 겁니다. 세계 경제는 엄청나게 성장할 것이고, 지구 환경을 보호하면서 이뤄지는 '지속 가능한 성장'과 관련한 수요가 높아질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런포스는 성장의 기회를 찾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세계 1위의 펌프 메이커이지만, 세계시장 점유율은 고작 8%에 불과합니다.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CEO로서 어떻게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고 그 때 어떤 일을 하십니까?

"일만 해서는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미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똑같은 일만 생각해서는 좋은 일을 할 수 없죠. 내가 늘 그런포스만 생각하고 있다면 나는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리더는 오래 일한다는 것을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그건 결코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저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집안 일에 우선 순위를 둡니다. 틈만 나면 운동도 하고요. 본사에는 약 5000명이 일하고 있는데 매주 700명 정도가 체육관을 찾습니다. 저 역시 오늘 오후 체육관에 갈 것입니다. 거기서 다양한 직위의 사람들을 만날 것입니다. 옷을 갈아입고 체육관에 가면 당신이 CEO든 전화 교환원이든, 혹은 영업사원이든 모두 똑같은 모습이 됩니다. 전 그런 식의 만남을 즐깁니다."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11/200804110087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