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001%에 베팅… 떡잎 알아보고 괴물로 키워내
파티에서 나눈 농담이 대박으로… 인맥·돈맥·아이디어 '그들의 절묘한 3박자'
벤처 기업가의 초기 창업 아이디어가 성공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코넬대학 자료에 따르면 그 확률은 100만분의 1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인 블루런(Bl uerun)에서 일하는 윤관 파트너는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을 경우 성공 확률이 10분의 1로 치솟는다"고 했다. "벤처캐피털엔 뭔가가 있다는 말이죠." 블루런은 콘텐츠 분야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로, 최근 국내 개봉돼 관객 500만명을 돌파한 영화 '추격자'의 투자배급사인 밴티지홀딩스에도 출자했다.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기자가 만나본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한결같이 "사람과 돈, 아이디어가 절묘하게 만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는 60여 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성공과 실패 요인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왔다. 특히 핵심 창업자들에 대한 정보는 FBI급이다. 누가 어떤 사업으로 성공했는지, 그가 또 어떤 아이디어를 구상 중인지 등이 빽빽이 적힌 문서가 이들 벤처캐피털의 보물이다.
성공적인 벤처 기업인들은 곧잘 벤처캐피털의 파트너로 영입돼 온다. 그렇게 해서 벤처캐피털은 단순히 '돈'만 대주는 자금줄에 그치지 않고, 각 산업의 전문가들을 통해 필요한 기술과 전략까지 함께 전수하는 전천후 보급 기지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페이스북(Facebook)과 리얼네트워크(RealNetw orks)의 창업에 관여한 벤처캐피털 액셀(Accel)의 이인식 파트너는 스스로 2개의 인터넷 회사를 창업해 성공시킨 경력이 있다. 미국 교포인 그는 12세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램을 독학해 19세 때 상업용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개발해 냈다. 지난해 액셀에 스카우트돼 게임 등 콘텐츠 기업 투자를 책임지고 있다.
게임 마니아인 그는 "마치 사탕 가게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게임이 사탕이라면 저는 지금 이것 저것 사탕을 맛보고 더 맛있는 사탕을 만들 수 있는 제조법을 같이 짜고 있어요. 정말 멋진 직업이죠."
실리콘밸리에서는 벤처캐피털리스트들과 벤처 기업인들이 만나는 작은 파티들이 거의 매일 열린다. 이 자리에서 가볍게 나누는 대화가 대박 아이템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1995년 스탠퍼드대 학생이던 제리 양(Yang·야후 창업자)이 취미 삼아 개발한 인터넷 기술이 이 같은 파티에서 회자되기 시작해, 결국 벤처캐피털인 시콰이어(Sequoia)의 마이클 모리츠(Moritz) 파트너의 귀에까지 닿았던 것이다.
"이곳은 인맥으로 똘똘 뭉쳐 있어요. 전체 투자 건수 중 60%는 인맥을 통해서 이뤄져요. 예전의 동업자나 스탠퍼드대 재학생 및 졸업생, 아는 사람의 소개 같은 것들이죠. 10%는 이미 투자를 받은 회사들이 다른 분야에서 또다시 창업하는 경우예요. 물론 아이디어만 갖고 그냥 무작정 찾아오거나 전화를 거는 사람도 있지요." (윤관 파트너)
"우리 파트너들에게 양복을 입힐까요, 아니면 평소처럼 '실리콘밸리 식(式) 캐주얼'을 입힐까요?"
실리콘밸리의 생명공학 전문 벤처캐피털인 MPM캐피털을 방문하기에 앞서 홍보 담당자인 베로니카 가르시아(Garcia)는 이렇게 기자에게 물어왔었다. 물론 "편하신 대로 해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오전 9시 인터뷰를 위해 나타난 루크 에브닌(Evnin)과 게리 파토우(Patou) 2명의 파트너는 모두 정장 양복 차림이었다. 넥타이만 매지 않았을 뿐이다. 사진 찍는다는 말을 의식한 듯했다.
치매, 노화, 만성 통증, 암, 복제 유전자….
생명공학 기술은 실리콘밸리의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불리며, MPM캐피털은 그 중심에 있다. 이 회사는 생명공학 업계의 '대부(代父)'로까지 불린
다. 지금까지 100여 개 회사에 투자했고, 최근 10년 동안 연평균 38%의 경이적 수익률을 올렸다.
벤처캐피털은 벤처기업에 출자한 뒤 마치 자회사처럼 경영에 깊숙이 개입한다. 파트너가 이사회 멤버로 참여하며, 길게는 10년까지 경영 노하우를 전수한다. MPM이 이렇게 '관리' 중인 회사가 현재 70여 개. 벤처캐피털은 거대한 지주회사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루크 에브닌(Evnin) 파트너로부터 벤처캐피털의 다른 성공 비결 하나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여러 회사에 동시에 투자하는 것이 강점이 될 때가 있다"고 했다. "A기업과 B기업의 기술을 합치면 마치 구멍이 메워지듯 시너지 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지난 2001년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던 리낫(Rinat)이라는 회사에 6000만 달러를 투자할 때도 그랬다. 당시 치매 치료제 시제품들이 개발되긴 했지만, 동물 시험에선 뛰어난 효능을 보이던 것이 사람에 투약하면 뇌척수막 염증 등 부작용을 초래하기 일쑤였다. 투자자들은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여겨 치매치료 기술에서 손을 뗀 상태였다.
하지만 MPM은 치매 치료제가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리낫이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치매 전문 인력과 MPM의 다른 자회사 네트워크를 결합해 비임상 실험을 거듭했다. 결국 부작용 없는 제품 개발에 성공, 2006년에 이 회사를 5억 달러가 넘는 가격에 세계적 제약회사인 화이자(Pfizer)에 넘겼다. 5년 만에 10배의 수익률을 올린 셈이다.
이 회사에는 기술을 속속들이 아는 전문가들이 수두룩하다. 20여명의 파트너 중 절반 이상이 생명공학 과학자들인데,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호르비츠(Horvitz)도 포함돼 있다. 에브닌 파트너는 "각국의 정부, 제약회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 등 전세계 정보망을 가동하는 것도 우리의 강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김태완 컬럼비아 의대 교수는 "벤처회사는 지주회사처럼 투자회사들을 관리하면서 적절한 전략과 인력을 투입시켜 해당 기술을 성공시킨다"고 말했다. 벤처 기업인들이 기를 쓰고 유명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유치하려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다른 회사들과의 시너지 효과를 노리기 때문이다.
클라이너 퍼킨스의 매트 머피(Murphy) 파트너는 "투자 기업들이 1년에 몇 번씩 만나 아이디어를 교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며 "아이디어끼리 부딪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낳는 셈"이라고 말했다. MPM도 매년 투자 기업들과 세계 생명공학 업계 리더들을 초청해 파티를 연다. 이 파티의 초청장은 세계 바이오 시장의 선두 기업이 되는 '골든 티켓(golden ticket)'으로 여겨질 정도다.
■실리콘밸리, 녹색에 빠지다
그린(Green) 밸리, 솔라(Solar) 밸리, 와트컴(전력의 단위인 와트에서 유래한 말로 대체에너지 기업이란 뜻) 밸리…. 요즘 실리콘밸리를 부르는 제2의 명칭들이 범람하고 있다.
공통점은 '친환경'과 관련된 명칭이라는 것. 과거 실리콘밸리의 영화(榮華)를 이끌었던 반도체나 인터넷 관련 기술이 한풀 꺾이고, 대신 친(親)환경 기술이 새로운 수익원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실리콘밸리는 전세계 기업의 '녹색 전략'을 제시하는 메카로 변신하고 있다. 바이오 에너지, 태양광 에너지, 청정 석탄, 수력, 친환경 자동차 등 수많은 환경 관련 기업이 창업하고 있고, 기존 대기업들도 관련 사업에 뛰어든다.
벤처캐피털이 이 같은 흐름을 놓칠 리 없다. 1990년만 해도 미국 친환경 기술에 투자된 벤처캐피털 자금은 1억6800만 달러(64개 기업)에 머물렀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10배가 넘는 20억 달러가 147개 기업으로 흘러 들어갔다. 2005년 이후 매년 전년 대비 2배의 속도로 늘고 있다.
환경 전도사인 앨 고어(Gore) 전 미국 부통령도 지난해 말 클라이너 퍼킨스의 파트너로 합류하면서 친환경 에너지 투자에 팔을 걷어붙였다. 앞으로 5억 달러를 퍼부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벤처캐피털의 방식이야말로 세상을 가장 빨리 변화시키는 수단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클라이너 퍼킨스의 경우 지난 5년 동안 연료 전지 회사인 블룸에너지(Bloom Energy), 거울로 태양 빛을 흡수해 연료를 생산해 내는 회사인 아우스라(Ausra), 바이오 재생 에너지 기업인 알트라(Altra), 컴퓨터 전력 사용을 최소화하는 기술을 보유한 버디엠(Verdiem) 등 27개 회사에 투자했다. 미국 경기 둔화와 금융시장 불안에도 불구하고 벤처캐피털의 투자는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전국 벤처캐피털 연합회 마크 헤젠(Heesen) 회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벤처 투자 환경은 화창한 편이며 작년보다 투자 금액이 늘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벤처캐피털 리서치 회사인 다우존스 벤처소스에 따르면 1분기 미국 벤처캐피털의 투자 규모 (70억 달러)는 지난해보다 5% 줄어들었지만, 투자 건수(922건)는 7% 늘어났다.
한국과 미국의 벤처기업 환경은 어떻게 다를까? 액셀의 이인식 파트너는 "한국의 벤처캐피털은 창업 단계가 아니라 이미 성장한 기업에 투자해 차익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하므로 벤처기업에겐 큰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의 경우 벤처기업들이 조금 두각을 나타내면 삼성이나 SK 같은 대기업들이 기술을 사 가 버린다"면서 "벤처기업이 스스로 커서 기업공개까지 가는 경우가 드물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들도 역시 '장기투자'
뉴햄프셔 대학의 벤처 리서치센터 소장인 제프리 소흘(Sohl)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벤처캐피털은 "기업가들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는 곳"이다. 초기 아이디어만 가진 벤처기업에 자금과 인력, 전략을 제공해 성공시킨 뒤 나중에 주식시장에 상장시키거나 큰 회사에 매각하는 방법으로 돈을 번다. 투자 자금은 소수의 기관투자가나 거액 개인투자자로부터 펀드 형식으로 모은다. 보통 투자 기간은 10년 안팎. 기업 구조조정을 전문으로 하는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의 투자 기간이 3년 정도인 것에 비하면 장기 투자에 해당한다.
벤처캐피털의 경영진은 여러 명의 '제너럴 파트너'들로 구성돼 있으며, 공동 책임 하에 투자를 결정한다. 주로 기업·금융기관의 전직 임원이나 컨설턴트, 창업 경험자 등의 경력이 많다. 국내 벤처캐피털로는 KTB네트워크, CJ창업투자, 동양창업투자 등이 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5/09/20080509007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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