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16. 16:25
1945년 진공관 기반의 에니악(ENIAC) 컴퓨터가 개발된 이래, 컴퓨터는 지속적으로 진화해왔다. 1960년대에는 반도체 기술이 도입되면서 메인 프레임 시대가 시작되고, 1980년대 이후에는 개방형 표준 체계가 도입되면서 개인용 컴퓨터(PC) 시대가 열렸다. 나아가 2000년대에는 모바일 환경이 보편화되면서, 한 사람이 여러 장소에서 여러 대의 컴퓨터를 사용하는 모바일 컴퓨팅 시대가 무르익고 있다. 그렇다면 향후 컴퓨터는 어떤 형태로 진화할까? 흔히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답으로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이외에도 다양한 갈래의 진화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웨어러블 컴퓨팅, 그리드 컴퓨팅, 페타 컴퓨팅, 사이언스 컴퓨팅, 산업 특화 컴퓨팅, 광/분자/양자 컴퓨팅, 사회적 가치 컴퓨팅 등은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선진 컴퓨터 기업들의 혁신 방향도 과거와 달라지는 추세이다. 인텔은 고성능 CPU 중심에서 저전력화, 신흥국, 헬스케어 등을 키워드로 한 연구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PC 운영체제 중심에서 벗어나 사이언스 컴퓨팅, 로봇 및 자동차 운영체제, 휴먼 인터페이스 등의 영역으로 연구 범위를 다채롭게 넓히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컴퓨팅 개념들과 컴퓨터 관련 선진 기업들의 연구개발 동향을 종합하여, 앞으로 컴퓨터와 관련 산업들이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가늠해 본다. 분석 결과, 향후 컴퓨터에서는 사용 편의성 혁신, 사물/인간과의 결합, 과학/산업/경영의 도구화 등이 중요한 트렌드로 부각될 것으로 판단된다. 컴퓨터 부품과 관련해서는 반도체/전자의 대안 패러다임 등장,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개발/저작 도구화와 기계 학습 등도 중요한 트렌드가 될 전망이다.
I. 컴퓨터의 새로운 진화 방향
현재 산업계에서는 컴퓨터의 미래에 대해 다양한 시각이 제시되고 있다. 이 중에서 주목할 만한 새로운 주장들을 선별해 보면,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미래에는 성능 혁신보다 사용 편의성 혁신이 더욱 강조될 것이다. 둘째, 유비쿼터스적 관점에서 컴퓨터는 만물에 침투하고 나아가 인간과 결합될 것이다. 셋째, 컴퓨팅 능력의 극대화로 컴퓨터는 새로운 과학, 산업 및 경영의 도구가 될 것이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진화 방향성에 대해 상세히 살펴 본다.
1. 성능 혁신에서 사용 편의성 혁신으로
컴퓨터의 역사는 성능 혁신과 기능 다양화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컴퓨터의 성능이 일반 소비자의 니즈 수준을 과도하게 넘어서면서, 이전처럼 성능 제고가 구매 증가로 즉각 연결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데스크톱, 노트북, UMPC(울트라 모바일 PC) 등 일반 개인용 컴퓨터 영역에서는 성능 혁신 대신 저전력화, 소형 경량화, 초저가화 등 새로운 발전 방향이 모색되고 있다.
특히 이러한 대안적 시도 중 사용 편의성 혁신은 향후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컴퓨터에 대한 인간의 의존도가 심화되면서 나타난 새로운 문제들 때문이다. 예로써 키보드, 마우스 입력 방식은 효율적이지만, 장시간 사용하면 손목저림, 어깨결림 등 인체에 무리를 줄 수 있다. 이러한 증상은 흔히 반복작업손상(RSI, Repetitive Strain Injury) 증후군이라 하며, 최근 대표적인 화이트 칼라 직업병으로 거론되고 있다. 사용 편의성 혁신이 중요해지는 또다른 이유는 컴퓨터 사용층의 확대이다. 사용층이 유아, 노령층, 장애우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보다 사용하기 쉽고 인간 지향적인 PC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매년 발간하는 『과학기술 로드맵』에서도 ‘사용 편의성(Usability)’은 반도체, 스토리지 등과 함께 미래 정보통신 기술의 중요 테마로 다루어지고 있다. 향후 사용 편의성 혁신은 입력, 출력, 저장, 검색, 통신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전개될 것이다. 이중 특히 사용자와 컴퓨터가 직접 상호작용하는 입력 및 출력 부문의 혁신이 두드러질 전망이다.
입력 부문에서는 우선 인간친화적인 입력 방식이 등장할 것이다. 필기체 입력, 음성 인식, 손가락을 이용한 멀티 터치 방식 등이 키보드와 마우스를 보완할 전망이다. 기술이 좀더 발전하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컴퓨터 이용 장면처럼 동작(gesture)을 통한 공간 입력도 시도될 것이다. 최근 닌텐도 게임기 위(Wii)에서 이용되는 동작 리모콘도 공간 입력 기술의 한 형태이다. 장기적으로는 사물의 자율 인식도 실용화될 것이다. 인간이 명령이나 데이터를 입력하지 않아도 컴퓨터가 내장된 사물들이 전자태그(RFID), 카메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센서 등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인지하고 처리한다는 것이다.
출력 부문에서는 모니터의 다채로운 진화가 돋보일 것이다. 단기적으로 모니터는 대형화, 고해상도화, 박막화, 고실감화 등의 방향으로 발전될 것이다. 2대 이상의 다중 디스플레이 활용도 일반화될 전망이다. 중기적으로 모니터는 유연화되고 다기능화될 것이다. 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OLED) 나 플라스틱 전자 제품이 실용화되면 휘거나 구부릴 수 있는 전자 신문이나 전자 책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디스플레이가 카메라나 센서를 내장해 그 자체로 입력기기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화면 상의 물체나 메세지가 시청자의 손 움직임에 반응하는 리엑트릭스(Reactrix)의 쌍방향 광고 시스템은 이러한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장기적으로는 다앙한 사물의 디스플레이화가 시도될 전망이다. 의류, 자동차, 벽면, 빌딩 등에 갖가지 형태의 디스플레이가 결합되는 것이다. 이미 자동차 운전석의 전면 유리창에 속도나 주행 관련 정보를 표시하는 HUD(Head up Display) 장치가 도입되고 있다.
2. 컴퓨터가 사물, 인간과 결합
컴퓨터의 또 다른 진화 방향성은 유비쿼터스 컴퓨터이다. 유비쿼터스(ubiquitous)란 ‘온 세상에 두루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즉 유비쿼터스 시대에는 다양한 사물에 컴퓨터가 내장되고,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사물에 부여되는 컴퓨팅 능력은 사물의 특성이나 용도에 따라 다를 것이다. 휴대폰처럼 소형 컴퓨터 형태로 발전하는 사물도 있겠지만, 로봇 청소기나 개인용 헬스케어 기기처럼 간단한 인공지능이 부여되거나 편의성만 개선되는 사물도 있을 것이다.
주목할 점은 유비쿼터스 시대에 컴퓨터의 형태가 지금과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작년에 선보인 서피스(Surface) 컴퓨터는 탁자 형태이다. 미국의 벤처 회사인 플라이펜탑(Flypentop)이 내놓은 교육용 컴퓨터는 펜 모양이다. 자동차도 차내 전자제어 시스템의 구축, 공공 교통시스템과의 네트워킹 기능 등이 추가되면서 점차 ‘달리는 컴퓨터’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금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최한 ‘차세대 PC 디자인 전’에서는 컵, 냅킨, 다이어리 형태의 컴퓨터까지 출품된 바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시계, 액세서리, 헬멧, 심지어 옷 형태로 만들어져 몸에 걸치거나 부착할 수 있는 웨어러블(Wearable) 컴퓨터도 나타날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 시마츠(Shimadz)의 Data Glass는 머리에 부착하는 디스플레이로 2007년 세번째 버전까지 나왔다. 디자인 컨셉트의 형태이긴 하지만, 필립스에서 제시한 전자 센싱 보석도 흥미롭다. 이는 플렉서블 전자 기판에 디스플레이, 센서 등을 부착한 것으로, 색깔이 변화하며 착용자의 감정 상태를 보여주는 컨셉트이다. 생체공학과 컴퓨터공학이 만나 신체 내장형 컴퓨터도 등장할 수 있다. 최근 영국에서 시술된 안경 모양의 인공 눈은 이러한 시도의 일환이다.
이러한 유비쿼터스 컴퓨터들은 인간과 컴퓨터의 관계를 바꿀 전망이다. 현재 컴퓨터와 인간, 사물은 각각 별개이다. 그러나 앞으로 컴퓨터가 인간에 밀착·내장되고, 다양한 사물에 컴퓨팅 기능이 결합되면, 컴퓨터와 인간, 사물간의 경계가 모호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주목받는 인체통신 기술이 상용화될 경우, 사람의 몸은 디지털 기기와 웨어러블 컴퓨터들이 정보를 주고받는 전송 케이블의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현재 컴퓨터는 인간이 조작해야 비로소 작동하지만, 미래에는 인간의 개입 없이 사물끼리 자율적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이미 PC는 따로 시간을 맞춰줄 필요가 없다. PC가 자율적으로 인터넷 타임 서버와 시간을 동기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 미래에는 거리의 광고판이 내 휴대폰을 인식하고 주변 음식점들의 할인 쿠폰을 보내주기도 할 것이다. 사물, 컴퓨터, 인간이 어우러져 정보를 주고받는 디지털 생태계가 열리는 것이다.
3. 과학, 산업, 경영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
미래 컴퓨터의 또다른 발전 방향은 컴퓨팅 능력의 극대화이다. 기상 예측 등에 이용되는 수퍼 컴퓨터 분야에서는 페타플롭스 컴퓨팅 시대가 열리고 있다. 페타플롭스(petaflops)란 1초에 10의 15승, 즉 1000조 번의 연산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현재 기상청의 수퍼 컴퓨터는 1초당 18조 번의 연산이 가능한 18 테라플롭스 급인데, 이것의 55배 이상 컴퓨팅 능력이 구현된다는 말이다. 컴퓨팅 능력의 극대화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2018년이면 그 다음 단계인 엑사(exa, 즉 10의 18승, 즉 100경 번의 연산) 컴퓨팅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앞서 일반 개인용 컴퓨터 영역에서는 성능 혁신의 중요성이 점차 감소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미래에 이처럼 천문학적인 연산 능력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첨단과학 연구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신 과학 분야 중 하나인 디지털 생물학은 생물체와 똑같이 작동하는 사이버 생명체를 컴퓨터 상에 소프트웨어 코드로 구현하려 한다. 생체 실험이나 시험관 실험 없이 컴퓨터 모의실험만으로 생명 현상을 연구하여 연구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정교한 사이버 생명체를 모델링하려면 그만큼 강력한 컴퓨팅 능력이 필수적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구 생태계 연구, 국제 전염병 전파 시뮬레이션, 신약 개발, 우주 및 생명의 이해 등 다양한 첨단 연구 분야에서 극한의 계산 능력을 갖춘 컴퓨터가 요구될 전망이다. 마이크로소프트도 2006년 발간한 『Towards 2020 Science』 보고서에서 향후 컴퓨터가 과거 미적분학이나 전자현미경처럼 새로운 과학 혁명의 패러다임을 여는 도구가 될 것이라 지적한 바 있다.
나아가 컴퓨팅 능력의 극대화는 다양한 산업 특화 컴퓨팅의 장을 열 것이다. 이미 항공기, 자동차, 건설 산업에서는 고성능 컴퓨터에 기반한 3차원 설계 및 시뮬레이션이 필수이다. 최근에는 원격 석유 탐사, 의료 검사 결과의 판독/진단 등에도 컴퓨터가 활용되는 추세이다. 독일 지멘스의 『Picture of the Future』 매거진에서는 미래 시나리오 형태를 빌어 향후 더욱 다양한 산업과 전문 분야에 고성능의 컴퓨터 이용이 확산될 것임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미래 병원에서는 컴퓨터 상의 가상 의사를 디지털 조수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일반 공장에서도 신제품, 신공정이 디지털 가상 공간에서 테스트될 것이다.
일반 기업에서도 컴퓨터는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기업에서 컴퓨터는 이미 단순한 문서 작성의 도구가 아니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PC 및 서버 시스템은 IT 인프라로서, 기업의 전사적 정보 흐름을 총괄하는 전략적 자산이 되었다. 앞으로는 연산 능력 극대화에 힘입어 미래 예측과 전략 수립의 도구로까지 진화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이미 서구에서는 데이터 분석 기반의 전략 수립 방식이 다시금 힘을 얻고 있다. 최근 『Competing on Analytics』나 『Super Cruncher』처럼 데이터 기반의 전략 수립을 강조한 서적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것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경영자의 직관이나 컨설턴트의 연역적 논리 대신 수백만 개의 고객 데이터를 수학 및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새로운 전략을 도출하자는 것이다.
II. 부품과 소프트웨어의 진화 방향
1. 부품 : 실리콘 반도체와 디지털 전자의 패러다임이 무너진다
현재 컴퓨터는 실리콘 반도체와 디지털 전자 기술에 기초를 두고 있다. 모든 데이터를 0과 1의 디지털 신호로 바꾸고, 전자의 이동을 통해 실리콘 반도체에 기록하고 연산하는 것이다. 물론 반도체/전자 패러다임 하의 기술 진화는 여전히 계속될 것이나, 점차 한계에 봉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특히 앞서 살펴본 컴퓨터의 세 가지 진화 방향, 즉 사용 편의성 혁신, 사물/인간과 결합, 컴퓨팅 능력 극대화가 실현되려면 기존 기술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할 전망이다.
먼저 중기적으로 실리콘 반도체 기술은 공정 미세화의 물리적 한계, 물성 측면의 한계, 저원가화의 한계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공정 미세화의 물리적 한계는 칩 안에 더 이상 촘촘하게 회로를 집적하기가 힘들어진다는 말이다. 회로 배선 간격이 너무 좁아지면, 누전이나 간섭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실리콘 기반의 반도체는 웨어러블 컴퓨터 제작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물성 측면에서 휘거나 구부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기체 기반의 플렉서블/플라스틱 전자 기술이 대안으로 개발되는 추세이다. 또한 기존 반도체 공정 방식은 유비쿼터스 컴퓨팅이 요구하는 초저원가 반도체 생산에서 한계를 보인다. 노광, 식각 등 18개의 복잡한 단계를 거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 대안으로 인쇄형 전자 공정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회로를 종이 문서처럼 인쇄하여 공정 단순화와 제조 비용의 획기적 절감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전자 패러다임도 도전받을 수 있다. 향후 전개될 극한 컴퓨팅의 세계에서는 저항이나 이진법 등 내재적 문제로 인해 전자 패러다임이 한계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광자, 분자, 양자 같은 대안 패러다임이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 광자는 전자처럼 저항 문제가 크지 않아 정보 전달 속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고, 3차원 홀로그램 형태로 테라급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광 PCB나 HDDS (Hologram Digital Data Storage) 형태로 상용화가 시작되고 있다. 분자 컴퓨팅도 전자의 이진법적 한계를 극복하는 차원에서 연구 중이다. 전자는 한 번에 0 또는 1의 표시만이 가능하다. 반면 분자 컴퓨팅은 나노 기술로 분자들을 3차원으로 연결해 한 번에 수십 번의 연산을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다. 양자 컴퓨팅도 같은 맥락이나 양자의 불확정성을 이용하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분자 및 양자 컴퓨팅 모두 아직까지는 과학적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어 상용화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2. 소프트웨어 : 개발/저작 도구, 직관적 인터페이스, 기계 학습
롱테일 경제, 웹 2.0 시대의 개막은 소프트웨어 산업의 시장 환경을 크게 변화시킬 전망이다. 무엇보다 소비자 기호가 극단적으로 다양해지면서 시장의 공통 분모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상용 패키지 프로그램은 점차 소비자 니즈를 충족시키는데 한계를 보일 것이다. 게다가 컴퓨터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사용 편의성 혁신, 사물/인간과 결합, 과학과 전략의 도구화 등의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소프트웨어 부문의 변화는 더욱 가속될 전망이다.
먼저 사용 편의성 혁신과 관련해, 향후 개발/저작도구 소프트웨어가 인기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똑똑해진 일반 대중, 즉 프로슈머가 프로그램 및 컨텐츠의 새로운 생산 주체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오픈 소스를 이용한 무료 소프트웨어 확산, 위키피디아나 사용자 제작 컨텐츠(UCC)의 강세는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 애플, 노키아, 구글 등은 이러한 트렌드 변화를 감지하고, 자사 제품과 관련된 소프트웨어 개발도구(SDK)를 배포해 프로슈머의 창조적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나아가 프로슈머들은 창의적인 컨텐츠를 보다 편리하고 완성도 높게 만들 수 있는 저작 도구를 원하게 될 것이다. 워크래프3, 헤일로 같은 3D 게임을 스튜디오로 삼아 동영상을 만드는 머시니마(Machinima) 장르는 이러한 니즈를 반영한다. 이에 대응해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는 향후 동영상, 교육, 예술 작품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개인의 멀티미디어 컨텐츠 창조를 지원하는 고품질 저작도구가 큰 인기를 끌게 될 것으로 보인다.
컴퓨터의 사물/인간과의 결합에 대응해서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개발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미래에는 컴퓨터가 가구, 방, 자동차, 옷, 상품 포장 등 다양한 사물과 결합될 것이다. 현재의 자르기, 붙이기 같은 인위적인 명령 형태는 이러한 컴퓨터 내장 사물에 적절하지 않게 될 것이다. 사물의 본래 용도에 맞는 자연스럽고 직관적인 작동법이 필요한 것이다. 일본에서 많이 이용되는 QR 코드는 직관적 인터페이스의 초기 형태라 할 수 있다. 상품 광고에 부착된 정사각형의 점자 모양의 QR 코드를 카메라 휴대폰으로 찍으면, 휴대폰은 코드 내에 담긴 정보를 인식하여, 주소 입력 없이도 웹사이트로 연결시켜 준다.
한편 과학, 산업, 전략의 도구화를 위해서는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기계 학습이란 경험, 인지, 기억, 추론 등 인간의 학습 과정을 모방한 알고리즘을 만들어 컴퓨터가 스스로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만들자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기계 학습은 컴퓨터의 미래 예측력 강화에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주가, 환율의 기술적 분석이나 몬테 카를로 시뮬레이션 등 미래 예측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용되고 있다. 기계 학습 개념이 적용되면 컴퓨터는 수많은 데이터로부터 인과 관계 모델을 스스로 구성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예측력을 높이게 된다. 수만개의 단순 데이터나 텍스트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데이터/텍스트 마이닝에도 기계 학습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의미 추출 능력이 배가될 것이다.
III. 컴퓨터 관련 기업들의 대응 방향
이처럼 컴퓨터가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향후 컴퓨터 산업도 과거와 다른 양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시장의 외연이 크게 확대되고 산업간 융합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경쟁 양태 또한 바뀌는 것이다. 이에 따라 컴퓨터 산업의 세트, 부품,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새로운 대응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대응 방향 중 앞서 제시한 컴퓨터의 진화 방향과 관련해 기업들이 주목해야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용 편의성 혁신과 관련해 새로운 사용자 경험과 지배적 디자인(Dominant Design)의 창출이 중요해질 것이다. 둘째, 사물/인간과의 결합과 관련해 사실상의 표준 확보와 관련 서비스 개발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셋째, 과학/산업/전략의 도구화와 관련해 산업 컴퓨팅 플랫폼 창출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넷째, 실리콘 반도체 및 디지털 전자의 대안 패러다임 등장과 관련해 미래 차세대 기술의 확보 및 상용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다섯째, 소프트웨어의 개발/저작도구화와 관련해 프로슈머 생태계 구축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1. 새로운 사용자 경험과 지배적 디자인의 창출
일반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성능 경쟁이 힘을 잃으면서 소비자들을 놀라게 만드는 새로운 사용자 경험과 이를 최적으로 구현하는 새로운 제품 형태, 즉 지배적 디자인의 창출을 위한 경쟁이 전개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애플이 각광을 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애플은 아이맥 컴퓨터, 아이팟 MP3 플레이어, 아이폰 휴대폰 등 제품 라인업 전반에 걸쳐 세련되고 혁신적인 사용자 경험과 매력적인 제품 형태를 창출하여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아울러 유비쿼터스 사물 컴퓨터 시장에서도 새로운 사용자 경험과 지배적 디자인의 창출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기존 사물과 구별되는 독특한 사용자 경험이 있어야만 비로소 소비자들이 사물 컴퓨터를 이용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 사물 컴퓨터의 형태는 불확실하므로 시장에서 통하는 지배적 디자인의 창출이 초기 시장의 장악에 중요하다. 미국의 아이로봇 사가 내놓은 로봇 청소기 룸바는 저렴하고 실용적인 제품 설계로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룸바의 원형 제품 디자인은 금새 로봇 청소기의 사실상 표준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경쟁에서 관건은 최고 성능의 구현이 아니다. 그보다는 미래 소비자의 이해, 기존 기술의 창의적 결합, 완성도 높은 사용자 경험의 선제시가 주도권 장악의 필수 요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기존 제품의 사용상 문제점과 시장의 미래 니즈를 얼마나 깊게 이해하는가, 다양한 첨단 부품과 소프트웨어 기술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조합할 수 있는가, 누가 먼저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완성도 높게 제시하는가 등이 성패의 관건이 된다는 의미이다.
2. 사실상 표준 주도와 관련 서비스 개발
컴퓨터와 사물/인간의 결합에 대응해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 주도가 중요해질 것이다. 기업에게 사물 컴퓨터는 자칫 계륵일 수 있다. 미래 전체 시장 규모가 크다고 해서 사업성을 검토해 보지만, 막상 접근가능한 개별 시장은 생각보다 작아 난감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사물 컴퓨터가 매우 다양하여 개별 시장이 세분화되는 경향이 있고, 범용화된 사물의 경우 가격이 매우 낮은 상태라 컴퓨터 기능을 결합해도 가치 증가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별 시장을 공략하는 것보다 다양한 사물 컴퓨터의 공통 기반 부품을 찾아 이를 장악하는 것이 더 현명한 시도일 수도 있다. RFID, 센서, 초소형 카메라, 동작 액츄에이터, 저전력 전원 등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특히 이들 부품은 호환성이 중요하고, 초기 대량 생산으로 시장 장악이 가능하여 기술 측면에서 사실상 표준을 주도한 기업이 누리는 선점 효과가 대단히 크다.
한편 유비쿼터스 시대의 사물 컴퓨터 영역에서는 디지털 사물 생태계를 활용해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는 노력 역시 중요하다. 디지털 사물이 자율적으로 정보를 주고 받는 생태계는 미래의 새로운 사회적 인프라가 될 것이다. 진정한 가치는 이 인프라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개개인에게 새로운 혜택을 줄 때 생겨난다.
3. 산업 컴퓨팅 플랫폼 창출
앞으로는 산업간 융합과 과학의 사업화가 본격화되는 시대가 도래할 전망이다. 컴퓨터와 자동차가 만나 새로운 자동차 전자 장치 산업이 만들어지고, 컴퓨터와 생물학이 만나 디지털생물학과 바이오 신약 산업이 형성되는 등 다양한 신흥 산업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는 산업 컴퓨팅 플랫폼을 창출해 장악한 기업이 새로운 승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 PC 시대에 PC 플랫폼을 장악한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가, 2000년대 웹 2.0 시대에 인터넷 플랫폼을 장악한 구글이 새로운 승자 기업이 된 것과 유사한 이치이다.
컴퓨팅 플랫폼은 새로운 융합 산업과 과학 산업의 발전 구도를 결정짓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컴퓨팅 플랫폼을 장악한 기업의 산업 영향력이 커지고, 새로운 고수익 시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나노 분야의 경우도 응용 시장이 열리기 전에 분자 단위의 계측 및 조작 장비 시장이 먼저 형성되었다. 이 때문에 컴퓨터 산업의 선진 기업들은 최근 산업 컴퓨팅 플랫폼 분야에 주력하는 양상이다. 인텔이 바이오 분야를 연구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로봇과 자동차의 운영체제 플랫폼 사업에 공을 들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IBM이 소니와 함께 병렬형 컴퓨팅에 최적화된 셀(Cell) 프로세서를 개발한 후 산업, 의학, 군수용으로 다양하게 응용하려는 것도 블루 오션인 산업 컴퓨팅 플랫폼 시장을 염두에 둔 행보로 해석된다.
4. 차세대 기술의 확보 및 상용화
반도체, 전자의 패러다임이 무너지는 미래 컴퓨팅의 세계에서는 차세대 기술의 확보가 중요해진다. 특히 지적재산권 분쟁이 격화되는 추세임을 감안할 때, 기반 기술의 확보는 사업 지속성 측면에서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기업들이 차세대 기술을 스스로 개발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현재 연구 인력들이 기존 기술 패러다임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안 기술은 다양하고 성공 확률이 낮아 집중 육성 아이템을 찾기가 쉽지 않은 탓도 있다. 따라서 차세대 기술의 확보를 위해 내부 연구개발 뿐만 아니라 R&D 제휴, 산학연계, 특허 매입, M&A 등 외부 R&D 결과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확보한 미래 기술을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이용처를 찾는 노력도 필요하다. 확보된 기반 기술은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런데 초기의 미래 기술은 대체로 기존 기술에 비해 불완전하고 구현 비용이 많이 들어 상용화가 쉽지 않다. 따라서 기업은 기술적 불완전성과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호응도가 큰 초기 틈새 시장을 찾아 이에 최적화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홀로그램 데이터 저장 시스템이 방송국용 동영상 스토리지를, 양자 기술이 군사용 데이터 암호화 등을 초기 시장으로 삼고 있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5. 프로슈머 생태계 구축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는 프로슈머 생태계 구축이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다. 공유와 참여가 새로운 사회 패러다임이 되면서 열정을 가진 프로슈머들을 기업의 동반자로 활용할 필요성이 커질 전망이다. 프로슈머들은 창조의 즐거움과 외부의 평판, 그리고 적절한 금전적 보상에 의해 움직인다. 따라서 프로슈머들이 소프트웨어 및 컨텐츠 개발에 필요한 도구를 지원받고, 관련 지식을 나누며, 결과물을 빠르게 배포할 수 있는 커뮤니티나 채널을 구현해야 한다.. 아울러 일련의 과정이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되어 하나의 생태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운영이 요구된다.
최근 애플의 SDK(소프트웨어 개발 도구) 공개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다. 외부 개발자들은 이를 이용해 다양한 아이폰, 아이팟 터치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다. 개발된 소프트웨어들은 애플 아이튠스 서비스를 통해 배포된다. 애플 아이팟 터치는 본래 MP3 플레이어이지만, 애플 매니아들이 SDK로 제작한 프로그램들을 추가 설치하면 수준높은 PDA로 변신하기도 한다. 유료 애플리케이션의 경우 개발자들이 매출의 70%를 가져간다. 이처럼 외부 프로슈머 개발자들의 참여를 확산시켜 자발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모바일 플랫폼 시장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래 컴퓨터 진화의 5가지 트렌드와 기업의 대응 방향에 대해 살펴 보았다. 컴퓨터의 발전 방향은 과거와 크게 달라질 것이다. 향후 컴퓨터 산업에서 경쟁우위를 점하려면 사용 편의성 혁신이나 사물/인간과의 결합 같은 새로운 진화 방향을 선도하고, 시장 니즈 변화에 대응하여 새로운 소비자 가치를 창출해야 할 것이다.
이미 선진 기업들을 중심으로 산업계에서는 이러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대다수 기업들이 박스 제품의 생산 효율성에 연연하며 중국, 대만, 인도 등 신흥국 저가 경쟁자들의 시장 잠식을 두려워할 때, 앞서가는 기업들은 시장의 외연 확장과 신산업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컴퓨터 산업에서는 기술력의 차이가 경쟁력의 차이로 직결되었지만, 향후에는 미래 비전의 차이가 경쟁력의 차이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경쟁사와 다른 산업 비전을 가지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할 때 새로운 경쟁 우위가 탄생하는 것이다. 넓은 시야를 갖고 보다 멀리 내다보면서 새로운 도전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 참고문헌 >
일본 경제산업성 & NEDO, 『기술 전략 Roadmap 2007』. 2007.5.
정보통신부, 『IT 기술예측 2020』, 2006.12.
Microsoft, 『Towards 2020 Science』. (`06.3)
Microsoft, 『Human Computer Interaction in the year 2020』. (`08.4)
Siemens, 『Picture of the Future』, 각 호
Nature지 (`06.3) 『2020 Computing』 특집
UK Computing Research Committee, 『Grand Challenge in Computing』, (`05.1)
- LG Business Insight 933호
I. 컴퓨터의 새로운 진화 방향
현재 산업계에서는 컴퓨터의 미래에 대해 다양한 시각이 제시되고 있다. 이 중에서 주목할 만한 새로운 주장들을 선별해 보면,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미래에는 성능 혁신보다 사용 편의성 혁신이 더욱 강조될 것이다. 둘째, 유비쿼터스적 관점에서 컴퓨터는 만물에 침투하고 나아가 인간과 결합될 것이다. 셋째, 컴퓨팅 능력의 극대화로 컴퓨터는 새로운 과학, 산업 및 경영의 도구가 될 것이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진화 방향성에 대해 상세히 살펴 본다.
1. 성능 혁신에서 사용 편의성 혁신으로
컴퓨터의 역사는 성능 혁신과 기능 다양화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컴퓨터의 성능이 일반 소비자의 니즈 수준을 과도하게 넘어서면서, 이전처럼 성능 제고가 구매 증가로 즉각 연결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데스크톱, 노트북, UMPC(울트라 모바일 PC) 등 일반 개인용 컴퓨터 영역에서는 성능 혁신 대신 저전력화, 소형 경량화, 초저가화 등 새로운 발전 방향이 모색되고 있다.
특히 이러한 대안적 시도 중 사용 편의성 혁신은 향후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컴퓨터에 대한 인간의 의존도가 심화되면서 나타난 새로운 문제들 때문이다. 예로써 키보드, 마우스 입력 방식은 효율적이지만, 장시간 사용하면 손목저림, 어깨결림 등 인체에 무리를 줄 수 있다. 이러한 증상은 흔히 반복작업손상(RSI, Repetitive Strain Injury) 증후군이라 하며, 최근 대표적인 화이트 칼라 직업병으로 거론되고 있다. 사용 편의성 혁신이 중요해지는 또다른 이유는 컴퓨터 사용층의 확대이다. 사용층이 유아, 노령층, 장애우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보다 사용하기 쉽고 인간 지향적인 PC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매년 발간하는 『과학기술 로드맵』에서도 ‘사용 편의성(Usability)’은 반도체, 스토리지 등과 함께 미래 정보통신 기술의 중요 테마로 다루어지고 있다. 향후 사용 편의성 혁신은 입력, 출력, 저장, 검색, 통신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전개될 것이다. 이중 특히 사용자와 컴퓨터가 직접 상호작용하는 입력 및 출력 부문의 혁신이 두드러질 전망이다.
입력 부문에서는 우선 인간친화적인 입력 방식이 등장할 것이다. 필기체 입력, 음성 인식, 손가락을 이용한 멀티 터치 방식 등이 키보드와 마우스를 보완할 전망이다. 기술이 좀더 발전하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컴퓨터 이용 장면처럼 동작(gesture)을 통한 공간 입력도 시도될 것이다. 최근 닌텐도 게임기 위(Wii)에서 이용되는 동작 리모콘도 공간 입력 기술의 한 형태이다. 장기적으로는 사물의 자율 인식도 실용화될 것이다. 인간이 명령이나 데이터를 입력하지 않아도 컴퓨터가 내장된 사물들이 전자태그(RFID), 카메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센서 등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인지하고 처리한다는 것이다.
출력 부문에서는 모니터의 다채로운 진화가 돋보일 것이다. 단기적으로 모니터는 대형화, 고해상도화, 박막화, 고실감화 등의 방향으로 발전될 것이다. 2대 이상의 다중 디스플레이 활용도 일반화될 전망이다. 중기적으로 모니터는 유연화되고 다기능화될 것이다. 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OLED) 나 플라스틱 전자 제품이 실용화되면 휘거나 구부릴 수 있는 전자 신문이나 전자 책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디스플레이가 카메라나 센서를 내장해 그 자체로 입력기기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화면 상의 물체나 메세지가 시청자의 손 움직임에 반응하는 리엑트릭스(Reactrix)의 쌍방향 광고 시스템은 이러한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장기적으로는 다앙한 사물의 디스플레이화가 시도될 전망이다. 의류, 자동차, 벽면, 빌딩 등에 갖가지 형태의 디스플레이가 결합되는 것이다. 이미 자동차 운전석의 전면 유리창에 속도나 주행 관련 정보를 표시하는 HUD(Head up Display) 장치가 도입되고 있다.
2. 컴퓨터가 사물, 인간과 결합
컴퓨터의 또 다른 진화 방향성은 유비쿼터스 컴퓨터이다. 유비쿼터스(ubiquitous)란 ‘온 세상에 두루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즉 유비쿼터스 시대에는 다양한 사물에 컴퓨터가 내장되고,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사물에 부여되는 컴퓨팅 능력은 사물의 특성이나 용도에 따라 다를 것이다. 휴대폰처럼 소형 컴퓨터 형태로 발전하는 사물도 있겠지만, 로봇 청소기나 개인용 헬스케어 기기처럼 간단한 인공지능이 부여되거나 편의성만 개선되는 사물도 있을 것이다.
주목할 점은 유비쿼터스 시대에 컴퓨터의 형태가 지금과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작년에 선보인 서피스(Surface) 컴퓨터는 탁자 형태이다. 미국의 벤처 회사인 플라이펜탑(Flypentop)이 내놓은 교육용 컴퓨터는 펜 모양이다. 자동차도 차내 전자제어 시스템의 구축, 공공 교통시스템과의 네트워킹 기능 등이 추가되면서 점차 ‘달리는 컴퓨터’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금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최한 ‘차세대 PC 디자인 전’에서는 컵, 냅킨, 다이어리 형태의 컴퓨터까지 출품된 바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시계, 액세서리, 헬멧, 심지어 옷 형태로 만들어져 몸에 걸치거나 부착할 수 있는 웨어러블(Wearable) 컴퓨터도 나타날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 시마츠(Shimadz)의 Data Glass는 머리에 부착하는 디스플레이로 2007년 세번째 버전까지 나왔다. 디자인 컨셉트의 형태이긴 하지만, 필립스에서 제시한 전자 센싱 보석도 흥미롭다. 이는 플렉서블 전자 기판에 디스플레이, 센서 등을 부착한 것으로, 색깔이 변화하며 착용자의 감정 상태를 보여주는 컨셉트이다. 생체공학과 컴퓨터공학이 만나 신체 내장형 컴퓨터도 등장할 수 있다. 최근 영국에서 시술된 안경 모양의 인공 눈은 이러한 시도의 일환이다.
이러한 유비쿼터스 컴퓨터들은 인간과 컴퓨터의 관계를 바꿀 전망이다. 현재 컴퓨터와 인간, 사물은 각각 별개이다. 그러나 앞으로 컴퓨터가 인간에 밀착·내장되고, 다양한 사물에 컴퓨팅 기능이 결합되면, 컴퓨터와 인간, 사물간의 경계가 모호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주목받는 인체통신 기술이 상용화될 경우, 사람의 몸은 디지털 기기와 웨어러블 컴퓨터들이 정보를 주고받는 전송 케이블의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현재 컴퓨터는 인간이 조작해야 비로소 작동하지만, 미래에는 인간의 개입 없이 사물끼리 자율적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이미 PC는 따로 시간을 맞춰줄 필요가 없다. PC가 자율적으로 인터넷 타임 서버와 시간을 동기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 미래에는 거리의 광고판이 내 휴대폰을 인식하고 주변 음식점들의 할인 쿠폰을 보내주기도 할 것이다. 사물, 컴퓨터, 인간이 어우러져 정보를 주고받는 디지털 생태계가 열리는 것이다.
3. 과학, 산업, 경영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
미래 컴퓨터의 또다른 발전 방향은 컴퓨팅 능력의 극대화이다. 기상 예측 등에 이용되는 수퍼 컴퓨터 분야에서는 페타플롭스 컴퓨팅 시대가 열리고 있다. 페타플롭스(petaflops)란 1초에 10의 15승, 즉 1000조 번의 연산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현재 기상청의 수퍼 컴퓨터는 1초당 18조 번의 연산이 가능한 18 테라플롭스 급인데, 이것의 55배 이상 컴퓨팅 능력이 구현된다는 말이다. 컴퓨팅 능력의 극대화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2018년이면 그 다음 단계인 엑사(exa, 즉 10의 18승, 즉 100경 번의 연산) 컴퓨팅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앞서 일반 개인용 컴퓨터 영역에서는 성능 혁신의 중요성이 점차 감소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미래에 이처럼 천문학적인 연산 능력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첨단과학 연구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신 과학 분야 중 하나인 디지털 생물학은 생물체와 똑같이 작동하는 사이버 생명체를 컴퓨터 상에 소프트웨어 코드로 구현하려 한다. 생체 실험이나 시험관 실험 없이 컴퓨터 모의실험만으로 생명 현상을 연구하여 연구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정교한 사이버 생명체를 모델링하려면 그만큼 강력한 컴퓨팅 능력이 필수적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구 생태계 연구, 국제 전염병 전파 시뮬레이션, 신약 개발, 우주 및 생명의 이해 등 다양한 첨단 연구 분야에서 극한의 계산 능력을 갖춘 컴퓨터가 요구될 전망이다. 마이크로소프트도 2006년 발간한 『Towards 2020 Science』 보고서에서 향후 컴퓨터가 과거 미적분학이나 전자현미경처럼 새로운 과학 혁명의 패러다임을 여는 도구가 될 것이라 지적한 바 있다.
나아가 컴퓨팅 능력의 극대화는 다양한 산업 특화 컴퓨팅의 장을 열 것이다. 이미 항공기, 자동차, 건설 산업에서는 고성능 컴퓨터에 기반한 3차원 설계 및 시뮬레이션이 필수이다. 최근에는 원격 석유 탐사, 의료 검사 결과의 판독/진단 등에도 컴퓨터가 활용되는 추세이다. 독일 지멘스의 『Picture of the Future』 매거진에서는 미래 시나리오 형태를 빌어 향후 더욱 다양한 산업과 전문 분야에 고성능의 컴퓨터 이용이 확산될 것임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미래 병원에서는 컴퓨터 상의 가상 의사를 디지털 조수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일반 공장에서도 신제품, 신공정이 디지털 가상 공간에서 테스트될 것이다.
일반 기업에서도 컴퓨터는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기업에서 컴퓨터는 이미 단순한 문서 작성의 도구가 아니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PC 및 서버 시스템은 IT 인프라로서, 기업의 전사적 정보 흐름을 총괄하는 전략적 자산이 되었다. 앞으로는 연산 능력 극대화에 힘입어 미래 예측과 전략 수립의 도구로까지 진화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이미 서구에서는 데이터 분석 기반의 전략 수립 방식이 다시금 힘을 얻고 있다. 최근 『Competing on Analytics』나 『Super Cruncher』처럼 데이터 기반의 전략 수립을 강조한 서적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것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경영자의 직관이나 컨설턴트의 연역적 논리 대신 수백만 개의 고객 데이터를 수학 및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새로운 전략을 도출하자는 것이다.
II. 부품과 소프트웨어의 진화 방향
1. 부품 : 실리콘 반도체와 디지털 전자의 패러다임이 무너진다
현재 컴퓨터는 실리콘 반도체와 디지털 전자 기술에 기초를 두고 있다. 모든 데이터를 0과 1의 디지털 신호로 바꾸고, 전자의 이동을 통해 실리콘 반도체에 기록하고 연산하는 것이다. 물론 반도체/전자 패러다임 하의 기술 진화는 여전히 계속될 것이나, 점차 한계에 봉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특히 앞서 살펴본 컴퓨터의 세 가지 진화 방향, 즉 사용 편의성 혁신, 사물/인간과 결합, 컴퓨팅 능력 극대화가 실현되려면 기존 기술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할 전망이다.
먼저 중기적으로 실리콘 반도체 기술은 공정 미세화의 물리적 한계, 물성 측면의 한계, 저원가화의 한계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공정 미세화의 물리적 한계는 칩 안에 더 이상 촘촘하게 회로를 집적하기가 힘들어진다는 말이다. 회로 배선 간격이 너무 좁아지면, 누전이나 간섭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실리콘 기반의 반도체는 웨어러블 컴퓨터 제작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물성 측면에서 휘거나 구부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기체 기반의 플렉서블/플라스틱 전자 기술이 대안으로 개발되는 추세이다. 또한 기존 반도체 공정 방식은 유비쿼터스 컴퓨팅이 요구하는 초저원가 반도체 생산에서 한계를 보인다. 노광, 식각 등 18개의 복잡한 단계를 거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 대안으로 인쇄형 전자 공정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회로를 종이 문서처럼 인쇄하여 공정 단순화와 제조 비용의 획기적 절감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전자 패러다임도 도전받을 수 있다. 향후 전개될 극한 컴퓨팅의 세계에서는 저항이나 이진법 등 내재적 문제로 인해 전자 패러다임이 한계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광자, 분자, 양자 같은 대안 패러다임이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 광자는 전자처럼 저항 문제가 크지 않아 정보 전달 속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고, 3차원 홀로그램 형태로 테라급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광 PCB나 HDDS (Hologram Digital Data Storage) 형태로 상용화가 시작되고 있다. 분자 컴퓨팅도 전자의 이진법적 한계를 극복하는 차원에서 연구 중이다. 전자는 한 번에 0 또는 1의 표시만이 가능하다. 반면 분자 컴퓨팅은 나노 기술로 분자들을 3차원으로 연결해 한 번에 수십 번의 연산을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다. 양자 컴퓨팅도 같은 맥락이나 양자의 불확정성을 이용하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분자 및 양자 컴퓨팅 모두 아직까지는 과학적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어 상용화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2. 소프트웨어 : 개발/저작 도구, 직관적 인터페이스, 기계 학습
롱테일 경제, 웹 2.0 시대의 개막은 소프트웨어 산업의 시장 환경을 크게 변화시킬 전망이다. 무엇보다 소비자 기호가 극단적으로 다양해지면서 시장의 공통 분모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상용 패키지 프로그램은 점차 소비자 니즈를 충족시키는데 한계를 보일 것이다. 게다가 컴퓨터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사용 편의성 혁신, 사물/인간과 결합, 과학과 전략의 도구화 등의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소프트웨어 부문의 변화는 더욱 가속될 전망이다.
먼저 사용 편의성 혁신과 관련해, 향후 개발/저작도구 소프트웨어가 인기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똑똑해진 일반 대중, 즉 프로슈머가 프로그램 및 컨텐츠의 새로운 생산 주체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오픈 소스를 이용한 무료 소프트웨어 확산, 위키피디아나 사용자 제작 컨텐츠(UCC)의 강세는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 애플, 노키아, 구글 등은 이러한 트렌드 변화를 감지하고, 자사 제품과 관련된 소프트웨어 개발도구(SDK)를 배포해 프로슈머의 창조적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나아가 프로슈머들은 창의적인 컨텐츠를 보다 편리하고 완성도 높게 만들 수 있는 저작 도구를 원하게 될 것이다. 워크래프3, 헤일로 같은 3D 게임을 스튜디오로 삼아 동영상을 만드는 머시니마(Machinima) 장르는 이러한 니즈를 반영한다. 이에 대응해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는 향후 동영상, 교육, 예술 작품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개인의 멀티미디어 컨텐츠 창조를 지원하는 고품질 저작도구가 큰 인기를 끌게 될 것으로 보인다.
컴퓨터의 사물/인간과의 결합에 대응해서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개발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미래에는 컴퓨터가 가구, 방, 자동차, 옷, 상품 포장 등 다양한 사물과 결합될 것이다. 현재의 자르기, 붙이기 같은 인위적인 명령 형태는 이러한 컴퓨터 내장 사물에 적절하지 않게 될 것이다. 사물의 본래 용도에 맞는 자연스럽고 직관적인 작동법이 필요한 것이다. 일본에서 많이 이용되는 QR 코드는 직관적 인터페이스의 초기 형태라 할 수 있다. 상품 광고에 부착된 정사각형의 점자 모양의 QR 코드를 카메라 휴대폰으로 찍으면, 휴대폰은 코드 내에 담긴 정보를 인식하여, 주소 입력 없이도 웹사이트로 연결시켜 준다.
한편 과학, 산업, 전략의 도구화를 위해서는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기계 학습이란 경험, 인지, 기억, 추론 등 인간의 학습 과정을 모방한 알고리즘을 만들어 컴퓨터가 스스로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만들자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기계 학습은 컴퓨터의 미래 예측력 강화에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주가, 환율의 기술적 분석이나 몬테 카를로 시뮬레이션 등 미래 예측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용되고 있다. 기계 학습 개념이 적용되면 컴퓨터는 수많은 데이터로부터 인과 관계 모델을 스스로 구성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예측력을 높이게 된다. 수만개의 단순 데이터나 텍스트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데이터/텍스트 마이닝에도 기계 학습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의미 추출 능력이 배가될 것이다.
III. 컴퓨터 관련 기업들의 대응 방향
이처럼 컴퓨터가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향후 컴퓨터 산업도 과거와 다른 양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시장의 외연이 크게 확대되고 산업간 융합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경쟁 양태 또한 바뀌는 것이다. 이에 따라 컴퓨터 산업의 세트, 부품,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새로운 대응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대응 방향 중 앞서 제시한 컴퓨터의 진화 방향과 관련해 기업들이 주목해야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용 편의성 혁신과 관련해 새로운 사용자 경험과 지배적 디자인(Dominant Design)의 창출이 중요해질 것이다. 둘째, 사물/인간과의 결합과 관련해 사실상의 표준 확보와 관련 서비스 개발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셋째, 과학/산업/전략의 도구화와 관련해 산업 컴퓨팅 플랫폼 창출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넷째, 실리콘 반도체 및 디지털 전자의 대안 패러다임 등장과 관련해 미래 차세대 기술의 확보 및 상용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다섯째, 소프트웨어의 개발/저작도구화와 관련해 프로슈머 생태계 구축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1. 새로운 사용자 경험과 지배적 디자인의 창출
일반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성능 경쟁이 힘을 잃으면서 소비자들을 놀라게 만드는 새로운 사용자 경험과 이를 최적으로 구현하는 새로운 제품 형태, 즉 지배적 디자인의 창출을 위한 경쟁이 전개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애플이 각광을 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애플은 아이맥 컴퓨터, 아이팟 MP3 플레이어, 아이폰 휴대폰 등 제품 라인업 전반에 걸쳐 세련되고 혁신적인 사용자 경험과 매력적인 제품 형태를 창출하여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아울러 유비쿼터스 사물 컴퓨터 시장에서도 새로운 사용자 경험과 지배적 디자인의 창출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기존 사물과 구별되는 독특한 사용자 경험이 있어야만 비로소 소비자들이 사물 컴퓨터를 이용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 사물 컴퓨터의 형태는 불확실하므로 시장에서 통하는 지배적 디자인의 창출이 초기 시장의 장악에 중요하다. 미국의 아이로봇 사가 내놓은 로봇 청소기 룸바는 저렴하고 실용적인 제품 설계로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룸바의 원형 제품 디자인은 금새 로봇 청소기의 사실상 표준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경쟁에서 관건은 최고 성능의 구현이 아니다. 그보다는 미래 소비자의 이해, 기존 기술의 창의적 결합, 완성도 높은 사용자 경험의 선제시가 주도권 장악의 필수 요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기존 제품의 사용상 문제점과 시장의 미래 니즈를 얼마나 깊게 이해하는가, 다양한 첨단 부품과 소프트웨어 기술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조합할 수 있는가, 누가 먼저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완성도 높게 제시하는가 등이 성패의 관건이 된다는 의미이다.
2. 사실상 표준 주도와 관련 서비스 개발
컴퓨터와 사물/인간의 결합에 대응해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 주도가 중요해질 것이다. 기업에게 사물 컴퓨터는 자칫 계륵일 수 있다. 미래 전체 시장 규모가 크다고 해서 사업성을 검토해 보지만, 막상 접근가능한 개별 시장은 생각보다 작아 난감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사물 컴퓨터가 매우 다양하여 개별 시장이 세분화되는 경향이 있고, 범용화된 사물의 경우 가격이 매우 낮은 상태라 컴퓨터 기능을 결합해도 가치 증가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별 시장을 공략하는 것보다 다양한 사물 컴퓨터의 공통 기반 부품을 찾아 이를 장악하는 것이 더 현명한 시도일 수도 있다. RFID, 센서, 초소형 카메라, 동작 액츄에이터, 저전력 전원 등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특히 이들 부품은 호환성이 중요하고, 초기 대량 생산으로 시장 장악이 가능하여 기술 측면에서 사실상 표준을 주도한 기업이 누리는 선점 효과가 대단히 크다.
한편 유비쿼터스 시대의 사물 컴퓨터 영역에서는 디지털 사물 생태계를 활용해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는 노력 역시 중요하다. 디지털 사물이 자율적으로 정보를 주고 받는 생태계는 미래의 새로운 사회적 인프라가 될 것이다. 진정한 가치는 이 인프라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개개인에게 새로운 혜택을 줄 때 생겨난다.
3. 산업 컴퓨팅 플랫폼 창출
앞으로는 산업간 융합과 과학의 사업화가 본격화되는 시대가 도래할 전망이다. 컴퓨터와 자동차가 만나 새로운 자동차 전자 장치 산업이 만들어지고, 컴퓨터와 생물학이 만나 디지털생물학과 바이오 신약 산업이 형성되는 등 다양한 신흥 산업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는 산업 컴퓨팅 플랫폼을 창출해 장악한 기업이 새로운 승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 PC 시대에 PC 플랫폼을 장악한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가, 2000년대 웹 2.0 시대에 인터넷 플랫폼을 장악한 구글이 새로운 승자 기업이 된 것과 유사한 이치이다.
컴퓨팅 플랫폼은 새로운 융합 산업과 과학 산업의 발전 구도를 결정짓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컴퓨팅 플랫폼을 장악한 기업의 산업 영향력이 커지고, 새로운 고수익 시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나노 분야의 경우도 응용 시장이 열리기 전에 분자 단위의 계측 및 조작 장비 시장이 먼저 형성되었다. 이 때문에 컴퓨터 산업의 선진 기업들은 최근 산업 컴퓨팅 플랫폼 분야에 주력하는 양상이다. 인텔이 바이오 분야를 연구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로봇과 자동차의 운영체제 플랫폼 사업에 공을 들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IBM이 소니와 함께 병렬형 컴퓨팅에 최적화된 셀(Cell) 프로세서를 개발한 후 산업, 의학, 군수용으로 다양하게 응용하려는 것도 블루 오션인 산업 컴퓨팅 플랫폼 시장을 염두에 둔 행보로 해석된다.
4. 차세대 기술의 확보 및 상용화
반도체, 전자의 패러다임이 무너지는 미래 컴퓨팅의 세계에서는 차세대 기술의 확보가 중요해진다. 특히 지적재산권 분쟁이 격화되는 추세임을 감안할 때, 기반 기술의 확보는 사업 지속성 측면에서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기업들이 차세대 기술을 스스로 개발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현재 연구 인력들이 기존 기술 패러다임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안 기술은 다양하고 성공 확률이 낮아 집중 육성 아이템을 찾기가 쉽지 않은 탓도 있다. 따라서 차세대 기술의 확보를 위해 내부 연구개발 뿐만 아니라 R&D 제휴, 산학연계, 특허 매입, M&A 등 외부 R&D 결과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확보한 미래 기술을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이용처를 찾는 노력도 필요하다. 확보된 기반 기술은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런데 초기의 미래 기술은 대체로 기존 기술에 비해 불완전하고 구현 비용이 많이 들어 상용화가 쉽지 않다. 따라서 기업은 기술적 불완전성과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호응도가 큰 초기 틈새 시장을 찾아 이에 최적화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홀로그램 데이터 저장 시스템이 방송국용 동영상 스토리지를, 양자 기술이 군사용 데이터 암호화 등을 초기 시장으로 삼고 있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5. 프로슈머 생태계 구축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는 프로슈머 생태계 구축이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다. 공유와 참여가 새로운 사회 패러다임이 되면서 열정을 가진 프로슈머들을 기업의 동반자로 활용할 필요성이 커질 전망이다. 프로슈머들은 창조의 즐거움과 외부의 평판, 그리고 적절한 금전적 보상에 의해 움직인다. 따라서 프로슈머들이 소프트웨어 및 컨텐츠 개발에 필요한 도구를 지원받고, 관련 지식을 나누며, 결과물을 빠르게 배포할 수 있는 커뮤니티나 채널을 구현해야 한다.. 아울러 일련의 과정이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되어 하나의 생태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운영이 요구된다.
최근 애플의 SDK(소프트웨어 개발 도구) 공개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다. 외부 개발자들은 이를 이용해 다양한 아이폰, 아이팟 터치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다. 개발된 소프트웨어들은 애플 아이튠스 서비스를 통해 배포된다. 애플 아이팟 터치는 본래 MP3 플레이어이지만, 애플 매니아들이 SDK로 제작한 프로그램들을 추가 설치하면 수준높은 PDA로 변신하기도 한다. 유료 애플리케이션의 경우 개발자들이 매출의 70%를 가져간다. 이처럼 외부 프로슈머 개발자들의 참여를 확산시켜 자발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모바일 플랫폼 시장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래 컴퓨터 진화의 5가지 트렌드와 기업의 대응 방향에 대해 살펴 보았다. 컴퓨터의 발전 방향은 과거와 크게 달라질 것이다. 향후 컴퓨터 산업에서 경쟁우위를 점하려면 사용 편의성 혁신이나 사물/인간과의 결합 같은 새로운 진화 방향을 선도하고, 시장 니즈 변화에 대응하여 새로운 소비자 가치를 창출해야 할 것이다.
이미 선진 기업들을 중심으로 산업계에서는 이러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대다수 기업들이 박스 제품의 생산 효율성에 연연하며 중국, 대만, 인도 등 신흥국 저가 경쟁자들의 시장 잠식을 두려워할 때, 앞서가는 기업들은 시장의 외연 확장과 신산업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컴퓨터 산업에서는 기술력의 차이가 경쟁력의 차이로 직결되었지만, 향후에는 미래 비전의 차이가 경쟁력의 차이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경쟁사와 다른 산업 비전을 가지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할 때 새로운 경쟁 우위가 탄생하는 것이다. 넓은 시야를 갖고 보다 멀리 내다보면서 새로운 도전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 참고문헌 >
일본 경제산업성 & NEDO, 『기술 전략 Roadmap 2007』. 2007.5.
정보통신부, 『IT 기술예측 2020』, 2006.12.
Microsoft, 『Towards 2020 Science』. (`06.3)
Microsoft, 『Human Computer Interaction in the year 2020』. (`08.4)
Siemens, 『Picture of the Future』, 각 호
Nature지 (`06.3) 『2020 Computing』 특집
UK Computing Research Committee, 『Grand Challenge in Computing』, (`05.1)
- LG Business Insight 9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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