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웃소싱은 나의 힘… 버린대로 거두리라"
최근 외국계 전자회사 서울사무소로 자리를 옮긴 황 과장은 첫 월급날 깜짝 놀랐다. 경리부가 아니라 인도 뭄바이의 컨설팅 법인이 월급 명세서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이메일로 말이다. 알고 보니 재무·회계 업무를 컨설팅업체에 아웃소싱(outsourcing)했고, 컨설팅업체는 인도 사무소에 일 처리를 맡긴 것이다. 일감이 어느새 인도인에게 넘어간 셈이다.
전세계의 인재들이 국경을 넘어 실시간으로 경쟁을 벌이고, 때로는 협력하기도 하는 세상.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Friedman)이 '세계화 3.0 시대'라고 부른 요즘 세상에선 낯설지만은 않은 풍경이다.
이런 거대한 변화를 주도하는 회사 중 하나가 세계 최대 컨설팅 서비스 업체인 액센츄어(Accenture)다. 이 회사는 전세계 49개국에 17만8000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지난해 매출이 197억 달러(약 20조원)에 달한다. 포천 지(誌) 선정 '글로벌기업 500대' 기업 중 3분의 2 이상이 이 회사 고객이다.
:: 버리면 ::
콜센터·재무·회계·인사·교육·서비스…글로벌기업이 홀로 처리하기엔 너무 버겁고, 복잡하고, 믿을만한 누군가에게 떼어내고 싶은 일들
:: 거둔다 ::
글로벌기업을 위해 시간을 벌어주는 기업…'기업을 위한 기업' 액센츄어의 놀라운 성장
그리고 배관공의 아들에서 CEO가 되기까지… '드라마' 같은 그린 회장의 이야기
그런데 이런 코끼리 같은 몸집을 가지고도 1989~2007년에 연평균 16%의 고속 성장을 이뤘다. 급성장의 비결은 기존 컨설팅 업무가 아니라 기업들의 업무를 아웃소싱해 주는 비즈니스다. 매출액 중 아웃소싱 비즈니스가 40%를 차지한다.
Weekly BIZ는 액센츄어의 윌리엄 D. 그린(Green) 회장을 단독 인터뷰해, 글로벌 아웃소싱이 확산되는 이유를 물었다.
"만약 당신이 CEO인데 할 일 리스트에 5가지 항목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시간이 없으니 2가지 정도는 믿을 만한 사람한테 맡기고 싶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누군가 그 일을 해주는 거지요. 고객들이 자신들의 핵심 사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나머지는 대신해 주겠다는 거죠. 우리 사업을 다른 회사에 맡기기 불안하다고요? 그러나, 무엇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핵심 사업에 충실할 수 없게 됩니다. 요즘이 얼마나 경쟁이 심한 시대입니까?"
지난해 이 회사에 의미 있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인도의 직원 수가 4만 명에 달해 미국(3만3000명)을 처음 뛰어 넘은 것.
인도 사무소에서는 전세계 기업들의 업무를 아웃소싱해 주는 일을 주로 한다. 액센츄어는 이를테면 세계화 시대의 첨병과 같은 회사이다.
―요즘 FTA 반대나 이민법 강화 등 신(新) 보호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우려는 항상 도사리고 있어요. 특히 요즘은 선거철 아닙니까. 하지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철폐하자는 얘기가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요즘 미국에서는 콜롬비아와 서명한 FTA 협상안도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지연되고 있어요. 그런데 자유무역은 단지 경제적 사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무역은 지정학적인 균형에 대한 문제예요. 지금이 선거철이라고 그런 주장을 하면 안 되죠.
세계화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 알고 있잖아요? 보호주의는 도움이 안 됩니다. 지금은 굉장히 헷갈리는 지점에 와있을지 모릅니다. 혼란스런 주장들이 사방에서 흘러나오고 있죠. 리더십도 흔들리고 있고요. 하지만 이걸 알아야 돼요. '상식'은 언젠가 통하게 돼 있다고. 과거로 회귀하진 않을 거예요."
흔히 빌 그린으로 불리는 그는 1977년 액센츄어에 입사, 2004년 9월 CEO로 선임됐다. 연봉은 1200만 달러.
그는 보스턴 배관공의 첫째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 후 1년 동안 공사판에서 일했다. 그러다 그의 집안에서는 처음으로 대학 문을 밟았다. 2년제 전문대인 딘 칼리지였다. 그 뒤 밥슨(Babson) 대학 MBA 과정을 수료했다.
―요즘 가장 큰 관심사가 무엇입니까?
"사람입니다. 어떻게 최고의 인재를 찾아서 훈련시킬까. 저는 결국에 좋은 인재들을 가진 회사가 이긴다고 봐요."그래서 그는 직원 교육에만 연간 8억 달러를 쓴다고 했다.
―인재 육성에 있어 강조하는 원칙들이 있습니까.
"예. 3가지입니다. '교육하라(educate), 격려하라(energ ize), 영감을 주라(inspire)'입니다. 보스턴의 배관공 아들이 CEO가 됐고, 거대 기업을 운영한다면 '나도 할 수 있다'. 뭐 그런 자극을 주고 싶어요."
"결국엔 좋은 인재를 가진 화사가 이깁니다"
"IT·재무·회계·인사… 우리가 대신하고 고객 기업들은 핵심 사업에만 집중"
"인도 지사에 4만명, 중국은 파트너만 50여명… 세계에 퍼진 직원들이 다극화 세계의 첨병"
190㎝가 넘는 키, 운동으로 단련된 단단한 가슴, 근육질의 팔, 우렁찬 목소리.
세계 최대 컨설팅 및 IT서비스 기업인 액센츄어의 윌리엄 D. 그린(Green·57) 회장을 만났을 때 마치 삼국지의 관우 같다는 첫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100여분에 걸친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으며, 한 가지 질문을 하면 10분이 넘게 자세하게 답변했다. 마치 친절한 동네 아저씨를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그에게 글로벌 아웃소싱의 사례를 좀더 쉽고 자세하게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제약회사를 예로 들어볼까요. 신약 개발이 제약회사들의 가장 중요한 일이죠.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데이터 처리가 필요해요. 임상 실험 결과 정리, 각종 조사, 정부 허가 및 규제 정보 수집 등등 말입니다. 이런 제약회사들을 대신해 우리 인도 사무소가 임상 실험과 같은 반복적인 업무들을 대행해주죠. 이런 일을 대신해줌으로써 우리는 그 회사에 연간 30일 정도의 시간을 벌어줄 수 있습니다. 이런 업종에서 30일이란 엄청난 시간을 의미합니다.
또 통신회사 예를 들어볼까요. 소비자들은 통신사들을 자주 바꾸잖아요. 로밍도 많이 하고요. 그럴 때마다 서비스센터가 연락을 받아 처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 통신사들은 아예 서비스센터 전체를 아웃소싱해 버립니다. 액센츄어 인도 사무소가 대행하는 거죠.
또 미국 소비자들이 노트북이 고장 나서 서비스센터에 가져오면 손님의 노트북을 온라인상으로 인도 방갈루루에 있는 엔지니어들에게 연결해서 수리하게 합니다."
이런 업무의 위탁을 가리켜 액센추어는 '비즈니스 아웃소싱(BPO·business process outsourcing)'이라고 부른다. 이 중 외국에 위탁하는 것을 오프쇼어링(offshoring)이라고 한다. 당초 콜센터 등 단순 업무를 대행해주는 데서 벗어나 재무·회계·인사·구매·교육 등으로 한없이 확장하고 있다.
"기업의 업무에는 크게 3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사업을 구상하고 문제 해결 아이디어를 내는 거죠. 두 번째는 이 생각과 아이디어를 디자인하고 설계하는 단계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이런 것들을 실제 기업 활동을 통해 구현하는 것입니다.
컨설팅 회사는 이 3가지를 모두 다룹니다. 특히 마지막 단계를 대신해 주는 아웃소싱은 액센츄어 매출 구성의 40% 정도를 차지합니다. IT 관리는 물론이고, 재무, 회계, 인사 관리 공급 사슬(supply chain) 관리 등 뭐든지 해줍니다.
고객들이 자신들의 핵심 사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나머지는 우리가 대신해주겠다는 거죠. 이런 아웃소싱 사업은 미국에서 출발해 지금은 유럽에도 확산되고 있어요. 심지어 일본에서까지 이런 개념을 도입하기 시작했답니다."
당초 액센츄어는 '아서 앤더슨(Arthur Andersen)'의 컨설팅 사업부문이었다가 1989년 '앤더슨 컨설팅'으로 독립했고, 2001년 지금의 '액센츄어'로 이름을 바꾸었다.
―액센츄어 매출 중 해외 비중은 어느 정도입니까?
"매출의 3분의 1이 미국에서 나오고, 나머지는 모두 해외입니다."
―미국에서도 해외 아웃소싱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맞아요. 아웃소싱이다 뭐다 해서 공장들이 중국, 인도 같은 곳으로 빠져나가니깐 미국 사람들도 많이 불안해합니다. 이해해요. 하지만 미래를 위해서 이런 구세대 산업을 움켜쥐기보다는 새로운 산업을 창조하면 되잖아요. 그것이 정부가 할 일입니다. 생명공학 같은 새로운 분야로요. 저는 보스턴에 살고 있어요. 보스턴은 한때 섬유산업으로 먹고 살았죠. 그런데 지금은 생명공학의 중심이 됐어요. 그 과정은 물론 힘들고 시끄러웠죠. 자유무역은 글로벌 경제와 개인 경제 모두에 핵심이에요. 만약 우리가 이것을 조작하면 조작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잃기만 할거예요."
―요즘 어떤 시장을 눈 여겨 보시나요?
"우리가 '빅6' 국가라고 부르는 나라가 있습니다. 브릭스(BRICs)에다 멕시코와 한국을 추가했습니다. 이미 한국 기업들은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냈습니다. 우리의 임무는 이들을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요.
지금 포천(Fortune) 500대 기업 중에 개발도상국은 약 50개국 정도 됩니다. 그런데 10년 후, 아니 5년 후에는 100개 정도로 늘어날 겁니다.
사람들은 제게 자주 이런 질문을 합니다. '요즘 경제가 안 좋다는데, 액센츄어도 사업이 아무래도 좀 안 좋죠?' 제 대답은 '오히려 요즘이 더 좋다'입니다. 정말이에요. 이유가 뭐냐고요?
지금 미국 부동산 시장은 서브프라임모기지, 주택 압류 이런 것들로 시끄럽습니다. 하지만 세계는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이 일어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미국 회사 중 개발도상국에 집중하는 기업들이 있어요. 캐터필러(Caterpillar)라는 회사도 그 중 하나죠. 그 회사의 아시아 매출은 엄청나게 '날고' 있어요. 글로벌 시대의 승자라고 할까요.
예전에 미국 불경기가 왔을 때와 지금은 달라요. 예전엔 시기가 안 좋을 때 미국 기업들은 '우리 함께 납작 엎드려서 숨어 있자'라고 했죠. 그런데 이제 전통적인 경쟁 기업들이 더 이상 경쟁자가 아닙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곳곳에 경쟁자들이 있습니다. 인도에도, 중국에도, 이탈리아에도 있습니다. 한쪽이 좀 약해진다 싶어서 방심하면 다른 쪽 경쟁자가 치고 나오죠. 절대 공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다극화 시대의 인재 관리가 그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세상은 바뀌었어요. 세상은 훨씬 더 복잡하고, 큽니다. 또 아주 특수한 인재들과 아이디어들이 전 세계 곳곳에 있어요. 우리 필리핀 지사를 볼까요. 4000명이던 직원이 지금은 1만 4000명으로 늘었어요. 인도는 400명이던 것이 지금은 4만 명이 됐고요. 중국은 파트너 1명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파트너만 50명이 넘습니다. 전 세계에 이렇게 퍼져 있는 우리 직원들이 다극화 세계의 첨병들이 되고 있어요. 이들이 모두 소중한 자본이에요. (액센츄어 코리아도 1986년 5명으로 출발해 현재는 400여명으로 커졌다. 삼성, LG, SK 등 국내 30대 대기업 중 90%가 고객이다.)
그래서 제가 가장 골똘히 생각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어떻게 최고의 인재를 찾아서 훈련시킬까. 저는 결국에 좋은 인재들을 가진 회사가 이긴다고 봐요. 최고의 인재란 똑똑한 머리뿐만 아니라, 도덕성, 가치, 문화 등을 모두 갖춰야 해요. 우리의 목표는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extraordinary) 일을 해내도록 만드는 것이죠."
그린 회장은 "최고의 아이디어는 소수의 사람이 독점하는 게 아니며 평범한 사람들이 최고의 아이디어를 낸다"고 말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비범한 일을 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몇 가지 방법이 있죠. 일단 트레이닝을 통해서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년 직원 교육에 8억 달러를 투자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이건 많은 돈이죠. 두 번째는 기업 문화를 통해서입니다. 기업 윤리 등 핵심 가치의 정립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우리는 팀으로 활동해요. 성공을 했을 때 우리는 팀 전체로 포상을 합니다."
―고유가가 세계 경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까요?
"글쎄요. 고유가는 분명 민간 소비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겁니다. 소비자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시장은 큰 어려움에 처하겠죠.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꽤 잘해왔어요. 고유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충격을 거의 흡수하다시피 했죠. 물론 지금 거리에 차도 적게 다니지만요.
전체적인 그림을 살펴보면 미국도 아직까지는 굳건해요.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하면 굳건한 걸 넘어서, 아주 경제가 강해요. 이상하죠? 고유가인데다 서브프라임,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분쟁이 많은데도 말이죠. 과거 어느 불황기 때와 비교해도 생산성이나 재고 수준 모두 요즘처럼 경제가 튼튼할 때가 없습니다.
물론 이렇다고 우리가 두 손 놓고 방심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연간 8억 달러를 인재 관리 비용으로 투자해 나갈 겁니다. 세상은 이제 자이언트 기업이냐 '틈새시장 플레이어'냐로 나뉩니다. 중간은 없어요. 계속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한국에서 두 아이를 입양해 키워왔다. 딸은 22세, 아들은 20세이다. 주말에 자녀들과 스키를 타거나 요트를 모는 것이 취미.
그는 지난 2일 이명박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었고 인터뷰는 바로 전날 진행됐다. 그에게 대통령을 만나서 무얼 말할지 질문했다.
"일단, 들어야죠. 제일 중요한 게 경청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의 생각을 말씀 드릴 겁니다. 특히 에너지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 드리려고요."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저희가 회장님 에너지를 다 뺀 게 아닌가요.
"절대! 그런 걱정은 마세요. 나는 항상 에너지가 넘쳐서 문제인 사람이니까요."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6/13/20080613008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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