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9. 20:31
최근 기업을 둘러싼 경영환경의 변화는 더욱 빨라지고, 경쟁도 기존의 영역을 뛰어넘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변화무쌍한 상황을 잘 극복하고 영속 기업의 토대를 만들어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건 중 하나가 성공적인 CEO 승계 작업이다. 동서고금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최고 의사결정자의 자리를 이어가기 위한 대비가 소홀하거나 잘못된 경우 조직의 쇠락이나 멸망을 초래하는 등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승계 작업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심리적, 정치적 문제점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한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더 나아가 미래의 경영 환경 하에서 사업의 성공을 이끌어가기 위해 갖추어야 할 요건이 무엇인지 규명하여, 적임자를 선발하는 작업이 우선 요구된다. 이 과정에서 현 최고경영자와 이사회가 상호 신뢰 하에 협력적으로 책임을 분담하고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신중한 후보자 선발에만 그치지 말고 내부 후계자 후보에 대해 일을 중심으로 한 체계적인 육성 활동을 병행해야 한다.
1996년 4월 보스니아로 향하던 비행기 한대가 산악지대에 추락하여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행하였다. 이 비행기에는 미국 상무성 장관과 다수 기업체의 최고경영진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 뜻밖의 사고로 최고 사령탑을 잃은 ABB, 벡텔(Bechtel)사 등 일부 회사는 한동안 혼란과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엔지니어링 업체인 Foster Wheeler사는 이전에 후계자 승계 계획(Succession Planning)에 관한 대비를 해 놓고 있었던 덕분에 큰 동요 없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사례에서 보듯이 유사시를 대비한 승계 계획은 기업의 안정적인 리더십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후임자를 물색하여 필요한 시점에 승계 절차를 진행하기만 하면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모 장비업체의 실패 사례를 살펴 보자. 이 회사의 전임 CEO는 일부 이사회 멤버의 외부 영입 제안에도 불구하고 내부에서 성장한 인물 중에 후임자를 지명하였다. 그런데 그가 은퇴하고 5년이 채 지나기 전에 이 회사는 새로운 상품의 개발 부족과 낙후된 설비, 젊은 인재의 유치 실패 등 여러가지 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결국 후임 CEO가 교체되고 말았다. 이런 결과가 초래된 주된 이유는 전임자가 자신과 너무나도 빼 닮은 후임자를 선정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성공적인 CEO 승계는 후계자를 사전에 지명해 놓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사업 환경과 이슈를 고려한 적임자 선정 등 보다 효과적인 실행 방안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후계자 승계 제도란 무엇이고 어떤 변수들을 고려해야 하며, 선발과 육성 방법, 그리고 현 CEO와 이사회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한다.
I. 후계자 승계 제도의 의의
후계자 승계 제도(Succession Planning Program)란, 조직의 핵심 직책에 있어서 리더십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후임자를 사전에 선정하고, 나아가 필요한 자질을 육성하는 체계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체계적이고 의도적인 육성활동이 동반된다는 점에서, 단순히 후임자를 지명해 놓았다가 유사시에 전임자를 대신하여 직책을 맡게 하는 대체 계획(Replacement Plan)과는 차별화되는 개념이다.
승계 제도가 중요한 이유는 앞의 사례들에서 나타난 것처럼 충분한 사전 대비가 없을 경우에 리더십의 공백으로 인한 위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승계가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 또한 적지 않다.
중국 춘추전국 시대를 주름잡았던 5명의 패자 중 제 환공과 진 문공은 후계 작업에 있어서는 매우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제 환공은 제 1대 춘추오패로 등극하여 당대를 주름잡았지만, 노년에 후궁의 간청에 못 이겨 이미 세워놓은 황태자를 교체하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 그에 따라 골육상쟁과 혼란이 초래되었고, 본인의 장례도 제때 치르지 못하는 비극을 자초한 실패한 지도자로 남고 말았다. 당연히 제나라는 이후 천하 패자의 자리를 빼앗기고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반면에 진 문공은 제 환공과 달리 생전에 후계자를 명확히 하여 이를 신하들에게도 주지시키고, 다른 왕자들은 외국에서 벼슬을 지내도록 조치하여 권력투쟁을 원천적으로 막았다. 그리고 순차적인 권력 이양을 통해 후계자가 막중한 임무를 배울 수 있도록 하여 승계를 순조롭게 마무리짓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결과 진 나라는 문공 사후에도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이어가게 된다.
후계자 승계에 작용하는 심리적 요소
앞서 제 환공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최고경영자(이하 CEO)의 자리를 승계하는 과정에는 수 많은 이해관계자들 간의 갈등이 존재한다. 기업의 경우 현 CEO와 주주, 이사회 멤버(Board Members), CEO를 제외한 여타 최고경영진 등이 주요한 이해관계자라고 할 수 있다. 승계 과정에서 이들 이해관계자 사이에는 자신들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한 편의 심리 드라마가 펼쳐지게 된다. 따라서 이해당사자들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그 이면의 심리적 요인(Psychological Factor)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성공적인 승계 제도의 운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그림 1> 참조).
다음에서는 승계 필요성 인식 단계, 후임자 선발 단계, 신임 CEO의 취임 단계라는 승계의 각 과정별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심리적 장애 요소를 살펴보도록 한다.
1단계 : 승계 필요성 인식 단계
현 CEO가 은퇴할 연령에 가까워지거나 퇴임할 상황이 되면 3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죽음에 대한 부정(The Denial of Death), 자신의 업적에의 집착(Wish to Leave a Legacy), 권력의 상실(Loss of Power) 문제이다.
● 죽음에 대한 부정(The Denial of Death)
은퇴 또는 퇴임은 큰 권한을 행사하는 데 익숙해 있던 임원들에게는 일종의 사형 선고와 같다. 따라서 CEO 본인은 은퇴에 대한 생각 자체를 싫어하고, 중역들은 물론 이사회 멤버들도 이 문제를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이런 모습은 창업자에게서 흔히 나타난다. 회사가 자신이 이룬 성공의 상징이요, 자신의 분신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 의류 기업의 사례를 보자. 이 회사를 창업한 사장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가벼운 심장 발작 증세가 있었음에도, 그의 불 같은 성미도 있고 하여 회사 내에서 어느 누구도 후임 문제를 논의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친분이 있는 인물들로 구성된 이사회도 그 문제를 다루기를 꺼려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마침내 심각한 심장 발작이 일어났고, 마땅한 후임자를 찾기가 어려웠던 이 회사는 결국 헐값에 타사에 매각되고 말았다.
● 자신의 업적에의 집착(Wish to Leave a Legacy)
자신이 이루어놓은 업적을 유지하고 싶은 현 CEO의 욕망도 승계에 대한 거부감으로 작용하게 된다. CEO들은 자신의 재임기간에 신축한 사무 빌딩이나 공장, 또는 무형의 경영 철학과 방침 등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업적에 대해 후임자가 무시하거나 때로는 바꿔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작용하면 자신의 닮은 꼴 CEO를 후임으로 추천하게 된다. 그 결과는 앞서 언급한 회사의 경우처럼 쇠락의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 권력의 상실(Loss of Power)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의 권한이나 회사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도 CEO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일 중 하나이다. 최악의 경우 일부 CEO들은 은밀하게 후임자가 실패하게 만들기도 한다. 소비재를 생산하는 한 회사의 CEO는 부사장 중에서 후임자를 선정하여 최고운영책임자(Chief Operating Officer)로 임명을 하는 등 승계 작업을 시작하는 데까지는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후임자가 점점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자 회복 가능성이 없는 사업을 맡겼고, 때마침 불황까지 겹치자 이사회의 결정에 의해 후계자 후보는 물러나고 말았다.
이 사례는 많은 경우 현 CEO에 대한 이사회나 주주의 우려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위험성을 과대평가해서 CEO를 불신하게 된다면, 이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단계 : 후임자 선발 단계
후임자를 결정해야 되는 단계에서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이슈는 ‘내부에서 선임할 것인가, 외부에서 영입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 문제의 해답은 원칙적으로 명확하다. 미래 기업이 당면하게 될 이슈가 무엇인가에 따라 결정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재무적인 안정성이냐 마케팅의 강화냐에 따라 그에 걸맞는 요건을 정하고, 그에 따라 후임자를 내부에서 찾아보고 만약 내부에 없다면 외부에서 영입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부 발탁이냐 외부 영입이냐에 대한 결정은 실제로는 내부의 이해관계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 반발에 대한 두려움(Fear of Reprisal)
일반적으로 같은 조직에 소속되어 있는 리더와 추종자를 포함한 구성원들 사이에는 서로 비슷한 사람들이라는 일체감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느낌은 소속감과 통일성을 강화시켜주는 긍정적 역할도 한다. 그런데 한 명의 후계자가 그 중에서 선정되면, 그 사람에 대한 리더의 총애를 질시하는 마음과 자신이 선발되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가 나타나게 된다. 흔히 CEO들은 이런 문제를 회피하고 자신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우하고 있다는 환상을 갖게 만들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
한 전자업체의 CEO는 중역들 중 후계자감이 될만한 특출한 인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후계자로 지목하지도, 훌륭한 성취와 업적을 인정해 주지도 않았다. 그 결과 최고의 인재들 몇몇이 회사를 떠났지만, 그는 여전히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하고 있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나아가 편애한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결국 그는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 완벽한 해법에 대한 바람(The Wish for the Perfect Solution)
‘예언자는 자신의 마을을 떠나야만 존경을 받는다’는 말이 있다. 회사 내부 사람들에게 강점은 물론 약점까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인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내부인들의 질시와 미움과 같은 심리적인 요인들이 작용하면, 내부보다 외부에서 영입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 기존의 훌륭한 유산과 전통이 계승되지 못하고 단절되는 등 장점 못지않게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할 우려도 커지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잘 고려하여 후임자를 내부에서 발탁할지 외부에서 영입할지를 결정하는 역할을 이사회가 제 3자적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내부 인재의 강점을 당연시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성공 기업보다는 실패하는 기업에서 외부 영입 케이스가 더욱 빈번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3단계 : 신임 CEO의 취임 단계
일단 승계 작업이 이루어지면 전략이나 조직 구조 그리고 보고 라인 등 많은 부분이 변화하게 된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도 여전히 새로운 CEO가 조직 장악에 실패하게 만들 수 있는 심리적 요소들이 잠복해 있다.
● 과거에의 집착(Romancing the Past)
새로운 CEO가 당면하게 되는 가장 큰 문제는 구성원들이 과거의 관행을 최선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기억은 과거에 있었던 나쁜 기억은 지워버리고 좋았던 측면만을 기억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신임 CEO는 이런 핸디캡과의 싸움을 통해 무조건적인 과거에의 집착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어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따라서 후계자의 성공적인 승계를 마무리짓기 위해서는 이런 고충을 십분 이해하여 올바른 판단과 그에 따른 지원을 이사회에서 수행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 과도한 기대(Unacceptability of Reality)
후계자의 취임 이후 나타날 수 있는 문제 중 하나는 조직 구성원의 지나친 기대감이다. 새로운 CEO가 조직 내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일견 신임 CEO에 대한 지지와 리더십의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에는 긍정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과연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면, 과장된 기대로 인한 큰 실망이 생기지 않도록 관리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CEO 본인이 주변의 이러한 인식을 미리 간파하고 기대 관리를 슬기롭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II. 후계자 선정의 절차와 프로세스
후계자 승계의 출발점은 정말로 유능하고 잠재력이 있는 후보자를 조기에 발굴하는 것이다. 다만 앞서 언급한 심리적 요인들에 영향을 받지 않고 운영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어떤 사람이 적합한지 후계자가 갖추어야 할 요건을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 다음으로 체계적인 선발 절차의 정립과 운영도 중요하다. 그리고 후계자 선발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인 CEO와 이사회간의 책임과 역할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1. 후계자의 핵심 요건 정의
후계자 선정의 시작은 후계자의 요건을 명확히 정의하는 데 있다. 이는 해당 직책이나 포지션을 수행하는 사람이 어떤 자질과 리더십을 갖추어야 할지 필요 역량을 규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해당 조직의 사업 전략에 대한 검토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이를 흔히 ‘포지션 프로파일(Position Profile)을 구체화한다’고 말한다. 포지션 프로파일에는 경영 환경의 변화 상황, 시장에서의 자사의 위치, 현금흐름, 사업의 라이프 사이클, 합병과 인수, 사업 통합화, 글로벌 사업전략 등 여러 가지 사업적 요소를 고려해 필요한 리더의 요건을 정의할 수 있다. 예컨대 <그림 2>에서 볼 수 있듯이, 안정적인 사업에는 관리형 리더가, 신시장 개척이 필요한 곳에는 혁신형 리더가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요건이 정의되어 있어야 이를 바탕으로 후계자를 파악하고 선발하는 활동이 진행될 수 있다. 만일 이런 사람이 회사에 없다면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하는 노력도 이와 같은 요건이 정립되어 있어야만 제대로 수행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조직의 가치, 철학 등을 반영하여 리더십 역량을 보다 구체화하는 노력도 매우 중요하다. 다음에 나오는 <그림 3>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대인 관계 스킬은 동기 부여, 인재 육성 역량 등으로, 변화 관리 스킬은 상황 대처력과 위기 관리 역량 등으로 보다 명확히 규명하는 것이다. 글로벌 선진 기업들은 조직 특유의 가치와 전략적 방향에 부합하는 리더십 역량 요건을 정립하고 이를 체계적인 후계자 선발 과정에 활용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2. 추천과 선정 방법
후계자의 요건 역량이 구체적으로 정의되고 나면, 현 포지션 담당자들이 자신의 직무에 적합한 후계자를 추천하는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추천된 인재들에 대해서는 해당 포지션 수행에 필요한 역량 요건과 후보자들이 갖춘 역량 수준 간의 차이를 확인하는 적합성 평가를 하게 된다(<그림 3> 참조).
이때 예비 후보자들이 회사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 역량 요건을 얼마나 충족하고 있는지를 측정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흔히 MBTI, 심리테스트 및 구조화된 심층 인터뷰, 360도 다면 평가 등의 평가 방법이 활용된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소 일을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상위 리더들이 승계 후보자에게 느낀 여러 가지 객관적이고 질적인 정보이다. 이러한 질적 정보에는 평상시 후보자들의 성향, 태도, 피드백을 주었을 때 어떻게 개선하는지 등에 대한 매우 깊이 있는 정보가 담겨질 수 있다. 따라서 글로벌 선진 기업들의 리더들이 부하직원들과의 평가 면담 시 구체적인 대화 내용이나 평가 피드백 내용 등을 기술하고 이를 기록해 놓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대목이다.
3. 이사회와 CEO의 책임과 역할
사실 이와 같이 후계자의 선정과 후계 구도를 준비하는 것은 현 CEO에게 있어 중요한 의무이자, 한편으로는 자신의 입지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일이 될 수 있는 양면적인 과제이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CEO가 평소 관찰을 통해 파악하고 있는 후계자 후보에 대한 판단에 대해 존중을 하면서도 동시에 심리적 원인에 의한 왜곡이 없도록 견제하고 챌린지하는 역할을 이사회가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이사회와 CEO의 가장 이상적인 역할 분담은 명확하다. CEO는 후계자 승계 계획을 수립하고, 후계자를 개발하여 이사회에 보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사회는 직접 후계자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승계 계획이 제대로 실행되는지 여부를 체크하고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 기업의 CEO들이 아직은 후계자 육성에 대한 마인드가 크게 부족한 상황이고, 더욱이 후계자 승계 제도에 대해서는 생소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책임과 역할의 실천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CEO와 이사회 간의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기 위한 노력이 꾸준히 지속될 때 비로소 해당 기업의 영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토대가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III. 후계자 육성의 6가지 핵심 포인트
후보자 선발을 위한 신중한 절차와 프로세스를 갖추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선발된 후계자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가’ 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시스템을 갖추었어도 실제 경영 현장 속에서 후계자들이 일과 함께 성장하는 육성 메커니즘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면 허사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후계자 육성 제도 면면에, 그리고 일상 속에 후계자 육성 활동의 메커니즘이 체질화되어야 한다. 후계자 육성을 잘하는 것으로 알려진 글로벌 선진 기업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조직 DNA 내에 후계자 육성 마인드(Development Mindset) 구축, 승계 후보자 스스로의 충분한 인지를 통한 자발적 동기부여(Self Motivation), 일상 업무에서의 자질 검증과 육성 활동의 병행(Simultaneous Approach), 다양한 직무경험과 시련 부여(Intended Experience), 후보자에 대한 평상시 주의 깊은 관찰(Careful Observation), 후계자 육성을 위한 전문 조직의 지원(Expert Support) 등이 돋보인다. 이하에서는 그 핵심 포인트들을 구체적으로 짚어본다.
1. Development Mindset : 후계자 육성 마인드 정립
우선, 후계자 육성을 잘하는 것으로 알려진 글로벌 선진 기업들을 보면 후계자 육성 마인드가 마치 조직의 DNA처럼 모든 제도와 활동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후계자 후보들 또한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더 다듬어지고 육성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어느 기업이나 후계자로 선발된 사람은 출중한 능력과 잠재역량을 인정받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이들은 설익은 열매와 같아서 당장 최고경영자의 역할을 하기에 부족한 면이 있다. 따라서 기업은 단순히 선발된 후보자들의 자질 검증에만 집중하지 말고, 어느 누구보다 이들을 공들여 키우고 가꾸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조직 문화로 체화되어 모든 계층에서 똑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해외 선진 기업들은 후계자 육성 마인드를 조직의 모든 제도와 활동 속에 녹여내고 있다. 특히 이들이 성과 평가와 보상 시스템, 피드백/코칭 제도 등을 후계자 육성과 연계하여 공식화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GE의 성과 평가 시스템은 일선 관리자나 상위 관리자들을 평가할 때 ‘인재를 움켜쥐고 있으려고 하는 관리자’가 부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성과도 중요하지만 리더에게 있어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의 뒤를 이을 더 훌륭한 리더를 키워내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로열 더치 쉘(Royal Dutch Shell)은 인사 부서 사람들이나 직속 상사의 의견을 참고로 자신이 직접 본인의 경력을 관리하게 한다. 이로써 후계자 제도가 본사 주관으로 운영되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의 책임 하에 운영되는 제도로 정착되고 있다.
이 밖에 후계자 발굴과 육성 노력을 관리자의 승진이나 보너스 지급에 연동하는 방식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이다.
2. Self Motivation : 승계 후보자의 자발적 동기부여
다음으로는 후계자를 조기에 발굴하고, 선택된 후보 인재들이 제대로 육성되게 하는 체계적인 육성 활동도 중요하다. 특히 이들이 자발적인 성장 의지로 동기부여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재 스스로가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기업 운영을 하다 보면 특별 관리 대상이라고 하는 핵심 인재나 후계자를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들의 존재가 섣불리 공개될 경우 조직내 정치적 견제, 보통 인재들의 사기 저하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일반 직원 계층의 우수한 인재를 별도로 관리하고 이를 공개하는 것은 부작용이 더 클 수 있겠지만, CEO의 뒤를 이을 후계자나 핵심 포스트의 후계자들은 얘기가 다를 수 있다. 전사적으로 공개하지는 않더라도 본인이 후계자로서 검증받으며 육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이는 선발된 후계자들에게 위로부터 지대한 관심과 인정을 받고 있다는 시그널을 줌으로써 스스로 그 자리에 걸맞는 역량을 개발하고 명확한 목표 의식을 갖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글로벌 선진 기업들은 CEO 후계자를 조기에 발굴하여 이들 간의 치열한 내부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GE가 대표적인 회사이다. 동사의 전설적인 CEO 잭 웰치의 경우만 하더라도, 40대 초반부터 화학/금속 사업본부장으로 등용되면서 일찌감치 CEO 후계자로 인정받고 체계적으로 육성되었다. 그의 뒤를 이은 제프리 이멜트 또한 후계자로 선택된 다른 경쟁자들과 함께 다양한 사업을 이끄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3. Simultaneous Approach : 자질 검증과 육성 활동의 병행
재차 강조하지만 CEO를 비롯해 조직의 막중한 자리를 이어가야 할 유능한 후계자들은 제대로 선발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들의 자질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실질적인 육성 활동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매일매일 이루어지는 일상적인 육성 활동이 불가피하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후계자로 낙점되었더라도, 이들은 실제 그 자리를 맡아본 경험이 일천할 수밖에 없다. 또한 갑작스런 후계자 승계는 실패를 낳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경험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두려움이 엄습하기 마련이다. 만일 두렵지 않더라도 그저 잘해 보겠다는 의욕만으로 모든 일이 해결되지 않는 법이다. 높은 자리를 맡을수록 예기치 못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해 그들의 잠재 능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좌초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 위해서라도 후계자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역량을 담금질하고 후계자로서 갖추어야 할 경험을 일상 속에서 배울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후보자 검증과 육성을 별도의 활동으로 여기지 않고 일상 속에서 지속적인 검증과 육성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다. 일례로 리더가 휴가나 해외 출장 등과 같이 틈이 날 때마다 자신의 후계자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위임하거나 중요한 의사결정을 일임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상사는 후보자들의 진면목을 보다 잘 확인할 수 있다. 때로는 강점을, 때로는 약점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육성이란 관점에서 후보자들은 자신의 강점을 더 강화하고 약점은 보완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철저한 검증과 육성 활동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4. Intended Experience : 다양한 직무 경험과 적절한 시련 부여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검증과 육성 활동의 병행은 실질적인 후계자 육성의 기본이다. 그런데 이에 못지 않게 긴요한 육성 활동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선발된 후보자에게 다양한 직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와 적절한 시련을 회사가 의도적으로 부여하는 노력이다. 이는 특히 후계자로 선발된 후보자가 상위 직급 인력일수록 후계자로써의 자질을 확인하고 개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컨대 조직 내에서 가장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업을 담당하게 한다거나 불확실성과 위험 부담이 높은 신규 사업 프로젝트를 이끌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글로벌 선진 기업들은 액션 러닝과 같은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이를 실천하기도 한다. 이는 탁월한 리더 육성과 사업 성과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거양득의 효과도 있다. 지멘스(Siemens)의 경우 외부 컨설팅 사에 의존하던 여러 가지 사업 이슈 해결을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 과정에 적용하여 1,100만 달러를 절감한 바 있다.
그러나 시련 부여만으로 효과적인 후계자 육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선진 기업들이 선발된 후보 리더들이 주어진 시련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별도의 조언자(Mentor)를 지정하고, 이들이 지속적으로 지도와 조언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반면 장기적 관점에서 육성되는 젊은 후계자의 경우 다양한 직무 경험과 함께 시련을 부여하되 지나치게 난이도가 높으면 인재의 성장을 오히려 가로막는 부작용도 예상된다. 따라서 어느 정도 난이도를 조절하여 이들이 독자적으로 일을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성공 체험을 맛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5. Careful Observation : 평상시의 세심한 관찰
일상 업무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후보자의 자질 검증과 육성 활동의 출발점은 상위 리더가 얼마나 후보자를 주의깊게 관찰하고 그 관찰 내용을 기록하는가에 있다. 대다수 기업들이 GE의 세션 C(Session C)와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실제 속내를 들여다 보면 이를 통한 인재에 대한 논의 결과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평가다.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는 후계자 육성 제도 운영을 한 차례의 이벤트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1년의 한두 차례 형식적으로 정리되는 360도 리더십 평가나 성과 평가 결과와 같은 인재 정보만으로 인재에 대한 깊은 논의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상위 리더는 365일 매 순간 본인의 후계자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가를 세심히 관찰하고 이를 기록해야 한다. 이러한 질적 정보가 제공되어야만 깊이 있는 인재 논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선진 기업들의 최고 수장들이 사업 성과보다 더 챙기는 것이 인재라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대표적으로 GE의 전 CEO 잭 웰치가 자신의 시간의 절반을 인재 육성에 할애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리더들을 대상으로 직접 강의를 하면서 토론을 이끌고, 강의와 토론 중간의 짧은 휴식 시간에도 임원들과 만나 대화하며 이들의 리더십을 확인하는데 주력했다고 한다. 얼라이드 시그널(Allied Signal)사의 CEO 레리 보시디는 임원들에 대한 평가서를 직접 작성하고 이를 토대로 부하 임원의 장단점과 능력 개발을 지도/지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울러 P&G의 CEO인 앨런 래플리는 리더 개발에 1/3 또는 1/2의 시간을, 펩시코(PepsiCo)의 전 CEO인 웨인 컬러웨이는 미래 리더 발굴에 2/3의 시간을, IBM의 전 CEO인 루 거스너와 현 CEO인 샘 팔미사노는 잠재 리더(High Potential Leaders) 검토만을 위한 시간으로 일년 중 최소 2주를 할애한다. 인재 육성에 뛰어난 조직에서는 이처럼 인재 육성에 헌신적인 최고 경영자를 반드시 찾아볼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후계자 육성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최고 경영층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이다. 왜냐하면 이들이야말로 후계자 육성의 가장 실질적인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글로벌 해외 선진 기업의 CEO들의 공통된 특징이 자신의 후계자 육성에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는다는 사실은 우리 기업의 경영자들이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6. Expert Support : 후계자 육성을 위한 전문 조직의 지원
마지막으로, CEO 곁에서 후계자 육성을 보좌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지원 조직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예컨대 GE는 차세대 리더 육성 계획을 책임지고 있는 5명의 이사로 구성된 경영자 개발 및 보상 위원회(MDCC : Management Development & Compensation Committee)를 두고 있다. 이를 통해 후보군의 선정, 면담, 평가 및 최종 선발에 이르기까지 최고경영자의 의사결정을 지원한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의 경우 최고경영자에게 조언과 지원을 담당하는 이사회(Board of Directors)의 전략적 역할 수행이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에 대한 대안 마련도 필요하다. 이 때 고려할 수 있는 것이 인사 부서의 인재육성 역할의 강화이다. GE가 후계자 선발과 육성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세션 C의 내부 운영 모습을 보면, 인사 담당 스텝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예컨대 매년 구성되는 후계자 후보 대상자들을 직접 만나 심층적인 면담을 실시하는데, 이때 후보자의 가치관이나 성품, 리더십 스타일을 면밀히 파악하고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인사 담당 스텝은 기존에 실시된 후보자들의 360도 리더십 평가 결과나 평판 조회 결과 등과 연계하여 적어도 한 사람에 대해 15~2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렇게 정리된 후보자에 대한 질적 정보는 실제로 세션 C를 진행할 때 매우 유용한 인재 논의의 자료로 활용된다고 한다.
IV. 결언
‘일년 계획은 곡식 심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고(一年之計 莫如 樹穀), 십년 계획은 나무 심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으며(十年之計 莫如 樹木), 백년 계획은 사람을 키우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百年之計 莫如 樹人)’고 한다. 영속적으로 생존, 발전하는 기업의 기틀을 갖추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을 키우는 것이라는 점은 대부분의 경영자들도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육성해야 하는지, 그리고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느끼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모쪼록 우리 기업들이 성공 기업의 지혜를 배우고 성실하게 실천함으로써 영속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참고문헌 >
D. Carey, D. Ogden, CEO Succession,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Manfred F. R. Kets De Vries, The Dark Side of CEO Succession, HBR Jan-Feb. 1988.
Ram Charan, Ending the CEO Succession Crisis, HBR Feb. 2005.
A Newsletter from HBR, Six Keys to Training Your Successor, Feb. 2001(Vol. 6, # 2).
Matching Managers to Strategies : A Review and Suggest Framework, AMR, 1984, Vol. 9
Corporate Leadership Council, “Next Generation : New Agenda for Senior Executive Development”, May 2002.
- LG Business Insight 992호
1996년 4월 보스니아로 향하던 비행기 한대가 산악지대에 추락하여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행하였다. 이 비행기에는 미국 상무성 장관과 다수 기업체의 최고경영진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 뜻밖의 사고로 최고 사령탑을 잃은 ABB, 벡텔(Bechtel)사 등 일부 회사는 한동안 혼란과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엔지니어링 업체인 Foster Wheeler사는 이전에 후계자 승계 계획(Succession Planning)에 관한 대비를 해 놓고 있었던 덕분에 큰 동요 없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사례에서 보듯이 유사시를 대비한 승계 계획은 기업의 안정적인 리더십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후임자를 물색하여 필요한 시점에 승계 절차를 진행하기만 하면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모 장비업체의 실패 사례를 살펴 보자. 이 회사의 전임 CEO는 일부 이사회 멤버의 외부 영입 제안에도 불구하고 내부에서 성장한 인물 중에 후임자를 지명하였다. 그런데 그가 은퇴하고 5년이 채 지나기 전에 이 회사는 새로운 상품의 개발 부족과 낙후된 설비, 젊은 인재의 유치 실패 등 여러가지 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결국 후임 CEO가 교체되고 말았다. 이런 결과가 초래된 주된 이유는 전임자가 자신과 너무나도 빼 닮은 후임자를 선정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성공적인 CEO 승계는 후계자를 사전에 지명해 놓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사업 환경과 이슈를 고려한 적임자 선정 등 보다 효과적인 실행 방안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후계자 승계 제도란 무엇이고 어떤 변수들을 고려해야 하며, 선발과 육성 방법, 그리고 현 CEO와 이사회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한다.
I. 후계자 승계 제도의 의의
후계자 승계 제도(Succession Planning Program)란, 조직의 핵심 직책에 있어서 리더십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후임자를 사전에 선정하고, 나아가 필요한 자질을 육성하는 체계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체계적이고 의도적인 육성활동이 동반된다는 점에서, 단순히 후임자를 지명해 놓았다가 유사시에 전임자를 대신하여 직책을 맡게 하는 대체 계획(Replacement Plan)과는 차별화되는 개념이다.
승계 제도가 중요한 이유는 앞의 사례들에서 나타난 것처럼 충분한 사전 대비가 없을 경우에 리더십의 공백으로 인한 위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승계가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 또한 적지 않다.
중국 춘추전국 시대를 주름잡았던 5명의 패자 중 제 환공과 진 문공은 후계 작업에 있어서는 매우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제 환공은 제 1대 춘추오패로 등극하여 당대를 주름잡았지만, 노년에 후궁의 간청에 못 이겨 이미 세워놓은 황태자를 교체하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 그에 따라 골육상쟁과 혼란이 초래되었고, 본인의 장례도 제때 치르지 못하는 비극을 자초한 실패한 지도자로 남고 말았다. 당연히 제나라는 이후 천하 패자의 자리를 빼앗기고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반면에 진 문공은 제 환공과 달리 생전에 후계자를 명확히 하여 이를 신하들에게도 주지시키고, 다른 왕자들은 외국에서 벼슬을 지내도록 조치하여 권력투쟁을 원천적으로 막았다. 그리고 순차적인 권력 이양을 통해 후계자가 막중한 임무를 배울 수 있도록 하여 승계를 순조롭게 마무리짓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결과 진 나라는 문공 사후에도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이어가게 된다.
후계자 승계에 작용하는 심리적 요소
앞서 제 환공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최고경영자(이하 CEO)의 자리를 승계하는 과정에는 수 많은 이해관계자들 간의 갈등이 존재한다. 기업의 경우 현 CEO와 주주, 이사회 멤버(Board Members), CEO를 제외한 여타 최고경영진 등이 주요한 이해관계자라고 할 수 있다. 승계 과정에서 이들 이해관계자 사이에는 자신들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한 편의 심리 드라마가 펼쳐지게 된다. 따라서 이해당사자들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그 이면의 심리적 요인(Psychological Factor)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성공적인 승계 제도의 운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그림 1> 참조).
다음에서는 승계 필요성 인식 단계, 후임자 선발 단계, 신임 CEO의 취임 단계라는 승계의 각 과정별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심리적 장애 요소를 살펴보도록 한다.
1단계 : 승계 필요성 인식 단계
현 CEO가 은퇴할 연령에 가까워지거나 퇴임할 상황이 되면 3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죽음에 대한 부정(The Denial of Death), 자신의 업적에의 집착(Wish to Leave a Legacy), 권력의 상실(Loss of Power) 문제이다.
● 죽음에 대한 부정(The Denial of Death)
은퇴 또는 퇴임은 큰 권한을 행사하는 데 익숙해 있던 임원들에게는 일종의 사형 선고와 같다. 따라서 CEO 본인은 은퇴에 대한 생각 자체를 싫어하고, 중역들은 물론 이사회 멤버들도 이 문제를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이런 모습은 창업자에게서 흔히 나타난다. 회사가 자신이 이룬 성공의 상징이요, 자신의 분신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 의류 기업의 사례를 보자. 이 회사를 창업한 사장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가벼운 심장 발작 증세가 있었음에도, 그의 불 같은 성미도 있고 하여 회사 내에서 어느 누구도 후임 문제를 논의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친분이 있는 인물들로 구성된 이사회도 그 문제를 다루기를 꺼려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마침내 심각한 심장 발작이 일어났고, 마땅한 후임자를 찾기가 어려웠던 이 회사는 결국 헐값에 타사에 매각되고 말았다.
● 자신의 업적에의 집착(Wish to Leave a Legacy)
자신이 이루어놓은 업적을 유지하고 싶은 현 CEO의 욕망도 승계에 대한 거부감으로 작용하게 된다. CEO들은 자신의 재임기간에 신축한 사무 빌딩이나 공장, 또는 무형의 경영 철학과 방침 등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업적에 대해 후임자가 무시하거나 때로는 바꿔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작용하면 자신의 닮은 꼴 CEO를 후임으로 추천하게 된다. 그 결과는 앞서 언급한 회사의 경우처럼 쇠락의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 권력의 상실(Loss of Power)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의 권한이나 회사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도 CEO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일 중 하나이다. 최악의 경우 일부 CEO들은 은밀하게 후임자가 실패하게 만들기도 한다. 소비재를 생산하는 한 회사의 CEO는 부사장 중에서 후임자를 선정하여 최고운영책임자(Chief Operating Officer)로 임명을 하는 등 승계 작업을 시작하는 데까지는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후임자가 점점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자 회복 가능성이 없는 사업을 맡겼고, 때마침 불황까지 겹치자 이사회의 결정에 의해 후계자 후보는 물러나고 말았다.
이 사례는 많은 경우 현 CEO에 대한 이사회나 주주의 우려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위험성을 과대평가해서 CEO를 불신하게 된다면, 이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단계 : 후임자 선발 단계
후임자를 결정해야 되는 단계에서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이슈는 ‘내부에서 선임할 것인가, 외부에서 영입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 문제의 해답은 원칙적으로 명확하다. 미래 기업이 당면하게 될 이슈가 무엇인가에 따라 결정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재무적인 안정성이냐 마케팅의 강화냐에 따라 그에 걸맞는 요건을 정하고, 그에 따라 후임자를 내부에서 찾아보고 만약 내부에 없다면 외부에서 영입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부 발탁이냐 외부 영입이냐에 대한 결정은 실제로는 내부의 이해관계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 반발에 대한 두려움(Fear of Reprisal)
일반적으로 같은 조직에 소속되어 있는 리더와 추종자를 포함한 구성원들 사이에는 서로 비슷한 사람들이라는 일체감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느낌은 소속감과 통일성을 강화시켜주는 긍정적 역할도 한다. 그런데 한 명의 후계자가 그 중에서 선정되면, 그 사람에 대한 리더의 총애를 질시하는 마음과 자신이 선발되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가 나타나게 된다. 흔히 CEO들은 이런 문제를 회피하고 자신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우하고 있다는 환상을 갖게 만들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
한 전자업체의 CEO는 중역들 중 후계자감이 될만한 특출한 인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후계자로 지목하지도, 훌륭한 성취와 업적을 인정해 주지도 않았다. 그 결과 최고의 인재들 몇몇이 회사를 떠났지만, 그는 여전히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하고 있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나아가 편애한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결국 그는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 완벽한 해법에 대한 바람(The Wish for the Perfect Solution)
‘예언자는 자신의 마을을 떠나야만 존경을 받는다’는 말이 있다. 회사 내부 사람들에게 강점은 물론 약점까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인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내부인들의 질시와 미움과 같은 심리적인 요인들이 작용하면, 내부보다 외부에서 영입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 기존의 훌륭한 유산과 전통이 계승되지 못하고 단절되는 등 장점 못지않게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할 우려도 커지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잘 고려하여 후임자를 내부에서 발탁할지 외부에서 영입할지를 결정하는 역할을 이사회가 제 3자적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내부 인재의 강점을 당연시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성공 기업보다는 실패하는 기업에서 외부 영입 케이스가 더욱 빈번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3단계 : 신임 CEO의 취임 단계
일단 승계 작업이 이루어지면 전략이나 조직 구조 그리고 보고 라인 등 많은 부분이 변화하게 된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도 여전히 새로운 CEO가 조직 장악에 실패하게 만들 수 있는 심리적 요소들이 잠복해 있다.
● 과거에의 집착(Romancing the Past)
새로운 CEO가 당면하게 되는 가장 큰 문제는 구성원들이 과거의 관행을 최선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기억은 과거에 있었던 나쁜 기억은 지워버리고 좋았던 측면만을 기억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신임 CEO는 이런 핸디캡과의 싸움을 통해 무조건적인 과거에의 집착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어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따라서 후계자의 성공적인 승계를 마무리짓기 위해서는 이런 고충을 십분 이해하여 올바른 판단과 그에 따른 지원을 이사회에서 수행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 과도한 기대(Unacceptability of Reality)
후계자의 취임 이후 나타날 수 있는 문제 중 하나는 조직 구성원의 지나친 기대감이다. 새로운 CEO가 조직 내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일견 신임 CEO에 대한 지지와 리더십의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에는 긍정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과연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면, 과장된 기대로 인한 큰 실망이 생기지 않도록 관리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CEO 본인이 주변의 이러한 인식을 미리 간파하고 기대 관리를 슬기롭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II. 후계자 선정의 절차와 프로세스
후계자 승계의 출발점은 정말로 유능하고 잠재력이 있는 후보자를 조기에 발굴하는 것이다. 다만 앞서 언급한 심리적 요인들에 영향을 받지 않고 운영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어떤 사람이 적합한지 후계자가 갖추어야 할 요건을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 다음으로 체계적인 선발 절차의 정립과 운영도 중요하다. 그리고 후계자 선발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인 CEO와 이사회간의 책임과 역할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1. 후계자의 핵심 요건 정의
후계자 선정의 시작은 후계자의 요건을 명확히 정의하는 데 있다. 이는 해당 직책이나 포지션을 수행하는 사람이 어떤 자질과 리더십을 갖추어야 할지 필요 역량을 규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해당 조직의 사업 전략에 대한 검토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이를 흔히 ‘포지션 프로파일(Position Profile)을 구체화한다’고 말한다. 포지션 프로파일에는 경영 환경의 변화 상황, 시장에서의 자사의 위치, 현금흐름, 사업의 라이프 사이클, 합병과 인수, 사업 통합화, 글로벌 사업전략 등 여러 가지 사업적 요소를 고려해 필요한 리더의 요건을 정의할 수 있다. 예컨대 <그림 2>에서 볼 수 있듯이, 안정적인 사업에는 관리형 리더가, 신시장 개척이 필요한 곳에는 혁신형 리더가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요건이 정의되어 있어야 이를 바탕으로 후계자를 파악하고 선발하는 활동이 진행될 수 있다. 만일 이런 사람이 회사에 없다면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하는 노력도 이와 같은 요건이 정립되어 있어야만 제대로 수행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조직의 가치, 철학 등을 반영하여 리더십 역량을 보다 구체화하는 노력도 매우 중요하다. 다음에 나오는 <그림 3>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대인 관계 스킬은 동기 부여, 인재 육성 역량 등으로, 변화 관리 스킬은 상황 대처력과 위기 관리 역량 등으로 보다 명확히 규명하는 것이다. 글로벌 선진 기업들은 조직 특유의 가치와 전략적 방향에 부합하는 리더십 역량 요건을 정립하고 이를 체계적인 후계자 선발 과정에 활용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2. 추천과 선정 방법
후계자의 요건 역량이 구체적으로 정의되고 나면, 현 포지션 담당자들이 자신의 직무에 적합한 후계자를 추천하는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추천된 인재들에 대해서는 해당 포지션 수행에 필요한 역량 요건과 후보자들이 갖춘 역량 수준 간의 차이를 확인하는 적합성 평가를 하게 된다(<그림 3> 참조).
이때 예비 후보자들이 회사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 역량 요건을 얼마나 충족하고 있는지를 측정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흔히 MBTI, 심리테스트 및 구조화된 심층 인터뷰, 360도 다면 평가 등의 평가 방법이 활용된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소 일을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상위 리더들이 승계 후보자에게 느낀 여러 가지 객관적이고 질적인 정보이다. 이러한 질적 정보에는 평상시 후보자들의 성향, 태도, 피드백을 주었을 때 어떻게 개선하는지 등에 대한 매우 깊이 있는 정보가 담겨질 수 있다. 따라서 글로벌 선진 기업들의 리더들이 부하직원들과의 평가 면담 시 구체적인 대화 내용이나 평가 피드백 내용 등을 기술하고 이를 기록해 놓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대목이다.
3. 이사회와 CEO의 책임과 역할
사실 이와 같이 후계자의 선정과 후계 구도를 준비하는 것은 현 CEO에게 있어 중요한 의무이자, 한편으로는 자신의 입지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일이 될 수 있는 양면적인 과제이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CEO가 평소 관찰을 통해 파악하고 있는 후계자 후보에 대한 판단에 대해 존중을 하면서도 동시에 심리적 원인에 의한 왜곡이 없도록 견제하고 챌린지하는 역할을 이사회가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이사회와 CEO의 가장 이상적인 역할 분담은 명확하다. CEO는 후계자 승계 계획을 수립하고, 후계자를 개발하여 이사회에 보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사회는 직접 후계자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승계 계획이 제대로 실행되는지 여부를 체크하고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 기업의 CEO들이 아직은 후계자 육성에 대한 마인드가 크게 부족한 상황이고, 더욱이 후계자 승계 제도에 대해서는 생소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책임과 역할의 실천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CEO와 이사회 간의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기 위한 노력이 꾸준히 지속될 때 비로소 해당 기업의 영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토대가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III. 후계자 육성의 6가지 핵심 포인트
후보자 선발을 위한 신중한 절차와 프로세스를 갖추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선발된 후계자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가’ 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시스템을 갖추었어도 실제 경영 현장 속에서 후계자들이 일과 함께 성장하는 육성 메커니즘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면 허사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후계자 육성 제도 면면에, 그리고 일상 속에 후계자 육성 활동의 메커니즘이 체질화되어야 한다. 후계자 육성을 잘하는 것으로 알려진 글로벌 선진 기업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조직 DNA 내에 후계자 육성 마인드(Development Mindset) 구축, 승계 후보자 스스로의 충분한 인지를 통한 자발적 동기부여(Self Motivation), 일상 업무에서의 자질 검증과 육성 활동의 병행(Simultaneous Approach), 다양한 직무경험과 시련 부여(Intended Experience), 후보자에 대한 평상시 주의 깊은 관찰(Careful Observation), 후계자 육성을 위한 전문 조직의 지원(Expert Support) 등이 돋보인다. 이하에서는 그 핵심 포인트들을 구체적으로 짚어본다.
1. Development Mindset : 후계자 육성 마인드 정립
우선, 후계자 육성을 잘하는 것으로 알려진 글로벌 선진 기업들을 보면 후계자 육성 마인드가 마치 조직의 DNA처럼 모든 제도와 활동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후계자 후보들 또한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더 다듬어지고 육성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어느 기업이나 후계자로 선발된 사람은 출중한 능력과 잠재역량을 인정받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이들은 설익은 열매와 같아서 당장 최고경영자의 역할을 하기에 부족한 면이 있다. 따라서 기업은 단순히 선발된 후보자들의 자질 검증에만 집중하지 말고, 어느 누구보다 이들을 공들여 키우고 가꾸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조직 문화로 체화되어 모든 계층에서 똑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해외 선진 기업들은 후계자 육성 마인드를 조직의 모든 제도와 활동 속에 녹여내고 있다. 특히 이들이 성과 평가와 보상 시스템, 피드백/코칭 제도 등을 후계자 육성과 연계하여 공식화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GE의 성과 평가 시스템은 일선 관리자나 상위 관리자들을 평가할 때 ‘인재를 움켜쥐고 있으려고 하는 관리자’가 부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성과도 중요하지만 리더에게 있어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의 뒤를 이을 더 훌륭한 리더를 키워내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로열 더치 쉘(Royal Dutch Shell)은 인사 부서 사람들이나 직속 상사의 의견을 참고로 자신이 직접 본인의 경력을 관리하게 한다. 이로써 후계자 제도가 본사 주관으로 운영되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의 책임 하에 운영되는 제도로 정착되고 있다.
이 밖에 후계자 발굴과 육성 노력을 관리자의 승진이나 보너스 지급에 연동하는 방식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이다.
2. Self Motivation : 승계 후보자의 자발적 동기부여
다음으로는 후계자를 조기에 발굴하고, 선택된 후보 인재들이 제대로 육성되게 하는 체계적인 육성 활동도 중요하다. 특히 이들이 자발적인 성장 의지로 동기부여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재 스스로가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기업 운영을 하다 보면 특별 관리 대상이라고 하는 핵심 인재나 후계자를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들의 존재가 섣불리 공개될 경우 조직내 정치적 견제, 보통 인재들의 사기 저하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일반 직원 계층의 우수한 인재를 별도로 관리하고 이를 공개하는 것은 부작용이 더 클 수 있겠지만, CEO의 뒤를 이을 후계자나 핵심 포스트의 후계자들은 얘기가 다를 수 있다. 전사적으로 공개하지는 않더라도 본인이 후계자로서 검증받으며 육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이는 선발된 후계자들에게 위로부터 지대한 관심과 인정을 받고 있다는 시그널을 줌으로써 스스로 그 자리에 걸맞는 역량을 개발하고 명확한 목표 의식을 갖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글로벌 선진 기업들은 CEO 후계자를 조기에 발굴하여 이들 간의 치열한 내부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GE가 대표적인 회사이다. 동사의 전설적인 CEO 잭 웰치의 경우만 하더라도, 40대 초반부터 화학/금속 사업본부장으로 등용되면서 일찌감치 CEO 후계자로 인정받고 체계적으로 육성되었다. 그의 뒤를 이은 제프리 이멜트 또한 후계자로 선택된 다른 경쟁자들과 함께 다양한 사업을 이끄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3. Simultaneous Approach : 자질 검증과 육성 활동의 병행
재차 강조하지만 CEO를 비롯해 조직의 막중한 자리를 이어가야 할 유능한 후계자들은 제대로 선발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들의 자질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실질적인 육성 활동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매일매일 이루어지는 일상적인 육성 활동이 불가피하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후계자로 낙점되었더라도, 이들은 실제 그 자리를 맡아본 경험이 일천할 수밖에 없다. 또한 갑작스런 후계자 승계는 실패를 낳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경험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두려움이 엄습하기 마련이다. 만일 두렵지 않더라도 그저 잘해 보겠다는 의욕만으로 모든 일이 해결되지 않는 법이다. 높은 자리를 맡을수록 예기치 못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해 그들의 잠재 능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좌초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 위해서라도 후계자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역량을 담금질하고 후계자로서 갖추어야 할 경험을 일상 속에서 배울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후보자 검증과 육성을 별도의 활동으로 여기지 않고 일상 속에서 지속적인 검증과 육성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다. 일례로 리더가 휴가나 해외 출장 등과 같이 틈이 날 때마다 자신의 후계자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위임하거나 중요한 의사결정을 일임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상사는 후보자들의 진면목을 보다 잘 확인할 수 있다. 때로는 강점을, 때로는 약점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육성이란 관점에서 후보자들은 자신의 강점을 더 강화하고 약점은 보완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철저한 검증과 육성 활동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4. Intended Experience : 다양한 직무 경험과 적절한 시련 부여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검증과 육성 활동의 병행은 실질적인 후계자 육성의 기본이다. 그런데 이에 못지 않게 긴요한 육성 활동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선발된 후보자에게 다양한 직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와 적절한 시련을 회사가 의도적으로 부여하는 노력이다. 이는 특히 후계자로 선발된 후보자가 상위 직급 인력일수록 후계자로써의 자질을 확인하고 개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컨대 조직 내에서 가장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업을 담당하게 한다거나 불확실성과 위험 부담이 높은 신규 사업 프로젝트를 이끌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글로벌 선진 기업들은 액션 러닝과 같은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이를 실천하기도 한다. 이는 탁월한 리더 육성과 사업 성과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거양득의 효과도 있다. 지멘스(Siemens)의 경우 외부 컨설팅 사에 의존하던 여러 가지 사업 이슈 해결을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 과정에 적용하여 1,100만 달러를 절감한 바 있다.
그러나 시련 부여만으로 효과적인 후계자 육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선진 기업들이 선발된 후보 리더들이 주어진 시련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별도의 조언자(Mentor)를 지정하고, 이들이 지속적으로 지도와 조언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반면 장기적 관점에서 육성되는 젊은 후계자의 경우 다양한 직무 경험과 함께 시련을 부여하되 지나치게 난이도가 높으면 인재의 성장을 오히려 가로막는 부작용도 예상된다. 따라서 어느 정도 난이도를 조절하여 이들이 독자적으로 일을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성공 체험을 맛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5. Careful Observation : 평상시의 세심한 관찰
일상 업무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후보자의 자질 검증과 육성 활동의 출발점은 상위 리더가 얼마나 후보자를 주의깊게 관찰하고 그 관찰 내용을 기록하는가에 있다. 대다수 기업들이 GE의 세션 C(Session C)와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실제 속내를 들여다 보면 이를 통한 인재에 대한 논의 결과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평가다.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는 후계자 육성 제도 운영을 한 차례의 이벤트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1년의 한두 차례 형식적으로 정리되는 360도 리더십 평가나 성과 평가 결과와 같은 인재 정보만으로 인재에 대한 깊은 논의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상위 리더는 365일 매 순간 본인의 후계자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가를 세심히 관찰하고 이를 기록해야 한다. 이러한 질적 정보가 제공되어야만 깊이 있는 인재 논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선진 기업들의 최고 수장들이 사업 성과보다 더 챙기는 것이 인재라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대표적으로 GE의 전 CEO 잭 웰치가 자신의 시간의 절반을 인재 육성에 할애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리더들을 대상으로 직접 강의를 하면서 토론을 이끌고, 강의와 토론 중간의 짧은 휴식 시간에도 임원들과 만나 대화하며 이들의 리더십을 확인하는데 주력했다고 한다. 얼라이드 시그널(Allied Signal)사의 CEO 레리 보시디는 임원들에 대한 평가서를 직접 작성하고 이를 토대로 부하 임원의 장단점과 능력 개발을 지도/지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울러 P&G의 CEO인 앨런 래플리는 리더 개발에 1/3 또는 1/2의 시간을, 펩시코(PepsiCo)의 전 CEO인 웨인 컬러웨이는 미래 리더 발굴에 2/3의 시간을, IBM의 전 CEO인 루 거스너와 현 CEO인 샘 팔미사노는 잠재 리더(High Potential Leaders) 검토만을 위한 시간으로 일년 중 최소 2주를 할애한다. 인재 육성에 뛰어난 조직에서는 이처럼 인재 육성에 헌신적인 최고 경영자를 반드시 찾아볼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후계자 육성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최고 경영층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이다. 왜냐하면 이들이야말로 후계자 육성의 가장 실질적인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글로벌 해외 선진 기업의 CEO들의 공통된 특징이 자신의 후계자 육성에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는다는 사실은 우리 기업의 경영자들이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6. Expert Support : 후계자 육성을 위한 전문 조직의 지원
마지막으로, CEO 곁에서 후계자 육성을 보좌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지원 조직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예컨대 GE는 차세대 리더 육성 계획을 책임지고 있는 5명의 이사로 구성된 경영자 개발 및 보상 위원회(MDCC : Management Development & Compensation Committee)를 두고 있다. 이를 통해 후보군의 선정, 면담, 평가 및 최종 선발에 이르기까지 최고경영자의 의사결정을 지원한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의 경우 최고경영자에게 조언과 지원을 담당하는 이사회(Board of Directors)의 전략적 역할 수행이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에 대한 대안 마련도 필요하다. 이 때 고려할 수 있는 것이 인사 부서의 인재육성 역할의 강화이다. GE가 후계자 선발과 육성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세션 C의 내부 운영 모습을 보면, 인사 담당 스텝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예컨대 매년 구성되는 후계자 후보 대상자들을 직접 만나 심층적인 면담을 실시하는데, 이때 후보자의 가치관이나 성품, 리더십 스타일을 면밀히 파악하고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인사 담당 스텝은 기존에 실시된 후보자들의 360도 리더십 평가 결과나 평판 조회 결과 등과 연계하여 적어도 한 사람에 대해 15~2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렇게 정리된 후보자에 대한 질적 정보는 실제로 세션 C를 진행할 때 매우 유용한 인재 논의의 자료로 활용된다고 한다.
IV. 결언
‘일년 계획은 곡식 심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고(一年之計 莫如 樹穀), 십년 계획은 나무 심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으며(十年之計 莫如 樹木), 백년 계획은 사람을 키우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百年之計 莫如 樹人)’고 한다. 영속적으로 생존, 발전하는 기업의 기틀을 갖추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을 키우는 것이라는 점은 대부분의 경영자들도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육성해야 하는지, 그리고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느끼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모쪼록 우리 기업들이 성공 기업의 지혜를 배우고 성실하게 실천함으로써 영속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참고문헌 >
D. Carey, D. Ogden, CEO Succession,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Manfred F. R. Kets De Vries, The Dark Side of CEO Succession, HBR Jan-Feb. 1988.
Ram Charan, Ending the CEO Succession Crisis, HBR Feb. 2005.
A Newsletter from HBR, Six Keys to Training Your Successor, Feb. 2001(Vol. 6, # 2).
Matching Managers to Strategies : A Review and Suggest Framework, AMR, 1984, Vol. 9
Corporate Leadership Council, “Next Generation : New Agenda for Senior Executive Development”, May 2002.
- LG Business Insight 9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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