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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6. 9. 20:32
.경영 환경이 급변하고 고객이 진화하면서 이제는 고객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고객가치경영을 실현할 수 없게 되었다. 차별화된 목표를 갖고 기존 고객 중심의 접근에서 벗어나 귀에 들리는 고객의 목소리를 재해석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고객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고객만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고객중심경영’, ‘고객만족경영’은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 기본 전제가 된 지 오래다. 고객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많은 기업들은 고객관계관리(Customer Relation Management) 도입이나 고객 전담조직 구성 등의 인프라 구축부터 시작해서 표적집단면접법(Focus Group Interview), 고객 만족도 조사, 블라인드 테스트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고객의 목소리(Voice of Customer)를 경청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객만족경영을 위해서는 고객 니즈를 발견해야 하며, 그 출발점은 바로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고객만족경영이 진화한 형태인 ‘고객가치경영’이 새로운 경영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고객가치경영은 단순한 고객만족을 넘어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고객이 표출한 요구나 니즈뿐 아니라 고객이 미처 깨닫지 못한 잠재된 니즈까지 파악해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단순히 고객 목소리를 듣고 이를 제품 또는 서비스에 반영하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고객 가치를 창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파괴적 혁신이론(Disruptive Innovation)’으로 유명한 클레이턴 크리스텐슨(Clayton M. Christensen) 하버드대 교수는 ‘고객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말라’고 역설적으로 말한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산 역사로 통하는 로버트 루츠(Lobert Lutz) 제너럴 모터스(GM) 부회장은 ‘고객들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말해주기는 한다. 그러나 그러한 물건들은 이미 출시된 것들이다’라고 하며 고객 목소리 자체의 한계를 지적한다. 고객가치경영이 바이블처럼 떠받들어지고 이를 위해 조직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기업들에게 이러한 회의론은 매우 충격적일 수 있다.
 
이하에서는 급변하는 기업 환경 속에서 고객 목소리가 갖는 문제점이 무엇이고, 고객가치 창출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점에 중점을 두고 접근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한다.  
 
단순히 고객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 
 
앞에서 언급한 고객 목소리에 대한 다양한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의견을 제품이나 서비스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P&G나 애플, LG전자와 같은 B2C 기업들뿐 아니라 인텔과 CEMEX와 같은 B2B 기업들까지 경쟁적으로 고객을 관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하지만 문제는 획득한 고객 목소리가 전부는 아니라는데 있다.  
 
기업의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미국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나타내는 척도인 미국고객만족지수(ACSI)를 살펴 보면 지난 몇 년간 일부 기업들의 점수는 서서히 상승했지만, 대다수 업종과 기업들의 점수는 10년 전보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1> 참조). 최근 대부분의 기업들이 고객 중심의 차별적 가치 제공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고객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수집된 고객 목소리를 고객 지향적 R&D, 프로슈머 마케팅 등의 다양한 형태로 제품이나 서비스에 효과적으로 반영하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기대한 만큼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고객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모르고 있거나 알고 있더라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초과 공급과 기술의 범용화로 인해 비즈니스 여건이 ‘제품이 부족한 상황’에서 ‘고객이 부족한 상황’으로 전환되면서 기업들은 더욱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고객은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한 것에 더욱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제품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 또는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 조사를 통해 얻어진 고객 목소리는 신제품이나 성능을 개선해 놓은 제품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어렵게 한다.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가 ‘고객들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만 반응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기존 방식을 뒤엎을 정도의 파괴적 혁신일 경우에 대해 고객들로부터 통찰력을 얻는 것은 그 전제부터 성립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기업들이 고객 니즈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과 실제 성과가 비례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고객의 목소리가 반영되었다고 믿는 수치를 지나치게 매몰되어 고객 목소리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적극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고객의 진정한 니즈가 반영되지 못한 me-too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머무르게 되고, 이러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고객은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하게 된다.  
 
거꾸로 고객의 숨겨진 니즈를 파악해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가 큰 성공을 거둔 사례도 있다. 예를 들어 LG전자는 최근 경쟁사들이 고객의 화면 대형화 요구에 대응하기 위하여 대형 PDP나 LCD 출시 경쟁을 벌이고 있을 때 드러나지 않은 고객 요구를 찾아내어 32인치 PDP TV를 출시하였다. 그 결과 고전하던 디스플레이 사업에서 흑자전환을 이뤘을뿐 아니라 북미와 유럽 등 선진시장에서는 ‘세컨드 TV’라는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중국, 브라질 등 신흥시장에서는 주력 제품으로 자리를 잡는 성과를 이룩할 수 있었다.  
또한 애플의 아이팟(i-pod)은 경쟁사들이 나름대로 파악한 고객 목소리를 바탕으로 초소형 다기능 MP3 플레이어를 만드는데 초점을 맞출 때, 오히려 감성적 디자인과 ‘아이튠즈’와 같은 풍부한 컨텐츠를 제공함으로써 오늘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고객 목소리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 
 
이처럼 고객은 관심 있는 대상에만 반응하고 관심이 없는 경우에는 진정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아 기업들로서는 고객의 목소리를 오해하게 되는 난관에 자주 봉착하게 된다. 최근 고객들이 더욱 영리해지고 까다로워지면서 이러한 어려움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따라서 고객들의 목소리를 맹신하고 기업 경영에 이를 그대로 반영한다면 고객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줄 수 있는 혁신적인 가치를 제공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지 고객 목소리를 듣고 이를 직접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에 반영하기 보다는 기업에 맞게 재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재해석’이란 단순히 수집된 고객 목소리를 다각도로 분석하는 것만이 아니라 고객을 선정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사업 목표에 맞도록 실행하는 것까지 포함한 전 과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재해석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산업이나 기업의 특성에 따라 방법론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음과 같은 몇가지 포인트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 차별화된 목표를 수립하라 
 
다수의 기업들은 지난 수십년 동안 경쟁사보다 값싸고 뛰어난 성능과 디자인을 추구하고  소비자층을 세분화하여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등 관행으로 굳어진 일련의 경쟁 논리에 매몰되어 왔다. 하지만 요즘에는 차별화된 전략 요소들도 금방 복제되어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공식으로 화석화되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한 때 인기를 모으던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복제가 거듭되어 이제는 오히려 식상한 주제가 되어 버렸다. 포춘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의 변화상을 보더라도 이렇게 비슷한 모조품 성격을 가진 기존 전략이나 사업을 내세운 기업들은 살아 남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림 2> 참조).
 
혁신도 금방 복제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시대에 고객 목소리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해당 업계에서 그 기업만의 독특하고 차별성 있는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 전략 전문가인 게리 헤멀(Gary Hamel)은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똑같은 방식에 눈이 멀어 전부 똑같은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라면서 차별성 없는 목표의식을 경계했다.  
 
미국에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ING 다이렉트 USA의 최고경영자인 아르카디 쿨만(Arkadi Kuhlmann)은 ‘수익성 다변화’나 ‘다양한 상품 제공과 기다림 해소를 통한 고객 만족’ 같은 보편화된 은행의 목표 대신 ‘다시 저축으로 고객을 이끌어 들여라’를 목표로 은행업계의 관행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러한 목표 아래 ING 다이렉트 USA는 일부러 금융상품과 사업모델을 단순하게 고안해 운영비용을 최소화함으로써 예금 고객에게 좀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하고 대출 고객에게는 낮은 금리를 줄 수 있었다. 그 결과 2004년말 ING 다이렉트 USA는 미국 최대의 인터넷 전문은행,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저축은행, 그리고 은행권 전체를 통틀어 40위권 안에 드는 은행이 되었다. 이 은행이 경쟁사와 유사하게 고객의 불만에만 주목하여 직원 친절 교육을 강화하고 지점을 늘리는 활동에 주력했다면 결코 거둘 수 없는 성과였을 것이다.  
 
성공 기업으로 널리 알려진 사우스웨스트(Southwest) 항공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경쟁사들이 고객 요구에 따라 비행기의 고급화, 기내 서비스 개선과 같은 요소에서 차별화를 추구할 때, 사우스웨스트는 ‘하늘을 대중화하여 누구나 부담없이 자유롭게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잦은 연착과 불필요한 서비스를 최소화하여 낮은 요금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오늘날 독보적인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 기존 고객 중심의 접근에서 벗어나라 
 
고객은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가 아니라 그 소비에서 기대되는 가치에 대가를 지급한다는 관점에서 고객의 개념을 확대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다. 기존 고객에 대한 고민은 흔히‘어떻게 하면 경쟁사의 고객을 빼앗아올 수 있을까?’하는 접근으로 귀결되기 쉽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 방법으로 새롭고 탁월한 가치를 창출하는 경우는 드물다. 정반대로 잠재 고객과 비고객의 관점에서 접근해 더 큰 고객 가치를 실현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    
 
화장품 기업으로 유명한 로레알(L’oreal)이 `96년 메이블린(Maybeline)을 인수할 때 주변 사람들은 당시 다소 촌스럽고 저가 이미지가 강한 미국 토종 브랜드를 왜 인수하는지 의아해 했다. 하지만 로레알은 당장의 고객 목소리가 아닌, 미개척된 미국 십대(Teenager) 고객의 목소리에 주목했던 것이다. 결국 로레알은 이 브랜드를 `2000년 ‘Maybeline Newyork’으로 변경한 후 자사의 기술력과 해외 마케팅망을 활용하여 저가 십대 시장을 공략하는데 성공하였다.  
 
일본의 닌텐도(Nintendo)는 레드 오션으로 변한 게임 시장에서 이제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고객층인 엄마와 아빠,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인 결과 성인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기에 대한 니즈가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성인용 휴대용 게임기 시리즈를 성공시켜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다. 이것은 게임 시장의 고객을 특정 연령 집단에 한정짓지 않고, 게임이라는 상품이 주는 가치를 소비할만한 대상으로 폭넓게 해석하여 얻어낸 결과물이다.
 
● 직접 고객이 되어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라 
 
최근 수많은 기업의 CEO들이 서류에 머리를 파묻고 일하는 대신 직접 고객을 만나러 다닌다. 이른바 ‘현장경영’이다. 일례로 마이크로소프트사(MS)의 빌게이츠는 하루 업무 시간의 1/4 이상을 고객 중심적인 활동에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일반 직원들보다 더 열성적으로 고객을 만나고 다닌다고 한다.  
 
고객가치경영을 위해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즉 고객의 방향을 먼저 읽고 고객이 추구하고자 하는 시장에 먼저 뛰어가 직접 고객이 되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기업이 고객과 인간적으로 교감할 수 있도록 해줄 뿐 아니라 기업이 어느 특정 현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표면적으로 드러내고 그 기업의 스타일, 성격, 견해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필라델피아에 본거지를 둔 여성 의류 및 가정용품 체인 앤스로폴로지(Anthropologie)는 대량생산에 기반을 둔 소매 업체들의 특징인 획일적인 스타일을 거부함으로써 업계에서 단연 돋보이는 주자로 자리매김했는데, 그 밑바탕에는 현장의 목소리가 있었다. 앤스로폴로지의 사장인 글렌 센크(Glen Senk)는 일주일에 적어도 네 시간 이상을 매장에서 보낸다. 센크뿐 아니라 다른 경영 참모들도 매장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팔소매를 걷어 붙이고 점원이 되어 적극적으로 고객에게 어울리는 옷을 추천한다. 심지어 고객을 가장하고 매장을 방문하기도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는 세 시간 만에 7,000 달러어치의 상품을 파는 스타 직원을 해고하였는데, 고객의 입장에 서기는커녕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입고 탈의실에서 나오는 손님에게 칭찬만을 늘어 놓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처럼 현장에서 고객과의 교감을 중시한 결과 `1994년에 점포 한 곳에 연매출 200만 달러를 내는 기업에서 `2005년도 점포 수 77개, 매출 5억 달러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P&G의 팸퍼스 기저귀는 초창기 ‘빠른 흡수’에 주안점을 두고 개발됐다. 하지만 기저귀를 사용하는 직원들의 경험을 다각도로 수집한 결과, 부모들이 겪는 가장 큰 애로 사항은 기저귀의 흡수성이 아니라 아이들의 배변 교육의 어려움인 것을 발견하였다. 이를 반영하여 아이들이 배변을 본 후 2분 동안 축축한 느낌을 줘서 배변 훈련에 도움이 되는 제품으로 컨셉을 수정한 결과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고객과의 연결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고객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고객의 목소리를 수집하고,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 그것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홍보하는 일련의 프로세스는 단순한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다. 비슷비슷한 제품들이 넘쳐나는 경쟁 환경에서 고객의 기억에 남는 기업, 고객들이 잊을 수 없는 ‘별다르고 특별한’ 기업이 되기 위해 추가적으로 상상력과 혁신의 원동력인 창의성이 조직 내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창의성이란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의 창안자적 창의성이 아니라 꾸준한 학습과 노력을 통해 배양되어 질 수 있는 수준의 창의성이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의 저자 짐 콜린스(Jim Collins)는 ‘창의적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창의성을 발휘할 능력이 있다. 천성적으로 창의성이 결여된 사람은 없다’ 라고 말했다.  
 
고객가치경영을 목표로 하는 기업들도 고객의 목소리를 되도록 많이 듣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듣는 것만으로는 고객에게 진정한 가치를 줄 수 없다. 차별화된 목표 의식을 가지고 기존 고객의 관성에서 벗어나서 직접 고객의 입장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창의적으로 기업 활동에 반영한다면 고객이 생각지 못한 차별적인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 LG Business Insight 99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