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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9. 12:46
금융과 실물경제의 동시 추락이라는 악순환이 세계경제의 장기침체로 이어질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미국의 부동산 버블 붕괴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금융상품의 글로벌한 확산 문제는 세계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반영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일본의 장기불황과 유사한 점도 많다. 과거 일본의 장기불황과 현재의 상황을 비교해 보면 거대 금융기관의 연쇄 부도가 억제되고는 있으나 은행 부실채권의 확대가 실물경제를 위축시키고 이에 따라서 새로운 부실채권이 발생하는 위기의 제3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버블의 확실한 청산을 통한 부실채권의 악순환 차단, 금융시스템의 구조 혁신, 글로벌 임밸런스와 달러화 순환시스템의 불안정성 해소, 경기회복을 견인하는 새로운 성장 엔진의 보강 등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과제가 단기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미국경제는 장기불황 조짐을 나타낼 수 있으며, 세계경제도 당분간 저성장이 불가피할 것이다. 만약 개혁의 성과가 점진적으로 나타나면서 선진국이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고 아시아 등 대외수지 흑자국의 내수부양 효과가 가시화될 경우 2010년 세계경제는 2~3% 수준의 성장세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Ⅰ. 글로벌 경제위기의 특징
Ⅱ. 경제위기 탈출 경로와 조건
Ⅲ. 세계 경제의 향방
 
 
 
Ⅰ. 글로벌 경제위기의 특징  
 
 
미국의 부동산 버블 붕괴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선진국·개도국 정부의 대대적인 정책 대응에 힘입어서 안정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미국, 유럽의 거대 금융기관들의 경영 불안이 지속되고는 있으나 리먼브라더즈와 같은 돌연사의 가능성은 낮아졌으며, 각국 정부의 보증 및 지원에 힘입어서 금융기관 간 자금 거래 시장의 긴장 상태도 다소 완화되고 있다.  
 
그러나 실물경제를 보면 선진국이 잇따라 마이너스 성장에 빠지고 있는 한편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경제성장세도 급락하고 있다. 금융위기가 수요의 갑작스러운 감소로 이어져 세계 각국에서 재고가 누적되는 가운데 생산 활동이 급격히 위축되고 이것이 실업 확대 및 수요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가 일시적 금융 혼란에 의해 야기된 것이 아니라 그 배경에 세계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는 만큼 문제들의 심각성에 따라 세계경제의 회복 시기도 좌우될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의 실상을 과거의 경제위기와 비교하면서 살펴본 다음에 향후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한 조건 및 경로를 알아보도록 한다.  
 
대규모 자산 버블 붕괴의 후유증 
 
시중은행들이 중소기업 등에 대한 대출을 기피하는 금융경색 현상이나 재고조정은 통상적인 경기순환 과정에서도 발생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글로벌 경제 불안의 경우 그 정도가 심각한 실정이다. 금융경색의 여파로 미국의 자동차 등 각종 소비재의 수요가 위축되었을 뿐만 아니라 BRICs 등 신흥시장의 자동차 판매대수도 작년 말 이후 두 자리 수 이상 감소하고 있으며, 지난해 11월 이후 수많은 국가들이 10%를 넘는 수출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원자재를 왕성하게 수입해 왔던 중국의 수요 급감도 영향을 미치면서 글로벌한 물동량을 반영하는 발틱 운임지수는 2008년 6~12월 동안에 92.7%나 하락하였다. 세계 각국에서 갑작스럽게 막대한 수요가 소멸되는 기이한 현상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극심한 수요의 감소에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등의 부동산 버블 붕괴의 영향이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자산시장의 거품이 발생하게 되면 큰 호황을 보이다가 버블이 붕괴될 경우 극심한 경기침체에 빠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산 버블 과정에서 과수요가 발생하지만 버블이 붕괴되면서 이러한 과수요가 소멸되는 한편 담보가치 급락으로 인해 각 경제 주체들의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공포감이 확산됨으로써 경제활동이 갑작스럽게 위축되는 것이다.    
 
라인하트와 로고프 교수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주택버블을 수반한 심각한 5대 은행위기 사례의 경우 지속적인 부동산 가격의 하락과 함께 위기 발생 후 3년이 경과해도 과거의 성장세를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이번 미국의 부동산 버블의 경우 과거의 5대 은행위기에 비해서도 거품의 정도가 심각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그림 2> 참조).  
 
사실, 미국 부동산 가격을 보면 2006년 7월을 정점으로 급락세를 보이고 있으나 2008년 11월의 경우에도 아직 1987~1999년 동안의 가격 추세선을 크게 초과하고 있으며(<그림 3> 참조), 부동산 거품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미국 부동산 가격의 하락세가 상당 기간 지속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경기부양책, 금융기관 지원책을 통해 미국 및 세계경제가 공황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고는 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의 계기가 된 부동산 시장의 조정이 지속되는 가운데 자산 가격의 하락으로 인한 추가적인 금융 부실의 발생 압력을 억제하고 선순환 구조를 회복하는 데는 고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주식시장의 경우 대공황기나 일본의 버블 붕괴기에 비해 미국 다우지수 등의 거품이 덜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그림 4> 참조). 이에 따라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는 미국의 다우지수 등의 주가가 일본 장기불황기나 대공황기 수준으로 하락하는 조정을 거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작년도의 주가하락만으로 세계 전체로 29조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부의 소멸 효과가 나타나고 있어서 이번 글로벌경제 위기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 장기불황 및 대공황과의 공통점과 차이점 
 
2008년 이후 심각해지고 있는 글로벌 경제위기의 진원지인 미국경제의 양상을 보면 부분적으로는 1990년대에 있었던 일본의 자산 버블 붕괴 및 장기불황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일본 장기불황의 경우 주식 가격이 1990년부터, 부동산 가격이 1991년을 정점으로 급락하기 시작하여 일본정부는 금리인하, 공공투자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경기부양책에 나섰다(경제위기 1단계). 미국의 경우도 2006년 중반부터 부동산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2007년 가을에 서브프라임 부동산 대출 채권 부실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금리인하와 1,500억 달러를 넘는 대규모 감세 정책을 실행하여 2008년 2/4분기 미국경제 성장률이 다소 회복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버블 붕괴 초기에 일본이나 미국 정부는 통상적인 거시경제 정책에 집중하여 금융기관 등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을 꺼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통상적인 경기부양책은 일시적인 효과에 그쳤으며, 금융부실의 심화로 인해 1997년 이후 일본의 대형 금융기관이 잇따라 파산하는 등 금융위기가 새로운 단계(경제위기 2단계)에 진입했다. 미국의 경우도 부시 행정부의 감세 정책의 한계와 함께 대형 금융기관인 리먼브러더즈의 파산 이후 2008년 10, 11월에 심각한 금융위기 단계를 맞이했다. 이 단계에서는 금융기관끼리 거래하는 단기 금융시장이 극도로 경색되고 이것이 금융기관과 기업 간의 대출시장에도 파급되었기 때문에 일본정부는 1998년, 미국정부는 2008년 말에 금융기관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을 결정하고 중앙은행이 기업 발행 CP를 적극적으로 구입하는 유동성 공급 정책을 강화했다.  
 
일본의 경우 이러한 공적 자금 투입 정책에 힘입어서 금융불안의 장기화 속에서도 대형 금융기관의 파산이라는 위기는 억제되고 금융시장이 점진적으로 안정되었다(경제위기 3단계). 미국의 경우도 정책 효과에 힘입어서 대형 금융기관의 갑작스러운 경영파탄 가능성은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제위기 제3단계에서는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은행들의 대출 기피 등 신용 경색이 장기화되기 쉽다. 일본의 경우 공적자금 투입이나 경기부양책의 실시에도 불구하고 금융경색이 장기화되고 금융부실이 실물경제의 불안으로 이어져, 경제 활동이 2002년 정도까지 전반적으로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금융기관에게 공적자금을 투입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4~5년 정도 경제회생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경제 성장세 둔화와 함께 금융부실이 부동산 및 건설 분야에서 유통업이나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금융부실로 인한 성장세 둔화, 금융경색의 악순환으로 인해 당초 건전하다고 여겨졌던 제조업에서도 부실이 발생한 것이다. 이와 함께 일본의 경우 이 단계에서 물가 및 임금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완만한 디플레이션이 발생한데다 기업 구조조정에 시일이 소요되었다. 물가가 매년 일정한 비율로 하락함으로써 기업은 매출 확대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근로자의 경우도 임금 하락세로 인해 주택 대출 등의 실질적 상환 부담이 가중되었다. 미국의 경우도 현재 경제위기 제3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이며, 당분간 금융과 실물경제의 악순환으로 인한 경기침체의 장기화가 우려된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일본의 제로 금리정책을 참고로 단기정책금리를 0~0.25%로 낮추는 초저금리 정책과 금융의 양적 확대를 도모하는 양적금융완화 정책에 매진하여 미국경제의 디플레이션 돌입을 막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이러한 강력한 금융완화 정책과 함께 일본경제 및 산업의 구조조정에 주력하여 2003년 정도에는 서서히 장기불황에서 탈출하였다. 당시 일본정부는 금융과 산업을 동시에 회생하겠다는 정책을 통해 과잉설비 문제 해결 등의 기업구조조정에 주력하였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본식 자본주의의 개혁에 나서면서 규제완화, 기업수익성 제고, 자산 중시·축적형 기업 경영 억제 등 경제 및 산업 시스템의 혁신에 주력했다. 현재 경제위기 제3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미국 경제의 경우도 금융과 산업의 구조조정을 통한 동시 회생이나 경제시스템의 재구축이 과제가 될 것이다. 예를 들면, 그동안의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경제 시스템의 개혁, 금융 산업에 지나치게 의존한 산업구조 등의 구조적 문제를 금융부실 문제와 함께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상과 같이 일본의 장기불황기와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의 미국경제 상황에는 유사점이 많으나 차이점도 있다. 일본이 지속적인 물가 하락세를 보인 것은 금융경색과 함께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던 물가 구조를 시정하려는 압력이 작용한 데다 장기불황 초기에 엔고를 보였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미국의 경우 위기 이전부터 소비시장 등의 개방도가 높은 상태였던 것을 고려하면 이 측면에서의 물가 하락 압력은 일본에 비해 덜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의 경우 FRB 등이 일본 장기불황의 사례를 심도 있게 연구하면서 일본이 취했던 정책 중 참고가 될 만한 부분은 활용하는 한편 오류 부분은 피하면서 정책에 반영하고 있어서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FRB는 사실상 일본과 같은 양적 금융완화(금리가 제로에 가까와 졌기 때문에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해서 추가적 금융완화 효과 추구)에 주력하면서 시중의 CP, 모기지 채권 등 민간채권을 대량 매입하고 있는데, 이러한 대담함은 버블 붕괴시에는 일본의 경우와 같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미국 발 글로벌 경제위기를 대공황과 비교하는 견해도 있다. ‘100년만의 사태’라는 표현 자체가 1929년에 발생한 대공황을 의식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대공황은 앞에서 말한 경제위기의 제2단계에서 금융기관의 연쇄 파산을 막는 정책 수단이 미진했던 결과 신용공황이 악화돼 미국의 실업률이 25%로 상승하고 세계 무역이 60% 이상 감소하는 등 경제활동이 극심하게 위축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의 경우 은행에 대한 공적자금 확대, 중앙은행에 의한 풍부한 유동성 공급, 경기부양정책 등에 힘입어 1929년의 대공황과 같은 위기상황으로까지 악화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공황기에는 금본위제를 일찍 포기하고 자국 통화가치의 하락을 유도한 국가일수록 경제가 먼저 회생했기) 때문에 각국 간에서 통화가치 절하 경쟁이 심해져 이것이 관세율 인상 경쟁으로 비화되다가 세계무역의 급감과 세계경제의 블록화, 블록 간 세력 확장 전쟁으로 이어졌지만 현재는 이와 같은 상황과 차이가 있다. 당시에 비해 현재는 글로벌한 정책 공조체제가 보다 강한 데다 주도국인 미국조차도 기반 제조업이나 핵심 에너지원을 해외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아져 어느 나라도 고립주의를 선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부시행정부의 호전적인 일방주의가 정권교체로 수정되어 오바마 신정부에서는 국제적 공조체제 및 새로운 정책협조가 보다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미국의 보호주의 경향이 심화되고 중국이나 일본 등이 통화가치 절상 억제를 위한 시장개입에 나설 가능성이 있으나 통상 및 경제 마찰로 인해 강대국 간 심각한 긴장이 조성될 가능성은 아직 낮다고 할 수 있다.    
 
 
Ⅱ. 경제위기 탈출 경로와 조건 
 
 
버블의 청산과 부실채권의 악순환 차단 
 
일본의 장기불황이나 기타 선진국의 대형 은행위기 사례의 경우 경제회복이 늦어진 것은 자산 버블을 청산하여 금융기관들이 다시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회복하는 데 일정한 시일이 소요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초반에 은행위기를 겪은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의 경우 각국 부실채권의 규모가 GDP의 6~11%, 장기불황기 일본의 경우 20% 정도에 달하는 막대한 수준에 달해 부실 처리에 고전한 것이다. 이번 위기로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손실 규모에 관해서는 IMF(2008년 10월 추정)가 서브프라임 대출, 기업대출, 각종 증권화 상품 등을 포함해서 1조 4,050억 달러(미국 2007년 GDP의 12.2%)로 추정하고 있으나(2009년 1월 28일에 2.2조 달러로 상향 수정 보도) 영국 중앙은행은 2.8조 달러(동 24.3%), 일본의 미즈호증권은 5.8조(동 50.3%)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막대한 부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미국 정부는 금융기관에 대한 추가적인 공적자금 투입이나 과중채무자에 대한 지원 등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다만, 이러한 부실채권의 처리에 있어서 1990년대 은행위기를 겪은 북 유럽의 경우 은행을 신속히 국유화하면서 악성 부실채권과 양호한 채권을 나누는 등의 부실채권 청산 대책을 통해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리 경제를 회복시킬 수가 있었다. 1997년에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의 경우도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대기업의 막대한 부실처리를 신속하게 마무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일본의 경우 부실 처리가 늦어져 상대적으로 건전했던 기업 등도 경기침체와 함께 부실해지면서 건전했던 기업마자도 의심을 받게 되는 부작용까지 발생해 부실 처리를 어렵게 했다.  
 
즉, 버블 붕괴에 따라서 은행위기가 발생할 경우 부실채권의 처리가 신속히 마무리 되어야 경제가 본격적으로 회복할 수 있으며, 아무리 경기부양책으로 공황 상태를 막는다 해도 그 효과에는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은행의 자산에 부실채권이 계속 남아 있으면 은행경영 자원이 부실 대출자의 관리에 낭비되고 새로운 기업이나 산업을 발굴하는 산업 금융 활동이 부족해져 경제가 정체되는 데다 건전했던 기업이나 자산도 부실해지기가 쉽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정부나 FRB가 공적자금 투입의 필요성을 인식한 이후에는 신속하게 행동하기 시작했으나 주택대출, 카드 대출, 상업용 부동산 대출 등 금융기관의 막대한 부실 채권 자체를 청산하여 자동차 등 소비자금융 전반에 대한 악영향을 억제하는 데에는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물론, 미국 정부도 모기지 채권 매입, 차입자에 대한 대출 조건 완화, 금리인하, 금융기관에 대한 차압(差押) 억제 등의 정책을 모색하고 있으나 쉽지만은 않은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 등과 달리 주택담보 대출이 non recourse(비소구적) 형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출을 갚지 못한 차입자는 집을 넘겨주면 채무 상환을 면제 받게 된다. 이에 따라 차입금보다도 주택가격이 하락하게 되면 상환 능력이 어느 정도 있더라도 집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도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 상당 기간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 집을 포기하는 사람들에 의한 중고 주택의 매물 확대가 부동산 가격을 지속적으로 하락시키는 악순환이 우려된다.
 
게다가, 미국 가계 자산의 감소 규모가 2008년 3/4분기 기준으로 6조 6,664억 달러(최근의 정점인 2007년 3/4분기 대비의 감소금액)에 달하고 있어서 정부의 지원책에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미국 가계의 차입 감축·저축 확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러나 미국 가계의 차입 상환 능력을 높이기 위한 주택 대출 금리의 지속적 인하나 상환기간 연장 등이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가계의 특수성에 세밀하게 대응하면서 대출 상환 조건이 완화된다면 과잉채무의 조정 과정에서 소비 지출에 대한 충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3/4분기 기준으로 미국 가계의 주택담보 대출액은 10.5조 달러로 1999년의 6.7조 달러에서 크게 증가, 가처분 소득에 대한 비중도 98.6%로 1999년의 66.2%에서 크게 상승한 상태이며, 1975~1999년의 추세를 감안할 경우 2조 달러 정도가 과도한 상태인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이러한 과잉 차입을 4년 정도의 기간동안 축소할 경우 매년 5,000억 달러(2007년 경상 GDP의 3.6%)의 소비 감소 효과가 나타나 미국경제 성장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잉채무는 채무조정에 따라서 상환부담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최근 추세와 같이 모기지 금리를 6%대에서 4%대로 낮추고 원금 상환기간도 10년에서 30년으로 연장할 경우를 가정한다면 가계의 연간 원리금 상환 금액이 가처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8%에서 7.25%로 크게 낮아지게 된다. 실제로 미국 가계의 채무 원리금 상환부담의 가처분 소득 비중은 FRB의 추정치로 2008년 3/4분기에 14.0%(모기지와 소비신용 합계 기준)로 1999년 4/4분기의 12.4%보다는 높으나 최근의 정점인 2007년 3/4분기의 14.4%에서 떨어지는 추세에 있다. 미국의 주택대출 문제는 고리스크 대출자에게 고금리를 적용하는 지나치게 위험한 금융상품의 팽창에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정책지원으로 고위험자에게 저금리를 적용해서 부도 리스크를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미국의 모기지 금리가 더욱 하락하고 상환 조건도 완화된다면 고용이 유지된 미국가계가 과잉채무를 삭감하기 위해 소비를 줄여야 할 압력이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이 미국의 주택 버블 청산 과정에서는 차입자의 여건이나 주택시장의 현장에 맞게 세밀하게 대응하는 정책을 강구하고 부분적으로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가망이 없는 부실 채권은 조기에 처리하되, 우량 채권화가 가능한 것은 신속하게 회생시키는 노력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러한 가계의 재무구조 개선은 주택가격의 하락과 미국경제의 성장세 하락, 실업률 상승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진행될 것으로 보여 이 과정에서 과거의 은행위기의 경우와 같이 상대적으로 건전하다고 판단되어 왔던 기업 부문의 금융부실이 어느 정도 확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금융부실의 파급을 차단하는 노력이 중요할 것이다. 사실, 단기금융시장의 안정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와 국채 사이의 금리 격차는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투자가들은 미국기업의 부도 확대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금리차 수준을 고려할 경우 기업 부도율은 향후 상당 수준 높아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그림 7>참조). 미국정부가 경기부양책을 위해 국채 발행을 늘리고 있어서 투자가들은 안정 자산을 확보하기 쉬워진 것도 투자가들의 회사채 기피 경향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 이에 따라 FRB는 늘어나는 국채발행에 대처하기 위해 중앙은행으로서 직접 장기국채를 매입하여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국채발행 증가에 따른 전반적인 금리 상승 가능성을 억제하는 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중앙은행의 직접적인 장기국채 인수는 경제위기에 빠진 개도국에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유발하기도 하는 극약처방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불황기의 일본에서도 그 필요성이 일부 제기되다가 채택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FRB의 유동성 공급 대책의 부작용이 가시화되기 이전에 금융부실을 처리하여 은행 융자활동을 정상화시켜서 기업 부문으로의 부실의 파급을 억제할 수 있는지가 향후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만약 실물 경기침체와 함께 회사채의 부도가 일시적으로 급증할 경우에는 FRB의 직접적인 자금 공급 대책이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금융시스템의 구조적 혁신 
 
버블 붕괴의 후유증을 청산하는 것이 1차적인 과제이긴 하지만 가계 및 산업 부문에 대한 금융을 정상적으로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구조적인 금융시스템의 개혁 및 회생을 동시에 추진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번, 미국 발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2000년대에 세계 금융시장을 주도해 왔던 미국계 투자은행들이 잇따라 몰락했다는 사실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바와 같이 서브프라임 채권과 같이 불투명한 금융상품을 기초로 한 신용창조 메커니즘을 보다 안전하고 신뢰성이 높은 형태로 개혁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금융기술을 동원하여 대출, 채권, 주식 등을 복잡하게 가공하는 증권화 관련 금융상품에 의존한 금융시스템은 지나치게 불투명할 뿐 아니라 문제가 발생할 때 투자가의 신뢰성이 한꺼번에 무너져 글로벌한 유동성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것이 이번 위기를 통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은행의 경우도 자회사를 통해 헤지펀드와 같은 위험한 투자 포지션을 축적해 위기가 닥칠 때까지 CEO조차도 경영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구조적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유동성 위기 억제를 위한 국제적 공조를 통해 금융기관의 시가회계 유보를 비상조치로서 허용하고 있으나 이와 같은 조치는 중장기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 없이도 금융시스템을 안정화시킬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은행위기의 경우를 봐도 대공황기에는 은행과 증권업을 분리하는 규제정책을 강화했으며, 일본 장기불황의 경우 그동안의 관민유착형 금융시스템을 개혁하였다. 이번, 미국 발 글로벌경제위기의 경우도 서브프라임과 같은 복잡한 금융상품의 가공 과정을 줄이고 금융 중개 기능을 단순화해 투명성을 높이고 금융 코스트를 절감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주식, 채권 등의 직접 금융은 간접금융과 달리 투자가와 기업 등이 직접 연결된다는 이점이 있는데, 증권화 과정에서는 신용보증, 신용등급, 가공수수료 등 가공 단계에서 다양한 수수료가 부가되는 비효율성이 발생한다.  
 
이러한 비효율성은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코스트가 들기 때문에 증권화 관련 상품은 고위험,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서브프라임과 같은 상품을 필연적으로 포함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구조적 고위험 금융상품이 금융공학이라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가 어려운 기술을 이용하여 마치 저 위험 자산인 것처럼 은폐될 수 있었다는 것이 최근의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취약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금융상품의 순환적인 가공 과정을 통해 각종 파생금융상품이 비효율적으로 비대해진 것도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을 키우는 역할을 했다. 사실, 2001년 당시 0.9조 달러 수준에 불과했던 CDS(Credit Default Swap)의 경우 2007년 말 기준으로 62조 달러로 급팽창했다. 이러한 금융자산 시장의 팽창은 GDP 등 실물경제의 성장 속도를 훨씬 능가했으며, 실제로 미국경제에서 기업수익의 상당 부분이 금융 산업으로 쏠리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그러나 금융은 실물경제에 의존하면서 존속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금융부문의 팽창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 및 세계 금융 산업이 제대로 회생되고 새로운 신용창조 역할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글로벌한 금융 감독을 통한 투명성의 제고와 함께 금융상품의 단순화, 투자가를 오도하는 증권화 상품의 고비용 구조 시정 등이 필요할 것이며,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헤지펀드나 금융파생 상품의 축소와 이에 따른 유동성 위축의 충격을 금융시장이 얼마나 흡수해 갈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실제로 국제적으로도 새로운 금융 감독 및 규제 행정이 모색 중에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산업의 부가가치 제고에 기여하고 가계의 건전한 소비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미국 및 글로벌 금융시장이 회생되는 것이 글로벌 경제위기 탈출의 중요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임밸런스와 달러화 순환시스템의 불안정성 해소 
 
이번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확산에는 글로벌한 대외수지 불균형 문제를 배경으로 한 달러화의 국제적인 순환시스템의 불안정성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글로벌 경제위기 탈출을 위해서는 국제유동성 공급시스템의 안정화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사실, 미국의 과잉소비 문제도 글로벌 임밸런스(막대한 국제수지 불균형)와 달러화의 국제적 순환 시스템이라는 세계경제의 모순을 반영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미국이 과잉소비로 인해 방대한 무역 및 경상수지 적자를 내고 이 과정에서 방출된 달러화가 아시아 각국 등으로 흘러들어가고 이들 국가의 중앙은행이 외환보유고로서 미국 달러화를 매입하는 패턴이 2000년대 들어서 강화되어 왔다.   
 
사실, 개도국은 1990년대에 누적치 기준으로 7,896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였으나 2000년대(2000~2008년 추정치)는 3조 46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한 반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1990년대 1조 2,247억 달러에서 2000년대에 5조 3,219억 달러로 확대되었다.   
 
중국, 일본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외환보유고로 미국의 패니메이나 프레디멕 등 부동산 버블을 주도한 투자공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것은 미국의 부동산 버블과 글로벌 임밸런스의 연계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 → 달러화 유동성 확대 → 아시아 등 흑자국의 외환시장 개입 및 미국으로의 자금 환류 → 미국 투자은행의 국내외 고수익 자산 투자라는 달러화의 글로벌한 순환구조에서 미국은 고위험·고수익 자산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대외수지 흑자국으로부터 저금리 자금을 조달하여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면서 투자수익차를 확보해야 글로벌 임밸런스에 기초한 달러화의 순환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는 미국 부동산 버블의 조장뿐만 아니라 국제유동성의 단기성향 강화라는 불안정성을 높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이번 서브프라임 위기와 같이 자산 가격이 폭락하게 되면 미국으로의 투자자금이 둔화되고 미국 투자은행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해외자산을 매각하고 이에 따라 유동성 불안을 겪은 각국의 투자가들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미국 자산을 다시 매각하는 등 글로벌한 자산 매각의 악순환이 초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서브프라임 위기 과정에서 유럽 등 선진국 은행들은 미국의 불투명한 증권화 관련 금융상품을 구매해서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어 상호신뢰성의 회복이 과제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번 위기로 세계 무역의 결제라는 국제금융의 기본적인 인프라 기능까지도 약화돼 세계경제의 위축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향후 미국이 과잉소비를 억제하면서 어느 정도 대외수지 적자를 줄여 나가고 신뢰성의 회복에 주력할 것으로 보이나 이 과정에서 기존의 달러화 순환 시스템을 보완하는 국제유동성의 창출 기능을 강화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세계 주요국 회의인 G20에서는 포스트 서브프라임의 금융질서 재편성을 논의하고 있으나 세계경제의 구조 변화에 맞게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는 대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인지가 변수일 것으로 보인다. 과거 대공황기에는 기존의 국제금융질서였던 금본위제에 집착하다 혁신이 늦어져 결국 세계 경제공황을 막는데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자산시장의 변동에 지나치게 예민하고 단기 수익 지향인 현재의 국제유동성 공급 시스템을 보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산업의 부가가치 창조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각 지역 차원의 역내 금융 기능의 강화도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면 아시아 역내 무역의 활성화를 위해 한중일 간에서 역내 무역금융을 뒷받침할 수 있는 무역금융 인프라를 강화하는 방안 등이 있을 것이다. 또한 각 경상수지 흑자국이 미국을 경유하는 투자 패턴뿐만 아니라 신흥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를 확대하면서 국제유동성의 안정적인 공급 역할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IMF의 SDR(특별인출권)와 같은 인공적인 국제유동성의 발행 규모를 확대하거나 새로운 유동성 공급 시스템의 창조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국제금융질서의 재편성은 어려운 과제이긴 하지만 각국이 어느 정도 위기의식을 갖고 획기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위기의 해소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한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로 금융정책을 통해 자산 버블을 사전에 억제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국제유동성 및 각국 통화량이 자산시장의 급등락에서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구조로 혁신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산가격의 변동에 따라 은행 융자가 크게 영향을 받게 될 BIS 규제 등의 개혁도 모색될 것으로 보인다.  
 
경기회복을 견인하는 새로운 성장 엔진 
 
미국이나 유럽 경제가 은행 부실채권의 부담과 주택가격 하락 압력으로 인해 소비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세계경제의 회복을 주도할 수 있는 성장 엔진을 어디서 확보할 것인지가 세계경제의 위기 탈출을 위한 또 다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금년도 선진국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있으며, 유럽이나 일본이 미국의 성장세 둔화를 만회하는 데에 어려움이 존재한다. 유럽의 경우 스페인, 영국 등이 부동산 버블 붕괴의 충격이 큰 편이며, 동구권은 외환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부동산 버블과 거리가 멀었던 독일의 경우도 은행 부실채권이 누적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의 경우 그동안 수출 주도로 경제를 회복시켜 왔는데,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수출 수요의 급감과 함께 엔화가 강세 기조를 보이고 있어서 더욱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신흥시장의 경우도 그동안 고성장을 구가해 왔으나 선진국에 대한 수출에 의존한 성장 패턴을 보여 왔기 때문에 선진국의 마이너스 성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국제유동성 불안의 충격은 신흥국도 강타해 서브프라임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적었던 각 신흥국에서도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 나가서 외환불안을 겪었기 때문에 대외수지를 악화시킬 정도로 투자 확대 및 내수 부양에 나설 수 있는 국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대규모 대외수지 흑자를 축적하고 있는 중국, 일본, 독일, 중동 산유국 등이 미국의 소비 감소 및 대외수지 적자 축소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내수부양 효과를 높이고 세계경제의 성장 엔진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을 비롯한 유럽 주요국들도 대대적인 경기 부양책을 전개할 것으로 보여 그 효과가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장기불황기의 경우와 같이 자산 가격의 조정으로 금융부실이 확대되는 상황에서는 경기부양책이 효과를 거두기가 어렵기 때문에 당분간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에 크게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에서의 경기부양책에 의한 수요 창조는 결국 기업이 투자수익을 확보하여 재투자를 하고 고용을 늘리는 자본의 확대 재생산으로 연결되어야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익기반 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경기부양책이 결국, 기업의 이노베이션이나 수익 구조 개선에 도움이 되고 근로자의 고용이나 임금 확대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장기불황 과정에서 일본정부는 수차례에 걸쳐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실시했으나 일시적인 효과에 그쳤다. 2003년 이후에는 경기부양책을 실시할 여력이 거의 없어졌으나 오히려 일본기업들의 구조조정 효과와 디지털 가전 이노베이션 효과, 대중수출 급증 효과 등이 가시화돼 일본경제는 장기불황에서 탈출할 수가 있었다.  
 
이번 글로벌경제 위기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그린 뉴딜 정책에 주력하고 있으며, 이와 같이 신성장 산업을 육성하여 투자와 고용의 새로운 확대 선순환을 구축하는 노력이 얼마나 빨리 성과를 나타내 세계경제의 성장 엔진이 될 수 있는지가 향후 세계경제 회복의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Ⅲ. 세계경제의 향방  
 
 
경제위기 탈출 방향 
 
이상에서 분석한 바와 같은 경제위기 탈출을 위한 조건 중에는 해결이 어렵거나 장기간 소요되는 것도 있어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책 실시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가 단시일에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한 국제금융 협조가 순조롭게 새로운 국제금융질서로 이어져 갑작스럽게 국제유동성이 원활하게 공급되고 미국 및 세계경제가 단시일에 회복될 것으로 예상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여 신흥국의 성장 견인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 미국의 소비 감소, 글로벌 임밸런스의 완만한 축소 추세 속에서 신흥국 내수시장의 성장세도 완만한 수준에 그칠 것이다. 각국이 실시하고 있는 환경 산업 부양 등의 신성장 엔진 전략이 얼마나 빨리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지는 현 시점에서는 불확실하다고 할 수 있으며, 미국 등 선진국 정부는 당분간 막대한 재정투입을 통해 수요 감소를 억제하는 데 급급할 것으로 보인다.  
 
재정확대를 통한 수요 진작이 자본의 확대재생산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공황과 같은 상황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미국정부는 계속 재정확대에 주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에 따라 미국의 재정적자는 1990년대의 일본과 같이 크게 누적될 것이다. 유럽의 경우도 재정적자의 GDP 비중을 3%로 제한하는 규정을 완화해 지속적인 재정확대에 주력해야 할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거부할 경우 경제부진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앞으로 미국 경제의 침체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불확실하지만 일본 장기불황과 비슷한 구조 속에서 경제활동의 정체 상태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앞으로 미국의 부실채권은 주택 이외의 상업용 부동산, 제조업, M&A 관련 펀드, 소비자신용 등으로 다양하게 확대될 것으로 보이나 역시 위기의 진원지인 주택시장의 조정 완료 여부가 경제위기 탈출의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우려되는 것은 부동산 가격 하락의 오버슈팅 현상이다. 사실, <그림 9>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미국 부동산 가격이 버블 형성 이전의 과거 추세선을 고려한 합리적 수준으로 조정된 이후에도 일본의 경우와 같이 관성이 작용해서 가격 하락세가 과도해지는 오버 슈팅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일본의 사례 등을 배우면서 앞장에서 지적한 부실채권의 악순환을 억제하기 위한 과제 해결에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일 것을 가정한다면 미국경제는 2009년의 극심한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 2010년에는 다소 호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작년 4/4분기에 나타났던 금융경색의 여파 및 심리위축으로 인한 자동차 판매의 급감 추세가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과 경기 부양책에 힘입어서 어느정도 진정되면 경기상황이 다소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경우에도 미국경제가 향후 3~4년 동안에는 과거와 같은 성장 추세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와 같은 장기간의 경제 부진은 기업과 가계의 비관적인 마인드를 고착화시키면서 잠재성장률 자체를 하락시킬 위험성도 있으며, 이는 2010년대 초반 이후로 예상되는 미국 베이비 붐 세대의 대량 은퇴라는 인구동태적인 요인과 맞물려 미국경제의 쇠퇴를 촉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경제의 이러한 장기불황 조짐은 유럽 경제의 부진과 함께 세계경제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세계 각국 정부의 국제금융시장 안정화 노력이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더라도 금융시장의 일정한 안정세를 확보하는 데 성공하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 및 대외수지 흑자국의 내수 부양책이 효과를 거둔다면 세계경제 자체의 장기침체는 억제될 가능성이 있다. 금년도의 세계경제 성장 기여도 측면에서 중국은 40% 이상이 될 것이며, 개도국 전체로는 100% 이상을 차지하게 될 전망인데, 2010년에는 주요 선진국이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개도국 경제의 성장세에 힘입어서 세계경제가 2~3%대의 성장률을 회복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대규모 대외수지 흑자국인 중국과 일본이 내수시장 부양과 함께 아시아 및 세계경제를 위한 성장 자금을 자체적으로 공급하면서 금융시장의 안정화와 수요확대에 주력할 경우 아시아 경제도 점진적으로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금융 투기의 압력으로 인해 발생한 1997년 아시아 통화위기 이후 내수기반 성장이 억제되고 대외수지 흑자를 누적해 왔던 아시아 각국의 경우도 투기 억제와 국제금융시장 안정화라는 국제금융질서의 혁신 효과가 점진적으로라도 가시화된다면 내수시장 활성화에 보다 노력하게 될 것으로 보여 세계경제의 성장 센터로서의 역할을 일정 수준 확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경제의 구조변화와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를 계기로 세계경제의 구조도 변화할 것으로 보이며, 이는 기업의 비즈니스 환경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우선, 글로벌 임밸런스의 축소와 중국, 일본 등 흑자국의 내수 진작이라는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국 달러화의 추세적인 하락과 함께 엔화 및 위안화의 강세기조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세계 각국이 금융과 실물경제의 악순환을 억제하기 위해 정책금리를 잇따라 0%에 가까운 낮은 수준으로 유도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추세가 장기화될 경우 일본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연금재정이 운영난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도국에서도 인구고령화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각국 정부나 소비자가 인구고령화에 대응하는 데 필요로 하는 서비스나 제품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번 위기를 계기로 중국 등 신흥시장이 내수 기반 성장 패턴을 강화하게 될 것으로 보이며, 신흥국 시장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과거 선진국 시장용으로 개발한 제품을 신흥시장용 제품으로 적응시켜서 판매해 왔던 전략을 수정하여 신흥시장의 니즈에 맞는 보다 획기적인 저가격 제품의 필요성이 높아질 것이다. 저가격 이점과 함께 친환경 이점 등의 부가가치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혁신적 제품의 개발이 중요해질 것이다. 예를 들면 신흥시장용 전기자동차나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기존 자동차보다도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업 노력 등이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다.    
 
중국 등의 BRICs와 아프리카 등의 차세대 신흥시장 사이의 무역관계, 투자 및 금융지원 관계 등이 강화되면서 세계경제의 구조가 보다 많은 축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성장 파급 효과를 강화할 것으로 보이며, 이와 같은 신흥시장 간의 분업관계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기회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장기적으로는 신흥시장의 내수기반이 강화되는 효과와 함께 선진국 경제도 점차  회생할 것으로 보여 세계경제의 성장세도 높아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지구적 차원의 환경 및 원자재 문제는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다.  
 
세계경제의 구조개혁 과제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다면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는 늦어도 2011~2013년 경에는 수습될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의 세계경제는 신흥국의 성장에 의해 성장세를 회복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각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친환경 산업 육성 정책과 맞물려 녹색 이노베이션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위기 시대는 새로운 이노베이션의 기회이기도 하며, 녹색 이노베이션 측면에서 성과를 거둔 신흥기업이 새로 부상할 수 있는 토양이 되기도 할 것이다.
- LG Business Insight 10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