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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2. 3. 22:12
최근 경제성장세가 뚜렷해진 선진국들의 경험을 돌아보면서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 정책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성장률 제고의 목적은 ‘국민 생활수준에서 선진국 따라잡기’이다. 선진국들은 고소득 단계에서도 성장률이 떨어지지 않았다. 반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의 하락 속도는 선진국들은 물론 비슷한 발전단계에 있는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빠르다. 성장활력을 시급히 되살리지 않고서는 선진국 도약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선진국은 경제성숙화 과정에서 총투자나 설비투자의 GDP 대비 비중이 일정 범위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었다. 최근 우리 경제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투자주도형 성장패턴으로 경제 재도약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대안은 저출산·고령화라는 요소투입 측면의 강력한 성장제약을 극복함과 동시에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최근 10년간 좋은 경제성과를 보인 선진 9개국의 유형을 요소투입 주도형, 생산성 주도형, 유기적 성장형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요소투입 증대는 그것이 영속적으로 이루어지거나 생산성 레벨 업을 견인하는 수준까지 이루어지는 경우에만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다. 성장활력 재점화를 위한 정책의 핵심은 혁신과 개방이다. 또한 혁신이나 개방 정책이 요소투입 증대와 생산성 향상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데는 구조개혁이 수반되거나 전제되어야 한다. 단기적으로 성장률 수치를 끌어올리는 노력은 후유증만 낳을 뿐이다. 경쟁을 촉진하고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개혁과 아울러 실효성 있는 혁신정책과 능동적인 개방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만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다. 


I. 왜 지금 성장이 문제인가? 
 
 
한국 경제의 성장률 하락세가 뚜렷하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1970년대 8.3%에서 80년대 7.6%로 떨어졌다. 하락세는 1990년대 6.1%, 2000~2006년 5.2%로 이어졌다. 이 같은 성장률 하락은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 성장잠재력의 위축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일쇼크나 외환위기, 카드사태 같은 단기적인 대내외 충격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중장기 흐름이기 때문이다.
 
점점 약해지는 성장 활력을 어떻게 하면 되살릴 수 있을까? 본고는 선진국들의 최근 성장 경험에서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왜 BRICs가 아니라 선진국들인가? 첫째, 우리 경제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곳은 선진국들이지 BRICs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BRICs의 고도성장에는 ‘후발자의 이득’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BRICs의 성장 원천은 과거 우리 경제가 그러했듯이 ‘영감(inspiration)’보다는 ‘땀(perspiration)’이었다. 국제분업구조 상 지위나 경쟁환경을 감안할 때 우리 경제의 진로설정에 벤치마크로 활용하기가 곤란한 것이다.
 
둘째, 향후 성장여건 측면에서도 BRICs에 비해 선진국들이 우리와 공유하는 부분이 더 많다.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 하락의 원인들로 지목되는 고령화, 저출산, 경제주체들의 리스크 회피 성향 등의 메가트렌드는 선진국들에서 먼저 출현했다. 이 같은 리스크 요인들에 한발 앞서 대응해온 그들의 경험은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우리 경제의 성장률 하락 속도가 과연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성장 둔화를 경제성숙화에 수반되는 내재적 경향으로 치부할 경우 미온적인 대응에 그치게 될 우려가 있다. 반대로 실제 이상으로 비관적인 진단을 내리고 단기대응에 급급할 경우 인플레이션, 재정불안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공산이 크다.
 
사실 우리 경제의 2000년 이후 성장률 5.2%는 선진국 기준으로 보면 꽤 높은 수치이다. ‘선진국 클럽’이라고 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들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990년대 2.6%, 2000년대 전반 2.4%였다. OECD 회원국들과 BRICs 중에서 성장률 순위를 매겨보면 한국은 2005년 현재 5위로 여전히 상위권에 위치해 있다(<표 1> 참조). 그런데도 우리 경제의 성장 둔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성장률에서 중요한 것은 수준이 아니라 변화 방향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성장률이 2%에서 4%로 오르는 경우가 8%에서 5%로 떨어지는 경우보다 경제에 더 큰 활력을 줄 수 있다. 성장 속도의 하락은 소비심리 위축, 투자 감소, 실업률 상승 등의 부담을 초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례가 없는 성장률 하락세를 경험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최근 10년간(1995~2005년) 경제성장률은 4.4%로서 직전 10년간 8.7%에서 무려 4.3%p 하락했다. 중진국과 선진국을 통틀어 하락 폭이 가장 크다(<그림 1> 참조).
 
둘째, 성장 둔화가 계속된다면 ‘선진국 따라잡기’가 불가능해진다. 경제성장의 목적은 국민 생활수준의 향상이며, 목표는 선진국의 생활수준이다. 국민 생활수준의 차이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상대적 및 절대적 격차를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먼저, 선진국 또는 선진국가군의 1인당 GDP 수준을 100으로 놓고 우리나라의 1인당 GDP 수준의 시기별 변화를 살펴보면, 선진국 따라잡기가 차질 없이 진행중인 것으로 나타난다(<그림 2> 참조). OECD 주요 회원국 23개국이나 일본과의 상대적 격차는 외환위기 직후를 제외하고는 계속 축소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와 BRICs의 상대적 격차는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절대적 격차를 보면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그림 3> 참조). 최근 4~5년간 선진국 추격의 모멘텀이 약해진 모습이 완연하다. 최근 들어 미국 등 일부 선진국들과의 격차는 줄어들기는 커녕 확대되기 시작했다. 일본과의 격차는 거의 그대로이며, 중국의 추격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선진국들과의 소득격차는 여전히 크고, 추격의 속도가 떨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II. 최근 선진국 경제성장의 특징 
 
 
첫째, ‘경제가 발전하면 경제성장률은 점점 떨어지지 않느냐’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적어도 지금의 선진국들은 그렇지 않았다. 2005년 말 현재 1인당 GDP 3만 달러(경상환율 기준)를 돌파한 19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5,000~1만 달러 시기 2.8% ▲1만~2만 달러 시기 2.9% ▲2만~3만 달러 시기 3.0%로 탄탄한 흐름을 보였다. 4만 달러를 달성한 7개국도 ▲5,000~1만 달러 시기 2.8% ▲1만~2만 달러 시기 3.3% ▲2만~3만 달러 시기 4.1% ▲3만~4만 달러 시기 3.0% 등으로 대체로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갔다.
 
그런데 한국의 성장률은 ▲5,000~1만 달러 시기(1989~1995년) 8.0%에서 ▲1만 달러 이후 시기(1996~2005년) 4.4%로 크게 떨어졌다. 고속성장 이후의 성장 둔화는 후발 고도성장 국가들에게 공통된 현상이다. BRICs 이전의 대표적인 후발 고도성장 사례였던 신흥공업지역(NIEs)이 전형적으로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그림 4> 참조). 문제는 그 중에서도 한국의 성장 둔화 폭이 단연 최대라는 점이다.  
 
둘째, 선진국들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총투자율이나 설비투자의 GDP 대비 비중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OECD국가들의 총투자율은 불변가격 기준으로 25%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그림 5> 참조). 우리나라의 경우는 경제개발 착수 이래 가파르게 상승해 80년대 말~90년대 말 30%를 웃돈 적도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계기로 급락한 뒤 30%선에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BRICs의 경우 80년대 이후 줄곧 총투자율이 한국보다 낮았으나, 최근 1~2년 사이 30%선을 넘보면서 추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상의 사실들을 감안할 때 대체로 30% 선을 총투자율의 장기 상승 한계로 간주할 수 있다.
 
한편 GDP 대비 설비투자의 비중은 총투자율에 비해 국가 간 편차가 크다(<그림 6> 참조). 선진국들의 경우 70년대에 10%선에서 6%대로 내려앉는 큰 폭의 조정을 겪은 뒤 6~8% 선에서 소폭의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70년대 초 4%선에서 상승하기 시작해 외환위기 직전 15%를 넘어서기도 했으나 외환위기 이후 10%선으로 하향안정화되어 가고 있다.
 
총투자율과 설비투자율이 일정 수치를 중심으로 등락하는 것은 ‘산출 대비 자본투입 비중이 일정 수준을 유지한다’는 칼도어의 경험칙(Kaldor’s facts)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설비투자 증가율은 ▲1971~1980년 19.6%, ▲1981~1990년 12.1%▲91~2000년 6%, ▲2001~2006년 2.2% 등으로 급감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투자부진은 성장활력 둔화의 주 요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경제에도 칼도어의 관찰이 들어맞는다면 다른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즉 이 같은 투자부진의 상당 부분은 우리 경제의 성숙 과정에서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경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한국 경제의 진정한 문제점은 투자가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투자부진을 극복하고 우리 경제를 재도약시킬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메커니즘이 아직 정립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약 10년간의 과잉투자 시기에 뒤이어 터진 외환위기는 우리 경제가 투자주도형 성장방식이 더 이상 맞지 않는 단계로 성장했다는 점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혁신주도형 경제’이든, ‘지식기반경제’이든 새로운 성장 메커니즘으로의 전환을 요구 받고 있는 것이다.
 
셋째, 최근 선진국들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노동투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자본투입은 상대적으로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저출산 및 고령화 추세가 강력한 성장 제약 요인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선진국 가운데서도 그간 성장이 부진했던 나라들이 노동투입을 늘리는 효과적인 정책 대응으로 성장활력을 재점화시킨 사례가 적지 않다. 노동투입을 결정하는 요인과 그것에 영향을 주는 사회 환경, 그리고 성공적인 정책대응 사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선진국들 가운데는 고용 증가가 생산성 향상을 동반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그리스, 스웨덴, 핀란드, 아일랜드, 영국, 캐나다 등이 상당 기간 이러한 모습을 보여줬다. 여기에는 이민 노동력의 역할이 특히 컸다. 이민 노동력이 생산성 증대에 기여한 것은 두 가지 경로를 통해서다. 하나는 스페인, 그리스 등의 경우처럼 가사노동에 종사하던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촉진한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스위스처럼 기존 노동력보다 질 높은 이민 노동력이 유입됨으로써 전반적인 인적자본 수준을 높여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끌어올린 경우다.
 
넷째, 2005년 현재 1인당 GDP가 3만 달러 이상인 선진국들에서는 노동생산성이 소득수준 향상에 따라 꾸준히 증가해왔다. 하지만 그 증가 속도는 점차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성장률(=노동투입 기여도+노동생산성 기여도)에서 차지하는 노동생산성의 비중도 점차 하락하는 추세다(<그림 7> 참조). 이는 노동생산성 향상이 힘겹게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90년대 이후 일부 국가들에서 노동투입 증가율이 크게 높아진 사실을 반영한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생산성의 증가율이 떨어지고 있지만, 기여도는 단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그림 8> 참조). 잠재성장률 제고의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생산성 향상이 선진국들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선진국들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발견되는 이상의 네 가지 특징은 각 항목의 평균 수치의 전반적인 흐름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개별국가 사례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성장 제약들에서 벗어나 꾸준히 성장활력을 유지해온 경우가 적지 않다. 예컨대 아일랜드는 능동적인 자본시장 개방정책으로 지난 20여 년 간 선진국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성장신화를 보여준 바 있다. 스페인, 덴마크, 영국 등은 이민 인구 유입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등을 통해 저출산·고령화 트렌드로 인한 노동투입 제약을 성공적으로 극복했다. 미국, 스웨덴 등은 꾸준한 생산성 향상으로 탄탄한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국가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서 노동, 자본, 생산성 측면의 성장 제약을 극복하고 활력 있는 경제를 유지해올 수 있었을까?
 
 
III. 잘 나가는 선진국들의 성장 비결 
 
 
1. 제도유형별 접근 
 
선진국 경제성장을 살펴보는 가장 대표적인 방식이 제도유형별 접근이다. ‘영미식 자본주의’니 ‘유럽 복지국가 모델’이니 하는 개념이 출현하는 논의에서 활용되는 방법이다. 여기서는 구레비치(P. Gourevitch)와 호스(M. Hawes)의 분류법에 따라 자유시장경제(LMEs·Liberal Market Economies), 유기적시장경제(OMEs·Organized Market Economies), 그리고 혼합형(MCs·Mixed cases) 등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살펴보기로 한다.1)
 
1970년 이후 경제성장률을 계산해본 결과 LMEs가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9> 참조). LMEs는 70년대 초기에는 OMEs나 MCs보다 평균 성장률이 낮았으나 70년대 중반 OMEs를 제친 데 이어 80년대 초 MCs까지 추월했다. 특히 OMEs와의 성장률 격차를 점점 더 벌려가고 있다. MCs는 70년대에 추세적인 성장률 하락을 겪은 뒤 90년대 이후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는 스페인, 그리스의 고속성장 덕분에 셋 중에서 성장률 부침이 가장 작다. 한편 OMEs는 성장률 면에서 세 가지 유형 중 성과가 가장 나빴다.2)
 
그런데 제도유형별 접근은 선진국들의 성장정책을 벤치마킹한다는 본고의 분석 목적에 적합한 방법이 못 된다. 첫째, 같은 유형에 속하는 국가들 간에도 성장률이 크게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의 90년대 연평균성장률은 7.2%로 같은 LMEs에 속하는 영국(2.4%)의 3배나 된다. 또 2000년대 이후 그리스가 연평균 4.1%의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동일한 경제유형으로 분류되는 포르투갈은 0.5%의 극심한 성장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둘째, 제도유형별로 접근하면 국가간 제도 또는 정책의 수렴 경향을 적절히 평가할 수 없게 된다. 선진 각국은 근년 들어 글로벌 차원의 메가트렌드들에서 유래하는 구조적 현안들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정책수단들을 동원하고 있다. 그 결과 관련 제도들이 서로 닮아가는 경향이 뚜렷하다. 단적인 예로 강력한 노동시장 개혁 드라이브를 통해 유연안정성(flexicurity) 모델을 확립한 덴마크의 경우 OMEs와 LMEs 중 어디에 속하는지 판가름하기가 어렵다. 셋째, 보다 현실적인 문제로서 우리나라가 LMEs, OMEs, MCs 중 어디에 속하는지가 불분명하다. 따라서 LMEs가 정답이라고 해도 구체적으로 어느 분야를 어느 정도나 뜯어고쳐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본고에서는 제도 유형의 구분 없이 각국의 성장경험을 동일한 잣대에서 평가하는 실용주의적 접근법을 취하고자 한다. 먼저 성장회계를 활용해 최근 선진 각국의 경제성장에 기여한 주 요인을 분석해낸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 좋은 경제성과를 거둔 선진국들의 성장유형을 구분하고, 최근의 경제성장을 뒷받침한 각국의 정책들을 살펴본다.
 
2. 성장요인별 접근 
 
경제성장 요인은 통상 노동투입, 자본투입, 생산성 등 세 가지로 분류된다. 즉, <경제성장률=노동투입 기여도+자본투입 기여도+총요소생산성>이다. 이하에서는 최근 탄탄한 성장세를 보인 선진국들의 유형을 성장에 대한 기여도가 가장 높은 생산요소를 기준으로 구분해 살펴본다.
 
우선 OECD 국가들 중에서 ▲최근 10년간(1995~2005년)과 그 직전 10년간(1985~1995년)의 성장률 차이를 기준으로 성장률이 상승 추세를 보인 사례를 선별한다.3) 그리고 이들 국가를 성장기여도가 높은 요인을 기준으로 요소투입 주도형(L, K), 생산성 주도형(A), 유기적 성장형(A-K, A-L) 등으로 나눈다. OECD 회원국 30개국 가운데 2005년 현재 총인구 100만 명 이하의 미니국가들(룩셈부르크, 아일랜드)과 체제전환국(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 한국보다 1인당 GDP 수준이 낮은 터키, 멕시코 등과 한국을 제외한 21개국을 분석대상으로 한다. 성장요인별 기여도는 OECD의 다요소생산성(Multifactor Productivity) 데이터를 바탕으로 계산했다. 분석 결과 미국, 스웨덴, 스페인, 그리스, 아일랜드 등 9개국이 벤치마크 국가로 선정되었다(<그림 10> 참조).
 
(1) 요소투입 주도형 성장 
 
스페인, 뉴질랜드, 핀란드, 아일랜드 등 4개국은 자본 또는 노동 투입 증가가 성장을 견인한 유형이다. 스페인과 뉴질랜드는 이민 인구의 급격한 유입이 큰 폭의 노동투입 증가를 가져온 경우다. 핀란드는 덴마크, 네덜란드에 버금가는 광범위한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최근 10년 동안 실업률을 7%p가량 떨어뜨리고 노동투입을 크게 늘렸다. 한편 아일랜드는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적극 유치하고 젊은 교포 중심의 이민 인구를 적극 받아들임으로써 노동과 자본투입을 동시에 늘린 케이스다.
 
노동투입 증가가 생산성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국가별로 다르게 나타났다. 핀란드와 아일랜드에서는 노동 투입 증가가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스페인과 뉴질랜드에서는 노동투입 증가율이 커진 시기에 생산성은 저하되는 모습이 관찰된다(<표 2> 참조).
 
노동투입 주도의 성장이 초래하는 한 가지 문제점은 물가불안과 대외수지 불균형이다. 내수 중심으로 성장해온 경제에서 요소투입 증가가 임금소득 증대와 경제 전반의 인플레이션을 거쳐 국제수지 악화로 귀결된 것이다. 예컨대 스페인은 1986년 EU 가입으로 조성된 저금리 여건에서 내수가 빠르게 확대되고, 여기에 이민자 대량유입에 따른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이 맞물리면서 물가 상승과 국제수지 악화를 겪고 있다.
 
향후 고용 증가와 실업 감소를 위한 이들 국가의 정책방향은 어떠할까? 뉴질랜드는 후한 실업급여나 복지 혜택을 받으면서 노동시장 바깥에 머물러 있는 취약계층들의 취업 유도에 주력하고 있다. 핀란드는 형식상 고용 상태에 있으나 실제로는 일을 하지 않는 각종 장애연금 수급자들에 대해 근로 인센티브를 늘리기 위한 복지제도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일랜드는 육아 및 보육 지원과 2차 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 인하 같은 조세유인 강화 등을 통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을 높이는데 정책 초점을 맞추고 있다.
 
(2) 생산성 주도형 성장 
 
미국, 스웨덴, 일본 등은 선진국들 가운데 최근 10년간 생산성 증가율이 직전 10년간에 비해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한 나라들이다(<표 3> 참조). 미국은 고도의 IT기술 개발과 산업 전반에 걸친 적용, 효율적인 금융시스템, 유기적인 산학연 연계를 핵심으로 하는 국가혁신시스템 등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 두드러진 생산성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스웨덴은 주요 산업부문들의 규제개혁과 경쟁촉진 정책이 효과를 거두면서 수출 제조업부문을 중심으로 생산성 주도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일본은 설비, 채무, 고용 등에 있어 이른바 ‘3대 과잉’이 해소되면서 수익성이 회복된 결과 근년 들어 의미 있는 턴 어라운드에 성공했다.
 
세 나라는 근년에 들어서도 고질적으로 시스템 비효율을 야기해온 요인들을 제거하는 것을 우선시하여 생산성 제고를 위한 정책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미국은 전반적인 노동력의 질을 높이기 위한 초·중등 교육개혁에 착수했으며, 금융시장 투자자들의 신뢰 회복을 겨냥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회계 투명성 제고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스웨덴은 서비스 및 공공 부문의 생산성 향상과 창업 마인드 제고를 위해 점진적인 규제 완화와 복지비용 부담 축소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한편 일본은 대대적인 규제 완화와 공공부문 개혁을 단행한 데 이어 교육개혁 드라이브에 시동을 걸고 있다.
 
(3) 유기적 성장형 
 
영국과 그리스는 요소 투입 증가와 생산성 향상이 상승작용을 일으킨 대표적인 사례이다(<표 4> 참조). 영국은 근로 인센티브를 높이는 사회보장제도 개혁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1996년 8%에 이르던 실업률을 2006년 5.4%로 떨어뜨렸다. 아울러 유연한 노동시장의 바탕 위에 대외경쟁력을 사실상의 유일한 기준으로 한 산업재편이 시장 메커니즘에 의거해 착착 진행되면서 생산성이 꾸준히 향상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스의 경우 경직적 노동시장과 취약한 인적자본 등의 불리한 여건을 딛고 1990년대 중반 이후 주요 산업부문에 대한 대폭적인 규제완화와 양적 신용할당 철폐를 핵심으로 하는 금융자유화 등에 힘입어 인상적인 경제성과를 일궈냈다.
 
3. 벤치마크 선진국들의 성장정책 : 혁신과 개방 
 
벤치마크 국가들 중 일부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응용해 새로운 제품과 공정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개척함으로써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었다. 또 다른 일부의 국가들은 자원배분의 범위를 글로벌 차원으로 확장하고 글로벌 경쟁환경을 경제 체질 개선의 촉매로 활용함으로써 성장활력을 지속해나갈 수 있었다. 성장정책의 관점에서 보면 각각 혁신(주도)형과 개방(활용)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벤치마크 선진국들 각각의 정책 프레임워크를 이러한 시각에 비춰보면 혁신형과 개방형, 그리고 양자의 결합형 등 세가지 유형의 사례들을 구분해낼 수 있다(<그림 11> 참조).
 
스웨덴은 미국과 함께 혁신형 성장전략을 대표한다. 스웨덴이 유럽에서 가장 탄탄한 생산성 증가세를 보인 데는 IT기술, R&D, 규제완화 등 세 가지 요인이 결정적이었다. 무엇보다 거대 통신기업 에릭슨으로 상징되는 IT장비산업의 약진 및 IT기술의 제조업 활용이 생산성 증대의 큰 부분을 설명한다. 여기에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GDP의 3%)의 민간부문 R&D 투자가 한 몫을 했다. 구조개혁, 특히 규제완화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90년대 중반부터 전력, 통신 산업 자유화, EU 가입에 따른 시장개방 등 일련의 규제완화 및 경쟁촉진 정책이 점진적이지만 착실히 추진되었다.
 
아일랜드와 스페인은 개방을 지렛대로 경제성장을 이룬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하지만 개방의 효과가 국내 산업구조 전환을 매개로 생산성의 지속적인 향상을 이끌어내는 단계에 이를 정도로 강력하지는 못했다. 단적으로 아일랜드의 경우 토착기업의 생산성이 외국기업의 1/4에 불과할 정도로 국적에 따른 기업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혁신과 개방의 이상적인 결합은 영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국은 개방이 산업구조 전환을 촉진하고, 그것이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내어 개방을 더욱 진전시키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전형적인 사례다. 이러한 선순환은 개방이 시장 메커니즘의 효율적인 자원배분 기능과 결합되어 가능하게 되었다. 선순환의 누적효과로 영국의 산업구조는 대외경쟁력이 있는 금융, 사업서비스, 제약, 통신, 항공엔진 등 고부가가치산업 중심으로 획기적으로 재편됐다. 최근 제조업 부문의 비중이 GDP의 15%선으로 떨어진 반면 사업서비스업의 부가가치 비중은 1980년 제조업의 1.5배에서 2003년에는 제조업의 3.5배로 증가할 정도로 극적인 변화였다.
 
균형발전론자의 눈에 이러한 영국의 산업구조는 기형적으로 보일 법하다. 개방의 리스크에 전면적으로 노출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 영국인들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을 리스크라기보다는 기회로 보고 있다. 2006년에 영국, 미국, 독일, 폴란드 등 7개국 국민들을 상대로 실시된 설문조사 결과 ‘자유무역은 일자리를 파괴하기 보다는 창출할 것’이라는 데 동의한 영국 응답자의 비율이 56%로 폴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으며, ‘개인적으로 자유무역으로 인해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한 사람이 77%에 이르러 7개국 국민 중 개방에 대한 가장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4)
 
 
IV. 정책 시사점 
 
 
성장 잠재력은 지속성의 문제다. 벤치마크 9개국의 최근 경제 성장세가 일시적인 것인지, 지속적인 것인지는 속단할 수 없다. 이들이 근래에 성취한 경제 성과 중에는 부동산 등의 자산 가격 상승에 따른 소비 및 건설투자 증가 등에 힘입은 부분이 작지 않다. 이 같은 효과는 성장률을 단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그칠 공산이 크다. 게다가 그 일시적 효과가 경착륙의 양상을 띠며 소멸될 경우 경제 전반에 걸쳐 커다란 조정 부담을 지울 수도 있다. 인위적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급급해서는 성장잠재력을 높이기는커녕 후유증만 남길 우려가 있다.
 
노동이나 자본 투입을 어떻게든 늘리면 성장률 수치는 올라간다. 하지만 이렇게 올라간 성장률이 지속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요소 투입 증가가 잠재성장률 상승으로 이어지려면 요소투입 증가가 영속적으로 이루어지거나, 요소투입 증가가 적어도 생산성 레벨 업을 견인할 때까지 지속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아무리 고용률을 높여도 신규진입 인력의 질이 갈수록 낮아진다면 생산성이 계속 떨어져 노동투입 증가의 효과를 상쇄하게 된다. 또 다른 예로 기술 변화나 경쟁 환경의 변화 없이 이루어지는 자본투입 증가는 90년대에 일본이 겪은 것처럼 자본생산성을 떨어뜨려 결국 극심한 투자정체의 후유증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요소 투입 증가가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되려면 이처럼 고용시장 구조(노동력의 질, 고용시장 유연성)나 산업 구조, 경쟁 환경 등에 있어서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예컨대 똑 같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제고’가 목표라고 한다면 비경제활동인구로 있던 고령 여성들이 직접 주요 산업분야에 뛰어드는 것보다 이들이 육아나 보육을 맡고 출산기 여성 근로자들이 경력단절 없이 근로를 계속하는 것이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다. 자본투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규제 완화, 진입장벽 철폐 등을 통해 기존 산업부문 내에서 경쟁이 촉진되고 산업간 또는 부문간 자원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만 자본투입 증가가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될 수 있다. 요컨대 교육시스템 개혁, 고용시장 유연화, 경쟁 촉진 등의 구조개혁이 전제되거나 동시에 추진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격다짐 식으로 일자리 창출을 시도하거나 투자 독려를 해봤자 잠재성장률은 끌어올릴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몇 년간 탁월한 경제성과를 거두었던 선진국들은 향후 정책 방향을 혁신과 개방으로 설정하고 정책 어젠다의 제 1선에 규제 완화, 경쟁 촉진,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의 구조개혁 정책을 올려놓고 있다. 사실 그들이 가장 일찍이 손을 대기 시작했고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다고 평가 받는 정책 현안들이다. 잘 나가고 있는 선진국들이 왜 우리가 수없이 들어왔고 신물이 나도록 논의해온 정책 이슈들을 그토록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는지 새삼 헤아려볼 일이다.
- LG 경제연구원 2007.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