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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4. 12. 18:01
"기업 경쟁력 키우려면 협력업체부터 키워라"

글로벌 소싱 확산… 개별기업 아닌 기업群간 경쟁
최초 부품공급업체에서 소비자까지 통합 운영해야

한국을 대표하는 벤처기업인인 변대규 휴맥스 사장이 최근 이렇게 토로한 적이 있다.

"매출이 갑자기 커지면서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에 봉착했습니다. 엄청난 비효율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죠. 어렵게 번 돈을 눈 뜨고 날리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벤처 시절에는 재고나 영업관리를 대부분 수작업으로 했다. 하지만 생산 기지가 유럽·중국·인도·폴란드 등으로 다변화하고 매출이 크게 늘어나면서 기존 방식에 한계가 드러났다. 장부상 재고와 실제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 배로 가야 할 자재가 비행기로 가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변 사장은 이 같은 문제의 원인을 " '공급사슬관리(supply chain management·SCM)'의 중요성을 미처 몰랐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진단했다.

변 사장을 울린 공급사슬관리란 도대체 무엇이며, 성공의 열쇠는 무엇일까? 최근 방한한 이 분야의 세계적 석학 램 나라심한(Narasimhan) 교수를 만나 들어 보았다. 그는 인도 출신으로, 공급 사슬 및 물류 분야 연구로 유명한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 경영대학원에서 석좌 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자동차 제조업체 롤스로이스의 공급사슬관리 컨설팅도 맡고 있다.

―공급사슬관리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입니까?

"최초의 부품 공급업체에서부터 최종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전략입니다. 흔히 단순히 부품을 구하고 부품 협력업체를 관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실은 이보다 훨씬 더 큰 개념입니다. 제품 디자인과 개발, 글로벌 운영, 통합 물류, 글로벌 소싱(global sourcing·해외 조달)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공급사슬관리에서 실패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라심한 교수는 '황소채찍효과(bullwhip effect)'를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황소채찍효과란 마치 채찍처럼 손잡이(시장)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정보가 왜곡돼 나타나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이를테면 어떤 제품에 대한 고객 소비가 10% 늘어나 소매점이 주문을 10% 늘렸다고 합시다. 그러면 도매업체는 넉넉하게 재고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생산업체에 주문을 20% 늘립니다. 생산업체는 만약을 대비해서 30% 더 만들고요. 결국 이 같은 정보 왜곡으로 인해 불필요하게 재고가 늘어나게 되죠."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생산자와 도매점, 소매점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최선이다. HP나 보잉, 델 등이 이런 방식으로 황소채찍효과를 줄인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힌다고 나라심한 교수는 말했다.


■ 기업 경쟁력의 원천은 협력업체

나라심한 교수는 "오늘날의 산업 현장은 개별 기업 간 경쟁이 아닌 '기업 생태계(business ecosystem)'간의 경쟁"이라고 말했다. 기업 생태계란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는 물론, 금융기관, 컨설팅 회사, 기술 제공 기관 등 이해관계자를 모두 포함하는 기업 군(群)을 말한다. 일부에서는 '기업 간 연합'을 뜻하는 '인터펌 코퍼레이션(inter-firm corporation)'이라고도 부른다.

이를테면 글로벌 LCD TV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소니가 치열한 시장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부품업체·디자인컨설팅회사·마케팅 아웃소싱 업체·물류시스템 등을 포함한 '삼성전자 LCD TV 연합'과 '소니 LCD TV 연합'이 일전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의 경쟁력을 내부가 아니라 외부 협력업체와의 관계에서 찾는 '인식의 전환(paradigm shift)'이 절실해졌다고 나라심한 교수는 역설한다. 일본 자동차 산업이 세계적인 수준의 부품업체들의 힘으로 경쟁력을 유지해 온 것처럼, 요즘 전 세계 기업들은 좋은 공급업자를 구하고 그들과의 관계 개선에 힘을 쏟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협력업체와의 관계가 더욱 중요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계화는 기업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생산을 보다 유연하고, 민첩하게 할 것을 요구합니다. 결국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시장 전략에 꼭 맞는 경쟁력을 지닌 공급업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협력이란 수동적인 공급업자와 대기업 간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파트너로서 존중하는 적극적인 공조체제를 말합니다."

적극적인 공조체제란 "협력의 범위가 단순한 생산관리뿐 아니라 전략적 동맹, 지식 경영, 전략적 자산 경영 등으로 넓어진 것을 말한다"고 나라심한 교수는 설명했다. 공급사슬관리는 이런 모든 가치 창조 활동을 포함하는 개념이라는 설명이다.

월마트, 타깃(Target) 등 세계적 유통기업들이 이른바 PL(Private Label·자체 브랜드) 제품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제조업체에서 유통업체로 권력이 넘어오고 있다고도 합니다. 앞으로 전망은 어떻습니까?

"어느 정도 맞습니다. 월마트의 힘은 저가 전략에서 나옵니다. 월마트는 제조업체에게 저가의 물건을 대량 주문한 뒤 월마트 브랜드를 붙여 소비자에게 팔고 있습니다. 이걸 보면 유통업체로 권력이 쏠리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품질과 브랜드가 뛰어난 상품의 경우 이러한 권력 관계가 통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전자용품 전문점 베스트 바이(Best Buy)가 소니나 필립스를 맘대로 할 수 없습니다. 월마트라고 해도 세계적인 장난감 브랜드 레고에게 큰소리 칠 수는 없습니다. 이들 유명 제조 브랜드는 높은 인지도와 좋은 품질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 "내가 다 하려 하지 마라"

나라심한 교수는 아웃소싱(outsourcing)의 적극적 옹호자이다. 그는 "기업이 모든 지식을 다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고, 제조에 필요한 공장·종업원을 갖추고 있을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잘하는 기업에 맡기면 된다는 것이다. 미국 크라이슬러의 경우 아웃소싱 비율이 70%에 이른다고 나라심한 교수는 설명했다.

"델컴퓨터는 물류조차 자체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경쟁력 있는 회사가 있다면 그곳에 해당 부문을 맡기고 정말 핵심적인 일만 하는 것입니다. 잘하는 기업들을 모아 하나의 제조체계를 만들어내는 셈입니다. 그래서 공급사슬이 중요합니다. 한 기업이 모든 제조과정의 부가가치를 담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서너 개의 공급사슬이 조합돼 하나의 좋은 제품이 나온다고 보면 됩니다."

―글로벌 소싱이 확산되면서 국내 산업의 공동화(空洞化)와 같은 여러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글로벌 소싱의 물줄기는 이제 와서 다시 되돌리지 못할 정도로 진전돼 있습니다. 최근 인도중국의 인건비가 상승하고 있어 이들 국가로의 글로벌 소싱이 줄어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코스트 절감 차원에서 보는 관점일 뿐입니다. 요즘 기업들은 코스트 절감 외에 혁신, 디자인 능력, 특화된 경영지식, 비즈니스 프로세스 통합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글로벌 소싱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삼성, 현대가 아웃소싱, 그것도 글로벌 소싱을 추구하는 마당에 제조업 공동화를 걱정하면 안 됩니다. 글로벌 소싱을 하지 않으면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궁극적으로 좋은 협력 공급사를 찾아 세계로 갈수록 한국의 경쟁력은 더욱 좋아지는 것입니다."

―글로벌 아웃소싱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얘긴가요?

"도요타나 GM이 똑같은 인도 회사에 아웃소싱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건 그 회사가 그 분야에서 가장 좋은 품질의 서비스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혁신 때문에 추구하는 아웃소싱도 있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팜(Palm) 사(社)의 스마트폰(휴대폰에 컴퓨터 지원 기능을 추가한 지능형 휴대폰)입니다. 그들은 아웃소싱 파트너와 손잡고 파일럿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팜이 스마트폰의 일종인 트레오(Treo)650 개발 과정에서 대만 HTC사와 협업적 아웃소싱 방법을 적용한 일을 두고 한 말이다. 그전까지 팜은 자사 내에 디자인 팀을 뒀고, 아웃소싱 업체는 단순 조립 기능만을 담당했다. 그러나 2001년부터 팜은 자사 역량을 소프트웨어 개발에만 집중하기로 하고, 기기 생산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대만 업체에 맡겼다. 그 결과 제품 개발 기간을 혁신적으로 단축하고, 불량률도 50% 감소시킬 수 있었다.

한국에 대해 한마디

공급사슬관리라는 용어는 경영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는 매우 생소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도 '물류(物流)'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공급사슬관리는 협의(狹義)로는 물류라고도 한다. 이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나라심한 교수에게 한국이 추진하는 동북아 물류 허브 정책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한국 정부는 동북아 물류허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 물류 중심지 싱가포르와 비교해서 한국의 경쟁력을 평가한다면 어떻습니까?

"외형상 한국의 물류 허브 가능성을 매우 높게 봅니다.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일본·중국·대만·홍콩 등 강력한 경제권들과 매우 가깝고 그 가운데 위치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 스스로도 중요한 경제 국가이고요.

하지만 한국을 싱가포르와 비교해 보겠습니다. 인력 수준·지정학적 위치·IT·교통 등에서 싱가포르에 뒤질 게 없습니다. 그런데 싱가포르는 한국에는 없는 무언가를 더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뭐지요?

"미국인이 싱가포르를 방문하면 매우 편안함을 느낍니다. 아무데나 들러 점심과 저녁을 해결하려고 해도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서울은 너무 '한국적'입니다. (대담 중이던 김수욱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를 바라보며) 만약 제가 김 교수에게 줄 선물을 사려고 서울의 백화점에 들어가서 사려는 물건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아무도 대답을 못합니다. (영어를 못하니까.) 그게 현실입니다.

뉴욕을 보십시오. 미국인이든, 일본인이든 뉴욕을 가면 모두가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게 영어의 문제일 수도 있겠습니다. 싱가포르에선 영어가 통용되지만, 서울은 아닙니다. 한국의 학교에서 영어를 제2 언어로 충실히 가르칠 수 있다면 한국의 경쟁력은 무척 오를 겁니다. 한국 사회가 지금보다 더 외국에 대해 문을 열면 물류 허브는 물론이고 금융 허브, 문화 허브도 가능합니다."

―대부분 선진국은 서비스 산업의 비율이 70%가 넘습니다. 한국 GDP에서 서비스 산업의 비율은 55%에 불과합니다. 향후 서비스 부문의 방향과 역할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매우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엄청난 성장을 구가하는 인도의 예를 들어볼까요. 인도의 경우 IT를 기반으로 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디자인 등 서비스 비즈니스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다국적 기업들이 뛰어난 소싱(sourcing) 기지를 찾고 있는 덕입니다. 특히 지식을 기반으로 한 산업 부문에서 글로벌 소싱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삼성, 현대, LG 등을 주축으로 한 제조업 경제입니다. 제가 볼 때는 한국은 '제조업 거인(manufacturing giant)'을 추구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한국도 인도처럼 서비스 부문 세계화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삼성은 소프트웨어, IT 분야의 월드 리더입니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의 글로벌 소싱 기지로도 활발히 커나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얼마나 이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기회는 관광입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느낀 점 중 하나는 한국의 경치가 너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대학 캠퍼스만 보더라도 너무 예쁩니다. 제주도나 춘천 경치에도 감탄했습니다. (그는 'dramatic' 'excellent'란 단어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과연 미국인 중에서 휴가를 준비하면서 이 아름다운 서울·제주·춘천 방문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한국은 엄청난 관광 자원을 가지고 있어 관광 산업 발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서울이 글로벌 시티가 돼야 하겠죠."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04/20080404009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