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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4. 23. 04:50
사례 # 1: LG텔레콤이 휴대전화의 번호이동성 제도의 도입을 주장한 이유는?

사례 # 2: IBM이 막대한 개발 및 마케팅비용을 쏟아 부었던 PC 운영시스템 OS/2가 기술적으로 열등하였던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에 참패하여 시장에서 퇴출 당한 이유는?

사례 # 3: 한 번 주거래은행을 정하면 불만족스럽더라도 상당수의 고객들이 바꾸지 않고 계속 사용하는 이유는?

기업사를 연구해 보면 기술적으로 열등한 제품이라 하더라도 일단 시장을 선점하고 나면, 보다 우월한 제품이 나와도 고객들이 잘 옮겨가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 고객들이 기존 제품에 고착화(lock-in)되는 경우이다. 그래서 기존 제품은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장기간 높은 이윤을 향유하게 된다.

통신, 금융, 항공서비스와 같은 산업의 경우 기존 고객들이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회사로 잘 이동하지 않는 경향도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상식적으로 보면 고객들은 기존 제품보다 우월한 제품이 새로 나오면 이를 구매해야 하고, 기존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낮으면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회사로 옮겨 가야 한다. 그런데 고객들은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전환비용(switching cost)'이라는 개념을 이해한다면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다.


■전환비용을 이해하라

전환비용이란 고객이 대체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로 이동할 때 구매 비용 이외에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말한다.

예를 들어 90년대 초반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PC 운영시스템을 사용하던 고객이 IBM OS/2로 전환하였다면 구매 비용 이외에 어떠한 전환비용이 발생하였을까?

OS/2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를 기반으로 하는 응용 소프트웨어나 주변 기기들과의 호환성(compatibility)을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했다. 따라서 기존 고객들은 윈도 기반 소프트웨어나 주변기기 중 OS/2에서 작동하지 않는 제품을 버리고 OS/2를 기반으로 하는 응용 소프트웨어와 주변기기를 별도로 구매해야 했다.

더구나 고객이 OS/2로 전환하게 되면 사용 가능한 소프트웨어나 주변기기의 선택의 폭이 크게 제한되는 문제도 발생하였다. 왜냐하면 OS/2의 고객 기반이 작아서 응용 소프트웨어나 주변 기기 개발업자들이 OS/2 용 제품 개발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설사 OS/2 용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OS/2 자체의 사용법은 물론 응용 프로그램의 사용법을 별도로 익혀야 했다. 즉 학습 비용이 든 것이다.

이로 인해 IT산업의 지존 IBM이 사운을 걸고 밀었음에도 불구하고 OS/2는 참패하여 시장에서 퇴출 당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지금까지도 압도적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높은 이익을 향유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우월하였던 애플사의 맥킨토시 컴퓨터가 IBM 호환 PC와의 경쟁에서 밀린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다.

이동통신 서비스의 경우에도 번호이동성 제도가 도입되기 전엔 1등 기업 SK텔레콤의 고객들이 다른 통신사로 좀처럼 옮기려 하지 않았다. 전환비용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통신사를 옮기려면 일단 기존의 멀쩡한 단말기를 버리고 다른 단말기를 사야 했고, 기존에 쌓아뒀던 마일리지나 포인트 등 우량 고객에 대한 혜택도 포기해야 했다. 또한 고품격 브랜드 이미지와 통화 품질을 강조한 SKT의 마케팅 캠페인이 먹혀 든 결과,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는 회사로 이동하는데 따르는 심리적 전환비용도 있었다.

이보다 더 곤혹스러운 것은 이동통신사를 옮길 경우 전화번호를 변경해야 하고, 새 번호를 수백 명의 지인·친지들에게 알리는 일이었다.

따라서 SK텔레콤의 경쟁사인 LG텔레콤는 고객이 통신사를 옮기더라도 고객이 기존 번호를 그대로 유지하게 하여 전환비용을 낮추어 주는 번호이동성 제도의 도입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정부도 고객 쏠림 현상을 완화하고 경쟁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번호이동성제도가 도입되면서 고객들은 새 번호를 알릴 필요도 없어졌고, 열등한 브랜드로 이동하는데 따른 심리적 부담감도 줄어 보다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번호이동성제도 도입 이후에도 전화기를 바꾸거나 기존의 포인트를 포기해야 하는 실질적 전환비용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에 LG텔레콤은 기기 변경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다른 통신사에서 축적한 포인트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러한 전환비용도 대폭 줄여 주었다. 이처럼 전환비용은 고객을 고착화시킴으로써 중장기적인 경쟁 구도나 기업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기업은 전환비용의 개념을 잘 이해하여 이를 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창출하거나 축소·제거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시장을 선점한 기업의 입장에서는 고객들의 전환비용을 높일 수 있다면, 경쟁을 제한하고 시장지배적 지위를 유지해 지속적으로 높은 성과를 확보할 수 있다.


■전환비용을 이용한 기업전략들

그러면 어떻게 전환비용을 높일 수 있는가? 통신서비스와 같이 고객의 가치가 네트워크의 크기와 비례해서 커지는 소위 네트워크 상품의 경우 초기에 가격을 낮추거나 심지어 무료로 제공해서라도 고객 기반을 먼저 최대한 키우는 것이 좋다. 이를 통해 '네트워크효과'를 창출하게 되면 전환비용을 높일 수 있다.

한편 일단 지배적 사업자가 되어 전환비용을 높인 기업들은 자사 제품과 후발 기업 제품 간에 가능한 한 호환성을 완벽하게 부여하지 않으려는 전략을 흔히 구사한다. 앞서 예를 든 PC 운영시스템의 경우처럼 경쟁 네트워크 상품간에 호환이 어려울 경우 전환비용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상품처럼 전환비용이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경우에도 인위적으로 전환비용을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이 많이 개발됐다.

예를 들어 항공사들이 가장 먼저 도입한 마일리지 제도는 고객 전환비용을 높이기 위한 매우 유용한 전략이었다. 항공 마일리지의 가치는 많이 쌓여야 높아지기 때문에 고객들은 가능하면 하나의 항공사로 마일리지를 모으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심리적인 전환비용을 창출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브랜드야말로 심리적 전환비용을 창출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명품 브랜드를 사용하던 고객이 질적으로 동등하면서도 가격은 훨씬 싼 보다 대중적인 브랜드로 전환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고객 개인 별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객관계관리(CRM)를 도입하는 것도 심리적 전환비용을 높이는 방법 중 하나다. 이는 고객 특성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후발 기업에 대비하는 전략으로 유용하다.


■후발 기업은 선발 기업의 전환비용을 최대한 낮춰야

반면 후발 기업의 입장에서는 선발 기업이 기존 고객에 대해서 창출한 전환비용을 최대한 낮추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기존 제품과의 호환성(backward compatibility)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 이를 통해 고객의 학습 비용이나 보완적 제품·서비스 구입에 따른 재무적 부담을 줄여 주어야 한다. 또한 LG텔레콤이 하였듯이 단말기 보조금이나 포인트 승계 등 고객이 자사로 옮겨 오는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발생하는 전환비용의 일부 내지 전부를 지원해 주어야 한다.

물론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기존 제품보다 성능이나 가격 면에서 월등히 우월한 제품을 개발하여 전환비용을 능가하는 효용을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한편 선발 기업이든 후발 기업이든 특정 공급업체에 코가 꿰이는 공급업체 고착화 현상과 전환비용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

PC 업체들의 경우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와 인텔의 펜티엄 마이크로프로세서에 고착화됨으로써 산업 전체의 매력도 내지 수익성이 결정적으로 저하되었다. 제조업체의 경우 흔히 핵심적인 공장 설비를 제공하는 장비업체에게 고착화되기도 한다.

이러한 공급업체에 의한 고착화와 전환비용 발생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단일 업체에 의존하기 보다는 복수 공급업체로부터 부품, 소재, 장비를 공급 받는 듀얼 소싱(dual sourcing) 전략을 추구하면서 공급업체 간의 호환성 확보에 노력해야 한다. 정리해 보면 기업이 장기적으로 높은 성과를 창출하고 이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고객이나 공급업체 양 측면에서 발생하는 전환비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측정하여 경쟁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 때 선발업체냐, 후발업체냐 하는 자사의 경쟁적 지위에 따라 전략의 구체적 방향성은 달라져야 한다.


■정부 정책도 전환비용을 고려해야

전환비용의 문제는 정부가 정책을 수립할 때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선발 기업에 의한 전환 비용이 높게 발생하게 되면 후발 기업에 대한 주요한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게 되어 혁신 의지를 감퇴시키고 경쟁을 제한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선택권까지 제한할 수 있다.

정부가 전환비용을 높이거나 낮추기 위한 기업의 전략에 관여해서는 안 되겠지만, 전환비용이 너무 높게 발생하여 경쟁이나 소비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열등한 제품으로의 고착화 현상이 장기간 지속된다면 개선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이동통신서비스의 번호이동성 제도와 같이 전환비용을 부분적으로 낮추어 주는 정책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 송재용 교수의 스마트경영 <9>